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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군자 2020. 7. 8. 23:41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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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뉴딜’: 병란兵亂이 곧 병란病亂이니라!

기사승인 2020.05.16 10: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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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머리말

과학자 브뤼노 라뚜르는 지금 지구의 급박한 위기 상황을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 구멍난 배, 불타고 있는 집”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급박한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했다. 충적세나 홍적세같이 이번엔 인간 자신이 만든 세, 즉 인류세가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지구에 쌓이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쓰레기들이 하나의 층을 만드는 세를 ‘인류세’라 부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19가 전 지구촌을 휩쓸자 Before Corona(B.C)와 After Corona(A.C)로 세기 구분을 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통 하나의 세는 한 종의 멸종 다음에 후대에 부쳐지나 ‘인류세’는 인류가 언젠간 당연하게 사라질 것을 전제하고 부쳐진 이름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다르다. 인류 멸종을 초래할 듯한 코로나,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코로나19 위기의 심각성과 무시된 언어들

볼 일이 있어 김포공항을 들렀다. 입구부터 개미새끼 하나 얼씬하지 않고 큰 홀 안은 불이 꺼져 있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말 그대로 ‘록다운’이다. 2500여 년 전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생각났다. 도덕경 80장에서 “배나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이나 개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더라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80장)

 

노자의 이 말은 오늘의 코로나19를 예견하고 한 말 같다. 노자의 말은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으나 결과는 코로나가 우리에 가져다 준 현주소와 같아져 버렸다. 그리고 노자는 “날카로운 무기와 튼튼한 갑옷이 있더라도 전쟁할 일이 없다”라고 했다. 노자의 희망 섞인 말은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로 남아 왔다. 그러나 노자는 자기가 살던 춘추전국 시대에 어떻게 전쟁 없는 세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진단도 대안도 내 놓지 않았다.

금년은 동학 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운 최제우는 노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이 오자면 ‘개벽開闢’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개벽에는 반드시 괴질怪疾이 따른다고 하면서

 

“아동방 3년 괴질, 인물이 많이 상하지 않겠는가?” (용담유사, ‘권학가’ 중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용담유사, ‘몽중노소 문답가’ 중에서)

여기서 ‘아동방’이란 ‘우리나라’란 뜻이고, ‘십이제국’이란 ‘세계만방’을 의미한다. 전 지구촌에 괴질이 돈 다음에야 개벽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말이다. 120여 년 전 수운의 말을 오늘의 코로나에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지 않을지는 불문에 부치더라도 코로나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가히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이다. ‘전에 들어 보지 못하던 일들 something unheard before’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겐 전에 읽기를 멀리하던 글들이 오히려 눈길을 끌고 공감을 갖게 한다. 기독교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계시록’과 우리나라 비결 책 가운데 ‘정감록’과 ‘남사고 비결’ 같은 문헌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종말의 날에 “넷째 봉인을 때니 칼과 굶주림과 역병이 땅에 창궐하여 짐승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생길 것이며”(6장 7절-8절)라고 했으며, 정감록에선 말세에 서울에서 여주 이천 사이에 괴질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일 것이라 했고, 남사고는 ‘격암유록’에서 “말세에 이름 없는 괴질병으로 앓아 죽은 시체가 산과 같이 쌓여 계곡을 메울 것이라”(‘말중운’ 중에서)라고 했다.

 

이런 묵시문학적 문헌들은 사회혼란과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권의 학계와 특히 정치권에선 금서로 지목 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민간 내부의 경우에선 사정이 달라 이들 문헌들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글들로 읽혀져 왔다. 그런데 코로나19와 함께 오히려 이들 문헌들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오고 있다.

