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 정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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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읽기

2020. 5. 28.

입은 정교하게 설계된 콘서트홀이다. 그곳에서는 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된다. 막이 오르면 무대 중심에서 주인공인 혀가 상하로 마주보게 놓인 피아노를 앞에 두고 앉아 상아빛 건반을 번갈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물론 훌륭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언제나 뒤에서 성실하게 받쳐주고 있다. 팀파니나 북 등 리듬악기를 연주하는 심장, 첼로나 하프를 켜는 가슴, 바순을 코로 오보에를 목으로 내뿜는 폐….

공연의 성공 여부는 혀의 신중하고 절제 있는 연주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혀가 박자나 리듬, 화음 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면 공연은 엉망이 되고 만다. 다행히 자상한 창조주께서는 혀를 두 귀와 한 뿌리에 묶어 놓았다. 혀가 연주하는 어떤 것이라도 외부 방청객보다 항상 먼저 듣게끔. 두 귀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롭고 예민한 비평가다. 좌우 특별 객석에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그들은 연주되는 음악은 물론 나약한 존재를 무참하게 흔드는 그 반향까지도 다 듣는다. 무시해버릴 때도 있지만 혀는 대체로 그들 의견을 존중한다. 사실 조언을 듣기 위해 침묵 속에서 그들만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말이란 혀의 독주獨奏가 아니다. 몸의 모든 부위가 협연하는 협주곡이다. 그래서 늘 복잡한 배경음을 지닌다.

훌륭한 음악가는 소리보다도 침묵을 더 잘 다스린다. 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표는 몰라도 쉼표는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더 잘 연주한다고 한 아르투르 슈나벨의 고백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연주는 울림이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누군가가 "지난번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고 살짝 속내를 내 보일 때, "사실은 그것은 제 잘못이었어요"하고 늦게나마 순순히 잘못을 시인할 때, 그 언표가 거느린 침묵의 깊이에 우리는 얼마나 감동하는가. 연인이 오랜 망설임 끝에 "사랑해" 하고 어눌하게 고백할 때는 또 어떠한가.

음악에는 다양한 곡들이 있다. 화려한 것, 감미로운 것, 즐거운 것, 웅장한 것, 슬픈 것…. 그러나 어떤 곡이라도 연주의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늘 진실하고 절제된 연주가 아름답다.

살다보면 유쾌하고 넉넉한 심성의 소유자가 예기치 않게 즐거움을 줄 때가 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쯤은 그런 공연을 감상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보통 찰나지간에 이루어지는데, 커튼콜에 답하듯 콘서트홀이 갑자기 눈앞에서 활짝 열린다. 그곳인 이미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 있다. 쏟아지는 화려한 조명에 피아노 건반이 눈부시게 빛나고 큰 기쁨에 도취된 혀는 절정으로 치닫는 흥성한 선율에 맞춰 백건을 싱그럽게 애무하면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놓는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