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5. 6. 14:24
출처 카페 > 빛교회 최정남목사 / 미라클
원본 http://cafe.naver.com/jj007789/4248


마땅한 가르침/잠22:6
2005-02-15 15:17:44   read : 160

호레이스 부쉬넬이라는 미국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호레이스 부쉬넬이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더 착하고 바르게 살아갈 것 같지 않습니까?
호레이스 부쉬넬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좀 서운하지만 예수를 믿는 것과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말로는 신앙이 있다고 하는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는 전혀 그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크리스천들이 워낙 엉망이어서 그렇고 우리 나라 크리스천은 안 그렇겠습니까?
아마 우리 나라 크리스천들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문제에 별로 관계가 없는데 부모가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착하고 바르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가정 교육이 어느 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에 비해서 버릇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옛날에는 형제가 많았는데 요즘은 기껏해야 애를 하나나 둘만 낳아서 그렇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얘기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애를 많이 낳으면 저절로 없는 버릇도 생기고, 애를 적게 낳으면 있던 버릇도 없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자녀의 숫자에 따라서 버릇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숫자에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방법이 달라짐에 따라 버릇이 다르게 들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가면 집에서는 항상 그 친구의 성적을 물어 보곤 했습니다.
“아까 놀러 왔던 걔는 몇 등이나 하는 애냐?”
저는 그래서 집에 놀러오는 친구마다 성적을 올려서 얘기하곤 했습니다.
10등 하는 애는 5등이라고 하고, 5등 하는 애는 3등이라고 해야 과일 한 쪽이라도 더 나왔습니다.

저의 부모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가급적이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친구에게서 받는 영향이 아무리 커도 부모에게서 받는 영향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부모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애가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느냐?”보다 “내가 애한테 어떤 부모가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요즘 젊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문제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기 애가 말하는 것이나 걷는 것, 기저귀 떼는 것이 조금만 늦으면 굉장히 초조해 합니다.
물론 남의 애가 첫돌에 걸을 때 자기 애는 10개월에 걸으면 그만큼 신바람이 날 수 있습니다.
또 14개월이 되도록 걷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 조바심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10개월에 걷는 애는 이 다음에 달리기도 잘해서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항상 1등을 하고, 첫돌이 지나도 제대로 못 걷는 아이는 이 다음에 소아마비에 걸릴 위험이 많다”는 법은 없습니다.
“돌 전에 걷느냐, 돌이 지나도록 못 걷느냐?” 하는 얘기는 몇 개월만 기다리면 다 똑같아지는 문제입니다.
기저귀를 떼는 것이 늦어도 그렇습니다.
열 살이 넘어도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금만 느긋하게 기다리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 정작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폐단이 왕왕 있습니다.

어떤 빵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온 아이가 손가락으로 진열된 빵을 콕콕 찌르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종업원이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어머니가 그까짓 빵이 얼마나 한다고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아이를 두둔했습니다.

전철에서 소란을 피는 애는 그보다 훨씬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애가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어머니가 만류하지 않고 보고만 있습니다.
옆에서 만류하라고 하면 왜 남의 애에게 간섭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냅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렇지, 조금만 철이 들면 알아서 고칠 텐데 미리부터 닦달해서 기를 죽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갑니다.
좋지 않은 행동은 한 번 버릇 들면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따끔하게 혼을 내서라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안달을 하면서도 지금 당장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느긋합니다.

이런 폐단이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 것인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문제는 교회 밖에서만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교육전도사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소년부(5, 6학년)를 맡아서 지도했었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참가 신청서를 받는데, 당연히 참가할 줄로 알았던 어떤 애가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그 교회 집사님이고, 그 아이는 주일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아이였는데 난데없이 수련회를 못 간다고 해서 제가 그 아이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야, 너 수련회 왜 안 가?”
“저는 가고 싶은데 엄마가 가지 말래요.” - 아이가 시무룩하게 대답했습니다.
“왜?”
“방학하자마자 영어 과외 받으래요.”
제가 그 대답을 듣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수련회 가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못 가게 하면서까지 영어 과외를 받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아이가 예수 믿는 것이 남보다 뒤지는 것은 관계없는데 영어가 뒤지는 것은 차마 못 참겠다는 것 아닙니까?
믿지 않는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그 교회 집사님이셨습니다.
다른 얘기 백날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신앙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 부모로부터 직접 배운 셈입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지도할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도 수련회 데려가려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데 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 분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저한데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 이번에 저의 애 수련회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실 고3이라서 안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애가 수련회만 보내주면 갔다 와서 공부 열심히 한다고 약속도 했고 수련회에 갔다 오는 것이 꼭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방학 내내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모처럼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스트레스도 풀고 오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가 고3이지만 수련회를 보내기로 했으니까 잘한 것입니까?
물론 그때 그 분은 저한테서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입니다만 저는 그런 얘기만 들으면 혈압이 오릅니다.
수련회 갔다 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까, 신앙이 좋아져야 합니까?
수련회는 말 그대로 신앙 수련을 위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는 것과 친구들과 어울려서 해수욕장 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왜요?
둘 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리 당부드리는데, 적어도 우리 교회에는 고등학생인 애가 수련회를 갈 때 “가서 은혜 많이 받고 와라”라고 하지 않고, “갔다 와서 공부 열심히 하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합니다.
단지 그런 표현만 안 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표현을 쓰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영어 학원에 다닌다고 가정하십시다.
영어 학원에 10년 다녔는데도 영어 실력이 조금도 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 그 동안 학원 간다 그래 놓고 어디서 뭐했느냐?”라고 나무라지 않겠습니까?
학원에 가서 대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도 지켜볼 테고, 학원에 갔다 오면 쓸데없이 딴짓 못하게 감시를 하면서라도 공부를 시킬 것입니다.

그럼 예수 믿은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어 학원에 10년 다녔으면 그만큼 영어를 잘 해야 하듯이 예수를 10년 믿었으면 그만큼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예수를 닮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쩌면 자기 자녀가 예수를 닮아갈까봐 오히려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도 거칠고 험한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별로 재주가 없으신 분입니다.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고, 5리를 가자 하면 10리도 가고,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도 내주면서 이 모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러니까 예수는 좀 대충 믿어도 이 세상을 악착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자녀교육까지 예로 들 것 없습니다.
일단 자기가 세상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기가 세상을 그렇게 살면서 자녀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기 전에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린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맨 처음에는 애굽 온 하수가 피로 변하고, 그 다음에는 개구리가 들끓고, 그 다음에는 이가 들끓고, 그 다음에는 파리 떼가 사방에 가득 차고, 나중에는 애굽 온 땅이 흑암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맨 마지막에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으니까 거기서 결국 바로가 항복하고는 이스라엘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자들이 죽는 열 번째 재앙 전까지는 꼼짝도 안하고 완강하게 버티다가 결국 열 번째에 가서 한꺼번에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바로의 마음이 몇 번 왔다 갔다 합니다.
개구리가 하도 들끓으니까 “이 개구리들만 없애주면 너희들 하라는 대로 해 주겠다”라고 했다가 정작 모세가 기도를 해서 개구리가 다 물러가니까 딴소리를 하고, 파리 떼가 몰려왔을 때에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출8:28)


“그래, 좋다. 가라. 가! 그 대신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그냥 대충 이 근처에서 너희 하나님을 섬겨라. 그러면 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을 꼭 섬기고 싶으면 섬기되 너희가 내 백성인 것은 잊지 말아라.”라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요즘 말로 옮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 신앙을 갖는 것이야 좋지. 그런데 그런 거야 어차피 자기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여가로 해야지. 예수를 믿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어차피 예수야 평생 믿을 거니까 일단 대학은 들어가고……” - 아마 이런 얘기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결혼 적령기의 자녀가 있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같으면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 “물론 기왕이면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지. 그런데 말이다. 예수만 믿는다고 해서 저절로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니거든. 일단 생활이 안정되어야지. 그러니까 신앙도 신앙이지만……”
바로 이것이 그 옛날 바로가 했던 유혹입니다.

저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젓가락질을 할 줄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식사 시간이 길어지면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젓가락을 잡는 자세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식사 때마다 젓가락질 바로 하라고 아버지께서 야단을 많이 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젓가락이야 그냥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잡으면 되지 왜 굳이 아버지 말씀대로 해야 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아무리 꾸중을 하셔도 차라리 아버지하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안하고 말지, 젓가락질은 내 마음대로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런데 후회가 되도 정상적으로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주 고약하게 됩니다.
“내가 그때 아버지 말씀대로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꾸중을 조금만 더 심하게 하시든지, 아니면 몽둥이 찜질을 해서라도 나의 잘못된 젓가락질을 고쳐주셨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생각이 더 많습니다.

