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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岩 張基萬 2015. 4. 28. 03:40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세계Ⅰ- Piero della Francesca

[이탈리라 르네상스 화가  1416 ~ 1492] 

 

초기의 "미제리코르디아의 성모"에서 만년의 "성탄"에 이르기까지 항상 독자적인 높은 풍격을 보였으며,원근법의 자유자재한 구사, 맑은 색채, 명석한 빛의 처리, 위엄이 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의 표현 등으로 그 시기에 보기 드문 획기적인 양식을 보였던 화가이다.

 

그는 멜로초 다 포를리, 루카 시뇨렐리 등의 뛰어난 화가들을 제자로 배출하였고, 다른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또 당대 일류의 이론가로도 알려졌으며 그 방면의 저서에는 "투시화법(透視畵法)에 대하여" 등이 있다.

 

작품은 하나같이 반듯하고 정확해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수학의 전당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금자와 먹줄을 퉁겨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공간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없이 완벽하고 명료한 원근법을 구사하던 그가 나중에 가서는 알쏭달쏭한 그림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뒤에 보이는 그림들을 원근법과 소실점, 그리고 구도라는 관점에서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란다, 완벽한 원근법이 구사된 그림이 있는 반면, 의도적으로 원근법이 무시된 그림도 혼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예술가적 도전정신인데. 저는 이 화가를 진정한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Polyptych of the Misericordia: Archangel Gabriel,  1445-1462,

oil and tempera on panel,  55 cm  X  21 cm.

 

 

 
Baptism of Christ 1448 - 1450 , Painting, Tempera on panel, 167 x 116 cm
National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Baptism of Christ(detail) 1448 - 1450 , Painting, Tempera on panel, 167 x 116 cm
National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Baptism of Christ (detail) 1448 - 1450 , Painting, Tempera on panel, 167 x 116 cm
National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무성한 호두나무 옆에서 주님이 세례를 받고, 세 천사가 이를 경이롭게 지켜본다.   요한 뒤에는 또 한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인지 벗고 있는 것인지…그 뒤 동방정교회 복장을 한 네 노인은 가톨릭과 정교회의 화해를 상징하고 있다.     예수님 머리 위로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리고…. 화가는 고향 이태리 토스카나의 산·들을 배경으로 그렸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1440년 또는 1460년 경에 그렸다고 한다. 화면 중앙에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왼쪽엔 무성히 자란 호두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세 천사가 세례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요한의 뒤로는 지금 막 세례를 받고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 다음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서 옷을 벗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런 한 사람이 등을 구부린채로 서 있다.

 

그와 요한 사이로 네 명의 노인이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모습이 강물에 투영되어 있다. 머리 위로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거의 수평으로 날고 있다. 배경은 요단의 황야가 아니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푸르른 산야를 보여준다. 예수의 허리 부분과 왼쪽 천사 사이로 산세폴크로의 탑들을 볼 수 있다.

 

화가는 풀밭과 강둑에 난 식물들을 세심하게 그렸다. 세례가 영적인 치료를 뜻한다면 이에 신체의 치료를 뜻하는 약초를 그려서 세례의 성스러운 의미를 한층 고조시킨다는 해석이 있다. 왼쪽과 가운데 천사는 세례 장면을 경이롭게 지켜보는데, 세번째 천사는 유독 그림의 관객을 쳐다본다.

 

그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 소위 '페스타이올로 Festaiolo', 즉 어떤 축제가 표현된 그림 중, 관객을 그 축제로 초대하는 '축제 조직인'을 상징한다. 4명의 노인들의 옷은 화가와 동시대의 비잔틴 의상이다.

 

이것은 로마 카돌릭과 동방 정교회의 화해를 상징한다. 또한 두번째 노인이 하늘을 가리켜 수세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이 봉헌된 수도원의 원장이 동서 교회의 화해 작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1439년에 동서 교회 화합을 위한 협의회가 피렌체에서 열렸다. 

 

 

St Jerome and a Donor 1451 , Painting, Panel, 49 x 42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Italy

 

 
Location of the frescoes , San Francesco, Arezzo, Italy, Others

 

 

 

Polyptych of the Misericordia 1444 - 1464 , Mixed technique on panel,
330 x 273 cm ,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Polyptych of the Misericordia 1445 , Painting, Oil and tempera on panel 273 cm ,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작가는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작가로서의 입지가 구축되었을 때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일생을 작품 활동을 했기에 오랫동안 유럽 화단에서 잊혀진 존재로 있다가 근대 미술사가들에 의해 그 가치가 발견되면서 20세기 비평계에서는 15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되는 작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고향에 있던 형제단(confraternita)의 요청에 의해 제작된 제단화의 한 부분이다. 형제단은 중세기 평신도 영성 운동의 하나였으며, 12세기 초부터 이태리를 중심으로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10세기부터 시작된 페스트나 전쟁과 같은 사회적 혼란에서 연유된 불안감에서 죄를 뉘우치자는 신앙 각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이들은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현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면서 죄를 뉘우치는 운동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적 회개의 진정한 면모를 발견하면서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타나고 있는 초대교회의 이상 실현을 목표로 정하면서 복음적 성격이 정착된다.

이들은 수도자가 아니기에 서약이나 다른 법적인 의무는 없었으나 교회에서 인준한 규칙을 가지고 교회의 선익이나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자기 단체 고유의 복장을 착용함으로서 형제적인 일치와 유대를 강조하게 되고 크리스챤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에의 의무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Crucifixion 1444 - 1464 , Mixed technique on panel, 57 x 81 cm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Polyptych of the Misericordia (detail) 1445 , Painting,
Panel Oil and tempera on panel 273 cm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Madonna of Mercy 1444 - 1464 , Mixed technique on panel, 91 x 134 cm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성모님의 삶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중요한 속성인 자비와 사랑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형제단은 코린트 전서 12장 14- 26의 말씀을 통해 -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몸의 지체들 가운데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더 요긴합니다.” - 드러난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느님 자비의 표현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이것의 실천과 증거를 목표로 설립된 형제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자신들의 주보로 모시게 되었다.

이들은 전쟁이나 질병 등의 사회적 불안 요인이 팽배할 때 빠지기 쉬운 기복적인 경향과 현실 도피적 개인 신심생활 위주의 신앙태도에서 벗어나 하느님 자비의 실천이라는 이웃사랑의 관점으로 활동 방향을 정한 것은 대단히 예언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모님의 머리에는 황금빛 왕관이 씌워져 있다. 이것은 성모님은 큰 믿음으로 하느님이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루카 1, 28)의 표시이며, 이런 축복 속에서 성모님은 “전능하신 분께서 큰일을 하셔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루카 1,52- 53) 분이 되셨다.

성모님은 당신의 삶 안에서 자비와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속성을 더 없이 훌륭히 드러내서 피조물로서 더없는 하느님의 영광을 받으셨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전체 도상 가장 위쪽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계시고 그 아래 성모님이 계시는 것은 바로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서의 성모님의 역할을 말하고 있다.

성모님의 모습을 위엄 있고 영광스럽게 표현한 것은 메시아 관한 내용인 다음 시편을 상기 시킨다. “인간의 아들네 보다 짝 없이 아름다우신 용모, 당신 입술에는 은총이 넘쳐흐르기에 주께서 당신을 축복하셨나이다.......당신이 정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시기에 하느님이 당신의 하느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당신의 동료들 보다 당신을 더 바르셨나이다.” (시편 44, 3. 8)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격언처럼 성모님의 모성은 바위를 뚫는 물처럼 대단히 강인한 힘을 지니셨기에 위험 속에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을 가슴에 품어 그들 각자의 삶에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주신다.

 

 

이 작품은 아래에 제시되고 있는 대로 그곳 성당의 제단화로 사용되기 위해 제작된 것의 일부분이다. 제단 장식으로 성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전후였으며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 14- 15세기부터였기에 이 작품은 제단화가 한창 유행할 때 제작된 것이다.

