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아름다운우리강산

찰라 2018. 11. 20. 05:56

지리산에서 내가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은 거대한 전나무가 우뚝 서 있는 금대암이다. 금대암 무량수전 아래 산비탈에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전나무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 마치 지리산을 떠받치듯 곧게 서 있다. 물론 금대암이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는 것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마력처럼 끌어당기는 힘은 노거수인 금대암 전나무다.      

 

 

이번 지리산 여행도 금대암을 제일 먼저 오르기 위해 금대암에서 가까운 산내면에 숙소를 정했다. 딱히 금대암이 아니더라도 산내면 인근에는 뱀사골계곡을 비롯하여 달궁계곡, 칠선계곡, 백무동 등 아름다운 계곡이 골골이 진을 치고 있고, 유서 깊은 실상사를 비롯하여 벽송사, 서암정사, 백장암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계절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산사의 밤은 금세 컴컴해졌다. 지리산 안쪽에 위치한 산내면은 사방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있어 밤공기가 차갑다. ‘산내(山內)’는 글자 그래도 산속에 위치한 마을이다. 산간에 밝은 달이라 했던가? 때는 음력 보름인지라 보름달이 휘영청 산 위에 걸린 듯 솟아올랐다.   

   

다음날 아침 나는 세 보살님들을 모시고 금대암으로 오르기 위해 숙소를 출발했다. 물안개가 서린 임천 계곡을 따라 이어진 천왕봉로는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와 계곡 사이사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절묘하게 어울려 눈이 시리고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웠다. 단풍에 넋을 잃고 잠시 정신 줄을 놓는 사이 앗, 불사! 그만 금대암 입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운전을 하는 사람은 항상 정신 줄을 놓지 말라는 아내의 지엄한 잔소리를 약으로 듣고, 한참을 가다가 차를 되돌려 지리방장제일금대라는 길가 표지석에서 꺾어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가파르게 올라갔다. 지리산 자락 구례에서 2년 동안 살고 있었을 때 몇 번 찾아왔던 길이건만 오를 때마다 생소하게 느껴졌다. 계절이 다르고 날씨가 다른 탓일까?    

  

나는 왜 지리산을 오르는가? 굳이 조지 말러리의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란 명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는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에서 살고 싶었고, 거기에 지리산이 있으니 지리산을 오르고 싶었다. 오래전 나는 에베레스트 초모랑마 베이스캠프(5200)에 올라 조지 말러리의 추모비 앞에서 눈 덮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바라보며 왜 그가 그토록 목숨을 걸고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지리산을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말러리는 에베레스트가 좋아 에베레스트를 올랐을 것이고, 나는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을 오른다.  

    

금대암으로 오르는 길은 순례자의 자세로 경건하게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승용차를 타고 소음과 기름 냄새 풍기며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고 올라가자니 길섶에 핀 들국화며 주변의 식물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들아, 미안해."

  

금대암은 금대산(851) 바로 아래 해발 800m가 넘는 벼랑에 서 있다. '금대(金臺)'는 금빛을 띤 연화대로 '부처가 앉아계신 터'를 일컫는다. 거의 수직으로 구부러진 가파른 길을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가자 금대암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길이 나왔다. 이른 아침 금대암은 적막 그대로다. 짧은 숲길을 지나자 이윽고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손에 잡힐 듯 펼쳐졌다.      

 

아아~ 아아아~ 아아~ 아아아!”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오!”

와우와우~ 오우오우~ 하아 하아 하아!”     

 

 

 

무슨 말이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세 보살님들은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거의 신음에 가까운 낮은 탄성을 질러댔다. 지리 제일봉인 천왕봉(1915)을 중심으로 중봉, 하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산장,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등 준봉들이 서로 다투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펼쳐져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잠시 숨을 고르고, 한걸음 더 들어가니 무료 차 한 잔 하세요.라는 글씨와 물을 데우는 포트와 커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상 위에는 감을 실로 꿰어 말리고 있었는데, 그 감 사이사이로 지리산의 파노라마가 마치 영화 속의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가파른 언덕을 오느라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목이 말랐다.

 

평상에 앉아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며 찻상을 살펴보니 금대암 전나무를 배경으로 새긴 주지 스님의 명암이 놓여 있었다말의 화살을 가벼이 던지지 말라. 한번 사람의 귀에 박히면 힘으로는 빼낼 수 없다명암 뒷면에는 적혀 있는 말이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글귀다.  부처님은 인간이 짓는 십악 중 말로 짓는 구업이 네 가지나 된다고 했다. 거짓말이나 헛된 말(망어),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악구), 이간질하는 말(양설),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기어) .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서 들을 일이다

 

 

 

   

커피를 마시고 한걸음 더 들어가 무량수전에 다가서니 발아래 거대한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다. 500살이 넘은 거대한 전나무다. 높이 40m, 둘레 2.92m, 금대암의 상징이 되어버린 전나무는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원래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하나는 벼락을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리산을 떠받치듯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전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우주목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신성하게 느끼는 순간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걷거나, 거대한 노거수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이다. 또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순간은 어릴 적에 어머님께서 목욕재계하시고 당산나무 밑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하게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었다

