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코코 2009. 5. 19. 01:49

소박한 풍경으로의 소요, 아름다운 5월의 산책길

 

‘휴休’자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선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옛 사람들은 사람이 나무에 기댄 모습을 가장 평안한 상태로 여겼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은 나무로 상징되는 자연에 기대어 휴식하고 명상한다. 나날이 화창해지는 요즘,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거닐며 풀 냄새를 맡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씻고, 가끔 두 팔을 벌려 햇살 샤워를 즐기며 쉬던 선인들의 휴식을 갈망한다. 그 길이 멀지 않다. 뒷산 작은 언덕도, 개나리 흐드러진 주택가 골목길도, 회사 앞 소공원도 아름다운 쉼터다. 일상을 쪼개어 햇살 속으로 발을 내딛는, 참으로 소박한 방법으로 가장 극적인 휴식에 도달할 것이다.


솔향기가 은은한 승가사의 산책로.


숲 속 층계에 올라 세상을 마주하다, 북한산 승가사
도심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소요逍遙를 즐기고 싶다면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구기동, 평창동, 성북동 일대도 좋은 산책길이 된다. 주택들이 들어선 길이 의외로 산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집들을 둘러싼 높은 담장은 주변 거리와 차단된 고요한 골목을 만들고 눈을 어지럽히는 간판이나 불쾌하게 길을 막아선 주차 차량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또 이런 길은 대부분 녹음이 무성한 산중턱으로 이어지고, 덕분에 신선한 나무 향기와 경쾌한 새소리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특히 구기동의 구기터널에서 북한산 비봉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 푸른 소나무 숲을 지나는 좋은 산책길이다. 그 중간 즈음에 유명 사찰인 승가사가 있다. 평소 북한산은 많은 등산객으로 붐비지만 승가사로 오르는 길은 등산 코스에서 살짝 비켜나 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승가사의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은 수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칸 한 칸 세며 걸음을 옮기면 마음에 켜켜이 쌓인 생각의 무게가 덜어지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기암에 휘감긴 서울 도심의 장관이 비워진 시야를 파고든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속해 있던 세상,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 같은 하늘 아래 천년 도량의 사찰과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두고 보는 기분이 오묘하다.

* 가는 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0212번 마을버스를 타고 승가사 입구에서 내린다.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승가사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구기터널 근처에서 승가사 이정표를 확인한 후 언덕길로 올라가야 한다.


1 비가 내린 봄, 동백 꽃길이 열린 백련사.
2,3 다산 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은 갖가지 식생을 만날 수 있는 수월한 산책길이다. 
4 백련사는 만덕산 산허리에 있고, 남쪽 산기슭에 다산초당이 있다.


사유의 바람이 이는 동백 숲,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은 이웃한 백련사와 함께 남도 여행의 백미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문자가 버스나 차를 이용해 이곳을 관람하기 때문에 다산초당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아름다운 산책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세상이다. 나무에서 배어난 진액이 숲을 촉촉하게 적시고 벚꽃, 진달래, 동백꽃이 경쟁하듯 꽃망울을 터뜨리는 길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차분히 걷기에 더없이 좋다. 촘촘하게 들어선 동백나무가 하늘을 가려 만드는 숲의 명암이 몽환적이고, 이따금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모노크롬 영화 같은 극적인 감동을 연출하기도 한다. 동백꽃이 아련히 떨어진 숲 뒤로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다산이 아끼며 가꾸던 아름다운 차 밭이 풋풋한 향기를 전한다. 야생 차 밭 사이에 그림같이 놓인 고즈넉한 백련사의 정경과 해안선이 넘나드는 아득한 강진만의 절경도 일품이다.

* 가는 길
강진 읍내를 지나 18번 국도를 타고 완도 방면으로 향한다. 학명리 추도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도암 방면으로 7km 정도 달리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초당이나 백련사 어디든 주차할 수 있지만 다산초당 주차장부터 이어지는 길 또한 아름다우므로 이왕이면 다산초당에 차를 두고 백련사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1, 2, 3 낡은 슬레트 지붕과 돌담이 정겨운 삼선동 골목길.
4 종로구에서 성북구까지 이어지는 서울 성곽에서 내다본 서울의 풍경.