제단 뒤 장식 벽은 성인상이나 성스러운 도상 표현을 사용했는데, 위쪽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여기 소개하는 자비의 성모님 주위에 당시 귀감으로 공경받던 성인들과 함께 아래 부분에는 주님의 일생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단화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에 제단화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


 


푸른 색 망토를 늘어트리고 팔을 벌려 서계신 성모님 좌우에 마치 암탉 품에 안겨 있는 병아리처럼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성모님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약함 때문에 힘겨운 현실을 피해 당신 품을 찾는 신자들을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받아주신다.

성모님의 푸른 망토는 그분의 가없는 모성의 상징으로 전통적 성모 신심에서 드러나고 있는 “죄인의 피난처”( Refugium Pecatorum)로서의 역할의 현실성을 상징하고 있다.

형제단 회원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 형제단의 목표인 “하느님 자비”의 산 증인인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피렌체 근방에서 시작된 형제단은 직업별 동업조합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여력을 모아 자선사업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피렌체의 “꽃의 성모 대성당”은 당시 이 도시 양모(瀁毛) 업자들의 형제단이 주축이 되어 건축되었을 만큼 이들의 신앙 열기는 구체적 지역사회와 교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 사회 수준으로는 중류 이상의 계층에 있는 안정된 삶을 꾸리던 사람임을 그들의 복장에서 볼 수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공하고 풍요로운 삶을 꾸리던 사람이었지만 이들은 참된 삶의 진리를 깨친 사람들이다. 당시 사회 수준으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 모습에서 중세 사회의 건강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감동은 어줍잖은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4명의 단원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 옆에 복면을 쓰고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바로 이 작품을 성당에 봉헌한 기증자이다.

이 기증자는 상당한 액수의 이 작품을 봉헌하면서 복음이 말씀하신 다음 구절을 명심하며 살았기에 자신의 선행을 숨기기 위해 두건을 쓰고 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어라.“(마태오 6, 3)

이런 선행의 정신을 이 작품 뿐 아니라 중세기 교회 예술에서 예외 없이 표현되었기에 많은 성미술 작품들의 작가가 익명으로 남아 있다.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했기에 자기 이름을 남기기를 몹시 자제 했으며 이 기증자 역시 그런 마음이었기에 복면을 쓴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는 자기선전의 시대이며 이것이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로 여기기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데 대단한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때 교회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교회 역시 인간들이 모인 곳이기에 그러려니 한다면 별 문제이지만, 교회는 복음을 외치는 곳이 아니라 복음을 보여주고 증거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거룩한 것을 등에 업고 자기 과시를 한껏 하고자 하는 얄팍한 신앙의 표현은 마음을 좀 씁쓸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두건을 쓰고 등장하고 있는 이 기증자의 모습은 자기 과시에 혈안이 되어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신앙의 중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 아래 부분은 이 작품을 담고 있는 제단화의 전체이다. 전체를 천천히 살피노라면 가톨릭 신앙의 심오하면서도 너무도 인간적인 따스함을 체온처럼 느낄 수 있다. 이 한폭의 제단화는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신자들에게 대단한 설득력있는 복음 선포가 될 수 있었다.

 

 

St. Sebastian and St. John the Baptist 1444 - 1464 , Mixed technique on panel,
90 x 108 cm ,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St. John the Evangelist and St. Bernardine of Siena 1444 - 1464 ,Mixed technique on panel, 90 x 109 cm ,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마지막 아래 부분은 이 작품을 담고 있는 제단화의 전체이다. 전체를 천천히 살피노라면 가톨릭 신앙의 심오하면서도 너무도 인간적인 따스함을 체온처럼 느낄 수 있다. 이 한폭의 제단화는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신자들에게 대단한 설득력있는 복음 선포가 될 수 있었다

 

 
The Penance of St. Jerome 1450 , Painting, Panel, 51 x 38 cm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St Sigismund and Sigismondo Pandolfo Malatesta 1451 ,
Painting, Fresco, 257 x 345 cm , Tempio Malatestiano, Rimini, Italy
 
sigismondo malatesta, detail from st sigismund and
sigismondo pandolfo
 
 
 
Sigismondo Pandolfo Malatesta 1451 , Painting, Oil and tempera on panel,
44 x 34 cm ,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The Fresco Cycle (View of the Cappella Maggiore) 1452 - 1460 , Painting, Fresco , San Francesco, Arezzo, Italy

 

 

 

Prophet 1452 , Painting, Fresco, x 193 cm                      예언자 포스터인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of the True Cross: Torment of the Jew 1452 - 1466 , Fresco, 193 x 356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Torture of the Jew (detail) 1455 , Painting, Fresco, 356 x 193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of the True Cross: Burial of the Wood 1452 - 1466 , Fresco, 190 x 356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Constantine's Dream 1457 - 1458 , Fresco, 329 x 190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Constantine's Dream (detail) 1455 , Painting, Fresco, 329 x 190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흔히 그림과 수학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평면에 3차원적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입체감이 필요하고 입체감은 수학적 공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림과 기하학을 완벽하게 절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선구자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5~1492)다.

열다섯 살에 피렌체에서 도제 생활을 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선 피에로는 미술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던 레온 바티스타를 만나면서 수학에 관심을 가진다. 레온에게 막대한 영향을 받은 피에로는 빛과 색채를 사용해 공간적인 효과를 창출한 선구자가 됐으며 그가 개발한 기법은 15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2세대 인문주의 화가의 핵심멤버였던 피에로는 원근법에 매료돼 수학자이자 기하학자로 활동했다. 그는 수학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했는데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1474년’은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서술해 르네상스 미술과 건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섯 개의 정다면체에 관하여-1480~1489년’은 정다면체 수학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에로는 말년에 기하학자로만 활동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다시 재조명돼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입체적 공간 창조 위해 명암법 사용한 ‘콘스탄티누스의 꿈’

피에로가 입체적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명암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이 ‘콘스탄티누스의 꿈’이다. 로마 고대사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 최초로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해 밤을 그린 작품이다. 키아로스쿠로는 한 가지 색상의 명도 차에 의해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을 말한다.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가 죽자 황제로 추대됐지만 반대 세력들이 서로마 제국의 막센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해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은 6년이나 지속됐다.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군대를 출동시켜 이탈리아 테베레 강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 황제와 결전을 벌인다.

결전의 전날, 정오 무렵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하늘에서 ‘정복하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거대한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 콘스탄티누스가 꿈을 꿨는데 낮에 하늘에서 보았던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나타나 ‘적군과의 싸움에서 보호해 줄 것이니 병사들에게 이 십자가를 나눠주라’고 당부했다.

다음 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군 휘장과 방패에 금과 보석으로 십자가를 새겨 넣어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햇살에 반짝이는 십자가를 본 막센티우스는 공포에 떨어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고 전의를 상실한 그의 군대는 후퇴했다. 그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 역사상 처음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작품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막사 안에서 잠들어 있다. 그 앞에는 경호원이 앉아 있고 군복을 입은 2명의 군인들은 창과 몽둥이를 들고 막사를 지키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의 천사는 막사를 향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천사의 손가락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예언을 알려주는 것을 나타낸다. 경호원들은 천사의 등장을 알지 못하지만 밤하늘의 광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시를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천사의 얼굴이 가려져 있고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는 것은 꿈의 짧은 시간을 암시한다.
피에로는 고대사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한 동의 막사만 묘사했으며 원근법을 사용해 막사의 깊이를 더했다.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 신비스럽게 표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로마를 비롯해 여러 지방에 체류한 피에로는 고향 산세폴로크에서 작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고향에서 작업한 초기작 대부분은 소실되고 없다.

피에로의 초기 작품 중에서 피렌체 회화의 영향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은 장면을 신비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세례 장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례 장면에서는 예수, 세례 요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등장한다. 

풀이 우거진 강기슭에서부터 흘러나온 요르단 강물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서 있다. 세례자 요한은 물을 붓고 있고, 날개를 활짝 편 비둘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있다.

화면 왼쪽 곧게 뻗은 나무 옆에 고대 그리스 복장과 바로크 시대의 옷을 입은 세 명의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며 세례자 요한 뒤에 있는 남자는 옷을 벗고 있다.

