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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만호 2013. 4. 17. 23:08

 

지난 나의 회상 글 '한국판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되네요.'에서,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저의 삶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에 관한
사연 있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어렸을적 송학장로교회에 다니던 윗집의 이숙경 할머니와 어머니, 이숙경,이홍섭 후배, 송학에 살던 김준택 친구를 통해, 노안성당을 다니던 송계에 살던 이기현친구를 통해, 주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래전 타계하신 이숙경 할머니의 애뜻한 연민과 사랑은 지금도 마음의 빚이 되어 남아있으며, 주님의 십자가란 이런 것이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이 여의치 않고 가정불화가 있어, 86년 직장생활 시작 이후 몇 년에 한번씩 명절때 고향에 들리다, 91년부터(1년6개월) 단기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자, 서울직장을 정리하고 광주로 이사 내려왔습니다.(직장생활 하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고졸학업 취득을 하였기에 민방위가 아닌 단기병으로 영장 온듯했습니다.)
고향집으로 내려올까도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는듯해, 광주시내로 거처를 잡았고,
얻은 방은 별체마냥 가끔 들리어 방세와 공과금만 지출하고, 군생활은 영내 생활하면서 버티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서운해하면서 그냥 고향집으로 내려와 출퇴근하라며 부탁을 하시길래, 한번 고향집에 와 있기로 했습니다.
 일단 짐을 정리해서 집에 왔습니다만, 아버지는 예전과 변함없이 자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게 여전하셨습니다. 하여 아무래도 좀 그래서, 부대에 부탁을 하여 현역과 같이 야간에 보초나 불침번 같은걸 서는 조건으로 영내생활을 하며 군대를 보내었습니다.
군 생활 중 주말에 가끔 집에 들리기도 하였는데, 줄 곳 아버지는 밤에 술에 취해와 마을어귀에서부터 주정을 부렸드랬습니다.
하여 어느날 참다참다 못 참아서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조로 격하게 한쪽으로 밀쳐내며 한동안 머라고 했습니다.(당시 어렸을적에 불미의 사고로 머리를 다쳐 평소에 신경이 예미했었는데, 영내생활까지 하는 팍팍한 군생활에 예민하다 못해 날카로운 지경이었습니다.)
근데 그 소리를 어떻게 알고 들었는지, 평소에는 누가 자식을 학대하든 말든 별 관심도 없던 이웃주민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알고 달려들어 저에게 그러면 않된다며 말리셨고, 그런 이웃주민들의 이중적인 행동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붙받쳐오는 울분과 함께 됐다며 말리는 두분들을 뿌리쳤고, 그 바람에 함께 말리려 왔던 이웃 숙경이할머니께서 힘없이 하수도 쪽으로 넘어져 손목을 다치셨습니다.
혹 떼려다 혹붙인격같은 참으로 불미스럽고 황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실을 알고 그날 쫒아온 숙경이아버지는 이런 못된놈을 봤냐며 분노를 하면서 무차별 보복성 폭력을 가하였고, 이렇게 실력행사하는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손목을 다쳐서가 아니라 못된 아비도 아버지가 아니냐며 훈계하기 위함이라했습니다.
그런데 수년후 제 둘째(경호)동생이 직업도 변변치못해서 가사를 도우며 고향집에 자주 머문적이 있었는데, 제가 아버지께 가한것은 약과일 정도로 몇차례 아버지를 좀심하게 두둘겨 팼다고합니다.(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고, 행패부리는 좋지않은 모습을 보고 자라니 남동생은 더욱 모나게 성장해 그후 폭력행위 전과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훈계한다던 숙경이아버지는 남동생을 나무라지않고 남일인양 모른척했다고하며, 결국 자신의 할머니가 다쳤기 때문에 화가나서 저에게 그랬었구나를 알수있었습니다.

어찌됐든 누구를 다치게한건 잘못한 것이니, 당시 미약하나마 약간의 치료비와 함께 숙경이할머니와 가족에게 거듭 사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연로하셔서 그랬는지 다친 손목이 잘 났지 않고 좀 고생을 하시었고,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가끔 찾아가 "숙경이할머니 너무 죄송해요ㅠ" 하고 사죄의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미안하고 감사한 일이 펼쳐졌습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그리고, 갈 때마다 저를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야, 만호야~ 네 잘못만은 아냐, 우리가 그간 좀 무심했나 보다. 평소에 네 집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었을테인데..
이것은 나의 십자가라 생각하고 감내할 터이니.., 만호 너도 십자가라 생각하고 너의 고난을 이기어 나갔으면 해~
그러니까 만호야~ 네 아버지가 너무 밉더라도 좀 이해하도록 해~..."
또한 숙경이 어머니와 이숙경후배와 이홍섭후배도 내심 말은 아니했지만 저를 책하지 않았고, 같은 조의 관용과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용서와 위로를 받으니, 처음으로 주님의 사랑과 십자가가 이런것임을 느끼게 되었고, 신의 은총과 은혜에 정말 감격의 눈물이 났습니다.
어쩌면 숙경이할머니가 어렸을적 일찍 고인이 되신 후덕하신 큰집(신남예 누님댁)할머니처럼 느껴지기도 해,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이렇듯 살면서 처음으로 신의 은총과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불화로 10년이상 고향 땅에 못 왔지만, 숙경이할머니를 생각하면 명절에 꼭 고향집을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았습니다.
용서로 따지면 숙경이네 가족이 다용서하는건 아니고, 숙경이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친척들은
앞뒤정황 다짜르고 설령 안다 해도 저를 죽일 놈으로 보고 정죄하는 눈초리셨습니다.(심지어 저희 친지들중에도)
어찌됐든 잘못은 나에게 있으니 그분들 눈에 거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
너무 미안하기도하고, 않나타주는게 그분들 위하는것인듯해 여지껏 못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고향생각 하게 되면 고향윗집의 숙경이네에게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난 10여년간 비록 고향집에 못 왔지만, 몇 차례 고향에 내려가 마을 앞 (신동교)다리나 큰부산(마을묘지) 뒷밭에 잠시 머물다가, 상경하기전 숙경이네 뒷밭에도 잠시 들리어 고인이 되신 숙경이할머니께 죄송함을 표하고, 눈물만 흘린체 상경하곤 했습니다.

 

염치없을지는 모르나 언젠가(이르면 올해쯤) 숙경이 어머님이 다니는 교회에 한번 찾아가 예배라도 드리고 가고 싶어집니다...

 

(아래는 제 여동생의 오랬만의 서신이며, 최근 저의 답장 편지내용입니다. 참고로 첨부해봅니다.)

이만 글을 줄이오며, 사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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