저는 3남 1녀 중에 차남입니다.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시고 누이동생과 또 막내동생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설을 쇠기 위해서 집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이라고 별로 많지도 않고 겨우 넷 뿐인데, 그저 낳기만 했지 어미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게 없으니 참 미안하구나. 더 늦기 전에 있는 재산 정리해서 자식새끼들한테 아파트라도 한 채씩 해줘야 할텐데……”
자식들 결혼할 때 아파트 하나씩은 사줬어야 자식들이 구차하게 남의집살이 안 할 텐데 그걸 못해 준 것이 두고두고 한스러우신 모양입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예수를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를 모르시는 분이니까 일단 예수는 빼놓고, 자식한테 물려주고 싶은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재산입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알지 않습니까?
그럼 자식한테 무엇을 물려 줘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한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그것이 신앙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은 당연히 예수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식을 죽이려고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꽁꽁 묶고는 칼로 찔러 죽이려던 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만류로 인해서 죽이려던 것을 포기했다면, 그런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 그 아이가 과연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심리학자나 교육학자한테 그런 사건을 경험한 아이가 어떻게 자라게 될지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전부 다 부정적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자다가도 깜짝 깜짝 놀라고, 걸핏하면 등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깨고, 아버지와 눈만 마주치면 자지러지고…… -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충격 때문에 자라서도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 생각입니다.
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실제로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은 분명히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충격으로 인해 제대로 자라지를 못했느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아주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대체 어떤 분이기에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 나를 죽이라고 하니까 기꺼이 죽이려고 하더라!” - 이삭은 그 사건을 통해서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한테서 하나님한테 어느 만큼 순종해야 하는지를 배운 것이고,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한테 이것을 가르쳐준 셈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녀한테 그런 것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 제쳐놓고 먼저 대학부터 가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 제쳐놓고 이 세상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쓸데없는 것을 가르쳐 주지 마시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잘 복종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의 생활로 직접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하면 안 듣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여러분을 어떻게 양육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녀는 가장 모범적인 신앙 환경 속에서 가장 모범적인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에도 저희 하늘교회에 속한 믿음의 권속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하늘 아버지를 예배합니다.

바라옵기는

저희의 마음이 늘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사모할 수 있게 하옵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허락하시옵소서.

특별히 감사드리옵기는

저희를 사랑하셔서 저희에게 가정이 있게 하셨사오니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옵기는 저희에게 허락 된 이 가정에서

더욱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모습으로

저희의 신앙을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한다 하였사오니

저희가 마땅히 가르칠 바를

저희에게 허락하신 태의 열매에게 부지런히 가르칠 수 있게 하옵시되

말과 혀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오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바르게 가르칠 수 있게 하옵시고

저희에게 허락 된 가정 통하여

저희에게 허락 된 믿음의 뿌리가

더욱더 깊어질 수 있게 하옵시며

더욱더 풍성한 믿음의 열매가 늘 끊이지 아니하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1-10
2005-01-26 14:58:24   read : 66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귀하고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온 우주의 보물을 담는 창고와 같은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비면 모든 것이 비고 가정이 채워지면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기쁨도 가정에 있고 웃음도, 행복도 가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찾는 모든 것들을 가정에 주셨습니다. 정부도 가정을 위해서 있고 국회도, 그리고 모든 헌법도 그리고 모든 학문도, 모든 건물도, 산업도, 모든 스포츠도 가정을 위해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그 나라 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가 멸망할 때도 가정이 먼저 붕괴되어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오늘은 가정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가정의 달에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우리 가정이 잘 되는 길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더욱 건강한 가정을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많으면 행복도 많아질 것이고 부유하면 행복도 부유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 다 돈을 많이 벌면, 언젠가 잘 살면 내가, 우리 가정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따라서 행복의 파랑새가 우리 집에 날아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세계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분명히 정의할 수가 있습니다. 돈은 꼭 필요할 때가 많지만 돈 때문에 그 인생이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1957년도에 우리의 GNP가 80불이라고 그러는데 80불인지 100불인지 아마 정확하게 계산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1만 불이라고 보면 적어도 100배나 잘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비해서 우리가 행복합니까? 그때는 이렇게 자살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범죄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가정이 이렇게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찌들어지도록 가난하고 궁핍했지만 집을 버리고 나간 사람이 몇 명 있겠습니까?

오늘 얼마나 우리가 풍요롭습니까? 옷도 그 때에 비하면 백 배 나 많고 그때는 이런 옷들은 정말 최고의 옷들입니다. 우리는 옷들을 조금만 시기에 안 맞고 절기에 안 맞고 몸에 안 맞아도 다 버립니다. 다 가져다 버립니다.(4,50만원 한복이 3만원에? 바자회 그래도 안 나간다)

과일이 그때 무슨 과일이 있었나요 겨울에 수박을 먹는다? 이건 신문에 날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딸기 먹고 수박 먹고 토마토를 먹어요? 참외를 먹어요? 한여름에 반짝 조금 끝나서 그것도 일년 벼르고 별러서 한번 먹으면 끝나는 겁니다. 그 수박 을 어떻게 계절마다, 아니 1년 내내 먹을 수 있냐 말입니다. 옛날에는 왕도 그렇게 못 먹었습니다.☛그런데 왜 오늘날은 아이는 아이대로 만족이 없고 어른은 어른 대로 만족이 없고 모두 불만투성이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갑니까? 행복은 다 모든 것을 안아야 오는 것입니까? 가장 귀한 방석에 다 놓고 깔고 앉아야 오는 것입니까? 독수리처럼 높이 떠야 되는 것입니까? 세계를 다 가져야, 모든 부유함이 있어야, 백화점처럼 만 가지를 다 가져야만 행복한 것입니까?오늘 본문에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은 행복의 조건을 잘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지위가 높았습니다. 세무서장 이었습니다. 행복의 요소는 다 갖추었습니다. 좋은 별장도 있고 땅도 많고 온갖 보화, 좋은 것들, 로마하고 가까이 하면서 로마의 권력을 뒷받침해준 세리 장이니까 극진한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만족도 평안도 기쁨도 행복도 자유함도 없었습니다.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이 삭개오는 견딜 수 없어서 어느 날 예수님이 지나갈 때 뽕나무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행복을 얻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것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 창조자와의 만남이 없으면 아무리 땅에 창문을 열어도 만 가지 아름다운 정원 속에 살아도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시편 23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곳에 내 행복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가 함께 하셔서 그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 행복입니다. 행복은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신약성경에 가장 불행 했던 가정, 행복의 조건은 하나도 갖추지 못한 가정이 하나 있는데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지 주님을 모시고 향유를 깨뜨리고 향기가 가득한 향유의 집을 이룹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주님이 사랑하므로, 주님을 믿으므로, 주 예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가정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예수를 몰랐을 때의 모든 것 다 버리고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새 삶 을, 새 기쁨을, 행복한 최고의 삶을 일생동안 살았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는 행복했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행복했습니다. 광야에서도, 시험 속에서도, 핍박 속에서도, 어려움 속에 서도 늘 끊임없는 주님이 주신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느 시간까지 더 방황하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어느 시간까지 여러 분이 이끌어 가겠습니까? 욕심으로 살아가는 삶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주님 우리 가정에 오시옵소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은 영원히 사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그런 생명입니다. 할렐루야!"주여 오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오시옵소서! 우리나라에 오시옵소서! 북한에도 오시옵소서! 내 심령에도 오시옵소서!”