이 작품에서 세 명의 천사는 조화를 상징하며, 옷을 벗고 있는 남자는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또한 옷을 벗는 남자는 ‘세례자 요한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세례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뒤에 보이는 인물들은 바리시아 사람들로 세례 요한을 비난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있는 곧게 서 있는 나무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암시하고 있으며 무성한 나뭇잎은 생명을 상징한다. 화면 전면으로 점점 넓어지는 요르단 강 물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암시한다.

피에로는 신비주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성부는 그려 넣지 않고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만 묘사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박희숙 : 서양화가. 미술 컬럼니스트]

 

 

 Legend of the True Cross: Annunciation 1452 - 1466 , Fresco, 193 x 329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Annunciation (detail) 1455 , Painting, Fresco, 329 x 193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Head of an Angel 1452 , Painting, Fresco, x 55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Head of an Angel 1452 , Painting, Fresco, x 55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Constantine and Maxentius 1458 , Painting, Fresco, 322 x 764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Piero della Francesca - Battle between Constantine and Maxentius (detail)
 
 
Battle between Constantine and Maxentius (detail) 1458 , Painting, Fresco,
322 x 764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Death of Adam 1452 - 1466 , Fresco, 747 x 390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The Death of Adam, detail of Adam's Burial 1452 , Painting, Fresco, 390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The Death of Adam, detail of Adam's Burial 1452 , Painting, Fresco, 390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The Death of Adam, detail of Adam and his Children 1452 , Painting, Fresco,
390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Death of Adam (detail) 1460 , Painting, Fresco, 35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Exaltation of the Cross 1452 - 1466 , Fresco,
747 x 390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Exaltation of the Cross: inhabitants of Jerusalem 1466 , Painting, Fresco,

390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Exaltation of the Cross 1452 - 1466 , Fresco,
747 x 390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Exaltation of the Cross 1452 - 1466 ,(detail)
 
 
Exaltation of the Cross: Heraclius's followers (detail),1466 ,
Painting, Fresco, 390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Exaltation of the Cross: Heraclius's followers (detail),1466  

 

 
 
St. Monica 1454 - 1469 , Mixed technique on panel, 28 x 39 cm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N.Y, United States Of America

 

 

 


 
 
Augustinian Saint 1454 - 1469 , Mixed technique on panel, 28 x 39 cm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N.Y, United States Of America
 

 

 

St. Julian 1455 - 1460 , Painting, Fresco, 130 x 105 cm,
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Italy
 
 
Saint Mary Magdalen 1460 , Painting, Fresco, 190 x 105 cm , Duomo, Arezzo, Italy

 

St. Mary Magdalene 1460 , Fresco, 105 x 190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left view)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detail)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detail)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right view)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Battle Between Heracliusand Chosroes 1452 - 1466 , Fresco, 747 x 329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Battle between Heraclius and Chosroes (detail) 1460 , Painting, Fresco,
329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Battle Between Heracliusand Chosroes 1452 - 1466 , Fresco, 747 x 329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Battle Between Heracliusand Chosroes 1452 - 1466 , Fresco, 747 x 329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Battle Between Heracliusand Chosroes 1452 - 1466 , Fresco, 747 x 329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Madonna del parto 1467 , Painting, Detached fresco, 260 x 203 cm ,
Chapel of the cemetery, Monterchi, Italy

 

 

 

Madonna del parto 1467 (detail)  

 

 

  

madonna del parto the madonna del parto, details se  

 

 
The Flagellation 1455, Painting, Oil and tempera on panel, 59 x 82 cm  
Galleria Nazionale delle Marche, Urbino, Italy

세상에 그 연원과 의미는 고사하고 언제 그려진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작품들의 속내를 밝히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림과 대화를 하고 그 주변을 뒤적거리고 있는가?

15세기의 초기 르네상스를 풍미한 화가이자 수학자이며 기하학자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년경)의 ‘그리스도의 책형(The Flagellation)’도 예외가 아니다.

명확한 수학적 원근법과 시원한 공간감을 통해 표현된 맑은 색채 그리고 위엄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표현으로 유명한 피에로의 이 작품은 그 존재의 기록조차 없을 만큼 당대에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한 세기 전부터였다. 그만큼 이 그림은 오늘까지도 미술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하고 형식적으로 복잡한 그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그림의 내용이 그리스도가 유다의 배반으로 골고타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의 궁에서 책형을 받고 있는 장면이라는 견해에는 대개 수긍을 하는 편이다.

이 작은 그림 속에는 서로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놓여있다. 왼편은 책형을 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거대한 기둥을 뒤로 한 채 허리 뒤로 손이 묶여 있고, 그 옆의 낮은 연단에는 빌라도가 앉아있으며, 그의 눈앞에서 두 형리가 채찍을 가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동양풍의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다. 그림 오른편으로는 화려한 복장을 한 세 남자가 무엇인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책형이 가해지려는 예루살렘 본시오의 궁전 내부를 보자. 궁의 내부는 호사스런 코린트 양식의 다주식(多柱式) 홀이 있는 고대의 전통 양식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궁전 오른쪽은 당시의 양식인 르네상스풍의 집과 종탑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포석이 깔린 광장이 있다. 시공을 초월한 두 세계, 두 시대의 공존이라는 공간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궁전 내부는 그리스도에게 수난과 고통의 공간이다. 그 안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열려있고 다른 하나는 닫혀있다. 열린 문으로는 그리스도가 들어왔으며, 닫힌 문으로는 그리스도가 나갈 것이다. 이처럼 이 공간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연관된 곳이다.

이 공간은 동시에 이교의 영광이 나타나 있는 공간이다. 그리스도에게 책형을 명하는 옥좌의 빌라도와 그의 화려한 복장이 그러하며, 예수를 묶은 기둥 위의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거대한 동상을 연상시키는 이교 황제의 조각상이 그렇다.

그러나 그 몸짓과 모양이 그리스도의 고요함과는 달리 번잡하고 수선스러운 것을 보니 하느님을 거역하는 이교의 영광이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문제는 내용과 시간상 이 주제와 동떨어진 오른쪽의 이야기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가운데 인물은 당시 우르비노를 통치하던 몬테펠트로 가문의 구이단토니오이며, 그 주변의 인물들은 그의 불충한 고문관들인 만프레도 데이 피오와 톰마소 델 알젤로이다.

이 고문관들은 경쟁자의 음모로 구이단토니오를 실추시키려고 보내진 인물이며, 결과적으로 그의 서자인 페데리코가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들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두 고문관에게 둘러싸인 구이단토니오를 형리에 둘러싸인 그리스도, 유다에게 배신당한 그리스도에 견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르게는 이 그림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한 뒤, 그리스도교가 겪는 고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 아래 오른쪽의 인물이 당시 동양의 왕자로, 그의 무기력한 태도는 예수의 태형을 묵과한 빌라도를 가리키며, 왼편의 수염이 난 인물은 옷차림이나 착용한 모자로 보아 그리스인 외교관으로 추정한다. 이들 사이의 젊은 남자는 이들이 부추기면 비그리스도교와 기꺼이 싸울 수 있는 ‘미덕의 천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해석을 낳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그림의 주제에도 이 그림은 명증하고 확실한 하나의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수학적 조형성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당시 화가들의 관심을 크게 끌었던 선원근법이 완전하게 적용된 최초의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천장의 선과 포석의 선이 엄격한 기하학에 의거해서 한 지점 곧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세계와 두 시대가 하나로 공존하는 이 가상공간의 깊이는 14미터임이 계산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고 그림 속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신장이 17.8센티미터인데, 실제 그리스도의 키를 그 열 배로 보았던 것 같다. 이런 비례를 척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림의 가로는 17.8센티미터의 4.5배이며, 세로는 3.25배이다.

