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기고

채널만호 2007. 7. 30. 11:03
"전근대적인 자본가, 이제는 안 된다"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②] <노동>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
  2007-07-30 오전 10:18:37
  지난달 27일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강연으로 막을 연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기획 연속 강연의 두 번째 발제자는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이었다.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연속 강연회 그 두 번째 주제로 <노동> 분야의 발제를 맡았던 최영기 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87년 20년, IMF 10년을 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서는 "재계가 새로운 패러다임과 발전전략을 주도해야 한다"며 재계의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시장 주도의 경제체제 하에서 이미 정부 주도의 개혁은 많은 부분 어려워진 측면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그동안 어떤 자기희생과 양보도 한 바 없는" 재계가 나설 차례라는 것이다. 최 원장은 "노동조합 비판에 초점을 맞추기 말고 근로자들의 마음을 사는, 근로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갖고 일반 근로자를 상대로 대화해야 한다"고 재계를 향해 충고했다. (☞관련기사 : "'노동자의 마음'을 사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정관용 <프레시안>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 토론자로 나섰던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와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최 원장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관련기사 : "재계가 그렇게 자비로울까요?")
  
  이번 연속강연회는 오는 10월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3회 강연은 8월 22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발제로 진행된다. 토론자로는 정성진 경상대 교수와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나올 예정이다.
  
  다음은 이날 진행됐던 최영기 원장의 강연 및 토론 전문이다. <편집자>

  
  87년 이후 20년 평가에 IMF 이후 10년은 구분해야
  
  
▲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 ⓒ프레시안

  최영기
: 오늘 사회자도 한국 최고의 토론 사회자이고, 토론자들도 저보다 더 좋은 내용의 발제를 하실 수 있는 분이 나오셨다. 청중들 중에서도 제가 한 수 배워야 할 전문가들이 많이 있어서 조금 부담스럽다.
  
  87년 6월 항쟁 20년을 맞아 여러 방면에서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도 좋은 기획 사업을 벌이고 있고 학계에서도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대체로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의 평가는 소위 '잃어버린 10년'론에 대해 변명하는 듯한 입장이 있는 것 같다. 경제사회적 민주화의 미진함이 과제라는 비판에 대체로 공감한다.
  
  한편 보수진영입장에서는 "지난 20년이 너무 민주주의 과잉이 아니였냐"며 보수적인 수정, 즉 "지나친 민주화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반과 동력을 찾아야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노동 문제에 들어오면 이런 보수적인 비판은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 그야말로 요즘 어디 가서 노동운동을 옹호하면 거의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전사회적으로 한국 노사관계는 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20년 평가에서 지난 10년 간의 정치경제적 성격이 무엇이었는지이다. 20년 평가에서 '97년 이후 10년을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얘기할 때도 이 10년의 성격을 분명하게 규명하지 않으면 모든 부담을 민주화세력이 짊어지는 오류가 나올 수 있다.
  
  민주화는 1987년에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경제모델이 바뀐 것은 1997년 이후다. 그것도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제3자의 개입에 의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급진적인 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체제변화가 있었다. 박정희식 개발경제모델에서 개방적 시장경제 모델로 경제 운용체계가 바뀌는 이 시기를 소위 '민주 정부'들이 담당했다. 또 이 시기는 과거에 쌓여있던 부실과 군살을 떨어내는 체제전환의 '눈물의 계곡'을 통과하는 시기였다. 이 이행과정의 성격을 '신자유주의 개혁'이라고만 규정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성격이 좀더 복잡한 것 같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통상적으로는 복지국가에 대한 개혁정책이다. 즉 시장을 강화하여 복지국가의 성격을 탈색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주도의 개발모델을 시장경제 모델로 바꾸는 것이었다. 성격이 다른 체제변화였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10년을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의 노동운동, 내지는 노사관계의 변화 과정이 성공적이냐 아니냐의 평가는 IMF사태 이후 10년의 성격 규명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기억을 잠깐 되돌리는 의미에서 87년 이후의 과정을 5년 단위로 끊어 얘기해보자.
  
  87년 7ㆍ8월 노동자 대투쟁, 사업장의 민주화 과정이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시기는 노동자들이 자기식대로 해석한 '민주화'의 과정이었다. 6월 항쟁의 노동운동적 해석과 운용이 7~8월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이 느꼈던 독재는 사업장 내에서의 독재였다. 따라서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선(先)성장 후(後)분배'라는 분배에서의 억압을 노동조합의 건설을 통해 사업장 내에서 일거에 해소하고 민주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보면 정치 분야에서의 민주화가 산업, 노동 등으로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까지 작업장의 분위기는 일반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비민주적이었다. 병영적 통제가 만연했다. 당시에 노조의 요구 가운데 '두발자유화'와 같은 것이 들어있었던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출근할 때 사업장 정문에서 머리검사를 당하는 등 군대 못지않은 규율로 사업장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사업주를 협상 테이블에 앉혀 놓고 교섭을 하게 됐다는 것은 보통의 혁신이 아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기업이 망할 징조'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큰 사고의 전환과 기업 문화의 변화를 요구한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우리나라 기업 경영자들의 바꾸기 힘든 사고의 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노동자들의 과도한 행동이 있었다.
  
  당시 '노동해방' 등의 슬로건은 이런 사업장 내에서의 평등, 사업장 내에서의 노동해방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의 노동운동은 굉장히 힘이 좋았지만 그 때 노동자들은 그 좋은 힘을 가지고 자기들의 요구를 주로 사업장 내에서 관철하고자 했다. 주택 문제가 있으면 회사에 '사원주택을 지어내라, 무이자로 주택 구입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자녀의 교육 문제도 회사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의 모든 경제사회적 요구를 지역정부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개별 기업에게 요구하고 당장 관철시키고 그 성과를 눈 앞에서 확인하는 형태의 운동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성과를 보는 패턴으로 이뤄진 것이다.
  
