電子工業30年史

    德正中道 2019. 4. 30. 09:29

            


         **국가연구기관에 행운의 재취업


    여기서 인생살이 꼭 남겨둘 말이 있다, 나는 대학 갈 경제 형편이 않되어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 처지였는데 친구의 소개로 서울에 국비장학금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올 수있었고,

    친구소게로 당시는 취직하기 하늘에 별따기로 어려운 국가연구기관에 취직을 하게된 것이다. 이렇게 친구가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해득실만 따저 친구 사귀지 말고 신의와 친절 정직 겸양으로 친구을 사귀면 인연따라 반드시 돕고 도움받는 일이 생긴다.

    출근은 서울역까지 버스로 오면 구로공단 본사까지 회사버스로 갈아타고 출퇴근 하였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되었다.

    몇일 출근을 하여보니 같은 한방에 金世鎭부장과 이봉건씨 앞에 정진산씨 그리고는 이일재과장 목영택씨 이주한씨 타자수 여직원등 7~8명이 있었고 나는 이봉건씨 옆 책상에 앉게 되었는데 출근하면 이봉건씨는 부장에게 과장을 준다 하여 왔는데 왜 발령이 나지 않느냐 투정하고 바로 다른 방에 건너가 있다 오고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불평을 하여도 부장은 가부간 일체 말이 없었다.

    몇일 다녀도 특별이 할 일도 없고 사장에 인사소개도 없었고 직원간에도 인사가 없었으니 서먹서먹하다 그리고 다른방에 전자진흥부 소속원들이 있었는데 얼마있다 인사하로 가니 모두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고 그중 최돈홍씨가 말을 건네는데 입이커서 복이 많겠다 운을 띠운다. 이곳에는 이영승씨 최돈홍씨 한소룡씨 이한수씨등 몇분이 있었는데 모두 특별이 업무를 하는것 같이도 않았다. 하는 일도 없이 몇일이 지났는데 1969315일부로 목영택씨 이주한씨 나 3인이서 朴勝燁 소장으로부터 정식직원 임명장을 받았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는데 내가 속한 지도과에 외부에서 김기용과장이 부임하였다. 685월 전자진흥조사보고서를 대통령에 보고한 미국 콜롬비야대 주임교수 金琓熙박사와 인척관계가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눈이 부리부리 크고 조용히 말하고 미국에도 살았고 국내전자업체에 경력도 있다하며 조용하면서도 날렵하고 적극적인 일꾼이였다.

      사진> FIC 옛친우들과 바로위는 상공부 박상수과장, 경택수 주임/ 김포공항가두

    맨위에 김동필과장,,이영승,김판수, 중간사진; 김기용과장,박유영,이영승,,

    이일재과장,김동필과장,목영택씨등 우측사진; 김광호, 조규동,임순억과장,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2~3년전부터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전자공업이 수출전략 유망업종으로 대두되어 김완희 박사에 용역을 주어 전자공업 발전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전자공업진흥원 창립이 건의 되었으나 예산이 많이 소요되어 기존의 3개 정부연구기관에 엄무믈 분담시켜 전자공업진흥기관으로 지정하여 진흥사업을 추진하도록 결론이 났는데 19691월 전자공업진흥법(법률2098)이 공포되어 FIC가 전자공업 진흥기관으로 지정(상공부공고526469.4.12)되면서 진흥사업의 일환으로

    1) 高級 電子技術者 技能工訓練

    2) 技術情報 活動技術導入案內

    3) 品質管理 指導

    4)海外市場調査 輸出振興 活動

    5)投資誘致 企業造成 振興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따는 사업비와 인건비가 국가예산으로 지원 되었고 주관부처는 商工部 電氣工業課 였다.

    693월입사 당시 상공부 전기공업과 林東俊 과장이였고 尹楨宇 전자담당계장 유영준 전기담당계장 행정계장에 김병훈계장 제씨였다. 당시는 중앙청건물 좌측 맞은편에 고층 정부청사를 짓기 전이라 광화문사거리 보신각 옆 현재 교보문고 자리한 곳에 하얀 5층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 상공부가 있었다.

     

    (1) 전자공업 등록 공장실태조사(69)

    전자공업진흥기관으로는 韓國精密機器센터(Fine Instrument Center)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국립공업연구소 3개진흥기관이 지정되었다.

    FIC가 처음 시작한 업무는 진흥법 시행규칙의 일환으로 전자공업을 영위한 기업체는 상공부에 전자기업체등록 하게되어 있고 등록업체에 실태조사을 실시하게 되어있어 미리 조사한 기업을 대상으로 관련기업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하였는데 전자공업진흥법 시행령에 전자공업 영유한 기업은 등록의 의무규정이 명시되어있고 등록업체에 기술 및 자금지원 한다고 되어 일정기간과 대상기업이 선정되어 이에 따라 우리 전자진흥부 직원들은 소정의 양식을 지참하고 대상업체를 분담받아 실태조사 출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신규전자업체가 창립되면 등록신청을 받아 실태조사를 하고 지원대상업체로 등록지정받은 업체에 각종세제와 애로사항도 지원한다는 것이다.

    신규등록 업무관리는 우리지도과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조사기간이 임박하여 전남 광주 소재 당시 건전지 제조전문 업체인 湖南電氣에 김정석씨가 본래 상공부 파견근무을 하고 있었는데 비행기편으로 실태조사를 나갔으나 상공부 통보도 없었고 생산기술 기밀유지상 공장내부 공개을 거부하여 조사실패하고 돌아왔다고 나에게 다시 출장명령이 떨어젓다. 당시만 하여도 기차편이 광주까지 8시간이 소요되여 당일왕복이 불가하여 2일이 소요되는 터라 광주에 도착하니 호남전기 기술과장 李弘根씨가 마중나와 있었고 이번에는 본진흥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는지 적극적으로 임해주었다. 나는 다음날 출근시간에 맞추워 공장을 방문하고 공장장등 간부진영과 실태조사 취지와 전자공업진흥사업 중요성을 설명하고 공장내부 설비을 살펴보게 되었다.

    실태조사 내용의 핵심은 제조품목 생산능력 생산매출 실적 수출실적 인력현황 가동율등 조사자료의 사용목적은 국가진흥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공장등록증을 발급하고 등록번호를 부여하여 국가 지원업체 대상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기업체가 조사양식에 기입하게 되어있지만 사실여부를 파학하는 입장에서는 공장내부에 들어가 설비생산능력을 파악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였다, 국내수요를 파악하고 현제조업체로서의 충족여부를 진흥사업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공정을 선택하여 분당 시간당 생산수량을 파악해보는 것이다, 공장내부에 들어가 보니 건전지용 케이스를 자동으로 찍어내는 프레스기가 3대 가동하고 있었는데 나의맥박이 평소정확히 70번을 뛰고 있었기 때문에 뒷집을 찌고 맥박과 프래스 속도을 비교하여 보니 프레스 대당 생산능력이 바로 파악되엇다.

    등업체수가 실태조사 당시는 100여게 업체에 불과 하였으나 내가

    한국정밀기기센터에서 83개월을 봉직하고 775월 퇴직할 때는 등록업체수가 700여개의 전자업체로 증가하였다.


