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 안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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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읽기

2020. 5. 24.


내가 가지고 싶은 철학이 있다고 하면, 곧 조화의 철학이다. 조화된 생활, 조화된 인간, 조화된 가정, 조화된 사회, 조화된 역사, 어느 것 하나도 미 아닌 것이 없다. 조화는 곧 미의 원리다.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둘 이상의 요소가 하나의 전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조화라고 일컫는다. 조화는 진실로 미 그 자체다.

조화는 결코 타협이 아니다. 타협은 내 주장 내 요구와 네 요구가 서로 대립 충돌할 때, 나는 내 주장과 내 요구의 일부를 죽이고, 너는 네 주장과 네 요구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제삼의 어떤 절충점을 발견하다. 그러므로 타협에는 반드시 자기 부정의 요소가 언제나 따른다. 그러나 조화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위치에서 내 본질과 내 요구를 주장하고, 너는 네 위치에서 네 본질과 네 요구를 내세우되, 그것이 서로 모순 대립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고 너는 너대로 살면서, 저마다 자기다운 빛과 의미와 생명을 드러낸다. 이것이 곧 조화다.

조화 속에는 자기 부정의 비극이 없다. 조화는 완전한 자기 긍정의 세계다. 내가 살기 위해선 네가 죽어야 하고, 또 네가 살기 위해선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 세계는 조화의 세계가 아니다. 조화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다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는 곧 생명의 원리다. 모든 존재로 하여금 저마다 제 자리를 얻게 하고, 제 빛을 드러내게 하고, 제 생명을 다 하게 하는 것이 조화의 세계다. 같은 남자끼리 둘이서 걸어간다든지, 같은 여자끼리 걸어가는 광경보다는, 이성끼리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더 한층 아름답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감이다. 그 경우에, 남자는 키가 좀 크고 여자는 좀 작기가 일쑤다. 또한, 그럴수록 더 조화의 미가 드러난다. 이것은 성의 조화요, 남녀의 조화다.

조화의 원리가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음악의 세계다. 하모니가 곧 음악의 생명이다. 하나의 심포니를 생각해 보면 좋다. 북은 북으로서 큰 소리를 내고, 나팔은 나팔로서 우렁찬 소리를 낸다.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은근한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답게 흐느끼는 듯한 섬세한 소리를 낸다. 클라리넷은 클라리넷으로서, 색소폰은 색소폰으로서 저마다 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 모든 소리가 저마다 제 소리를 내되 서로 남을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전체적 통일을 이룬다. 이것이 교향곡의 미다. 이것은 진실로 조화의 극치다. 조화는 다양성의 세계다. 동시에 통일성의 세계다. 다양 속의 통일, 통일 속의 다양, 이것이 곧 조화의 본질이다. 조화는 곧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수려한 산이라도 물이 없으면 섭섭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강이라도 산이 비치지 않으면 어딘지 허전한 감을 느낀다. 산은 강을 부르고, 강은 산을 찾는다. 산은 강 옆에 있어야 빛나고, 강은 산을 안아야 아름답다. 이것이 곧 산수의 조화다.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의 원형을 찾는다면 곧 얼굴이다. 두 눈과 한 코, 두 귀와 한 입으로 구성된 사람의 얼굴에서 우리는 진실로 기능과 작용의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할 때를 생각하여 보라! 눈은 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귀는 듣는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코는 숨 쉬는 일을 잠시도 쉬지 않고 입은 말하는 일을 다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제 기능과 제 작용을 다 하면서 전체적 생명에 봉사한다. 말할 때 귀가 딴전을 부리거나 음식을 먹을 때 코와 눈이 입에 협력하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전체적 생명의 기능은 파괴된다. 작게는 하루살이의 목숨에서부터 크게는 사람의 목숨에 이르기까지, 무릇 생명은 일대 조화의 체계다. 유기체는 이러한 조화의 원리를 가지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조화는 미의 원리인 동시에 생명의 원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예로부터 조화의 사상을 가장 강조한 것은 그리스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리스의 철학에서 조화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코스모스'는 동시에 질서 또는 조화를 뜻한다. 얼른 보기에 복잡한 혼돈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듯한 삼라만상의 대 우주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정연한 질서와 아름다운 조화를 보았다. 그러기에,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란 말이 질서 또는 조화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되고, 가을이 찾아온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낮이 된다. 밤과 낮의 교체는 영원을 두고 변하지 않는 질서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면, 수십억을 헤아리는 무수한 별들이 저마다 제 위치를 지키고, 제 궤도를 돌되, 결코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 사람들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의 체계라고 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일월성신인 천체의 운행에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귀로써는 그 오묘한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과연, 그리스 사람다운 자유분방한 사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조화를 곧 정의의 원리라고 보았다. 인간의 몸이 머리와 가슴과 배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듯이 국가는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 계급과, 국토를 지키는 방위 계급으로 되어 있다. 머리는 머리의 위치에서 머리의 기능을 다 하고, 가슴은 가슴의 자리에서 가슴이 맡은 바를 다 하고, 배는 배의 위치에서 배의 할 일을 다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건전한 생명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만일, 머리가 머리의 직분을 안 하고 가슴의 일을 하려고 든다든지, 가슴이 가슴의 기능을 집어치우고 배의 구실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몸은 파멸될 수밖에 없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제 직분을 다 하고, 남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다. 이것이 곧 질서요 조화다.