또한 전경에 보이는 두 기둥의 받침돌 사이의 거리는 그리스도의 2배이다. 이처럼 이 그림은 기하학적인 규칙을 완벽하게 적용하려는 열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그의 저서에서 수학은 인체와 건축이 긴밀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 속의 인물들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책형을 당하는 그리스도 옆에서, 아니면 시대를 달리해서 이 수난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이 그림 속 인물들이 보이는 무미건조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세는 아니잖은가? 그러나 이 수학과 기하학에 숨긴 비밀은 다르다.

중세의 신학자인 토마스 데 아퀴노(1225-1274년)는 “모든 사물은 완전한 비례를 지닐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때의 완전한 비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비례 곧 8등신 등의 황금비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기하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세시대에 거대한 신의 집 곧 대성당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수학과 기하학적 지식에 따른 결과였다. 그리고 이 수학과 기하학이 인간 이성의 산물이었던 만큼, 수학과 기하학을 통해 성당을 짓고 하느님의 말씀을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토마스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을 신께 봉헌하는 헌신적인 자세이며, 예술적으로는 수학과 기하학을 수단으로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하는 표현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그리스도의 책형’에 나타난 수학과 기하학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완전하고도 최상의 방법이며, 인간 자체를 봉헌의 대상으로 삼은 만큼 인간의 감정이 드러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이처럼 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는 수학적 구성으로 보나 상징적 측면에서 보나 그림의 중심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육신은 ‘인간의 아들보다 더욱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엷은 금빛이 감도는 후광이 있고, 넓은 가슴과 건장한 몸은 고대의 미적 기준에 합치한다. 바로 수학을 통한 아름다움이 이처럼 고대의 기준에 적합할 만큼 완전한 것으로, 결국 형리의 태형이 가해지기 전의 순진무구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피도 상처도 없는 생기있고 순결하며 무구한 그리스도의 육신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조형적으로 하느님의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는 수학과 기하학이라는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표현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봉헌함으로써 더욱 강한 믿음과 신앙의 삶이라는 은총을 받게 되며, 이런 사실을 암시하는 그림이 이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책형’인 것이다.

[권용준 :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Legend of the True Cross: Adoration of the Woodand the Queen of Sheba Meeting with Solomon 1452 - 1466 Fresco, 747 x 336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Adoration of the Holy Wood (left view)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Adoration of the Wood 1452 - 1466 , Fresco
San Francesco, Arezzo, Italy

 

 

 
Adoration of the Holy Wood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Adoration of the Holy Wood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Adoration of the Wood 1452 - 1466 , Fresco
San Francesco, Arezzo, Italy

Adoration of the Holy Wood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San Francesco, Arezzo, Italy

 

 

Meeting of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right view)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Legend of the True Cross: the Queen of Sheba Meetingwith Solomon 1452 - 1466 , Fresco , San Francesco, Arezzo, Italy

 

 

Meeting of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Meeting of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Meeting of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detail) 1452 , Painting, Fresco,
 336 x 747 cm , San Francesco, Arezzo,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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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Ⅰ -Andrea Mantegna [1450~1474] 伊.南유럽 / 외국화가

2013/02/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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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Ⅰ -Andrea Mantegna  [1450~1474]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를 더 보시려면 아래 포스트를 클릭하세요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 [Sketch]           http://blog.naver.com/ohyh45/220115727049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Ⅱ[1475~1506]    http://blog.naver.com/ohyh45/220115516183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

 이탈리아의 파도바파(派)(Scuola Padova) 화가이며 판화가(版畫家)]


목공예가의 둘째 아들로,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697~1797) 비첸차(Vicenza) 근처에서 태어났으며,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주 만토바(Mantova)에서 죽었다.

그의 비범한 능력은 일찍부터 인정을 받았다. 10세 전후로 스콰르초네(662)의 법적인 양자(養子)가 되었다. 북동부 파도바(Padova, 지금의 북동부 베네토 지방 파도바주의 주도)의 그림 선생이며 골동품 수집가인 스콰르초네는 재능 있는 시골 소년들을 화실(畫室)로 데려왔는데, 만테냐와 초포(Marco Zoppo, 1433~1478, 이탈리아의 화가)를 비롯하여 그의 후원을 받은 몇몇 예술가들은 나중에 그의 화실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스승이 수집한 고대 미술품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으나, 당시 파도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 이탈리아의 조각가)의 영향을 크게 받아, 견고한 조각적 성격의 작품을 그렸다.

17세 때인 1448년에 스콰르초네의 보호에서 벗어나 파도바에 자신의 작업실을 차렸고, 스콰르초네가 그의 봉사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으면서도 정당한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1448년에 지금은 없어진 산타소피아(Santa Sophia) 교회에 제단화(祭壇畫)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은 그의 조숙한 재능을 분명히 보여 준다. 젊은 예술가가 그처럼 중요한 주문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에 ‘파도바 출신의 안드레아 만테냐가 17세 때인 1448년에 이 그림을 손수 그렸다.’는 글을 적어 넣어, 젊은 시절의 능력을 자랑하였다.

최초의 기념작, 즉 스콰르초네의 제자들과 함께 파도바 에레미타니 교회(Eremitani Church)의 오베타리 예배당(Cappella Ovetari) 벽화(1448~1455년, 세 화면만 남아 있다.)를 그렸다. 이 예배당에 처음으로 그린 프레스코(fresco,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물기가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그림)는 성가대석(聖歌隊席) 뒤쪽에 그린 성(聖)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 ?~A.D.64?,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와 성 바울로[Paulus, 10?~67?, 본명은 사울(Saul). 그리스도교의 사도(使徒)] 및 성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250?, 데키우스(Gaius Messius Quintus Trajanus Decius, 200 ?~251, 로마의 황제. 재위 249~251) 황제 때의 순교자]였는데, 이 인물화들은 그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당당한 인물화 양식에 이미 정통하여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 크리스토포루스의 생애를 다룬 두 장면은 오른쪽 벽에 하나의 배경으로 통합되어 있는데, 이 그림의 정면에 지극히 사실적(寫實的)으로 기둥 하나를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까지 눈의 착각에 대한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지나칠 만큼 자세히 묘사된 이 기둥은 그림을 둘로 분할하지만, 회화적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보는 사람과 함께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요소에까지 착각의 원리를 적용하는 이러한 기법은 그가 그린 산체노(St. Zeno) 교회의 제단화를 예고해 준다. 이 제단화의 정면에 그려진 채색 기둥(수직적 요소)은 무늬가 조작된 주변의 반원 기둥과 인접해 있어서, 그림 주변의 건축물이 그림 속에 묘사된 건축물의 ‘외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물리적 장치와 시각적 장치를 훌륭하게 결합함으로써, 성모 마리아가 존재하는 관념적 영역은 보는 사람이 서 있는 현실 공간과 하나로 융합한다.

왼쪽 벽의 맨 아랫줄에 그린 [순교(殉敎)하러 가는 성 야고보(St. James Led to Martyrdom)](1453~1455년)에서는 그가 ‘디 소토 인 수’(di sotto in su, 이탈리아어로 ‘아래에서 위로’라는 뜻으로, 회화나 소묘에서 천장이나 다른 높은 면에 인물상들을 그릴 때 밑에서 보아 머리 위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극단적인 원근법으로 처리하는 기법)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이미 숙달하였고 로마 건축의 세부를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 정확하게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림의 아래쪽 테두리보다 더 밑에 시점(視點)을 두는 원근법은 보는 사람에게 그 장면이 훨씬 높아 보이게 하고, 개선문(凱旋門)의 아치가 마치 웅장한 기념물인 듯한 느낌을 준다.

오베타리 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는 [성모 승천(聖母昇天, The Assumption of the Virgin)]과 [성 크리스토포루스의 순교(Martyrdom of St. Christopher)] 장면을 제외하고는 불행히도 2차 대전(1939~1945년) 때 폭격으로 모조리 파괴되었다.

생애의 주요한 시기(10~30세)에 살았던 파도바에서의 환경은 그의 흥미와 착상 및 그림 양식뿐 아니라 자아에 대한 자각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파도바는 북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의 중심지가 되었고, 1222년에 창립된 파도바 대학교(Università Degli Studi di Padova)가 있었으며, 의학과 철학 및 수학 연구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졌다.

