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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岩 張基萬 2015. 3. 23. 23:46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세계 Ⅰ- Gian Lorenzo Bernini

  [ 이탈리아 바로크  조각가, 화가, 건축가, 1598.12.7~1680.11.28]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세계>를 더 보시려면 아래 포스트를 클릭하세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세계Ⅱ(1631~1680)http://blog.naver.com/ohyh45/20192492678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세계Ⅲ(건축, 그림) 』   http://blog.naver.com/ohyh45/20192661092
 

 

Gian Lorenzo Bernini, self-portrait, 1623, 38 × 30 cm (15 × 11.8 in),

oil on canvas, Galleria Borghese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1598.12.7~1680.11.28]
 

지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2.7~1680.11.28]

 

이탈리아 로마에서 활약하였다. 조각가인 아버지 피에트로의 지도로 일찍부터 기술을 연마하였으며 아버지와의 합작도 많이 있다.  초기의 대표작은 추기경 보르게세를 위해 만든 4개의 대리석상이며, 그 중에서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와 특히 '아폴론과 다프네'는 유동적인 구성과 특유의 관능미가 놀랍도록 정교한 대리석 조각법으로 표현된다.

 

1623년부터 우르바누스 8세를 비롯한 역대 교황의 총애를 받아,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장식·분수 등 다방면에 걸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의 예술은 인노켄티우스 10세 때에 완전히 성숙하였다. 특히 1646∼1652년에 만들어진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안의 성(聖) 테레지아는 완벽한 대리석 조각법이 십분 발휘되어, 산뜻한 구성 속에 베르니니 특유의 감미롭고 요염한 관능미가 넘쳐 흐르고 있다.

 

그의 명성은 나라 밖까지 퍼져, 166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초대로 파리에서 그의 흉상을 제작했다. 귀국 후 로마의 산 프란체스코 아리파 성당에 '지복자(至福者) 알베르티나(1675)'를 만들었는데, 탁월한 기교와 아름다운 관능미의 표현에는 전혀 쇠퇴된 바가 없다.

 

건축가로서는 산피에트로대성당의 건축주임으로서 완성에 힘을 다하였으며, 특히 정면의 주랑(柱廊)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또 로마시대의 분수 조각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피아차 나보나의 분수, 트리토네의 분수 등이 유명하다. [위키 백과]

 

베르니니는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위대한 조각가이다. 그는 기적을 부르는 마술과 같은 조각을 창조하여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당대 교회와 왕실 등의 총애를 받아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많은 조각들을 탄생시켰다.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역시 조각가였는데, 그는 아들의 어린 시절 재능을 간파하고 자기 최고의 걸작품이 곧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보르게세 추기경 앞에서 섬세한 조각품을 선보여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던 베르니니는 그의 재능을 인정한 추기경의 후원을 받아 전문적인 조각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는 훗날 위대한 조각가 탄생의 초석이 되었다.

 

베르니니는10대부터 교황청의 총애를 받아 굵직굵직한 건축과 조각 제작에 발탁되었고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수도원, 교회, 왕실, 광장 등 이탈리아 곳곳에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남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지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Sculptures 1   

 

이탈리아의 조각가,건축가, 초기작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 <아폴론과 다프네>는 정교한 대리석 조각으로 유명하다. 교황의 총애로 성당의 조각 제작에 많이 참여하였으며, 산 피에트로 대성당 건축도 담당하였다. 조각가인 아버지 피에트로의 지도로 일찍부터 기술을 연마하였으며 아버지와 합작도 많다.

초기의 대표작은 추기경 보르게세를 위해 만든 4개의 대리석상이며, 그 중에서 <플루토와 프로세르파나>와 특히 <아폴론과 다프네>(1622년 전후)는 유동적인 구성과 특유의 관능미가 놀랍도록 정교한 대리석 조각법으로 표현된다. 

1623년 부터 우르바누스 8세를 비롯한 역대 교황의 총애를 받아, 조각 뿐만 아니라 건축, 장식, 분수 등 다방면에 걸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의 예술은 인노켄티우스 10세 때에 완전히 성숙하였다. 특히 1646 ~1652년에 만들어진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안의 성 테레지아는 완벽한 대리석 조각법이 십분 발휘되어, 산뜻한 구성 속에 베르니니 특유의 감미롭고 요염한 관능미가 넘쳐 흐르고 있다.