☛ "인간의 총체적인 목적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참된 구원과 행복을 열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찾는 온 인류가 찾는 행복, 온갖 좋은 것들을 주님이 안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27장 1절과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성경은 가정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아담과 이브,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솔로몬, 예수님의 가정, 세례 요한의 가정,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 삭개오의 가정, 고넬료의 가정 등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하늘나라는 가정이 있는 곳으로서 전체가 한 가정이 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가정을 빼 놓고서는 천국과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우리나라가 참 안타까운 것은 대원군입니다. 대원군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쇄국정책과 경복궁 지은 것 두 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선교사가 들어온 것이 물론 여러 통로가 있습니다만 제일 처음 순교자인 영국 토마스 선교사가 1866년 대동강을 통하여서 제너럴셔먼호라고 하는 상업 배를 타고 대동강까지 올라 왔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협상하도록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열지를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불화살을 쏘고 위에서 배에다가 불을 지르고 계속 내려 보내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스물 세 명 다 죽이고, 토마스 선교사는 그냥 기쁜 모습으로 순교하며 성경 한 권을 건네 주게 됩니다. 그 때 목을 자른 분 이 박 춘근이라는 분인데 그 분이 그 성경 가져다가 문에 바르고 집에 벽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분이 바로 후에 교인이 되 어서 기독교에 크게 공헌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1866년입니다. 그 때 또 무슨 일 이 일어났느냐 하면 병인양요입니다. 앞의 사건으로 인하여 프랑스함대가 쳐들어 온 사건을 뜻합니다. 프랑스는 엄청난 군사를 이끌고 강화도를 쳐들어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주교 교인을 많이 죽였거든요. 많이 핍박을 했으니까 그래서 국교 통상하고 문 열라고 그런 빌미로 압력을 넣는데, 그런데 카톨릭 신자를 8천 명을 죽였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카톨릭 성지가 많은 것이 그 때 대원군이 카톨릭 교인을 많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밀입국한 선교사가 12명이 있는데 9명을 처형했고 3명이 극적으로 살아가서 프랑스 본국에 가서 알렸기 때문에 함대가 쳐들어 온 거예요. 그런데 기어이 이걸 막아냈습니다. 서울까지 들어왔고 문수산성하고 정족산성까지 들어왔는데 여기서 프랑스 군대를 결국 대원군이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1866년에 제너럴셔먼호 때문에 미국에서도 그 다음 또 문을 열라고 막 군함을 가지고 일본에서 이 쪽으로 쳐들어옵니다. 일본도 군함보고 다 겁내고 일본도 다 손들고 국교가 맺어지고 중국도 대포를 쏘니까 다 손을 들었는데 우리는 대포가 뭔지 모르니까 손을 안 들었습니다.
☛끝까지 대원군이 버텨서 그래서 후에 모든 학자들이 말했습니다. 그 때 20년만 먼저 받아 들였던들 우리가 일본에게도 안 먹히고요 왜? 미국은 먹는 나라가 아니니까 기독교만 받아들였으면 모든 문화, 정치, 경제에 많은 발전이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지금 우리가 일본을 20년 뒤따라가는 것은 일본이 기독교를 우리보다 20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때 온 선교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서 1844년, 약 20년 지나서 알렌 의사가 먼저 들어와서 지금 세브란스 병원을 세우고 그 다음 1885년에 아펜셀러와 언더우드가 들어와서 감리교와 장로교를 세우면서 선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전국에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매 그들과 싸우지 아니하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는 일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라" 이렇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지나 놓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빨리 주님을 받아들이는 길만이 나라의 번영이요 우리의 번영이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주여! 내 가정에 오시옵소서! 삭개오 같이 주님을 모시고,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는 삭개오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기독교를 제일 먼저 받아들인 지상의 나라는 로마입니다. 온 세계가 다 핍박하던 그 때에 323년 콘스탄틴 황제는 밀비안이라고 하는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싸우기 전에 어마어마한 당시의 적군과 싸워서 이길 길이 없을 때에, 다리를 앞에 놓고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 낮 정오 12시에 하늘에서 십자가가 나타났습니다. "너는 이 십자가로 승리해라"☛그것은 자기 나라 사형 틀인데 그런데 십자가로 승리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주님이 보여 주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틴은 모든 방패 등에다 십자가를 그리고 세워서 앞으로 나아가 이 막센티우스와 싸워서 크게 이기므로 전제 로마를 처음으로 다 점령한 첫 황제 가 되었습니다.로마를 다 통일한 다음에 바로 기독교의 안식인 주일날을 온 나라에 공휴일로 정하여 엿새 일하고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라로 만들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천지를 지배하는 이 로마를 기독교국으로 세우고 로마 시티를 거룩한 홀리 시티로, 교회를 중심해서 온 도시가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도시로 만들어서 2천년 동안 찬란한 기독교 문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영국에 복음을 전했고, 영국이 또 미국에 복음을 전하였고, 또 미국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고 모든 문명의 발달을 주도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콘스탄틴 대제처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을 모시고 또 잘 섬기는 복된 생활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분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또 잘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볼 때 저 분은 참으로 복 있는 분이다! 라는 칭송을 받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공항에서 빌딩처럼 엄청나게 큰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생명이 안전하게 오르고 내리고, 그 엄청난 재산과 엄청난 그 무게가 잘 내리도록 모두 조절하고 지도하는 것을 관제탑이 하는 것입니다. 관제사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귀할수록 자기 마음대로 내리고 오르면 안 됩니다.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관제탑의 지시를 잘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성공할수록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그가 뜨라고 할 때 뜨고, 내리라고 할 때 내려야 합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내 생명이 귀한 생명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오르고 내리면 안 됩니다. 전체를 보고 관리하는, 온 우주를 보고 관리하시는 관제탑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잘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살아야 되고, 여러분의 기업도 그렇게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은 먹는 것 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니까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의 경제, 정치, 교육 다 잡고 있는 유대인들은 4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관제탑의 지시를 잘 받으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한 놀라운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금년 이 가정의 달부터는 주님의 감동과 그 인도하심을 따라 잘 살아가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아들아/잠31:1-9
2005-01-07 14:04:57   read : 136