  1989년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중요한 해다. 1989년 임금인상률이 기록적으로 높았다. 그런데 그 해 우리 경제는 삼저호황이 끝나고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져 위기라고들 했다. 그런데도 제조업 노동자들은 20%가 넘는 임금인상률을 얻어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과거로의 회귀'였다. 새롭게 진출한 노동운동을 인정하고 그들과의 타협을 통해 경제·경영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예전에 하던 대로 공권력을 불러내거나 임금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가 직접 임금 조정을 시도했다. 또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관련법에 대통령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과거의 법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개발경제모델식의 대응을 한 것이다. 그것이 '90년을 전후 한 전노협에 대한 탄압, 노동조합에 대해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의 대응방식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미 세력이 성장해 사업장에서 그 성과를 누리고 있던 조직노동자들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태의연한 수단으로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YS, 한달 만에 개정 노동법 폐기로 정부의 통치능력 상실 드러내
  
▲ ⓒ프레시안

  이런 대응방식이 다소 변화한 것이 1993년부터였다. 김영삼 정부는 우선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약속하고 임금가이드라인 정책을 폐기하고 임금 합의를 시도했다. 노사정 타협으로 임금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금도 안정시키고 작업장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진출한 민주노동 세력은 그 협상 테이블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었다. 정부도 그들과 마주 앉기에는 역시 준비가 덜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93-94 임금 합의는 민주노총 세력은 빠지고 한국노총과 경총이 마주 앉고 정부가 뒤에서 테이블 셋팅하고 조율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민주노동세력은 전노대라는 다른 결사체를 통해 민주노총으로 나가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이 세력들은 전노협 이후 쪼그라든 힘을 한국노총에 대한 공격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이 세력들은 한국노총 조직 탈퇴 운동을 벌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호응을 얻게 되면서, 한국노총도 1995년 더 이상 임금 합의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기업 경영자들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인사경영 등 새로운 경영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는 '회사 경영자들이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현장 권력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회사가 신경영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서 노조가 이것을 거부하고 깨는 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런 대립으로 인해 결국 기업수준에서도 노조와의 원만하고 안정적인 타협을 이루지 못했다.
  
  1996년에 이르러 노동법 개정으로 김영삼 정부는 다시 한 번 노사정 간 타협을 시도한다. 이 때는 과거의 임금 합의 때와는 달리 민주노총 세력을 직접 대화 테이블에 부르고 민주노총을 정치사회적, 법적으로 인정해줄 테니 노동시장 유연화 및 정리해고 유연화 제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당초 96년 노사개혁의 목표는 87년 이후 등장한 노동세력을 우리 정치경제의 실체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96년 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은 쏙 빠졌다. 그야말로 노동계의 비판대로 "공개적으로는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 밀실에서 복수노조 허용이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노동운동사 초유의 96-97 총파업을 불러왔다. 이 총파업에는 양대 노총이 다 참여했고 87년 이후 성장한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했으며 이런 흐름 속에 야당도 결국은 노동법 재개정 투쟁에 합류하게 된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한 달 만에 개정 노동법을 폐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 이것은 정부의 통치 능력 상실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997년 3월, 결국 노동법은 재개정됐다. 곧이어 한보사태, 기아사태가 벌어진다. 이것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과도 맞닿아 있다.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동인은 금융에서의 관리실패이지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통치능력, 정치경제 운용 능력의 실패로 인한 위기 초래의 측면이 있다. 조직노동은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과거처럼 행동하다가 조직적 저항에 부딪혔고 이것이 정부의 통치능력 상실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외국 금융기관에서 보더라도 '이 정부가 상당히 무능력하구나'라는 불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87년 이후 10년 동안 안정적인 대화와 타협의 질서 만들었더라면?
  
  만일 87년부터 97년까지 10년 동안, 개발모델에서 시장경제모델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에서 정부·기업·조직노동이 안정적인 대화와 타협의 질서를 형성해 경제를 조율하는 능력을 키웠더라면 노동법 파동이나 한보·기아 사태와 같은 위기 국면이 왔을 때 훨씬 능숙하게 국제시장의 신뢰를 받아가면서 관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만 타협의 모양새를 취했을 뿐, 실제로는 조직노동을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는 시도를 계속 하면서 갈등을 키워왔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97년 외환위기로 이어지게 됐다. 과거의 경제가 관치경제였다면 '협치'라는 시도를 하긴 했으나 그것이 제대로 된 진정한 '타협'이 되지 못해 거버넌스의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1997년 이후 거버넌스를 수리하는 작업을 우리가 자주적·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대신 IMF라는 제3자가 정책개혁 패키지를 들이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3자개입이 오히려 국내 재벌이든 조직노동이든 관료든 개혁에 저항하기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 IMF는 그야말로 순수한 개방적인 시장경제 모델의 거버넌스 체계로의 개혁을 요구했다.
  
  1998년 2월 6일 체결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은 우리나라 최초의 진정한 사회협약 합의서다. 이것은 야당과 민주노총이 제대로 들어 와서 잠정 합의서에 사인을 했고, 내용면에서도 90개 항목에 이르는 경제사회정책을 포괄하는 등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타협체제는 상당히 불안정했다. 관치경제에서 협치 구조로 가기에는 미흡한 구조였다. 2월 9일 치러진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에서 이 합의서가 승인을 받지 못했다. 민주적인 논의 절차를 막은 민주노총 내의 한 분파의 방해로 제대로 논의도 못해보고 승인이 안 됐다. 이 합의체제가 불안정했던 것은 합의서에 서명을 했는지 안 했는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합의의 성향, 그 이후 등장한 노사정위원회의 불안정한 운용은 1998년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의 성격과 속도 때문이었다.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장부는 좋아졌지만…
  
▲ ⓒ프레시안

  1998년 이후 벌어진 구조조정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 강화나 성장 잠재력의 확충과 같이 우리 경제의 혁신 능력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것은 재무중심, 단기수익 중심의 구조조정이었다. 당시 자기자본비율(BIS) 8%나 부채비율 200%와 같은 목표치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표를 드러내는 수치였다.
  
  그리고 그 성과는 상당히 좋았다. 대부분의 기업이 부실을 털어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지금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외국과 비교해 우리가 훨씬 낮다. 1996년에 대략 300% 정도였던 부채비율이 지금은 100% 남짓이다. 수익률도 상당히 높아졌다. 미국이나 일본에 견줘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재무건전성을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제조원가 중 인건비의 비율은 1995년에 12.6%였던 것이 2005년에 9.9%로 하락했다. 얼마 전 대한상의 통계로는 2006년 말 기준으로 매출 1000대 기업의 기업유보율이 616%였다. 364조 원의 잉여가 기업에 쌓여 있다. 이런 통계들로 보더라도 지난 10년 간 기업이 거둔 재무적인 성과는 굉장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도 굉장히 많다. 장부만으로 보면 남은 것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많다. 우선 노사관계만 보더라도 굉장히 불안정해졌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인구 1000명 당 근로손실일수에 대한 국제 통계를 보면 1995년부터 1996년, 1997년의 3년 동안 OECD 평균보다 적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불안정했다가 이것이 90년대 중반에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이것이 다시 급증한 것이 1998년 이후다. 이 시기 급진적인 재무중심, 비용절감 중심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노사관계가 다시 악화됐다. 그것이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포인트다.
  
  또 하나는 기업과 근로자가 맺고 있던 신뢰관계가 깨졌다. 과거에는 명시적으로 '너는 평생 고용이다, 정년까지 보장해준다'는 것은 없었지만 웬만한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그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때는 가족적인 기업 문화 등이 많이 강조됐었다. 그런데 1998년 이후로 '회사가 네 인생을 책임 못 진다', '네 몸값과 네 장래는 네가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 '해고가 자유로워야 고용이 쉽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런 것들이 단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인 성과에는 도움을 줬지만 기업이 가지고 있던 보이지 않는 로얄티, 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믿음이 땅에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손실은 상당하다. 최근에 기술유출과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지난 10년 간 우리가 깨뜨린 신뢰관계가 만들어낸 작은 부작용이다.
  