그의 명성은 날 밖에 까지 펴져 1665년 프랑스 국왕 루이14세의 초대로 파리에서 그의 흉상을 제작하였다.  귀국후 로마의 산 프란체스코 아리파 성당에 <지복자 알베르티나>(1675)를 만들었는데 탁월한 기교와 아름다운 관능미의 표현에는 전혀 쇠퇴된 바가 없다.

건축가로서는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건축 주임으로 완성에 힘을 다하였으며, 특히 정면의 주랑구성은 주목한 만하다. 또 로마시대의 분수 조각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피아차 나보나의 분수, 트리토네의 분수 등이 유명하다.    

 

 

Funerary monument of Bishop Giovanni Battista Santoni († 1592).

 Bust of the deceased by Giovanni Lorenzo Bernini,1612,

Basilica di Santa Prassede, Roma.

 

Bust Of Giovan Battista Santoni, 1610

 

 


 

Gian Lorenzo Bernini, Martyrdom of St Lawrence, 1614-15, Marble, 66 x 108 cm

Contini Bonacossi Collection, Florence 

 

 

The Martyrdom Of St Lawrence, 1614-15

 

 

 

 The Goat Amalthea with the Infant Jupiter and a Faun, 1615, 44cm,

Museo e Galleria Borghese, Rome 

 

아말테아는 제우스의 양어머니로 염소의 모습을 한 님프로 알려져 있다. 양육의 신 아말테아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조각한 작품으로 염소의 털과 발굽을 조각한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Bacchanal :A faun Teased by Children Marble, 1616~1617, 

Metropolitan Museum of Art, Manhattan. York City

 

 

 A picture of Gianlorenzo Bernini's sculpture of St Sebastian in the Museo ,

1617 ~1618,Thyssen-Bornemisza in Madrid, Spain

 

 

Saint Sebastian, 1615, (detail), Marble, Thyssen Bornemisza Collection, Lugano

 

 

Paul Ⅴ, 1617-18.

Bust of Camilla Barberini nee Barbadori , 1618,  marble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Denmark

 

 

 

Aeneas and Anchises Mable, 1618 ~1619, 220cm, Galleria Borghese, Rome

 

 

Aeneas, Anchises, And Ascanius, 1618-19

 

Aeneas Anchises, and Ascanius(detail) Marble, 1618 ~1619,

Galleria Borghese,Rome

   

 

Bernini's sculpture of a Damned Soul,1619, Marble, Rome

 

 

지옥에 떨어진 영혼

 

이 작품은 본인의 얼굴 표정을 관찰하게 제작한 작품으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만들기 위해 베르니니는 스스로 자신의 팔을 불로 지졌고 그 고통을 몸소 느끼며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스스로 느껴 보아야만 완벽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베르니니는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열심히 탐구했다.

 

 

Bust of Camilla Barbadori (Mother of Pope Urban vIII Barberini) 

 At Statens Museum for Kunst. 1619.

 

Portrait Bust of Monsignor Carlo Antonio dal Pozzo,
Archbishop of Pisa (1547 - 1607), 1620년 

 

 

Torso of Maptune Terracotta, 1620. Hermitage, St. Petersburg

 

Le cardinal François de Sourdis par Le Bernin, 1620~1622, marble,

Musee d'Aquitaine, Bordeaux

 

 
 
Pope Gregory XV, 1621년 ,  marble

Gallery: Collection of Mr and Mrs J. Tanenbaum, Toronto, Canada

 

 

Gian lorenzo bernini, ritratto di antonio cepparelli, 1622, Marble,

San Giovanni dei Fiorentini, Rome

 

 

 

Portrait bust of pedro de foix montoya, 1621,  Marble Sculpture, 

Santa Maria di Monserrato, Rome

 

 

The Rape Of Proserpina, 1621-22,  marble ,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페르페소네의 겁탈, 1621 ~1622,

 

 

페르페소네의 겁탈(우), 1621 ~1622,

 

 

 

페르페소네의 겁탈(좌), 1621 ~1622, 

 
 
지하의 신 플루토 (그리이스 신화의 하데스와 동격 이라고 함)와 프로세르피나의 조각품이다. 프로세르피나는 곡물과 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로 하데스에게 납치가 되었다고한다. 이 사실을 안 데메테르는 제우스 신에게 간청을 했지만 제우스의 속마음은 다른곳에 있었다.
 
