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기고

채널만호 2008. 6. 6. 21:49

 

0. 촛불 혁명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2가지 편향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의 혁명은 극좌, 극우, 극렬의 의미로 부정적입니다. 비정치적인 의미인의 혁명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IT 혁명'만 보더라도 대부분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촛불 집회를 축제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유스럽고, 자유롭게 주장을 펼 수 있고, 평소에 다닐 수 없는 대로를 활보할 수 있어서 그렇다면 실망입니다. 축제의 끝은 항상 허망합니다. 잔치나 축제를 할 때가 이제 아닙니다. 최근 10년 동안 평화적인 혁명들이 등장했습니다. 튤립, 오렌지, 장미, 불도져.. 우리라고 촛불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하란 법은 없습니다.

광우병 사태가 '쇠고기 혁명'으로 가는가? 고승우 논설실장.  
2008-05-27 12:02:3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746

 20세기 후반이후 발생한 혁명은 독특해서 색깔 혁명(colour revolutions) 또는 꽃 혁명(flower revolutions)으로 불린다. 중부 및 동부 유럽,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발생한 일련의 혁명적 상황에서 특별한 색깔이나 꽃이 시민 봉기의 상징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색깔, 꽃 혁명에 참가한 시민들은 독재 또는 부패 정권에 대해 항거할 때 비폭력적이었고 민주주의와 국가 독립을 적극 지지했다. 이런 사회운동의 참가자는 주로 NGO, 또는 학생들이었다. 이들 혁명은 부정 선거 등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폭발했으며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공화국 등에서 독재자 축출로 이어졌다. 지난 수년 간 발생한 혁명 사례는 다음과 같다.

튤립(핑크)혁명 - 2005년 3월13일 키르키즈스탄에서 시민들의 무혈혁명이 성공, 아스카 아카야브 대통령을 축출했다. 키르키즈스탄 시민들은 그해 2월 치른 의회선거 이후 아카야브 대통령을 부정, 부패와 독재자로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국적으로 벌였다. 당시 아카야브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자 담화를 발표하고 핑크, 레몬과 같은 색깔 혁명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그 후 '튤립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렌지 혁명 -2004년 12월 우크라이나에서 국민들이 오렌지색 깃발, 스카프, 옷을 입고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전국적 시위를 벌였으며 결선 재투표로 서방파 유시첸코가 당선되었다.

장미혁명 -2003년 11월 그루지아에서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부정선거 후 전국 대도시 시민들이 장미를 들고 시위했으며 대통령 셰바르드나제가 하야했다. 셰바르드나제는 1992년부터 집권했는데 심각한 부패와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국민적 원성이 높았다.

불도저 혁명 - 2000년 10월5일 세르비아에서 터진 민중봉기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철권정권을 종식시켰다.시위대가 국영TV방송사인 RTS 건물을 점령할 때 불도저를 앞세워 방송사 건물 벽을 무너뜨린 뒤 안으로 진입한 것을 상징해서 불도저 혁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한 소녀가 목숨을 잃고 103명이 부상했으며 차량 몇 대가 전소됐다.
  
위에 소개한 20세기 후반의 혁명에서 공통점은 시민의식은 진화하는데 집권자는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오만하면서 폭력적이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통치자 본인과 가족, 소수 집권세력의 이익에만 집착했다. 외국에서 발생한 사회적 변동이 우리에게 그대로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불행한 사태가 오기 전에 혁명적 상황은 미리 막아야 한다.

옮긴이 주) 참 답답한 해석입니다.. 혁명적 상황을 미리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꼭 보면 역사를 되돌리려는 머리 나쁜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1.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우리는 선배들의 긴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암울한 유신독재 시절,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그런데 1980년 광주가 고립된 이유를 보면 "서울역 회군"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15일에 서울역 광장을 꽉 메운 채 계엄 철폐와 유신세력 퇴진을 외치며 사회 정치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서울역 집회는 1980년 봄의 어렴풋한 정치 상황을 가름하는 분수령이었다. 학생운동지도부는 "우리의 뜻을 충분히 알렸으니 학교로 돌아가 다음 상황을 두고보자"며 '서울역 회군' 을 결정했다. 이들은 10.26사태 뒤에 사회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역량을 낮게 평가했다.
 서울역 회군은 신군부에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주고 말았다. 학생들이 해산하자마자 신군부의 영향력 아래 있던 최규하 정부는 '확대된 소요사태'를 구실로 삼아 1980년 5월 17일 24시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했다.
 
