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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十年曰幼니 學이라. (해는 뜨고 또지고 갯골 미생의 다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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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

2020. 11. 4.

삶이
어느듯 다섯번의 변곡점을
넘어 여섯번째로 들어서고 있다.
유교경전 사서오경의 하나인 예기
곡례 상에서 나이에 관한 내용을
찾아 옮겨본다. 
 
010801
人生十年曰幼니 學이니라. 
 
사람이 나서 열 살을 幼라고 하는데, 이때는 배우는 시기이다. 
 
二十曰弱이니 冠이니라. 
 
스무 살은 弱이라고 하는데, 이때에 冠禮를 행한다. 
 
三十曰壯이니 有室이니라. 
 
서른 살을 壯이라 하는데, 이때 아내를 맞이한다. 
 
四十曰强이니 而仕니라. 
 
마흔 살을 强이라고 하는데, 이때에 벼슬길에 나간다. 
 
五十曰艾니 服官政하나니라. 
 
쉰 살을 艾라고 하는데, 국가의 政事를 맡는 시기이다. 
 
六十曰耆니 指使하나니라. 
 
예순 살을 耆라 하는데, 지시하여 부리는 시기이다. 
 
七十曰老니 而傳이니라. 
 
일흔 살을 老라고 하며, 집안일을 자식에게 넘겨주는 시기이다. 
 
八十九十曰耄요.
七年曰悼니
悼與耄는 雖有罪라도 不加刑焉하나니라. 
 
여든 살과 아흔 살을 耄라고 하고, 일곱 살을 悼라고 하는데, 悼와 耄인 사람은 비록 죄가 있더라도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百年曰期니 頤니라.
백 살을 期라고 하는데, 이때는 봉양을 받는다. 
 
 
 
 
육십대를 늙을 기를 쓴다.
늙을기는 늙을 노에  뜻지가 합해진
글자다  노인에 가깝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耆는 오래 살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스스로 힘을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부리는 것이다. 
 
 
 
팔십대와 구십대는 늙을모를 쓴다.
耄는 정신이 혼미하여 잊어버리는 것이고, 悼는 가엾게 여기는 것이다.
팔구십 된 사람은 늙어서 지혜가 이미 쇠하였고, 일곱 살짜리 아이는 어려서 지혜가 아직 미치지 못한다. 
 
사람의 수명은 백 살을 1期로 삼는다. 
 
 
 
[大全]永嘉戴氏 :  
 
聖人이 禮를 만드시어 천하를 규제하고 인심을 절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혈기를 충실하게 하고 의지를 굳게 하였다. 
 
壯者는 服其勞하고
老者는 安其逸하며
未用者는 無躁進之心하고
當退者는 無不知足之戒하야 每十年爲一節하야 而人心이 有定向矣라. 
 
 
壯年은 힘든 일을 대신하고
노인은 편안함을 즐기며,
아직 등용되지 않은 이는 조급히 벼슬에 나가려는 마음이 없고
물러날 때가 된 사람은 모두 知足의 교훈을 알아서
10년을 한 마디로 삼아
사람들의 마음에 일정한 방향(목표)을 갖게 하였다. 
 
 
二十엔 血氣猶未定이라. 然이나 趨向善惡은 判於此矣라.
20세에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시기이나 善人과 惡人의 방향은 이 시기에 나뉜다. 
 
故로 責以成人之禮焉하고,
그러므로 成人의 禮를 요구한 것이다. 
 
三十에 有室이니
30세에는 아내를 얻는다.
不至於過而失節하며 亦不至於曠而失時하니 此古人所以筋力之盛壽命之長也요,
〈너무 일찍 결혼해서 사랑이〉 지나쳐서 〈혈기의〉 절도를 잃을 정도에도 이르지 않고 배우자 없이 〈나이 들어〉 혼기를 놓치는 정도에도 이르지 않게 한 것이니 이 점이 바로 옛 사람들이 근력이 좋고 壽命이 길었던 이유이다. 
 
四十엔 志氣堅定하고 强立不反하야
40세에는 의지가 굳고 정신이 안정되어 동요되지 않는다.
不奪於利害하고 不怵於禍福하니 可以出仕矣라.
利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禍福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벼슬에 나아갈 만한 때이다.
自此以往으로 三十年은 宣勞於國이니 非若後世强者가 有時不用하며 少與老者가 竝用하야 至於怠惰廢弛而莫之振也라.
이때부터 30년은 마땅히 나라를 위하여 힘썼으니, 사십세가 되어도 등용되지 않거나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등용되어, 나태해서 버려지거나 쓰일 만해도 쓰이지 못하여 진작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후대와는 매우 달랐다. 
 
人至於五十이면 更歷世變하야 諳知人情이 亦旣熟矣라.
사람이 50세가 되면 세상의 變故를 두루 겪어서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 또한 이미 난숙하다. 
 
若此而服官政이면 則明習故事하고 詳審和緩하야 不至於擾民生事矣라.
이러한 때에 국가의 정사를 맡으면 전례를 잘 알고 자세히 살펴서 긴장상태를 완화시켜 백성을 흔들고 사단을 일으키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는다. 
 
年이 至於六十이면 幾於老矣니,
나이 60이 되면 노인에 가깝다.
于斯時也엔 有指畫之勞요 無奔走服役之事라.
이 시기에는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 수고로움만 있지 분주하게 직접 勞役할 일은 없다. 
 
七十을 謂之老니 而猶與事接이면 是는 不知止也라.
70세를 노인이라 부르는데, 이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맡고 왕래를 한다면 이는 그쳐야할 때에 그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然이나 人이 方其血氣之盛에도 猶有所棄也어늘 及其旣衰하야 則顧戀不忍去하나니 雖家事도 亦然커든 而況於國事乎아. 
 
사람이 혈기가 한창인 때에도 오히려 버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인데 이미 노쇠해서도 아까운 생각에 차마 버리지 못하니 집안일도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나랏일이겠는가. 
 
此聖人所以戒之在得也라.
이 점이 성인께서 老貪을 경계하신 까닭이다.
耄與悼者는 解后有罪라도 非其故也라.
여든 살과 아흔 살의 耄와 일곱 살의 悼는 우연히 죄를 짓더라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禮經에 養老之禮와 鄕飮酒之義는 至九十而止로되
《禮經》에 보이는 養老에 대한 예와 鄕飮酒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90세에서 그치고 있다. 
 
獨曲禮에 曰 百年을 曰期니 頤라 하니, 壽至百年은 此亦絶無而僅有也일새 自養之外엔 無他望焉이라.
그런데 유독 〈曲禮〉에서 “백 살을 期라고 하는데, 이때는 봉양을 받는다.”고 한 것은 나이가 백 살에 이르는 것은 거의 없고 어쩌다 있는 일이어서 自家에서 봉양하는 외에 달리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