형인 하데스를 결혼 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제우스는 계략을 꾸며서 프로세르피나에게 석류을 먹여서 어쩔수 없이 결혼을 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데메테르의 간곡한 부탁으로 1년중 4개월은 하데스와 지내고 나머지 기간은 땅위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하데스와 있을때는 땅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게 되었다.

 

 

 

The Rape of Proserpina, 1621–1622, 225cm, Galleria Borghese, Rome

 

제우스의 형 하데스는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무시무시한 신입니다. 그런데 제우스의 딸인 조카 페르세포네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했는데요. 이 사실을 안 제우스가 페르세포네를 놓아달라고 항의하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석류를 먹여 결혼해버리고 맙니다.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저승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지요. 결국 페르세포네는 1년 중 반은 어머니와 함께 지상세계에서 살고, 나머지 반은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살게 됐습니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 있는 기간을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부릅니다.

 

<프로세르피나의 납치. 페르세포네의 납치를 그린 작품으로 완력으로 그녀를 차지하려는 저승의 왕 하데스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격렬히 저항하는 페르세포네의 눈물이 대비를 이루는 작품. 대리석이라고 믿기지 않는 돌의 질감은 관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프로세르피나의 납치. 디테일 컷. 거칠게 움켜진 손에 의해 눌려진 몸. 조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그야말로 기적을 보여준다. 하데스의 손의 주름 하나 뼈 마디, 핏줄까지 생생하게 전해오는 듯하다. 살아숨쉬는 돌이란 표현이 떠오르는 작품

 

 

Bernini's Neptune and Triton, 1622-3, Marble sculpture, 182.2cm,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Bernini's Neptune and Triton (front view), 1622-3

 

 

 

Detail of Triton from Bernini's Neptune and Triton, 1622-3.

 

넵튠과 트리톤. 포세이돈으로도 알려져 있는 바다의 신 넵튠, 트리톤은 넵튠의 아들이다. 삼지창을 들고 바다를 지배하는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넵튠과 그의 아들 트리토느이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다.

 

넵튠은 바다의 상징이자 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이후 소개할 메두사와 연인 관계로 아테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이에 격분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괴물로 변하게 했다는 전설로도 유명하다.

 

 

 

 The sculpture "Apollo and Daphne" by Bernini in the Galleria Borghese. 1622-25,

Marble, 243cm, Galleria Borghese, Rome

 

 

Apollo And Daphne(좌), 1622-25,  marble,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아폴로와 디프네(우), 1622 ~1625

 

아폴론과 다프네 (Apollo e Dafne; 1622-25)는 베르니니의 시대 이후로 널리 칭송받아온 작품으로, 이후의 작품인 다비드와 함께 베르니니가 도입한 새로운 조각적인 미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 하나에서 가장 극적이고 동적인 순간을 묘사한다.

 

이 이야기에서 광명의 신인 아폴론은 사랑의 신인 에로스를 어른의 무기를 가지고 논다며 꾸짖는다. 이에 앙갚음으로 에로스는 황금 화살로 아폴론을 맞추어 아폴론을 다프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푹 빠지도록 만든다.

 

그러나 다프네는 영원한 순결을 맹세한 물의 님프인데다 게다가 에로스에게 납 화살을 맞아 아폴론의 접근에 무감각하게 된다. 조각은 아폴론이 결국 다프네를 잡은 순간을 묘사한다. 그러나 다프네는 강의 신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월계수 나무로 변신시켜 그녀의 아름다움을 없애고 아폴론의 접근을 피할 수 있도록 애원한다.

 

이 조각상은 여러 여러 수준에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것은 사건을 잘 묘사할 뿐 아니라 기발한 착상이 정교하게 표현된 것을 보여준다. 이 조각은 생명이 없는 초목으로 변한 인간을 돌로 표현하여 변신의 과정을 보여준다.

 

다르게 말하면 비록 조각가의 기술이 생명이 없는 돌을 살아있는 이야기로 변화시키지만 이 조각은 그 반대를, 그러니까 여자가 나무가 된 순간을 이야기 한다. 

