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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2006. 1.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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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계간 소설가 창간호 발표

 

자살 여행

이영철


  태풍을 동반한 폭우였다. 차창을 닦아내는 윈도브러시가 바쁘게 움직였다. 윈도브러시가 지나가기 바쁘게 금세 시야가 흐려졌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고, 천둥과 번개가 일었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도로는 한산했다. 이따금 반대편에서 오던 차들이 도로에 고인 빗물을 화들짝 끼얹으며 스쳐갔다. 태규는 그때마다 그 빗물을 옴팍 뒤집어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우르르 꽝!”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며, 도로 앞 100미터 전방쯤에 서 있는 마을의 동구 밖 느티나무에 벼락이 꽂혔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벼락을 맞아 부러지며 연기가 치솟았다. 깜짝 놀란 태규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빗물에 미끄러진 차가 기우뚱거리며 나아갔다. 태규는 차의 중심을 잡느라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핸들을 놓치면 차가 전복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비로 생긴 도로의 수막현상으로 한참을 미끄러지던 차는 도로 가 개울로 처박히기 직전에야 겨우 멈췄다. 조금만 더 미끄러졌어도 차는 여지없이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개울로 곤두박질할 뻔했다.
  태규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담배를 물었다. 엄청난 폭우로 창문을 열 수 없었다. 금세 차안은 담배연기로 가득 찼다. 불 붙은 담배가 짧아지면서 놀란 가슴도 진정되어갔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설령 벼락이 자신의 차에 꽂혔다 해도 그만일 터였다. 아니,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야 했다. 그런데 그깟 나무에 꽂힌 벼락에 그토록 화들짝 놀라다니, 죽겠다는 놈이 벼락에 놀라다니….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형을 집행하는 간수들은 흙탕물을 밟고 가도 사형수는 그 흙탕물을 피해 간다고 했다. 인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면 그만큼 생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던 교도관 선배의 말이었다. 선배는 교수형 직전, 생의 마지막으로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사형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사형수가 천천히 피우는 담배를 보며, 그의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을 보며, 형장에서 한 순간에 사라져간 한 생명을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난 그날 이후, 삶의 하찮은 어느 것 하나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심드렁하게 살아가던 내 삶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고나 할까.”
  왜 이 순간 까마득히 잊었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담배는 어느새 꽁초가 되어있었다. 차문을 열고 꽁초를 빗속에 버렸다. 차를 후진시켜 다시 도로 위로 나섰다. 태규는 고향인 군산을 가는 중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면 금세 갈 수도 있지만 일부러 한적한 국도를 택했다. 차는 홍성에 접어들었다.
  ‘한수나 선배의 말처럼 아직은 내가 삶의 여유를 부릴만한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틀어놓은 레퀴엠이 차 안을 쾅쾅 울리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듣다보니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어쩜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추억의 장소들을 위한,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어제 한수와 마신 취기가 남았는지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심한 갈증으로 두 번이나 휴게소에 들러 생수를 사야 했다.
  ‘죽겠다는 놈이 그깟 갈증조차 참지 못하고 물을 두 병씩이나 마시다니….’
  태규는 생수 페트병에서 입을 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살을 하려면 당장 미련 없이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목을 매든,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극약을 마시든 해야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뭔가.’
  차는 보령을 지나고 있었다. 국도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더 한산했다. 하긴 이런 폭우 속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를 뚫고 비추었지만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따라서 속도를 늦추어야만 했다. 태규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속도계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속도를 내 어딘가에 충돌하거나, 다리 난간을 부수고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미친놈! 얌마, 죽을 각오까지 했다면 그 용기로 뭔들 못 하겠냐! 니가 해미를 사랑한다고? 웃기지 마.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 넌 해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게 아냐. 니가 정말로 해미를 사랑한다면… 관두자. 넌 아직 멀었어. 그리고 너 같이 죽네마네 입으로만 떠드는 놈들은 자살할 용기도 없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고. 정작 자살할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깨끗이 죽지. 자살한 수많은 사람들 예를 들 것도 없어. 너보다 잘난 장국영이나 정몽준이를 봐라. 걔들은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전혀 티 내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했어. 누구에게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그냥 죽었다고. 내 말이 틀려? 미친놈!”