이들 문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위기의 원인이 정치에 있다는 것과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데, 그 대안이란 철저하게 윤리적이라는 데 있다. 요한계시록의 경우 위기의 근원은 로마 제국이고 대안은 앞으로 올 ‘새하늘 새땅’이다. 정감록의 경우 정씨 왕국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남사고의 경우는 인간들이 천명을 어겼기 때문이란 것과 그 대안은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과 십승지로 몸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동학의 경우는 문제의 진단이 더욱 강력하고 대안 역시 간명하다. 다시 말해서 서학이 들어와 무기로서 동양을 제패하려는 것과 서학 혹은 서교가 조상신은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천당 가겠다고 하는 어린아이들도 웃을 짓을 하는 자기만 위하는[各者爲心] 심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동학이 그 대안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코로나 위기를 맞아 그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바른 위기 진단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의혹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자칫 2차 토목 산업 위에 4차 산업을 올려놓으려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시민 단체들은 ‘그린-뉴딜’로 반대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위기 진단과 대안이 문제의 본질을 빗겨갈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이 잘못 설정되었다고 한다면 그린-뉴딜은 바로 된 것인가? 그 대안을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상호 관련성과 3통 사상과 연관시켜 민족 대통일 과업에 코로나19가 갖는 의의를 모색해 보기로 한다.

 

리프킨의 위기 진단과 그 대안

제러미 리프킨은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2020.5.14.) 코로나19 위기의 본질을 두고 기후변화와 잘못된 세계화에 있다고 하면서 물 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라고 진단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은 물로 가득 차 있는 데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물 순환이 바뀌고 있다. 지구가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드려 과거에 물로 가득 차 있던 호수를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되면 아마도 리프킨의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 엘에이LA 근교에 있는 빅 베어 산정호수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리프킨의 두 번째 진단은 인간이 야생의 터를 침범한 것에 있다고 본다. 1900년대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14% 정도였으나 지금은 거의 77%이다. 야생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이주를 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이러스 이동과 전염의 원인이 되었다. 즉,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에볼라, 사스, 메르스, 지카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가 되었다.

리프킨은 앞으로 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 한다. 이제는 팬데믹이 올 때마다 1년 반 정도 록다운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록다운을 해도 약 6개월 뒤에는 두 번째 파고가 찾아온다. 초반에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 두 번째 파고는 훨씬 심각할 것이다.

 

리프킨은 위기의 원인을 기후변화 다음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손 꼽고 있다. 세계화가 각 지역마다 장기 이익보다는 단기 이익을 우선시함에 따라서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4대강 사업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래서 전염병이 발생하는 순간 전 세계 인프라가 동시에 무너져 버렸다.

 

작년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마찰을 일으킬 때 의료용품까지 관세를 매기는 바람에 미국의 의료 물량이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리프킨은 “전염병을 통해 한 가지 배울 것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사실 말이다”라고 결론했다.

이제마와 병의 네 가지 원인

구한말 사상의학을 주창한 이제마(1837-1900)는 인간의 병은 지방(地方), 인륜(人倫), 세회(世會, 천시(天時), 이 네 가지에 의하여 생긴다고 했다. 지방은 인간이 사는 지역, 인륜은 인간 내부의 심리 혹은 가족 관계, 세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구조, 그리고 천시는 인간이 사는 시대의 우주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날 코로나19 위기의 진단에 있어서 이제마의 진단만큼 종합적으로 마음에 와 닫는 것도 없을 것이다.

 

석학 리프킨의 진단이 현실적이고 과학적이기도 하지만 종합적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뉴-딜이 제2차 산업 위에 올려놓는 4차 산업이라면 이것은 토목 사업을 다시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즉, 천시와 지방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시민 단체의 그린-뉴딜 역시 우주변화를 주요시하는 천시에 부합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여기서 외국의 어떤 석학이나 서양의 시민운동 단체와 연계된 진보 단체들의 위기 진단과 대안 제시보다 우리 고유 사상에서 찾을 것을 여기서 강력히 제안한다.