유럽 전역과 이탈리아에서 학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파도바에는 국제주의(國際主義, internationalism)적인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파도바에서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이탈리아의 시인이며 인문주의자)가 살았던 14세기부터 고전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되살아났고, 널리 알려진 인문주의자들과 라틴 학자들이 많이 살았다.

고대 로마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것을 모방하는 경향이 늘어나자, 골동품과 고대 비문(碑文)(산산조각난 파편까지도)을 열심히 수집하는 풍조가 생겼다. 만테냐가 몇몇 인문주의자들과 골동품 수집가 및 대학 교수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과 지적(知的)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우정을 나눈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16세기 초에는 고대 역사와 신화(神話) 및 고전 문학에 정통하여 이런 훌륭한 원천에서 쉽게 주제를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을 예술가의 이상형(理想型)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의 생활 방식은 그 이상형의 확립에 이바지하였다. 그가 파도바의 이런 환경을 경험한 것은 고전 세계에 대한 그의 태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대 로마 문화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추구하는 그의 탐구심은 로마 건축물과 조각을 묘사하고 고전 미술을 다루는 기법을 창조한 것에서도 뚜렷이 엿볼 수 있다. 이것은 1450년대 중엽부터 한 세대가 지나도록 이탈리아 북부의 화가 및 조각가들이 고대 미술을 모방할 때 사용하는 기법이 되었다.

또한 예술적 종합의 과정에서 로마의 위대한 모습에 잠재된 힘과 그 의의를 느꼈다. 지금의 오스트리아의 수도(首都) 빈(Wien)과 파리에 있는 성(聖)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3세기쯤 로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이며 성인)의 초상뿐 아니라 [헤롯 앞에 선 성 야고보(St. James Before Herod)]⋅[순교하러 가는 성 야고보]를 비롯한 오베타리 예배당의 그림에서는 위압적일 만큼 거칠고 엄격한 건축물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그리스도교 성자(聖者)들의 고통은 이제 곧 일어날 문화적 충돌, 즉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교도(異敎徒) 세계의 분열로 말미암은 문화적 충돌 속에서 함축된 비극적 의미를 띠고 있다.

만테냐의 시대에는 건축과 조각의 형식을 연구하고 거기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함으로써 고대로부터 소외되었던 경험을 극복하는 것이 예술가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주제였다. 로마 세계가 이탈리아의 폐허 속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15세기를 덮쳤던 갑작스러운 문화적 상실감을 더욱 증대시켰을 뿐이다.

만테냐는 고대 미술 형식을 철저히 묘사하고 그 예술품 창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치 현실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거기에 결부시킴으로써 14세기 중엽의 르네상스 운동에 커다란 추진력을 주었다.

만테냐의 출발점은 그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진 고대 부활 형식[1442년에 피렌체의 화가 카스타뇨(886)가 베네치아에 소개한 웅장하고 당당한 토스카나 인물화 양식]이었다. 1447년에 베네치아[Venezia, 지금의 베네토주의 주도(州都)]를 여행하였을 때 산차카리아(San Zaccaria) 교회에서 카스타뇨가 그린 복음서 저자들과 성자들의 프레스코를 보았을 것이다.

1453년에 파도바에 화실을 두고 있던 베네치아파(派)(Scuola Veneziana)의 시조(始祖) 자코포 벨리니(510)의 딸이며 젠틸레 벨리니(511)와 조반니 벨리니(512)의 누이 니콜로사(Niccolosa)와 결혼하였기 때문에 그와 베네치아파의 관계는 더욱 강해졌다.

베네치아파의 채부법(彩賦法)을 섭취하여 당초의 강한 조각적 성격을 누그러뜨리면서도,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를 견지하여 북이탈리아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수립하였다.

벨리니 집안은 그 뒤 10년 동안 베네치아의 유력한 화가 집안이 되었다. 자코포 벨리니는 고대 건축물에 바탕을 두고 환상적(幻想的)인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 원근법과 소묘(素描)를 연구하였는데, 이것은 사위 만테냐의 흥미를 끌었을 것이다. 만테냐도 앞서 베네치아를 여행하였을 때 그러한 소묘 작품을 연구하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테냐가 당연히 벨리니의 화실에 들어갈 것으로 여겼을 테지만, 그는 파도바에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쪽을 택하였다. 도나텔로가 파도바에 새로 지은 산안토니오(San Antonio) 교회(1405년 완공)의 중앙 제단을 장식하기 위하여 제작한 많은 조각은 지난 몇 년 동안 만테냐에게 압도적인 예술적 영향을 미쳤다.

만테냐의 화풍에 대한 조반니 벨리니의 반응은 부드러운 의견 교환이었지만, 도나텔로의 작품에 대한 만테냐의 반응은 투쟁이나 변증법(辨證法)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를테면 만테냐가 산체노 교회 중앙 제단에 그린 제단화(1459년)의 테두리와 채색 건축물은 도나텔로가 장식한 파도바의 중앙 제단이 그에게 제기한 도전에 응한 것이었다.

만테냐의 예술은 딱딱하고, 심지어는 금속성의 질감(質感)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도나텔로의 조각을 흉내내고 있다. 그의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조각의 접근 방식을 보여 주는 딱딱한 표면은 1490년대에 이르러 약간 부드러워졌다.

만테냐는 독립성을 잃지 않으려고 지나칠 만큼 경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1459년에 롬바르디아주 만토바(Mantova)의 후작(侯爵) 루도비코 곤차가(Ludovico Gonzaga, 1412~1478)의 초빙을 받아 그의 궁정(宮廷) 화가가 되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자유와 다른 후원자에게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1466~1467년에 토스카나주의 주도 피렌체(Firenze)와 피사(Pisa)를 여행하면서, 도나텔로⋅리피(321)⋅우첼로(804)⋅카스타뇨의 작품을 다시 보았다. 이 10년(1460~1470년) 동안 [그리스도의 할례(割禮)(The Circumcision)]⋅[성(聖) 게오르기우스(St. Georgius)](베네치아)⋅[죽은 그리스도(Dead Christ)](밀라노)를 비롯하여 소규모 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만토바에서의 최대의 업적은 ‘팔라초[palazzo,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시대에 세워진 정청(政廳)이나 귀족의 저택] 두칼레(Ducale)’에 있는 카메라 델리 스포시[Camera degli Sposi, 또는 카메라 픽타(Camera Picta), ‘결혼의 방(Wedding Chamber)’, 또는 ‘채색한 방(Painted Room)’, 1474년 완성]라는 방이다.

곤차가가(家)(Gonzaga dynasty, 1328~1707년 동안 이탈리아 만토바를 지배하였던 집안)의 후원으로 고정 수입(이 수입이 항상 들어오지는 않았다.)을 갖게 되어, 이 방을 장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추기경의 도착](1474년, 만토바 팔라초 두칼레) 등 곤차가가의 생활을 주제로 한 벽화군(壁畫群)으로, 이 곳에서 방 전체 환경에 대한 자신의 일관된 이상을 펼쳐 보였다.

이 방은 결국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되었다. [루도비코 곤차가와 그 가족들]을 비롯하여 탁월한 공상력과 엄격한 사실(寫實)이 결합된 이 벽화들은 단축법(短縮法, foreshortening, 그림에서 어떤 물체가 비스듬히 놓였을 때 그 물체는 실제의 길이보다도 짧게 보이는데, 그러한 현상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기는 회화 기법)에 의한 원근법적 효과와 고전 취미에 넘쳐 있으며, 천장화 양식에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여, 이 양식은 뒷날 코레조(922)나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만토바에 있는 곤차가 궁전의 배경을 그린 곤차자가의 초상화(1474년)는 실물보다 더 큰 키, 조각 같은 입체감, 대개는 성자(聖者)나 신화적⋅역사적 영웅처럼 위엄 있는 자세로 묘사하는 등 실존 인물을 미화하였다.

