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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성 뒷쪽의 성곽 안에서 본 스코틀랜드 스털링 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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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Kingdom 여행/스코틀랜드

2020. 8. 28.

 

스털링 성 뒷쪽으로 나있는 성문 밖에서 본 모습이다.

 

 

성곽 밖으로는 넓게 묘지가 펼쳐져 있다.

 

 

 

 

 

 

 

스털링 성은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을 잇는 주요 도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 요새는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스털링 성은 오래된 화산 위의 평평한 꼭대기에서 주변 지역보다 76m 높이 솟아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든 전망이

 

훌륭하고 로버트 2세 시대부터 스튜어트 가의 왕들에게 주요 왕실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스털링을 차지하는 이가 스코틀랜드의 핵심을 쥐고 있다는 말까지 생겨나고~

 

 

 

 

 

 

 

성의 뒷쪽에 위치한 이곳은 Nether Bailey라고 불리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넓고 불규칙한 지형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왕실을 위한 마굿간과 상점, 그리고 개를 키우는 공간도 있고 궁전에서 쓰이는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작업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드 하우스와 1810년에 지어졌다는 3개의 매거진이 있는데 이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자.

 

 

 

 

 

 

 

건물 밖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인데 또 다른 메리라고 표현되어 있는 메리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모후

 

마리 드 기즈를 말하는 거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 ~1587)는 제임스 5세와  프랑스의 명문 귀족 출신 마리 드 기즈 사이에서 딸로

 

태어났는데, 제임스 5세는 메리가 태어난 지 6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하고

 

 

1543년 9개월의 아기였던 메리는 대관식을 치르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메리 대신 정사를 

 

처리했다고 한다.

 

 

 

 

 

 

 

옛 왕실의 복장으로 갖춰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메리는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의 협박에 가까운 추진으로 그의 아들과 약혼했으나 헨리 8세가 노골적으로 스코틀랜드

 

에 대한 합병 야욕을 드러내자 동맹도 약혼도 깨졌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외교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딸 메리를 염려한 모후 마리 드 기즈는 잉글랜드의 숙적인 프랑스에 도움을 청해서 1548년 메리는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의

 

아들 도팽 프랑수아와 약혼하고 그 해 메리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모후 마리 드 기즈가 섭정으로서

 

스코틀랜드 왕위를 지켰다고 한다.

 

 

프랑스에 온 지 10년 만인 1558년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와 프랑스의 도팽 프랑수아의 결혼식이 열렸고, 다음 해 

 

앙리가 사망하자 도팽 프랑수아는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2세로,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로 즉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수아 2세가 오래 살지 못하고 즉위한 지 1년 만인 1560년 세상을 떠나자 메리는 1561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는데, 시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의 갈등이 심해졌을 뿐만아니라 프랑스에서 미망인으로 살기보다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친모인 마리 드 기즈가 1560년에 이미 사망한 후였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영토 분쟁 뿐만아니라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충돌로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한 상태였다고 한다.

 

 

 

 

 

 

 

1565년 7월 29일,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메리는 자신의 족친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와 혼인하고, 1566년 임신을 했는데

 

메리의 부군 단리는 자신이 왕의 칭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메리에게 앙심을 품었고, 그는

 

메리가 아이를 유산하고 그 후유증으로 죽어야만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리와 그의 동조자들에게 감금되었던 메리는 무사히 아들 제임스를 낳았고, 다음 해인 1567년 2월 단리는 목이 졸린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단리의 살해 사건에는 보스웰 백작 제임스 헵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고 한다.

