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ce

찰라 2004. 9. 8. 07:06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딸과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근친살인의 전설이 얽히고설킨
'아가멤논 家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미케네 왕국 이야기


□ 아직도 시원치 않는 아내의 소변

* 미케네 아크로폴리스 성채로 들어가는 사자문. 앞발을 대좌에 올려 놓고 있는 이 한 쌍의 사자상은 미케네 왕가를 상징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家紋)이라고...

오후 6시 30분. 트리폴리에서 고대 올림피아 행 버스를 타기 전에 아내는 다시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이뇨제를 한 알 더 먹어야 할까 봐요.”
“걱정되네, 밤에 버스를 타면 자주 서지도 않고 갈 텐데… 더구나 그리스의 버스는 화장실도 없고…”
“여기서 올림피아까지는 몇 시간이나 걸리죠?”
“아마, 5시간 정도는 걸릴 걸… 차라리 여기서 가까운 미케네를 들려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게 어떨까?”
“거기 가보아야 또 돌무더기와 무성한 풀 뿐일 텐데요. 그냥가지요.”

아내는 이뇨제를 한 알을 더 먹었다. 사실 아내의 말처럼 미케네를 가더라도 허물어진 돌무더기와 무성한 잡초뿐이리라.

허나... 미케네를 가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그들에 얽힌 신화의 흔적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인데…. 미케네를 들리지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케네의 전설 중에서도 아가멤논 Agamemnon 에 대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자.


□ '황금사과' 사건

원래 미케네 왕국의 창시자는 제우스와 다내 Danae 사이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이다. 페르세이드 왕조는 미케네에 많은 지배자를 배출하였는데, 그 중 마지막 왕이 유리스테우스다.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 노동을 부과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로인해 아티카를 방문중에 살해당한다.

유리스테우스가 죽은 후에 미케네인 들은 아트레우스Atreus를 그들의 왕으로 선출한다. 이 아트레우스 왕에 의하여 미케네는 문명의 꽃을 피우는 번영을 맞이하는데, 그 아트레우스의 상속자가 바로 화제의 아가멤논이다.

이거, 딱딱한 족보를 따지자고 이야기를 시작한건 아닌데…
내가 왜 이 이야기에 밤을 새며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답답한건 알고 넘어가야 한다. 듣고 들어도 재미있고, 읽고 읽어도 잊어버리는 게 또한 신화이니까.... 그래서 신화 이야기가 나오면 길어지게 마련이다.

각설하고...아가 멤논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미케네의 왕 메넬라오스의 형이다. 이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바로 절세의 미인 헬레네가 아닌가.

헬레네는 본래 제우스와 천벌(天罰)의 여신 네메시스 사이에 태어난 수목(樹木)의 신이었으나 절세의 미녀로 변모하였다.

절세의 미인 헬레네. 하여간 모든 중대한 사건은 깊이 파헤쳐 들어가면 여자들로부터 발단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도 그렇다.

아킬레우스의 부모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선물한 ‘황금사과’로 야기된 여인들의 질투로부터 트로이 전쟁의 역사는 시작된다.

심술궂은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 주는 황금사과’ 사건은 결혼식에 초대받은 기라성 같은 여신들을 열받게 한다.

즉 제우스의 아내 헤라,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 절세미인 아프로디테로 하여금 이 황금사과를 가운데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어진다.

서릿발 같은 여신들의 복수가 무서워 그 누구도 황금사과를 어느 여신에게 주어야 할지 결정을 못하자, 황금사과는 일단 신중의 신 제우스가 보관하게 된다.

그러나 여신들의 질투에 지친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황금사과와 함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보낸다. 미남중의 미남 파리스로 하여금 황금사과의 임자를 정하여 여신들의 분쟁을 끝내려는 제우스의 의도였던 것.

이제 황금사과를 차지하려는 세 여신의 갖은 꼬드김이 파리스에게 쏟아진다… 바람둥이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세의 미인, 헬레네를 주겠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주고 만다.

드디어 우리의 난봉꾼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홀려 트로이로 데려가면서부터 문제의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은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아가멤논의 얼굴로 알려진 황금데드마스크.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은 이 마스크를 아가멤논의 얼굴일 것으로 추정함.




