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수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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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수 시인====/시인*소개-☜

201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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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수 시집<노을울음>의 시 세계

 

 자연과 몸 바꾸기 또는 사랑을 엮어내기 

        

                                                    이근배(시인,교수)

 

 <하태수 시인의 시 세계>

내 겨레의 말씀이 있고 내 나라의 글자가 있으니 어찌 시를 쓰지 않으랴
우리 겨래는 역사를 가진 그날부터 보고 느끼고 겪은 일들을 생각으로
다듬어 너나없이 시를 써왔다.

 

삶의 갈래가 다양해진 오늘에 와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따로 두게 되었지만
글을 높은 벼슬도 얻을 수 있었던 제도와 풍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었다

 이렇듯 묵은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까닭은 사람으로나 작품으로나 만난 일이
없는 하태수 시인이 나와 함께 시를 공부한 분을 통해서 보내온 시편들을
읽으면서 왜 시를 쓰는가 시인은 누구인가 에 대한 아무리 캐도 뿌리의
끝을 볼 수 없는 물음에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하태수 시인은 이미 직장인의 능력개발에 대한 전문가로 여러귄의
저서를 출간한 연구가이며 지도자로 자리를 잡고 있는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머리와 가슴에 차오르는 시심(詩心)을 억누르지
못하고 붓을 잡기 시작하여 시의 길에 들어섰고 문예지에 등단하여
그동안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어 첫 시집을 내겠다는 것이다

 

나는 하태수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처음 시에
기웃거리던 그리고 나를 시로 끌어당기던 고향의 산과 들이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는 만나고 혜여졌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티 없이 맑고 경건한 무공해 유기농 산물이었다
왜냐면 오늘에 발표되는 많은 시들이 시류에 매달리거나 쓸데없이
말 꾸미기에 집착하여 겉포장만 화려하고 내용이 공허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의 시들은 자신이 삶 속에 부딪혀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적 동기들을
자신의 언어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지은이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시 3백 편을 모아 "시편"을 엮고는
시 3백편을 한마디로 이른다면 생각에 거짖 됨이 없다 고했다
아무리 표현이 능숙하고 시재가 넘치는 시인의 것이라도 시 속에 순수하지
않은 의도나 과대포장으로 덮여 있다면 결코 좋은 시 라할수 없을 것이다.
하태수 시인의 시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루나무의 까치

 

/하태수

 

시골 길 따라
밭두렁 언덕 위에
겨울내 속옷 벗어놓으며
생명을 디디는 갈망의 싹

 

알(卵) 터지는 소리는
억겁(億劫)으로 솟구쳐
하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없이
속살을 비집고 애무를 하네

 

산과 강 넋이 될 때쯤
까치란 놈, 내 몸뚱이에
등 굽은 뼈다귀 엉성하게 모아
모진 바람 끌어안고


 

역마살 가득 찬
임하나 쪼아 물고
천년만년 의지하며
서늘한 사랑 꿈틀거리게 한다


[미루나무의 까치] 전문
나무위에 둥지를 틀고 사는 까치는 그동안 시의 소재로 자주 쓰여왔다
대개의 경우 마을이나 산기슭의 높다란 나무위에 걸린 까치집이다

그 바람의 집을 지키는 까치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데 비해 이 시는
까치에게 집을 내어준 미루나무가 화자가 되어 나무와 까치의 관계를
깊은 인식의 눈으로 파악하고 있다

"산과 강넋이될쯤/까치란 놈 내 몸뚱이에 등이 굽은 뼈다귀 엉성하게 모아/
모진 바람 끌어안고" 에서 어느 누구도 뀌뚫지못한 까치의 치열한
삶을 엿보게 한다.

 하태수 시인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이 이 싯귀에 말해주고 있다
사람은 자연에 기대어 산다는 사람과 자연은 필연적 공생관계이며 서로
다른 객체가 아니라 한 몸인 것이다 시인의 감성작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물이든 시인 자신의 삶으로 환원된다


억새

 

/하태수

 

우리가 산다는 건
태어난 빚 갚기 위한 걸까

 

하늘에
마음을 메달아, 놓고
실컷 울려고 했다

 

세월을 불러놓고 보니
내 머릿결은
허연 백발로 나부끼고

 

침전된 뭇 아픔들이
할퀴고 간 주름살에
서녘이 찾아들 때쯤

 

스치는 바람마저                                           
보이지 않는 길 부딪혀
가슴 저리도록 서러운가

 

서늘한 허공
끌어안고 말라버린 눈물샘
기억마저 거두어간다

 

[억새] 전문

가을 들녁에서 흰 머리칼 휘날리는 억새는 저만치 세월을 보내놓고
노을 길에 서 있는 화자로 몸 바꾸기를 한다
산다는 건/태어난 빛 갚기 위한 걸까"의 시의 첫 줄에서
동안거를 끝낸 선승의 화두가 튀어나온다.