   

 
 

 

 

Apollo And Daphne(detail), 1622-25

 

아폴론과 다프네. 다프네를 사랑하게 된 아폴론과 에로스의 증오의 화살로 인해 아폴론을 증오하는 다프네.. 아폴론의 외사랑은 그를 끝까지 거부한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화함으로써 끝이 난다. 조각 속 두 사람은 완벽히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이미 나무로 화하고 있는 다프네의 모습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David , Marble, 1623 ~1624,  178cm, Gallleria Borghese, Rom

 

 

 

David, 1623-24

 

 
 
David (전), 1623-24년
 
다른 측면에서 본 다비드상. 성서에 나오는 인물인 다비드의 어린 나이에도 용감한 모습이다. 새총을 꺼내들고 골리앗을 맞추려는 순간을 조각하였는데 역동적인 다비드 모습이 인상깊다. 
 
돌을 쥐고 있는 팔근육의 모습을 잘 보라. 베르니니는 이 작품을 위해 수백번 돌을 던지는 연습을 하며 자신의 근육을 직접 스케치했다
 

 

David (후), 1623-24년

 

다윗 (David; 1623-24) 은 '아폴론과 다프네'처럼 당시 혁명적인 조각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이전에전 돌로는 시도되지 않던 방법으로 동작을 묘사한다. 이 성서에 나온 청년은 그의 발사체를 쏘아올리기 위해 긴장되고 균형 잡혀 있다.

 

베르니니의 선대들이 만든 유명한 다비드들은 사건 뒤의 정적인 순간을 묘사하였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서의 승리를 얻은 안정감이나 도나텔로나 베로키오의 다비드에서 볼 수 있는 도도한 외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감긴 토르소, 주름살진 이마, 그리고 잔뜩 찡그린 얼굴을 지닌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동적인 동작과 르네상스의 정체와 고전적 엄격함을 크게 뛰어 넘은 감동을 보여주는 바로크 정착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의 영웅적 본성을 표현했다; 베르니니는 그가 영웅이 된 순간을 잡아내었다

 
 
결연한 의지가 담긴 표정 디테일.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베르니니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David (detail) Marble, 1623 ~1624, Galleria Borghese, Rome

 

베르니니의 다비드상. 다비드는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등 다양한 조각가들의 소재가 되었다. 특히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작은 돌 하나로 제압하는 다비드라는 인물은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자신으로 골리앗을 아버지로 투영하여 아버지에 대한 강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니니에게 있어 골리앗과 같은 존재는 당시 그의 예술 세계가 꽃피우는데 큰 장애가 되었던 르네상스적 예술 작품의 질서였다.

 

바야흐로 바로크 시기. 풍성한 육신의 묘사와 보다 깊이 있는 화면 구성에 대한 시도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던 이 시대 베르니니는 기존의 표현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방법, 특히 대리석을 단순한 돌의 느낌을 넘어서 보다 부드러운 살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그에 대한 시기는 당연했고 수많은 고난 앞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려 노력했다. 다비드가 굳건한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돌을 던지는 존재는 그를 속박하려 했던 구시대적 질서 그 자체였다.

  

 

Santa Bibiana by Giovanni Lorenzo Bernini at Church of Santa Bibiana. 1624–1626,

Marble sculpture. Rome.

 

 

Bust of Cardinal Scipione Borghese, 1630,

 

'발다키노(Baldacchino)'와 '교황의 제대(Papal Altar)'

 

'발다키노(Baldacchino)'  

 

 

 

 

'발다키노(Baldacchino)'와 '성 베드로 청동상(Bronze Statue, St. Peter)','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하여 반들 반들 해 졌다

 

 

발다키노 옆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상

 

 

 

The Baldacchino, 1624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의 보물,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 '발다키노(Baldacchino)'와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Rome, Italy 

 

 

 

Baldacchino and Choir of St. Peter's Basilica, 1623 ~1624, Bronze,

Saint Peter's Basilica, Vatican City

 

돔 안쪽 모자이크에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저 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너에게 천국문을 여는 열쇠를 주리라." 본당 입구에 제단까지 길이는 186.36m이다. 빌리카 장식은  1650년 성년을 기념하기위해 우르반 8세 바르베리니 통치 때 시작한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감독했다.