성곽 너머 숨어 있는 따뜻한 골목길, 서울 성곽과 삼선동 골목길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습이 낙타의 굽은 등을 닮았다고 하여 낙산으로 불리는 서울 성곽. 이곳은 숲이 우거지고 샘이 흘러 오래전부터 산책길, 특히 아침 산책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 뒤편에서 시작된 긴 성곽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성곽을 따라 걷다가 좁은 문으로 들어서면 도시의 옛 정취와 자연을 벗한 작은 도화원이 펼쳐진다. 낡은 지붕 위로 만개한 꽃나무가 연분홍빛 봄을 알리고 촘촘한 돌계단 틈 사이에 노란 들꽃이 생명을 틔운, 믿지 못할 풍경의 이름은 성북구 삼선동이다. 발꿈치를 들면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이 사이 좋게 모여 있고, 세월에 바랜 대문이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 텁텁한 연두, 희끗한 노랑, 쇳물이 앉은 구릿빛 대문들. 바람이 두드리고 세월이 만져 만들어낸 소박하고 구성진 컬러는 저 아래 복잡한 거리의 상점에서 제아무리 좋은 물감을 사도 좀처럼 흉내낼 수 없을 테다. 마치 지중해 절벽 마을에 내걸린 낡은 빨래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컬러가 경사진 골목 어귀마다 봄바람에 나부낀다. 녹슨 세숫대야의 부딪침, 복슬강아지의 반가운 울음, 여름이면 동네 밖까지 줄을 선다는 콧대 높은 냉면집 간판이 릴레이를 벌이는 이 천진한 산책길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 어느 숲보다 풋풋하고 싱그럽게 피어 있다.

* 가는 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뒤편의 오르막길로 걸어가면 낙산공원 이정표와 산책길을 만나게 된다. 또는 대학로의 한성대학교 후문에서 오르막길 쪽으로 올라가면 낙산공원과 서울 성곽에 이르게 된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성곽을 통과하는 작은 문이 보이는데, 이곳을 지나면 삼선동 골목길에 들어서게 된다.


정백두대간의 능선을 이루는 하늘재. 골짜기 기슭에는 예술가들이 모인 도예촌이 있다.


하늘 고개에서 현세와 미래가 만나다, 충주 미륵리 하늘재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기회가 많지 않은 요즘 세상, 하늘재는 이름처럼 옛 사람들이 하늘과 맞닿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던 고갯길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길이 열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 속한 세상 같지만 실제 높이는 해발 525m로 그다지 높지 않고 국립공원 산책로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고갯길인 하늘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잇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길이다. 경상도와 충청도, 현세와 미래, 관음 세계와 미륵 세계를 잇는 신비로운 연결로는 적송과 떡갈나무, 해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 세상을 아득히 내려다보는 기암절벽과 진분홍 물봉선화와 자줏빛 수리취 등의 들꽃이 어지럽게 피어난 하늘길. 봇짐을 메고 고개를 넘다 바람 냄새에 쉬어가던 옛 사람들처럼 일상에 쉼표를 찍고 지나간 시간과 다가설 인생을 만드는 광활한 하늘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

* 가는 길 충주터미널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월악산 미륵사지행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수안보와 지릅재를 지나 월악산 미륵사지 매표소까지만 갈 수 있다. 미륵사지 3층 석탑을 지나쳐 왼쪽으로 난 작은 숲길로 들어서면 하늘재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야외 식물 공원으로 조성된 남산공원 한남지구.


자연 정원 속 오후 산책, 남산공원 한남지구
도심 한가운데 울창한 나무숲을 이루고 있는 남산은 N타워를 중심으로 도서관과 식물원, 국립극장 등의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때문에 흔히 남산을 뻔하고 복잡한 산책길로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산의 곳곳에는 숨겨진 비밀 정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남산은 회현지구, 예장지구, 장충지구, 팔각정 주변 그리고 한남지구로 나누는데, 앞서 나열한 네 곳은 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데 비해 한남지구는 외국의 공원처럼 지역 주민이 피크닉을 하거나 산보를 즐기는 자연 정원이다. 예전에 외인주택 터였던 곳을 야외 식물원으로 꾸민 한남지구는 입구가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정문 옆으로 감춰져 있기 때문에 언뜻 하얏트 호텔의 정원으로 착각하기 쉬워서 서울 시민 중에도 모르는 이가 많다.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의 다양한 식재가 오솔길을 이루고, 야생화가 핀 연못과 천연 습지가 공원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숲 속에는 피크닉을 위한 나무 테이블과 작은 오두막이 있어 볕이 좋은 날이면 가족끼리 소풍을 즐기거나, 오두막에 누워 한가롭게 독서와 태닝을 즐기는 외국인이 많다. 다양한 식물을 감상하며 한가롭게 거닐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서울 도심 속 숨어있는 또하나의 산책길이다.