  “…….”
  어느새 눈자위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한수가 태규를 향해 쏘아붙였다. 태규는 자신의 빈 잔을 채우기 위해 소주병을 들었다.
  “내 놨마! 뒈지고 싶다는 놈에게 그래도 친구라고 찾아왔으니 미리 이별주나 한 잔 따라주마.”
  한수는 태규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낚아채, 태규 술잔에 병을 처박듯 기울였다.
  “마셔! 한 잔 마시고 내가 보는 앞에서 저기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로 뛰어들어 콱 뒈지라고! 병신 같은 놈! 실망했었마. 너 같이 약한 놈을 친구로 둔 내가 한심스럽닸마!”
  “…….”
  파라솔 밑에서 곱창을 굽던 옆 자리 술꾼들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태규는 쏠린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들의 시선은 파리를 잡는 끈끈이처럼 집요했다. 아까부터 큰소리로 떠드는 한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터였다. 처음에는 흘끔흘끔 쳐다보던 시선들이 이제는 아주 노골적이었다. 아까부터 유심히 태규를 쳐다보던 여자는 태규와 눈이 마주치자 묘하게 입술을 비틀며 미소 지었다. 비웃음인지 동정인지 관심인지 알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쪽 팔리냐?”
  “…….”
  태규는 끈끈한 시선을 피해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였다. 한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이,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야, 앉아!”
  태규는 당황해, 팔을 낚아챘지만 한수는 태규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외쳤다.
  “놨마! 여러분, 여기 앉아있는 이 자식은 내 친군데, 마흔세 살 먹은 실패한 영화감독이거든요. 그런데 칠년 동안 연애하던 여자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어요. 그 여자가 다음 주 토요일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태규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답니다! 세상에 이런 벼― 엉― 신이 있습니까! 이런 쪼다가 또 어디 있냐고요! 보내기 싫으면 콱 잡든지. 이 벼― 엉― 신은 결혼하자고 죽자 살자 매달리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고 보내놓고는 이렇게 지지리도 궁상을 떨어요. 이런 새끼를 쪼다라고 안 부르면 누굴 쪼다라고 부르겠어요. 안 그래요, 여러분!”
  한수는 ‘벼― 엉― 신’ 이란 말에 악센트를 주며 외쳤다. 강남 교대 후문 건너 곱창 전문 집들에서 곱창을 구우며 술을 마시느라 왁자지껄하던 술꾼들의 시선이 일시에 쏠렸다.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태규는 바늘 끝처럼 와 닿는 술꾼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때? 정말 쪽 팔려 죽겠지?”
  한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만해라!”
  태규는 한수가 휘청할 정도로 팔을 낚아채 의자에 앉혔다. 그런 태규와 한수를 바라보던 술꾼들의 시선도 잠시였다.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크크크, 취했구먼.”
  “새끼들, 술을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비도 안 오는데 헷소리들을 하고 있어. 술 맛 떨어지게스리.”
  술꾼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태규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그것도 잠시, 술꾼들의 시선이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한수가 말없이 태규를 쳐다보더니 빈 잔을 채워줬다.
  “얌마, 예술가라는 영화감독 앞에서 은행원인 내가, 그래도 한때는 시를 썼던 개똥 예술가인 내가 잘난 체 좀 하마.”
  “…….”
  “니 입으로 자살 운운한다는 것은… 아직도 너는 의식의 흐름과 관념의 흐름 사이에서 괴로움의 위안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야. 다시 말해, 삶의 여유가 있다는 증거지. 아직은 치사량에 가까운 막다른 고뇌의 끝에 다다른 건 아니라는 거지.”
  “…….”
  태규는 한수의 말을 들으며 술을 목구멍 깊숙이 던져 넣었다.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하느님은 사람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다. 네 고통, 아니 고뇌라는 말이 맞겠지. 내가 니 고뇌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잊어라.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우고 단념하라고. 해미를 잡지 않을 거면.”
  한수도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난 너도 이해가 안 되지만, 해미 년도 이해가 안 돼요. 미친년! 니 애까지 뗀 년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나한수!”
