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설교

공 상희 2008. 7. 12. 12:10
감사하는 생활-1

본문: 골 2:6-7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너무나 지극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장례식 날 문상객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렇게 기도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날마다 이와 같이 간증하는 사람은 늘 승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한테는 마귀도 손을 못 댑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2)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감사할 때 우리는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 집니다. 불평하면 마음이 슬퍼지고 불행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좋을 때 하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손해가 되고 나쁠 때, 고통스럽고 슬플 때 감사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고 능력 있는 신앙입니다. 살아가면서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왜 감사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와 공명을 누린다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때는 지나 이 세상에는 종말이 다가옵니다. 인생의 종말이 다가올 때 그간의 부귀영화와 공명을 누리던 것들은 모두 과거의 일이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꿈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도 잠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에는 여전히 배가 고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공명을 누리는 것은 더욱 큰 허망에 빠지는 것일 뿐입니다.

미국의 기업가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항공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부호로 젊은 시절에 헐리우드의 영화배우들과 수 많은 염문을 뿌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45세가 되면서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혼자 지냈습니다. 병균을 두려워하여 집에서도 무균실을 만들어 놓고 살고 음식도 독이 들었을까 걱정이 되어 치킨 스프만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이발사가 혹시 면도기나 가위로 자기를 죽일까 겁이나서 이발도 하지 않았고, 손톱과 발톱 역시 자르지 않아 늘 길었습니다. 그는 계열사 사장과의 면담도 걱정이 되어 전화나 인터폰을 통해서 지시하며 회사일을 돌보았습니다. 결국 영양실조에 걸려 나중에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죽었는데, 죽을 때 그가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그는 “nothing! nothing! nothing!” 즉 “헛되고, 헛되고, 헛되구나!”라고 외치며 죽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가졌던 그였지만 죽을 때는 그 어느 것 하나 갖고 갈 수 없는 어둡고 캄캄한 지옥을 향해 들어간 것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62세에 사망하면서 자신은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귀영화와 공명, 명예 등 모두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의 인생에 대해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사냥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부귀와 영화, 공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요? 허무할 뿐입니다. 우리가 늘 감사해야 될 것은,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가장 귀한 목숨을 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바울 선생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0∼21절에는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1784년 이성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을 때로부터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1886년까지 약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순교를 당한 사람은 1만 명에 달합니다. 36년간의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고 수 많은 목사와 장로, 평신도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한국 전쟁시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산당원들에게 교회가 불타고 총검에 찔려 죽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평화롭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핍박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편안하게 예수님을 믿고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합니다. 시편 33편 12절에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의 하늘도 땅도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믿으려다가 수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서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으며 교회를 건축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으니 우리는 참으로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교회가 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 양식을 먹습니다. 우리 집이 있으니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살고 따뜻한 식사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 집이요 영적 양식을 공급받는 곳입니다. 사람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영적으로 내 마음에 맞는 교회를 발견하고 영적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교인이 된다는 것은 매우 복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교회성장연구소에서 발표한 것에 의하면, 약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타종교로 개종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맞는 좋은 교회, 영적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교회를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곳에서 천국에 갈 때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2- 23)

