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8. 7. 21. 21:09
변화됐어요 (행 9:1~19)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제는 날씨가 많이 선선해 졌죠.
이제 정말 성경을 읽기 좋은 날씨가 된 것 같아요..
지난주에 사도행전을 다 읽어오기로 했는데 전도사님이 얼마나 잘 읽었는지 퀴즈를 네 볼께요.
사도행전에는 두 사람의 전도 이야기가 가장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어요.
이 두 사람의 이름은?
베드로와 바울이에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고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유대인 바리새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사도가 되어 일생을 예수님을 전하다가 삶을 마쳤어요.
오늘은 전도사님이 사도 바울이 된 사울에 대해 나누고자 해요.
“저 사람을 죽입시다.”
“저 사람을 예수라는 이상한 사람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두 저 사람을 돌로 쳐 죽입시다.”
어떤 청년이 흥분되 목소리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옷을 들어주며 예수를 증거한 사람을 죽이자고 말하고 있어요. 그 청년을 자세히 보니 ‘사울’이라는 청년이에요.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엎드려 있는 사람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스데반 집사님 이예요. 스데반 집사님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왓어요. 이제 막 사람들이 돌을 던지려고 해요.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는데. 사울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어요.
“사람을 돌로 쳐 죽입시다. 저 사람은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저 사람을 죽이자.”
“ 와~~~ 와~~~~ 와~~ 와.”
이렇게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고 말았어요. 사울은 정말 똑똑하고 정의감이 있는 청년 이였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어요. 사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어느 날 사울에게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렸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계속 많아져서 마침내 시리아의 다메섹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예요. 사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다메섹까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잠이 오질 않았어요. 사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사울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어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우해서 제사장에게 허락을 받아 다메섹으로 향했어요. 다메섹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사울은 열심히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어요. 아무도 사울을 말릴 수 없었어요.
여러분 어떻게 하죠? 사울이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해요.
그런데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그 어떤 빛보다 강한 빛이 사울에게 비치었어요. 사울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넘어 지고 말았어요. 사울은 그 강한 빛에 완전히 사로잡혀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잠시 후 하늘에서 이상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이까.”(행9:4~5)
사울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눈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저 큰 소리만 사울을 부르고 있었던 거예요. 사울은 너무너무 무서워서 떨고 있었어요. 사울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 이였어요. 그래서 사울은 그냥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어 본 거예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5)
사울에 눈을 들어 예수님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사울의 눈은 보이지 않았어요. 사울은 그 때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어요. 사울은 절망했어요. 그렇게 똑똑하던 사울이 그렇게 당당하던 사울이 절망속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울에게 희망을 주었어요. 사울은 알 수 없는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에 들어가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냈어요.
한편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가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어요. 그리고는 사울을 찾아가서 눈을 뜨게 해주라는 것이었어요. 아나나아는 말했어요. "예수님, 사울은 저희들을 죽이려는 나쁜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사울은 많은 사람에게 나를 전할 사람이다. 어서 가서 눈을 뜨게 하도록 하여라"
그래서 아나니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갔어요.
“형제 사울아 예수님이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행9:17)
아나니아는 사울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때 사울은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사울의 눈에서 비늘깥은 것이 벗어져 다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때 사울은 눈물을 흘렸어요. 사울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자신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예수님 제가 죄인이군요.”
“제가 당신을 알지 못하고 당신을 핍박했군요.”
사울은 한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사울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사울은 자신의 이름을 사울이 아니라 ‘바울’로 바꾸어 버렸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핍박하던 열정의 마음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열정의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바로 이 사울이 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바울사도였어요.
그 때부터 바울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상의 모든 명예와 행복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되었어요. 오늘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해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진정한 구원을 얻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메시아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바울의 이름 이였어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이름을 바울로 바꾼 거예요. 그러면 왜 이름을 바꾸었을까요?
사울이라는 이름은 뜻은 ‘큰 자’라는 뜻 이예요. 사울은 매우 똑똑했어요.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 이였어요. 당시로 보면 부러울 것이 없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였어요. 그래서 사울은 자신이 항상 ‘큰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는 일에 앞장섰어요.
그런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바울, ‘작은 자’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어요.
바울은 드디어 깨달은 거예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인가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바울은 남은 삶을 예수님을 전하며 살았어요.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어요.
우리 친구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생활이 변화 되어야 해요.
캠프를 다녀와서 전도사님의 눈에 변화된 친구들이 눈에 보여요.
물론 갑자기 확 변하기도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도 해요.
우리 친구들의 생활 속에서 전에는 싫었던 것이 이제는 좋아지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도 해요.
예를 들면 전에는 찬양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는데 지금은 찬양하는 것이 즐겁고 성경책이 재미있고 예수님과 만나는 예배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기도의 횟수가 늘어나는 등..
나 자신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예화>
요양원에서 몇 달을 보내고 난 뒤 건강이 조금 나아져서 산 위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로 휴양을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나이 많은 목수 한 분과 친해졌는데 그분이 나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은 보통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과 그의 부인이 매일 나를 위해서 그 성경을 놓고 몇 시간씩 기도를 하셨답니다.

나는 쉬고 있는 집의 안락의자에 누워 신약성경을 읽었습니다. 점점 그리스도가 나에게 밥을 날라다 주는 여자만큼이나 실지의 인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믿으나 그리스도교인은 아닙니다.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당신의 제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돈과 여행과 즐거움을 원합니다. 나는 이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신의 길은 십자가의 길인데 비록 그 길이 진리의 길이라 하더라도 저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분의 대답이 마치 탄원하듯이 이렇게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내 길로 오너라. 십자가를 두려워 말고. 너는 그 길이 가장 큰 기쁨의 길인 것을 갈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었는데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생애와 나의 과거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인생관은 그렇게 순수했는데 내 인생관은 너무도 부패했고, 그분의 성품은 그렇게도 남을 위하셨는데 내 성품은 욕심에 가득 찼고, 그분의 가슴에는 사랑이 가득했는데 내 가슴에는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내가 전에 가졌던 확신이 이런 지혜와 진실 앞에서 와그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에 말씀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도저히 내 양심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게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다면, 나는 그 마음이 결정하는 대로 따를 수 있을 텐데."

나는 옛날 중국 이야기에 나오는 남자와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터덕 터덕 걷다가 큰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달아서 그 그늘 밑에 앉아 쉬며,

"아! 너를 찾아내다니 참 운수가 좋았구나."

하고 말했더랍니다. 그랬더니 참나무가 대답하기를

"운수가 아닙니다. 나는 이곳에서 사백 년 동안이나 당신을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내 일생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분과 내가 만난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처럼 예수님은 항상 우리 친구들을 기다리고 계세요.
그런데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노력해요.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싫어하시는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 고백하는 거예요.
“예수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