 

 

 
Baldachin petersdom

 

 

 Baldachin of St. Peter's Basilica in the Vatican Cit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발다키노(Baldacchino)', 즉 '천개(天蓋)' 는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의 명에 의해 제작되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즉 '천개(天蓋)' 는 옥좌를 덮는 덮개를 말하는 것으로 '베르니니(Bernini)' 천개(天蓋, Papal Altar & Baldacchino)는 그 위에 얹혀진 '미켈란젤로의 돔(Dome of Michelangelo)'과 함께 '르네상스Reneissance)'와 '바로크(Baroque)'의 예술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했던 막대한 양의 청동 금속은 이탈리아에서 모아졌는데, 그 중에서도 '베니치아(Venechia)'지방에서 많은 양이 모아왔다 이렇게 모아진 금속의 양은 약 95,900kg에 달했다. 그래도 양이 부족하자, 마침내는 '판테온(Phanteon)'의 '주량현관(Portico)'의 청동 지붕을 뜯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일설에는 전해진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판테온(Phanteon)'의 '주량현관(Portico)'의 청동 지붕을 뜯어서 청동을 사용한것은 확실하나 일설에는 이 '발다키노(Baldacchino)'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했다하고, '사도 베드로의 성좌( The Tribune, Altar of the Chair of St. Peter)'를 만드는데 사용했다 하기도 하고, 또한 '씬탄첼로(Castel Sant'Angelo)'의 축성에 사용했다 하기도 하나,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대포 제작에 90% 이상을 사용했다 한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바로 이 떄문에 당시의 로마인들은 "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이것은 '바르바리(야만인)'가 한것이 아니라 '바르베르니(교황의 가문)'가 한 것이다"라 비꼬기도 했다. ("What the barbarians did not do the Barbernis[Urban VIII's family name]did").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이 '천개(天蓋)'를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베르니니(Bernini)'는, 자신의 이 작품에 대해 "인간이 영혼이 하늘로 올려지는 것에 착안되었다"고 했다 한다. 네개의 기둥을 덮고 있는 는 그 무게만도 37,000 Kg에 달한다.

내부 중앙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성령의 빛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천개天蓋) 위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중앙 돔(코폴라) 1590년 완공된 것이다 대성전 바닥에서 밖의 십자가 끝까지 136.57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이며 코풀라 안쪽 지름은 41.47m로 판테온이나 피렌체 대성당 의 돔보다는 조금 작다로 한다

 

 

 

발다키노 위의 천사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어쨋건 '사도 베드로(Peter the Apostel)'의 무덤을 더욱 더 화려하게 장식하려 했던 교황의 심정은 1624년 우여곡절 끝에 이 '로렌초 베르니니(Lorenzo Berninji)'의 '발다키노(Baldacchino)'는 1633년 6월 29일, '사도 베드로(Peter the Apostel)'의 축일에 축성되었다. 

 

'발다키노(Baldacchino)', 네 모서리의 천사상. '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네 모서리의 천사상. '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지붕 위에는 네 명의 천사가 '꽃으로 만든 '화관(花冠)'을 하늘로 들어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Baldacchino', '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Baldacchino', '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그리고 네 천사 중간에 있는 다른 작은 천사들은 교황의 삼중관,'티아라(TIara)'와 천국의 열쇠, 칼 그리고 성서를 들고 있다. 이 중 삼중관 '티아라(TIara)'와 천국의 열쇠는 사도 베드로를 상징하며 칼과 복음은 사도 바오르를 상징한다.

 

 

 포도나무 비유를 모티브로 한 'Gian Lorenzo Bernini'의 나선형의 기둥,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나선형의 기둥은 '성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의 초기 형태였던 초기 '콘스탄니누스 기념성당(Chaple of Constaninus)' 내부에 있던 나선형의 4개 기둥에 그리스도의 포도나무 비유에 대한 말씀을 주제로 한 문양이 부조되어있었는데, 이를 모티브로 삼아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는 이 나선형의 기둥을 제작하였다.

