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07. 5. 23. 14:44
성령의 기름 부으심(요일2:27)  

 

성령의 기름 부으심(요일2:27)


얼마 전에 읽은 수필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김수옥님의 [달팽이]라는 수필입니다.


"어느 한 순간 미쳐버릴 정도로 무기력할 때가 있었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고 이유도 없이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누군가 내 몸에 빨대를 꽂아 내 생명력을 빨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럴 때가 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서 손가락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힘이 없어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의욕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모든 게 다 귀찮고 다 집어치우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싶기만 합니다. 무기력증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마치 고무줄이 늘어져서 탄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심리상태가 늘어져버리게 되고 그럴 때 이런 무기력증이 생긴답니다. 심리학자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면 의욕이 상실되고 육체마저 기력을 잃게 되어 이런 무기력증 상태에 빠지게 된답니다.


안타까운 것은 내 스스로 이런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또 다른 무기력증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무기력증입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주일날 교회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배에 참여해 보지만 아무런 영적 기쁨도 감격도 없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회 봉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밀려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내 스스로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른다는 것입니다. 더 괴로운 것은 이런 나날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있고, 맡은 것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뿐입니다. 영적 무기력증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부흥사 빌리 그래함은 그리스도인의 90%가 이런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본 경험이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되는 이유가 한 마디로 성령과 무관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과 무관한 생활을 하면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 없이 목사가 목회 잘하고자 하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봉사 잘하고자 하고, 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고자 합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주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생활을 성령의 역사로만 현실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 우리는 결단코 풍성한 영적 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 없이는 영적 무기력증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름부음의 의미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기름 부으심"입니다. 주께서 본문의 편지를 받는 신자들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오늘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요즘은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구약 시대에 기름 붓는 의식은 하나의 관습이요 국가적인 의례로 행해졌습니다. 왕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를 때 기름 붓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마치 근대사회의 국왕들은 왕관을 씌워주는 대관식을 하듯이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 사람이 왕임을 만천하에 공포했습니다. 또한 제사장도 선택돼서 직위를 부여받을 때 공식적으로 기름 붓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마치 목사가 임직할 때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하는 것처럼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또한 선지자들도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훈련시킨 뒤에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하기 전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택함 받은 소수의 사람들 즉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특권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선택된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신약 성경은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의 메시야,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예수님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의 경우처럼 공식적으로 기름 붓는 의식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행 10:38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이 말씀 안에 신약시대의 기름 부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약시대의 기름부음은 바로 성령의 임재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사생애 30년을 마치시고 그리스도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성령이 예수님께 강림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마태는 마 4:16절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사건을 기름 부음의 사건이라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마치 구약 시대에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기름 부음을 받고 권위와 능력을 가지게 됐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사건 이후에 비로서 그리스도로서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있습니다. 최초로 2:1-4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이들은 사도로, 교사로, 전도자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 이후에 그들이 권위와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도중에 수시로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행 8:17을 보면 사마리아 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기로 작정하자 사도들의 기도와 함께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 후에 그 사람들에게 권위와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런 사건을 그리스도인의 기름 부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의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의 강림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세우실 때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권위와 능력을 덧 입혀주십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고, 그리스도인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작은 그리스도들인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인 무기력증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영적 침체를 겪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우리 스스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기름부음의 결과


그러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변화합니다.


성령이 한 사람 위에 기름 부어지면 그 사람이 변화합니다.


사도 바울의 변화는 아마도 이 땅을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극적인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반대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짧은 순간에 그는 변했습니다. 예수를 전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앞장서게 됐습니다.


행 9장에 바울이 이렇게 변화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만 그 중심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이 사건으로 바울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성령이 바울 안에 내주하면서 계속해서 바울을 변화시켜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기름 부어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우선 생각이 바뀝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으로 바뀝니다. 나만 알던 사람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I' 랍니다. 우리말은 언어 습관상 '우리'라는 말고 '나'라는 말이 같은 뜻으로 혼용되고 있어서 '나'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우리 말에서도 역시 '나'라는 의미의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한 인격 위에 기름 부어지면 그리고 그 인격 안에서 그 기름부음이 지속되면 달라집니다. '나'라는 단어 대신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많아지고, '이웃'이라는 단어도 많이 나타납니다.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감정이 바뀝니다. 늘 어둡고 불안하던 마음이 밝아지고 평안해 집니다.


현대인은 늘 무엇엔가 좇기는 듯 살아갑니다. 자칫 한 눈 팔다보면 남들에게 뒤쳐지기 때문에 늘 긴장을 풀지 못합니다. 그 삶이 언제나 치열합니다. 여유가 없고 각박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75%가 노이로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분석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기름 부어지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좇기듯 살지 않습니다. 더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소유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습니다. 평안합니다. 그래서 노이로제를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이 한 사람 위에 기름 부어지면 그 사람에게 놀라운 능력이 생깁니다. 사실 우리가 행하지 못할 때 물론 몰라서 못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합니다.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용서할 힘이 없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사랑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정기 국회가 개원됐습니다. 국회의장의 개원연설이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그 요지는 이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싸우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 그런데 이런 연설을 들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매 국회 때마다 반복됐습니다.


저는 군사독재 시절 독재정부의 여당과 민주 투쟁을 하는 야당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더욱 강하게 싸우고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민주화가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 좀 나지나 했더니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야가 치졸한 당리당략으로 민생 현안 문제는 제쳐놓고 정치 투쟁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이제는 정말 나아지겠지 기대했습니다. 여야가 모두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고 자기들끼리 영수회담인가를 하면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여야가 모두 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인가? 여야 모두 머리가 나빠서 약속한 것을 잊었기 때문이가? 아닙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들 안에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화해할 힘이 없습니다. 서로 용납할 힘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합니다. 성령이 사랑의 은사를 주셔야 그 은사로 그 힘으로 용서도 하고 화해도 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지속되면 화해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것만은 못합니다.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하고는 같이 일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은사를 주십니다.



셋째, 일을 합니다.


구약에서 선택된 몇 사람에게 기름을 부은 이유는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 위함입니다. 왕으로 백성을 섬기고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 기름을 부었습니다. 제사장으로 거룩한 일을 맡아 수고하도록 기름을 부었습니다.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기름을 부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이유는 메시야로 십자가를 지며 섬기고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기름을 부어 특별한 권위와 능력을 주신 것은 특권만을 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하라고 기름부어 특권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이유는 주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일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명과 직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하나의 영적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영적인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열심히 모입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뜨겁게 기도합니다. 영적인 능력을 받고 은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수행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은 등한히 합니다. 마치 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으면 살찌게 되고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처럼 한국교회 안에 갖가지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은혜 받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으면 교회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천직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기름 부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기름 부음을 받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그 기름 부음이 소멸됩니다. 왜냐하면 기름 부음의 목적이 주를 위해 일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로 임직됐으면 목회를 해야 합니다. 목회를 하지 않으면 목사로서의 은사가 소멸돼서 나중에 목회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에서는 무임 목사 3년이면 면직하도록 했습니다. 목사직을 취소하도록 한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면 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계속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놀라운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일하게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늘 풍성한 영적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여러분 안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여러분 안에 지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