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공 상희 2008. 7. 3. 17:21

내게 유익한 사람

빌레몬서 1:8~11



빌레몬서는 신약에서 아주 짧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사적인 편지입니다. 이 짧고 사적인 편지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유익한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는 도망 중에 바울을 만났습니다. 골로새에서 로마는 두 번이나 배를 갈아 타야하는 먼 거리인데 무사히 갔다는 것은 오네시모가 보통 비상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로마로 튄 이유는? 노예들이 많고 숨기도 좋고 검투사가 되어 공을 세우면 방면(放免)됩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고 복음으로 새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에바브라가 오면서 정체가 탄로 났습니다(23 참조). 바울은 자칫 장물취득죄로 고발될 수 있고 오네시모가 해결되지 못한 자신의 과거로 괴로워하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용서를 받고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이 편지를 써서 돌려보냅니다. 용서하기 힘든 사람! 19절에서 바울은 왜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친필로”-자기가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빌레몬 너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될 것임을! 내가 친필로-'싸인'으로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너도 하나님에게 용서받은 자였기에, 전에는 무익한 자였다가 지금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랑 받는 사람이 되었기에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9절, 간구-부탁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나이 많은 나”-이 말은, “사신”, “장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권위로 명령도 할 수 있지만 이런 내가 부탁하니 용서하라 간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런 편지를 받은 빌레몬은 순종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오네시모라는 유익한 사람이 태어났고 빌레몬은 교회 안에서 더 큰사랑을 받게됩니다. 이런 행동하는 믿음의 본을 보았기에 그 아들 아킵보는 자라가면서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가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해 준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풀어나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교회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보아야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무익했던 바울-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로 대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할 때 그는 유익한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가를 용서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원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교회가 삽니다.


2. 교회는 은혜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골로새교회는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마음은 하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3:11 이하). 당파가 있었고 서로에 대한 혐의로 불신 중에 있었습니다. 가정을 이루었지만 부모와 자녀, 부부간에 바른 믿음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골로새교회가 복음 안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희망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단순히 빌레몬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보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은혜를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용서의 사랑, 은혜로 덮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기고에게는 골로새서를 들려보냈고 오네시모에게는 빌레몬서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받아주라고? 바울을 보고 받아주며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기에 받아 주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추천장 때문에 받으라는 것입니다.

피추천인의 자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추천자가 중요합니다. 형편없을수록 추천인이 중요합니다. 오네시모의 자질이 아니라 받는다면 바울과 그 보증 때문에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평가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추천장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는 내게 유익한 사람이라!” 그 한 마디에 우리의 감정 모두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그 사람, 교회도 삽니다. 


3. 은혜만이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교회사에서 위대한 신학자였던 익나티우스가 처형당하기 위해 안디옥교회로부터 로마로 연행되는 도중에 편지를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남겼습니다. 그것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 편지를 썼던 내용으로, 당신들은 훌륭한 감독을 둔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요지입니다. 그 감독이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도망자 신분에 불과했던 오네시모가 후년에  에베소의 저명한 감독이 된 것입니다. 빌레몬서가 있고 나서 50년 후의 일입니다. 만약 빌레몬의 용서와 골로새교회의 아량이 없었다면 오네시모 감독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대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바울의 신뢰이고 주변 인물들의 과거를 묻어준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만약에 빌레몬이 바울의 요청에 “싫다!” “용서해 주는 것이 싫다!” 했다면 에베소교회는 오네시모라는 훌륭한 감독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이 서신에서 그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공개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오네시모는 존경받는 고명한 감독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서는 50년 저쪽의 일입니다. 오네시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루고 있는 그 책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랠 것입니다. 잘못 나온 사진 한 장, 지난날에 썼던 유치한 편지 한 통도 우리의 얼굴을 낯뜨겁게 하는 것이거늘 자신의 범죄를 다룬 그 편지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러나 오네시모는 신약성경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자신, 빌레몬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용서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천하에 말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에 대한 보증과 추천장이 오늘 내가 있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은혜로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런 은혜의 마음들이 모여서 무익한 사람이 유익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는 예배당 건축도, 전도해서 사람들의 숫자를 불리는 것보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들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보여주는 일들에 진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