  태규의 손에 들린 술잔이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내려졌다.
  “애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만해라! 정말!”

  얼마 전, 태규와 해미는 늘 만나던 강남 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 들어 해미와 태규 사이에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전에 없이 해미가 결혼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었다.
  “나도 한 때는 사랑엔 아무 조건이 필요 없다고 믿었어.”
  “……?”
  “하지만 칠년 동안 변함없는 태규 씨를 보면서 사랑도 현실 속의 한 부분이란 걸 깨달았어.”
  해미는 단단히 결심한 듯했다. 사실 칠 년 동안 사귀어 오면서 결혼에 관한 한, 해미는 적극적이었고, 태규는 늘 방관자적인 입장이었다.
  “이제 태규 씨에게서 내가 떠나야 할 때가 됐다는 걸 알았어. 아니 좀더 정확히 얘기한다면 태규 씨를 나라는 새장에서 자유로운 새로 놔줘야 할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어.”
  “…….”
  태규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긋지긋해. 지금처럼 늘 변함없는 태규 씨의 그 침묵. 심해(深海)의 밑바닥 같은 그 고요함. 사람이 정말 왜 그래?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 내가 그렇게도 부담스러워?”
  태규는 한 마디 말이 없는데, 해미는 한꺼번에 많은 말을 쏟아부었다.
  “나 결혼할 거야. 치과 의사야.”
  담배를 무는 태규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길게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물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처럼 허공에 천천히 풀어지고 있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태규는 카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사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 속으로 행복해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깔깔거리며 지나는 연인도 보였다.
  “15일 1시로 날 잡았어.”
  “……!”
  태규는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진정하고 마치 남의 얘기를 듣듯 무심한 시선으로 해미를 보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태규와 해미의 시선이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태규는 부딪친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다시 카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행복해 보이는 행인들을 보았다. 얇은 유리창을 사이에 둔 안과 밖의 분위기는 너무 달랐다.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봐! 제발!”
  해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젖어있었다. 태규는 그제야 창밖으로 향했던 고개를 돌려 해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태규를 바라보는 해미의 두 눈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은 시나리오작가와 영화감독으로서였다. 태규는 데뷔작이었고, 해미는 그 당시에도 충무로 바닥에서 잘 나가는 중이었다. 영화사 사무실에서, 해미 작업실에서 스텝들과 어울려 때론 둘이서 한 달 동안 시나리오 최종 수정작업을 했다. 태규는 영화에 미쳐 그때까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노총각이었고, 해미 역시 일속에 파묻히고 싱글의 자유스러운 생활을 즐기느라 연애에는 별 관심이 없는 노처녀였다. 감독과 작가로 만난 두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최종 본 시나리오를 탈고한 날, 두 사람은 자축하는 의미로 술을 마셨고, 해미는 처음으로 자신의 원룸 방문을 허락한 태규와 술을 더 마신 뒤, 함께 잤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제작사 사장은 홍보에 쓸 자금을 사업하는 동생에게 잠시 빌려줬다. 그런데 그만 동생 사업이 꼬이는 바람에 자금이 막혀 영화 홍보를 전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때 마침 할리우드에서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동시에 개봉돼 관객을 싹쓸이해 버렸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태규가 찍은 영화도 극장에 걸린 지 사흘 후부터 바람맞은 늦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제작자는 빚쟁이들을 피해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버렸다. 그런데도 빚쟁이들은 감독만 했지 제작에는 일절 관여를 안 한 태규에게 몰려와 아우성을 쳤다. 엄밀히 따지면 태규 역시, 피해자였다. 계약금만 몇 백 받고 나머지 감독 개런티는 한푼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빚쟁이들은 감독인 태규에게 몰려와 못살게 굴었다. 결국 텔레비전, DVD, 비디오, 해외 영화 판권도 빚쟁이들에게 넘어가 태규의 개런티는 이미 물 건너간 셈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태규는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느라 한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해미는 그 뒤로 쓰는 작품마다 중박과 대박을 연달아 터뜨렸다.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태규는 다음 영화를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실패한 감독으로 찍혀 제작자들이 나서지 않았다. 영화에 실패한 이유가 어쨌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식으로 그 책임을 감독인 태규에게 물었다. 영화판은 생존경쟁이 아프리카의 밀림보다도 더 치열한 곳이었다. 단 한 편의 영화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지만, 단 한 편의 영화 때문에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고 쪽박을 찰 수도 있었다. 영화 사업만큼 투기성이 강한 곳도 드물었다.