  또 원ㆍ하청 관계도 나빠졌다. 정례적인 단가 인하가 관행화되면서 중소기업도 장기적인 전망 속에 기술 개발 및 품질개선을 하기가 어렵고 원청과의 계약관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상황이 됐다. 노동조합도 1998년에 '회사가 매출이 떨어지고 수입이 나빠지니 고용을 조정하더라'는 경험을 한 이후 회사의 수익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즉시 배분하라고 나오게 됐다. 있을 때, 눈에 보일 때 받아내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기적인 임금 극대화 요구가 나온다.
  
  그리고 기업들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 아웃소싱 확대, 하청단가 인하, 단순직무에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 등을 거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기업의 양극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이 '성장 잠재력의 위기, 고용의 위기'라는 것
  
▲ ⓒ프레시안

  결국 모두가 자기 사업장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나름의 경제적 성과를 거뒀지만 이것이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꼭 좋은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 잠재력의 측면에서 잃은 것이 많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있던 인력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생산성이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생산성은 낮은데 인력이 모여드니 분배도 자연스럽게 악화되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은 주식시장의 눈치를 보면서 수익을 내기에 급급해 투자나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 노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양극화의 실제적인 모습은 중산층의 위축이다. 개인소득과 법인소득의 증가율을 분석한 것을 보면 80~90년대의 개인소득증가율은 GDP보다 나쁘지 않았다. 기업소득보다 개인소득이 빠르게 증가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서 기업 구조조정 이후 기업소득은 6년 간 연평균 증가율이 10.4%인데 개인소득증가율은 2.3%에 불과하다. 지난 10년 간 겪은 변화가 계급중립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의 이동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이 잠깐 거치고 가는 이례적인 것이라면 큰 걱정이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교정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성장 잠재력의 위기, 고용의 위기이기 때문에 걱정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노동문제의 성격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분규의 문제, 노사안정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가장 핵심적인 노동문제의 성격은 고용의 위기다. 그런데 이 고용의 위기는 노동조합만 정신 차린다고 해결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양적인 고용의 면에서 고용창출 능력의 위기, 일자리 없는 성장은 누누이 얘기하고 있는 문제다. 경제가 1% 성장할 때 늘어나는 고용자수가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1987년 이후 20년 간 대략적으로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일자리도 고급 일자리가 아니다. 비정규직 형태가 많다. 꼭 '좋은 일자리'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금융기관, 30대 재벌, 공공부문의 고용 규모가 과거 180만 정도였던 것이 120만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10년 간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아웃소싱이 이뤄지고 비정규직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것은 다 외주하청으로 돌리고 있다. 그것이 사업체의 수익 면에서만 보면 비용절감을 얻어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그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망의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다.
  
  고용 불안감의 확대는 몇몇 직종과 업종에 대한 과도한 수요로 나타나고 있다. 교사, 의사, 변호사, 공공부문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면서기나 해라'는 말이 상대방을 깔보고 놀리는 말이었다. 그런데 7월초 서울시의 7~9급 공무원 시험에 14만3000명이 응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공무원의 대표적인 장점은 고용안정이다.
  
  결국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단기적으로는 수익을 많이 내고 법인 소득이 증가했지만 이런 상태로 계속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 지속가능한 고용 시스템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다. 이것은 위기다. 각각의 기업은 다들 합리적인 경영을 한다고 하고 장부상으로도 좋고 주식가격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 생태계 전체, 국민경제의 측면에서는 현재가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파먹으면서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혁신의 터널'로 가야 한다
  
▲ ⓒ프레시안

  이제는 'IMF라는 경제의 위기', 즉 체제 전환기의 비정상적인 경제 심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지금쯤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5년, 10년을 위해 투자해야 할 것을 소흘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거버넌스 체계도 위기 경제 체제 때의 거버넌스가 아니라 안정적인 체제를 갖춰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고용을 위한 경제 주체들 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 자리에도 노동운동에 많은 애착을 가진 분들이 있겠지만 1987~1997년 까지 노동운동은 아주 역동적인 정치경제 변화의 주체였다. 그 역할을 충실히 잘 했고 성과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노동운동이 품고 있고 앞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 가운데는 미래의 정치경제 모델에 대한 특별한 디자인은 없는 것 같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이 가져 왔던 진보성과 역동성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뚜렷한 대안이 없고 조직노동도 자기 조합원, 자기 조직을 유지하기에 바쁜 듯 하다. 이것은 특정 지도자의 사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운동이 지향하는 시대정신, 운동성의 측면에서의 한계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치경제가 노동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앞으로도 노동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야말로 제대로 대면하게 됐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선진 경제로의 도약, 고용 위기의 해소'는 어려울 것이다.
  
  즉,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혁신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이제 우리 경제의 성장 방식은 혁신주도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새로운 블루오션, 금덩어리가 쏟아질 새로운 업종은 없다. 기존에 있는 업종 내에서, 기업 내에서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업그레이드'다.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 사람, 설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야말로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기술 혁신, 급진적인 혁명도 있을 수 있다. 또 이미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주요 업종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장 혁신'도 필요하다. 지난 10년 간 퇴적된 저생산성 문제, 즉 저숙련·저임금의 근로빈곤계층을 위한 일자리 혁신도 해야 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 세 분야에서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한다. 이제까지 많이 얘기해 왔던 노동시장 유연화나 노사협력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경우 그동안은 해고를 법적으로 유연하게 하는 것을 많이 말했는데 그보다는 작업장 내에서의 유연한 인력 배치를 위해 숙련을 높여주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 훈련 시스템을 통해 근로자의 숙련을 높여주려는 노력이 노동시장 유연화의 주요한 요소다.
  
  또 그동안은 고용 유연화만을 주로 얘기했는데, 이제는 임금의 경직성에 주목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대거 양산되는 문제와 아웃소싱의 확산도 경직적인 임금체계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기업으로서는 임금을 손대기가 어려우니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조합과 기업의 담합 심리도 있을 수 있다. 정규직들이 자기 임금과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직무를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고 일정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인적 자원의 업그레이드를 방해하는 것이다. 임금의 유연화대신 고용의 유연화를 선택하는 것은 성장잠재력의 측면에서도 장기적인 성장기반을 갉아먹는 행동이다. 오히려 안정된 고용 내에서 끊임없이 자기 직업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장 유연화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연공급이 아니라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 체계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고용과 임금이 안정적인 기반으로 전환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업장 내에서의 생산성 혁신 운동도 이뤄질 수 있다.
  