    (2) 전자업체 공장장회의(69)

    FIC가 담당한 전자진흥사업은 기술교육은 본래 2년제 대학과정 정밀 측정기계과가 훈련부에서 FIC 창립때부터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전자과을 추가하여 시행하고 해외투자유치업무는 해외사무소를 신설하여 뉴욕사무소장에 羅仁均씨가 696월 부임하였고 , 동경사무소장에 韓昭龍씨가 7011월 부임 하였고,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742金起鎔소장,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752金相鳳 소장, 내가 77년 퇴직후에도 런던 사무소 7811李銀貴 소장, 암스테르담 사무소 7811李天用 소장이 부임하였다. 다음업무는 정책적인 업무로 전자전람회 개최 69년부터 매년 실시하여 바이어 유치 수출증대 국내외 홍보등 전자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박정희 대통령이 빠짐없이 참관하신 FIC 전직원이 총동원 전력을 기울인 행사였다. 전자진흥 육성사업에 큰 성과를 기여하였다.

    다음으로 본인이 참여한 전자지도과의 사업이다.

    품목별공장장회의였다.

    기업체에서 국가에 대한 지원요망 사항과 각종 정책과 기술적인 애로사항은 많았다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지만 정책 제도상의 문제점도 공장장회의에서 파악하여 주관기관인 상공부에 건의하고 정책수립에 반영을 호소하였다.

    이 회의는 기업측에서도 환영을 받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오래동안 지속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풀어나갔다. 김기용과장과 함께 추진하였다.

     

    (3) 중고등학교 과학교사 라디오조립기술교육 실시(69)

    지도과가 전자과로 바뀌고 최돈홍씨가 과장으로 부임 함께 일하면서 1969년도 여름 학교방학기로 기억된다. 자라나는 학생들에 전자공업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문교부에 협조를 요청하여 중고등학교 과학담당 교사들에 여름 방학기간을 이용 라디오 조립기술을 교육하고 학생들에 전수 한후 전국 라디오조립경연대회 개최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되어 우리전자과에 이사업이 떨어젓다,

    이 사업안을 상공부 아니면 우리연구소 어디서 발의 하였는지 기억 할 수 없지만 이사업은 전자진흥부에서는 라디오 조립경험을 한 직원이 나뿐이 없어 내가 주관할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상당히 타당한 사업인데 우선 라디오셋트와 작업공구셋트을 구입하여햐 하고 참석자 수를 파악한후 사업계획을 수립 승인을 받았고, 교육준비를 위해 문방구에서 전지를 구입하여 여러사람이 볼 수있도록 라디오 PCB기판에 부품배치 삽입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립설명서와 부품 식별법 예를 들면 저항기는 용량치가 색깔로 식별하는 법등 별도로 기술자료 작성 프린트하여 배포 준비를 하였는데 가르칠 교육장소가 문제되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참석자는 70~80여명으로 점심먹는 식당에서 할 수밖에 없었고 임시로 전원코드을 배치하고 라디오 부품셋트와 조립공구세트도 구입하여 준비를 완료하였다.

    교육당일에는 최돈홍 과장이 인사말과 본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열심히 배우셔서 학생들에 전수 할 것을 간곡히 부탁 하였던 것이다.

    참석자들은 하루만에 라디오 조립기술을 배울수 있다니 관심과 열의가 적극적이였다. 우선 조립설명서와 준비물을 배부하고 조립설명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해 할수 있게 알려주었고 칠판에 부착한 조리도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부픔을 삽입하는데 저항기는 용량치수가 색으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삽입시마다 설명을 가하고 확인을 필수로 옆사람과 공동으로 확인 하도록 유도하여 부품삽입 납땜후 리드캇트 배선 조립을 모두 마치고 스피커 연결 전원 부착하여 조립 완성후 소리가 들리는 개수가 절반정도 였다, 교육하고 작업을 맏혔으나 내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여기서부터 터젓다. 소리나지 않는 라디오을 들고 가서는 학교에 무슨 면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느냐? 그러니 소리나게 고장 수리하여 달라는 것이다. 나로서도 할 말은 있지만 참으로 진퇴양난 이였다.

    그래서 조립성공한 교사는 미리 돌려보내고 불량 조립자 들만 모아놓고 부품 하나하나 재위치에 조립 되엇는지 각자 확인하도록 재교육에 들어갔고 그렇게 하여서도 소리나지 않으면 납땜불양 조정불량 오삽입 불량은 육안으로 찾아내어 바로 수리하여 주었고 남은 불량은 부품불량으로 하여 어떻게 할 수없다 설명후 교육끝 강의 종료하였다. 사실 불량원인은 조립이 잘못된 원인도 있겠으나 수많은 세트부품중 하나만 불량품이 들어있어도 불량의 원인인데 100% 조립성공은 기대 할 수없는 것이다. 그리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주어진 업무에 열심히 뛰다보니 능력이 인정되어 70년도 12월 회사에서 일본 공장견학 출장을 보내는데 기계검사부에서 2명 전자진흥부에서 2명 행정에서 15명이 일본동경에 다녀 왔다. 전자부에서 이봉건씨와 내가 선발되어 처음 일본 땅을 밟아 볼 기회가 있었다. 2차대전 패전후 25년이 경과한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품이 점포마다 가득히 쌓여 있고 활기에 넘처 경제발전의 현실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때가 우리집 살림 형편은 급한 빗은 갚았고 서울 동대문 용두동에 방한칸 세얻어 살던 때였다.

     

    (4) 전국 라디오조립경연대회 개최(69~70)

    교육을 마친 그해 69118일 제1회와 70년도 제2회 전국라디오조립경연대회을 열기로 사업승인 떨어저 개최 기본사업계획은 본인이 수립하였지만 전국적인 상공부 장관이 참석하는 대행사로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는 일개과에서 전담으로 진행 할 수 없었고 여러부서가 엄무를 분담하여야 하는데 세부추진계획을 면밀히 세울 필요가 있었다. 예상업무를 나열하고 담당부서를 명시 업무를 분담하였다.

    대회 참석범위는 1회때에 중고등학교로 하였는데 2회때는 초등반과 중고반 2일에 거처 범위을 확대하여 대회를 개최하고 경연대회 심사위원장은 대학은사이신 김기선 교수님을 모셨고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참석하여 관람하셨다.

    그런데 이대회를 마치고 가을 추석무렴에 청와대에서 FIC 총무과을 통하여 본인을 몇일 몇시까지 청와대를 방문하라는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워 일이 있으면 이사장을 불러야 할터인데 나을 부르는 이유가 매우 궁굼하였다.

    그래서 그 날자에 생전처음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정문 수위에 찾아온 내용을 말하니 전화 해보더니 들어가라 한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40대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호출한 이유을 설명을 하면서 실은 전자진흥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적인 업무에 노고가 많고 또 라디오 세트도 잘 받았는데 대통령께서 전자진흥사업에 관심이 많으시고 추석이 닥아오니 선물이라도 하나 전하라 하여 방문하라 하였다며 와이샤스 한 벌을 전해준다.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왔다. 당시 산업훈장 제도도 없었고 공적임무 와 사적인 일로 공로겸 감사의 뜻으로 국가최고 기관 청와대에서 선물받는 것

    생각하면 최초일이라 생각한다. 당시는 국가경제건설에 큰공로가 아직 없엇든 초기였다.

