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8. 4. 12. 12:57
이제는 벗어날 때
                                                         고린도전서 3:1∼11

                                                                                                                 안용민 목사<동산교회> 

 

 


사람은 누구나 갓난아기로 태어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갓난아기서부터 출발하여 어린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와 청년기, 장년기(어른), 노년기(노인)를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목사님이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릴 말씀은 믿음 만큼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아이들은 매우 힘이 약하여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또한 그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해서 어른들과 같이 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께서는 고린도 지방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의 믿음이 아주 어린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물론 나쁜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고린도지방의 교인들이 비록 어른들이지만 믿음만큼은 어른들처럼 자라나지 못하고 어린아이 같이 머물러 있어서 서로우리 파가 잘났다고 매일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 만약 학년은 점점 높아지는데 내 몸이나 생각은 자라나지 못하고 공부도 일 학년과 같은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다면 많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창피함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몸도 잘 자라서 튼튼하고 공부도 잘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놀림을 받거나 창피함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우리의 믿음도 점점 자라서 믿음이 강해져야 하는데, 교회에는 열심히 나오는데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면 아마 마귀가 제일 좋아해서 마귀의 놀림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제 차근차근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음식의 차이일 것입니다. T.V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새들은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는 어미 새가 뱃속에 있던 것을 토해 내어 부드럽게 된 것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새끼들이 자라나면 자기 부리로 직접 먹이를 쪼아서 먹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갓난아기 일 때는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젖이나 모유 같은 씹지 않고 삼키는 음식만 먹지요. 그러다가 커서는 딱딱한 것이나 부드러운 것 등 이것저것 다 잘 먹습니다. 그런데 매일 우유나 어머니의 젖만 먹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영양이 모자라 몸도 키도 잘 자라지 못할 것이며 생각도 항상 어린아이 같아서 부모님의 걱정만 만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교회에 나오면 나올수록,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야 될텐데 만약 그렇지를 못한다면 누가 제일 많이 걱정할까요?
부모님?
선생님?
목사님?


아니지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이시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셨는데 만약 그 믿음이 자라지 못한다면 그 선물을 주신 예수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고 또한 섭섭하시겠어요. 그러므로 몸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단단한 음식도 잘 먹어야 되듯이 우리의 믿음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입 대신 귀로 잘 듣고,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배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억지로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의 믿음도 배탈이 나서 잘 안 자라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이렇게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매일 어린아이 같이 머물러 있는 사람을 바울 사도께서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3절). 이런 사람은 한마디로 돼지 같은 사람입니다.

 

돼지는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깨끗이 씻어놔도 다시 금새 더러워집니다. 우리는 그래도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하면 회개도 하고 새로운 각오로 믿음 생활을 하기로 기도하며 다짐을 하곤 하는데 그러나 오래 못 가서 다시 서로 내가 잘났다고 욕하며 싸우고 끼리끼리만 친하게 논다면 육신에 속한 사람들처럼 우리 마음은 금방 더러워져서 돼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의 특성 중 하나는 매일 먹을 것만 찾는 것인데 우리 친구들도 믿음이 있으면서도 세상 것만 좋아하게 된다면 돼지처럼 못된 것만 피둥피둥 살이 찌개 됩니다. 여기서 못된 것이란 거짓말, 욕, 질투, 싸움 등이지요. 그리고 교회에서는 열심히 주여! 하고 기도하는데 집이나 학교에서 형제들이나 친구들에게 죽여! 하거나, 할렐루야 대신 모를래야, 안할래야, 또 아멘 대신 노멘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사람들로서 시기와 분쟁만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벗어날 때'입니다.
나비는 흉측한 번데기에서 벗어나야만 예쁜 나비가 되어 날아 다닐 수 있고, 뱀은 그 허물을 벗으면 벗을수록 그 몸은 점점 커지며, 게도 껍데기를 벗어야 어른 게가 되듯이 우리 친구들도 이제는 비록 몸과 마음은 어린아이일지라도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물들도 허물을 벗을 때 매우 아프다고 합니다.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합니다. 즉 주일날 교회에 일찍 나오기 위해서는 토요일 날은 일찍 자야하고, 주일아침에는 단잠에서 일찍 깨어 나야하고, 보던 T.V도 끄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놀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합니다. 또한 친구들과 싸움을 하게 될 때도 져 주어야 하고, 욕도 참아야 합니다. 이것을 참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6학년이 되었는데도 3학년 동생들과 어울린다면 얼마나 꼴볼견 입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교회에는 잘 안나오고 오히려 믿지 않는 친구들만 좋아하여 그 친구들과만 놀게 된다면 그런 어린이들은 믿음이 자라지 않아서 모두 사단의 놀림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친구들이 사단의 놀림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약한 믿음의 모습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