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8. 7. 21. 19:42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 : 요한복음 11:25-26, 41-44

주제: 예수님의 사랑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기적,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 물위를 걸으신 기적, 나면서부터 소경된 거지를 고치신 기적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행해진 기적이었습니다. 이런 기적들을 학자들은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나타내신 표적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죽은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다같이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살펴볼까요?


나사로는 두 명의 여동생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동생들의 이름은 마르다와 마리아 이었는데, 이들 남매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도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5리정도 떨어진 베다니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사역하시다가 힘이 드시면 이들 남매들의 집에 가셔서 쉬곤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던 날은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멀리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아픈 것을 아셨지만 그를 고치시려고 하지 않으시고 죽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자 예수님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를 만났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원망섞인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옵나이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살리라” 너무나 쉽게 대답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은 마르다를 당황케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부활의 날에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마르다는 한번 죽은 사람은 마지막 날에나 다시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이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에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데, 왜 죽지 라고 물어보기도 합니다.이것은 헬라어 원문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 생긴 오해 때문입니다. 헬라어 원문을 다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네가 말한) 그 부활이요 그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가  죽는다면 다시 살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네가 믿고 있는 그 부활 자체이고 생명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원하면 나사로를 마지막 날이 아닌 지금이라도 다시 살릴 수 잇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마르다는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원하시면 다시 살릴 수 있는 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우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화가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 장사되어 있는 동굴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람을 베로 동여매고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방을 만들고 거기에 죽은 시체를 놓고 입구는 큰 돌로 막아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바위무덤앞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앞에 가셔서 나사로의 죽은 모습을 보시곤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우셨을 까요? 성경에는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 우신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는 ‘나사로야, 미안하다. 네가 죽음의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옆에 있지 못하고 이렇게 늦게 온 것을 용서해라’ 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나사로처럼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인지 모르고 죽어간 역사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시면서 그들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나사로를 이제 살리시지만 이제는 자신이 대신해서 죽어야 할 때가 얼마남지 않았기에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우셨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여러 가지 해석이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님은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의 근원임을 알지 못하고 죽어갔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입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손과 발이 베로 묶인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 갔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말레시아에서 한 고아원을 하는 목사님을 만났었습니다. 우리는 그 고아원에서 일주일동안 같이 지내며 고아원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일하면 지냈습니다. 그 고아원을 하는 목사님은 싱가폴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깡패였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너무 문제아였기에 싱가폴 정부는 자신을 잡아 한 소년원에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반항하고 말을 듣지 않다가 한 선생님의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마약과 술을 끊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레시아에 와서 고아원과 교회를 개척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답니다. 그는 싱가폴로 가 보니 아버지는 이미 죽으셨답니다. 그는 하나님께 죽은 아버지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죽은 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시게 해달라는 기도였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목사님을 비웃으면 자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간절히 몇 십분을 기도하지 죽었던 아버지가 쿨럭 쿨럭 거리시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를 본 의사와 간호사는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3일 동안을 더 사셨고 그 동안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시고는 다시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부활이요 생명되십니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되시지만 그를 믿지 않아 영원히 죽을 사람들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뿐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지 않아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그가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는 죽지 않고 다시 살 것을 믿으십니까?


다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