□ 사랑하는 딸을 제물로 바치고 트로이로 출정하는 '아가멤논'

아내를 파리스에게 강탈당하고 격분한 메넬라오스 왕은 트로이와 전쟁을 선포하고 총사령관에 그의 형인 아가멤논을 지명한다.

국가의 위신과 형의 복수를 위해 아가멤논 장군이 마침내 트로이로 출정을 하려고 하는데, 바람이 불어주지 않아 배를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돌림병까지 돌아 군사들이 날로 죽어갔다.

점을 치기를 좋아하는 아가멤논은 점쟁이 칼카스를 불러 점을 쳐본즉, 사슴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의 성역에서 그가 사냥을 하던중 사슴을 죽인 일이 있었던 일이 밝혀졌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아끼는 사슴을 죽여서 그녀가 저주를 퍼부어 바람이 불지 않고, 돌림병까지 돌게 되었다는 것이 점쟁이의 말이었다.

칼카스는 이 여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장녀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묘한 점괘를 뽑아냈다.

아가멤논은 칼카스의 점괘에 따라 딸을 살려달라는 아내 클리테므네스트라의 애원하는 간절한 부탁을 물리치고 사랑하는 딸을 제물로 바치고 트로이로 출정을 한다.


□ 드디어 복수가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근친살인 사건이 시작되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테므네스트라는 남편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깊은 원한을 가슴에 품은 채 복수의 칼날을 갈고 남편을 살해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10년간의 트로이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까지 첩으로 삼고, 의기양양하게 개선을 한다.

딸을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첩까지 데리고 온 남편 아가멤논을 보자 클리테므네스트라는 더욱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

결국 그녀는 아가멤논이 귀국한 그 날, 그에게 목욕을 권하고, 그녀의 종형제이자 애인인 아이기스토스와 결탁하여 알몸으로 무방비 상태인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서릿발 같은 맹장 아가멤논도 가냘픈 한 여자의 간계에 빠져 최후를 마치게 되었으니…

그러나 아가멤논에게는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하고 절친하게 따르는 차녀 엘렉트라(Electra)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닮아서 눈빛이 형광등처럼 번쩍번쩍 빛나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섭운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전기’라는 뜻의 영어인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는 이 아가멤논의 둘째딸 엘렉트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동성인 어머니 보다는 이성인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반대되는 개념인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그녀에게 발발하기 시작했던 것.

엘렉트라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알아차리고, 어머니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 그녀는 어린동생 오레스테스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는 동생을 포키스 땅으로 피신시킨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오직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았던 엘렉트라는 성장한 동생을 포키스로부터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어머니 클리테므네스트라와 그녀의 애인 아이기스토스를 찔러 죽이는 데 성공한다.


□ 패륜행위에 대한 단죄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딸을 죽인 남편을 아내가 죽이고, 딸과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행위! 이는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 될 잔혹한 패륜행위가 아닐 수 없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어머니를 죽인 패륜녀 오레스테스를 미치게 하는 벌을 내린다. 그녀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방랑의 신세가 되었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제단의 제물로 놓이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만다.

반면에 아가멤논이 제물로 바쳤던 장녀 이피게네이아는 제물로 바쳐지는 순간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슴 한 마리를 데려와 대신 희생물로 죽게 하고는 그녀를 자신의 신전 여사제로 삼았다. 결국 아가멤노의 두딸은 아프로디테의 제물과 여사제가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다.

과연 인간들의 세상이든 신들의 세계에서든 근친 살인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잔악한 패륜행위로 그 단죄를 받게 마련인 모양이다. 이 신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인간이든 신이든 패륜행위는 반드시 응분의 단죄를 받는다는 것일 게다.

"뭐 그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가 다 있나요?"
"그래서, 그 엉터리 같은 신화의 발원지인 미케네로 가서 진실을 캐보려고 했던 것이었지..."
"허지만, 미케네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당신 이야기가 더 재미 있네요."
"흠... 그런데 당신 소변상태는 좀 어떤가?"
"아직 답답한 그대로에요."

다시 시작된 지루한 버스여행 길. 여행중에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내용을 아내와 나누며 우린 올림피아로 가고 있었다.
버스는 어두워진 밤길을 부릉대며 달려가고 있었다. - 계속 -


(올림피아로 가는 버스에서 찰라-사과에 대한 사진은 applejournal에서 인용함)




♬~Yanni : Reason for Rainb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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