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충청도

찰라 2009. 11. 10. 10:19

모두가 하나 되었던 시각장애인들의 단풍축제를 바라보며...

-시각장애인들은 한국의 '헬렌'이었고,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을 인도하는 '설리번' 선생님이었다...

 

 

 

정신, 정신만이

빛이고 희망이고 생명이고 힘이다! -헬렌 켈러-

 

생후 19개월 만에 급성 열병을 앓아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어버린 헬렌 켈러는 빛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맑게 남아있음을 감사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시각과 청각은 신이 헬렌에게 내린 아름다운 축복들 가운데 단 두 가지였을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빛'을 뜻하는 '헬렌'이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천사와도 같은 설리번 선생을 만나, 시력과 청력을 넘어 위대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11월은 눈과 인연이 깊은 날이다. 11월 4일은 '점자의 날', 11월 11일은 '눈의 날'이다. 여기에 11월 7일과 8일 양 이틀간에는 시각장애인들의 단풍축제가 청남대와 법주사에서 열렸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우리 오감 중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첫 관문이다. 

 

단풍축제가 열리던 날, 천사들은 눈을 대신하여 온 몸으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전국에서 모인 시각장애인 502명, 청주대학교 자원봉사자 502명, 모두 1004(천사)명이 한자리에 모여 1박 2일 동안 오감으로 단풍을 체험하고, 1004개의 꿈과 희망을 찾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자원봉사자들은 1박 2일 동안 시각장애인들을 인도하는 '눈과 발'이 되어 한국의 '헬렌'들을 돕는 설리번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2009년 시각장애인 단풍축제'는 청주문화방송이 주최하고, 국민은행이 협찬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특히 이번 단풍축제에는 '투어앨범(대표 한재철, www.touralbum.com)' 소속 사진작가 40여 명이 천사들의 꿈과 희망을 담기 위해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예쁘게 찍어주세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단풍을 배경으로 저마다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꼭 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반인들의 여행은 '사진'으로 추억을 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오감으로 추억을 담는다. 카메라의 셔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여행의 추억을 담고 있었다.

 

단풍길 걷기, 2인용 자전거 '탠텀 사이클'을 타며 온 몸으로 가을바람과 단풍을 체감하면서 시작된 단풍축제는 때마침 청남대 잔디광장에서 열린 국화축제와 더불어 점점 무르익어 갔다.

 

 

숲 해설가와 함께한 오감체험

 

  

"단풍나무는 당단풍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는데요, 당단풍나무는 잎이 보통 9~10개로 갈라져 있고요, 잎 가장자리는 큰 톱니가 있어요. 그리고 표면에 약간의 털이 있기도 해요. 반면에 단풍나무는 잎이 5~7갈래로 갈라져 있고 당단풍나무보다 넓어요. 잎 가장자리는 작은 톱니가 있고요, 뒷면에는 털이 있기도 해요. 자, 다들 한번 단풍나무 잎을 만져보세요."

 

"이건 잎이 11개네! 그럼 이 나무는 당단풍나무군요."

"음, 어디보자 이 잎은 7개이니 단풍나무네요!"

"바로 맞혔어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임정현(숲해설가협회, www.foreto.org)씨의 열띤 숲 해설을 들으며 시각장애인들은 단풍나무 잎을 손으로 만져보고 종류를 구분하면서 신기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 이 이번엔 소나무에요. 소나무도 잎의 개수에 따라 종류를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잎이 굵고 두 개인 것은 한국 토종 소나무고요, 세 개인 것은 리기다소나무에요. 그리고 잎이 다섯 개이면 그건 잣나무랍니다. 각자 손에 든 소나무 잎을 한 번 세어보세요. 잎이 몇 개지요?"

"이건 두 개에요. 그러면 토종 소나무네!"

"제 손에 든 것은 오엽이니 잣나무군요!"

 

충주에서 왔다는 최경임(58세)씨는 신기한 듯 2개인 솔잎을 들고 향기를 코로 맡으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42세에 남편을 사별하고 두 손의 감각으로 포장마차를 하며 아이들을 길러왔는데, 처음에는 약시이던 것이 점점 안 보이게 되어 이젠 포장마차집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숲 해설가와 함께한 시각장애인들의 단풍축제를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 나절 정도는 숲 해설가들과 함께 숲 속을 산책하며, 나무와 숲의 생태를 오감으로 체득하게 하는 것도 이들에겐 특별한 체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정현씨는 혼자서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숲 체험을 시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무척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숲 해설가들의 1:1 자원봉사를 받으며 단풍축제를 진행한다면 이들에게 보다 심도있는 숲 체험이 될 것 같다는 것.   