    후에 회사에서 들었는데 당시 대통령 장남 박지만군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데 회사에서 라디오 세트를 조립해보라고 보내준 일이 있었다 한다. 이사업으로 라디오 셋트 학교에 보급하는 부서가 별도로 생겼다.

     

    (5) 1회 전자전람회개최(69)

    내가 입사했던 그해 691118~1125일 제1회 전자전람회 개최을 위해 전직원이 벌서 3개월전부터 매달려 준비에 바빳다. 넓은 실내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덕수궁밖 광화문쪽 모서리에 국립공보관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국내업체와 3개진흥기관이 출품하여 국내 처음으로 전자전람회을 개최하게 되었다. 우리 FIC 부스에 무엇을 진열 할 것인가 우리지도과에서 자료을 찾아내라 임무가 떨어 젓는데 이때는 최돈홍씨가 지도과장으로 있을때 였고 저자진흥부에 20여명 직원이 있었으나 실제 전자기술 경력자는 이영승씨가 방송국에서 근무한 분이고 최돈홍씨가 고등학교 기술교사로 있었고 하는데 그 외는 전자뉴스 책자만드는 업무에 몇사람이 매달려 있었고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전자업체에 경력자는 나혼자 뿐이여서 기술적인 업무가 대두되면 나혼자서 뛰어야 했다.

    그런데 청계천에서 상가를 경영한 경력이 있어 이곳의 생리을 알고 있는 나는 한가닥 묘안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라디오 AM 방송은 이미 일제때부터 1927년에 송출하였고(FM방송 63) 라디오 수신기 생산은 금성사가 59년 진공관식 60년 트란지스터 라디오 출시가 국산화 효시였다. 흑백TV 방송은 1956년에 개시하였으나 수상기는 수입에 의존하였고 금성사가 국내선두 주자로 668월 일본 히다치에서 진공관식 흑백TV 부품셋트로 수입해와 조립하기 시작 하였으나(트란지스터 흑백TV70년 생산, 칼라TV생산74, 80년 칼라TV 방송) 부품 국산화가 미미한 상태 였는데 청계천 상가에서 수상기 수리도 하고 몇가지 국산부품을 대체하여 부라운관도 유리관을 제외한 재생품으로 사용하고 국산부품으로 흑백 TV수상기를 조립하여 몇대씩 상가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기술이 좋다는 장본인을 찾아가 국산조립품을 전시용으로 1대조립하여 전람회 시기를 맞추워 구입하기로 약속을 하고 당시 김세진 부장님께 보고하니 승낙이 떨어저 추진 하게되었다. 3개 전자공업 진훙기관으로 FIC, KIST,국립공업시업소가 693월에 지정은 받았으나 업무를 활발하게 추진하는 곳은 FIC가 단연 돋보였다. FIC 부수에“TV수상기 국산화율 90%”크게 내걸고 케이스 없이 내부를 개방하여 국산화 부픔을 표시하고 누구나 조정하여 화면을 볼수있게 전시하였다.사진> 1970년 첫 일본 방문 / 한소령 동경소장안내 공장견학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가경제 발전에 전자공업의 비중을 크게 관심 갖고 있었고 국내 최초로 열리는 전자전람회에 참관하시므로 우리나라도 TV수상기 국산화가 머지않았다는 홍보차원에서 우리의 전시 목적 이였다.

    당시 국내 전자업체의 기술수준은 라디오 전축 흑백TV생산 업체로 금성사,삼양전기,천우사,동남전기,남성전자등이 있었고 부품업체로는 한국마벨 싸니전기 삼화콘덴서 삼영전자 한국전자 삼미기업 모토로라 훼어차일드가 한륙전자 알옴등이 트란지스타 저항기 콘데서 스피커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국내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자기기 수요가 늘어나고 수출이 증가하면서 자연히 부품업체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6) 35개년(72~76) 전자공업계획수립(718)

    1972년부터 경제개발 제35개년계획이 진행되는데 전자공업분야의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며 상공부에 와서 도와주워야 한다고 출근을 그곳으로 하라는 전갈이 와 상공부에 파견근무를 하는데 71년도 추석 명절날에도 업무가 지급 하다하여 시골성묘도 가지 못하고 나가 일하였다.

    그래서 골격을 차질없이 상공부에 가서 완성하여 주고 왔으나 이에 따른 세부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일감을 시한부로 몰아주워 이제는 회사에 들어가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작업을 하느라 시기을 맞추워야 함으로 집에 퇴근도 못하고 밤늦게까지하고 아침에도 작업하고 있는데 아침출근 시간에 당시 박승엽소장께서 우리작업실에 둘러보시고 수고들 많다 하시고 나가 셨는데 그날이 회사에서 야유회 가는 날이였다고 뒤에 알게 되었다.

    당시는 김동필 전자과장 소속 우리작업팀은 김태곤씨 이충식씨 본인 3인이서 이작업을 하였고 몇일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자고 상공부 일정에 맞추워 작업완료 하여 주었다. 사부실은 넓지도 않는데 신경 많이 쓰다 보니 3인서 피어대는 담배연기가 늘 자욱하였다.

    작업내용은 가정용기기, 산업용기기, 전자부품 3개 부문에 대한 내수와 수출에 대한 수요주정과 공급의로는 생산과 수입인데 71년도 수출실적은 88백만불로 나와있었으나 자료가 미비하였다.

    내가 의존한 자료는 日本 電子年鑑 하나였다. 매년 발간되는 일본 전자년감은 비교적 상세하고 50년대부터 약20여년간 상세한 자료가있어 이자료을 숙독 분석하여 보니 우리나라 전자공업은 일보보다 약20년 뒤저 있었고 일본 평균증가율 년20%에 비해 우리나라 년평균증가율 35%을 적용하여도 겨유 5년을 앞당기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성장추세을 분야별로 적용 작업을 하는데도 참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수요추정 공식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과거실적이 너무 미미하여 적용 할 수도 없었다.

    당시 71년도 우리나라 전자공업 35개년 수립 계획추정치와 수출 실적치를 비교하여 아래 적어본다.

     

    단위 백만불임

    년도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수출 추정치

     

    150

    270

    405

    567

    765

     

    (실적치)백만불

    (88,6 )

    (142 )

    (369 )

    (518 )

    (582 )

    (1,037 )

     

    증가율

    60

    60.2

    160

    40.3

    12.3

    78

     

    전자공업 35개년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가을로 접어 들어 나는 전자공업 진흥업무에 많은 공로가 인정되어 입사 26개월 되는 시점에서 지도과장으로 승진발령을 받았고 얼마후 그러니까 1971년 겨울에 접어 들면서 朴勝燁소장이 퇴임하고 李春和 육군통신감 소장이 부임하였다.

