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이야기)

choyeung 2010. 12. 30. 19:30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Saint Andrew Kim Taegon 1821~1846)의 초상화, Oil on canvas, 90 x 75cm, 2010년, 오전동 성당 

 


성 김대건 신부, 2021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지정 유력

 

유네스코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를 유네스코의 이념과 부합하는 세계기념인물로 평가해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을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지정할 전망이다. 당진시에 의하면 101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207차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에서 2021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김대건 신부를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112일부터 2주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성 김대건 신부가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최종 결정되고,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을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지정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당진시와 대전교구는 지난 6월 김대건 신부의 영향력과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프랑스, 베트남과 필리핀 등 3개국으로부터 지지 선언을 확보하고 유네스코 본부에 세계기념인물 신청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 총회에서 성 김대건 신부가 세계기념인물로 최종 확정될 경우, 2021년 열리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에 유네스코 공식 로고를 사용할 수 있고, 유네스코 주요 인사 초청, 유네스코 후원 국제학술회의 개최, 유네스코 본부에서 김대건 신부 관련 전시회 등이 가능해진다.

 

대전교구 이용호 신부(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 기념관 건설 추진위원회 위원장)유네스코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의 세계기념인물 선정이 무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9.10.27

 


성 김대건(金大建 ) 안드레아 신부는 충청도 솔뫼(당진군 松山)에서 1821821일 부친(父親) 김제준 이냐시오와 모친 (母親 ) 장흥(張興) 고씨 우르술라 사이에 태어났다아명은 재복(兒名'再福'),  보명은 지식 (譜名'芝植'), 관명은 대건.(冠名大建)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천주교 103위 성인 가운데 한사람.

   

Wiki File  https://en.wikipedia.org/wiki/Andrew_Kim_Taegon

 

김대건의 순교자 가계

-증조부(曾祖父김진후(金震厚, 譜名 運祚) 비오(1739~1814)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된 지 얼마 않되어 내포(內浦)의 사도 이존창(李存昌)의 전교로 입교하였다이존창은 바로 김진후의 며느리인 이 멜라니아의 아버지였으니 사돈의 영향으로 신자가 된 것이다. 김진후는 체포된 뒤 수 없이 옥문을 드나들다가 1814121일 옥중에서 숨을 거두고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6세였다.

-조부(祖父김택현 안드레아와 당고모 김데레사도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김제준(金濟俊. 譜名 濟麟. 字 信明. 이냐시오)도 교회 일에 전념하다가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김진후의 셋째 아들 종한(金宗漢. 譜名 漢鉉. 안드레아)은 솔뫼에서 안동 우련밭(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릴리 우련전)으로 피해 살다가 여기서 1815년 을해박해 때 체포되어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참수 순교했다.

-그리고 종한의 딸 데레사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당고개에서 교수되고,

-그녀에 앞서 남편 손연욱(요셉)1824년 덕산에서 옥사했었다.
-김진후의 아우 선후(金善厚. 譜名 貴祚)의 손자 제교(金濟敎. 字 俊明)

-진후의 넷째 아들 희현(金僖鉉. 字 李元)의 아들인 제항(濟恒. 字 明集. 루도비코)은 공주에서 순교한다.
-또한 김대건의 숙부 제철(金濟哲. 字 憲明)의 아들인 진식(金眞植. 베드로)1867년 공주에서,

-선식(金旋植. 프란치스코)은 해미에서 병인박해 때 순교한다.
-그리고 김대건의 아버지 제준은 1839년 서울 서소문에서 참수 순교하고, 103위 성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김대건의 가계는 여러 순교자들로 일가를 이루었다.

 

소년 김대건 성인에게 깊은 신앙을 키워 준 분은 어머니였다. 훗날 마카오로 가서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 성인은 조국으로 비밀히 일시 귀국해서 어머니가 걸식하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알고도 찾아뵙지 못했다김대건은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드러냈다. 1836년에 모방 신부[모방 베드로 나 신부(1803-1839) (35세로 1839921일 순교)]는 이러한 장점을 눈여겨 보고 '이 아이는 아무래도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같다.'고 생각해 다른 한국 소년 두 명과 함께 그를 마카오로 보내 그들 고국의 성직자의 선구자로 만들고자 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화 작품 기념- 의왕시 오전동성당 전합수 주임신부 및 총회장과 전례분과장


-2010년 오전동 성당의 전합수 주임신부는 주보성인(主保聖人)인 임치백 요셉 성인(林致百 Saint Im Ch'i-baek Joseph 1803-1846)의 초상화 제작을 주문하였다. 또한 당시 감옥에서 같이 생활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초상화도 그리도록 주문을 받았다. 김대건신부는 26세에 순교하였는데 아래의 고증 기록과 나이를 참고하였다.  

 1845817일 중국 상해(上海)에서 20리 내지 30리 떨어져 있는 교우촌 긴가함(김가함) 성당에서 백절불굴의 용사 김대건은 강남 교구 교구장(서품을 준 주교는 페레올((Jean Joseph Ferreol,1808-1853))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이며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다 

1846916일 군문 효수(軍門梟首)

순교자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은 신앙과 활동력으로 빛나는 일생을 보냈고 그의 나이 26세에 죽음 또한 빛나고 장렬한 것이었다. 

김대건은 한국천주교회 설립후 한국교회의 희원을 이룬 첫 한국인 사제였다. 그의 인물됨에 대하여 그 때의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는 열렬한 신앙심, 솔직하고 진실한 신심, 놀랄만치 유창한 말씨는 대번에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그에게 얻어 주는 것이었다.” 고 말했다그는 서양학문을 직접 수학하고 체득한 지식인답게 세계조류에 대해 폭 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세계 정세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 발전에 유익한 일임을 역설한 선각자였다.