  재계가 변해야 모두가 산다
  
▲ ⓒ프레시안

  이것을 누가 주도할 것이냐. 누가 먼저 움직일 것이냐. 나는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는 재계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경제단체는 전통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단체였다. 관치경제 아래에서 경제단체의 첫 번째 기능은 정부에 줄을 대는 것이었다. 때로는 정부 정책을 기업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때로는 기업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했다. 즉, 주된 기능이 대(對)정부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관치경제가 아니라 시장 주도의 개방경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경제단체들은 자기들 회원사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회원사들이 노사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지 않았나. 숙련공은 부족하고 노동자들이 매번 집 지어달라, 장학금 대 달라고 요구해 노동비용이 그렇게 비싸졌다면 경제단체가 정부에 나서서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 '탁아비, 주택비 낮춰주지 않으면 고용을 늘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경제단체의 1차 기능이 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노사관계를 보면 재계가 내놓은 것이 거의 없었다. 노사가 어떤 문제에 대해 타협했을 때 재계의 양보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재계의 요구란 것이 항상 '법과 원칙' 혹은 '공권력의 엄정함'에 대한 요구뿐이다.
  
  1987년 이전까지는 노무 관리 자체를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컸다. 하지만 1987년 이후에도 자기 사업장 내에서만 머물 뿐, 지역·업종·전국 차원으로 오면 경제단체는 쑥맥이다. 노동계 역시 기업별 노조의 한계 때문에 내셔널센터의 재정이나 인력, 정책 능력이 형편없지만 경제단체의 그것은 더욱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러면서 이 부분의 공백을 다 정부가 메꿔주길 바란다.
  
  그리고 요즘에는 재계의 '탓'이 하나 더 늘었다. 산별노조는 안 된다, 산별교섭은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는 경제단체들이 지역·업종 부분에서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들이 대처할 수가 없으니 '그건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장 잠재력의 확충, 경제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노동운동이 주도할 수 없다. 누가 해야 할 것인가. 재계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10년 간 가지고 있던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IMF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재무 중심 기업 경영 전략에서 사람 중심의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기업가 정신, 새로운 세대에 의한 경영 혁신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제2 세대 형 기업가 정신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노사관계가 그렇게 낙후돼 있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어렵게 한다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자기 사업장에서 쓰는 노사관계 안정 비용을 지역과 업종 차원에서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으로 확대 투자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기본 인프라와 사회적 자본의 향상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각급 노동단체를 상대로 한 재계의 적극적인 대화 공세도 그런 측면에서 필요하다. 정부가 공권력을 앞세워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패턴으로는 '조용한 노사관계'는 가능할지 모르나 적극적인 파트너십, 동반자로서의 노동조합을 만들기는 어렵다.
  
  정책 개발 면에서도 노사가 함께 공동으로 정책 연구도 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에 정책 개선을 요구할 수 있지 않나. 경제단체가 매번 하는 '노조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긴급 성명'은 전혀 실익이 없다. 오로지 회원사의 기분만 좋게 해줄 뿐이다. 이 문제는 사실 어찌 보면 경제단체의 재정적인 안정성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경제단체가 회원사들로부터 들어오는 회비에 급급하다 보니 회원사가 기분 좋아할만한 얘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노사 불안 요인이 만들어질 때 회비가 확 들어오기도 한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토대로 경제단체들이 회원사의 직접 견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전체 업종, 국민경제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관용 : 민주노총 관계자가 오늘 발제를 들으면 상당히 논쟁적인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원래 강연은 노동 분야에 대한 것이었지만 오늘 최영기 원장은 우리의 고용 환경 전반에 대해, 노사정의 관계 그리고 1997년 이후 외부 요인까지 다 포함해 분석하고 대안도 내 놓았다. 재계를 향해서 강한 질책과 주문을 했지만 그 바탕에는 지난 10년 간 노동운동이 이제는 무엇인가를 제시할 힘도 없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것 같아서 양자 모두에게 비판적인 언급을 한 셈이다.
  
  최영기 원장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경제학과 출신의 미국 박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그런데 최 원장은 미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논문을 썼고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이제 듣게 될 두 분의 교수들은 사회학을 전공했고 국내파들이다. 국내파 사회학자들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또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어떤 새로운 관점에서 토론을 할지 기대된다. 먼저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의 토론부터 들어보자.

  
  87년 노동체제가 오늘 노동문제의 부분적 원인
  
  
▲ 정이환 교수. ⓒ프레시안

  정이환
: 사회자가 재밌는 토론을 해달라면서 사회학 얘기를 했지만 최영기 원장에게는 안 통한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너무 사회학자 같아서 사회학자들이 할 얘기까지 다 빼앗아 가신다. 또 국내파 사회학자들의 강점이라고 하면 소위 '비판적이다'라는 것인데 발제에서도 보셨듯이 최 원장은 재계나 정부를 비판하는 데 있어 국내파 사회학자들보다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경우가 많다.
  
  강연 내용에는 큰 이견이 없다. 최 원장 강연을 보충하고 좀 더 분명히 한다는 의미에서 몇 가지 얘기하려 한다. 오늘 주제가 87년 이후 20년을 돌아보는 것이고 지속가능한 고용 시스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노동에서도 87년 체제가 있다. 과연 오늘의 현실과 87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IMF 이후에 87년 노동체제는 거의 무화됐다는 의견이 첫 번째다. 또 하나는 87년 노동체제가 나름대로 계속 살아 있고 그것이 오늘 노동문제의 부분적인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 가운데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87년 체제를 비판하게 되면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조금 더 나가면 "IMF 사태가 87년 노동체제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보수적'인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또 87년 노동체제가 IMF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가 된다.
  
  반면 좀 약한 주장도 있다. 87년 노동체제가 그 때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 경제 민주화의 일부분이었고 그것이 또 나름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해나가면서 발전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 체제 자체는 당시 상황에서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IMF라는 급변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입장이다. 나는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과연 '87년 노동체제'란 무엇인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그것은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보자면 87년 노동체제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여러 비판을 받고 있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더 극심한 노동탄압이 있었다. 따라서 87년 노동체제는 그 성격상 노동운동의 '책임론'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반면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87년 노동체제를 계기로 기업 내부노동과 외부노동의 분절이 생겼다. 바로 이 지점에서 87년 노동체제가 IMF 이후의 상황을 더 악화시킨 부작용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노동운동보다는 국가 정책과 사용자의 대응에 더 많은 책임이 있지만 그 당시 노동체제의 유산이 지금 고용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면에서도 물론 정부나 재계가 주도해야 하는 것이지만 노동운동도 '우리 책임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변해야 한다'지만 노사 당사자가 필요성 못 느끼면 그저 '아름다운 얘기'
  
  두 번째로, '왜 외환위기 이전에 87년 노동체제의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당시에만 하더라도 행위주체가 노동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주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그런 지적이 나왔을 뿐이었다. 연구자들은 민주적·생산적·인간적인 노사관계를 제안했지만 주체였던 노사 모두에게 실천적인 힘이 없었다.
  