온 세계 인류 모두가 인정하는 한 옛 현인의 금언을 먼저 전합니다: “내가 만약 아덴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면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어째서 여러분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아니 가리면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는 그토록 무관심하십니까?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과 물질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바로 쏘크라테스(주전 399년 4월 27일 사망)입니다. 그가 2400여 년 전에 한 말인데 오늘 우리들에게도 매우 적절한 말입니다.
그가 강조한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말합니다. 한 생명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의 환경은 사랑의 관심입니다. 부모님들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깊은 사랑이 그 가정의 어린 생명들을 건전하고 튼튼한 인격으로 장성시킵니다. 만약에 한 가정이 참 사랑이 아닌, 동물적인 욕구나 이기적인 기반 위에 세워졌다면 그런 가정은 파괴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이 사랑으로 묶여져서 하나가 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난 어린 싹은 반드시 반듯하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효도입니다. 자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효도를 받게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을 기를 때 진정한 사랑과 애정을 쏟았는가를 먼저 반성하여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자매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한 묶음이 된 가정은 영혼과 영혼이 부딛치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삶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환경 속에서는 아름다운 인격이 형성되게 됩니다. 고로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돈 모으기에 정신을 다 쏟지 말고 어린 자녀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먼저 쏟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가 나이 15살에 죽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이 지상에서 왜 불행했는가를 알고 싶어서 지상에 잠시 다녀오고 싶어서 하나님께 청하여 자기의 옛 집으로 잠시만 보내주시되 가장 일상적인 삶의 한 복판에 태어나도록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허락했습니다. 그는 15세의 나이로 옛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엄마는 자기를 본척 만척 지나가 버리더니 부엌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부엌의 일만 합니다. 아버지 역시 자기에게 무관심한 채 손엔 도구들을 들고 마당을 가꾸는 일에 분주합니다. 이 젊은이는 이제사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자기의 지상의 삶이 그토록 재미없고 불행했는가를!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정과 관심 없이 자기를 대함에서 자기의 삶이 불행하게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옳습니다. 나의 가족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아름다운 가정이 이룩될 수 없으며, 그런 가정에서 사는 가족들 모두는 불행한 삶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만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냅니다.
자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는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란 말에 귀를 기울이셔야합니다. 마치 나무가 처음 자라기 시작할 때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커서는 조잡한 나무로 되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이 어렸을 때 바로 잡아주고 조정해 주지 않으면 이 다음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집니다. 나무가 연할 때 똑바로 잡아주면 제대로 자라서 보기 좋은 헌칠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을 어렸을 때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인도하면 훌륭한 어른이 되지만 어렸을 때 바로 키워주지 못하면 볼 쌍 사나운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길을 가다가 꼬불꼬불하게 꼬인 나무를 볼 때에 볼 쌍 사납다고 느끼듯이 어렸을 때부터 잘 기르지 못한 자녀들이 커서는 사람들의 눈에 아주 꼴불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어린이들을, 소년 소녀들을 어릴 때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지 않으면 커서는 보기 흉한 어른으로 자랍니다. 그때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여러분들의 관심과 물질을 자녀들에게 쏟으셔야 합니다.
어린이 교육에 관한 미국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잡지에 기고한 분들이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 정신병학자, 심리학자들이었는데 그들의 견해를 요약을 하면 대체로 한 어린이가 출생한 후에 첫 5년이 그 인생의 거의 전부를 형성하는 시기라는 결론이었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동은 다섯 살까지에서 규정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교육학자는 “애기의 첫 1년간이 제일 많이 자라는 시기다”라고 썼습니다. 한 저자는 “시민들을 요람에서 훈련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학교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도 말하였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5살은 심리적으로 늙었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들은 이구 동성으로 인간의 사회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네가 되려면 범죄율이 낮아져야 하는데 바로 그 “범죄를 애기 때 퇴치해야 한다” 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담아들어야 할 아주 중요한 어릴 때의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대학의 교육학 교수 벤자민 불룸 교수는 “4살까지는 그가 성숙 때까지의 지능의 반이 형성된다”라고 결론을 맺을 정도였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오랜 동안 연구한 전문가들의 말로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쓴 것입니다. 부모들의 어린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는 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로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합니다. 꼬마가 뭘 알겠는가고 무시 하지만 어린이들은 지능에서나 영적 수준에서 매우 높은 수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릴수록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기에 어른들의 영향을 무섭게 받습니다. 가장 어린 나이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은 하이얀 백지와 같아서 엄마 아빠의 말과 표정과 행동 하나 하나가 그대로 그 백지 위에 그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엄마의 태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엄마의 젖을 빨면서 이미 백지 위에는 글들이 씨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릴수록 마음은 더 깨끗하기에 밖으로부터의 영향이 그 어린 마음과 생각에 각인되고 색인이 됩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을 읽지를 못해서 모를 뿐입니다. 그들의 인격과 지능과 마음 바탕이 이 땅에 태어나자 마자 계속하여 형성디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특히 영적인 면에서 어린이들을 깊이 관심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어린이의 영적 성장의 상태에 대한 연구나 통계가 없어서 아쉬운데, 서구에서는 어린 나이에 중생하는 경우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개신교 선교운동과 영성 운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진젠돌프는 4살 때 중생을 체험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구세주 예수님! 주님은 나의 것이고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서에 4살 때 서명을 했습니다. 3세기의 위대한 교회의 교부 폴리갑 감독은 7세에 중생을 했고 성경의 대주석가 매튜 헨리는 11세 때에 중생을 체험했습니다. 호라시우스 보나르 박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생을 체험한자 253명중 절반이 넘는 138명이 20세 이하에서 중생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1세-30세 사이에서는 85명, 31세-40세 사이에서는 22명, 41세-50명까지에는 4명, 51세-60까지에는 3명으로 급격히 줄다가 61세-70세 사이에 단 1명뿐이었고 70세 이상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받아드려지는 기회가 어릴수록 많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구원의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스펜서 박사의 통계도 비슷합니다. 1000명중 20세 전에 구원받아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는 사람들이 548명인데 비하여 20대에 와서는 337명으로 적어졌고, 30대에 와서는 96명을 확 줄었고 40대에서는 단지 15명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50대에서는 단 3명이 구원의 은총을 누렸고 60대에서는 단 1명만이 예수님의 영접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 70 대부터는 단 한 사람도 구원의 반열에 들어 온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통계가 확실히 증명하는 대로 한 생명을 구원시키는 일에 있어서 나이가 어릴수록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이 굳어져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쏘크라테스는 인격과 성격의 형성에 있어서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는 때가 오기 전에 투자하라고 했는데 영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실로 우리 어른들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여야 할 대상이 어린이들이요 소년 소녀들임을 깊이 명심하여야 합니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들, 즉 가정, 학교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배운 것, 얻은 것, 익힌 것이 한 인간의 삶의 내용을 결정짓습니다. 이 셋 중에서도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리고 학교가 너무나 세속화되어서 신앙심을 심어주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교회의 종교교육이 더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육관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란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갑니다. 비록 기독교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일지라도 거기에서 큰 기독교적 감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급학교 진학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기독교적 삶의 모습을 배워주는데는 정책상, 시간상 인색해 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교회는 주일에만 한 두시간의 짧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적인 삶의 모습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시설 마져 부족한 경우에는 교회 교육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관을 아름답게 짓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사회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건물에서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배워주는 일을 하는 일입니다. 주일날 몇 시간만이라도 어린이들에게 영구한 감화를 주는 교육을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품에 안아주셨듯이 우리 어른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해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탁합니다. 교육관을 어린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소년 소녀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무서운 경쟁 사회 속에서 엄청난 소외감을 느낍니다. 사회는 이들을 내팽개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정이 잘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에서 보듯이 르무엘왕이 어릴 때 그 어머니가 그를 잘 가르쳤듯이 여러분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구주 예수님을 배워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마음에 담는다면 최고의 선물을 주는 일이 됩니다. 어떤 신사 한 분이 주일날 교회에 가던 중에 길거리에서 장난치며 놀고있던 어린아이들 4명을 교회로 데려가서 성경 반을 조직하여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4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믿음 있는 어른들로 자랐습니다. 1932년 이제 나이가 많아 머리가 하얗게 쇈 이 노인 교사의 은퇴 겸 생일 축하 잔치에 네 통의 축하메시지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한 통은 중국선교사에게서, 또 한 통은 연방은행 총재에게서, 그리고 후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게서, 나머지 한 통은 후버대통령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아이오아주의 작은 농촌 위스트 브로우치의 이름 없는 한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주일학교의 성경공부가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아들과 딸들, 어린이들을 위하여 최우선의 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천국의 주인공/눅18:15-17
2004-10-18 13:19:45   read : 176

얼마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고 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가 열 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수술에서 수혈이 잘못되어서
이 소년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하는 AIDS 라고 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이 병원에서 잘못해서 그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가정도 특별히 의사선생님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밝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지게 될 때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린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인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이 어린아이를 찾아 방문했습니다.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친히 이 어린 소년을 찾아 방문했고요
또 당시의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까지도
이 어린 소년을 방문해서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려서
더욱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 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니예요. 전 지금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지만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선물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습니다.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교회에 나아가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보다 위대한 선물이 어디있겠습니까? ]