 

기록상에 나타난 김대건 신부의 모습 

김대건 신부가 성사를 집전한 곳은 서울과 용인지방이었으며 당시의 교우들 증언에 따르면 김 신부는 "활발한 성격에 얼굴은 고아(高雅)하고 허위대(허우대)가 좋았다" 라고  한다. 즉 얼굴은 뜻이나 품격이 높고 우아하며 풍채가 좋았다 라고 한 것이다.   

 

고아 [高雅]의 뜻을 사전에서 보면  뜻이나 지조가 높고 깨끗함 고상하고 우아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고아[古雅]하다는 뜻은 모습이 예스러워 아취가 있음(아담 雅淡雅澹)을 말한다

 

 김대건 신부의 체격과 성격 및 얼굴모습 (192579위 시복조사 증거서에서)

그의 열정적 성격은 184581724살의 나이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사목활동에도 이어졌다. 184510월 충남 강경 황산포(지금의 강경)의 나바위(황산포를 3킬로미터 가량 남겨 둔 한적한 곳)에 도착한 후 184665일 포졸들에게 체포될 때까지 8개월여간 활발한 사목활동을 펼쳤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미나리골[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 현재 서대문구 渼芹洞(미근동)]과 무쇠막(마포구 서강), 남대문로 쪽우물골(남대문로 남정동)과 용인지역 은인, 터골 등지에서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었다. 미나리골 김회장집에서 교우 마리아는 김대건을 "나는 김신부를 만났고 직접 영세와 견진을 받았다. 신부는 키가 컸으며 튼튼한 체격에 발랄한 성격으로 품격이 있는 얼굴이었고, 성사 집전에서 엄격했다"고 증언했다  



외국에서 김대건 초상화 이미지의 활용사례

Example of using portrait painting image of Saint Andrew Kim-TaeGon in the Catholic Church or Website in a foreign country



한국 최초의 성직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1821-1846)의 초상화는 여러 한국화가들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 본인은 초상화가로서 인근의 경기도 의왕시의 오전동 성당으로부터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를 제작하도록 주문을 받았습니다 . 또한 당시 한강의 강변에서 김대건 성인과 함께 칼로 처형을 당한 임치백 성인 (1803-1846)의 초상화도 같이 주문을 받았습니다 . 임치백 성인은 오전동 성당의 주보성인(主保聖人)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2011년에 본인은 유화로 성 김대건신부와 성 임치백의 초상화를 그린 후 홈페이지 ( www.choyeung.com )와 아트 블로그 ( http://blog.daum.net/choyeungart )에 올렸습니다.

그 이후로 이 초상화 작품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생각됩니다 . 2014년 이후부터 외국의 가톨릭 성당 및 웹사이트로 점차 확산된 것 같습니다 . 김대건 신부에 관한 글 내용은 외국 국가마다 약간 씩 다릅니다. 사실 한국 가톨릭 신앙의 특징은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릅니다 .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외국 사제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조선 중엽에서 말기 사이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서 전래되었으며, 이후 점차 신도가 늘어 외부의 선교 활동 없이 자치 교회를 세우는 데에 이르렀다. 천주교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 학자들은 중국으로 가서 성서와 체계를 소개 받았습니다 . 즉 조선(朝鮮) 왕조시대의 천주교 신앙은 자생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 드디어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한 후에야 선비들은 외국신부를 조선 왕조에 파견하도록 요청을 하였습니다 . 1836년에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 (外邦傳敎會) 소속의 모방(Pierre Philibert Maubant 1803-1839) 신부, 앵베르(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7-1839) 주교, 샤스탕(Jacques Honor Chastan 1803-1839) 신부가 처음으로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1836년에 김대건 등 신부양성 후보들을 위하여 중국의 천주교 교회에 파견되었습니다.

 

Portrait of St. Andrea Kim Tae-gon(1821-1846), Korea's first priest, was painted by several Korean painters. As a portrait artist, I was ordered to produce a portrait of Priest Kim Tae-gon from the nearby Ojeon catholic church in Uiwang-sity, Gyeonggi-province. I was also received order a portrait of St. Im chi-baek (1803-1846), who were executed with a knife at the riverside of the Han River. Im Chi-baek was enshrined as the guardian of sacred ground of Ojeon catholic church. In 2011, I painted portraits of St. Kim Dae-gun and St. Im-chi-baek in oil paintings and uploaded them on the my website (www.choyeung.com) and the art blog (http://blog.daum.net/choyeungart). 

Since then, it is thought that this portrait has spread many countries. Since 2014, it seems to have gradually spread to foreign Catholic cathedrals and websites. The articles about St. priest Kim are different from one country to another. In fact, the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Catholic faith are very different from other countries. In other words, foreign priests did not visit Korea and preach from the beginning.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was passed down from the mid to late Joseon Dynasty through Matteo Ricci’s (1552-1610) "The Catholicism" as a study of "book", and then gradually increased in Believer. It led to the establishment of a self-governing church without outside missionary activity. Korean scholars interested in Catholicism went to China and were introduced to the Bible and system. In other words, the Catholic faith of the Joseon Dynasty was born naturally. Finally, after the increase of Catholics, the scholars asked them to send foreign priests to the Joseon Dynasty. Priest Pierre Philibert Maubant(1803-1839), Bishop Laurent-Joseph-Marius Imbert(1797-1839), France, in 18361839) The bride was sent to Korea for the first time, and in 1836 he was sent to a Catholic church in China for candidates for Kim Dae-gun and others.