▲ ⓒ프레시안

  그 당시 TV 토론에서 본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떤 쟁점과 관련해 노사 대표들이 나오고 노동연구원의 연구원이 한 명 나왔었다. 그 연구원이 "지속가능한 노동체제를 위해 사용자는 숙련에 투자하고 노동조합은 유연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그 말을 듣던 사용자측에서 "아름다운 얘깁니다"라고 말하더라. 나도 딱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노사 당사자들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한국이 운이 없었던 것도 있다. 87년 이후 외환위기까지가 꼭 10년이다. 그런데 그 10년은 그동안 워낙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한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체제 정합적인 노사관계가 정립되는 데 10년은 너무 짧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운이 없다. 하지만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전면적인 개혁'이 가능한 조건도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떨까? 개혁의 가능성이 높아졌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 절실한 필요성에는 100% 동의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현가능한가의 지점에서는 반쯤은 회의적이다. 왜냐면 핵심 행위자인 노사가 아직도 87년 노동체제의 유산에 기대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아직도 기존 체제를 개혁하기보다는 기존 체제에 더 매달리면서 기업 내부 노동시장에 기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복지의 부재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도 있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수량적 유연성의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자본주의 성격의 변화와 경제체제의 변화가 오히려 기업을 단기적 시야에 갇히게 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는데, 그런 진단이 옳다면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오늘 토론회와 같은 사회적 압력이 더 필요하다.
  
  지난 10년은 노동조합도 사용자도 각각 자신들의 추구하던 전략이 이제는 잘 안 된다는 것을 학습한 시기였다. 사용자는 미국식 고용제도 도입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 투쟁도 '외주하청화'가 쉽게 사용자 의도대로 안 된다는 것을 학습시켜 주고 있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최근 산별노조들이 산업 전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과연 재계의 변화만으로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노동시장 체제 개혁을 얘기할 때,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겠다. 최 원장의 발제에 대략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다양한 견해가 있다. 특히 고용 문제에서 87년 노동체제의 유산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얘기가 나온다. 하나는,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좋은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절된 노동시장, 이중 노동시장 구조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불평등과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사회제도와 매커니즘이 전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견해이다.
  
  이 가운데 무엇이 더 문제냐가 논의돼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지향하는 노동시장체제가 일본식인지 유럽식인지의 문제와 연관이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식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 비해 이중노동시장의 불평등을 보완하는 기제가 훨씬 더 잘 발전돼 있긴 하지만, 두 가지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어찌 보면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에서는 일본식을 지향하는 것이 더 쉽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의미다. 제조업에서도 자동차를 제외하면 노사협조가 잘 되는 편이고 경쟁력도 강한 상황이니 그렇다. 만약 유럽식을 지향한다면, 즉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는 훨씬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양극화와 비정규 문제는 이런 방향으로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보다 큰 이런 개혁은 최영기 원장이 강조한 노사타협이나 숙련화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사회적 수준에서의 노동시장이 구축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노동시장 전체가 사회적 제도에 의해 전체적으로 규율되는 체제를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경쟁력'의 관점보다는 노동시장을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강한 제도와 강력한 복지제도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노동체제의 개혁은 단지 노사의 전략 변화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의 측면에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관용 : 정이환 교수가 말한 세 가지 가운데 세 번째는 우리에게 맞는 노동시장 모델과 그런 방향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두 번째 내용은 노동시장 개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얘기였다. 첫 번째의 얘기는 IMF 체제의 원인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정리하자. 다음으로 노중기 교수의 토론을 들어보자.
  
  국가 책임 지적하지 않으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 노중기 교수. ⓒ프레시안

  노중기
: 최 원장이 너무 방대한 내용의 발제를 했고 구성 또한 매끄러워서 무슨 얘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정이환 교수가 대체로 보완하는 토론을 한 만큼 나는 다른 관점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20년 간의 노동체제 문제를 정리할 때 누구의 입장에서 다루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최영기 원장은 어떤 입장에서 정리한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최 원장은 정부출연기관의 원장이기도 하고 내용상으로도 정부의 입장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같은 20년을 노동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
  
  우선 정부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국가나 정부가 어떤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표면적인 입장은 단일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의견들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한다. 일반적으로 크게 나눠 보면 정부 내에서도 경제관련 부서나 치안 부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반대로 노동관련 부서나 청와대의 개혁을 주도하는 부처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다.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같은 상반된 의견을 '보수국가'와 '개혁국가'라고 한다면 최 원장의 입장은 '개혁국가'의 입장인 것 같다.
  
  강연 내용이 전체적으로 국가에 관한 부분이 상당히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사관계든, 노동시장이든, 노동정치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주체가 국가다. 직접적인 사안에서는 특히 그렇다. 또 노사가 서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양보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국가다. 그런데 지난 20년에 대한 분석에서 이 중요한 주체가 빠져있는 것이다.
  
  좀 더 세게 말하면, 노동의 입장에서 이 발제문을 볼 때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첫 느낌이 그랬다는 얘기다. 정이환 교수도 방금 토론에서 10여 년 전 노동연구원 관계자가 한 토론에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지난 세월 동안 과연 얼마나 현실화됐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랜드 사태도 그렇고 금속노조의 파업 때도 그렇다. 1987년 전후에 군사정권이 정책을 실행했던 방식 그대로 노동쟁의를 진압하고 있지 않나?
  
  최근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관련된 책이 한 권 나왔다. 그 책을 보니 당시 한신대 출신의 어떤 위장취업자가 구속됐을 때 최후 변론을 한 사람이 이상수 현 노동부 장관이었다. 그 때 아주 감동적인 변론을 했다고 하더라. 또 그 구로동맹파업의 여파로 당시 통일중공업 위원장이 공안기관의 수사를 받고 구속됐을 때 변론을 맡았던 사람이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 분들이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나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20년이 지난 지금 금속노조의 파업과 이랜드노조의 파업에 대해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최 원장이 제시한 안들이 얼마나 현실 가능한 말일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노동조합에 대해 이런 저런 주문을 하기 전에 같은 국가 기구 내부의 극단적인 수구세력들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닐까. 정이환 교수가 얘기한 '87년체제의 유제(遺制)'의 힘이 지난 10년 동안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는데 내용은 후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도 후퇴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호시절을 보낸 재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나?
  
  두 번째로, 최 원장이 대안으로 제시한 주장, 즉 '재계가 대화를 공세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발제문의 심각한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최 원장이 언급한 큰 틀의 '새로운 고용시스템', 즉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고용체제'라는 얘기는 처음 나온 주장은 아니다. 크게 봤을 때 이미 4년 반 전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대선공약으로 제출했던 얘기고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실제 노동 태스크포스(TF)팀을 청와대에 꾸려 추진했던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 다르긴 하다. 당시 새로운 노동체제의 명칭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였다.
  