정의란, 별것이 아니고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국가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통치 계급은 통치 계급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잘 하고, 방위 계급은 방위 계급으로서 국토방위의 직책을 다 하고, 생산 계급은 생산계급으로서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되, 서로 남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제 직분을 다 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가장 올바른 모습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의 자리를 안 지키고 자기의 할 일을 등한히 하면서 공연히 남의 일을 간섭하고 방해하기가 쉽다. 이것이 사회의 정의를 깨뜨린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하는 말을 강조한 데 대하여, 플라톤은 '네 분을 지키라'고 역설했다. 그는 수분의 철학을 주장했다.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제 직분을 다 할 때, 사회는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조화는 미의 원리요 정의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또한 건강의 원리요 행복의 원리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육체에 깃들인다. 이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부동의 신념이었다. 그들은 정신만의 인간이나 육체만의 인간을 생가지 않았다. 인간은 영과 육, 정신과 육체의 아름다운 통일이요 조화라고 보았다. 영의 이름 아래서 육이 멸시되거나, 육의 이름 아래서 영이 망각되기 쉽다. 우리는 영이 없는 육의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 동시에, 육이 없는 영의 나라에 살기도 바라지 않는다. 육은 영을 무르고, 영은 육을 구한다. 영이냐 육이냐가 아니고, 영과 육이 조화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건강한 모습이다. 영과 육의 조화를 떠나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구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고도로 분업화한 현대의 산업적 대중 사회에서, 인간은 자칫하면 불구적 인간, 부분적 인간이 되기 쉽다. 한 가지 영역에 전문적 직업인이 되는 결과, 전체적 인간으로서의 조화를 잃어버린다. 머리만의 인간이 생기기 쉽고, 손만의 인간이 되기 쉽다. 인간성의 모든 요소가 조화적으로 발달된 '전인'은 찾아볼 수 없고, 어느 한 요소만이 극단히 불구적으로 발달된 인간을 보게 된다. '전인'이 스러지고 '불구인'이 늘어 간다.

막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의 표어는 '조화'다. 현대인의 비극은 인간이 모든 영역에서 조화를 상실한 사실에 있다. 조화의 상실이 우리의 불행이라면 조화의 회복은 우리가 불행에서 벗어나가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은, 만인이 다 제 멋에 겨워서 살아가되,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하지 않는 일대 조화의 체계를 세우는 데 있다. 만인이 저마다 자기를 실현하고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 저마다 제 소리를 지를 수 있고 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회,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있고 통일성 속에 다양성이 있는 사회, 이것이 조화의 세계다.

조화! 이것은 분명히 미의 원리요, 생명의 원리요, 정의의 원리인 동시에, 또한 건강과 행복의 원리가 아닐 수 없다.


안병욱(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