우리 모두는 자녀에 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2>
어린이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이 어떻게 다른가를 발견하고 우리 자녀들에 대한 바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먼저 어린이 주일 유래를 살펴보면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게 된 것은
근세에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들의 가능성과 꿈을 존중하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실시되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어린이 주일을 제정한
유니버살리스트(Universalist)제일 교회의 레오날드 목사는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 주일을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그 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레오날드 목사의 어린이 주일 시행이후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결과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린이 주일은
교회 절기의 일부분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어린이라는 호칭조차 없던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했던 것은 어린이 주일의 제정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 바른 인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방정환, 마해송, 윤극영 등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색동회는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 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3>
한편 초창기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이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도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다 활발하게 지켜오고 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어린아이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며,
또 우리교회에 보내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하는가를
잘 배우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의 개요를 말씀드린다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어느 마을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증거 하시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작은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님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와서
예수님 무릎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스러운 눈초리로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떤 부인이 그 아이를 잡아당기고
자기의 아이를 예수님 가슴에 슬쩍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웃으시며 그 아이의 얼굴에 볼을 갖다 대셨습니다.
그 옆에 있던 젊은 부인도 안고 있던 어린아이를
예수님 품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도 어루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아이들을 받아 안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늘의 이슬 같은 신령한 복(福), 땅의 기름짐의 복,
강건한 복이 임할지어다."
그러자 모든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 무릎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광경을 시종 지켜보던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여보세요,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피곤한 분이신 데
왜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이리 귀찮게 구는거요" 하면서
데리고 온 아이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내게 오는 아이들은 금하지 마라, 저들을 용납하라,
저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 ].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에 대한 관심은 너무 지나칠 정도입니다. <4>당시 부모들도 자녀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을 바라며
아이를 앉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이것 정말 잘한 일이요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들은 관심이 지나칠 정도이지만
그 목적은 전혀 다른데 있습니다.
얼마전에 미국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저스틴 채프먼>이라는 8살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3살 때부터 천재성을 나타내어
<스텐퍼드 비네>라는 지능 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5살 때 온라인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6살 때 뉴욕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때 받은 IQ 테스트에서 298점을 받았고
미국 대학 입학 능력 시험인 SAT에서는
주요과목에서 만점인 800점을 맞았습니다.
지난해 7월 영재를 위한 <브리든 스쿨>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엔 곧잘 했지만 11월부터 모든 수업을 거부하더니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등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면서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일로 채프먼의 어머니는 어린이 보호 태만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채프먼의 어머니가 하는 말이
[ 채프먼의 IQ테스트는 조작했고,
SAT 성적은 이웃집 아들의 점수를 훔쳤으며
스텐퍼드 비네의 지능 테스트는 대신 답을 썼다 ] 고 실토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열등의식 때문에 자녀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자녀를 망그트려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 대한 관심을
먼저 신앙에 대한 관심이 가져야 하고, 인격적인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토기장이 손에 들려진 진흙과 같아서
토기장이가 빚으면 그 빚는 모양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세모 모양의 그릇이 굳어진 후에 네모로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굳기 전에는 그 모양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굳어지기 전에 잘 빚어야 합니다.
어린이의 학습능력이나 암기력,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순수함을 고려할 때 귀한 어린이의 시절을 놓치지 않고 <5>
그들에게 잊혀진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새겨 넣는다면
그들은 평생 바른 자아상과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방황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잠22:6절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라고 우리에게 명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위임받은 토기장이입니다.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21세기를 살아나가는데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게 합니다.
복음, 믿음, 구원은 쉰 세대의 용어인양 뒷전으로 밀려나고
영어, 인터넷이 성공하는 삶의 정석으로 등장하여 우상시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토기장이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위대한 석학? 예술가? 전문가 아니면 스타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부모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삶을 통해 부모가 무엇에 비중을 두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라는 것으로
결코 그들에게 신앙의 전통이 전수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가치관이 바르게 서게 될 때 자녀들의 삶에 위대한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 토기장이 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토기장이의 임무를 위임하셨고
나아가서 교사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음세대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 자손에게 그것을 알리라고 하신 목적은 시76:6-8절에
[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경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전수는 구약과 신약에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 신앙을 다음세대에게 전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자신의 신앙을 치장하라는데 있지 아니하고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의 전수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6>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오늘의 교회 안에 기성세대와 비슷한 제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금했습니다.
바로 아이들을 경시하는 풍조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학교를 맡고 있는 몇 몇 분의 교사들 외에는
대부분 자기 아이에게는 관심을 가지지마는
주일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이 미온적입니다.
교인들이 그럽니다.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 고 물으면
주일 낯 예배 장년 출석수만 말하지 주일학생들은 빼 버립니다.
어린아이는 교인 수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관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 수준이나 오늘 교회 교인들 수준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경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내 소유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녀는 소유가 아닙니다.
내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근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니
자녀를 학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의 변명은
<내가 내 새끼 때리는 데 당신은 왜 참견이야?>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자녀를 주셨지만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부모는 양육권만 있지 소유권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게벳은 모세를 낳았을 때 자기 아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아들을 낳으면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 부모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이이기에 하나님께 죽고 사는 것을 맡기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갈대 상자를 만들어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17년을 기다리던 아이였습니다.
얼마나 기르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젖떨어지자 마자 성막으로 보내서 <7>
그 곳에서 엘리 대제사장과 같이 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내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를 바르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바이얼라 윌덴> 목사님이 뉴욕 인근에 살고 있는 가정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그 가정에 4살된 아이가 있었는데
얼마나 총명하고 사랑스러운지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가 조금 후 밝혀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산더미같이 설겆이 할 것이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나 바빴습니다.
그런데 4살된 아들이 책을 들고 오더니 물었습니다.
<엄마! 이 사람은 무엇을 하는 거야?>
엄마는 설겆이를 하다 말고 아들을 데리고 소파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다 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렇게 설명을 하여 주었더니
아들은 <알았어> 하면서 만족한 얼굴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데 어떻게 그렇게 아들이 물어 보는 것을 다 대꾸하여 줍니까?>
이 질문에 엄마가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설겆이는 평생하는 것입니다. 지금 못 하면 나중에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들의 질문은 평생 처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순위는 아들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소중히 여겨야 좋은 부모가 됩니다.
에디슨은 어려서 공부를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소중히 여겼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미진아라고 평을 받았던 윈스턴 처질도
부모가 소중히 길렀습니다.
어려서 머리가 너무나 나쁘다고 평이 나 있었던 아인슈타인,
정신 박약아라고 평하였던 아인슈타인도 부모가 소중히 길렀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렵다고 포기한 아이들을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소중히 길렀습니다.
다 포기하였어도 부모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인류에 빛을 발하는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을 혹 주일학생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없어야 겠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어린아이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1) 15절에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손으로 어루만져주셨습니다. <8>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 하나를 안아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지금까지 이런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거든요.
주님 당시에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경시하고 매우 엄하게 대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의 태도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아주 파격적인 행동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교육 방법인지 몰라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집마다 의사가 계셨잖아요. 가정의, 무면허 의사, 할머니 말이에요.
할머니께서는 손자들을 무릎에 눕혀 놓고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하시면서 배를 살살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잠이 들고, 한잠 자고 나면
아프던 배가 깨끗이 낳아서 정말 할머니 배는 약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게 되면 잘못되는 애들이 없어요.
옛날 부모들은 그 많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다 부모의 손길로 길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하신 겁니다.

그런데 오늘의 엄마들은 달라요.
애들을 영어, 컴퓨터, 피아노, 태권도 학원 등에다 맡겨 버립니다.
언제 부모의 손길을 느낄 겨를이 없어요.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이런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 결과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남을 배려할 줄을 모르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共同體)정신이 희박한 아이를 만듭니다.
우리들은 돈 가지고, 학원에만 보내서 남의 손에 맡겨서만 기르려고 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
부모의 따뜻한 가슴과 손길을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어야합니다.
머리를 만져주면서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 주고,
눈을 스다듬으며 허탄한 데 빠져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입술을 잡고 만져서 진실한 말이 나오도록 하고,
가슴을 꽉 눌러 앉아서 허탄(虛誕)한 생각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손과 발을 만져서 지혜롭고 슬기롭도록 하고, 어깨를 꽉 잡아서 용기(勇氣)를 잃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길러야합니다.

오늘 당장 가서 자녀들을 가슴으로 안아주고 볼을 맞대고 쓰다듬어 주세요. 우리 교사들도
이런 따뜻한 정으로 어린이를 교육하고, 학생들을 교육해야합니다.
이런 사랑이 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입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교육, 신앙교육, 인격교육을 시켜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와서 <9>
목사님께, 교사님들께 사랑 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요.
그들의 정서에 너무 좋은 거예요.
< 이번 부흥회 때도 젊은 새댁이 아이 앉고는 나오면서
목사님~! 우리 애기 축복기도 한 번 해 주이소 >

심리학자 <할로우>의 실험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두 마리의 어미 원숭이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차가운 철사로 만들고, 또 다른 하나는 따뜻한 헝겊으로 만들어서 젖병을 철사로 만든 어미의 목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새끼 원숭이들은 젖병을 매단 철사 원숭이에게는 가지 않고,
늘 따뜻한 헝겊 어미의 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젖을 먹을 때도 몸은 헝겊 어미 쪽에 두고
목만 길게 빼서 젖병을 끌어당기곤 했습니다.
이 실험 결과 부모와 자식간의 애착현상은 젖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고 따뜻한 접촉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됐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물질의 제공자이기 때문만 아니라 따뜻한 피부접촉을 통한 사랑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 시대야말로
어린이를 안아주셨던 예수님을 닮아 가는 부모님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루 한번이라도 내 자녀를 사랑으로 안아주어
그들이 '나는 사랑 받고 있는 귀한 존재자'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독 같은 기사 막10:16절에 보면
어린아이를 안수하시고 축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에게 나온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머리에 안수하시며 축복해주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존경받는 선생이 어린이를 품에 안고
안수하며 축복해 주시는 모습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껏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너는 지혜롭다, 늠름하다, 장차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
너는 대 학자가 되겠다, 너는 대 사업가가 되겠다', 등
이런 복을 빌어 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작년 철야기도 때 정교수님이란 분
교회 문간 방에 육남매가 살면서 그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 박사야 박사야" 했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 보면 어머니들이 복을 빌어주기는커녕 아이들에게 정말 입에다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욕을 합니다. 어떻든 그 욕을 먹고 컸는 대도 이렇게 잘 사니 하나님의 은혜에요. <10>
그런데 참 좋은 말이 하나 있어요. 코 풀 때는 '흥(興)해, 흥해'
그러잖아요. 다행이 그 저주가 임하지 않은 것은 코를 많이 풀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주 엄청한 선언을 합니다.
16절에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래셨을까요? 어린아이들에게 구원(救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뜻 잘못 생각하면
구원은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줄로 압니다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도 정말로 구원이 필요하며,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이것을 믿는 부모라면 자녀들의 신앙 문제에 대하여
안이하게 생각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천국의 모델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18:17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통해서 어른들이 배울 점이 많다는 말입니다.
특히 천국에 들어가려면 천국 백성의 합당한 성품을 가져야 되는데
이것을 어린아이에게서 배워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순진(純眞)하고 깨끗한 마음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아무런 사심도 가지지 않고 때묻지 않은 순진한 마음인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겸손(謙遜)한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의 잘못도 금방 깨닫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겸손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특히 천국의 주역인 어린아이의 마음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리라는 믿음 속에서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단 한 학기의 학비도 마련할 힘이 없으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11>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부모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을 확신하며
부모님만 의지하면서 마음놓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미인(美人)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가 그 부모를 신뢰하는 것과 같이 주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당시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엎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여자와 어린이는
인구조사 때 수에 넣지도 않을 정도로 무시했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충격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귀중히 보십니까?
그건 바로 어린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요
신앙과 전통을 이어갈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주도적 세력을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s)라고 합니다.
그들은 영국 구교회의 핍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의 영향으로 신앙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축복을 받아 세계의 리더들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역경들이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적 유산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나의 자녀관은 어떠합니까?

