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은 침묵보다 아름답다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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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읽기

2020. 7. 11.

"과묵한 사람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은 내 사춘기 시절의 취향이었다.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모습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의지나 매력 같은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매력이라니, 어림도 없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근래에 들어 점차 과묵한 사람이 싫어진다. 말이 없는 사람은 우선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쉽게 가까워지지가 않는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하였지만 어떤 경우의 침묵이나 늘 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녹이 슨 구리가 될 때도 있고, 삭은 막대기가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만난 사람일지라도 표정이 있는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무표정한 표정은 데스마스크와 다를 바가 없다. 그에게서는 인간의 훈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때로는 표정을 적절히 숨기지 못하는 것을 “그걸 꼭 안색에까지 나타내야 하겠어? 교양 없이……."라며 교양이나 인격과 연관지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교양, 혹은 인격이란 그토록 충실히 포장된 것인가? 참 짐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깨끗하고 순진한 모습일 것이다. 표정만 애매하게 짓고 말로 표현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명확히 자신의 언어로 나타나는 사람이 좋으며, 자신의 속을 내보이되 정성스럽고 부드럽게 내보이는 사람이 나는 좋다. 그리고 그것이 곧 훌륭한 인격이요 교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여우하고는 살 수 있되 곰하고는 못산다.’고 하는 말을 열 번 이해할 수 있다. 곁에서 나 듣기 좋으라고 가볍게 재재거리는 친구. 그러다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도 하고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는 친구. 기분이 여일하지 않고 변덕이 죽 끓듯 하여 도무지 믿음직스러운 데가 없을지라도 큰 배반을 음모하지 않는 여우같은 친구가 주변에 한 사람쯤 있어도 좋다.

과묵한 사람 중에는 적중하는 진실만을 표현하고 싶어서 신중하게 말을 선택하며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만을 말하려고 하다가 보면 평생에 단 한마디의 말을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진실의 주변에는, 아직도 진실이 아닐지라도 진실을 지향하여 진실이 되려고 애쓰는 수많은 몸짓이 있다. 과녁에 명중하기까지는 수많은 오발탄이 있을 수 있듯이, 미흡한 대로 표현하다 보면 결국 진실에 일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묵한 사람 중에는 혹은 언변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과묵한 사람 중에는 처음부터 할 말이 없어서 말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할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할말이 없다 함은 느낌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감동이 없는 사람은 기계처럼 차갑고 무서운 사람일 것이다.

할말이 없다면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과 앉아 있으면, 나는 마치 바람이 소통되지 않는 정밀의 늪 속에 갇힌 듯 답답하다. 그 과묵한 사람에게서 긴요한 한마디 말을 유도해내려고 하다 보면 폐쇄된 문을 두드리고 있는 듯한 피곤함을 느낀다. 말이 없는 사람과 마주보고 있으면 굳은 땅을 파고 있는 듯 시간이 삭막해지고 요원해진다.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는 미소를 짓는 것이 낫다. 미소만 짓는 것보다는 무엇이라고 한마디 인사를 덧붙이는 것이 좋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름답다. 고백하였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만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용이 있으면 표현이 있어야 하듯이…….

표현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과 한 가지라고 하면 좀 지나친 말이 될까? 있다고만 말하면서 감추고 있는 친구보다는, 부풀린 만화경 같은 풍경일지라도 보여주는 친구, 나를 그의 유연함으로 감동시킬 친구를 오늘은 찾아가 보고 싶다. 나는 요즘 들어 부쩍 표현의 미덕을 중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