    그리하여 자연히 인사교체가 진행되었는데 일차로 부장급은 거의 육군출신으로 교체되엇고 과장급도 서서히 밀려 나기 시작하였으나 나는 상공부의 정책업무를 주로 참여하다보니 업무의 비중상 큰 지장은 없었으나 72년도에 소장이 해외사무소 시찰을 가면서 집에 인터폰 장치를 해 달라하여 국산으로 계획하였는데 설치하로 집에 방문하니 일제로 해 달라하여 이런 이유로 출장에서 돌아와 중요한 서류결제 때마다, 폭언을 하고 나가라는 직언은 없지만 분위기가 심각하였다.

    그러나 상공부 업무가 계속 주어지고 모두 내 차지가 되다보니 어느 정도 업무능력을 인증하게 되었고 새로 들어오는 인사들은 내책상 옆에 배치하여 일을 배우도록 하여 함께 일하고 하였는데 모두 부과장으로 임명되었다. 내가 72년도 중화학공업 기획단에 차출되었고 또 다른 배경으로 沈樟燮 공군대령 전역하신분이 電子振興 부장으로 7211월 부임하면서 상황변화가 이러났다.

     

    (7) 重化學工業企劃團 참여 電子工業 8個年 計劃樹立 (729)

    1972년도 9월경 새로 건축한 고층 정부종합청사 내에 중화학공업기획단이 설치되어 2개월간 우리나라 경제개발 기본골격을 새로 세우른 작업이 실시되어 업계 학계 연구기관이 참여한 많은 인원이 강당으로 보이는 넓은 장소에 책상을 새로 놓고 제철 조선 기계 석유화학 전자공업등 많은 연구진이 모였다. 우리 전자공업은 관에서 尹楨宇과장 연구기관에서 丁埰泓과장 업계에서 금성사 金海洙3인이 重化學工業企劃委員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김해수씨는 구미전자공단 조성계획 나는 중화학공업 8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이 였기에 전자공업8개년 장기계획수립(73~80)을 담당하여 작업에 들어갔는데 우리는 기 76년까지 35개년 계획을 수립해 놓아 있었기 때문에 4개년 계획만 추가하는 것이므로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 옆에 위치한 기계공업은 자료도 없고 난망하다는 것 이였다. 본래는 73~808개년계획 목표연도 20억불로 하였으나 1년만 더 늘리면 45개년 계획(77~81)도 포함하기 때문에 1년을 더 늘려 81년도의 수출을 25억불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35개년계획치는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연장하여 5개년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다시 35개년 지난해 계획 수립한후 또다시 45개년 계획을 중화학기획단에서 수립하는 것 이였는데 약2개월 정도 걸린 것으로 생각한다, 작업내용은 家庭用電子機器, 産業用機器, 電子部品 3個分野別需要(內需, 輸出) 供給(生産, 輸入) 12개 항별 각각 5개년도별 하니 도합 60개 항목의 예상치를 찾아내는데 아무렇게나 숫자를 적어 넣는 것이 아니고 분야별 상호 비율과 증가율등에 타당성이 있고 근거가 있는 수치을 제시하여야 하였다. 나는 일본전자연감을 공부하여 그 비율과 증가율을 우리실정에 맞게 변경 결정하여 적용하였다. 일본전자공업 성장율은 3개분야별로 다르지만 년평균 약20%~25% 였고 우라나라가 일본보다 규모면에서 20년이 후진 상태에서 일본에 언제가는 근접 하기 위하여는 우리의 년간 평균성장률을 30%~35%이상 높여야 하는 과제임을 알아 내었다.

    당시 내가 한 수요추정작업은 生産 輸入 輸出 內需 4개항목중 무엇보다 전자공업 년도별 수출계획이 가장중요하고 정확하게 추정치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가장 신중하고 중점적인 작업 이였다. 그 때 작업한 년도별 수출추정치와 후에 달성한 실적치를 비교하여 보면 아래표에서 거의 적중 하였음을 알 수있었다.

    년도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수출 추정치

    765

    1,009

    1,311

    1,665

    2,081

    2,471

     

    (실적치)백만불

    (1,037 )

    (1,107)

    ((1,359))

    (1,845)

    ((2,004))

    (2,218)

    년평균

    44.8

    증가율

     

    6.7

    22.7

    35.7

    8.6

    10.6

    이표에서 우리나라 전자공업 수출 실적치를 보면 78년과 80년도는 2자리까지 적중 하였음을 알 수있다. 본인이 추정한 예상치였다.

     

    이 수요추정치가 중요한 것은 이수치를 목표로 정부의 수출정책을 강력히 추진 할 수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하며 우리는 당시 전자공업의 유년기에 튼튼한 주춧돌을 다져 놓았다는 가치평가를 자부 할 수있다.

    서독에서 경제학 연구을 하여온 백영훈 박사의 한국개발연구소 (KDC)에서도 전자공업 수요추정치가 나왔는데 당시 너무 동떨어진 수치가 나와 적용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난다. 전자산업의 특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불실한 과거실적을 적용하여 추정공식에 대입하여 산출한 추정은 획기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전자공업에 거리가 멀었다.

    <추가> 수급 ( 생산 수입, 수출 내수) 민생기기 산업기기 부품

    ***나는 계획수립의 공노로 회사 창립기념일(73.4.13)에 상공부 장관표창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43년전의 그때 그작업 책상과 우리가 남쪽 출입문 맨 첫 번째 장소에 위치 하였고

    72년 추석 명절날도 귀향 엄두도 못내고 출근하여 작업에 임했던 기역이 지금도 생생하다.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1018/ 2015.7.13. 우연히 daum 포털 펀딩뉴스

    에서 김해수 씨의 프로필을 읽게되었는데 1923년생 일본 도교고등공업학교 전기과졸업 해방후 라디오 수리공에서 1958년 금성사 창립멤버로 입사 1959년 라디오개발등 금성사에서 11년 재직하면서 기술개발주역을 담당하였고 다음 삼화콘덴서에 전직하고 200583세로 타계하였다함


    (8) 105개품목 공장건설 표준사업계획수립(736)

    그런데 다음해인 73년도에 이 수출목표을 달성하기위한 구제적인 투자유치 자료가 필요하게되여 다시 우리팀에 상공부가 중요한 사업을 위촉 한 것이다.

    즉 사업명은 “105개품목 공장건설계획수립으로 되어있으나

    이 자료는 2가지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는 전자공업세부 육성계획의 제시이고 또 하나는 세부 품목별투자유치 안내 자료로 활용목적이 있었든 것이다. 국내외에 자본가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전자산업이 유망한 업종임을 홍보하며 품목별 사업지침서인 105개 품목별 표준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투자가의 자본능력에 맞게 선택 할 수있도록 투자유치안내서를 만들자는 것 이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어떠한 내용의 양식으로 어떠한 내용의 자료가 포함 하도록 제시한 내용은 없고 용도와 목적만 제시한 것이여서 모든 세부적 구체적 내용은 나의 구상에서 나와야 했다.

    그러나 나로서도 기본적인 사업계획 양식이야 다 알고는 있지만 품목별 년도별 수요 공급의 합계금액이 기존 8개년 계획과 총체적으로 일치되어야하기 때문에 작업양이 방대한 것 이였다.

