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에 비해 크지않아 지나칠뻔했던 천년고찰 순창 강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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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2011. 11. 28.

 

명성에 비해 아주 작아 그냥지나칠뻔했던 천년고찰 순창 강천사..

 

이때가 언제였더라..^^ 가을단풍으로 물들러고 할때쯤 여행행사로

순창에 강천산을 다녀왔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고왔던 단풍도 어느새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거라 생각을 해본다..그리고

앙상한 가지위에 겨울 하얀꽃을 조만간 피울거란 생각에 또 설레인다

이렇듯 한계절을 보내면 또 한계절이 찾아오듯 서운했던 마음을

다른 볼거리로 잔뜩 채워주는거 같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담양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걸었기에 조금은 지쳐있었지만

산새가 수려하고 평지를 걷는듯 이어지는 산행길은 오히러 힘이

솟아 나는듯 발걸음 까지도 가볍게 느껴진다... 단풍이 들지않아

조금은 서운한 기분도 들었지만 스치는 나무마다 조금씩 보여주는

화려한 단풍은 창문틈으로 무언가를 훔쳐보는듯 더 짜릿하게 느껴졌다

여자들도 가끔은 훔쳐보고싶다...^^

 

강천산에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천년고찰 강천사가 있는데 하마터면 그냥 지나쳐버릴뻔했다

명성에 비해 아주 작았던 천년고찰 강천사.. 이곳에서는 유명한 도선국사가 창건했었고

유래깊고 성스러운 도량으로 깨끗하고 조용한 사찰이되어 후손에게 까지 전해질수 있도록

강천사 보호에 앞장서 달라는 강천사 주지스님의 당부의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강천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울정도로 그 모습이 빼어나다고 한다..

전북순창과 전남담양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으며 583,7미터로 그닥 높지도 않다

용이 꼬리치며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고해서 용천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가

신라때 우리나라에 처음 풍수리지를 도입한 도선국사가 강천산 계곡에 강천사라는

절을 짓고 난뒤 부터 절 이름을 따서 강천산이라고 불리우고 있다고한다..

풍수지리에 능한 도선국사가 강천산에 절을 짓게 된것도 따지고보면 우연은 아닌듯했다

 

 

 

 

 

300여년 동안을 강천사를 지키듯 옆에서 자라온 모과나무는 그 세월을 이야기를 해주듯

나무둘레는 어른이 안아도 남을 정도로 웅장함을 보여준다... 여전히 꽃이 피고 열매도 맺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그늘까지 만들어준다고하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고려 충숙왕 3년에 덕현 스님이 강천사를 다시 지을때 세웠다는 강천사 석탑은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오층탑으로 된 다보탑이라고도 부르며 2층 3층 4층의 덮개 돌에는

6.25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보는이로 하여금 한국전쟁의 아픔을 생각하게한다

임진왜란과 한국전때 이탑을 제외한 경내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는데 지금의 건물은

1961년에 다시 지은것이라고 했다..

 

오른쪽끝으로 보면 뽀족하게 나와있는 바위를 볼수가있는데 이 바위를 두고 망배단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150년전 신라 51대 진성여왕에 강천산을 찾아온 도선국사가 불자님 앞에

보이는 부처바위를 보고 부처님 도량으로 적당함을 확인하여 관세음보살이라고

주석하는 강천사를 창건하였다고 했는데 그후 강천사의 안산인 동편에 동암(관음기도장)을

설치하고 왕주암, 연대암,용대암, 직지암, 명적암등 12암자에 천여명의 승려를 두었던

영험한 기도 도량이였다고 했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천년고찰 강천사에서는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드려 소원성취하기를 기원했다

 

 

 

강천사에는 천년묵은 지네와 거지 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오고있다는데..

인간으로 변신하고 싶어하는 천년묵은 지네가 이절에 살고 있었는데 변신할려고하면 절에서

피우는 향이 너무 독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인간되는게 힘들게 되자 절로 기어나와서

비구니들을 한명씩 죽였다는 무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또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중에 나한전설이있는데 옛날 추운겨울에 눈많이 내린 동짓날 오고갈수없고 불씨마저 꺼져

부처님께 죽을 쒀서 올릴수가 없게 되자 바로 그날 새벽 청계리의 불자집에 동자스님이 불씨를

구하러 왔었는데 동짓날이라 동짓죽과 불씨를 드려서보냈는데 신발한짝이 집에 떨어져 있어서

눈이 녹고 보름만에 신발을 돌려주기위해 강천사로 갔더니 법당 탱화속 나한님 입에 동짓죽이

묻어있었고 한쪽 신발이 벗겨져 있었다는 웃지못한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거지승려와 돈에 얽힌 전설은 아무리 찾아봐도 자료가 없다는...ㅡㅡ

 

 

 

담장의 높이가 내 키보다 더 작았던거같다.. 낮은 담장너머로 보이는 천년고찰 강천사..

그냥 지나쳐 올정도로 크지않았던 사찰이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