▲ ⓒ프레시안

  하지만 대통령의 힘으로 추진했던 그 정책은 그해 여름 화물파업과 철도파업 두 사건을 넘지 못하고 그만 붕괴해 버렸다. 그 일을 추진하면서 기본 프레임을 짰던 TFT 팀장은 이상한 이유로 쫓겨났다. 그 이후로 노동쟁의만 발생하면 바로 공권력이 나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그대로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용자만 생각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관념적인 사고다.
  
  또 최 원장은 "재계가 문제"라면서 "지난 20년 간 재계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이제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재계라면 점점 더 그럴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본다. 재계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호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엄청난 호황이며 막대한 규모의 이윤을 가져가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문제가 터지더라도 그때그때 공권력 투입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과거보다 정부에 대한 권력도 막대해졌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전두환 정부 때보다 더 커졌다. 대통령도 당당하게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밝히고 나선 마당 아닌가. 각종 사회영향력 조사에서 재계의 1, 2, 3위 기업들이 죽 줄을 선다.
  
  그런 점에서 재계가 주도하는 대타협은 매우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그렇게 바뀌는 것보다는 이랜드 사태처럼 전국적으로 사업장을 점거하고 불법으로 잡혀가는 것이 재계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지름길 아닐까. 과거의 경험에서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 보면 '새로운 모델'이라고 할 때, 그 모델 자체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파업한다고 형사 처벌하면서 노동권을 짓밟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바뀌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국가가 법률 집행으로 노동권을 침해하는 상황에서 누가 계약의 이행이라는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따라서 노조나 사용자 이전에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국가다. 노무현 정부만 하더라도 소소한 사안에서는 재계와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안들은 다 재계와 정확히 같은 길을 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일방적 입법조치와 쟁의 파괴 등 노동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 그랬다.
  
  지난해 노사정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도 마찬가지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약속했다가 밀실에서 폐기해버려 총파업까지 불러 왔던 그 때와 무엇이 다른가. 가장 핵심적인 복수노조 허용은 쏙 빼고 공익사업장에 직권중재를 없앤다는 빌미로 정상적인 파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비정규직법도 그렇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면서 노사정위원회에서 수년 동안 토론하고 법을 만들었다. 민주노총이 '그 정도 법으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없다'고 싸웠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고 했는데도 밀어붙였다. 그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이것이 대화와 타협의 실상이다. 이런 복합적인 사정을 바꾸지 않고서 다시 대화와 타협을 얘기하는 것은 관념론에 머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최 원장과 나는 1987년 이후의 해석에 있어서도 여러 차이점이 있다. 87년 이후 노동자가 '과격했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 그랬다고 보지 않는다. 국가의 이데올로기 선전에 의해 그렇게 각색된 측면이 크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저 호황 때 연 12% 이상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노동자들의 몫은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렀다. 또 노동자들이 너무 지나친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1989년의 임금인상률은 분출하는 노동조합의 기본권 요구가 작업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가로막았던 반민주적 국가행정에도 한 원인이 있다.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 요구가 사업장 내의 임금요구로 전치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1993~1994년의 '노경총 임금 합의'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그건 합의가 아니었다. 국가가 한국노총을 들러리로 세워 임금 가이드라인을 더 예쁘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오랫동안 한국노총에 소속돼 있던 사업장의 노동조합이 대거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가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합의냐, 유인된 강제냐는 물론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당시 상황은 억압된 정책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최 원장은 "1998년 2월 6일의 합의도 상당한 의의가 있었지만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나는 생각이 다르다. 1998년 합의에서 국가가 담당하기로 했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모두 방기했다. 합의 직후 2월 14일 국가와 자본이 요구했던 정리해고 법안과 파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요구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못한 것이 수두룩하다. 구조조정 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문제,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권 보장도 안 지켜졌다. 유일하게 이뤄진 것이 교원노조의 합법화다. 그런데 그것도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 겨울 12월 말에 보름 동안이나 노숙농성을 해서 1년 만에 겨우 이뤄졌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최 원장이 얘기한 큰 그림이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라는 데는 특별한 이견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행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할 점이 많은 듯하다.
  
  정관용 : 노중기 교수가 정부나 국가에 대한 주문이 들어가야 하지 않냐는 지적을 했다. 재계가 과연 하겠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덧붙여서 내가 몇 가지 질문을 추가해보자면, 최근 보이고 있는 한국노총의 '변화'에 대해서도 최 원장의 의견을 좀 듣고 싶다. 기존의 노선일 수도 있지만 한국노총이 최근 새로운 움직임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의 두 토론자의 내용에 대해 최 원장의 답변을 들어보자.
  
  "국가는 20년 간 그대로"라는 주장은 "노동운동은 20년 간 계속 실패했다"는 말
  
  
▲ ⓒ프레시안

  최영기
: 노중기 교수와는 각종 토론회에서 여러 차례 부딪혔는데 그때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우선 노 교수는 국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고 계속 탄압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노동운동은 지난 20년 간 계속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노동운동이 목표로 했던 것들이 국가의 탄압과 재계의 버티기로 결국 실현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되면 "지난 20년 간 노동운동은 과연 무엇을 했나"와 같은 회의가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정책은 그동안 계속 바뀌어 왔다. 1993~1994년의 임금 합의는 직접적인 임금 개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할 수 없었기에 나온 것이다. 노동운동이 만만하게 보였다면 그냥 가이드라인으로 강요하면 그만인 것이다.
  
  최소한 1987년부터 1997년까지의 노동운동은 성공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사업장 내에서 모두 관철시켰다. 당시 그들이 원하던 것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here and now)'였다. 그런 욕구가 상당히 관철됐고 그것이 한국의 정치경제를 발전시켰다. 과거처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노골적인 탄압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운동과 변화를 살펴볼 때는 세밀하게 봐야 한다. 그래야 다음의 전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랜드 사태를 놓고 보자. 어떤 시각으로는 1989년 대우조선에서 있었던 공권력 투입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종합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혹자들은 참여정부 하에서 구속자가 연평균 1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노태우 정권 때는 1700명이었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도 600명~900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나는 이 구속의 내용이 다르다고 본다. 법에 대한 정당성이 20년 전, 10년 전과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최소한 노동법만 하더라도 상당히 민주적인 방향으로 계속 개정이 돼 왔다. 그것이 또한 노동운동의 힘이자 성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구속'을 노동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양심, 사상을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금은 자기 조직의 보호와 조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다가 범법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들으면 기분 나쁠 얘기겠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정치사회적 지지도 예전과 같지 않다. 대중투쟁의 능력도 약화됐다. 그것 또한 노동운동의 성공의 결과일 수 있다. 예전처럼 도덕적인 지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체제 변화도 좀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 국가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혁을 이뤄내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1997년 이후 경제 운용체제의 변화방향은 시장주도 경제다. 노 교수 표현대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물론 모두 다 넘어간 것은 아니다. 정부가 나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히려 재계가 정치경제의 공동 운용자로서 이니셔티브를 적극적으로 취할 때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노동운동이 재계를 압박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 힘 좋던 1987년에도 못했던 일이다. 그동안 여러 상황에서 노동계가 늘 어려웠던 것은 정부, 국가의 문제도 있지만 재계의 비타협적인 자세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5년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재계가 우선 조직노동을 인정하고 화해하고 타협하려는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 ⓒ프레시안