    품목별 표준공장사업계획서을 만들기위해 고려하여야 할 사항으로 첫째 품목별 내수 및 수출계획이 제시되여야 하고 이 수요에 부함한 공급 즉 수입과 국내생산계획이 제시되어야 이에 따른 품목별사업계획을 수립 할 수있는데 사업계획은 차치하고 105개 품목에 대한 수요공급인 내수와 수출, 생산과 수입 이 계획을 작성하는데 전자기기에 품목별 부품상호간의 구성비율을 알아야하고 즉 전자기기 수요에 부합한 부픔 공급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부품을 과잉공급이나 과소공급으로 잘못 할 경우 이 계획은 엉터리가 되고 물양과 금액관계에 있어서도 수급이 원활 하지 못하면 과잉 과소 공급이 되는 문제가 있고 참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난감한 과제였다. 그다음 품목별 표준사업계획서에는 공장규모로서 건물 토지규모와 적정 생산 물량과 금액 소요인력과 소요자금을 제시하고 이에 합당한 사업성 즉 원가계산서가 제시되어야 투자자가 이 자료을 검토하여 자기 준비자금으로 어느 품목에 투자 할 것인가 판단을 할 수있도록 작성하여야 한 것이다.

    당시 전자과 작업 인원 5명이서 단 3개월에 과연 이방대한 작업을 해낼 수있느냐 하는 판단을 팀장인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입장에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하는 데까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FIC는 전자공업 진흥지정 연구기관으로 사업자금과 인건비를 정부에서 지원 받고 있는 대한민국 유일한 전자진흥 정책연구기관으로서 우리기관 아니면 이 과제를 어느 연구기관도 수행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전자공업이 일천하여 상세한 인자를 분석하여 낼 자료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자료는 20여년간 우리보다 앞서있었기 때문에 일본 전자공업년감에 품목별 자료가 이곳저곳에 수록되어 있어 이 자료를 활용하기로 하고 최근 수년간의 전자연감을 동경사무소에 급히 부탁하여 구입하여 보내왔다.

    업무량을 검토 해보면 우선 수요 추정업무가 8개년계획시에는 60개 항목으로 나혼자서도 가능하였으나 이번에는 105개품목에 대한 개별 품목별 년도별 생산,수입,수출,내수 4개항목에 여기에 금액 수량이 포함되고 10개년 임으로 수요추정 작업만 총합계 8,000개목으로 늘어났고 여기에 더하여 이 수요주정 105개 품목의 4개항목별 총합계가 8개년 계획에서 수립한 금액과 년도별로 정확히 동일 하여야 한다. 즉 년도별 가전기기, 산업용기기, 전자부품의 수요와 공급 금액과 102개품목의 함계금액이 일치하여야 할 것이다. 이작업이 어려운 것이다. 이는 저항기 부품이 전자부품 총액의 몇%을 점유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도 이 인자를 일본자료을 분석하여 찾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나는 이 작업을 위하여 많은 연구에 몰입하여야 했다. 이 수요주정을 완료한 후에 여기에 맞추어 105개 품목벌 표준공장 사업계획서을 작성하여야 하는데 이는 작업량을 추정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였다.

    당시 본인이 팀장으로 기기담당 황영국씨 유복규씨와 부품담당 김태곤씨 이충식씨 총5명이서 이방대한 작업을 3개월 동안에 완성해야 할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당시 이방대한 사업을 위촉한 상공부 전자공업과 윤정우과장은 나의능력을 몇번 시험하고 있었기 거의 불가능 한 임무를 FIC에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상공부 전기공업과에 소장하고 있었던 관련 모든 자료롤 나에게 넘겨 주 었는데 당시 상공부 전기공업과 임동준과장이 기업인을 인솔하고 일본 전자공업 시찰단으로 다녀 오면서 수집하여 온 일본 전자기업체들의 년간 사업성과인 대차대조표가 포함되어있는 자료가 있어 이 자료을 이용하여 품목별 원가계산서 작성에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마침 안테나 표준단위 공장에 대한 자료을 소장하고 있어 기록에 남기고저 한다.

    1년이나 소요될 작업량을 불과 3개월에 마쳐달라는 것인데 품목별 수요추정 외에 하루에 사업계획서 한 건식만 하여도 3개월이 넘는 업무량이였다.

    여기에 수요주정 8,000개 항목이 추가된다. 참으로 예측불허한 일이지만 나이 37세에 나의 생애처음 심혈을 기우리는 노력의 여정에 맞서 본 것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품목별 단위제품의 평균단가을 분석해내는 일이였다. 전자공업 35개년계획과 8개년 중화학계획 에서는 물량은 필요없고 금액만으로 수립하였으나 품목별 공장건설계획은 단위표준 사업계획을 작성하기때문에 품목별 표준 평균 단가가 결정되어야 하며 우리가 처음으로 이 작업을 시도 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품목별 수요추정이 선행되어야 여기에 부합한 품목별 표준공장건설 사업계획이 나올 수 있음으로 이러한 표준공장이 수요을 감당할 공장건설계획이 년도별로 수립해야 한다는 작업의 개요가 잡히기 시작하였다. 출퇴근 차내에서도 공장건설계획의 작업방법 구상이 머리에서 늘 떠나질 않고 꽉차있었다. 이 계획서가 완성되면 전자공업이 앞으로 크게 번창할 전망이 좋은 사업인데 자본가가 투자할 길잡이를 마련하여 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공장건설계획서를 참고하여 전자공업에 투자하면 국가에서 자금지원 기술지원 시장안내등 지원하겠다는 전자진흥법에 부합한 필수자료가 되는 중요한 계획서가 공장건설계획 수립이였다.

    타 산업분야 에서는 이런계힉을 수립 할 수없는 것이 전자공업은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요에 균형을 유지하는 정부지침서가 없으면 어느 품목은 과잉생산하고 어느 품목은 수요에 미급하여 수입하여야 할 패단을 없에기 위해 전체 수요에 맞는 균형발전을 시키는데 의의가 있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사업추진에 가장 어려운 난제가 가정용기기 15개품목 산업용기기 26개 품목 전자부품 65개품목별 년도별 수요추정치 합계가 즉 생산 수입 내수 수출 4개항목별로 더한 합계가 본래 수립한 8개년계획 전자공업 전체의 년도별 합계치와 일치하여야 하는데 본래 작업은 품목개별 추정치가 먼저나오고 더한 합계가 8개년 계획이 되어있어야 정상작업인데 그렇지 못하고 이제 꺼굴로 개별품목의 수요추정치를 8개년계획치에 맞추워야 함으로 작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나는 늘 생각하였다. 큰 가닥은 품목별 표준사업계획은 품목별 수요가 나와야 수립 할수 있기 때문에 표준공장은 2차적 문제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한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3개월이 되는 8월 경에는 시간에 쫏기게되어 출퇴근 시간을 아껴야 하겠기에 1주일간 퇴근 없이 사무실에서 자고 일을 하게 되는데 상공부 윤정우과장도 수시로 작업진행 상황을 파악 하더니 최종일에는 전날 작업장에 와 함께 밤을 세워가며 우리작업을 격려하여 주시고 아침에 완성한 자료 한봇다리 쌓아서 상공부로 출근하였다.

