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s 악보방/추억 인문

Ezs 오진수 2019. 4. 8. 14:21

 


 
 
 
 
 
1999년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이라는 책을 써 큰 반향을 일으켰던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김동호 목사가 65세에 은퇴하고, 원로목사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같이 밝히고 “은퇴시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 글에서 목사라는 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대개 목사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목사를 직업인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떤 특별하고도 성스러운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에 평범한 대중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들 생각한다.”며 “대개 둘로 나뉘어지는 데 하나는 주의 종이니까 잘 섬겨야 한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주의 종은 청빈해야 하니까 잘 해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소개하고자신은 이 입장에 대해 둘다 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어 “목회자 중에는 일반 직업인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다. 아니 많다.”며 “그러나 목회자 중에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핑계 삼아 일반 직업인들의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요즘 세상 직업인들 제 보기에 우리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상식적이고 정직하다.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목회자가 더 잘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직업인의 상식만 갖추어도 교회가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한다고 교인들은 세상에서 받지도 못하는 이런 저런 혜택을 과하게 베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목회자들의 과도한 대우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잘해도 세상에서 잘 대우를 받는 직업인 이상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말 극소수의 목회자들에게 해당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저는 지금 우리 한국 교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자의 은퇴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은퇴가 정확했으면 좋겠다. 은퇴한 후에도 계속해서 원로니 은퇴니 하며 교회 일에 계속 관여하는 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고 “교인 노릇을 하는 것은 모르나(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모양으로든지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좋은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특히 “교회의 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손을 대지 않아야만 한다. 은퇴 후에는 교회는 은퇴 목사로부터, 은퇴 목사는 교회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은퇴할 때 목회자가 노후에 어려움 없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지나친 (세상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요구를 목회자가 요구할 때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며 “저보다 앞서서 모범을 보여 주시는 좋은 선배들이 있다. 저도 그 분들의 본을 받아 미리 약속부터 하고 싶다.”며 ‘65세 은퇴’, ‘은퇴시 무리한 요구 하지 않겠다’, ‘원로목사 하지 않겠다’ . ‘은퇴 후 교회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간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 열심히 나누며, 줄이며 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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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s 오진수 2017. 3. 28. 19:16