아이를 많이 둔 집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쓰는 용어가 늘 거칠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빨리 처먹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느새 그런 말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습니다. 과일을 깎아 대접했더니 선생님이 아이에게 같이 먹자고 권합니다 <12>
그러자 아이가 엄마 눈치를 슬슬 보며 묻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같이 먹자는데 같이 처먹을까요?”
부모의 한마디 한마디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언어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담긴 사상이 전달된다는 것과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그 아이 안에서 가치체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부모들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가르칩니다.
그래서 일본은 예의가 바른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과 나누어 가지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미국인들 몸에 배인 자원봉사 정신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와 무슨 말을 가장 많이 나눌까요?
단연“공부해라”입니다. 그리고 “빨리 빨리”입니다.
그래서 늘 “빨리 밥 먹고 학교가라”,“빨리 공부해라”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 일하는 것 보면 무엇이든지 후딱 해 치웁니다. 잘 했느냐 못했느냐가 없습니다. 일단 했으면 됐다는 식이지요.
그래서 무너지고, 부숴 지고 그럽니다.
결국 한 사람의 생애는 부모의 말 한마디로 시작 됩니다.
말 한마디가 가치관을 형성하는 틀이 되는가하면,
말 한마디가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모든 교육의 출발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거의 무의식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좋은 향수의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고 합니다.
샤넬 향수 같은 것은 한 병에 몇 십 만원 합니다.
그러나 향수가 아무리 비싼들 사람의 향기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저마다 향기를 내고 싶어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향기란 말할 것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격의 향기입니다.
특히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라고 하는 향기를 지녔습니다.
어른인체 하면, 악취가 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체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되어야 향기가 납니다.
이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에 예수가 살포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모세 부모의 자녀양육/출2:1-10
2004-09-17 15:17:43   read : 113

7월 17일 인천-생화고 30대 주부, 세 자녀와 아파트서 투신
7월 31일 울산-주식실패 30대 주부, 두 자녀 살해하고 투신
9월 26일 전주-부도 30대, 아내 세 자녀와 승용차에 불질러
10월 19일 서울-생활고 40대 가장, 희귀병 딸 산소호흡기 떼
11월 4일 대전-사업실패 40대, 아내, 두 자녀 공기총으로 쏴
12월 4일 시흥-경마 빚 40대 부부, 두 자녀와 함께 음독
12월 19일 서울-카드 빚 20대 남성, 두 자녀 한강에 던져
비정한 자녀살인 위험수위에 달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 성도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건전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속히 오게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처럼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아파트에 중3의 남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여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걸핏하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부인과 자녀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중1의 여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이 학생의 부모는 자녀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므로 이 여학생은 아주 행복하였습니다.
그 날도 중3 남학생은 아버지로부터 온갖 행패를 당하고는 홧김에 부엌에 있는 과도를 품에 품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중1의 여학생이 친구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오다가 아파트 앞에서 헤어져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중1 여학생을 보는 순간 심술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중3 남학생은 급하게 여학생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기가 가지고 간 과도로 그 여학생을 상해하였습니다.
이래서 나온 말이 이 세상에는 문제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고 했습니다.

연어나 은어 같은 물고기들에게는 소위 회귀성이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섬진강이나 남대천 등에서 알을 부화시켜 치어로 키우다가 방류하면 이 물고기들은 크면서 바다로 나가 자라게 됩니다.
다 자란 연어는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알래스카 바다까지도 갑니다.
그러다 자라서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자신들의 모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합니다.
강한 회귀성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연어나 은어보다 더 강한 회귀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의 회귀성입니다.
어릴 때의 신앙 교육은 저들의 평생을 신앙의 삶으로 살게 해 줍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잠시 신앙을 잊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막 10:14절에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자기 자녀를 예수께 데려와 기도를 받고 싶었든 어떤 부모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부모를 꾸짖고 제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어린이를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시기를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와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부모들과 어른들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의 아주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있었던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시켰습니까?

1. 2절에 부모가 아기를 보니 "잘 생겼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은 부드럽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자녀 예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탈무드에는 자기 자녀를 아름답게 보는 이 눈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잘 보살피도록 어머니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만일 내 자식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내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그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사탄이 이런 우리 부모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만도 못한 부모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 2절에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비록 모세의 부모가 아니라도 부모의 눈에는 그 자녀가 잘 생겨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한 것은 평범한 말이 아닙니다.
심지어 히11:23에 보면 그 자녀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임금의 명령까지도 무서워 아니 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아름다움에 관한 참된 의미에 대하여 사도행전7:20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대제사장 앞에서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친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모세의 아름다움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모세의 외모가 정말 아름다웠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세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 아이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그 일을 감당할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다름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하늘나라 주인공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단지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슴도치 정도의 사랑으로만 사랑하는 부모가 되지 말기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으로 모세를 낳았으며 믿음의 눈으로 자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세상에 부모 치고 자기 자녀를 잘 키우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혜롭고 훌륭하게 키우기를 원하고 또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문제는 지나친 부모들의 기대가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어 오히려 자녀들의 장래를 그르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골3:21에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낙심케 하지 않도록 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까?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했습니까?

출2:3에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 사용된 "갈대 상자"라는 말이 옛날 노아의 "방주"라는 말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방주는 바로 오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열심히 교회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 오면 공부 못하는 줄만 알고 있어요.
지금 저가 구미여고 솔라이트 경건예배 한 달에 두 번씩 인도하고 있는데 약 50여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이쁘고 잘생긴 아이들입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찬양하고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고 교제합니다.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갑니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금식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일수록 교회로 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빗나가지 않죠.

오늘 신약 본문에 부모처럼 여러분의 자녀를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로 데려가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었더니 온갖 장애를 넘어 마침내 바로의 공주의 품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고 어머니 품에서 말씀으로 교육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모세로 모세 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자녀는 육신의 부모도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자기 부모도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 자녀는 가정도 우습게 여깁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의 품에, 그의 인도에 맡깁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세를 통해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부모를 가로막은 제자들을 우리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혹 여러분이나 여러분 가정에는 우리 주님께 책망 받을 일은 없습니까? "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싶은데 부모는 그 놈의 공부 때문에 책가방 싸서 학원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가 예수님께로 아이들이 가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모세의 부모는 꿈을 심어 키웠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한 일을 자녀도 해야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부모들은 자기는 이루지 못했으나 자녀들이 부모대신 그것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부모들의 빗나간 기대가 자녀를 노엽게 하고 낙심케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부모 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도록 키우겠습니까?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도 상당했습니다.
얼마든지 아버지에게 항거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은 아브라함은 그 사랑하는 자녀 이삭의 가슴속에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리아 산의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장 실감 있게 예표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회의 목사에 말에 순종하고 늘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 자식도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왜 자기 자녀가 부귀 영광 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기왕 아들이 애굽 공주의 품에 안기게 되어 출세의 길이 열렸는데 이런 기회를 왜 놓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요게벳은 모세의 가슴속에 세속적인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장했을 때 그는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영광을 마다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당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이라고 하는 역사상 최대의 드라마를 연출하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 아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본 어머니 요게벳은 그 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노우 대책의 일환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늙어 병들면 자식 득 좀 볼려고 안간힘을 다 써서 돈 벌고 집사고 재산 물려 주고 합니다만 그 놈의 자식이 병든 부모 잘 봉양할까요.
꿈 깨십시오.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내 자신은 안 그럴 거 같다고요.