http://cafe.daum.net/wondercuty/Dn9Z/330744


이런 사건 후에 광주가 고립되게 되고, 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지요. 자세한 내용은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에서 너무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결집되기는 했지만, 6.29 선언에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6.29 선언에 역사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그 들끓고 넘치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현재 18원 알바 의원의 주인공인 심재철이 당시 서울대학생회 회장이었다는 거죠.(http://cornbrownrice.tistory.com/85)

그런데 최근 촛불 집회에서 서울역 회군이나 6.29 선언 같은 일에 한 순간에 이 모든 열정을 사그리 망가뜨리고, 촛불을 끄고 집에 돌아가게할 위기감이 있습니다. 지도부가 없는 투쟁이기도 하고, 구호의 다양성과 목표의 다양함등이 그렇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으로 마감할 수 있을까요?

 

2. 촛불 집회의 다양성, 소통과 민주주의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은 중딩, 고딩, 주부, 직장인, 예비군 등 매우 다양합니다.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의 다양성 만큼이나 촛불 집회에서 외치는 구호와 추구하는 목적도 각기 다양합니다. 촛불 집회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느 것 하나 묻히지도 않고 집회 곳곳에 울리고 있다는 점 입니다.

촛불 집회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고시철회'
 '쇠고기 재협상'
 '이명박 아웃'
 '비폭력'
 '장관퇴진'
 '이명박은 물러가라'
 '내각 총사퇴'

합법적인 집회를 주장하시는 분들께는 현재 촛불 집회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으므로 그냥 빠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미 촛불집회는 합법적인 테두리를 넘어섰습니다. 넘어서고 싶어서 넘어 선것이 아니라 현행 법이 촛불 집회 참여자들의 열정과 권리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법에서 막가는 대통령을 소환시키거나 해임시키거나 명령을 취소할 만한 근거가 없는 거죠. 대의 민주주의를 하면서 최종적인 수단을 주권을 가진 국민에게서 뺐고 있는 거죠.

 

촛불 집회가 합법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럼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투쟁을 하자는거냐 물어보실 수 있겠는데, 현재 촛불 집회의 성격이나 내용, 구호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거나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볼 때 촛불 집회가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안에서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시위 장면을 생중계해주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헌법 1조 라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위에 참여하는 일부 사람들 중에는 과거 운동권 또는 좌파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번 기회에 헌법적 질서에 대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겠죠. 그러나 구호를 보면 '타도 ' 보다는 '이명박 OUT', '이명박 하야' 까지이니, 소수의 극좌파들의 목소리는 그냥 묻혀 있다고 봐도 되고, 그들의 주장에 움직일 분들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촛불 집회는 '대한민국'이라는 헌법적 틀은 지키면서 합법적인 테두리는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선거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 간접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런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입법해야 하는 국회가 있지만, 17대는 종료되고 18대는 개원전이고 해서 과도기적인 상태에서 국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이기 힘들겠죠. 또한 여지껏 국회가 국민에게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하려고 했던 기억보다는 흔히 하는 당리당략에 치우쳐온 역사로 볼 때, 직접민주주의의 권리를 더 늘리는 방안을 스스로 입법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3. 촛불집회의 구호들을 검토해봅니다.
헌법은 지키면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상황에서 구호들의 다양성을 살펴봅니다. 가정법으로 만약에 그 구호가 달성된다면 촛불집회를 그만두고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가와 그리고 문제는 해결되었는가를 살펴봅니다.

 

먼저 고시철회입니다.
'고시'라는 것이 보아하니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 앞서 관보를 통해서 시행을 공개적으로 확정하는 절차입니다.  현재는 고시를 유보한 상황인데, 철회라고 하는 절차가 매우 애매합니다. 현재 고시를 철회하고, 새로운 고시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장관이 고시를 하는 것이 법적인 절차에 일치한다면, 현재로써는 고시의 부당성이 아니라, 고시 내용의 부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고시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을 협상하거나 정책을 입안하는 기능을 국민이 공무원에게 위임하고 있고, 절차상 하자가 없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는 고시를 추진하는 공무원을 소환, 파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대의민주주의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현재의 법 테두리입니다.
'고시철회' 자체는 고시에 대한 감정적인 반감만을 표현할 뿐 실효성이 없습니다. 고시가 철회되고, 촛불을 끄고, 다시 재 고시가 나오면 다시 모일 것인가요? 그때는 지금의 에너지처럼 충만할 수 있을까요? 자꾸 고시를 연기는 집결된 에너지의 분산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이번에는 고시를 내는 '장관퇴진'을 살펴봅시다.
잘 나오지 않는 구호이지만, 장관이 무슨 빽이 있겠습니까? 까라는데로 깐 것일 뿐인데, 장관하나 바뀐다고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겠죠. 구호로 잘 나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장관 한 명이 아니라 '내각 총사퇴'도 고려해볼 만한 합니다.
야당에서 가끔씩 써 먹는 구호인데, 약발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대중들은 내각을 지휘하는 2MB로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무슨 일만 있으면 야당에서 내각 총사퇴를 이야기하다보니, 이제 양치기 소년의 주장처럼 받아들여 질 것입니다.

