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트레킹/아름다운 길

돌구름 2019. 12. 25. 23:55

목포대교와 유달산 전망이 아름다운 고하도 용오름 둘레길..


 

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3박4일 캠핑여행 마지막날, 목포 고하도 용오름 숲길을 걷는다.

이른 아침 목포 갓바위공원에서 고하도 복지회관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복지회관 앞 주차장에서 이충무공유적지를 둘러보고 용오름길을 따라 오른다.

맑고 따뜻한 날씨의 크리스마스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최근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어 목포에서 꼭 가봐야할 여행지가 되었다.

용오름길 트레킹을 끝으로 3박4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산행일자 : 201912월 25(수)

기상상황 : 많음(구름 조금 맑고 화창한 겨울 날씨 1~7)

○ 산행인원 : 부부

산행코스 : 고하도 복지회관~말바우~전망대~해안데크길~용머리~둘레숲길~고하도주차장(전남 목포)

○ 거리 및 소요시간 : 6.9km(트랭글GPS), 2시간40분 소요

  고하도 공용주차장(09:25)~충무공사당(09:35)~말바우(09:50~55)~45.2m봉(10:05~10)~케이블카승강장 갈림길(10:30)~

  전망대(10:35~50)~이순신장군동상(11:00)~용머리(11:10~15)~고하도 스테이션(11:40)~큰골저수지(11:55)~주차장(12:05)

고하도 소개

  예전엔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섬, 고하도(高下島)..

  20126월에 목포대교가 개통돼 지금은 누구라도 손쉽게 육로로 찾을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고하도까지 운행하면서 더욱 그 명성을 얻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고하도는 이순신장군이 일본 수군을 물리친 뒤 함대 정비를 위해 108일간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목포 앞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부분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인근 다도해 섬들을 여럿 끼고 있어서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고하도 용오름둘레길은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등허리를 타고 걷는 걷과 같은 지형으로 산행할 때 용의 기운을 잔뜩

  받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최고점이 77m로 섬 전체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고하도(高下島)는 목포시 달동에

  속하는 섬으로 면적 1.78, 해안선 길이 10.7, 인구는 약 360여명에 불과 했었다.

  목포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모양의 섬으로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하여 고하도(高下島)’라 불렸다.

  예전에는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고하도(孤下島), 비노도(悲露島), 칼섬 등으로도 불려왔다.

  목포 유달산 밑 건너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그 고하도는 그곳에 보물이 숨겨 있다고 해서 보화도'(寶和島)’,

  ‘슬픔과 애탄이 서려 있어서 비하도(悲霞島)’로도 불렸다.

  , 섬 모양이 바다로 나아가는 용의 형상을 닮았대서 용섬이라고도 불린다.

  북동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남서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에 이어진다.

  해안은 곳곳에 소규모 갑과 만이 발달하여 드나듦이 심하며, 만 안의 간석지는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와 염전이 이루어져있다.

  기후가 온난습윤하고 무상기일이 200일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육지면(陸地棉)이 재배되기도 하었다.

  섬의 남서쪽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어서 목화 재배 외에 논농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감자··보리·콩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고, 농어·아나고·숭어 등의 잡어류가 잡힌다.

   탕건바위놀이와 강강술래 등이 전해지며, 해송림과 낚시터가 있어 관광객이 자주 찾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나오며, <여지도서>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55호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구총수><호남읍지>에 섬의 이름과 인구가 기록되어 있고, <청구도><대동여지도>에도 기재되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1963년 무안군 이로면이 목포시로 편입되면서 달리도, 외달도 등과 함께 충무동에 편성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가 있어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0)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난중일기>에 쓴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아주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다. 그래서 머물기로 했다고 하였다.

  섬의 둘레는 비록 12에 불과하지만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으로 가는 길목엔 둘 도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고하도는 개항이후 끊임없이 제국주의자들에게 토지를 침탈당했던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고하도에는 이 충무공의 유적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남아 있다.

  개항장이었던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고하도를 거점지역으로 삼기 위해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이때 러시아는 고하도 주민들에게 1만 원도 채 안된 땅값으로 토지를 매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