아름다운우리강산/충청도

찰라 2015. 11. 1. 06:26

이산가족 할아버지의 한이 서린 '꿈꾸는 백마강'

 

 

 

▲부여 낙하암에서 수녀님들이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다.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부소산성

 

부소산 입구에 도착을 하니 중학교시절 수학여행 시에 묵었던 오래된 여관들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굿뜨레특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산성 입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부소산으로 올라갔다. 어제 많이 걸었기 때문에 우리는 낙하암과 고란사코스를 걸어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부소산 성 입구

 

 

 

 

▲낙하암으로 가는 태자골 숲길

 

사비문을 지나 산성에 들어서니 천년의 아픔을 딛고 있는 부소산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태자골 숲속 길을 따라 걸어갔다. 충영사를 지나고 반월루를 지나갔다.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사자루(106m)에 이르니 백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의 친필이라고 한다.

 

 

▲부소산 사자루(106m)

 

 

▲사자루에서 바라본 백마강

 

낙하암 천년송과 백화정

 

낙하암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니 곧 백화정(百花亭)이라는 현판이 새겨진 정자가 나왔다. 백화정은 백제 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삼천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 모임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백화암 앞에는 삼천궁녀의 원혼을 보았을 천년이 넘은 소나무가 역사의 질곡을 안은 채 서 있었다. ‘낙하암 천년송이라는 팻말에 새겨진 글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남부여국 사비성에 뿌리내렸네

칠백년 백제역사 오롯이 숨쉬는 곳

낙화암 절벽위에 떨어져 움튼 생명

바람 눈서리 다 머금고

백마강 너와 함께 천년을 보냈구나

세월도 잊은 그 빛깔 늘 푸르름은

님 향한 일편단심 궁녀들의 혼이련가

백화정 찾은 길손 천년송 그마음

 

 

 

 

▲낙화암 천년송

 

 

 

 

 

 

▲백화정과 1000년 된 낙하암 천년송

 

낙하암이라는 이정표에 새겨진 춘원 이광수의 시도 눈길을 끌었다.

 

사자수 내린물에 석양이 빗길 제

버들꽃 날리는데 낙하암 이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는 창자를 끊노라

낙하암 낙하암 왜 말이 없느냐. 

 

 

 

▲춘원 이광수의  '낙하암'

 

 

월요일이라 낙하암은 비교적 한산했다. 낙하암 절벽에는 수녀 복을 입은 수녀님들 몇 분이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백마강을 굽어보는 수녀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자왕20(서기 660)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백제여인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적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낙하암이라 부르며 백제여성의 절개와 고귀한 충렬을 기리고 있다.

 

 

▲낙하암에서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는 수녀님들

 

 

 

 

▲백마강 유람선

 

 

 

 

 

 

 

고란정 약수에 목을 축이고... 황포돛배를 타다 

 

낙하암 암벽은 고작 60m의 높이다. 절벽 아래에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하는 낙하암이 새겨져 있다. 송시열은 무엇을 나타내고자 낙하임에 낙서를 했을까? 낙하암 밑에는 꿈꾸는 백마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관광객을 태운 황포돛단배가 강을 오가고 있었다. 나는 백제의 아픈 역사를 잠시 되새기다가 고란사로 내려갔다.

 

  ▲송시열이 새겼다는 낙하암

 

 

고란사 약수터 고란정에서 약수를 한 바가지 퍼서 벌컥벌컥 마셨다. 약수가 너무 깊어서 긴 스틱이 달린 물바가지로 간신히 떠올려야 했다. 어허, 창자까지 시원하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임금이 고란사 뒤편 바위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고란약수터 주변에서 자라나는 기이한 풀이 있어 그 이름을 고찬초라고 불렀다고 한다.

 

궁녀들이 물을 떠 갈때 고란잎을 한잎 띄워서 임금님께 진상을 하여 고란사 약수임을 증명하였다는 것. 고란사 약수를 마시면 노인이 어린아이가 된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임금께 고란사 약수를 진상하는 궁녀도, 고란초도 보이지 않았다. 허지만 바위틈에서 나오는 고란사 물맛은 그만이었다.

 

 

한바가지를 다 마신 나는 다시 한바가지를 퍼서 무릎이 아파 걷기가 힘들어 앞마당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들고 갔다.

"거사님 그 물바가지 들고 어디로 가세요? 들고 가면 안 되는데."

"네, 마당에 몸이 불편한 아내에게 좀 주려고 갑니다. 마시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갔다놓을게요."

 

자루가 긴 물바가지를 아내에게 건넸더니 아내도 벌컥벌컥 한바가지 다 마셨다. 에그 쯔쯔... 그 물 마시고 무릎이나 나으셔... 그래도 낙하암에 올라 여기까지 기를 쓰고 온 아내가 기특하게만 보였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목을 축이고 황포돛배에 올랐다.

 

 

 

 

 

 

 

 

 

 

▲고란정 약수로 목을 축이고...

 

 

 

 

 

 

 

 

 

 

 

 

 

이산가족  할아버지의 한이 서린 '꿈꾸는 백마강'

 

황포돛배에서는 꿈꾸는 백마강이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백제의 한을 담은 역사가 이 한곡의 노래 속에 다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 노래를 작사한 조명암 씨는 일본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시인 겸 극작가이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그는 낙하유수, 바다의 교향시, 알뜰한 당신 등 33곡의 대중가요를 작사한 후 1948년에 월북하였다. 그후 북한에서 평양가무단 단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데

그 누구가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백마강 황포돛단배에 몸을 싣고...

 

꿈꾸는 백마강을 들으며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나는 문득 이산가족 상봉 시에 남한서 온 딸에게 꿈꾸는 백마강을 불러주던 북한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헤어진 지 60여년 만에 딸을 만난 이흥종(88) 할아버지는 이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북한으로 돌아간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꿈꾸는 백마강'을 부르고 있을까? 민족분단의 현장인 38선 이북 임진강변에 살고 있는 나는 늘 두 토막 난 우리민족의 비극을 보아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꿈꾸는 백마강이란 노래가 더욱 구슬프게만 들려왔다.

 

꿈꾸는 백마강이란 노래 속에 백제의 한, 민족의 한, 이산가족이 한이… 그리고 어제 밤 만났던 친절한 아주머니, 아저씨, 롯데리조트, 궁남지 국화전시장이 오버랩 되며 흘러갔다. 이 민족의 한을 풀어줄 통일은 언제나 올까?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분단된 남북의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