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8. 4. 12. 13:00

질그릇 속의 보배

고린도후서 4:7~11


안용민 목사 >원주 동산교회<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그릇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릇은 만드는데 따라 여러 종류의 재질이 있습니다. 돌로 만든 것, 철로 만든 것, 플라스틱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질그릇이 나옵니다. 질그릇이란 흙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이런 질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먼저 우리는 질그릇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창 2:7). 그것은 마치 질그릇을 만든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질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로, 우리는 지음 받은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질그릇의 특징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그릇에 비해 볼품이 없고,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플라스틱이나 쇠로 만든 그릇은 웬만한 돌에 맞아도 끄떡없는데 흙으로 만든 그릇은 쉽게 깨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을 이런 질그릇같이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연약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되어 있고 건강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감기 하나만 걸려도 자리에 눕고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뼈도 튼튼한 것 같지만 너무 쉽게 부러지며 살도 쉽게 상합니다. 아무리 강해 보이던 사람도 심장마비나 고혈압에 쉽게 쓰러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성경에서는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이 아무리 강한들 얼마나 강합니까? 조그마한 돌에 맞으면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 사도 바울도‘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는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할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고후 11:30).

그렇습니다. 내가 똑똑하다고, 힘이 세고 운동을 잘 한다고, 피아노를 잘 친다고, 예쁘다고 자랑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자랑하다가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나를 잡아매는 올무가 되어 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연약하다는 데 있지 않고 보배를 담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이처럼 질그릇은 천하고도 약한 그릇이지만 만일에 그 그릇에다 보화를 담는다면 아마 그 그릇은 최고의 가치 있는 귀한 보물 함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금 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릇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니까“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보잘 것 없는 질그릇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보배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이“보배”란 바로 6절에 나오는“예수 그리스도”즉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몇 천원에 산 항아리라도 그 속에 몇 천만 원짜리 보석을 넣어 두었다면 그 항아리는 그날부터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주인은 귀한 보석 때문에 그 항아리를 제일 귀한 곳에 보관하고는 자주 꺼내도 볼 것이며 항아리도 깨끗하게 닦아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낱 보잘 것 없고 약한 인생에 불과하지만 내 속에 예수님을 모시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모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 부족한 사람까지 강한 능력과 특별한 사람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매우 힘이 들었고 마음이 괴롭고 몸도 고달팠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고 때론 굶기도 하고 잠을 자지도 못했으며 강도의 위협과 바다의 배가 부서지는 위험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속에 계신 보배 즉 예수님을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감사가 생기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를 초대교회시대라고 말하는데 이때 살던 성도들은 로마의 황제들의 핍박을 받을 때에 과감하게 목숨을 내놓으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육체는 불에 타죽고 사자에게 찢기어 죽는 다해도 죽음으로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확신,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과감히 순교하게 한 것입니다.

정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육신이 다 깨어지고 부셔졌으니 그들의 몸은 질그릇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있는 보배로운 믿음은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보배중의 참 보배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의 믿음을 가리켜“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벧후 1:1). 그렇습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약한 질그릇 속에 보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아끼시고 귀하게 봐 주십니다. 그래서 8절의 말씀대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게 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되며 핍박을 당해도 세상이나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기는커녕 승리하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어떤 항아리에라도 무엇을 가득 담은 채 보배를 그 속에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질그릇에 내 보배로 모시려면 내 그릇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내 마음의 보배로 모시려면 내 것을 다 비워야 합니다. 그동안 내가 보배로 여기고 살던 것, 즉 내가 그처럼 자랑삼았던 자랑거리를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우리의 보배로 모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귀하게 되었고 사랑도 받게 되었고 망하지 아니하고 이길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믿음의 보배를 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