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의세상보기

찰라 2018. 12. 6. 08:00

 

당초 계획은 12일로 태안사 김장 도우미를 하러 왔는데, 다듬어서 씻고 절인 다음 비비는 작업까지 하려면 하루가 더 필요했다. 어차피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왔으니 하루를 더 봉사를 하기로 했다 

 

오빠, 일요일 날까지 봉사하려면 버스표를 바꾸어야 해요.” 

모바일로 변경이 안 되는감?”

서울에서는 되는데 이곳 시골에서는 터미널로 가야만 바꿀 수 있어요.”

그러면 구례터미널로 갈 수밖에 없군.”

 

S는 나와 11살 차이인데 나를 부를 땐 늘 오빠라고 부른다. 나는 태안사 봉고차 몰고 구례 버스터미널로 갔다. 태안사에서 구례터미널까지는 25km 거리로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나는 터미널로 버스표를 바꾸러 가면서 그녀의 최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S2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남편 덕에 공주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남편이 치매라는 어려운 난치병에 걸려 급기야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급성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을 할 정도가 되면서부터는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했다. 그녀의 남편은 S를 극진히 사랑해서 해달라고 하는 것을 다 해주며 몇십 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삶이 거꾸로 바뀌었다. 그녀의 남편은 입으로 먹지도 못해서 목에 구멍을 뚫고 미음 같은 영양분을 식도로 공급을 해주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데다가 성질이 전에는 전혀 없었던 난폭한 성질까지 생겨서 집에서는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켜놓고 있다. 그리고 매일 병원을 찾아가서 수발을 들고 목욕을 시키는 등 온갖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사람의 신세란 이렇게 일순간에 바뀌는 것이다. 2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아주 절친했던 친구 봉이가 갑자기 전립선암에 걸려 1년 만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는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와는 참으로 막역한 사이였다. 우리는 4명의 절친이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가끔 이런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아마 봉이가 가장 오래 살 거야. 내가 저 세상에 가서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릴 테니 나중에 내 몫까지 살다 천천히 오시게나.”

   

네 친구 중 봉이가 가장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 봉이의 아내는 갑자기 떠나버린 남편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슬픔에 젖어서 지내고 있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온몸에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 같다. 봉이가 떠난 지 2년이 되었건만 아직 그녀는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섬진강을 따라 강변을 달려오다가 압록에서 보성강변으로 접어들었다. S와 나와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후의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부서지는 강물을 두 사람은 무심히 바라보았다. S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물비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남편으로부터 받아왔던 것을 되돌려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군.”  

 

 

 

 

나는 뭐라고 더 이상 그녀를 달래줄 말이 없었다. 그냥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런데도 잠시 짬을 내어 절집 김장을 도우러 온 그녀가 갸륵하기만 했다. 어쩌면 절집 김장여행은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마지막 출구 인지도 모른다 

 

태안사에 도착하니 스님들이 나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현재 태안사에 결재 정진 중인 스님들은 20여분 정도라고 한다. 그 스님들이 묵언정진을 하다가 김장 울력을 나온 것이다. 물론 주지스님이신 각초 스님께서도 앞치마를 두르고 앞장서서 솔선수범을 하고 있었다. 태안사 앞마당에는 스님들 20여 분과 일반인 도우미 꽉 차서 동분서주하며 배추를 다듬고, 씻고, 절이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태안사는 텃밭이 많아 자체적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금년에는 벌레들이 창궐하고 날씨가 워낙 더워 배추가 잘 자라지 않아 부족한 배추를 구례읍에 가서 사 와야 했다. 나는 다시 원주보살님을 모시고 봉고차를 몰고 구례읍으로 갔다. 이런 심부름을 하는 일이 내 적성에 맞다 

 

식자재 마트에 가서 배추 한 포기에 5,900원 하는 것을 200원을 깎아서 5,700원에 240포기를 샀다. 그리고 다시 태안사로 와서 씻고 절이는 작업을 도왔다. 내가 하는 일은 배추 포기를 옮겨 주는 일이다 

 

 

 

11월의 해는 짧다. 해가 봉두산 자락으로 넘어갈 무렵 다듬고 씻고 절이는 작업이 끝났다. 저녁 공양을 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산사에서 밤에 하는 일은 없다. 일찍 잠에 드는 일이 하는 일이다. 내일 새벽에 예불에 참석하려면 일찍 자야 한다. 씻고 누우니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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