 

'소고기 재협상' 카드를 생각해봅시다.
왜 엉터리, 날림, 속전속결의 협상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사실과 근거가 부족하고, 이야기에 도움이 안 되니 그냥 재협상 자체만 검토합니다. 여러분들은 재협상한다고 발표하면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지난 87년 6.29가 그랬습니다. 6.29 발표하니 그날 부터 시위가 사라지고 언론들이 극찬했습니다. 재협상 발표하고 모두 촛불 끄고 집으로 갔습니다. 미국이 바보입니까? 최근 버시바우나 무슨 통상대표부의 발언들을 보면 재협상 카드는 우리만의 순진한 바램입니다. 그리고 재협상을 시도하면 외교적인 관례를 깨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반대 급부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뤄져 재협상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재협상에서 별반 다를 내용으로 협상이 마무리되거나, 약간의 조정만 이뤄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살짝꿍 제스처로 그렇게 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그럼 그때 다시 촛불을 들 수 있을까요?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는 어떨까요?
당연히 통상마찰로 갈 구호이자 목표입니다. 그리고 2MB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과거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민도 수입은 해야되는데, 어느 선까지 할 것인가를 정치, 외교적인 관점에서 고뇌했을 것입니다. 몇몇 반미주의자, 반세계화주의자들은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의 상징으로 이번 촛불에서 이런 구호를 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신토불이도 좋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 타협의 수준을 가늠하고 고민하는 것이 정치이고요.

 

그럼 2MB에 대한 구호들을 봅시다.
'사과', '하야', 'OUT', '탄핵' 등 여러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탄핵' : 국회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이상의 다수당인 상황에서 불가능합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광우병에 걸리면 혹시 가능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탄핵은 곧바로 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가야 하는 거죠. 가면 변화보다는 현실적인 안정을 꾀하는 법의 특성상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과' : 2MB는 사과를 잘 합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부족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은 옳으나 국민들이 바보같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과를 하면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모든 문제는 원점이 될 것입니다.

'OUT' : 느낌으로 '하야'와 비슷해보입니다.
명확하게 어떤 것을 뜻하는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야' : 이승만처럼 스스로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으로 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야를 하고 튀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야'하는 '주체'가 2MB이기 때문에 이후 정국을 정치인들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단어가 주는 어감은 고귀한 자리에서 내려오는 듯 합니다.

 

4. 그렇다면 내 주장은 무엇인가?
이명박은 물러가라
최고로 적당한 구호와 목표라 생각합니다. 자진해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국민에 의해서 이끌려 내려오는 것이다. 현충일에 2MB가 "국민과 제가 한마음돼야"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와 한마음 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미 국민들은 한마음입니다. 오직 2MB와 강부자, 고소영 집단들만 국민들과 한마음이 될 수 없을 뿐이고, 국민들도 이제 원하지 않습니다. 그의 주장에서 사용한 단어처럼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이명박을 물리쳐야 합니다.

 

촛불 혁명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얻거나 쟁취할 목표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비폭력, 평화와 같은 방법상의 문제가 우리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연 이명박을 끌어내리고, 사회적 합의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토론은 매우 치열해야 합니다. 현재 촛불 집회와 투쟁은 지도부가 없습니다. 지도부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열정과 에너지, 분노가 어쩌면 한 순간에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의 허망함 처럼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촛불 집회, 투쟁 또는 혁명을 이끄는 것이 지도부가 아니라 토론과 합의에 근거한 집단지성이어야 합니다. 촛불혁명 요구안을 우리 스스로 토론해서 만들고 합의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요구안은 이명박 퇴진이라고 봅니다.

 

그 토론은 열린 두 개의 광장, 온라인 아고라와 오프라인 지역별 광장(예:서울시청광장)에서 이뤄집니다. 온라인에 소통과 토론의 성지인 아고라를 꼭 지켜야하고, 지역마다 광장을 촛불로 덮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