이러한 단축법은 [죽은 그리스도를 비탄(悲嘆)해함(The Mourning over the dead Christ)](1475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15세기 원근법을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들은 네모진 벽을 바깥 세계로 향하여 열려진 창문처럼 보이도록, 그 벽면에 가공(架空)의 공간을 그럴 듯하게 묘사하였다. 그런데 만테냐는 카메라 델리 스포시의 벽과 천장에 건축적 요소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언뜻 보기에 방이 실제보다 확장된 것처럼 보이게 하였으며, 천장도 우묵하게 팬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옥내의 작은 방을 야외의 우아한 정자처럼 느껴지게 하였는데, 이 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도시의 성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야외의 우아한 정자에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될 것이다. 방 한복판의 바로 위 천장에는 오쿨루스(Oculus, 하늘을 향하여 뚫린 둥근 구멍)가 그려져 있고, 난간 주위에는 작은 천사와 여인이 극적으로 단축된 원근법으로 그려져 있다.

오쿨루스가 만드는 강렬한 수직축은 보는 사람을 방 한복판의 한 점에 고정시킨다. 이 점에서 서면 관찰자의 공간은 벽난로 위의 비좁은 공간에서 그를 향하여 튀어나오는 프레스코 속의 인물의 공간과 하나로 융합된다. 오쿨루스의 원근법 처리는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눈의 착각을 일으키는 ‘디 소토 인 수’ 원근법을 이용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장 장식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 되었다.

이 오쿨루스가 암시하고 있는 천장 양식은 코레조가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주 파르마(Parma)에 있는 몇 개의 둥근 천장에 이와 똑같은 유형의 원근법을 채택하였을 때 비로소 실현되었다.
그리고 만테냐는 종합적으로 착시(錯視)를 일으키는 공간 개념을 형성하였지만 바로크(Baroque) 시대(17세기)에 독창적인 천장 장식 기법을 고안한 란프랑코(211)와 포초(Andrea Pozzo, 1642~1709, 이탈리아의 화가) 같은 예술가들이 만테냐와 기본적으로 똑같은 개념, 즉 방의 한 점에 서 있는 가공의 관찰자의 위치에 바탕을 둔 총체적 착시 공간 개념을 활용할 때까지 아무도 만테냐의 이 개념을 이용하지 않았다.

만테냐는 산체노 교회의 제단화에서 성모 마리아와 성자들을 주변 건축물과 이어지는 통합된 공간 속에 묘사함으로써, 신성한 좌담회 그림(즉 성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그림)에 새로운 3차원적 착시 효과의 원리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가 프레스코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은 아마 이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원근법과 축소형을 교묘하게 조작함으로써 총체적인 공간 효과를 창출한 것은 천장 장식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고, 이 전통은 그 뒤 3세기 동안 이어졌다.

곤차가가의 궁정에서 일하는 동안 상당히 존경받는 지위를 얻었다. 후원자인 루도비코와 그의 친밀한 관계는 그 당시로는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그림에 적힌 서명(署名)은 화가로서 이룩한 업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여 준다.
말년에 성격이 급해지고 싸움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그림에 적힌 이 서명 이외에 이웃 사람과 그의 분쟁(루도비코는 이 분쟁에서 그를 구해 주어야 하였다.)에 대한 몇 건의 법정 기록뿐이다.

감정 이입을 잘 하는 관찰자가 만테냐의 그림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주관적 결론을 수없이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도비코가 1478년에 죽고, 만테냐의 아들이며 후계자로서 그 동안 문을 닫았던 아버지의 화실을 다시 시작하리라고 여겨졌던 베르나르디노(Bernardino)마저 그 직후에 세상을 떠나자, 만테냐는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1484년에 로렌초 데메디치[Lorenzo de’Medici, 1449~1492,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치가이며 시인⋅문예 옹호가.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Lorenzo il Magnifico)]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고, 피렌체로 이주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루도비코의 아들 페데리코(Federico)는 아버지보다 불과 5년 더 살았을 뿐이었고, 1484년에 어린 프란체스코 2세(Francesco Ⅱ, 1466~1519, 제4대 만토바 후작)가 만토바 군주로 즉위하자 그의 후원을 받는 만테냐의 경제 사정은 약간 나아졌다.

곤차가가를 위하여 그린 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로마의 개선 행진을 묘사한 9점의 그림은 아직 전해진다. [카이사르의 승리(Triumph of Caesar)](1486년쯤, 런던 햄프턴 궁전 왕립 미술 컬렉션)는 1486년쯤에 그리기 시작하여 여러 해에 걸쳐 완성하였다. 새로운 후원자 프란체스코 2세의 고전적 취향을 반영한 이 그림에서 만테냐의 후기 양식은 절정에 이르렀다.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Ⅷ, 1432~1492, 제213대 교황. 재위 1484~1492)가 로마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에 있는 개인 예배당을 장식해 달라고 만테냐에게 주문한 이유는 고대 로마의 색채와 웅대함, 의례적 권위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종합한 이 작품을 보고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만테냐는 교황의 주문을 1488~1490년에 수행하였다.

건강도 나쁘고 나이도 들었지만,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다.

1495년에 프란체스코 2세는 포르노보(Fornovo) 전투에서 승리하였다고 가정하고, 그 승리를 기념하는 [성모의 승리(Madonna della Vittoria)](1497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를 그리라고 명하였다.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만토바의 공비(公妃) 이사벨라 데스테(Isabela d’Este, 1474~1539)와 프란체스코 곤차가와 결혼(1490년)을 축하하는 [파르나소스산(山)(Óros Parnassós)](1497년)과 이사벨라의 ‘스투디올로(studiolo, 만토바의 곤차가 궁전에 있는 작은 방으로, 후원자의 박식함과 고급 취향을 과시하기 위하여 신화적 주제를 다룬 훌륭한 그림과 조각으로 꾸민 방)’를 장식하기 위하여 [악(惡)을 정복하는 지혜(Wisdom Overcoming the Vices)](1502년)를 그렸다.

세 번째 그림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로마의 Liber, 영어로는 Bacchus. 풍작과 식물의 성장을 담당하는 신. 술과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의 제례(祭禮) 행사인 코모스(kömos)의 전설을 다룬 것(파리 루브르 미술관)이었지만, 만테냐가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임으로 곤차가 궁정 화가가 된 코스타(929)가 완성하였다.

만토바의 산안드레아 교회(Church of St. Andrea)에 있는 영안실(永安室)은 만테냐를 추모하여 그에게 헌정(獻呈)되었다.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는 이 영안실은 1516년에 완성되었으며, 둥근 천장에는 만테냐가 그린 [성모의 승리]와 관련된 낙원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코레조로 추정된다.).

15세기 화가 가운데 자신이 일한 도시의 주요 교회에 자신의 영안실을 갖는 영예를 누린 사람은 만테냐뿐이었다. 이것은 만테냐가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 도시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가를 입증해 준다.

만테냐의 예술과 고대 문화에 대한 그의 태도로 다른 화가들의 본보기가 되었는데, 독일의 화가이며 판화가⋅미술 이론가인 뒤러(161)와 베네치아의 벨리니(510)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성모자(聖母子, Madonna and Child)](베르가모 아카데미아 카라라)⋅[겟세마네 동산의 기도(Agony in the Garden)](1460년, 107×86㎝, 런던 국립 미술관)⋅[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Crucifixion)](1456~1459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등이 있다. 또 그 당시 발명된 지 얼마 안 되는 동판화(銅版畫)에도 걸작을 남겨, 뒤러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Martyrdom of St.James, 1448


 
Portrait of a Man,  1450, Panel, 32 x 29 cm, Museo Poldi Pezzoli, Milan


Saint Bernardine of Siena, 1450


St.Mark, 1450, Oil on canvas
 
St. Jerome in the Wilderness, 1448-1451,  tempera on panel,  
48 cm X 36 cm , Museu de Arte de São Paulo (Brazil)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50-1451,  tempera on canvas,
transferred from wood,40 cm X 5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 New York, NY (United States) 

 