불안



키에르케고르



“그림 형제의 한 동화를 보면, 모험을 위해 길을 떠난。 젊은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청년은 두려워하는,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났다"(181) 쇠렌 키에르케고어 혹은 비길 스 하우프니 엔시스(Vigilius Haufriensis)는『불안의 개념의 막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의 필자가 쇠렌 키에르케고어 아니면 가상의 저자 비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인지에 대해 키에르케고어 자신도 약간은 회의적인 상태에 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면 비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라는 가상의 이름은 집필이 끝나갈 무렵에야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어쨌든『불안의 개념』 불안의 개념 의 저자는 그림 동화의 모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자신도 그 속에 함께 참여 하고 있다.우리는 이 모험가가 도중에 끔찍한 것을 조우할 것인가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가도록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이것이 모든 인간 존재가 거쳐야만 하는 모험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나락에 빠져 들지 않기 위해서 두려워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한 번도 불안 속에 있어본 적이 없거나, 혹은 불안 속에서 침몰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나락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올바른 방식으로 불안해하는 것을 배운 자는 어떤 궁극적인 것을 배운 것이다” 우선 불안해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올바 른 방식으로 불안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게다가 이것이 최고의 과제에 대한 배움이라는 주장이 기이하게 들리는 것이다. 왜 우리 가 불안해하기를 배워야만 하는 불안은 우리가 벗어나길 원하 는 어떤 것이 아닌가 불안이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롭기 위해 반드시 통과하여 지나가야 하는 것일 때, 이때 불안은 대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따라서 키에르케고어가 불안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를 장 를 상세히 살펴봐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그가 불안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 불안이란 문제를 책 전체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얼핏 생각할 때,
불안은 일상적이지 않은 현상인 듯하다. 그러나 현대가 불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와 전혀 다르다 불안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연원을 추적해 보면, 이 변화가 다름 아니라 키에르케고어의 불안에 대한 분석에서 연유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분석이 20세기 문학, 철학 심리학에 미친 깊은 영향으로부터 비롯 된 것이다.
『불안의 개념』이란 책은 불안에 관한 본격적인 논고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불안을 고찰하는 고유한 방식을 통해 사상사적 전환
을 가져왔다. 키에르케고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단지 어떤 마음의 상태로서의 불안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불안이 보여주는
것, 즉 불안이 인간 존재에 관해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불안의 개념" 인 것이다 그것은 불안의 에 관한 논고이다 물론 불안은 하나의 특별한 심적 상태 하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에게 불안의 상태에서 각별히 중. 것은 이 상태가 인간으로서 존재함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점 불안은 인간으로서 존재함에 포함되어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문 제는 불안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으로서 존재함에 속하는가이다 시간의 변화 『불안의 개념』에서 키에르케고어는 겉보기에 일상적인 인간적 현존의 가장자리에 있는 현상, 즉 불안을 책의 중심에 세운다 “불안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한다면 그 상황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 다 우리가 무언가를 근심하고 걱정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때 우 리는겁이 나고 가슴을 졸인다 혹은、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는것을 주장하려 한다 혹은 각별히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 방식으로 표현할 때는 불안이 우리를사로잡았다, 불안이 우리에게 '엄습했다라고 불안이 우리에게 '엄습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불안이란 말이 일상적이지는 않더라도 이 말은 현대에 들어와 전보다 훨씬 더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특히 미래와 연관하 여 자주 언급된다 우리가 단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안이 두려움보다 더 불확 정적이며 더 포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에게 친숙한 삶이 중단되고, 어쩌면 인간적인 삶 자체가 사라질 수 있음에 대한 불안 그러한 총체적 파국에 대한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은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파멸에 대한 불안을 환기시킨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은 불안이 이전 시대보다 현대에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사실 하나는 불안이 20세기 심리학은 물론, 문학과 철학에서 두드 러지게 부각된 주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 시대의 문학과 철학이 각기 해당되는 시대를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한 불안을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체험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의 고유한 특징 인 듯하다. 이 현대적인 자기의식으로 인해 우리가 이전 시대의 불안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한다면, 불안은 공허함 내지 의미 상실이라는현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의미를 해 주는 심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경험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것처럼, 키에르케고어는 자신이 살던 사회가 "현대적인 특징들을 분명하게 보여줄수록, 점점 더 뚜렷하게 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비판적 입장은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키에르케고어 는 공허함과 허무함의 위협에 대한 경험, 이에 대한 불안으로가득 찬 경험을 명확히 감지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당시 전형적인 삶의 방식들을 점차 더 많이 묘사하였다 사람들은 의미가 부재한 상태 에서 이러한 삶의 방식들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갔으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근심하는 일을 회피하고 있었다 확실히 키에 르케고어 이후 시대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키에르케고어 는 우리처럼, 인간이 만든 재앙에 의해 인류 전체의 역사가 끝나버 릴수있는 위기에는 직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 “내일에 대한 불안, 소멸의 대한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불안 그것은 “바로 밝아오고 있는 내일이다”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만약 당신 자신이 스스로 내일 에게 당신의 힘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내일은 무력한 17(M) 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가 우리를 불안으로 채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래는(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어떤 것이 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하고 근심하는 미래는 미래에 관한 우리 의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데, 바로 이 생각들이 아마도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우리를 하루하루에 대하여, 오늘과 다음 날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한 인간이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있을 때 “자기 자신과,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848년의 기독교적 강화』, 82쪽 이하) 키에르케고어에게 불안은 한낱 비일상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는 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적인 삶에-인간적 삶이란 내 적으로 볼 때 비-일상적인 것인데-속해 있는 요소이다 동시 에 키에르케고어는 “현대적” 삶의 방식들을 묘사하는데, 이 삶의 방식을이란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일상적으로, 만드 는 일을 의미한다 이것은 불안이 근본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불안 을 감추거나 그로부터 도피하는 일 또한 언제든 가능함을 뜻한다.