요게벳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공주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친어머니 품에서 성장하도록 해 주신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보다 더 아름다운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신 그 크신 뜻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모세의 어머니처럼 여러분이 그 자녀들의 가슴에 믿음으로 꿈을 심어주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저 바깥의 믿지 않는 부모들처럼 헛된 욕망의 포로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외 한 두 가지 못해도 한 시간이라도 더 교회로 주님께로 데려오고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여건은 저 나일 강의 물결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내 자녀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인줄 알고 신앙으로 양육할 때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이 땅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게 됩니다.
위대한 모세의 인생과 그 놀라운 사역 배후에는 위대한 모세의 어머니의 아름다운 양육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우면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녀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우리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 자녀들의 신앙회복을 위해서
부모들의 자녀 양육에 대한 모세의 부모와 같은 모습이 되도록
하나님 섬기는 법을 최우선으로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빗나간 자녀 교육/삼상2:12-21
2004-09-17 11:54:58   read : 91

오월은 향기로운 달입니다.
꽃의 계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게서는 고양세계 꽃박람회와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내뿜고 연한 어린 싹들이 조금씩 보기 좋은 녹색을 띄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오월의 첫날 첫 주일로서 어린이 주일 혹은 꽃 주일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달과 또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기독교 가정의 책임과 사랑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말로는 기독교 신앙인이라면서 우리의 가정의 교육은 과연 기독교 가정다운지, 우리의 자녀들은 기독교인들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자라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엄청난 관심과 돈으로 교육시켰다고 안심하고 있거나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요즘의 부모들이 본문처럼 빗나간 자녀교육을 시키고 있거나,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며 자녀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모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자녀들의 교육문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왜 그렇게 돈과 열정을 쏟아 부었는데 우리자녀들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노래하기를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마치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아서 자식이 많은 사람은 복이 있고, 원수들 앞에서도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식이 많은 것이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녀가 하나님의 주신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이라면 자녀들로 인해 기쁨을 얻고 자녀들로 인해 높임을 받아야 할텐데 오히려 골칫거리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가 칭찬을 듣고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가 망신을 당하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아이들이 하나 둘 밖에 없는 시대에는 그저 마냥 귀엽게만 키워 버릇도 없고 예의도 모르는 안하무인의 몹쓸 인간을 키우는 예가 허다합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에는 성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2-17절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이요,
18-21절은 한나의 아들인 사무엘의 모습이다.

우리 말 성경에는 빠져있지만 원문에는 18절에 "그러나 " 라는 접속어를 써서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을 대조, 비교하고 있다.
어린이 주일 아침, 우리는 이 아들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이 상급으로 주신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첫째,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제사장인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고 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밤낮 성전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니 기이한 일이 아닙니까?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이론적이고 지식적인 의미에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만나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그저 피상적으로는 알지 모르나 그 하나님이 바로 여기 계시고 자신들의 행동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이 지금 보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감히 제물을 강탈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건드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요즈음에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과연 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줄을 아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 줄을 알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만 생각한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신 7:21)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신 10:17)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큰 문제 중 하나는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저 부모를 따라 교회에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없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종종 들리는 말이 교회에서 제일 속썩이는 아이들이 목회자의 자녀나 제직자들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웃어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쉽게 귀넘어들을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18)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 자기 절제를 가르쳐야 한다.
자녀가 하나 둘 밖에 없으니 부모가 거절할 줄을 모릅니다.
몇 만원짜리 장난감을 쉽게 사줍니다.
겨우 전자오락 밖에 할 줄 모르는데도 백만원이 넘는 컴퓨터를 덥석 사다 줍니다.
부모가 안 된다고 했더라도 아이가 다리를 뻗고 앉아 울면 해결됩니다.
남의 아이가 먹고 있는 과자도 엄마에게 달라고 울면 빼앗아 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심지어 성찬식 때 사용하는 빵을 아이가 달라고 조른다고 하여 하나 집어 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랐으니 안 되는 게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짓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줄로만 아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 방식이 집에서 부모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제까지 다 되었는데 왜 안 되느냐고 합니다.
자기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를 거스려 절제할 줄을 모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이런 식으로 자랐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무슨 고기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달라고 졸랐습니다.
삶은 고기보다 날고기를 원한다고 떼를 썼습니다.
얼굴이 예쁜 여인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렀습니다.
그들은 망나니였습니다.
불량자란 말을 공동번역에는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도 몰라보고 어른도 몰라봤습니다.
그들은 자기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어릴 때 벌써 부모를 떠나 혼자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어린 사무엘에게 참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절제를 배웠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무엘은 자라서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을 다스려 절제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한 평생 사사로 지내면서 남의 것을 탐내거나 빼앗지 않았습니다(12:3-4).
자신의 자리를 사울에게 물려줄 줄도 알았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안 돼"라는 말을 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을 망나니로 키우고 싶은가요? 그렇지 않다면 절제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건 안 돼"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갖고 싶은 것을 참고, 먹고 싶은 것을 참고, 하고 싶은 것을 참는 법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셋째, 좋은 습관을 길러 주시기 바랍니다.
행동은 습관을 낳는다고 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그의 성품이 되고 성품은 그의 운명을 낳는다고 합니다.

