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만남 / 안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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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읽기

2020. 5. 24.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만나기 위해서다. 누구를?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을. 독서는 인생의 깊은 만남이다.

우리는 매일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또 이웃을 만난다. 만남이 없이는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인생을 끊임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다. 우리는 같은 시대의 사람을 만나는 동시에 옛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옛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가? 책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독서는 옛 사람들과의 깊은 정신적 만남이다.

만남에는 얕은 만남이 있고 깊은 만남이 있다. 불행한 만남이 있고 행복한 만남이 있다. 소비적인 만남이 있고 생산적인 만남, 창조적인 만남이 있다.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과 만나는 것이요, 그들의 사상과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과의 만남, 사상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의 자아가 심화되고, 나의 인격이 성장하고, 나의 혼이 각성하고, 새로운 정신의 눈이 뜨인다. 새로운 자아 발견과 자기 심화의 법열을 느낀다. 그러므로 진정한 독서는 내가 참된 나를 알고 참된 나를 만나는 희귀한 창조적 행동이다.

어느 옛 어른은 이렇게 노래했다.

'문 닫으면 이 곧 산 속,
책 읽으면 어디나 정토.'

독서 삼매경을 노래한 명시다. 이것은 진정한 독서인만이 가지는 인생의 지극한 환희요, 다시없는 법열이다.

양서를 펴 보아라. '인생의 깊은 정신적 만남의 행복을 느낄 것이다. 종교의 진리를 말하는 구도자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 '학문의 깊은 이치를 정성스럽게 전해 주는 스승도 만난다.' '예술의 황홀한 미를 직감시키는 창조의 거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노래하는 시인의 음성에도 접할 수 있다.' '파란만장 속에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소설가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인생의 지혜를 담담하게 가르쳐 주는 스승들의 정다운 목소리를 대할 수도 있다.'

책 속에는 진리의 음성이 있고, 슬기의 샘터가 있고, 이론의 공장이 있고, 사색의 산실이 있고, 말씀의 향연이 있고, 뮤즈의 노래가 있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책 속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성실한 진리인을 만나야 하고, 위대한 혁명가를 만나야 하고, 진지한 학자를 만나야 한다. 책 속에는 정신의 동지가 있고 앙모하는 위인이 있다. 이러한 인물들과의 깊은 만남이 나에게 각성과 감명과 영감과 자극과 충격을 준다. 이것이 '나의 존재를 깊은 삶으로 심화시키고 높은 차원으로 비약시킨다.'

만남은 또한 대화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옛 어른들과 무언의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나에게 말하고 또 묻는다. 나는 생각하고 또 대답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깊은 물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다. 인간을 묻고 대답하는 존재다. 물음 없이 대답이 없고 대답 없이 물음이 없다. 나와 너와의 깊은 정신적 만남과 대화가 없이는 나는 성장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나와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을 하고 있다.우리는 이 정신의 향연에 참여해야 한다. 혼과 혼과의 만남, 마음과 마음과의 대화, 이 만남과 대화에서 새로운 정신적 창조가 이루어진다.

책을 읽어라. 위대한 음성들이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음성과 만나서 묻고 대답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정신의 이 풍성한 향연에 흔연히 참여해야 한다.


안병욱(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