불안에게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키에르케고어는 불안의 개념이 가진 독특한 성격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그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특징들에 주목한다. 즉 키에르케고어는 불안이 어떤 사람을 ‘엄습하는 것, 불안이 어떤 사람을 '옥죄는 것, 불안 이 포괄적이면서도 불확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목 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불안 속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불안의 결정적인 특징을 명확 히 하기 위해, 키에르케고어는 불안과 두려움을 구별한다 두려움 은 어떤 특정한 것에 관계하고 있는 반면, 불안은 특정한 대상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불안의 대상은 “무(50)" 이다 이것은 '불안은 대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뜻일까? 불안은 미래를 향해 있다 두려움도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미래는 불안 속에서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문제는 명확하게 규정된 이것 혹은 저것이 아니다. 미래는 불확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불안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구체적 인 상황과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불안은 예를 들어 어떤 큰 집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구제적인 상황과 연관될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에게 여행은 거의 신화와 같은 의미를 얻고 있다 게오르겐탈 지역8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난 후, 카프카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정직 하게 발히지면, 나는 여행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불안하다. 이번 여행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여행은 물론, 일체의 변화에 대해 불안해한다 번화가 크면 클수록 불안도 커진다 하지 만 이 것도 단지 비교적으로 얘기해서만 그렇다 만약 내가 나 자신 을 극도로 작은 변화에 집중하여 국한시킨다면-물론 삶이 이를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내 방안의 책상을 옮기는 일도 결국에 는 게오르겐탈 지역으로 가는 여행 못지않게 경악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my 최종적인 근거 혹은 바로 그 직전에 있는 근거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진정 죽음에 대한 불안일 뿐이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신들이 나에 대해 주목할지 모른다는 불안이기도 하다. 불안은 “아주 거대한 것뿐만 아니라 극도로 사소한 것”에 대한 불안이 될 수 있다. 변화가 불안하게 만들 때, 그 이유는 변화가 우리를 모종의 시험에 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과 관련하여 자주 반복 되는 에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을 배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할 수 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시험관 배정이나 점수 평가에 있어 운이 없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기와 관련하여 과도하게 예민해질 수 있다. 아마도 그는 그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마비될지 모른다고 두려워 할것이다 설사 그가 아주 잘 대비했다 하더라도 막상) Z24 처하게 되었을 때는 지나치게 예민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두려움이라 말해야 할까? 어떤 사람을 과도하게 예민 하게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관계를 맺고 있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 과민상태를 불러일으키거나 마비상태에 빠졌던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 자신 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기묘하게 들릴 것이 다 그렇지만 이를 “불안'이라 부르는 것이 여전히 의문시된다면 그것은 우리가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세상에, 이건 단지 하나의 시험에 불과하잖아 다행히 시험이 끝나 도 삶은 계속되는 거야” 불안을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시험 상황을 다른 것으로부터 구분해 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키에르케고어가 겨냥하는 지점이다. 불안의 대상이 나라고 해서 불안이 어떠한 상황과도 관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황과 관계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 속에서 상황은 불확정 드러난다 키에르케고어는 불안을 어떤 현기증과 비」 상황은 불확정적인 것으로 는 불안을 어떤 현기증과 비교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우리가 상황과 관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대두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게 될까라는 문제에 대해서 간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불안은 시간을 어떻게 체험하는가와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불안이 미래를 항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은 또한, 하나의 순간에 집중될 수도 있다 이 한 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경계선 혹은 전환점이 정립되는 순간이다. 시간이 어떤 다른 시간 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통상적으 로 시간하면 생각되는 분할되어 있는 여러 상이한 순간들에 대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동안 그 장소들 또한 변한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죽음이나 친구의 우정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결별을 겪으면 우리 삶이 바뀌게 된다 한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는 자식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일이다 자식들은 성장하면서 자기 나름의 삶을 찾게 되고 부모는 이를 지켜보면서 이들의 삶에 동참하고픈 희망을 갖게 된다.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과 늙어7는 것, 이 두 가지 예는 단순한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우리 자신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우리가 시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방식이라 할 것이다 바로 이곳이 불안이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키에르케고어의 말로 하자면, 시간의 변화라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상실하게 될" 정도의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 속에서 우리는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우리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세계가 친숙함을 상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다른 사람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이다. 시간이 로 인한 문제라는 것은 시간이 부분으로 나누어 놓는 삶이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이것 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가라는 문제 이다 은 여기서 말하자면 어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있는 실존적인 연관성이 갑자기 해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어의 저작에서 시간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문제이다 시간 혹은 변화는 일종의 부담으로서 혹은 위협으로서 등장한다, 실존적 연관성이 해제될 위험성,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위험성이 늘 존재하는 것이다 이 순간에는 이런 사람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변화는 우리에게 도전이기도 한 만큼 가능성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 자신이 돠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과 함께 성장해 갈 때" 즉 구체적인 자기 자신이 될 때뿐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에르케고어가 전개하는 불안에 관한 분석의 핵심적인 사상적 연관성에 대해 언급한 셈이다 이는 급한 셈이다 이는.불안,'시 간,'자기 자신으로 존재함 사이에 존재하는 자상적 연관 는 사상적 연관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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