태규가 만나는 제작자와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영화는 작품성도 있고, 감독의 연출 의도도 좋고, 홍보 부족으로 실패한 줄은 알지만…”
  태규는 그들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음 말을 짐작했다. 영화판은 그 어느 곳보다 징크스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었다. 한 번 실패한 감독은 그런 이유로 재기하기가 그만큼 힘든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충무로 바닥에선 단 한 편의 영화만을 찍고 사라져간 감독들이 숱하게 많았다. 그렇지만 한 번 대박을 터뜨리면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 이후, 태규는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와 투자자들을 칠 년째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같이 데뷔했던 동료 감독들이나 후배들은 진즉 그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고, 태규는 점차 잊혀져 가는 감독이 되었다. 따라서 생활도 엉망이 되어갔다. 시나리오작가로 잘 나가는 해미는 태규를 만날 때마다 밥값은 물론이고 기분 나쁘지 않게 슬쩍 용돈까지 찔러주었다. 태규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영화를 실패하고 한두 해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삼 년이 지나면서 한계점에 달했다. 영화에 실패한 감독들이 영화판을 떠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원인이 생활고였다. 겉보기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참하다 못해 처절할 지경이었다. 특히 가정을 거느린 감독들은 그 실상이 더했다. 핸드폰 요금을 못내 전화가 끊기는 것은 고사하고 집에 가스비와 전기료를 못내 전기와 가스가 끊기기도 했다.
  그 사이 해미는 태규의 아이를 두 번이나 낙태시켰다. 태규는 애를 낳겠다는 해미에게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면 그렇게 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첫 번째 애를 낙태시키고, 해미는 사흘을 내리 울기만 했다. 두 번째 아이도 반 강제로 낙태시키자, 해미는 실성한 사람처럼 일주일을 방안에서 꼼짝도 않고 멍청히 앉아 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태규 씨, 우리 그냥 결혼하자. 엄마, 아빠가 반대해도 난 태규 씨만 있으면 돼. 난 자기가 돈을 안 벌어도 좋아. 내가 벌게. 내가 열심히 시나리오도 쓰고 방송대본도 쓸게. 나 이젠 숨이 막힐 것 같아. 집에서도 결혼하라고 난리야. 강제로 선 보는 자리에 몇 번이나 끌려갔어. 이제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달했어. 엄마, 아빠는 내가 맞아 죽을 각오로 설득할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잖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나 같이 미래가 불안한 사람은 깨끗이 잊으라고. 난 언제라도 널 보낼 준비가 돼 있어. 진심야.”
  “태규 씨!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 날 보낼 수 있어? 태규 씨에게 나란 존재가 정말 그 정도밖엔 안 됐단 말야!”
  “난 영화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누가 뭐래도 결혼 안 해. 아니 못해. 그리고 해미 네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새워 쓴 글로 벌은 돈을 축내는 식충이로 살긴 싫어.”
  “그래? 그럼 언제 영화를 만들 건데? 올해? 내년?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
  “…….”
  태규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화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너무 막연하고 기약이 없는 공수표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희망이 있어야 기다릴 거 아냐. 태규 씨, 정말 날 사랑하는 거 맞아? 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어. 우리가 남야? 우린 자그만치 칠 년 동안이나 몸을 섞은 사이야.”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 해미 너와 나 사이엔 서로에 대한 구속이나 약속 같은 건 없기로 했어. 누구든 싫어지면 깨끗이 보내주고, 떠나기로 했다고.”
  “그래서 지금 태규 씬 내가 싫어졌다는 거야?”