2.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찾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잃었다는 것은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정체불명으로 자신을 잃었기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하여 평안이 없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잃었던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 가운데 떨어졌으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며 천국으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확립했으므로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한 후 상실감을 맛보게 되는 것은 명함이 없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퇴직을 한 후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을 소개할 때 명함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되면 그 때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잃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김영진 박사는 이러한 상실감에 대해 “사람들의 자긍심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직장이나 분야에 소속됨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후광 효과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위상이 달라진다. 명함을 내밀 일도 없고,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을 때 상실감을 느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상실한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입니다. 주부들이 사십대 이후에 방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젊었을 때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남편이 회사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가지면서 회사일에 몰두하고, 자녀들은 모두 장성하여 나가면 집에 홀로 남게 됩니다. 그 때 주부들은 ‘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고 살았는데, 이제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고 자녀들은 모두 떠나고, 나는 무엇인가’라고 묻게 됩니다. 거기에서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버림받은 심정과 소외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에 처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생길 때 우리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과 평안을 받은 사랑받는 사람이다’ ‘나는 죄와 마귀에서 벗어나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치료함을 받고 건강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이제 나는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께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는 부활과 영생, 천국을 받은 사람이다’ 등 자신에 대한 분명한 주소를 가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것이 된 정체성을 갖게 되었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인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좋으신 분이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은 무섭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채찍으로 때리시는 하나님으로만 알았다면 우리는 매사에 부정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예로서 3대 재앙 속에 살았습니다. 죄로 인한 영혼의 죽음, 저주와 육신의 가난, 육체의 질병과 죽음, 영원한 멸망 등 3대 재앙에서 몸부림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저주를 없애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부활을 통해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전인 구원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축복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인생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런 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인생을 삽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거운 짐을 남에게 맡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홀로 걸어간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들은 다 내게로 와서 짐을 내게 맡겨라 내가 쉬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고달픈 짐을 주께 맡기고 주님 품에서 평안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인생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막같은 인생일지라도 주께 안기면 주님이 우리를 안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는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권세자들이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높음이나 그 어떠한 피조물이 우리를 공격한다 해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모에게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고, 가까운 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마음 속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마음을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받을 수 있으니 더욱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편 37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우리의 속 사정을 말할 수 없고 짐을 맡길 수 없다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하여 버림받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는 주께 기도하고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합니다.

3.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율법의 얽매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율법 앞에 의로운 행위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법 앞에서 해방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율법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의 심판과 정죄에서 해방을 받은 우리는 이제 자유롭게 주께 감사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며 천국으로갈 수 있느니 감사합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행위의 자랑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선한 일을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해야 할까요?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다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7절에는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지어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오직 그 믿음으로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으니 우리는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로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라면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용서와 의로움을 받고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최후 소망은 천국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께서 우리를 데리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없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사망과 음부를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죽음의 그 길을 안내하시는 안내자로 우리 곁에 다가오시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가는 은총을 받았으니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개개인이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지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는 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원망과 불평은 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귀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할수록 더욱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우리 인생은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면 있는 것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사였던 스펄전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가장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잃었던 ‘나’를 찾았으니 감사해야 되고 우리의 삶 속에 천국 소망이 있으니 또한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4.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달 동안 특이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실험이란 한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각 집에 매일 만원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첫 째날 그는 집집마다 들려서 현관에 만원을 놓고 살며시 나왔습니다. 그를 본 마을 사람들은 제 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갔습니다. 둘째 날에도 거의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날, 넷째 날이 되면서 사람들은 그 돈을 사용해 본 후 그 돈이 가짜가 아닌 진짜 돈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동네는 날마다 만원씩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둘째 주쯤 되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현관 입구에까지 직접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언제쯤 올 것인가 하고 평소에 그가 오던 길목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이웃 마을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 주가 되었을 쯤 매일 만원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끼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 기간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에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라고 따지거나 불만과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결국 그들 중 다수가 멸망당한 사건을 상기하게 됩니다.(고전10:1-11)

우리 환경을 보고 불평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짐을 지시고 우리의 일을 해 주시는 하나님, 그 주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주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골3:17)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멕시코 여인들이 그곳에 와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더러운 빨래를 삶은 뒤 바로 옆에 있는 냉천에서 깨끗하게 헹구는 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빨래를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본 어느 관광객이 그 빨래하는 여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처럼 편리하게 더운물과 찬물을 동시에 주셔서 쉽게 빨래할 수 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그런데 그 여인들은 "천만에요,"라며 뜻밖의 반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비누까지 내려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비누는 주시지 않았습니다."라며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강물에 새긴다"는 우리 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부패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은 끝없이 요구하고 만족을 모르며, 감사를 모르는 삶임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여러분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우리는 너무나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지 않고 없는 것을 바라며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탄식한 죄를 회개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불평하지 말고 주실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지금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