 

미국 10 개소 USA

SocImage : Sociological Image 사회학적 이미지  

미국의 종교단체 

오늘은 순교자 세인트 앤드류 김대건과 그의 동료들의 전례기념일입니다 . 우리는 김신부가 순교한 소명에 대한 감사와 한국교회가 김신부와 그 동료들의 증인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가 상기시켜 주듯이 , 한국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 아래 평신도에 의해 설립되고 유지되었습니다 . 다음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St. Andrew Kim 의 최종 권고입니다 . 순교자의 말은 오늘날 좋은 지혜입니다 .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 처음부터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 이 관점에서 사람의 창조를 고려하고 , 왜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했는지 , , 어떤 목적으로 반영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위험과 불행으로 가득한 곳에 있다면 ,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면 , 태어 났을 때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 하나님 덕분에 우리는이 세상에 왔습니다 . 또한 하느님 덕분에 세례를 받고 교회에 들어 왔으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 그러나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은 어떤 용도로 사용됩니까 ? 그렇지 않다면 , 우리가 세상에 와서 교회에 들어온 것은 헛된 일입니다 . 더욱이 그러한 상황은 주님과 그분의 은혜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 주님의 은혜를 받고 그 분께 죄를 짓는 것보다 결코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Today is the liturgical memorial of the martyrs St. Andrew Kim Taegŏn and his companions. We have an opportunity to deepen our appreciation for the vocation to martyrdom Kim had, and how the Church in Korea is dependent on the witness of Kim and his companions. As John Paul II reminded us, the Church in Korea was founded and sustained by the laity under the power of Christ crucified and risen. Here is the final exhortation of St. Andrew Kim. The martyr’s words is good wisdom for today.

My brethren and dear friends, think about this and reflect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ime God has ordered the heavens, the earth, and all things. Consider the creation of man in this light and reflect on why he has created man, each man, in his image and likeness: why, and with what purpose.

 

02  Anastpaul wordpress.com 

 

미국의 가톨릭  거대 전교 사이트  미국 오레곤 비버튼 Beaverton

  

김대건 안드레아 , 정하상 바오로와 다른 순교 동반자 101

 

가톨릭 공동체는 처음에 이승훈 (李承薰 1756-1801)이 스스로 기독교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모습을 드러내다가 결국 세례를 받고 1784 년에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 기독교 신 ()에 대한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최초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반복적으로 박해를 당하면서 거부당했다 . 그들의 가족에 의해 그들의 사회적 계급에 손실을 입었다 .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계속 퍼졌나갔다 .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는 두 명의 중국 신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1836 년에 모방 (Mauban 1803-1839) 신부가 도착하면서 파리 외방전교회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그들의 활동은 오래 가지 않았고 40 년이 흘렀다 . 한국의 신자들은 베이징 주교에게 감독과 사제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750 마일을 도보로 베이징으로 보냈다 . 이와 같은 호소가 로마의 교황청에도 호소되었다 . 감히 한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 . 이 위험에 직면한 감독들과 사제들과 그들을 돕고 보호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

 

사실 1886 년에야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기꺼이 죽임을 당하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피를 흘린 제자들 "이 있었습니다 . 인류의 빛 (Lumen Gentium)을 위해 사망한 사람들과 나중에 순교자로 분류한 사람들 중에는 10 명의 성직자와 성인으로 성화될 92 명의 평신도가 있었다 .

 

앵베르 (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7-1839) 주교를 포함한 11 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한국에 들어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최초의 파리 외방선교회 사제였다 . 낮에는 숨어 있었지만 밤에는 신자들의 영적 필요 사항에 참석하고 성례전을 관리하면서 걸어 다녔다 .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 (Andrew Kim Tae-gon)은 신앙에 대한 신념과 기독교인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다 . 그는 선교사로서 한국에 입국하여 어려움을 겪어 가면서 생활하는 길로 감히 들어섰다 . 그러나 안수를 받은지 13 개월 만에 그는 단지 26 세 때에 칼로 처형되어 목숨을 잃었으며 안수 받은 성스러운 기름은 여전히 ​​그의 손에 새겨 져 있었다 .  





03 Apostleship of Prayer 교황의 전세계기도 네트워크


미국   

Apostleship of Prayer 는 일상적인 일상 생활을 사도적으로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가톨릭과 다른 기독교인들의 전세계 협회입니다 . 교황은 기도의 사도를 통해 교회 전체에 그의 월간기도 의도를 제시합니다

1844 년 창립

 

교황의 전세계기도 네트워크 (Apostleship of Prayer)는 인류가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교회의 사명을 지원합니다




안드레아 김대건, 바오로 정하상과 101명의 동반자  Andrew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101 Companions:


기독교 공동체는 이성훈이 스스로 기독교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1784년에 결국 세례를 받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기독교 신에 대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한국 최초의 기독교인들은 반복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그들의 가족에 의해 그들의 사회적 계급의 상실을 겪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계속 퍼졌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는 두 명의 중국 사제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의 사제활동은 오래 지속되었고 1836년 모방 신부가 도착하면서 파리 외방선교회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40년이 더 지났다. 베이징의 주교에게 조선에 주교들과 사제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750 마일을 걸어서 베이징으로 보냈습니다. 로마의 교황에게도 같은 호소가 이루어졌다. 감히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에게는 심각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위험에 직면한 주교들과 사제들 및 그들을 도와주고 보호 해 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잃는 끊임없는 위협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실, 1886년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부여 될 때까지,“우리의 주 그리스도를 본 받아 피를 흘린 제자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사형에 처한 자”. 사망하고 나중에 순교자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는 11명의 사제들과 92명의 평신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성인으로 정식화 될 것입니다.  

