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작품세계 Ⅲ - Vecellio Tiziano
티치아노는 모델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인물을 그리려다 보니 모델의 의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티치아노는 초상화에서 검은 바탕에 검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색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인물의 개성과 특징을 잡아내는 특기가 있었으나, 프랑수아 1세는 실물을 알 수 없다 보니 의상을 화려하게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당시 유럽 최고의 권력자이자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침략한 통치자였다. 뾰족한 코에 두꺼운 쌍꺼풀을 한 프랑수아 1세는 머리에 흰 깃털로 장식한 얇은 모자를 쓰고 있다. 모피 외투 안쪽에는 사각사각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고운 실크 옷을 입고 있는데 주름 사이로 흰색이 보여서 붉은색과 흰색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색상의 조화는 이후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상화(1543)에서 다시 보게 된다.
프랑수아 1세는 1515년 왕이 된 해에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략했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꿈꾸던 야심가이기도 했다. 그의 이탈리아 침략은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당시 화려한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을 프랑스로 가져감으로써 문화적으로 낙후한 프랑스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이식하는 공로를 세웠다. 또한 그 자신은 이탈리아의 예술품들을 다수 수집함으로써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들을 상당수 보태는 역할도 했다
Porträt eines Mannes (L'Ariosto) 1510 Oil on canvas 81,2 × 66,3 cm
National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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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_1542_oil_on_canvas_76_x_74_cm
바스토의 후작 알폰소 다발로스 (Alfonso d' Avalos Maquis del Vasto) 1533
후작이 시종 아이를 거느리고 금으로 장식된 눈부신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티치아노는 초상화 주인공의 지위를 나타내주는 보조 인물을 곧잘 그려넣었다.
얄바 대공 톨레도의 돈 페르난도 알바레스의 초상
[ 16세기 전반 / 알바 공작 컬렉션 소장 ]
보조 인물 없이 갑옷과 손에 든 지휘봉 및 배경의 3가지 다른 것들로 대공의 군사적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인물을 이상화시켜 그린 공식 초상화들이다. <Francesco Maria della Rovere, duke of Urbino> 설명 中

티치아노가 그린 카를 5세의 초상화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하여금 티치아노가 이후로 더 많은 군주들의 초상을 그리는 '군주들의 화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카를 5세는 그의 작품에 너무 흡족한 나머지 1533년 5월 티치아노에게 화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이후로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家)는 티치아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다.

커다란 화폭에 인물을 거대한 규모로 묘사해놓아 베네치아의 통치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후기 작품들에서도 캔버스가 꽉 차도록 인물을 그려 인물의 지위를 매우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 1548 Oil on canvas
332 × 279 cm (130.7 × 109.8 in) Prado Museum
뮐베르크의 황제 카를 5세(Emperor Charles Ⅴ at Muhlberg)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걸작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이후의 화가들에게 기마 초상화는 이 작품이 기준이 되었다고도전해집니다.
이것은 1547년에 황제가 신교도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우 탁월한 이 공식 초상화에서 티치아노는 홀쭉하게 여위어 보기 흉한 황제의 턱을 되도록 드러나지 않게 처리하고 위엄이 넘치는 자태로 그를 묘사했다. 하이라이트와 반사광의 적절한 표현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멋진 갑옷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붉은 장식대(가톨릭 교단과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 그리고 배경에 그린 빼어난 황혼 풍경 등을 볼 때,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걸작 중의 하나로 손색이 없다.
티치아노는 수많은 종교화를 그렸답니다.그 중에서도 '성모승천'과 '수태고지'등이 티치아노의 종교화 중 걸작으로 꼽힙니다.