이제마보다 더 강력하고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가장 실현성이 높은 위기 진단과 대안은 강증산의 것이 아닌가 한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은 서로 상통한다

19세기 말 전라도 땅에서 태어난 강증산(1871-1909)은 가장 강력한 그리고 가장 큰 판을 짜 괴질을 진단하고 있다. 강일순 혹은 강증산은 시두, 흑사병, 천연두 같은 괴질들을 두고 ‘병란病亂’이라고 하면서 같은 발음을 가진 ‘병란兵亂’과 대비시켜,

장차 전쟁은 병으로써 판을 막으리라,
앞으로 싸움 날만 하면 병란兵亂이 날 것이니,
병란兵亂이 곧 병란病亂이니라 (도전, 7:35)

두 말의 발음이 같아서 ‘병란兵亂’은 ‘전쟁’이라 하고, ‘병란病亂’은 그냥 ‘병’ 혹은 ‘병란’이라 부르기로 한다. 음양 이론에 적용하여 병란兵亂은 ‘양’이고 병란病亂은 ‘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를 길항拮抗 관계로 보아 앞으로 큰 전쟁을 막으려면 반드시 병란病亂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19 같은 병란病亂은 오히려 앞으로 큰 전쟁(병란兵亂)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치 음과 양이 서로 상대적으로 길항하듯이 말이다. 참으로 대단한 시각이고 코로나19에 처하여 가장 현실적인 진단같이 보이기도 한다.

 

병란은 큰 전쟁이 나오기 전 전령사같이 올 것이라고 하면서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가고 병이 들어 온다.”(5:33) 그 병란의 참화가 얼마나 심한지 “한 집안 문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도 집에 운이 터졌다 하리라.”(7:24) 이 말은 위에서 최수운이 용담유사에서 말한 ‘십이제국 괴질 운수 개벽이 아닐런가’와 일맥상통한다. 개벽은 병란과 같은 대 파탄破綻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파탄이 나간다 파탄이 나간다”(5:303)고 했다. 요즘 말로 ‘록다운’이 났다는 말이다. 얼마나 파탄이 났는지를 보기 위해 한 번 그 붐비던 공항을 나가보라. 무엇이 파탄인지 실감이 날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던 파탄이다. 반 년 전에도 예측 못했던 파탄이 어디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한반도에서 세계의 병란을 끝낼 전쟁이 벌어지는 데 그것을 씨름판에서 마지막 승부를 가르는 씨름 즉, ‘쌍씨름’에 증산은 비유했다. 씨름을 전쟁에 비유하여 애기판과 총각판으로 나누어 모두 병란病亂으로 끝을 보게 된다고 한다. 제1차 대전은 스페인 독감(1918-1919)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9월 데번스 미국기지에 들어 온 스페인 독감은 하루에 100여명이 죽어나가게 했는데 이것은 전쟁으로 죽는 숫자를 능가했다.

 

윌슨 대통령도 즉각 전쟁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 대전은 끝났고, 전쟁이 끝나자 스페인 독감은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전쟁과 괴질 사이에는 무슨 상통 관계라도 있는 듯이. 고대 아테네가 무너진 것도 괴질 때문이었다. 역사학자 투기디데스는 “신들을 숭배하든 하지 않던, 역병은 남녀와 노소, 노예와 장군 심지어는 의사들까지 생명을 앗아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역병 때문에 아테네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도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서 서양에 전달된 시두 때문이었다. 남미의 아즈텍이 멸망한 것도 400배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스페인에 망한 이유는 스페인 군의 노예 가운데 하나가 옮긴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를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최대 과제는 70년 이상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려 데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방해하고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미국의 역사를 보자. 1620년 미국 청교도들이 북미주 땅에 들어 올 때에 시두 균을 함께 가지고 들어 왔다. 백인들은 이 균에 의해 죽지 않는데 면역력에 약한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죽어 갔다. 그래서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은 사실상 시두 전쟁이었다.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시두로 죽어갔기 때문이다. 미국 지배하에 세계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PAX AMERICANA'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세계 제패가 사실상 시두(POX) 때문이라고 하여 POX AMERICANA란 포스터까지 만들어 미국은 기고만장이었다. 이 포스터에 의하면 군대가 열 지어 지나가고 그 뒤로 시두신이 총을 메고 뒤따라 행진한다. 그리고 포스터 밑엔 ‘1775-82의 위대한 시두 전염병이여! The Great Smallpox Epidemic of 1775-82'란 글귀까지 적혀 있다.