    인쇄는 상공부에서 하였는데 한품목당 4페이지로 도합 420페이지의 큰 책자로 출간하였다.

    이 작업을 완료하고 이듬해 74년 전자진흥 부장 (310)으로 승진하였다.

    박정기 고려대교수님이 소장하신 안테나 품목에 대한 공장건설계획 자료가 있어 우연히 건네받아 당시 수립한 공장건설 내용을 견본으로 실어본다

     

    * 안테나 표준공장

    1. 사업개요(표준단위 공장)

    (1) 생산품목 : 안 테 나

    (2) 건설기간 : 1973년 부터 1980년 까지

    (3) 년간생산 규모

    수량 : 5,000 천개

    금액 : 2,000 백만원 ($5,000,000)

    (4) 소요자금 : 705,000 천원

    내자 : 423,000 천원

    외자 : 282,000 천원 ($705,000)

    (5) 재원 :

    ) 재정자금 : 282,000 천원

    ) 차관 또는 합작 : 212,000 천원($529,000)

    ) 자기자금 : 212,000 천원

    (6) 건물규모 :13,900 m2

    (7) 종업원 규모 : 465

    2. 표준공장 년도별 건설계획 (공장수)

    74(1), 78(1), 80(1)

     

    3. 투자계획 (단위: =1,000,000 $=1,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내자()

    75

    113

    163

    226

    297

    374

    444

    692

    50

    75

    109

    151

    198

    250

    296

    461

    $

    125

    188

    273

    378

    495

    625

    742

    1,155

    합계()

    125

    188

    272

    377

    495

    624

    740

    1,153

     

    (2페이지)

    4.년도별 생산확장계획(단위; 수량=1,000, 금액=1,000,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수량()

    718

    1,315

    1,903

    2,640

    3,470

    4,367

    5,187

    8,069

    금액()

    350

    527

    761

    1,056

    1,387

    1,748

    2,082

    3,228

     

    5.고용계획 (단위: )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기술직

    105

    158

    229

    317

    416

    525

    623

    968

    사무직

    12

    18

    25

    35

    46

    58

    66

    108

    합계

    117

    176

    254

    352

    462

    583

    689

    1,076

     

    6.자재조달계획(단위:1,000,0001,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국산조달 ()

    172

    258

    373

    739

    971

    1,224

    1454

    2,260

    수입 ()

    73

    111

    160

    -

    -

    -

    -

    -

    수입 ($)

    183

    278

    400

    -

    -

    -

    -

    -

    합계()

    245

    369

    533

    739

    971

    1,224

    1,454

    2,260

    국산화율 (%)

    70

    70

    70

    100

    100

    100

    100

    100

    참고/ 이상은 년도별 생산확장계획에 따른 투자,고용,조달 년도별 확장계획임

     

    7.생산계획(당해년도)/(단위/ 수량:1,000, 금액:1,000,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수량()

    1,049

    2,364

    4,267

    6,907

    10,377

    14,744

    19,931

    28,000

    금액()

    419

    946

    1,707

    2,763

    4,150

    5,898

    7,972

    11,200

     

    8.판매계획(당해년도)/(단위/ :1,000,000, $:1,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국내()

    419

    946

    1,707

    2,764

    4,150

    5,898

    7,972

    11,200

    수출($)

    _

    -

    -

    -

    -

    -

    -

    -

     

    (3페이지)

    9. 보충설명자료

    (1)수요예상(당해년도)/(단위/수량:1,000, 금액:1,000,000)

    년도

    ‘73

    ‘74

    ‘75

    ‘76

    ‘77

    ‘78

    ‘79

    ‘80

    수량()

    1,049

    2,364

    4,267

    6,907

    10,377

    14,744

    19,931

    28,000

    금액()

    419

    946

    1,707

    2,763

    4,150

    5,898

    7,972

    11,200

    (2)과거 실적추이(해당년)/(단위/ 수량:1.000,$:1.000)

    년도

    ‘66

    ‘67

    ‘68

    ‘69

    ‘70

    ‘71

    ‘72

     

    생산(수량)

     

     

     

    -

    272

    453

    483

     

    수출(수량)

     

     

     

    -

    40

    10

    ?

     

    수출금액($)

     

     

     

     

     

     

     

     

     

    업체명

    자본금()

    생산능력/

    72년생산실적(수출)

    종업원

     

    동양클롭

    62,300

    1,410

    340 (67)

    78

     

    삼원금속

    10,000

    286

    137 (5.2)

    49

     

    고려전자

    10,000

    -

    -

    -

     

    합계

     

    1,696

    483

     

     

    (3)국내생산업체현황(단위/ 천원. 천개)

     

    (4)외국업체규모

    업체명

    자본금(1,000)

    년간매출(1,000)

    종웝원 ()

    건물(m2 )

    日本안테나()

    96,000

    3,330,703

    400

    13,416

    原田工業()

    80,000

    3,275,437

    411

    12,244

    푸스부로電工()

    69,500

    3,566,231

    277

    7,840

    데이에크 안테나

    25,000

    3,860,885

    560

    8,085

    (4페이지)

     

    (5)외국생산규모

    업체명

    일본(71)

    미국(71)

    대만(71)

    EEC(71 )

    물량(1,000)

    14,954

     

     

     

    금액( )

    13,009 (백만엔)

     

     

     

    (6)생산성검토

    ) 자본금대 생산액비: 일본: 4 한국:

    ) 1인당 생산액 규모: 일본: 300만원 한국:

    ) 1인당 건물규모 : 일본: 20 m2 한국:

    (7)원가계산서/ 산출단위 400/

    (1) 재료비 : 300(75.2%)

    *수입재료: 90, 국산재료: 210

    (2) 노무비 : 35(8.8%)

    (3) 제세공과: 13(3.2%)

    (4) 관리비 : 7(2% )

    (5) 이익 : 43(11%)

    (6) 기타: 감가상각, 판매비, 금융비/ 미산입

    -(262)-

     

    이상과 같이 같은양식에 사업내용이 서로 다른 사업계획서를

    민생용기기= 15개품목

    산업용기기= 26개품목

    전자부품 = 64개 품목 총계 105개 품목에 대해 작성하였다.

    책자분양은 420페이지에 달하였다.