 

 

 

 

 포도나무 비유를 모티브로 한 'Gian Lorenzo Bernini'의 나선형의 기둥,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Baldacchino', '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 우루바누스 8세의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의 상징인 꿀벌이 장식되어있는  'Gian Lorenzo Bernini'의 나선형의 기둥 밑부분,

 

나선형 기둥 받침대에 새겨진 천국의 열쇠와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에 상징인 꿀벌이 그려져있는 '교황 우루바누스 8세의 문장(Pope Urban VIII Arms)',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의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에 상징인 꿀벌이 새겨져있다.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사도 바오르(Peter the Apostel)'의 무덤 바로 위에 있는 이 곳은 '사도 바오로(Peter the Apostel)'의 후계자인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이 제대에 오르기 위해 마련된 7개의 대리석 계단은 '네르바의 포룸(Forum of Nerva)'에서 발견된 한 개의 커다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이다.이 제대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Italy 

1세기 때 '사도 바오르(Peter the Apostel)'가 순교를 당한 후, 이 곳에 있던 이방인들의 무덤 사이에 '사도 베드로(Peter the Apostel)'의 무덤을 마련하여 그 후계자들이 관리하여 오다가 2세기 말엽 그 무덤 위에 당시의 사제였던 '가이오(Caius,195)'와 '교황 제피리누스(Pope Zephyrinus,199-217)'가 작은 기념비를 세웠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Italy 

4 세기에 들어 그리스도교가 박해에서 풀려 자유로운 시대가 되며 '콘스탄니누스 대제(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274 - 337)'가 이 사도의 무덤을 중심으로 기념성당을 세운다. 그 후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Pope Gregorius I)' 때에 제대를 복원 수리하였으며, '교황 카리누스 2세(Pope Carinus,1119-24)' 때는 새로운 제대를 다시 만들었다.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교황의 제대(Papal Altar)'라 불리우는 중앙 제대,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현재의 제대는 '교황 클레멘스(Pope Clemens, 1159-1605)' 때에 새로 제작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이 '교황의 제대(Papal Altar)'는 '사도 베드로(Peter the Apostel)'의 무덤 위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Italy

 

 

 

'발다키노(Baldacchino)', '성 베드로 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 Rome, Italy

 
 
이 거대한 성물은 1658∼66년에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건축한 것으로 베르로 것으로 여겨지는 의자 주위를 감싸고 있다. 베르니니는 의자 바닥에 네명의 교회 박사 초상화를 그렸다. 두명은 서구사람으로 암브로즈와 어거스틴이거, 다른 두명은 동방 사람으로 아싸나시우스와 요한크리소스톰이다  

 

Charity with four children, 1627-28, Terracotta, height 39 cm,

Museo Sacro, Musei Vaticani, Vatican 

 

 

 

 

  

 

 

Charity with four children (detail), 1627-28, Terracotta, 39 cm,

Museo Sacro, Musei Vaticani, Vatican 

 

 

Tomb Of Pope Urban Ⅷ, 1627-47

 

 

Tomb of Pope Urban Ⅷ, Golden bronze and marble , 1627 ~1647,

Basilica di San Pietro, Vatican

 

 

Tomb of Pope Urban Ⅷ,(detail)  Golden bronze and marble , 1627 ~1647,

Basilica di San Pietro, Vatican

 

 

우르바노 8세의 조각상. Urban VIII Bernini Musei Capitolini

 

 우르바노 8세는 베르니니의 젊은 시절부터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그가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었다. 우르바노 8세 덕에 베르니니는 날개를 달고 거장의 반열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르니니 덕에 우르바노 8세가 종교의 예술화에 성공할 수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Tomb of Pope Urban Ⅷ (detail) Marble, 1627 ~1647. Basilica, di San Pietro, Vatican

 

 

Sepolcro di Giovanni Vigevano,1630, Marble tomb,

Santa Maria sopra Minerva, Rome

 

 

Head of Medusa. Marble, 1630., 68cm, Marble sculpture,

Capitoline Museums, Palazzo dei Conservatori, Rome

 

메두사. 포세이돈과 연인 관계였다가 아테나의 미움을 사 흉칙한 몰골로 변해버린 메두사. 고대부터 악의 화신으로 각종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온 메두사. 이 조각의 모델은 한 때 베르니니의 연인이었던 콘스탄차라 전해지는데 콘스탄차와가 자신의 동생인 루이지와 연인 관계를 맺자 격분한 베르니니는 하수인을 시켜 콘스탄차의 얼굴을 난도질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그의 뒤를 돌봐주는 추기경의 중재 하에 베르니니는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이러한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11명의 자녀를 낳은 베르니니는 평생 한눈 팔지 않고 아내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Cleaned & restored sculpture of Bernini's Medusa on exhibit at San Francisco's

Palace of Legion of Honor 

 

 

Head of Medusa (detail). Marble, 1630., 68cm, Marble sculpture,

Capitoline Museums, Palazzo dei Conservatori, 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