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공 상희 2008. 7. 3. 17:20

강함과 부드러움

마태복음 10:16



미국의 시인(詩人) 칼 샌드버그는 이상적인 남성을 “강인하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했습니다.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부드러운 사람,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부드러울 수 있는 사람-교회는 이런 매력적인 사람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1. 강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뱀같이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뱀-강함입니다. 뱀의 그 독성, 찬 피-그래서 무서운 사람을 가리켜서 냉혈동물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협감, 혀를 날름거리면서 상대방을 공포에 떨게 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을 기죽게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파송장을 주면서 이런 강인함-담대함을 가지라고 합니다. 8절-병든 자, 죽은 자, 문둥병자, 귀신 들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강인함의 기질입니다. 비겁함과 나약함으로 이런 삶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조슈어 비에레는 미국 남자들을 “결단력이 없고 계집아이 같은 소년들의 무리”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도덕적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갖고 있는 나약한 남성들-이것이 현대 남성의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근성(根性)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 찬양의 힘, 추진력, 박해와 불편에 대해 견디는 힘, 헌신의 힘… 이런 것들이 약해집니다. 교회 안에서 야단을 못 칩니다. 권징이 없습니다. 권징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강인함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남성들-강인함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진취적이고 단호하며 확고한 면들을 가져야 합니다. 직무에 유능하고 어려운 일에 직면해서도 두려움이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상황을 이끌어 가는 주체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인격이 파손되지 않도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며 절제할 수 있는 도덕적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공평하고 올바르며 도덕적 용기와 품위를 가져야 하며 다이아몬드의 특성인 강인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에 자족(自足)의 내적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강인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강인함이 세상을 리드할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 부드러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강함이 매력적인 것이 되려면 그 안에 부드러움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순결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입니다. 세상은 강한 것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드러움이 지배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강했던 나라들-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다 망했습니다. 강한 특성을 가졌던 개인들-나폴레옹, 시이저, 히틀러, 무솔리니… 이들은 정치적인 천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배했던 세상은 오래가지 못했고 평화가 없었습니다.

동물-껍질이 강한 것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공룡-그 강함 때문에 오히려 멸종됐고 부드러운 것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강함 속에서 세련됨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다정하고 부드러운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오래도록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연체동물들이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부드러움입니다. 용서와 친절과 사랑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움의 자질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움-다정함, 친절함, 관대함, 상냥함, 온유함, 겸손함 등입니다. 전에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이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드러움의 남자들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예요” “가슴이 따뜻한 남자예요”라는 광고 카피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더 많은 부드러움을 지녀야 합니다. 모성애가 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성을 지닌 교회가 됩니다.


3. 강인함+부드러움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그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습니다.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건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강인함은 기초가 확고부동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같습니다.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않는 건물은 외부의 힘과 압력에 오래도록 지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튼튼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테리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튼튼함과 멋진 장식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룰 때 그 건물은 기능적으로 유익하고 외관상으로 멋진 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싼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은 멋진 남성, 멋진 여성들을 만들어 가는 요소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야곱, 삼손, 베드로, 바울… 등이 강인함이 많습니다. 아담, 이삭, 엘리… 등은 부드러움이 많은 남자입니다. 성공은 강한 남자들이 하고 행복은 부드러운 남자들의 몫입니다. 성공과 행복을 다 가지려면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녀야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 다윗,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셉-형제들을 용서하는 부드러움, 다윗-사울의 옷자락을 베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픈 사람, 나단 선지자의 야단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끓고 울던 왕, 병든 자식을 살려내려고 밤새도록 철야하던 부드러운 아버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목수의 일로 다져진 단단한 육체, 여기에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했기에 약점 잡힐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권세자들에게 “회개하라!” 외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약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병자를 안아주고 소외된 계층과 어울리려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앞에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강인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통과 교리와 민족심이 강했습니다. 생명을 내걸고 교리를 지켜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드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주역이 되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그의 제자들-부드러움으로 세상을 대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이런 사람들이 강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교회가 건강성을 지닌 교회입니다.

왜곡된 국사, 세계사를 바로 알리는 카페


우리 인류는 오래전부터 역사를 기록하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수십, 아니 수백 수천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역사 자료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는 사실과 거짓이 들어있다.


역사에는 기본원칙이 4가지정도 있다.

1.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며,
2. 역사는 역사가의 양심에 달렸으며,
3. 역사는 주관적인 생각이자 입장, 느낌이고,
4. 역사는 정확한 역사 기록이 아닌, 소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역사가 또한 3종류로 분류된다.

1. 거짓말하는 사람
2. 잘못 알고 있는 사람
3. 알지 못하는 사람


우리 역사에는 수 없이 많은 날조, 과장, 왜곡이 되어있다.
국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조차 거짓으로 꽉 차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국사 왜곡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정보화 시대이므로 세상을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 포털 사이트 중에는 왜곡된 국사를 밝히는 카페는 수 없이 많다. 물론 그 일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만,
우리 카페는 국사, 세계사 둘다 동시에 왜곡, 날조된 역사를 재평가 재조사하는 곳이다.

노예해방자라고 알려져 있는 링컨, 비폭력 평화주의라고 알려진 간디,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 바스티유 감옥,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했고, 2차대전을 일으켰다고 알려진 히틀러, 루즈벨트, 카이사르의 명언, 우리가 자주 보는 세계지도... 등등 수 없이 많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해 숨겨진 진실을 말하며, 알리려 한다.

http://cafe.naver.com/nazzis - 승전국이기 때문에 파묻히고 날조, 왜곡 과장된 역사를 전 세계에 바로 알리는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