*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 또는 1호선 서울역 4번 출구에서 402번 간선 버스를 탄 뒤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하차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산체육관 건너편의 공용 주차장이나 그랜드 하얏트 호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1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길에는 유유히 흐르는 도솔천이 동행한다.
2 주차장에서 산 속 암자에 이르기까지 봄이면 선운사 일대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3, 4 신라 진흥왕이 수도하기 위해 머물렀다는 진흥굴은 선운사의 또 다른 볼거리다.


붉은 꽃 지고 푸른 찻잎 피어나는 숲, 고창 선운사
지천에 피어난 꽃밭 사이로 늙은 나무가 깊은 숨을 내쉬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봄이면 수줍은 여인의 눈물 같은 동백꽃이 그득하고, 가을이면 꽃무릇(수선화과의 한 종류)이 천지를 뒤덮는다. 선운사 북향의 그늘 밑에서 피어나는 꽃무릇은 상사화라고도 불린다. 상사화는 꽃보다 잎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꽃이 필 때 조심스레 자라던 잎은 떨어지고 만다. 잎은 꽃을 그리고 꽃은 잎을 그린다는 상사화는 그 옛날 한 스님이 아름다운 여성 신도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뒤 무덤에 진분홍빛 상사화가 피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한때 3천 명에 달하는 승려가 거주했다는 유명 사찰인 선운사는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오르는 길이 장관이고, 선운사에서 한적한 암자 도솔암으로 오르는 산책길 또한 미려하다. 봄이면 동백꽃이 만개하는데 어린 동백 묘목이 가지런히 늘어선 숲길이 인상적이다. 조용한 선운사 뒤편으로는 아름다운 차 밭이 펼쳐지고 승천할 듯 솟은 고목이 뒤틀린 가지 사이에 돌과 이끼를 품고 있는 모습이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 가는 길 고창, 정읍, 광주에서 선운사까지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선운산 I.C.를 거치면 선운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1 거대한 빌딩 숲에 싸여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천연의 자연을 간직한 백사실 계곡.
2 백사실 계곡에 봄이 찾아오면 이름모를 들꽃이 숲을 가득 채운다.
3 푸른 나무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는 이항복 선생의 감탄이 느껴지는 고요한 계곡의 풍경.


겸재의 진경산수를 닮은 풍경, 부암동 백사실 계곡
몇 해 전 겸재 정선의 <한양진경>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조선의 대표 화가였던 겸재는 독특한 진경산수법으로 그가 자란 백악산과 인왕산 일대와 지금의 압구정까지 사실적으로 기록해두었는데, 그의 그림에 따르면 지금의 빌딩 숲은 사공의 조용한 나루터였고, 빼곡한 아파트 단지는 선비들이 봄꽃 맞으러 유랑을 떠나는 나들이 길이었다. 비록 흑백의 농담으로 그려낸 풍광이지만 겸재의 한얀진경이 유려하고 다채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화면을 가득 채운 산과 들, 하늘과 물의 기운 때문일 테다. 청와대와 정부 주요 시설, 외국 공관이 즐비한 광화문 지척의 부암동 백사실 계곡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겸재의 시절로 돌아간 듯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개울이 흐르고 고목이 우거진 풍경이 마치 미려한 산수화 같고, 조용한 숲에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항복의 별장터가 오롯이 남아 있기도 하다. 동네 주민만 찾아가던 이 비밀스러운 계곡은 최근 드라마와 기사를 통해 지역이 주목받으면서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소박한 카페와 작은 가게들이 인사를 건네는 부암동 작은 골목을 지나 숨겨진 숲에 이르는 산책 길이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싱그럽고 유쾌하다.

* 가는 길 지하철은 3호선 경복궁역이 가깝고 버스는 부암동 동사무소에서 하차한다. 환기미술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에스프레소라는 작은 카페 옆으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환기미술관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미술관과 산책로의 이정표가 있어 방향을 파악하기 쉽다.

 

출처 : 우리문화탐사회
글쓴이 : 선운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