 

'비켜 가면 벽이 되고, 다가 가면 하나 된다'

 

 

'비켜 가면 벽이 되고, 다가 가면 하나 된다' 언젠가 장애인의 날에 보았던 슬로건이 생각났다. 이날 천사들의 단풍축제에는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였다. 청주대학교 젊은 남녀 대학생들은 시종일간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꼭 붙잡고 그들의 눈과 발이 되어 주었다. 처음엔 서먹서먹했던 감정이 서로가 가까이 밀착하여 보둠어 안아 주다보니 그들 사이엔 이미 벽이란 없었다.

 

"무언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얻고 있어요."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홍지은(청주대학교 공예디자인과 3학년)양은 처음에는 시각장애인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왔었는데 오히려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홍 양의 착한 마음씨가 손에 느껴져요!" 배정수(61세, 시각장애 1급, 충북 단양) 할머니는 국화향기 가득한 잔디광장 앉아 자원봉사자 홍지은 양의 손을 꼭 붙잡고 더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4살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배 할머니는 시각장애라는 느낌도 잊은 듯 했다. 눈높이를 맞추며 서로를 배려하는 이들 사이에는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보은군 '속리산유스타운'에서 우리의 천사들은 하루 밤을 보냈다. 학생들은 장애인들을 식당으로 안내하여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식판에 받아와 일일 떠 먹여주며 식사를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곧 인가가수의 축하공연과 장애인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장애인들은 노래와 춤, 악기연주 등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장기자랑 무대에는 어김없이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과 함께 참여하여 백 댄스를 추면서 흥을 돋우었다. 천사들의 멋진 춤과 합창이 어우러진 기가 막힌 하모니였다.

 

 

 

장기자랑이 끝나자 자원봉사자들은 장애인들을 일일이 방으로 안내를 하며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다. "처음엔 시각장애인들을 어떻게 보살펴드릴까 하고, 부담도 가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이들과 함께 해보니 내 자신이 괜히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도  가능한 한 시간을 내어 참석을 하고 싶어요." 최지연(청주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양은 홍춘옥(55세, 대천)씨를 모시며 보람이 매우 컸다면서 내년에도 꼭 참여를 하고 싶다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일탈을 넘어선 화려한 외출

 

 

속리산유스타운에서 꿈같은 하루 밤을 보내고, 이튿날 천사 일행은 법주사 경내를 산책 했다. 일주문에서부터 단풍이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장애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하게만 보였다. 법주사에서 천사들은 문화해설사들의 해설을 들으며 사찰을 여기저기 꼼꼼히 돌아보았다.

 

"여기 대웅전에는 세분의 부처님이 계셔요. 가운데 비로자나불 부처님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 손으로 감싸고 있고요, 왼쪽에 노사나불상, 오른쪽엔 석거여래상이 모셔져 있어요."

 

시각장애인들은 대웅전과 금동미륵불상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비록 부처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였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아침부터 내린다던 비도 참아주었다. 법주사를 다 돌아보고 입구 잔디광장에서 대동놀이가 열릴 때부터서야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 그리고 공연자들을 따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북치기 체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림에도 천사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진지하게 경청하며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열심히 담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들겼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법주사 대웅전 앞에서 "예쁘게 찍어주세요"하며 포즈를 취했던 부부 장애인이었다.

 

 

남편은 전맹(全盲)이고 부인은 약시(弱視)였는데 부인이 무언가를 손에 쥐고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비옷이에요. 아까부터 비옷을 입지 않고 사진을 찍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가져왔어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부인으로부터 비닐 비옷을 건네받은 나는 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이 치밀어 올라왔다. 부인의 따스한 손길이 전해져왔다. "고마워요. 잘 입을 게요." 비옷을 걸치며 고개를 숙이자 두 부부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겐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혼자의 몸으로 외출을 하기 어려운 그들에겐 '여행'이란 일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하는 '화려한 외출'이다. 이번 행사에는 주로 서울경기, 충청권에 실고있는 참여를 했는데, 각 지역별로 나누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박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원봉사자와 하나가 된 천사(1004)들의 아름다운 축제여행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리 남을 것이다. 이들의 '축제여행'을 카메라에 담으며 나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에서  글/사진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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