    이상과 같이 105개품목 표준공장 사업계획서을 마련하여 상공부가 발표 한후 국내 전자공업 투자유치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전자공업

    이 장래 전망이 좋다는 정보는 파다 하지만 참고할 자료가 없엇는데 품목이 100여개로 어느 품목이 유망하며 자금규모는 또 공장규모는 어느정도가 적정한지 과잉생산으로 팔리지 않으면 걱정이요 전망이 좋아도 수익성은 어떠한지 참고할 자료가 없었으나 원가계산서 까지 마련된 표준공장사업계획서 자료가 출현하자 국내 투자가들이 이 자료를 이용하기 시작하였고 또 이자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궁굼하니 자연 작업출처을 찾게되어 문의하면 상공부에서는 정부 전자공업진흥기관인 FIC 전자진흥부을 찾아가 보라하여

    하루에도 2~3명식 찾아와 상담하고 문전성시을 이루웠다. 제과업(해태제과) 건설업(대림산업) 등 재벌급 회사들도 잦아오고 신빙성에 대해서는 일본기업들이 내놓은 기업 대차대조표을 품목별로 입수하여 분석적용 하였기에 주먹구구가 아님을 설명해주고 수요추정을 수차 하여 과잉투자 방지을 막는 신뢰성있는 자료임을 나는 적극 설명하여 주엇다.

    (9) 신모델콘테스트 와 신개발제품 경진대회(75)

    험준한 태산을 넘어서니 상공부에서는 FIC 능력을 인정하고 우리가 진흥사업으로 추진할 사업계획을 올리면 모두 승인하여 주었는데 우리가 창안하여 전자전람회에 전시도 하고 신상품개발 족진을 목적으로 신모델 콘테스트 와 신개발품 경진대회를 열어 선발된 제품에 상공부 장관상도 시상하고 전람회에 별도부스에 전시도 해주었는데 기업체의 참여가 적극적이엿다.

     

    (10)산학협동 기술위원회운영 (74)

    19747월에 창설한 산학협동 기술위원회 추진사업이였다,

    기업의 기술애로를 대학에 알려 학술적인 연구에 접목하자는 취지였다, 기업과 대학이 긴밀히 소통하여 국가기술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와 목적이 좋아 참여자들의 열의가 대단하였고 활성화되었다, 11개분과위원회의 전체 산학협동위원회 창립대회을 FIC 대회의실에서 갖고 전자공업 산학기술위원회 운영규정을 결의 하였으며 각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위임장을 위촉하였다.

    위원장은 대학교수에서 선임하였고 위원으로는 산업체 기술담당과부장 공장장에서 선임하여 분과별 위윈회 첫회의을 1974713일부터 실시하여 1개월간 각위원회별로 회의를 마치고 결과을 책자화하여 관련기관에 배포하고 상공부에 보고하였다.

    본사업은 내가 제5대 전자진흥부장으로 승진하기 직전 기술협력과장시에 본인이 주관으로 계획수립 발의하여 시행하였다.

    74년도 제1차회의 결과 보고서인 산학협동지를 현재 소장하고 있어 당시의 위원회별 위원장과 위원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우나라 1970년대 전자제품 수출 2억불 수준에서 2010년대 수출

    2천억불로 천배 성장한 시점에서 우리나라 전자공업 黎明期여명기 당시 전자공업 각 분야에서 초석의 력군이 되어 활동 하셨든 분들의 존함과 소속 직책명을 밝혀두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하고 아래와 같이 기록에 남긴다.

    이기/전자공업산하협동 제1,1974.11.10.한국정밀기기센터 발간

     

    *콘덴사 기술위원회:

    위원장: 한국과학원 교수 박송배 박사 (기술위원 8)

    기술위원: 김원후 항공대한교수, 김명균 남성전자상무, 한명희 삼회니찌콘

    과장, 오창진 대한전선 과장, 최희정 삼영전자기술부장, 신근식

    삼화전자차장, 황의석 한국마벨상무

    *저항기 기술위원회/위원:

    위원장: KIST 실장 노홍조 박사 ( 7)

    기술위원: 김용철 성미음전사공장장, 박종환 정풍물산과장, 한상용 한국알옴과장

    이유직 한륙전자부장, 이범석 성요사생산부장, 박영윤 흥창물산부장


    *음향부품 기술위원회:

    위원장 서울공대 교수 이종각 박사 (8)

    기술위원: 이영근 한양대학교수, 김능수 삼이기업부장, 성기현 삼성전기파스과장

    김상묵 영신음향대표, 노두현 한국북두음향이사, 차용근 나진산업공장장

    오금석 보고산업이사


    *트랜스포마 기술위원회:

    위원장 중앙대학 전자계산소장 이태원 (8)

    기술위원: 이경수 광명전기대표, 이보남 서울주파공장장, 전척원 지영사사장

    김효열 삼환전기대표, 마종수 패시픽전자상무, 지경문 한국전자산업

    사장, 송병찬 협진무선제작소사장


    *TV수상기 기술위원회:

    위원장 한양공대 교수 김영조 박사 (9)

    기술위원: 정선호 KIST집적회로연구실장, 서평원 금성사전자개발과장, 조병용

    삼성전자생산차장, 김하성 대한전선기술과장, 김양락 삼양전기과장

    이경해 화신쏘니부장, 하성한 삼성전자과장, 조대인 천우사연구실장


    *녹음기 기술위원회:

    위원장 고려대학 교수 박정기 박사 (8)

    기술위원: 차기복 수다전자공장장, 김민열 대한음향과장, 이상준 한국크라운부장

    신철순 삼성전기차장, 엄기춘 금성사라디오과장, 서장원 보고산업과장

    유형배 성우전자공장장


    *전자계산기 기술위원회:

    위원장 연세대학 교수 박규태 박사 (6)

    기술위원: 전희국 동남전기개발부장, 김광교 삼성전자전탁과장, 홍성대 민성전자

    개발부장, 정계택 IDC차장, 최판영 보고산업기술이사



    *계측기 기 기술위원회

    위원장 서울공대 :교수 최계근 박사 (6)


    기술위원: 이보의 한진전자상무이사, 조선익 광주전자대표, 김용섭 삼성계기사장

    권중연 우진계기기술부장, 천철중 천일전기회장





    *무선통시기기 기술위원회:


    위원장 인하공대 교수 이주근 박사 (8)

    기술위원: 서정욱 ADD교수, 김재균 한국과학원교수, 정일모 국제전자사장, 임융재

    한진전자생산부장, 박병일 금성전기영업부장, 최건용 풍림전기기술부장

    김병희 동양정밀전무이사


    *반도체 기술위원회:

    위원장 KIST 실장 정원 박사 (9)

    기술위원: 김동원 ADD실장, 박연기 금성사제조부장, 심규만 대한마이크로생산부장

    정성강 민성전자생산부장, 이택열 한국전자영업과장, 김영체 아이맥부장

    정인종 모토로라코리아 국장, 단민호 한국시그넥틱스품질과장


    *재료 기술위원회: - 미조직-

    그 외의 FIC 전자공업 진흥사업 활동으로는

     

    1)매년10월에 실시하는 전자공업전람회는 미국 일본등의 기업이 참여한 국제규모로 확대 실시하였고,

    2)매월 전자뉴스책자를 발간 세계시장 기술정책 동향을 담아 전자등록업체에 배포하였으며,

    3)해외사무소를 통한 투자유치, 시장자료 수집활동을 추진하였다.