엥배르 주교와 다른 10명의 프랑스 사제들이 한국에 처음 들어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파리 외방선교회 사제였습니다. 낮에는 숨어 있었지만 밤에는 충실한 사람들의 영적 필요에 참석하고 성찬을 집행하기 위해 걸어서 여행했습니다.  

앤드레아 김대건 (Andrew Kim Tae-gon)은 신에 대한 믿음과 기독교인에 대한 사랑으로 한국 선교사로 들어가는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안수받은 지 13 월 만에 그는 26세에 칼로 죽임을 당했으며 안수의 거룩한 기름은 여전히 ​​그의 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늘의 축일 920한국의 순교자 : 성 안드레아 김대건, 바오로 정하상과 101명의 동반자 한국 순교자들은 한국에서 19세기 가톨릭 기독교인들에 대한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였다. 이 기간 동안 신앙에 대한 8,000(최대 10,000)의 성직자가 사망했으며, 그 중 103명19845월 세인트 교황 요한 바오로에 의해 대량으로 성인으로 정식화되었습니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은 한국 양반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로 개종했고 아버지는 순교했다. 앤드레아는 15세에 세례를 받은 후 1,300 마일을 중국 마카오에서 가장 가까운 신학교로 여행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한국 사제와 한국에 대한 믿음으로 죽는 최초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순교자의 지도자였다. (1821821, 충청도 솔뫼 출생 18469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고문 및 참수). 그는 한국 성직자의 후원자입니다.

The Christian community first began to take shape when Yi Sung-hun started to study Christian doctrine by himself and was eventually baptised and given the name Peter in 1784.   Because of their belief in the Christian God, the first Korean Christians were persecuted repeatedly, rejected by their families and suffered a loss of their social rank. Despite persecutions, the faith continued to spread.

The Christian community in Korea was given the assistance of two Chinese priests but their ministry was short-lived and another forty years passed before the Paris Foreign Mission Society began its work in Korea with the arrival of Father Mauban in 1836.   A delegation was selected and sent to Beijing on foot, 750 miles, in order to ask the Bishop of Beijing to send them bishops and priests.   The same appeal was made to the Holy Father in Rome.   Serious dangers awaited the missionaries who dared to enter Korea. The bishops and priests who confronted this danger, as well as the lay Christians who aided and sheltered them, were in constant threat of losing their lives.

In fact, until the granting of religious liberty in Korea in 1886, there was a multitude of “disciples who shed their blood, in imitation of Christ Our Lord and 

who willingly submitted to death,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Lumen Gentium, 42).   Among those who died and later labelled as martyrs, were eleven priests and ninety-two lay people who would be canonised as saints.

Bishop Laurent Imbert and ten other French missionaries were the first Paris Foreign Mission Society priests to enter Korea and to embrace a different culture for the love of God.   During the daytime, they kept in hiding but at night they travelled about on foot attending to the spiritual needs of the faithful and administering the sacraments.

The first Korean priest, Andrew Kim Tae-gon, prompted by his faith in God and his love for the Christian people, found a way to make the difficult task of a missionary entry into Korea.  However, just thirteen months after his ordination he was put to death by the sword when he was just 26 years old and the holy oils of ordination were still fresh on his hands.

Saints of the Day 20 September Martyrs of Korea: St Andrew Kim Taegon, St Paul Chong Hasang &Companions 103 saints and beati.   The Korean Martyrs were the victims of religious persecution against Catholic Christians during the 19th century in Korea.  At least 8,000 (as many as 10,000) adherents to the faith were killed during this period, 103 of whom were canonised en masse in May 1984 by St Pope John Paul.


04 Catholics Striving for Holiness 미국의 성결을 위해노력하는 가톨릭교인




. 안드레아 김대건 , 성 바오로 정하상 및  순교자들

 

기독교 신앙은 17 세기 평신도 집단의 열심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 그러나 처음부터 이 그리스도인들은 19 세기 동안 교회에 많은 순교자들에게 끔찍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 그 중에서도 한국 최초의 제사장이자 헌신적인 목회자인 앤드레아 김대건과 정하상 사도 바울이 눈에 띄었다 . 그리스도를 위해 용감하게 투쟁했던 한국 순교자들 중에는 주교와 제사장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신도 , 남자 , 여자 , 결혼 , 독신 , 젊은이 , 노인이었습니다 .

 

성자 김대건 안드레아

Andrew Kim Taegŏn, 성직자 및 순교자의 마지막 권고에서

 

믿음은 사랑과 인내로 관철됩니다 . 나의 형제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은 이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반영합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 이 관점에서 사람의 창조를 고려하고 왜 그가 각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왜 , 어떤 목적으로 창조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

 

ST. ANDREW KIM TAEGON, ST. PAUL CHONG HASANG, AND THEIR COMPANIONS, MARTYRS   

The Christian faith was introduced in Korea during the 17th century through the zeal of a group of laypersons. But from the very beginning these Christians suffered under terrible persecutions that, over the course of the 19th century, gave the Church many martyrs. Outstanding among these were the first Korean priest and devoted pastor, Andrew Kim of Taegu, and the lay apostle, Paul Chong of Hasang. Among the Korean martyrs who struggled valiantly for Christ were bishops and priests, but for the most part they were laity, men and women, married and single, young and old.

Second Reading

From the final exhortation of Saint Andrew Kim Taegŏn, priest and martyr

Faith is crowned by love and perseverance My brethren and dear friends, think about this and reflect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ime God has ordered the heavens, the earth, and all things. Consider the creation of man in this light and reflect on why he has created man, each man, in his image and likeness: why, and with what purpose


05  Catholic Center 미국 의 가톨릭 센터  


   

EWTN의 뉴스 프로그램 VATICANO를 보면서, 나는 바티칸에서 진행중인 한국과 박물관 전시에 대한 정보에 매료되었습니다. 전시는 한국의 가톨릭교의 설립과 성장과 관련된 유물과 문학을 다루고 있으며, 화자는 평신도들이 처음으로 신앙을 소개하고 전파했다고 나레이터가 말했을 때 더욱 흥미로워졌습니다.

