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默言으로 빚은 등불 / 최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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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읽기

2020. 5. 25.

온 천지가 붉은색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벌판은 온통 자운영(紫雲英) 꽃밭이었다. 그 가운데로 이어진 방죽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의 흰색 저고리도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어머니를 졸졸 좇아가는 나의 얼굴이며 온몸은 붉은 자운영 물감을 덮어쓰고 있었다. 꿀과 꽃가루가 유채보다 더 많은 자운영, 그 꽃밭에는 꿀벌들이 윙윙 소리 내며 날아다니고,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숨바꼭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란 하늘에 햇살도 눈부신 화창한 봄날, 어머니는 보퉁이 하나는 머리에 이고 다른 하나는 손에 들고 딸네 집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마흔아홉에 낳았다고 하여 ‘쉰둥이’로 불린 나는 어머니가 가는 길이라면 어디거나 졸졸 따라갔다. 자나 깨나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와 50살 나이 차이의 코흘리개 막내둥이와는 무슨 대화가 오갈 수 없었다. 염불 외는 것을 빼면 잠자코 걷는 어머니를 나는 입을 다문 채 뒤따르기만 했다.

나는 코흘리개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 한나절 가까이 걸리는 누나 집, 그 갑절로 먼 외갓집도 여러 차례 오갔다. 철따라 연례행사마냥 찾아다닌 곳도 적지 않았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재를 넘어야 닿았던 영산(靈山) 약수터,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고 나룻배로 강을 건넜던 마금산(馬金山)온천, 땡볕을 덮어쓰고 몇 시간을 걸어가서 모래찜질을 했던 남지(南旨) 부근 낙동강변 등이 그러하다.

어머니는 막내자식을 당신의 그림자이기나 하듯이 달고 다녔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온통 어머니와 함께 들길 산길을 걸어다닌 기억밖에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이골이 나도록 데리고 다니면서도 무슨 말 한번 제대로 들려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철없는 아들이 방죽에서 들꽃을 꺾든지 말든지,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든 말든지 본척만척했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대신, 나를 자연 속에 그냥 내던져놓았다.

그렇다, 어머니는 나를 자연(自然)에 방기(放棄)했다. 풀과 꽃과 나무, 물과 흙과 돌, 구름과 바람과 햇살, 벌과 나비와 개구리… 그 자연세계를 자꾸만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선물한 나의 ‘말친구’들이었다. 나는 홀로 뒤처져 걷는 지겨움일랑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나는 풀꽃이랑 나비랑… ‘말 없는 말’을 줄곧 주고받았다. 자유세계를 구가한 나의 산길 들길은 어머니가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아 더욱 즐거웠다.

나는 걷는 복을 타고 나 초등학교, 중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초등학교는 북쪽으로 10리, 중학교는 남쪽으로 10리길이었다. 9년 동안 다닌 이 통학길도 언제나 나 혼자였다. 마을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나는 일부러 혼자 떨어졌다. 어머니를 따라 먼 길을 오가며 자연 속에서 누렸던 나 혼자만의 ‘자유’에 익숙해진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풀꽃이며 나비랑 뛰노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안했다.

어머니와 함께 먼 길을 다닌 것은 어릴 때만이 아니다. 그 길 또한 자운영 꽃밭처럼 언제나 눈부신 것만도 아니었다. 한번은 대학생이 된 내가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집으로 내려가 있을 때였다. 바로 손위 형의 소재를 급히 찾아야 할 일이 생겼다. “등불을 들고 앞장서거라!” 어머니는 단지 나에게 그 한마디를 했다. 그날 밤, 나는 등불을 들고 장터며 형의 처가가 있는 산골마을까지 무려 삼십 리가 넘는 길을 오가야 했다.

그 밤은 나로서도 정말 큰 고통이었다. 등불이라고 했지만 문종이로 가린 통 안에 호롱불을 담은 것이었다. 그것은 길을 밝혀준다기보다 사람이 걸어간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호롱등잔이 수평을 잃게 되면 낭패를 겪는다. 등불을 탈 없이 들고 가느라 나는 팔이 빠지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자꾸 흐르는 사이 호롱의 석유가 바닥나버렸다. 캄캄한 밤길, 어머니와 나는 불 꺼진 등잔을 앞세우고 하염없이 걷고 걸었다.

캄캄한 밤길을 그토록 오래 걸어갔지만, 우리는 아무 소득도 없이 허탕만 쳤다. 형의 소재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도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묵언(黙言)에는 익숙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 없는 말’을 가슴으로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묵언으로 빚은 등불’로 하여 나는 깊은 밤의 두터운 적막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이 흘러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놀랍게도 나는 어머니의 ‘묵언으로 빚은 등불’을 만나고는 한다. 나 홀로 한적한 산길 들길을 찾아들면 자운영 벌판을 걸어가던 어머니, 호롱등잔을 앞세우고 어둠을 헤집고 가는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나에게 옛날의 그 ‘묵언으로 빚은 등불’을 비춰준다. 나의 귀에는 어머니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말들이 고분고분 내려쌓이고는 한다.

독자는 시 읽기로 시인과 묵언의 대화를 한다. 나 또한 산길 들길에서 ‘묵언으로 빚은 등불’이 비춰지면 ‘묵언의 대화’를 나눈다. 풀과 꽃과 나무, 물과 흙과 돌, 구름과 바람과 햇빛… 이들이 세월을 거슬러 나와 어머니를 이어준다. 나에게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산길 들길의 자연(自然)이 안겨주는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나는 어느 하루인들 빠지지 않고 내 삶의 소금인 묵언을 찾아 홀로 산길 들길을 걷고 또 걷는다.

사람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이족(二足)보행이다. 우리는 두 발끝에서 진정한 생각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두 발로 걷기’를 제대로 가르쳤다. 머나먼 길, 캄캄한 길이 좋은 교실이었다. 어머니는 ‘묵언으로 빚은 등불’과 함께 ‘말 없는 말’을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그 ‘묵언의 대화’가 지금의 산길 들길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아집(我執)과 집착(執着)을 떨쳐내라.”

어머니의 이런 가르침이 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