  정부가 가진 거시 경제적인 수단은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사회정책 분야에서의 수단이 몇 가지 남아 있다. 연기금운용관련 정책수단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단기수익에 시달리는 경영자들의 어려움을 덜어 줄 수 있다. 예컨대 보다 안정된 투자, 인내할 수 있는 투자로 자본을 이끌 수 있는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개혁 정부가 들어서서 단 칼에 단기 투기성 자본을 정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사회자가 언급한 한국노총의 변신은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 상황을 예민하게 읽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노총은 물론 기본적으로 대중투쟁으로 성장한 조직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정치변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한국노총은 사실 정부에 댈 수 있는 줄이 없었다. 인수위에 들어가 있던 한국노총 간부가 며칠 만에 쫓겨났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온 정부를 '휘젓고' 다닌다. 이런 것은 대중투쟁의 시대가 어느 정도 한계에 오고 유니온 폴리틱스(노동조합의 정치)의 시대로 전환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노총은 그런 시대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활용하고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재계 책임론'이 아니라 '재계 역할론'이다. 내 기업과 내 업종, 국민 경제의 장래를 위해 사람에 사회적 자본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지속가능한 경영이다. 새로운 철학과 가치를 통해 경영 혁신 운동의 차원에서 노사관계 변화와 혁신을 이루자는 것이다. 우리경제의 발전단계로 봐서 재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단계가 됐다.
  
  정이환 교수가 언급한 내부노동시장 유연화의 길은 나 역시 주류는 그렇게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대량실업 사태를 겪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외부 노동시장도 그 규모 면에서 상당 부문 커졌다. 또 앞으로 더욱 커질 수도 있다. 노동력의 고령화나 고용 형태의 다양화의 측면으로 볼 때도 그렇다. 아웃소싱이 대폭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기업 중심 노동시장의 비중도 줄어들었다.
  
  "투쟁해야 얻을 수 있다"는 노동운동, 정부가 버릇 들인 것
  
  정관용 : 최 원장의 답변은 노중기 교수의 지적에 대한 것과 동시에 정이환 교수의 토론에 대한 대답도 되는 것 같다. 이제 마이크를 청중들에게 돌려 보겠다.
  
  청중 1 : 아무리 노사관계가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노사관계를 좀 더 발전적으로 풀어갈 타이밍을 항상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공무원 기본권도 상당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난 다음에야 일정 부분 보장하게 되지 않았나. 또 정이환 교수의 말대로 기업별 노조가 1987년 체제 이후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면 그런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산별노조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별교섭의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지 않나. 복수노조 허용에 있어서도 언제부터인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묶여 버렸는데 그것을 핑계로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최영기 :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운 것이 바로 그런 지점이다.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노동법 개정 과정이 질금질금 이뤄졌다. 1989년에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정부가 비토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 민주화는 다 이뤄졌는데 노동법 민주화는 밀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것이 1996년이다. 그 때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의 방식으로 민주노총을 인정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밀실에서 3년 유예를 했다. 민주화 후 10년이 지나고 나서도 새롭게 진출한 조직노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 다시 노동법 총파업을 겪고 나서야 법개정을 통해 인정을 받았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대중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해야지만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도 민주정부에서 말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쉬울 때', 예를 들어 정리해고제가 들어올 때, 임금 안정 요구가 있을 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이 필요할 때 등에서 단결권 보장해주고, 교원노조를 허용하고 했다.
  
  노동운동 뿐 아니라 다른 이익단체들에게도 정부는 늘 그랬다. 테이블에서 조용히 말하면 안 바뀐다는 인식이 있다. 버릇이 그렇게 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조직노동의 운동 패턴을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다.
  
  산별노조에 대한 정부의 지원 문제는 법적인 지원 말고도 가능한 방법이 많다. 지역, 업종 차원에서 주요 정보를 공유하는 길도 있다. 또 지금 한국노총이 주도하고 있는 노사발전재단과 같이 노동시장정책기구 등에서 운영하는 각종 정부 사업을 위탁해 함으로써 산별노조를 안정시켜주는 길도 있다. 또 대화테이블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적어도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현 정부가 산별노조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감에서는 최소한 벗어났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수준으로는 바라보고 있다고 본다. 좀 더 세월이 지나가고 지역 업종 단위 노조의 역할이 강화되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재계가 그렇게 자비로울까?"
  
  
▲ ⓒ프레시안

  청중 2
: 대타협으로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장에서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 빠르겠다는 것이 우리 노동자의 심정이다. 현장은 투쟁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현재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수년 전보다 더 두드러지게 커졌고 일자리는 점점 비정규 파트타임과 같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전락해가고 있다.
  
  꼭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는 투쟁뿐 아니라 생활 현장 자체가 투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 할 일 없이 소주나 들이키고 공원을 배회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것이 다 투쟁 아니냐. 치솟는 사교육비, 의료비는 또 어떤가. 서민은 도저히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그런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고용시스템'을 위해 재계가 나서라는 것이 잘 납득이 안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재계가 주도해 온 국가 아니었나?
  
  두 번째 질문은 노무현 정부 들어 연평균 150여 명의 구속자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과거의 구속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똑같다고 본다. 다만 법개정을 통해 아주 교묘하게 범법자를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파업권을 제약하고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토록 해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를 빼앗아갔다. 무장해제시켜 버린 것이다. 따라서 현행법에서는 파업만 해도 범법자가 된다. 그런 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노총의 변신이라고 말했지만 '변신'이 아니라 그 본질이 다시 드러난 것일 뿐이다. 한 때는 양대 노총의 통합 얘기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으로 가까운 듯 보였던 것일 뿐 아닌가.
  
  
청중 3 : 강남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사교육의 최전선에 있다. 최 원장의 얘기를 듣다 보면 '자비로운 자본가'가 한국에 상당히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사회에서 왜 이렇게 무자비한 노동자가 많은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학원 원장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왜 강사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겠는가? 그런 면에서 어떻게 하면 재계의 그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묻고 싶다.
  
  두 번째로 노중기 교수에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지난 20년 간 한국의 노동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절차나 형식도 악화됐다고 말했는데 앞으로도 이랜드 사태와 같은 갈등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면 형식적 민주주의가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관용 : 질문에 조금 살을 붙여보겠다.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도 바꾸기 어려웠던 재계였다. 최 원장은 재계가 경영 혁신 차원에서도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할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 같다. 노중기 교수도 "지난 10년이 너무 좋았던만큼 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 추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우선 노중기 교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들어보고 최 원장의 답변을 들어보자.
  