나레이터는 교회의 디자인에 따라 보편적이며 복음화에는 문화적 전통을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에 적응시키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내레이터는 이성훈이 1784년 베이징에 갔을 때 시작되어 책과 문서를 읽었으므로 가톨릭교에 대해 알게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종교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평신도들을 개종시켜 한국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제와 다른 선교사들이 뒤를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박해가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내했습니다. 1844년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가 선임되었고 1 년후인 1845년에 200 명이상의 추종자와 함께 사망했습니다. 그는 고문 당하고 참수 당했다. 그의 이름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 Andrew Kim Taegon입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계속 확산되고 견뎌냈으며, 오늘날 한국은 교회의 전통, 가르침 및 가치에 충실한 매우 많은 가톨릭 인구를 자랑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의 안드레아 김대건과 다른 한국 순교자들의 성인식에서, 교황은한국 교회는 독특하다. 그것은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졌고 그들은 모든 박해를 견뎌냈으며 믿음이 강했습니다. 이 순교자들의 죽음은 한국 교회의 누룩이 되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화려한 개화로 이어졌습니다.”

내레이터는 오늘 한국 통계에 따르면 신권과 종교 생활에 대한 소명, 신앙 개종, 신앙 실천에 대한 헌신이 강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Viewing the news programme VATICANO on EWTN, I became fascinated with information on Korea and the museum display currently going on at the Vatican. The display features artefacts, and literature pertaining to the establishment and growth of Catholicism in Korea and I became even more intrigued when the narrator stated that the faith was first introduced and spread by lay people.

The narrator stated that by its very design, the Church is universal and that evangelisation includes adapting cultural traditions to the traditions and teachings of the Church.

The narrator went on to share that it all began when Ni-Seung-Houn went to Beijing in 1784 and read books and documents and so was exposed to and learnt about Catholicism. He embraced the religion, was baptised and returned to Korea where he converted many lay people and so the Church in Korea began.

Priests and other missionaries came after. Then the widespread persecution of the religion began, but despite this, they persevered. In 1844, the first native Korean was ordained priest and one year later in 1845, he along with over 200 followers were killed. He was tortured and beheaded. His name was Andrew Kim Taegon.

Despite the persecution, the faith continued to spread and endure, and today, Korea boasts of a very large Catholic population who are faithful to the traditions, teachings and values of the Church.

At the canonisation of Andrew Kim Taegon and the other Korean martyrs by St Pope John Paul II, the Pontiff stated, “The Korean Church is unique. It was founded by the lay people and they withstood all persecution, remaining strong in faith. The death of these martyrs became the leaven of the Church in Korea and has led to the splendid flowering of the Church in Korea today.”

The narrator continued,  that today, Korea’s statistics show that vocations to the priesthood and religious life, conversions to the faith and the commitment to the practice of the faith are strong.


06 ●My catholic life 나의 가톨릭 생활 !  뉴스 ▶ 미국 일리노이주 크리스탈 레이크   

미국 일리노이주 크리스탈 레이크,  전세계 3503 Deep Wood Drive Crystal Lake, IL 60012




새로운 신앙에 대한 순교로 인해 기독교 태양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카톨릭교는 원래 외딴 국경을 넘어 여행하거나 멀리 떨어진 해안에 떨어진 독신 선교사들에 의해 고립된 한반도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의 지식인들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듣고 근처 중국에서 수입된 새로운 신앙에 관한 흥미로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외교관, 교수, 시인들은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그들은 베이징의 예수회 사제들과 대화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예수회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작품을 읽고 성찬식을 축하하며 중국 교회가 활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성훈이라는 한국인 학자 중 한 명이 1784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베이징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았다. 베드로는 개종자들의 열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으며, 교리 문답, 십자가, 조각상, 묵주 및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수하물로 채우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믿음을 풀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베드로는 친구들 중 일부를 세례했으며 함께 한국 최초의 가톨릭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명동 대성당에 앉아 있는 집에서 만났습니다.

 

Their martyrdom for a new faith caused the Christian sun to rise in Korea

Catholicism was not originally brought to the isolated Korean Peninsula by celibate missionaries who trekked over its remote borders or who landed on its far shores from the outside. Instead, native Korean intellectuals had heard interesting ideas and had read intriguing books imported from nearby China about a new faith. These diplomats, professors and poets went in search of the Church. They crossed their own borders to speak with Jesuit priests in Beijing. The Koreans dialogued with the Jesuits, read their works, witnessed the celebration of the sacraments, and saw the Chinese Church in action. one of these Korean scholars, a man named Yi-Sung-hun, was baptized as Peter in Beijing in 1784 by a French missionary. Newly minted in Christ, with a convert’s fervor, Peter filled his baggage with catechisms, crucifixes, statues, rosaries, and images of the Virgin Mary and headed back to Korea excited to unpack the new faith for all to see. Peter baptized some of his friends and together they formed the first community of Catholics in Korea. They met in a house where sits, today, the Cathedral of Myeongdong.

  

07 ● Slide Share 슬라이드셰어 ▶ 미국의 웹사이트


 

링크트인 슬라이드셰어(LinkedIn SlideShare)는 웹 2.0 기반의 슬라이드 호스팅 서비스이다. 사용자들은 비공개 또는 공개로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 PDF, 키노트, 오픈도큐먼트 등의 파일 형식을 업로드 할 수 있다.