 

 

그해 4월 보스웰은 메리를 납치해 강간한 뒤 결혼을 강요했고 추문을 방지하기 위해 메리는 보스웰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는데, 헨리 스튜어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죽인 보스웰과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메리의 인기는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보스웰의 아이를 임신 중이던 메리는 유폐 생활 중 쌍둥이를 유산하고 협박에 못이겨 왕위에서 물러났고, 그녀의 1살짜리

 

아들 제임스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로 왕위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1568년 메리는 탈출해 군대를 소집하여 진압을 시도했으나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메리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하며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메리의 할머니는 헨리 7세의 딸이기 때문에 메리는 잉글랜드 왕가 혈통도 물려받았지만 그에 비해 엘리자베스 1세는

 

생모 앤볼린이 사형을 당하며 사생아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메리는 자신이 정통성을 가진 잉글랜드의 왕이라고

 

하며 왕관에 잉글랜드 튜터 왕가의 문장을 새겨 넣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해 일생토록 엘리자베스 1세와 지속적으로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숙명의 라이벌로서 신경전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잉글랜드로 망명한 메리는 잉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칼라일 성에 감금되었고, 메리를 경계해 왔던 엘리자베스 1세이지만

 

스코틀랜드의 분쟁을 부추기고 있는 메리를 죽일 생각은 없었고, 메리는 셰필드에서 18년 동안 긴나긴 유폐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1580년 메리의 세 번째 남편 보스웰 백작이 덴마크의 감옥에서 미쳐 숨을 거두자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가 다른

 

유력자와 결혼해 왕위를 노리지 못하도록 메리를 반역죄로 몰았다고 한다.

 

 

메리는 재판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1587년 2월 8일 메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서 노스햄프턴셔의 사형장에서 참수당했다고 한다.

 

 

1603년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공동군주가 되었고, 제임스 1세는 모친의 시신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했다고 한다.

 

 

 

전시실 안에는 이런 격동기의 스코틀랜드 왕들의 연대기를 잘 기록해 놓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자 나선 전시실 밖 모습이다.

 

 

전시실 바로 앞에도 높은 바위산이 버티고 있다.

 

어딜 올라가니~?  ㅎ

 

 

 

 

 

 

 

전시실 안에는 무척 흥미로운 내용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유니콘 The Unicone인데

 

유니콘을 사냥하고 성으로 가져와 가둬놓은 모습 등을 전시해 놓았다.

 

 

유니콘의 상징적 의미는 하나의 뿔은 힘이 센 왕의 권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순수의 상징이기도 한데

 

유니콘은 남성의 뿔과 여성의 육체를 가지는 남녀 양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17세기의 어느 문헌에는 사자와 일각수의 싸움이 묘사되어 있는데

 

"사자는 일각수를 보자마자 나무 위로 올라가 피했다. 일각수는 나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다가 나무를 들이받으면

 

그 뾰족한 뿔이 나무에 꽂혀 버린다. 그러면 사자는 유유히 내려와 일각수에게 덤벼들어 일각수를 죽인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 일각수는 아주 힘이 세서 뿔 하나에 코끼리 세 마리를 꿰뚫어 얹고 다닐수 있었다고 한다.

 

 

 

 

 

 

 

유니콘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동물로 스코틀랜드 문장은 이 고귀한 일각수 두 마리가 지탱하고 있는 형태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제임스 1세 밑에 합쳐진 후부터는 사자와 유니콘이 영국 왕실의 문장 속에서 함께 살며

 

대영제국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의 잉글랜드 문장에는 사자와 용이 그려져 있었고~

 

 

 

 

 

 

 

Nether Bailey의 건물 마지막 부분에는 Tapestry Studio가 있다.

 

 

이곳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는 궁전 장식에 사용됐다고 하고~

 

 

 

 

 

 

 

마지막 전시실을 나서서 본 Nether Bailey 모습이다.

 

 

 

 

 

 

 

성곽 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한번 올라가볼까~?

 

 

 

 

 

 

 

성곽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견고하게 쌓아놓은 성도 담아보고~

 

 

 

 

 

 

 

성곽 길을 따라서 성문 쪽으로 간다.

 

 

 

 

 

 

 

성곽 길에서 바라본 성 모습이다.

 

 

 

 

 

 

 

다시 성 안으로 발걸음을 한다.

 

 

 

 

 

 

 

궁전 외벽을 장식하는 조형물이 멋지다.

 

 

 

 

 

 

 

 

 

 

 

그레이트 홀은 약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왕실 행사, 파티 등이 열렸다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회장이다.

 

 

그레이트 홀 맞은 편에 있는 로얄 팰리스 The Royal Palace 모습이다.

 

 

 

 

 

 

 

이제 궁전 안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