Presentation at the Temple, 1453 

 
San Luca Altarpiece, 1453, Tempera on panel, 177 x 230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San Luca Altarpiece(deial), 1453, tempera on panel,
Pinacoteca di Brera - Milan (Italy)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Scholastica ,1453, tempera on panel,
97 cm X 37 cm,  Pinacoteca di Brera - Milan (Italy)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Benedict,1453, tempera on panel,
 97 cm X 37 cm, Pinacoteca di Brera - Milan (Italy)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Prosdecimus, 1453, tempera on panel, 
97 cm X 37 cm,  Pinacoteca di Brera - Milan (Italy)
 
San Luca Altarpiece,(deial),tempera on panel, 118 cm X 42 cm
Pinacoteca di Brera - Milan (Italy)   
 

St. Euphemia, 1454, Oil , 171 cm X 78cm


The Holy Family, 1455, 65.5 x 52.5 cm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Jerome and Louis of Toulouse, 1455,
69.6 cm X 44.5cm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Jerome   oil, 153 cm X 110.5cm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56,   oil on canvas,  40 x 55.6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Martyrdom of St. Christopher and the Transport of his Body. (Lives of St. James and St. Christopher). 1457. Fresco. Church of the Wremitani, Orvetari Chapel, Padua, Italy 

  

St Sebastian, 1457-58, Wood, 68 x 30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ltarpiece for the Church of S.Zeno, Polyptych in Verona.1457~1460,  

tempera on panel, 480 cmX 450 cm, Basilica di San Zeno Maggiore  (Italy - Verona)

 

 

 

St. Zeno Polyptych. 1457-59. Tempera on panel. S. Zeno, Verona, Italy.

 

altarpiece for the Church of S.Zeno, Polyptych in Verona.1457~1460,  

tempera on panel, Width: 450 cm, Basilica di San Zeno Maggiore  (Italy - Verona)

 

 

​Altarpiece,  1457-1460,  oil on panel,  Canvas.,  480 cm X 450 cm,  Basilica di San Zeno Maggiore  (Italy - Verona

 

 

Altarpiece of San Zeno in Verona, central panel Madonna and Angels (central panel), 1457-1460 ,  220 x 115 cm

 


San Zeno Polyptych (central panel), 1457-1460 ​,tempera on panel,
220 cm X 115 cm , Basilica di San Zeno Maggiore  (Italy - Verona)

 

San Zeno Polyptych (detail), 1457-1460

 

 

"Altarpiece of San Zeno in Verona, triptych, central panel" oil on Canvas.

 

 

Altarpiece of San Zeno in Verona, left panel of St. Peter and St. Paul, St.John the Evangelist, St. Zeno, 1459.



Altarpiece of San Zeno in Verona, right panel of St. Benedict,
 St. Lawrence, St. Gregory and St. John the Baptist. 1459.

 

 


Calvary. Center of the predella painted for the Church of San Zeno in Verona.

1457-60. Oil on panel. 76x96 cm.  Louvre, Paris, France.

 

투시원근법이 적용되어 표현된 이 드라마틱한 화면 구성의 중앙에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리스도가 그리고 그 양편에는 두 명의 도둑이 우리의 시선을 중앙의 예수에게로 그리고 수평선 너머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이끈다.
회개하지 않은 우측의 도둑은 어둠에 묻혀진 반면 좌측의 고통스러워하는 도둑에게는 빛이 비추어지도록 연출하여 그의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은근히 드러내주고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산제노 성당 제단화의 부분인 이 그림은 르네상스 전기의 대가, 만테냐 특유의 웅장함과 입체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과학적 사고와 휴머니즘에 매료된 그는 언덕 위 멀리 보이는 예루살렘의 풍광과 로마군들의 복장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표현하였고, 흰 구름이 하늘 가득 흩뿌려진 하늘은 푸르르다.
특히 전경의 두 로마 군인들 중, 한 명은 가슴팍에서 또 한 명은 머리부분에서 잘리도록 표현한 과감한 표현은 화면의 사실적이자 동시에 연극적 연출 효과를 극대화 해주며 이 극적인 역사의 장으로 초대한다(박혜원 소피아).
선과 악의 양면성이 있는 세상의 모습을 극명히 표현

 

성(聖)미술의 주제 중에서 십자가는 주님 생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많은 작품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비범한 자질을 인정받아 당시 파도바의 유명한 그림 선생이었던 스콰르죠네 문하에서 12년 동안의 도제생활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화풍을 익힌 후 독립해서 작가 고유의 경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파도바는 인문주의의 도시로 여러 학자들의 왕래가 많았기에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섭렵함과 동시에 국제 감각을 키우게 되었다. 그는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미술 형식을 철저히 섭렵한 후이것을 예술의 창조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정치 사회적 현실과 연결시키면서 작품의 생동감과 현실감을 더하게 되었다.

 

그의 대단한 재능과 노력은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게 만들어 만토바(Mantova) 공국의 궁정화가로 초대되어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결혼의 방(Camera degli sposi)을 남기면서 르네상스 작가로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작가로서의 순탄한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만토바 궁정화가로서 초청되기 직전의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베로나(Verona)에 있는 유명한 로마네스크 건축인 성제노 대성당 (Basilica San Zeno)의 제단화로 그려진 것이다.

 

모든 일에 신중하고 철저한 성격의 작가는 작품의 성격이 제단화이기에 이 작품을 보는 신자들에게 신앙적 감동을 줄 수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감동적 성경”을 만들려고 했으며,마태오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수난사화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 아니라 수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정황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에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수직으로 3등분하면 분명한 구분이 나오게 되며 방대한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십자가 사건의 중심과 핵심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심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중심으로 아래와 역삼각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불안정한 구도이기에 십자가의 비통함을 암시하고 있다. 즉 십자가 사건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구도의 상징인 역삼각형 위에 보이는 하늘은 너무도 청아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상의 구세주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세속성의 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 비참하고 슬픈 것이기에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어둡고 회색 빛 하늘이 어울릴 것이나 작가는 과감히 이와 정반대의 너무도 평화로운 생각의 푸른색 구도를 통해 주님 십자가의 보혈 은혜를 감지하지 못하는 세상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장면의 연상과 전혀 다른 평범한 일상 삶의 현장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표현을 통해 철저히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예수님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Altarpiece of San Zeno in Verona, triptych, middle panel" oil on Canvas.

 

 

많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아래 해골이 놓여있듯 이 십자가 아래도 해골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중세기에 대단한 영향을 주던 주님 십자가 죽음이 가져온 세상의 구원에 관한 신심이다. 7세기에 골고타를 발굴 할 때, 그곳에서 해골 하나를 발견했는데, 민간 신앙에서 이것은 바로 하느님께 불순종했기에 낙원에서 추방당했던 아담의 해골로 여기게 되었으며, 주님께서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낙원을 상실한 아담의 후손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바로 아담의 해골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구원에 대한 대단한 확신으로 정착되었다.

이것은 로마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게 외었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5, 18- 19) 주님과 죄수들의 얼굴은 죽은 상태를 드러내는 핏기 없는 모습이어서 한층 비감함을 더하고 있다.

 

 

루카 복음의 수난사화에는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강도가 달렸는데, 왼편의 강도는 사악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도 심하자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욕했다는 내용이 있는 반면, 오른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가 당연히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하늘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루카 23, 39- 42)

성경에서 오른쪽은 선한 사람, 왼쪽은 악한 사람의 구도인데, 성경의 이런 내용에 따라 착한 강도의 곁엔 예수님의 수난을 애통해 하는 성모님과 사도 요한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의 시중을 들던
즉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데오 아들들의 어머니” (마태 27, 56)를 등장시켜 선과 악의 양면성이 있는 세상의 모습을 극명히 표현하고 있다.