 

슬라이드셰어는 2006104일 공식적으로 론칭했다. 최고경영자이자 공동창업자인 라슈미 신하(Rashmi Sinha)가 파트너십 및 제품 전략도 담당한다. 그녀는 패스트컴퍼니(FastCompany)가 선정한 '2.0 시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월간 순 방문자 수는 7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등록 회원 수는 약 380만 명이다



08 ● Elkhart 엘하르트 ▶미국 인디아나 

 
 

안드레아 김대건과 바오로 정하상 및 평신도 Andrews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기독교는 중국 국경을 넘어 기독교 서적을 통해 한국에 왔다. 1784년에 책에서 읽은 것을 통해 개종한 작은 한국인 공동체는 세례를 받기 위해 자기 자신 중 하나를 베이징으로 보냈습니다.

 

 
09 ● communio.stblogs.org Paul A. Zalonski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오늘은 순교자 세인트 안드레아 김대건과 그의 동료들의 전례 기념일입니다우리는 김신부가 순교 한 소명에 대한 감사와 한국 교회가 김신부와 그 동료들의 증인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에게 상기 한 것처럼, 한국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 아래 평신도에 의해 설립되고 유지되었습니다다음은 성 김대건 신부 St. Andrew Kim의 최종 권고입니다순교자의 말은 오늘날 좋은 지혜입니다.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이 관점에서 사람의 창조를 고려하고, 왜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했는지, , 어떤 목적으로 반영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Today is the liturgical memorial of the martyrs St. Andrew Kim Taegŏn and his companions. We have an opportunity to deepen our appreciation for the vocation to martyrdom Kim had, and how the Church in Korea is dependent on the witness of Kim and his companions. As John Paul II reminded us, the Church in Korea was founded and sustained by the laity under the power of Christ crucified and risen. Here is the final exhortation of St. Andrew Kim. The martyr’s words is good wisdom for today.   

My brethren and dear friends, think about this and reflect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ime God has ordered the heavens, the earth, and all things. Consider the creation of man in this light and reflect on why he has created man, each man, in his image and likeness: why, and with what purpose.


10 ● America Needs Fatima 미국 파티마 ▶미국 스프링 그로브 , 펜실베니아

America Needs Fatima

창립: 1985년창립자: C. Preston Noell, III위치: 스프링 그로브, 펜실베니아, 미국

America Needs Fatima는 가톨릭 비영리 단체인 전통, 가족 및 재산 방어를 위한 미국 사회의 캠페인입니다. 그 목표는 "파티마의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녀의 성심에 대한 헌신을 장려함으로써 마리아의 마음과 영혼을 얻는 것"입니다.



17세기에 평신도의 열심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한국에 전해졌다. 처음부터 이 그리스도인들은 끔찍한 박해를 당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캐나다 4개소, Canada
 
11 ● Saint Anthony of Padua Parish ▶캐나다 밴쿠버의 천주교 성당


 
 

 12 ● Catholic News World  -Canada
 

가톨릭뉴스 월드 -바티칸 사무국과 국제 가톨릭 등을 지원하는 단체 캐나다 ,토론토


 

축일 920일 안드레아 김대건과 동반자 순교자와 후원자 한국 성직자 Saint September 20 : St. Andrew Kim Taegon and Companions Martyrs and Patron Korean Clergy 


성 안드레아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 사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례없는 조선왕조의 기독교 반대의 시대에 기독교 개종자 가정에서 태어난 (기독교 가르침은 유교와 조상 숭배의 계층적 체계를 위협했다) 김씨와 그의 가족은 박탈과 고난의 삶을 이끌었다. 조선왕조(기독교를 통한 유럽의 식민지화를 두려워한)에 의해 반복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인 외국인의 종교를 1794년에서 1866년까지 근절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했다.

비록 김씨의 가족들과 결국 김씨 자신은 기독교를 근절함으로써 필사적으로 자신과 한국의 유교 문화를 보존하려고 노력함에 따라 억압적인 군주제 하에서 박해, 고문 및 결국 순교를 당할 것이다. 이 초기 한국 기독교인의 희생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교회가 번창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안드레아 김대건 Andrew Kim Taegon은 오늘 가톨릭교를 한국에 가져 오는 데 바친 희생과 헌신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Saint Andrew Kim Tae-gon is known as Korea's first Roman Catholic priest. Born into a family of Christian converts at a time of unprecedented governmental opposition to Christianity (Christian teachings threatened the hierarchical system of Confucianism and ancestor worship), Kim and his family led lives of deprivation and hardship. Although there were repeated efforts made by the Korean monarchy (who feared European colonization of Korea through Christianity), to uproot the religion of the barbarian foreigners from 1794 to 1866, converts to Christianity continued to increase.

Even though Kim's family members and eventually Kim himself would suffer persecution, torture and eventual martyrdom under the repressive Korean monarchy, as it desperately tried to preserve itself and Korea's Confucian culture by eradicating Christianity; the sacrifice of these early Korean Christians became the foundation for the Christian Church in Korea to flourish today. Andrew Kim Taegon is revered today for his sacrifice and dedication in bringing Christianity to Korea.