너무도 흔하게 눈에 들어오는 풀잎뿐인 억새를 사람의 한 생애를
대입시켜 나가는 착상과 그 응축이 섬뜩하게 살을 밴다.

글감을 어떻게 찾고 시로 형상화 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시적 체득이
여기에 닿아있는 것이다


덩달아 왔다가 덩달아 간다

 

/하태수


바람결에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덩달아 왔다가 전철만 타면

 

두 눈을 살며시 감고

뭇시선들이 한곳에 모이면
무언중에 대화한다

 

사방의 숨소리들과
가는 데까지 간다


시름없이 어설프게 앉아
때 묻은 영혼들과 힐끗거리다

 

보이지 않은 반걸음의 종점
이정표 따라 그는 덩달아 간다


이시는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덩달아 의 사전적 뜻은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실속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그런데
여기에 시인은 인물이 나 배경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바람결에 그는/아무것도 모르고/ 덩달아 왔다가"로 서두를 꺼내고
 "보이지 않는 반걸음의 종점/이정표 따라그는 덩달아 간다'로 얼핏 보면
매우 애매한 혼잣말로 시를 매듭짓고 있다 한가지 상황은" 무수히 만나는
사람들을 두고 그 안에 화자가 뛰어들고 있음을 비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도 덩달아 아무렇게 게나 사는 것은 아니다 꿈이 있고 목적지가 있고
의지가 있어 행동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성취가 있고 사회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돌아갈 때도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걸음의 종점/은 곧 목숨이 끝나는 날이고 아무도
그 이정표를 벗어날 수 없다 덩달아 갈 수밖에 없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다 해도 결국은
우리는 모두 덩달아 왔다가 덩달아 간다 는것을 ;한편의 경구(警句)로 내놓고있다

요즘 시인들은 잉크에 물을 많이 탄다 고 괴테(1749-1832)는  말햇다
그로부터 2백 년이 더 흐른 오늘의 시인들은 잉크에
 얼마나 더 많은 물을 타고 있는 것일까!


괴테가 말한 잉크가 시적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물은 과장이나 눈속임의 말일 것이다

하태수 시인은 잉크에 물을 타지 않아서 오히려 시의 새맛내기에는
감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의 원액은 순수한 것이어서
삶의 가까이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 그리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을 정갈하게 뽑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사랑에 대한 크고 밝은 눈 뜻과 남편을 여윈 상실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키는 특별한 힘을 갖추고 있다

 

[하늘나라 첫 집 (출상)]

 

/하태수 


여보!
앞산 뒷산 무너진다고
남들이 입으라 하니
삼베옷
아이들과 나
얼떨결에 입었구려

 

여기가 어딘지
분간도 아니 되고
내가슴 찢어져
피눈물이 나는구려

 

꿈속에서
아이들 눈에 맺힌 이슬에
당신 모습 보았소

 

한참 있다 아이들
아빠!
아빠!
당신 얼굴 만지네요

 

향 자욱한 새벽안개
한도 다 못 풀고 간 당신 
바람 따라가더라도

 

우리 새끼 친구 되어
험난한 세상 넘을 수 있도록
용기 하나 주고 가소

 

[하늘나라 첫 집 (출상)] 전문

소월의 시의 바탕은 사랑이지만 이별을 주제로 삼았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사부곡(思婦曲)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은 시인들도 있었다

하태수 시인은 가까운 이의 남편을 여윈 슬픔을 시로 쓴다
여보! 두 글자로 시의 첫 연을 열고 있는 것이 먼저 가슴을 친다

 

 "앞산 뒷산 무너진다고/남들 입으라 하니/삼베옷/아이들과 나/
얼떨결에 입었구려/는 아무 꾸밈이 없는 진술어이다

그런데 이 피동적인 삼베옷(상복)을 입는 것 하나가 어떤 절규나 통곡보다도
정제된 슬픔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준다

꿈속에서/아이들 눈에 맺힌 이슬에/당신 모습 보았소/도 절창이다

자칫 추스를 수 없는 비통을 여과 없이 쏟아내기 쉬운 시적 모티브를
이만큼 침전 시키는 억제가 놀랍다.

그는 기어코 사랑에 대한 간절한 믿음에 자신을 파묻고 있다
그리고 사랑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아내에게 그 아름다움을 받치고 있다

 

 노을 울음

 

/하태수

 

불면의 고통에 시달리며
허전한 아픔
안으로 달래는 수많은 날

 

너와 내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을 꿈꾸고

 

우리는 언젠가 있을 이별을 위해
슬픈 뒷모습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데


아직도 나는
홀로 긴 밤을 새우며

할배꽃 할매꽃 이어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에 
서러운 눈물 안으로 묻습니다.

 

[노을 울음] 전문
아직 하태수 시인이 노래할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지금부터 그의 시의 불꽃은 더 크고 더 빛나는
세계를 향하여 활짝 날개를 펼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