  해미의 양미간이 좁혀지며 짙은 눈썹이 불 맞은 송충이처럼 꿈틀했다. 해미가 자존심이 극도로 상했을 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솔직히 그건 아냐. 너무 무책임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영화는 내 마지막 자존심야. 난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아. 언제 끝장이 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넌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진심으로 축복해 줄게. 그리고 날 잊어.”
  태규는 해미가 정말로 그래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날개도 없이 끝없이 추락만을 계속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뒤범벅이 돼있었다. 지금 자신이 내뱉는 말들이 해미에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날더러 자기를 잊으라고? 축복해 주겠다고? 그 말 진심야?”
  해미의 표정이 유통기한이 지난 빵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래 진심야.”
  태규는 낭떠러지에서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던 밧줄을 놓아버리는 심정으로, 하지만 해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분명하게 말했다.
  “그럼 우린 이 시간 이후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그래. 네 뜻대로 해.”
  태규는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탁자 위에 깍지를 낀 채 올려놓은 해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태규는 그런 해미의 손을 못 본 척 외면했다.
  “…알았어. 태규 씨 뜻대로 해줄게. 이제 우린 이 시간 이후로 다시 볼 필요가 없겠지. 남남이 되는 거겠지?”
  긴 침묵 끝에 해미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태규는 짧게 대답했다. 울고 싶었다. 아니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자신의 가슴속에 이토록 잔인함이 숨어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물끄러미 태규를 쳐다보던 해미가 핸드백을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태규는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해미를 보고 싶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
  태규는 일어선 해미가 코앞에 불쑥 내민 손을 보며 의미를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부딪쳤다. 해미의 얼굴은 방금 전과는 달리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악수.”
  해미는 태규가 악수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태규가 말했었다. 악수에는 왠지 이별의 냄새가 배어있어서 싫다고. 태규는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도 절대로 악수를 하지 않았다.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손이 더러워서’, ‘손에 땀이 많이 나서’, ‘손목을 다쳐서’ 등 핑계를 대며 악수를 피했다. 두 번째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사람들도 태규의 그런 습성을 알고는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태규는 해미가 내민 손을 잠시 뚫어져라 보다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해미의 손을 꼭 쥐었다 놓고는 혼잣말처럼,
  “잘 가라, 내 사랑.”
  중얼거리며 휘청이는 걸음으로 먼저 카페를 나갔다. 해미는 그때까지 태규와 악수한 손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멀어져 가는 태규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 사랑?’
  해미는 무심코 들었는데, 문득 태규가 남긴 그 마지막 말이 미늘처럼 마음에 걸렸다. 급하게 시선을 돌려 태규를 찾았지만 이미 북적대는 인파 속으로 멀어져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 햇살은 투명하다 못해 챙강챙강 쇳소리라도 낼 것처럼 날카롭게 부딪치며 내리 쏟아지고 있었다. 해미는 때늦게 뭔가 급한 일을 생각해낸 사람처럼 빠르게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군산시 명산동. 태규가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던 곳이었다. 살던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이층 양옥이 올라가 있었다. 태규는 살던 집터 옆 언덕배기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어루만졌다. 느티나무는 그동안 세월의 연륜 만큼 자라있었다. 태규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성장했던 곳을 돌아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느티나무를 천천히 어루만지던 태규는 어느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느티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희미하게 남은 어떤 흔적 때문이었다.
  ‘내 나무’
  당장이라도 넘어져 코방아를 찧을 것처럼 삐뚜름하게 새겨진 조악한 글씨. 그 글씨의 흔적을 발견한 태규는 콧날이 시큰했다. 30년도 훨씬 넘은 세월 동안 상처로 간직해 온 느티나무. 그 글씨는 태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글씨를 막 배울 무렵, 연필 깎는 칼로 느티나무 속살이 파헤쳐지도록 깊숙이 새겨놓은 글씨였다. 폭염이 소나기처럼 퍼붓던 여름날, 나무에 매미처럼 매달려 땀을 뻘뻘 흘리며 새겼던 글씨였다. 그 글씨가 아직껏 남아있다니. 그날의 일이 추억이란 포충망에 걸려 아세테이지에 곱게 접힌 네잎클로버처럼 이토록 명징하게 떠오르다니. 태규는 그 글씨를 어루만지다 다시 한 번 콧날이 찡해왔다.