 


13 ● Giao Phan Saint Boniface-Winnipeg

캐나다 위니펙 교구

615 La Fleche Street, 위니펙, MB, 캐나다


 
 

 14 ● 캐나다, 밴쿠버의 천주교 성당  Canada

   
 


영국 1 개소  England
 
15 ● Catholic Herald ▶영국의 가톨릭 헤랄드


1888년 창립된 영국 런던에 소재한 로마 카톨릭 주간 신문이며 2014 12 월부터 영국 , 아일랜드 공화국 및 미국에서 발행된 잡지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9 20 )은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자이자 신앙을 위한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St Andrew Kim Taegon)은 카톨릭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 1821821일에 순교자 가정에서 출생했다 . 19세기경 한국의 가톨릭 신자는 유교를 국교로 지정한 조선 왕조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 그의 증조부(曾祖父) 김진후(金震厚, 譜名 運祚 ) 비오 (1739~1814)1814년 가톨릭 신자가 되어 체포된 후 감옥에서 숨졌다 . 그의 아버지 김제준 (金濟俊. 이냐시오)도 역시 1839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했다 .


St Andrew Kim Taegon (September 20) was the first Korean Catholic priest  

The first Korean Catholic priest and a martyr for the faith, St Andrew Kim Taegon is a renowned figure in the history of Catholicism in his native land. Born on August 21 1821, Andrew came from a family of martyrs. During the 19th century, Catholics in Korea were persecuted by the ruling Joseon Dynasty for abandoning Confucianism and Andrew’s great-grandfather, Kim Chin-hu Pius, died in prison in 1814 after being arrested for his conversion to Catholicism.The saint’s father, Kim Chae-jun Ignatius, It was also martyred in 1839 for the practice of the faith.



호주 1 개소  Australia
 
16 ● WordPress.com  월드 프레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종교단체



한국의 순교자인 성 ()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는 한국에서 출생한 최초의 카톨릭 성직자이다 . () 정하상 (1795-1839)은 한국의 가톨릭 성인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 정약종 (1760-1801)은 정하상의 아버지로서 평신도 사도이며 그는 한국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첫 번째 교리 문답서 (주교요지)를 썼다

 

Korean martyrs (1821-1846)- Saint Kim Taegon

Andrea is the first Korean-born Catholic priest; the patron saint of Korea- Saint Paul Chong Hasang was one of the first converts of Korea; a lay apostle; he wrote the first catechism for the Roman Catholic Church in Korea (entitled “Jugyo Yoji”)

 

스페인 1 개소 Spain
 
17 ● Catholic News 스페인의 가톨릭 뉴스


Korean martyrs (1821-1846)- Saint Kim Taegon

 

한국 순교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는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다. 한국의 수호 성인-성 바오로 전하상은 한국 최초의 개종자 중 한 사람이었다. 평신도 사도; 그는 한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최초의 교리 문답을 썼다 (“주요요지”)

안드레아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사제였으며 기독교 개종자의 아들이었다. 김대건은 15세의 세례를 받은 후 중국 마카오의 신학교로 1,300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6년 후, 그는 만주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같은 해 그는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가서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국경 순찰을 피할 수 있는 수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배정되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마침내 수도인 서울 근처 한강에서 참수 당했다.

김대건의 아버지 이그나티우스 김 (Ignatius Kim)1839 년 박해 중에 순교했다. 평신도 사도이자 기혼자인 바오로 정하상 (Paul Chong Hasang)1839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대건과 정하상 외에 1839년에서 1867년 사이에 순교했던 한국인 98명과 프랑스 선교사 3명을 1984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식으로 성인으로 축성했습니다. 그 중 주교와 제사장은 대부분 평신도였습니다 . 47명의 여성과 45명의 남자였습니다.

 

Andrea is the first Korean-born Catholic priest; the patron saint of Korea- Saint Paul Chong Hasang was one of the first converts of Korea; a lay apostle; he wrote the first catechism for the Roman Catholic Church in Korea (entitled “Jugyo Yoji”)

 

Saints Andrew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Story

 

The first native Korean priest, Andrew Kim Taegon was the son of Christian converts. Following his baptism at the age of 15, Andrew traveled 1,300 miles to the seminary in Macao, China. After six years, he managed to return to his country through Manchuria. That same year he crossed the Yellow Sea to Shanghai and was ordained a priest. Back home again, he was assigned to arrange for more missionaries to enter by a water route that would elude the border patrol. He was arrested, tortured, and finally beheaded at the Han River near Seoul, the capital.   

Andrew’s father Ignatius Kim, was martyred during the persecution of 1839, and was beatified in 1925. Paul Chong Hasang, a lay apostle and married man, also died in 1839 at age 45.  

Besides Andrew and Paul, Pope John Paul II canonized 98 Koreans and three French missionaries who had been martyred between 1839 and 1867, when he visited Korea in 1984. Among them were bishops and priests, but for the most part they were lay persons: 47 women and 45 men.

 
필리핀 3 개소 -Philippines
 
18 ● Mercified Faith 필리핀의 자비 신앙 -Philippines




데오 그라티아스! 나는 지난 주 엘살바도르의 신성한 자비 신사에서 그의 축일 (920)에 성 "앤드류"김태곤 (김대건 안드레아)기도 카드를 받았다. 나는 몇 달 전에 (6월에) 우리의 월간 교도소 사도직에 있는 사말 시티 교도소 수감자 중 한 사람의 기도 카드를 요청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성인의 기도 카드를 찾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참으로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기도 카드 뒷면과 인쇄 된 장소 (필리핀 불 라칸, Lolomboy, 그가 공부 한 장소 중 하나) 아래에 타갈로그 법정 행위가 있습니다.

성자 "김대건 안드레아는 최초의 한국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는 한국 기독교 개종자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그나티우스 김 (Ignatius Kim)1839년 기독교 박해 중에 순교했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15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은 후 중국 마카오 (포르투갈 식민지)의 신학교로 1,300마일을 여행했습니다. 6년 후 만주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건너가 1845년 사제로 임명되어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국경 순찰을 피할 수있 는 수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배정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조선 시대 고문과 사망의 큰 위험 때문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에서 순교한 수천 명의 한국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문을 당했을 때 25 살 밖에 되지 않았으며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12명의 군인들에 의해 목을 칼로 참수 당했습니다. 8번의 검을 친 후 김대건 안드레아는 칼로 머리가 잘려 나갔다. 그의 순교는 1846916일 대한민국 서울 한강에서 당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 56일 세인트 김대건 안드레아를 성인으로 축성했다.