 

오른편과 달리 왼편의 강도는 세상 악의 상징적 부위이기에 그 주위엔 예수를 못 박기 위해 동원된 로마 병정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 대한 아무런 반감이나 악한 감정이 없으면서도 구세주를 모르기에 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지도 모르고 일상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인간들의 비정함과 미련함을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 아래 말을 타고 있는 병사의 단정한 차림새와 뒷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살찐 말은 십자가의 비통한 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세상 구원과 연관된 십자가 사건이 주위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인간들의 허망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단정한 복장을 하고 서있는 로마 병사들 아래 세 사람이 땅에 앉아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다. 이것은 수난사화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옷을 벗긴 후, 그 옷을 병정들이 제비뽑기를 했다는 (루카 19, 23- 24)장면으로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너무도 큰 슬픔 앞에 비정함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과 오른편에 애통해하고 있는 사도 요한과 부인들의 모습이 대립되며 선과 악의 거대한 축에 의해 형성된 이 세상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왼쪽의 강도 뒤에는 어두운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기에 구원을 상실한 인간들의 암담한 처지를 상징하고 있다. 오른쪽 강도 뒤에는 도시가 있다. 실제적으로 이 도시는 예루살렘이지만 작가는 자기가 활동하며 살았던 도시 즉 파도바와 베로나를 합성시켜 그림으로서 십자가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이 성당에 들어와 기도하는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임을 강조함으로서 주님께 대한 회심을 재촉하고 있다.

이 성화를 경배하는 신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자기 죄를 뉘우쳐 회심해야 하고 예루살렘 부인들처럼 주님 죽음에 대한 깊은 애통을 함으로서 세상 죄인들의 회심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초대를 담고 있다.

작가는 비록 25세의 젊은 나이지만 그동안 익힌 모든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언덕 마을에 적용된 정확한 원근법과 인물들에게 적용된 조각적인 요소를 완벽히 조화시킴으로서 눈으로 보는 성경으로써 작품성의 가치를 더하게 되었다.




산 제노 성당 

 

 

Agony in the Garden, 1459, tempera on panel,  160 cm X 203 cm ,
National Gallery - London (United Kingdom) 

  

 

Agony in the Garden [detail], 1459 , tempera on panel,

 

 

 

 
"Christ on the Mount of Olives to the Garden of Gethsemane, detailed city landscape" oil on Canvas

  

  

  

Agony in the Garden(deail), c. 1459, Tempera on wood, 63 x 80 cm, 
National Gallery, London 

 

 

Prayer in the Garden, 1459, oil on canvas, 71.1 x 93.7 cm

 

 


The Resurrection, right hand predella panel from the Altarpiece of St. Zeno of Verona, 1459,   oil on panel ,  96 x 76 cm


 

St Sebastian, 1456-1459 , oil on panel, 255 cm X 140 cm,
Musée du Louvre  (France - Paris)

 


  

Madonna and Child with Seraphim and Cherubin, 1460 ,  tempera on panel  and gold , 44.1 cm X  28.6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United States.

 

Presentation in the Temple, c. 1460, Tempera on wood, 67 x 86 cm,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 Berlin)

 

 

 

Presentation in the Temple(deail)

 


The Death of the Virgin. c. 1460. Tempera on panel. 54 x 42 cm.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Death of the Virgin (detail)" oil on Canvas. 

 

  

St George, c. 1460, Tempera on panel, 66 x 32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Portrait of Cardinal Lodovico Mezzarota1459-1460, tempera on panel,
 44 cm X  33 cm,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rmany - Berlin)

 

 

Portrait of Francesco Gonzaga, 1461, oil on  canvas , 25.5 x 18 cm

 


Portrait of the Protonary Carlo de' Medici,1459-1466​, oil on panel, 54cm X 42cm  , Galleria degli Uffizi  (Italy - Florence)


 
Portrait of a Man, c. 1470, Tempera on hardboard transferred from panel,
24 x 19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The Adoration of the three Kings, 1460-64, Tempera on wood, 76 x 76 cm

(entire triptych)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The Adoration of the Magi,(deail)

 

Adoration of the Magi



The Ascension of Christ  left hand panel from the Altarpiece, 1460-64,
Tempera on wood, 86 x 43 cm (entire triptych),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뭉게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에는 타원형의 만돌라 빛과 그 주위에는 작은 천사들에 둘러싸인 예수가 하늘로 승천하고 있다. 그의 발치 바로 아래에는 마리아가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두 손을 하늘로 향하고 있고, 열두 명의 제자들은 각자 개성 넘치는 표정과 몸짓으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르네상스 전기 화가 만테냐의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조각적인 견고함이 돋보이는 인물들의 절제된 감정 표현과 균형 잡힌 구도감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수직 형태를 띄고 있어서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 극대화되고 있다(박혜원 소피아).

 
 
The Circumsicion of jesus, 1461, tempera on canvas,  ​86 cm X 43 cm,
Galleria degli Uffizi  (Italy - Florence)

 

The Circumsicion of jesus, detail, 1461

 


The Circumsicion of jesus, detail, 1461

 

 

The Circumsicion of jesus, detail, 1461

 

The Circumsicion of jesus, detail, 1461

 

 

 

The Circumsicion of jesus, detail, 1461

  

 
Christ Welcoming the Virgin in Heaven, 1460-64, Oil on wood,
Pinacoteca Nazionale, Ferrara

 

 

 

 

 

   

Madonna with Sleeping Child. 1465-70.  tempera on canvas. 43 cm x 32 cm.

 Staatliche Museen zu Berlin, Berlin, Germany.

 

 

The Presentation in the Temple. c. 1465-66. Oil on canvas. 69x86.3 cm. Gemäldegalerie, Berlin, Germany.

  

 

View of the West and North Walls. 1465-74. Fresco.

Palazzo Ducale,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Mantua, Italy.

 

 

Arrival of Cardinal Francesco Gonzaga 1471-74, oil on plaster.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Camera degli Sposi, detail featuring Putti Holding Dedicatory Tablet

oil on plaster

Scene waitingservant with dogs(fragment), 1474,


Arrival of Cardinal Francesco Gonzaga (detail), 1465-1474 ,
oil on plaster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Marquess Ludovico Greeting His Son Cardinal Francesco Gonzaga. Detail. 1465-74. Fresco. Palazzo Ducale,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Mantua, Italy

 

 

Arrival of Cardinal Francesco Gonzaga (detail), 1465-1474 ,
oil on plaster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Arrival of Cardinal Francesco Gonzaga (detail), 1465-1474 ,
oil on plaster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Ceiling of the Camera Picta or Camera degli Sposi Oculus, 1465~1474, 

fresco,  270 cm X 270 cm,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Frescoes in the Camera degli Sposi in the Palazzo Ducale in Mantua, vault fresco scene, detail" oil on Canvas 

 

 

Roundel with Putti and Ladies Looking Down. Detail of ceiling. 1465-74. Fresco. Palazzo Ducale,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Mantua, Italy.

  

  

 

 


Ceiling Oculus (detail)


신혼의 방은 벽화의 전체구성과 소재의 선택에서 그의 사상이 체계적으로 반영되는 것인데 서벽 "만남의 장면"은 고대신전의 건축 구조를 활용하고 코린트양식의 기둥주와 아칸서스잎 등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고대 석관에서 볼 수 있엇던 기르란다 장식을 인용하였고, 서벽에 표현된 배경은 만테냐의 회화에 항상 등장하는 정형화된 고대도시입니다, 그의 고대도시는 항상 산능선에서 정상가지 뻗어있고 도시의 모습이 3 단계로 2 개의 성벽에 의해 구분된다,

 

첫번째 성벽 앞에는 나무들과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고대건물들이 놓여잇으며 첫번째와 두번째 성벽 사이에는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선 번화한 도시가 보입니다, 이러한 고대도시 패턴은 만테냐의 회화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The Court of Mantua, 1465-1474​, oil on plaster ,  805 cm X 807 cm ,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Mantua)

 

 


The Gonzaga Family and Retinue. Detail. 1465-74. Fresco. Palazzo Ducale,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Mantua, Italy.

 

 

The Court of Mantua (detail),  1465-1474


The Court of Mantua (detail), 1465-1474



The Gonzaga Family and Retinue. Detail. 1465-74. Fresco. Palazzo Ducale,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Mantua, Italy.

세계의 명화, 회화의 거장 -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세계

"St-Sébastien" 

 

 

 

Présentation au 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