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8. 7. 21. 18:00
십자가의 비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마27:45-54)

* 참고 성경:사53:1-6, 요1:29, 롬6:23, 겔18:4, 요19:17-30, 롬5:8)
* 설교 개요
1. 서론: 하나님의 어린 양
2. 끝내주는 죄의 형벌
3. 끝내주는 하나님의 사랑
4. 끝내주는 풍성한 은혜
5. 결론: 십자가 앞에 나오라

노르웨이에 있는 한 조그만 마을에는 예쁜 교회 건물 한 채가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교회의 이름을 "양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교회라고 하면 그 첨탑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는데, 이 "양의 교회"만은 십자가 대신 양의 모양을 조각하여 세웠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 양이 교회 첨탑 꼭대기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그 교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교회가 지어질 때 한 일꾼이 가장 높은 첨탑위에 올라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너무 높고 가파르며 미끄러워 까딱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꾼은 정신없이 일을 하다 그만 발을 헛디디어 밑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비명을 질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바로 그 순간 양 장수가 양을 팔기 위해 여러마리의 양을 끌고 그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꾼이 떨어진 것입니다. 이 일꾼이 떨어졌을 때 죽은 것은 일꾼이 아니라 한 마리의 예쁘고 살진 양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양의 등 위에로 떨어졌기 때문에 양은 죽었지만 일꾼은 살았습니다. 그 양은 비록 자기가 원하여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일꾼의 생명을 구해주기 위하여 대신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 감격스런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양의 모습을 조각하여 교회의 참탑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르웨이에 있는 양의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을 보면 우리는 또 한 마리의 더욱 더 놀라운 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양은 우연히 교회 밑을 지나가다 한 사람의 일꾼을 살린 양의 교회의 양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습니다.
이 양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죽음에서 살려내기 위해 대신 죽으려고 일부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 양이 자기를 죽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양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세요? 예, 그 양은 세례 요한이가 말한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벌을 받을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와 여러분이 수없이 지은 더러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사야53장 6절을 조용히 따라서 읽어보세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목자의 보호와 사랑이 싫어서 맘대로, 제 맘대로 다니다 길을 잃은 양처럼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버리고 제맘대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 불순종하여 맘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암과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죄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죄가운데 태어나 죄를 먹고 마시다 비참하게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 죽어야할 우리, 하나님의 법대로 다 죽여도 할 말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예수님의 승리로 이 십자가가 영광을 받아 예쁜 아줌마들의 목걸이도 되고 벽걸이도 되며 예배당 꼭대기에도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본래 이 십자가는 그런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사형틀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죄지은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이던 망나니의 칼을 목에 걸고 다닐 사람이 있습니까? 그 칼을 안방에 걸어 놓고 즐거워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 칼을 지붕 꼭대기에 세워두고 자랑할 사람이 있나요? 예,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는 그 피비린내나는 흉칙한 칼보다 훨씬 더 잔인한 사형틀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까 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악날한 사형기구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겐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이 십자가에 박지 않을 만큼 저주스럽고 흉악한 사형틀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잘못도 없으신 그분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드님이 이 가장 흉칙한 사형틀에 박히셨습니다. 머리에는 사정없이 찌르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부끄러운 곳을 가릴 속옷까지 모두 빼앗기신채 벌거벗은 몸으로 그 말로 할 수 없는 창피와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잔인한 로마 군사의 망치와 못은 예수님의 손과 발의 살 가죽을 찢고 뼈를 다 으스려 뜨렸습니다. 그 고통스런 십자가 ---, 입천장이 말라 붙고 혓바닥이 오그라 붙는 그 고통의 여섯시간 동안도 수없는 조롱과 눌림과 침뱉음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왜? 왜? 왜 예수님이 이 고통을 당하셔야만 합니까?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입니다.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당할 죄의 형벌이 그처럼 가혹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가룟유다가 아닙니다. 빌라도나 로마군사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범인은 바로 나와 여러분입니다.

(십자가 그림을 들고) 또 이 그림을 좀 보세요. 이 십자가를 볼 때 우리 하나님의 그야말로 끝내주는 사랑을 볼 수 있지 않아요? 오늘 말씀에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를 얻기 위해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죄의 값으로 팔으셨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없애시려고 아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그를 그 저주에 묶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그처럼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갈기 갈기 찢기실 때 아마 하나님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기셨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실 때 아마 하나님은 고개를 돌리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베풀어주신 그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이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진 그런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십자가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끔찍한 사랑의 증거물입니다.

또한 십자가에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에 매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겠네"로 하루를 시작하여 하루종일 "죽겠네"를 노래하다 다시 "죽겠네"로 잠이듭니다. 그러나 다 영원히 죽고 맙니다.
(십자가의 죄의 뚜껑을 열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비참한 일, 슬픈 일들이 다 죄에서 왔습니다. (그 속에서 카드를 꺼내며) 죽음도, 슬픔도, 병도, 범죄도, 전쟁도, 실망도, 불행도, 연약함도, 다 죄의 열매입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는한 이 열매들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해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끝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개발되어도 이 세상에서 병을 다 끝낼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웃기는 코미디언들을 많이 두고 재미있는 오락을 즐긴다해도 이 세상에서 슬픔을 끝내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정에 한 개의 파출소를 세운다 해도 범죄를 이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유엔이 아무리 모여 의논을 한다해도 이 세상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사람들 속에 있는 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죄의 무서운 힘을 완전히 깨뜨려버렸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매었던 죄의 무서운 사슬을 끊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슬프게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공장이 완전히 박살이난 것입니다. ( 꺼냈던 그림들을 다시 넣으며) 그 때에 죽음과, 죄의 권세와, 질병과, 불행과 슬픔의 모든 것들은 십자가에 죄와 함께 장사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와 그 열매들의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십자가만이 참된 생명과 참된 기쁨, 참된 소망, 참된 능력, 참된 자유, 참된 승리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끝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큰 희생을 치루시어서 다 끝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맛있는 떡을 놓고도 입을 벌려 먹지 않으면 떡이 아무 소용도 되지 못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아무리 잘 듣고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십자가에서 다 이뤄놓으신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 들이세요. 십자가 앞에 나와서 끝내 주신 그 놀라운 일들을 다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 누리세요.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박히셔서 모든 문제를 끝내 주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그 모든 특권을 자기의 것으로 누리게 됩니다. 바로 오늘,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모든 축복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시겠어요?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