  
노중기 : 20년 전에 군부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 노동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했다면, 지금은 그 때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일반 형사법으로 노동자를 처벌하고 있다. 그 20년 동안 수 천 명의 노동자들이 감옥에 갔고 최소한으로도 수십 명이 죽어가면서 싸웠다. 그것이 모두 의미가 없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지난 20년의 투쟁을 통해 지금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여전히 공격받고 있긴 하다. 귀족노동자라고, 철 밥그릇이라고 공격은 받지만 1987년 이전처럼 하급 관리자들이 노동자를 직접 폭행하고 욕설을 퍼붓는 일은 사라졌다. 그만큼 바뀐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도 엄청난 진전이다. 과거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과 착취의 주요 대상이었고 그 수도 결코 작지 않았으나 사회적 문제로 의식되지도 못했다. 비정규직의 비인간적 현실이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운동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즉 이만큼 사회문제가 된 것은 그만큼 사회가 발전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기미가 있다는 말이었지,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에서는 명백히 후퇴하는 요소가 있다. 법을 매개로 오히려 권리를 제약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제3세계 국가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제도적·절차적 민주화가 안정화됐다. 그 과정에서 제일 힘을 많이 쓴 세력이 노동이다. 3당 합당을 제일 반대한 것이 전노협과 노동운동이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발생한 쟁의행위의 70%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물론 다 불법이지만 차별과 착취를 개선하고 악법을 철폐하는 등 사회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는 의미를 갖는 투쟁들이었다. 노동자의 투쟁은 직접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의 권리를 확대시키지만 전사회적으로 보면 여타 부문의 정치적 권리를 방어해주는 측면이 있다. 노동운동과 노조가 무너지면 곧바로 시민운동이 상당 부문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 운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노총, 노동조합의 정치에 능하다
  
  
▲ ⓒ프레시안

  최영기
: 한국노총에 대한 것부터 답변하겠다. '변신'이냐 '실체를 드러낸 것'이냐는 표현상의 문제다. 한국노총이 노동조합의 정치에 능한 것만은 사실이다. 개방적인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는 정치사회적 지지를 바탕으로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것도 큰 힘이다. 이랜드 파업에 대해 한국노총이 성명을 냈다. 비정규직법 정신을 악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규탄과 이번 일의 결론이 비정규직법 시행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 사태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한국노총이 이랜드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여는 것 못지않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힘은 다양하게 나온다. 또 시대마다 다르다. 구속자 문제에서도 과거의 구속자와 지금은 다르다. 과거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규율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국가를 상대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야말로 시장규율이 지배하는 시대다. 시장규율이 정부나 경영자, 노동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적응해 나가는 속도와 그 속에서 플레이하는 능력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규율과 법률 시스템 아래에서 어떤 식으로 대중 운동이 자기 요구를 관철하느냐의 새로운 테크닉이 요구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20년 전의 구속자와 지금의 구속은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플로어에서 나온 세 번째 질문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비로운 자본가가 어디있냐고 물었는데 나 역시 없다고 본다. 빌 게이츠 정도면 '자비로운 자본가'로 볼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자비로운 자본가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계몽적인 의미에서의 경영혁신 운동은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기업 경영자들도 내몰리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주식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지속가능하기가 힘들다. 또 소비자들의 기호도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랜드와 같이 노골적으로 비정규직을 탄압하면서 장사를 한다고 하면 까다로운 주부들은 이랜드 상품을 사는 것을 불편해하는 수준까지 왔다. 소비자들도 이제는 자기 직원들과 잘 지내고, 국민경제에도 이바지하는 기업을 좋아한다.
  
  노동운동도 그런 흐름의 변화를 잘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점에 착안해서 자본을 압박해야 한다. 소비자 운동이나 다른 지역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이 지지할 수 있는 논리와 가치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급하게 다가서면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또 너무 많이 듣는 얘기다보니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청중 가운데 "투쟁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 일반적인 진리다. 한 분이 지적한 대로 머리띠 두른 대중 투쟁만이 투쟁은 아니다. 술 마시는 것과 같은 자기 파괴 행위도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노숙자가 되거나 주부들의 출산 파업, 자살과 같은 행위도 마찬가지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지난 15년 간 주부들은 누구 눈에도 띄지 않게 엄청나게 성공적인 파업을 한 것이다.
  
  전근대적이고 낙후한 자본가 말고 계몽적인 자본가가 필요하다
  
▲ ⓒ프레시안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적어도 우리나라 정치경제에 대해 책임 있는 주체라고 한다면, 정부든 재계든 조직노동의 대표이든 그 변화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재계의 계몽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도요타의 회장이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전경련과 경총의 통합회장쯤 되는 요쿠다 히로시가 1999년 <문예춘추>에 기고를 했다. 당시 일본에서도 한창 '시장개혁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했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경영학자들이 "일본의 고용 시스템은 낙후된 것이니 하루 빨리 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글에서 "고용을 조정하려는 경영자들이 먼저 할복해야 한다"고 썼었다.
  
  그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일본 기업이 전후에 미국 기업을 이길 수 있었던 근거는 평생 고용과 좋은 노사관계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버리고 기업의 수익을 위해 다급하게 고용을 조정하면 장기 고용의 관행이 깨지고 노사관계도 덩달아 악화된다. 장기고용을 유지하다 보면 기업은 상당한 교육과 훈련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게 되고, 노조도 장기적인 비전에서 노사협력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요타의 노조가 회사에 협조한다는 것만 부러워하지, 도요타 회장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얘기를 안 한다.
  
  이 사례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얘기가 있다. 지난 2003년에 우리나라에 가장 대표적인 경제단체의 회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1998년 이후 우리 그룹사에서 정규직을 한 번도 채용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인건비도 반이고 고용조정도 쉽다. 그런데 누가 정규직을 쓰겠느냐.'
  
  이 인터뷰는 우리 기업들이 이런 행동이 자기가 속한 기업 생태계의 사회적 자본을 얼마나 파괴하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 자체는 맞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남기고 결국은 '투쟁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행동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근대적이고 낙후한 자본가와 계몽적인 자본가의 근본적인 차이다.
  
  정관용 : 모든 사회이론이 전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어떤 것에도 일사분란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자본도 마찬가지다. 오늘 발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논쟁의 핵심을 짚어 하나의 모델로 그려낸 것이었다.
  
  경영계에 대한 비판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재밌는 것은 노동운동을 가장 치열하게 비판하는 보수 언론들이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경영혁신에 대한 트렌드를 앞 다퉈 보도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주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강조하는 것이다.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토론이 오늘도 많이 나왔다. 아직은 고민할 지점이 많은 것 같다. 긴 시간 말씀해주신 최영기 원장과 두 분 토론자에게 감사한다.
   
 
  정리=여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