  태규는 명산동을 지나 다녔던 초등학교를 돌아보고, 월명공원 산책로도 돌아보고, 째보 선창을 향했다. 부둣가는 출항을 앞둔 배들과 만국기를 달고 입항하는 배들로 붐비고 있었다. 금강하구둑이 생긴 뒤로 차가 다녀서 전보다는 못하지만, 군산과 장항을 오가는 도선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태규는 금강 건너로 우뚝 보이는 장항제련소 굴뚝을 보았다. 이곳 금강은 개구쟁이 친구들과 발가벗고 헤엄을 치며 놀던 곳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개구쟁이들을 보며 위험하다고 혼냈다. 때론 벗어놓은 옷을 가져갔다 돌려줄 때 꿀밤을 때리기도 했다. 꼬맹이들도 꾀가 생겨 비닐봉지에 옷을 넣고, 그 봉지를 머리 위에 고무줄로 묶고 헤엄치며 놀던 곳이었다.
  “네 이놈들! 걸리면 불알을 싹 발라버릴거싱께 그리 알거라잉!”
  태규는 도선장 매표소를 돌아보았다. 당장이라도 도선장 매표소 털보 아저씨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달려올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털보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30년도 넘어버린 옛날 이야기였다.
  태규는 선산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들러 소주잔을 놓고 절을 올렸다. 지난 추석 때 벌초를 했건만 봉분과 산소에는 자신의 심난한 마음처럼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태규는 손으로 웃자란 잡초들을 뽑기도 하고 뜯어냈다. 이것이 마지막 벌초인 셈이었다. 생전 힘든 일을 해보지 않은 태규 손은 금세 물집이 잡히고 풀물이 들었다. 물집이 잡혔다 터진 손바닥이 몹시 쓰라렸다.
  “이곳에서 석양이 비껴갈 무렵, 부감으로 주인공들의 첫 키스 신을 리얼하게 찍으면 그림이 되지 않을까요?”
  군산을 다녀온 태규는 석양이 물들고 있는 양수리 물가에 서 있었다. 칠년 전, 영화를 찍기 위해 장소 헌팅을 할 때, 해미가 했던 말이었다.
  “주인공들에게 키스 신을 시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태규의 말에 곱게 눈을 흘기면서도 싫지 않은 듯 응하던 해미와 첫 키스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태규는 해미와 자주 들렸던 강변의 카페와 음식점도 돌아보았다. 어느 한 군데 의미 없는 곳이 없었다.
  캄캄해진 길을 따라 차는 속초를 향했다. 대포항과 설악산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태규가 캄캄한 바다를 곁눈질하며 대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태규는 울리지도 않은 핸드폰 폴립을 몇 번이나 열어보았다. 핸드폰 벨이 울린 것만 같은 환청 때문이었다.
  “해미야!”
  태규는 외진 바닷가 갯바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해미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이제 사흘 후면 해미는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될 것이고,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였다. 갯바위에 부딪쳐 솟구친 파도는 작은 포말들을 허공에 뿌리며 온몸을 적셔왔다. 태규는 그냥 이대로 검푸른 바다에 뛰어들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구두를 손에 들고 밤바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뛰어오며 깔깔대던 해미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였다. 그 환영에, 아이를 낙태시키고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해미의 모습이, 화장실에서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자신의 팬티와 러닝셔츠를 빨며 환하게 웃던 해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생선찌개를 끓이기 위해 생선을 사오긴 했는데, 칼을 들고 차마 생선 대가리를 자르지 못하고 쩔쩔 매던 모습도….
  “사랑 없는 결혼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니?”
  “상관없어.”
  해미가 처음으로 태규에게 치과의사와의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아버지의 강요로 억지로 선을 봤다는 남자였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니? 상관없다니.”
  “방금 나에게 무책임하다고 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규 씨는 그 말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안 들어?”
  “…….”
  “아이들은 낳을 수 있을 때까지 낳을 거야.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그 사람도 찬성했어. 다시는 생명을 죽이는 죄를 짓지 않을 거야.”