 

어머님이 정성을 드려 치성을 드리는 당산나무는 내가 보아온 것 중 가장 신성한 신앙이었다. 어머님께 거대한 당산나무의 거룩한 실재는 생명의 근원이며, 지혜의 원천이 되는 신적 존재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생명의 나무와 관련된 신앙은 세계적으로 산재한 신화와 의례에서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두 나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위그드라실은 뿌리가 지구의 중심까지 뻗어 있기 때문에 지구를 떠받치는 중심축이며, 생명의 샘이 곁에 있다고 한다. 인도의 오래된 문헌에는 우주가 커다란 나무로 묘사되어 있다. <우파니샤드>에서 우주는 하늘에 뿌리를 두고 땅 위에 가지를 드리운 거꾸로 서 있는 나무다. 이 나무는 신 브라만을 상징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는 원래 인도의 종교 전통에서는 지혜의 나무이자 우주목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화인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인간을 다스렸다는 내용이 있다. 신단수는 태백산 꼭대기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태백산은 세계의 중심이며, 신단수는 이 산의 정상에서 하늘과 맞닿은 채로 서 있다

 

나는 가파른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거대한 전나무 앞에 섰다. 고개를 꺾어 밑동에서 찬찬히 올려다보니 생명의 마누처럼 그 끝이 하늘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나무에게 합장을 하고 "나무야, 고마워!"하고 속삭이며 인사를 했다전나무는 내 인사에 응답이라도 한 듯 때마침 불어오는 소슬한 가을바람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우우우~"하고 소리를 냈다. 한편으로는 윙윙 소리를 내며 대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지구상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곧 지구는 사막화되어 산소가 희박해지고 모든 생명체는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다프랑스의 수목학자이자 문필가인 작가 자크 브로스(1922~)가 저술한 '나무의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 거대한 한 그루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우주의 축인 그 나무는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에 이르기까지 삼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뿌리는 지하 깊숙이 박혀 있었고, 가지들은 천상에 닿아 있었는데, 뿌리가 땅 속에서 길어 오른 물은 수액이 되고, 태양은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생겨나게 했다. 이 나무를 통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나무는 구름들을 모아 엄청난 비를 내리게 했다. 이로써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었고, 모든 생명의 원천인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를 보호했으며, 그들에게 양식을 주었다.”

     

이어서 자크 브로스는 인간의 불행은 나무와 숲을 파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가 승리를 거둔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 나무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세주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십자가이다. 다른 모든 자연 제의들은 금지되었다.” 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을 나무 및 자연으로부터 괴리시킨 주된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전파라고 정리하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유일한 나무는 이제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밖에 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유일신 외의 다른 대상에 대한 숭배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교로 인해 나무의 박해자와 숲의 파괴자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그리스도교 전도사들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했을 때, 이들이 수행한 최초의 임무가 수목 숭배를 금지시키고 인간을 낳은 성림(聖林)을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전나무를 세 바퀴 돌며 나무에게 경배를 올린 후 나는 무량수전에 올라가 오체투지 삼배를 하고 잠시 입정에 든 후무량수전 뒤에 있는 나한전으로 올라갔다. 656(신라태종무열왕 3) 행우조사가 창건한 금대암은 도선국사가 나한전을 지어 중창을 한 뒤 영험한 나한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이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 한 가지는 무조건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나는 나한전에 소원을 빌기보다는 나한전 옆에 거대한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나무 위로 펼쳐진 장엄한 지리산 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금대암에 오거든 꼭 이 너럭바위에 앉아 지리산을 바라보아야 한다적어도 이 순간에는 가슴이 탁 트이고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저 아래 서 있는 전나무의 끝이 너럭바위 위까지 뻗혀 올라왔다. 얼마나 뿌리가 깊이 뻗었을까? 메마른 비탈 위에 이처럼 무한하게 생명의 손길을 뻗혀주다니!  

 

 

 

보살님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너럭바위 위에 올라와 조용히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시간이 우리를 내려가게 했다. 홀로  왔더라면 이곳 금대암에서 며칠 묵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너럭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며 C보살님이 감격에 겨워 곧 눈물이 떨어질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찰라님,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소. 우린 꿈을 꾸고 있는 것이요. 밤에 꾸는 꿈도 꿈이요. 낮에 사는 것도 한바탕 꿈이 아니겠소?"  

"찰라님 덕분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오기 어려운 곳을 찾아오겠어요?"

"별말씀을. 내 덕이 아닙니다. 저 전나무가 나를 끌어들였고, 보살님은 과거 생에 좋은 업을 지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 아니겠소?"  

 

너럭바위에서 조심스럽게 암자 마당으로 내려오는데 꼭 천상의 허공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적막한 산사에는 가끔 바람소리만 윙윙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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