Deo gratias! I finally had my prayer card of Saint "Andrew" Kim Taegon (김대건 안드레아) last week on his feast day (September 20) at the Divine Mercy Shrine, El Salvador City. I asked that prayer card from one of the inmates of Samal City Jail in one of our monthly prison apostolate a few months back (in June perhaps). It was indeed a meaningful day for me because I never thought that I would find a prayer card of my favorite Korean saint. There's a Tagalog Act of Contrition at the back of the prayer card and below the place where it was printed - Lolomboy, Bulacan, Philippines (one of the places where he studied).

Saint "Andrew" Kim Taegon is the first native Korean Catholic priest. He's the son of Korean Christian converts. Ignatius Kim, his father, was martyred during the 1839 Christian persecution and was beatified in 1925.

Andrew traveled 1,300 miles to the seminary in Macau, China (a Portuguese colony), after Baptism at the age of 15. After six years he managed to return to his country through Manchuria. He crossed the Yellow Sea to Shanghai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845, becoming the first Catholic priest in Korea. Back home again, he was assigned to arrange for more missionaries to enter by a water route that would elude the border patrol. From then on, he would zealously yet secretly preach the Gospel of Jesus Christ to the Korean Christians because of the great danger of torture and death at the time of the Joseon Dynasty.   

Saint "Andrew" Kim Taegon is the first native Korean Catholic priest. He's the son of Korean Christian converts. Ignatius Kim, his father, was martyred during the 1839 Christian persecution and was beatified in 1925.



19 ● Roman Catholic Archdiocese of Manila 로마 가톨릭 대교구  -Philippines 필리핀


더 로만 카톨릭 아치디오시즈 오브 마닐라



마닐라 로마 카톨릭 대주교는 마닐라 , 마카티 , 샌 후안 , 만달 루용 및 파 사이의 도시를 망라한 메트로 마닐라 , 필리핀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라틴 종교 의식의 대주교이다


20 ● Saint Peter Baptist Shrine -Philippines


필리핀의 성 베드로 바우티스타 성당




안드레아 김대건(Andrew Kim Taegon)은 최초의 한국 사제였으며 기독교 개종자의 아들이었다. 앤드레아는 15세의 세례를 받은 후 중국 마카오의 신학교로 향하여 1,300마일을 여행했습니다. 6년 후, 그는 만주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같은 해 그는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가서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국경 순찰을 피할 수 있는 수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배정되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마침내 수도인 서울 근처 한강에서 참수 당했다.

The first native Korean priest, Andrew Kim Taegon, was the son of Christian converts. Following his baptism at the age of 15, Andrew traveled 1,300 miles to the seminary in Macao, China. After six years, he managed to return to his country through Manchuria. That same year he crossed the Yellow Sea to Shanghai and was ordained a priest. Back home again, he was assigned to arrange for more missionaries to enter by a water route that would elude the border patrol. He was arrested, tortured, and finally beheaded at the Han River near Seoul, the capital.


20-1 OFM PROVINCE OF SAN PEDRO BAUTISTA 필리핀



Memorial of Saints Andrew Kim Tae-gŏn, Priest, and Paul Chŏng Ha-sang, and Companions

앤드레아 김대건(Andrew Kim Taegon)은 최초의 한국 사제였으며 기독교 개종자의 아들이었다. 안드레아는 15 세의 세례를 받은 후 중국 마카오의 신학교로 1,300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6년 후, 그는 만주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같은 해 그는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가서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국경 순찰을 피할 수 있는 수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배정되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마침내 수도인 서울 근처 한강에서 참수 당했다.

안드레아의 아버지 이그나티우스 김은 1839년의 박해 중에 순교했고 1925년에 때렸다. 평신도 사도이자 결혼한 사람인 바오로 정하상은 1839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Saints Andrew Kim Taegon,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Story

from Saint of the Day, Franciscan Media

The first native Korean priest, Andrew Kim Taegon, was the son of Christian converts. Following his baptism at the age of 15, Andrew traveled 1,300 miles to the seminary in Macao, China. After six years, he managed to return to his country through Manchuria. That same year he crossed the Yellow Sea to Shanghai and was ordained a priest. Back home again, he was assigned to arrange for more missionaries to enter by a water route that would elude the border patrol. He was arrested, tortured, and finally beheaded at the Han River near Seoul, the capital.

Andrew’s father, Ignatius Kim, was martyred during the persecution of 1839 and was beatified in 1925. Paul Chong Hasang, a lay apostle and married man, also died in 1839 at age 45.


인도네시아 1 개소 Indonesia
 
21 ● SESAWI.NET Portal Berita Katolik Indonesia ▶인도네시아의 가톨릭 사이트



 
인도 2 개소
 
22 ●Goodness Media Private Limited, SRM Road, Ernakulam,


인도 케랄라 India




23 ● Prarthana BHAWAN TV ▶인도 펀 자브 , India

펀 자브, 인도 Divyavani TV 인도



 
컬럼비아 1 개소 Colombia
 
24 ● Minuto De Dios Colombia ▶남미 컬럼비아  



한국 Republic of Korea
 
25 ●www.catholic.or.kr ▶ 한국의 가톨릭 굿뉴스


한국의 천주교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Saint Andrew Kim Taegon 1821~1846)의 초상화, Oil on canvas, 90 x 75cm, 2010, 오전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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