  태규는 해미의 입에서 나온 ‘그 사람’ 과 ‘생명을 죽이는 죄’란 말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아팠다. 아이를 지우고 병실에 누워있던 해미의 핏기 없던 얼굴. 며칠을 이어지던 하혈. 해미의 끝없는 눈물….
  “지금이라도 날 잡으면, 무명의 영화감독 아내로 만족할 거야.”
  태규를 바라보는 해미의 눈빛은 간절했다.
  “가! 그게 너를 위한 길이야. 아니, 날 위해서도…”
  태규는 자신이 들어도 쌀쌀맞을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어차피 정을 뗄 바에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태규 씨는 내가 죽는 대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겠지. 지독한 에고이스트!”
  입술을 깨물며 일어선 해미는 찬바람이 돌 정도로 돌아서 갔다. 한 번쯤 돌아보겠지, 돌아보았으면, 하는 태규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것이 해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태규는 어쩜 그날 이미 자살 여행을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해미를 놓아주고 싶었다. 언제 시작할 지도 모르는 영화를 붙잡고 세월만 축내고 있는, 남들 듣기 좋게 허울만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자신. 자신만 아니면 해미는 이미 몇 배나 좋은 조건을 갖춘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도 남을 사랑스런 여자였다. 사랑 받는 아내로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더 이상 자신이 만든 새장 안에 가두어 놓고 싶지 않았다. 그건 욕심이었다. 아니, 새장에 가둔 새라면 적어도 일용할 모이 정도는 충분히 주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반듯하게 된 것이 없는 사내.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사랑이 깊을수록 더 큰 새장이 필요한데, 해미를 가둔 자신의 새장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태규는 다시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였다. 이제 4시간 후인 오후 1시면 해미의 결혼식이었다. 처음에는 결혼식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죽음을 앞두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해미를 보고 싶었다. 돌아보니, 칠년 동안 해미에게 잘해주었던 것보다는 가슴 아프게 했던, 행복했던 때보다는 다투고 상처 주었던 일들이 자꾸만 아프게 눈에 밟혔다. 이렇게 끝이 날 거였다면 좀더 잘해주었어야 했다. 누가 그랬던가. 귀한 것은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은 이별 뒤에야 깨닫는 것이라고. 태규는 그 말들이 자신을 두고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핸드폰이 울린 것은 워커힐을 막 지날 때였다. 액정에 한수 이름이 떴다. 태규는 받지 않았다. 울던 벨이 멈추자 곧바로 또 벨이 울렸다. 망설이던 태규가 천천히 핸드폰 폴립을 열자마자, 잔뜩 억눌렸던 용수철이 튕겨져 오르듯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너 지금 어디야?”
  “…….”
  태규는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모든 게 끝인 마당에.
  “야이, 새끼야! 너 지금 어디냐고? 해미가 교통사고 나서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단 말야! 이 미친 새끼야!”
  “뭐! 언제? 지금 어디에 있는데? 설마… 잘못된 건 아니지?”
  태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어떻게 차를 도로 가에 세웠는지 기억도 없었다. 온몸의 피가 순간적으로 모두 빠져나간 듯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한강병원 응급실. 차는 완전히 작살났고, 앞으로 한두 시간이 중요하대. 너 이 새끼야, 지금 어디냐고!”
  한수는 악을 쓰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두 사람 사이를 잘 알고 결혼하기를 바라던 친구였다. 울먹이고 있는지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한수는 울먹이고 있는데 정작 태규는 오히려 점차 차분해지고 있었다.
  “서울. 워커힐을 지나고 있어.”
  “야이, 미친 새끼야.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해미는 의식을 잃고도 네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고. 140킬로로 달리다 가로수를 들이받았는데… 내가 볼 때는 자살을 시도한 게 분명해. 넌 이 새끼야, 내가 장담하는데… 분명히, 분명히 지옥에 떨어질 거야.”
  “오늘 결혼식인데…”
  “와! 나 미치겠네! 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야. 지금 그게 문제냐? 해미는… 관두자. 지금 그딴 걸 따질 때는 아니니까.”