 

바로 그런 미국이 지금 코로나19(POX)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에서 입마개와 진단 키트를 구입해 갈 정도이다. 이를 넘어서 코로나19는 미국과 중국의 체면마저 한없이 손상시키고 있다. 이것이 고대 아테네, 로마, 몽골제국의 종언을 고하게 한 신호가 아닌지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강증산은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려면 병으로 병을 씻어 내야 한다”(2:139)고 말했다. 마치 우주변화에서 음이 양을 양이 음을 조절해야 하듯이 병란兵亂은 병란病亂으로 조절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의 종말이 회자에 오르듯 미국의 종말 역시 흥미의 대상이다. 그 종말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은 미생물에서 온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단순히 정치에서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관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음과 양의 길항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이 따라야 한다. 기독교의 성육신을 이렇게 음양 관계로 보았으면 기독교가 성숙한 종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1908년 강증산은 음양 길항이 고난의 앞날을 가져 온다고 보면서 “천하 창생이 모두 저 송사리 떼와 같이 먹고 살려고 껄떡거리다가 허망하게 다 죽을 일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불쌍하다. 허망한 세상! 세상만사 덧없이 넘어간다. 세상만사 헛되고 허망하다”고 하면서 혼자서 구슬피 울었다고 한다.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5:41)

병란兵亂을 막기 위해 병란病亂은 불가피하고, 이때에 수많은 군생들이 송사리 떼같이 몰살당할 것을 내다보면서 운 것이다. 그러면서 추운 겨울날 홑옷을 입고 얼음 위에서 ‘의통醫統’ 공사를 했다. ‘의통’이란 “병든 사람, 병든 세상을 살려내서(醫), 한 가족 한 마음으로 세계를 통일한다[統]”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증산이 말하는 의통은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음양 갈등과 조화에서 오는 치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양란을 겪는 동안 인간들은 한없는 고통苦痛을 겪어야 한다. 고통 다음에 두 란은 서로 상통相通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병란兵亂을 ‘아마겟돈’이라고 했으며, 병란病亂은 넷째 봉인을 땔 때 나타난다고 했다. 아마겟돈 전쟁 때에는 도시가 세 토막이 날 것이다. 산들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에선 우박이 쏟아져 내릴 것이라고 했다. 양란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 것이란 것을 예외 없이 말해주고 있다(계 16장 19-21절).

예수의 전 생애는 십자가도 부활도 아니고 병든 자들의 병을 고치는 일이었다. 그것은 병란病亂을 치유한 것이다. 십자가는 로마 정부와의 정치적 전쟁이었다. 이것이 의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증산이 말하는 의통은 양란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부활을 강조한 바울은 예수의 의통이 갖는 의의를 반감시키고 말았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고통을 다 겪은 다음에야 서로 상통相通한 다음에야 통일統一이 온다. 우리 겨레는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남다른 의미를 가져야 하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삼통(고통, 상통, 통일)을 견디어 내는 것이란 의미 말이다. 미국은 시두POX로 원주민들을 멸종시키고 POX AMERICANA를 실현했다고 의기양양했다. 미 기병대 뒤를 뒤따라오던 시두가 이젠 앞서 가면서 미국을 최대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이젠 아이들까지 이름 모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우리를 분단시켜 놓고 그렇게도 남북민족이 함께 갈구하고 있는 평화협정에 도장하나 찍어주지 않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한반도 영구 분단이 그들의 꿈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 정책이 후버 댐 공사 하나 하는 것 같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POX AMERICANA 음모를 혁파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코로나19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경고이다.

 

민족 대통일을 앞두고 어쩌면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고통을 다 겪어야 할 숙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아리랑 민족’, 저 흥안령 모진 엄동설한 눈보라를 겪으며 넘어 온 민족이다. 문재인 정부는 삼통을 다 성취해 내는 결기를 가지고 뉴딜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의 말보다도 최수운, 이제마 그리고 강증산 같은 위대한 우리 선대들의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뉴딜은 개벽 정신에 기초를 둔, 그린 뉴딜도 넘어선 ‘개벽 뉴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상일 kimsykorea9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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