    4) 한편 기술훈련소에서 전자기능공양성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5)기타 외국의 UL,FCC,BSI등 안전규격 인증대행 업무등 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70년대 전자공업 발전을 위한 진흥기초사업 추진이 초석이되어 70년대 초기 전자공업 수출 2억불규모가 80년도 20억불로 70년대 년평균 수출성장율 44%인 기적적인 성장을 달성하였고 88년도 전자수출 100억불 초과 달성하였으며 그후 35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총수출 규묘 5천억불에 전자공업제품 수출 2천억불로 고도의 성장을 가저왔다.

     

    (11) 조세감면특별법 시행규칙제정 및 공장심사실시(77)

    19772~3월로 기역된다, 경제기획원에서는 조세감면 특별법 시행령을

    일부개정하여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업체에 수입설비 반입시 관세면제

    조치로 투자유치 권장정책을 시행하어 왔으나 어느정도 많은 외국업체가

    유치되었고 외화유출을 막기위한 조치로 생산시설규모 100% 이상의 수입

    설비를 도입 할 시는 관세을 면제해주고 그 이하규모의 설비 도입시는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가 골자였다. 그래서 이시행령이 공포되었고 시행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행정공무원으로서는 이 시행규칙을 만들기 어려웠고 공장경험이 있는 유관단체에서 전문기술직 요원이 그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기업을 상대로 하는 국가 법규을 기업체에 의뢰 할 수는 더욱 없다, 그래서 상공부에 협조요청 한 결과 전자진흥기관의 나를 지목한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공부에서 면세추전을 하여주든 업무가 이시행령 발표후 FIC 전자진흥부에서 처리 하도록 공문이 내려와 있었다. 이 업무는 서류검토

    만으로 처리 할 수없고 공장에 방문 하여 실태을 파악 하여야 하기 때문에

    관에서 직접기업에 나 다닐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상공부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경제기획원 담당국장이 나를 만나려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행령이 발표되어 각 산업분야에서 설비도입 면세신청이 들어오고 있는데 시행규칙이 작성되지 않아 처리를 못하고 있었던 형편 이였다. 그래서 그 시행규칙을 업체관련이 많은 우리 연구소에서 작성해 달라는 부탁 이였다. 당시는 본인이 전자진흥부장의 직책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장비도입이 많은 경우에는 관세을 과세하고 적게 도입 할때에 면세해야 외화가 절약 될 터이인데 어째서 반대로 시행령을 만들었는가 하고 물으니 그것은 수입 장비도입을 분석 해 보왔는데 적게들여온 경우가 많이 들여온 경우보다 외화 지출이 월등이 많아 외화유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조치라 한다. 그래서 내가 시행규칙을 연구해 보겠다 하였고 돌아와 많은 연구를 해 보왔다, 생산공정과 또 같은 공장에서 여러개 품목을 생산한 업체도 있고 또 회사는 하나라도 제1공장 2공장 시설규모 100%가 넘는 판정기준에 변수가 많아 아전인수 격으로 모두 100% 넘는 자료을 만들어와 면세을 받으려 신청할 경우 무슨 기준으로 이를 판단할 것인가가 시행규칙에 나와야 하는데 또 신청시 제출 양식도 무슨 내용으로 작성받야 판단하기 용이할 것인가등 연구과제가 수얼치 않았다. 몇일두고 연구하여 본결과 13건의 판단 조항이 나와 이를 규정화하여 결제을 득하여 경제기획원에 보냈는데 이 규칙이 전국 각산업체에 적용하도록 내가 보낸 안이 그래로 시행규칙으로 만들어저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자공업분야 외국인 투자업체에서 장비도입 면세신청이 우리 진흥부에 들어와 내책상에 3건이 쌓여 있는 중이였다. 외국업체 사장이 FIC 소장 면담 발길이 잣고 면세금액이 1억원이상 되는 업체도 있고 이업무가 FIC 최대관심사가 되엇다. 그래서 시행규칙이 발표된후 담당 직원들을 교육시켜 실태조사에 내보내 처리하엿다.

    **결론적으로, 상공부 산하 국가연구기관 정부와 유네스코 합작으로 세운 韓國精密機器센터 FIC에서 나이 33세부터 41세까지 8년간 내 인생의 靈肉과 두뇌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 나의 정열을 다하여 근속하였다.

    사실 당시 60년대 말 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가 미진하여 누구나 의식주 해결이 힘들었던 시대였다. 그러니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 이였고 더구나 국가기관이므로 자랑스러운 일이였다. 당시 FIC에는 2년제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훈련소와 정밀기계 및 표준계기을 갖춘 국가 품질관리기관 이였는데 전자공업 진흥법이 공포되고 진흥기관으로 지정받으면서 전자공업 육성업무가 추가되었고 국가예산을 지원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든 터라 상공부에서 임무가 떨어지면 밤잠을 자지않고 시기에 맞추워 완결하여 보내고 하였던 일이 모두 생계를 위한 일이였으나 지금 생각 해 보면 전자제품의 수출규모가 총수출 2/5 규모로 성장하였고 국가경제를 주도하고 있어 당시 우리의 노력이 다소나마 경제발전의 초석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참으로 마음 흐뭇하다.

    **여기서 내가 FIC을 퇴직한 77년도 나의 가정생활 형편을 돌아 보면 63년도 결혼후 10년간 집마련 하기까지 10번 이사하며 셋방살이 전전하였고 73년에 연탄식 아궁이 13평 아파트를 구입 한 것이 내집 마련 효시다. 어린아이들이 입학하고 만원버스에 시달려 초등 중등 고등학교가 한곳에 모여있는 여의도에 이주를 목표로 저축한 것이 소원을 달성 여의도에서 제일 적은 시범아파트 17평을 구입한 것이 77년도다. 국가 살림이 넉넉지 못하여 정부자금으로 월급을 받는 처지인지라 급여가 많을 턱이 없고 당시 부장급여가 월 15만원 이였다.

    마침 신규 사업을 벌이는 전자업체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소개가 들어와 직장을 옮기게 되엇는데 퇴직금으로 아파트 25평 집으로 늘렸지만 1년이 못되어 직장을 잃는 처지가 되었다. 그후 생활형편이 호전될 수가 없엇다.

    남의 꾀임에 빠지지 않고 사리가 밝아 진다는 不惑의 나이에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여러 가지 잘못될 경우을 생각해 보지도 못한 迷惑에서 그리 된 것이지만 자기의 운세도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40년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轉禍爲福이란 경우도 있는 것이요

    信義宣德을 조금이나마 쌓은 덕분으로 그후 7~8곳 직장을 바꿔가며 전전 하며

    살아 올 수 있었고 마음고생은 많았지만 그래도 끝이 불행하지는 않으니 다행스러운 이요, 언제나 德性正道을 잃지 않고 매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길이 열리고 아주 막이지는 않는 것으로 생각하며, 인생역정 다시 살펴본다면 국가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와 사회의 은혜을 많이 입고 살아 온 것이요 국가경제가 세계10위권으로 성장하다 보니 벌어먹고 살기에 수얼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과 같이 세계최빈국에 태어났다면 노력하여도 될 일도 없을 것이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도 큰 복으로 생각한다.         2015.1.5. 曉正 丁埰弘



                        

               2019. 5. 1,   曉正 丁埰泓 著 謹拜   


      創神敎  傳道師    曉正  正中道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