  태규는 전화를 끊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해미가 잘못된다면…’
  태규는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런 불길한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혐오스러웠다. 해미는 가로수를 들이박기 직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작 죽음을 생각하고 모든 추억을 정리하고자 마지막 여행을 떠난 건 자신이 아니었던가.
한수는 태규를 보자 쌍심지를 돋우며 노려보다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태규는 그런 한수를 밀어내고 해미에게 갔다. 해미는 미라처럼 온몸이 붕대로 감긴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붕대는 피로 붉게 물들어있었고, 산소 호흡기를 쓴 채 힘겹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지 간헐적으로 숨을 멈췄다 온몸을 뒤틀며 몰아쉬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숨이 멈춰질 것만 같은 불안한 상태였다.
  “자네가 김태규? 영화감독 맞지?”
  해미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태규에게 해미의 아버지가 물었다. 해미에게 자주 들어서인지 처음 보는데도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전체적으로는 차가워 보이면서도 인텔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상이었다.
  “네. 제가 김태규입니다.”
  태규는 처음 보는 해미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결국은, 끝내는 이런 자리에서 첫 인사를 나누는구먼.”
  “죄송합니다.”
  태규는 다시 한 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해미 아버지는 태규를 끌고 응급실을 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온 해미 아버지는 담배를 물었다. 태규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었다. 비는 어느새 소나기로 변해있었다. 해미 아버지는 담배가 반쯤 타들어가도록 말이 없었다. 무거운 입을 연 것은 그 뒤로도 한참 후였다.
  “해미는 자네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네. 해미 엄마도 충격을 받아 지금 병실에 누워있고.”
  “죄송합니다.”
  해미 아버지는 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여, 허공을 향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태규도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같은 사내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우리 해미를 사랑하나?”
  “…….”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니란 말인가?”
  해미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는 제재소 톱날을 막 통과한 각목처럼 각이 서 있었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전… 해미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진심입니다.”
  태규는 해미를 칠년 동안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었다. 해미가 그토록 그 말을 듣고 싶어 수없이 졸라댔지만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태규는,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랑은 그만큼 가식이 된다고 믿었다. 그런 태규가 당사자인 해미가 아닌 아버지에게 해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저 녀석이 저랬겠지. 다시 묻겠네.”
  태규를 바라보는 해미 아버지의 눈빛이 산소용접기의 파란 불꽃처럼 강렬했다.
  “해미가 깨어나면 결혼하겠나?”
  태규는 묵직한 둔기로 갑자기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해미는 자네의 진심을 알고 싶었던 거야. 오늘 결혼식은 처음부터 없던 거였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태규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모두 해미가 꾸민 짓이야. 그런데, 결혼한다는 시간이 다가오는 데도 자네한테는 아무 연락이 없자… 요 며칠 동안 해미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어. 자면서도 핸드폰을 쥐고 자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이걸 보게. 해미 사고 차에서 발견한 글일세. 해미는 생사를 오가는 와중에도 이걸 손에 꼭 쥐고 있었어.”
  해미 아버지는 태규에게 피가 묻어 중간중간 흐려져 있는 편지지를 내밀었다.
  “만약에 해미가 잘못된다면… 자네와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끝까지 반대한 내게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 해미에게 있어 자네는 그만큼 큰 비중이었겠지. 하지만, 지금도 난 자네를 선택한 해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네. 그런 내가 결혼을 허락하는 것은…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내 딸 해미를 위해서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네. 먼저 들어가겠네.”
  태규는 서둘러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어가던 태규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이 방울방울 편지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으면서,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보내야 하는 남자의 아픈 마음보다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남자를 더 아프게 바라보아야 하는, 한 여자의 죽음보다 깊은 절망을 보았다. 그 절망의 나락 끝에 선 선택이 결국은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그때였다. 불현듯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해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태규의 귓전에 울렸다.
  “알았어. 태규 씨는 내가 죽는 대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겠지. 지독한 에고이스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도심을 하얗게 태워버릴 기세로 번개의 섬광이 캄캄해진 하늘을 가로지르며 연달아 번쩍였다.
  “우르르 쾅! 쾅!”
  뒤이어 엄청난 천둥소리가 통곡하고 싶은 태규의 마음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귀가 먹먹할 정도로 때려댔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