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5. 2. 20:36

불행한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어린이가 되세요   (마 5:7)


지난 주일날도 6․25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어요. 북한을 생각하면 미워요. 그러나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는 밉지만 아무죄도 없이 하라는대로 해야만 하는 백성들이 불쌍합니다. 비행기를 폭파시켜 많은 사람을 죽게했던 김현희씨를 잘 알거에요. 김현희는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방송에서 사회도 보고 또 간증도 하러 다니고 있어요. 무서운 죄는 지었지만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제 우리는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는 동포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바로 불쌍히 여겨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민족이 되었어요. 너무 배가고파서 풀을 뜯어먹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냥 버려두면 수십만명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아니 절반은 굶어 죽을지도 몰라요.

어린이들이 용돈도 아껴쓰고, 군것질도 최소한 줄여서 북한에 보내야 합니다. 북한 어린이들은 6천원이면 한달 먹고 산대요. 6천원 정도는 어린이들의 한달 용돈도 안될겁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강도만난 이웃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있어요(눅10:30-37). 정말 북한 동포들은 강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긍휼에 대하여 계속하여 말씀을 듣겠어요.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1. 불쌍히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불행한 이웃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이웃에 불쌍한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일까요? 이야기 해 볼까요?

성경말씀에 보면 1만 달란트 빚진 신하 이야기가 나옵니다. 1만달란트의 돈은 엄청난 돈입니다. 어린이들이 달란트 시장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출석과 성경암송 전도하면 한 달란트씩을 줍니다. 옛날 한 탈트는 큰 돈인데 노동자가 18년간 일을 해야 한달란트를 벌수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막노동을 하면 하루에 6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1년에 300일을 일할수 있다고 한다면 1만달란트가 얼마나 큰 돈임을 감히 짐작이 가겠지요? 이 엄청난 빚을 진 신하가 임금님이 불쌍히 여김을 받고 탕감을 받았어요.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던중 백데나리온 빚진 이웃을 만났어요. 이 신하는 백데나리온 빚진 이웃을 만났을 때 임금께 자기가 불쌍히 여김을 받아 탕감 받은 것처럼 이웃을 불쌍히 여겨 자기도 탕감해 주어야 할터인데 그만 멱살을 잡고 돈을 빨리 갚으라고 호통을 쳤어요.

금방 갚을 수 없는 이웃을 감옥에 가두고 말았어요. 백데나리온은 만달란트에 비하여 60만분에 일밖에 안되는 작은 돈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임금님은 기가 막혔어요. 그래서 다시 그 신하를 빚을 다 갚을때까지 감옥에 가두게 되었어요. 그 신하는 평생 감옥에서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몰라요. 그런데 그 신하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았나요? 이 일만 달란트는 우리들의 죄값이라고 볼수 있어요. 우리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이 엄청난 죄를 용서 받았어요. 우리들이 이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것처럼,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처럼 이웃의 작은 죄를 용서하며 살아야 해요.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어요.

이웃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우리가 탕감받은 죄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불행한 이웃과 친구를 불쌍히 여기는 어린이들이 되기 바랍니다.


2. 측은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잣집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을 다 가지고 도시로 갔다가 알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측은히 여겼다고 하였어요(눅115:11-32). 측은히 여기라는 말도 불쌍히 여기라는 말과 비슷하지만 가엽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아들을 아버지는 가엽게 여겼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제자들은 세번다 기도를 못하고 졸았어요(마26:41). 이때 예수님께서 야단치지 않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 하고 가엽게 여겼어요.

탕자의 비유에서도 형은 동생이 돌아왔다고 이웃을 불러 잔치를 배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원망하였어요. 어린이들도 작은 아들과 같은 형제나 친구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예를들면 나쁜짓만 하다가 교회에 나오는 친구들을 보고 "흥 저런 어린이들이 어떻게 무슨 염치로 교회에 나와"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구원받은 강도 이야기를 알고 있어요.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며 또 누구든지 예수님은 받아 주셔요.


3.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이야기가 나옵니다(25:31-46). 굶주린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웃에게 마실물을 주고 나그네가 된 이웃을 영접하여 맞아주고 헐벗은 이웃에게 옷을 주고 병든이웃을 돌아보고 감옥에 갇힌 이웃을 찾아본 것이 곧 예수님께 하신 것이라고 하였어요.

이웃에게 사랑을 배푼 사람들은 양이고 배풀지 못한 사람들은 염소의 자리에 섰어요. 가난한 이웃과 친구를 돕는 것이 곧 예수님을 돕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전철을 타면 가난한 이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구걸하는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특별히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배풀어야 할까요? 나도 가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을 때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면 우리 자신이나 우리 후손이 가난하게 될 때 도움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6․25당시 얼마나 가난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북한 같았어요. 그때 세계 여러나라가 구호미를 보냈어요. 지금은 우리도 다른 민족을 돕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도와야 합니다. 어느나라보다 북한을 도와야 합니다. 이웃을 돕는것은 꼭 많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넉넉하지 못해도 아껴쓰고 돕는 것이 진짜입니다. 참 사랑의 행동입니다.


4.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말해요.

이웃을 위해 물질로 돕지 못해도 기도할 수 있어요. 가난한 이웃 불행한 이웃을 위해 기도해 보았나요? 구원받지 못한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였어요(창18:22). 모세는 죄를 짓고 벌받아 죽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였어요(민21:4-9).

스데반은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는 자기를 돌로쳐 죽이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였어요(행7:60). 구원받지 못한 이웃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진정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맺음 말

오늘도 목사님을 통하여 귀한 말씀을 들었어요. 이렇게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고 도와주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씨를 뿌렸으니 나도 하나님께 긍휼이 여김을 받게 됩니다. 또 내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는 물론 이웃에게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고 측은히 여김을 받고 도움을 받게 되는 줄 믿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행한대로 받게 됩니다. 씨를 뿌린대로 거두게 됩니다. 믿는 어린이들은 아멘 하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