자화상 (Self - portrait) [ 1562년 / 베를린 국립 회화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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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는 당대는 물론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당시의 황제, 교황, 군소 국가의 군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 및 부유한 상인들이 티치아노로부터 초상화 한 점 받기를 갈망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 그들이 왜 그토록 티치아노의 초상화를 원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색상은 배경도 인물도 검은색이 압도적이어서 어둠 속에서 남자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가슴과 양 소매 끝에 그려진 흰색 블라우스의 깃은 검은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화면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 흑과 백이 아닌 색으로 그려진 부분은 가슴에 차고 있는 금목걸이, 얼굴과 장갑을 든 왼손 그리고 반지를 낀 오른손뿐이다. 그러다 보니 푸른 눈동자나 붉은 입술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할 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추측만 할 뿐이다. 티치아노는 이 작품 외에도 이 무렵 이와 유사하게 검은 배경에 검은 의상을 입은 모델을 다수 그렸는데 많은 초상화에서 비록 흑백의 제한된 색상을 사용하면서도 한 인간의 외모는 물론 내면 세계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모델을 비롯하여 티치아노가 초상화를 그려준 사람들은 대부분 당대의 귀족이나 고위층이었다. 이 남성은 냉정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서 라파엘로의 <궁정인>에서 볼 수 있는 냉철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어쩌면 당시 르네상스 사람들이 추구한 이상적인 지성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대리석 블록에는 티치아노의 서명이 ‘TICIANVS F.’라고 적혀있다.
당시 곤자가 가문에서는 줄리오 로마노가 설계한 공작궁의 새 궁정에 걸어둘 여러 점의 초상화를 주문했는데 이 작품은 그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1627년 영국의 왕 찰스 1세가 구입했으며 이후 쾰른 출신의 은행가로 파리에서 살고 있던 에버하르트 야바흐(1619-1695)가 소장하다가 이후 루이 14세에게 다시 팔렸으며(1671) 그 후 여러 경로를 거쳐 마침내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1792)
[출처] : 고종희/미술사학자, 한양여자대학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 월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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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ante, 1514
Flora, 1515
Profane Love, 1515
이 작품은 르네상스시기 베네치아 색채주의 화파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티치아노가 그린 것이다. 르네상스기의 회화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조각적인 형태주의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회화적인 색채주의로 나눌 수 있다. 피렌체 화파의 거장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꼽는다면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으로는 지오반니 벨리니, 조르조네, 티치아노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티치아노는 피에베 디 카도레 출신으로, 지오반니 벨리니와 조르조네에게 사사를 받았고 회화적인 색채 중심의 베네치아화파의 화풍을 확립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말년에 고전적인 양식을 탈피해 바로크 양식을 선도한 선구자로도 평가되는, 서양미술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화가다.
모델은 한 남자에 의해 들려진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로 그녀의 뒷 모습이 볼록거울에 비친다. 차분하면서도 육감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이 그림은 당대에 티치아노가 구사한 전형적인 스타일로, 화가의 가장 최고 절정기의 작품이며 조화된 베니스의 고전주의가 완벽히 표현되어 있다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기질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티치아노는 거의 70년 가까이 베네치아 회화를 지배하였다. 색조를 데생보다 우선으로 한 그의 회화적 언어는 결정적으로 베네치아 회화의 특징이 되었다. 이 작품은 육감적인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그의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이다.
스승 티치아노의 업적을 연장시키고자 전력을 다한 틴토레토는 베네치아의 성당들을 위해 거대한 크기의 유화를 제작하는가 하면 관공서의 주문으로 <파라다이스>와 같은 대규모의 서정적인 장면을 묘사한 장식화들도 제작하였다. 또 다른 수제자 중에는 침착한 기질을 가진 베로네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종교기관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거대하고 화려한 구성을 시도한 작품을 제작하였을 뿐 아니라 개인적 주문에 의한 <에마우스의 순례자들>과 같은 유화들도 제작한 뛰어난 색채화가였다.
[출처] : 지엔씨미디어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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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및 미술사적 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예수의 부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인 예수의 수난은 네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예수의 생애와 활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미술 작품에서는 대체로 이와 관련된 개별 장면이나 연작으로 사건을 묘사해 나타낸다.
<에케 호모>는 빌라도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자주색 망토를 걸친 예수를 가리키며 군중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고 세 번 외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중세 후기에 가장 활발히 그려지는 종교 도상이었다. <비탄의 예수>와 함께 관람자의 감흥을 이끌어 내는 모범적인 예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18세기까지 가장 영향력 있었던 <에케 호모>는 1540년대 후반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작품이다. 티치아노와 그의 추종자들은 <에케 호모>를 자주 제작했으며, 이들 작품에서 예수는 단독으로 혹은 주변인과 함께 나타난다.
표현기법
단독으로 그려진 티치아노의 <에케 호모>는 콩데 미술관 외에도 현재 뒤블린, 프라도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들은 서로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특히 3/4 측면상으로 표현된 예수의 모습은 과거 정면 혹은 측면으로만 그려졌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림 속 예수는 가시면류관을 쓴 채로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관람자에게 얼굴을 돌리고 있다. 그림자 진 얼굴과 빛나는 몸의 대조는 고난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예수의 숭고한 정신적 힘을 강조하는 화가의 뛰어난 재능을 읽어 낼 수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표정과 아래로 향한 시선은 그를 관람자와 분리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관람자로 하여금 연민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느끼게 한다.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표면에 등장하는 예수는 화면속에서 우러나오는 빛으로 투명하게 와 닿는다. 이처럼 티치아노는 1530년대를 기점으로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만년의 걸작인 <가시관을 쓴 예수>(1570년경)에서는 물질적인 실체의 형상들은 사라지고 온전히 빛과 색채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작품사항
티치아노의 <에케 호모>는 적어도5개 버전 이상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비엔나의 오스트리아 미술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 더블린의 국립 미술관의 작품은 티치아노가 직접 그린 것이 확실한 작품이며, 이외의 작품들은 티치아노가 그렸다는 것이 확실치 않거나 다른 이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감수 최리선/서울대학교 강사 /네이버캐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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