일상생활 중 90%이상의 행동은 습관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비슷한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특히 어릴 때 길들여진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나봅니다.
이처럼 한 번 길들여진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으니 좋은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저의 집 이야기라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인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예수님을 꼭 만나도록 합니다. 두란노에서 나오는 “예수님은 좋아요”라고 하는 월간지가 있습니다. 매일 큐티 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입니다.
일어나면 말씀 읽고 큐티하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사모는 저녁에 잘 때 기도하도록 가르칩니다.
하루는 엄마가 하루는 아이가 어떠할 때 보면 아인가 한달 기도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는 아인이가 잘못했을 때라든지 요구를 들어 주었을 때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니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백 가지 습관에 따라 움직입니다.
일례로 식사 습관을 생각해 보면은, 밥을 먹을 대도 대부분 오른 손을 사용하지만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국을 먼저 먹는 사람이 있고 밥 먹기 전에 물을 먼저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사람도 있고 소리 내지 않고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식사 때마다 신물을 펼치는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적인 습관은 각 사람이 가진 직업의 반복적 특성에 따라 형성됩니다.
저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아름다운 언덕이나 넓은 당을 보면 그곳에 멋진 교회당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덕 위에 십자가를 세우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내가 목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업가는 넓은 땅을 보면 그곳에 공장이나 멋진 사무실을 세우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아침잠이 많던 내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새벽 기도를 드리는 습관 때문입니다.
습관은 인생을 움직입니다.
우리의 행동 중 90%이상이 습관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습관이 우리의 미래를 창조합니다.
습관은 예언적이 부분이 있습니다.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습관을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습관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습관이 되기 전에 바른 행동을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렘 22:21)고 탄식하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처음에 하나님께 드릴 고기를 가져갈 때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두 번 그렇게 하다보니 습관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 제사장들(홉니와 비느하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13)라고 하였습니다.
습관이 되고 나니 두려운 마음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엘리도 처음에 자식의 행동을 보고 겁이 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고 만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예배드리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도 장난치고 떠드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 철이 안 들어 그렇지. 차차 나아질 거야"하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큰 오해입니다.
철이 들기 전에 바른 예배의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아직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 앞에서는 세마포 에봇을 입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철부지 아이가 뛰어 놀기에는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된 것입니다.
까닭에 그는 후에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12:23)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신다면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길러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가는 습관, 교회에 갈 때는 깨끗한 옷을 단정히 입는 습관, 예배는 엄숙하고 거룩하게 드리는 습관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것이 자라는 아이에게 습관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느 조사 보고에 의하면 고등학생의 과외지도를 위해 수십 만원씩의 과외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학을 잘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공부를 잘한들 무엇에 쓰겠습니까?
나중에 부모를 알아보겠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운 줄을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2:30).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겼다.
아들들에게 참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참아달라고 했습니다.
아들들에게 양보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훔쳐가도 아들들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해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9절에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비극이요, 이것이 불행이다.
결국 아들들도 비참하게 되었고, 부모도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영적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존재 변화의 시작이라면 성화는 존재의 끓임 없는 변화입니다.
신앙생활은 옛 습관을 변화시키라고 요구합니다.
신앙생활은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불가향력의 은혜는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게 합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택을 통한 변화를 주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편안하기를 바라는 습관이 있습니다.
현대문화는 편안함이라는 마법을 사람들에게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평안함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참된 가치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으로 존재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존재 가치를 주셨습니다.
성숙을 위해 영적 습관을 훈련하는 것은 참된 가치를 위한 훈련이며 변화를 위한 훈련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믿음에서 생깁니다.
그리고 믿음과 지식이 순종으로 나타나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지식을 낳고, 지식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경험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이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인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다스려 절제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어려서부터 좋은 신앙의 습관을 길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모의 과제 신6:5-9
2002-01-29 11:12:55   read : 393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 르치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침이 되면 밖에 나갔다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호텔이 있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집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집이 최고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가서 잠을 자는 것에 더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가게 되면 안정감이 없고, 불편하고, 부자유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내 집처럼 자유하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쓸쓸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인들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 기르는 과정이 어렵고 고되지만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정의 행복의 요소이고, 기쁨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정에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불량하고, 탈선을 하고, 사고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오히려 부모들에게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5)는 것이고, 둘째로는 "내가 명한 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7)는 것이고, 세 번째는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발라 기호를 삼으라"(8)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녀들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우선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로 하여금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 합니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그 어느 것에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애처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보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탈선하고, 반항하고, 제를 일으켜서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부모들의 근심이고 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적인 요소입니다. 이 타락된 정신은 피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벽이나, 방랑성 그리고 주벽, 불성실, 유흥성의 기질은 유전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의 핏속에 다 들어 있는 유전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환경에 있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정신의 변혁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청년은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곧고 고루 균형된 인격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결손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우선 정신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불화하고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는 정서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성을 잃고 밖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탈선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나 삼손이나 세례요한 같은 경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인간은 태아 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어느 임상학자가 이 경우를 실험했습니다. 산모의 태 중에 전깃줄을 넣어 불을 키니까 태 속의 어린아이는 눈을 가리더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빛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켜서고 어둡던 곳이 밝아지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고, 문을 쾅하고 닫으니까 이 아이는 태 중에서도 놀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니까 그 때서야 안정하고 조용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 주정을 피우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환경에서 잉태되고, 자라난 아이들은 늘 긴장 속에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난폭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라야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실내에 있으면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 크게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어린 태아는 태 중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적이고 평온을 유지할 때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심성을 유지하면서 자라겠지만 불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는 쉽게 불안정한 아이로 형성될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니까 늘 싸우고, 화를 내고, 흥분을 하고, 욕을 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서 잉태되고, 자라고, 성장한 아이의 심성이나 성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이 쉽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자녀양육의 필수적인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 육성을 위해서" 입니다.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사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중에는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학교의 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한 역할입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서 신앙인으로 만들어지지도 하고, 비신앙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수가 있어도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비신앙 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초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기초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3빌딩을 짓는데 기초공사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초가 그만큼 단단하고 잘 되어 있으니까 그 기초 위에 63층을 올려도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는 것입니다. 모태 신앙 자들이 뜨겁거나 신앙의 활발성은 적으나 끈질기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기초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동안 세계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든든함을 보여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대처했고 개입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처럼 실패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의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닙니다. 완전히 한물간 나라입니다. 쇠퇴했습니다.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공립학교들이 수업시작 전에 기도하던 제도를 폐지했던 그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미국의 모든 학교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던 힘이었고, 구심점이었고, 미국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먼저 그것부터 폐지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구심점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이 얻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월남전의 패배입니다. 그 때 부터 미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신뢰도를 잃게 되었고,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의지도 모호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이제는 완전히 종이 호랑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미국의 몰골을 보십시요.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 북한으로부터 질질 끌려 다니는 저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됩니다. 국가든 사회든 그곳이 가정이든지 이같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힘이 약화되고 구심점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 그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집집마다 가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훈의 목적은 순전히 교훈성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그 가정의 뜻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훈을 중심으로 해서 온 가족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보면 좋은 정신이 들어 있는 가훈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에 기록하여 가르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훈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가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다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도 먹여서 잘 키워야 하지만 정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영의 양식도 충분히 먹여서 골고루 섭취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부여된 역할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서 40명의 어린아이들이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엡6:4
2002-01-29 11:11:53   read : 404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참 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 한다면 세 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 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 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 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 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 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 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 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 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 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 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 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 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 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 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 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사랑한 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 고 사랑은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 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 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 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 그것 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 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 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 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 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 릅니다.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 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 합니다. 그와 같은 훈련과 공부를 통하여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운 전을 합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그와 같은 공부와 훈련을 받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 면허가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자동차 를 몰래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경우를 뉴스를 통하여 보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훈련과 공부없이 자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일으키는 큰 사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 의 사고를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서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도 많 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 부와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 자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 있어서 무면허자들입니다. 그래 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 을 이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 는 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 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 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 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 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 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 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 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 어서 무지 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 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부 모들이 자녀들에 대하여 무례합니 다. 자녀들의 대한 부모의 무례함이 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고 불편하게 들리는 부모님들이 혹 여 러분들중에 있으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보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 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 랑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 나가 바로 이 무례함입니다. 사랑하 는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무례함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해도 된다고 잘못 생 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 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리기는 해 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 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보지만 잠언 13:24에 보면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필요하다면 자녀들에게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 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 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 을 함부로 무시하고 저들에게 무례 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 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 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 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줄 아십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 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 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격적 으로 대우하고 저들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준다면 저들은 부모 의 꾸짖음과 초달을 인정하고 받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과 초달은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와 아 이들을 바르게 자라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 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항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부모들 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 항을 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 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 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 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 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의는 아이들이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줄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 이 먼저 아이들에 대하여 예의를 갖 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 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 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은 말은 힘 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 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 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 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 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큰 쇼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 '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직하면 됩니 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 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없 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이 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들의 눈에 부모는 위선자로 보이 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리고 자랑스러워야 할 부 모가 자녀들의 눈에 위선자로 보이 게 될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엄 청난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모의 자 녀에 대한 교육은 끝입니다. 더 이 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 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 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 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 패와 어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세상에 자녀를 바르게 양육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 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 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 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 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 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 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스승 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 자녀들이 복이 있습 니다. 부모에게서 인생에 있어서 중 요한 것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아 이들이 복이 있는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습니 다.
저는 지금 제 실력으로 아 이들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 그 밖의 세상적인 지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학교 에 보내고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맡 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삶과 신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제가 가르 쳐야만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 되고 싶습니 다.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으로 좋은 동안 교회의 목사 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 분들이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목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 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 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 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자녀 교육 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 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 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 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 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 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 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 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 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 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 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 신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 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엡6:1-4 곽선희목사
2002-01-29 11:10:52   read : 548

현대인의 가장 큰 죄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물 질문명에 취해서 편리한 것들만 찾 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깊 이 공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 어는 요새는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 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만 은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공부하며 책 을 읽는 그러한 일들이 점점 멀어지 는 것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합 니다.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 를 묻는,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이올시다. 둘째는 실천하 지 않는 겁니다. 아는 대로 행하질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는 말로, 인 간은 약하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가 지고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 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많고, 비 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행하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비참할 정도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겁 니다. 그래서 의지 박약, 그것이 바 로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세번째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가 르치지 않을 뿐더러 자녀에게까지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어느 제 아는 친구 목사님이 또 다른 일본 목사님과 이야기한 얘 기를 제게 옮겨 주었습니다. 그 일 본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는 데 자녀가 하나같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적 으로 삽니다.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가만히 보니깐 자녀들에 대 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목사님은 그 자녀들이 이렇 게 교회에 안나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요? 종교는 자유인데요. 애들에게 왜 내가 예 수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르쳐야 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악으로 키웁니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 런히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게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것 또 진 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 도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이 만큼, 세계적으로 볼 땐 아주 잘 삽니다. 특별히 IMF라 고 하는 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만큼 잘 견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하지만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저것을 잘 견딜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땅도 좁고, 사람은 많고, 자연 자본 도 없지만은 한국사람들 자녀들 공 부시키는데는 극성입니다. 이것이 밑천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린 6·25를 통해서 이 엄청난 희생과 큰 사건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만은 정리해보면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어요. 첫째가 교육이 먼저다. 그 동안에는 양반이니 귀 족이니 뭐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 어서 자자손손이 땅을 물려주고 살 면 이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돈, 땅 이것만 생각했습니다만은 전쟁을 치 르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땅문서 소용없어요. 지식이요.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배웠습 니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가르치 고, 한 마리밖에 없는 소도 팔아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이 한 국사람의 교육열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 해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있는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6·25를 통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온 세 계에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나아졌 습니다만은 50년 전만 해도 공산주 의가 세계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했 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여기 서 공산주의의 정체가 노출이 됩니 다. 그리고 온 세계에 증거하게 됐 습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말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한 국은 틀림없이 월남이나 캄보디아같 이 되었을 거라구. 완전 공산화 되 가지고 지금 얼마나 비참해 집니까? 캄보디아에서요 킬링필드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곳에서 150만을 죽였어요. 사람 죽이기를 뭐 거침 없이 해요.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보면서 이 남의 얘기가 아니요. 우 리가 일찍이 6·25전쟁을 만나지 않 았더라면 이래 될 뻔했다 하는 겁니 다. 정신이 아주 아찔합니다. 공산 주의를 배우게 됐어요. 또 세번째 는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로 신앙의 색으로 드러났어요. 6·25를 통해 서 교회가 부흥되고 영적 세계의 소 중함을 알아서 철저한 종교성이 높 은 그러한 민족으로 발전하게 됩니 다. 자 이제 보세요. 결국은 이만 큼 우리가 하나님께서 6·25를 통해 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양육 하라"하고 말합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는 먹이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 니다. 자라게 하시는 일, 생명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뿐이십니 다. 그런데 그가 자라게 하실 텐데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먹이 라"
그랬어요. 먹일 것을 먹여요.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4장에서 말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지속 되는 것이올시다. 누가복음 2장 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에 아주 교육철 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 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하는 말입니다. 키가 자 라며 '체육', 지혜가 자라며 '지육'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 더라 '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더라 '도덕', 이런 네 가지 측면으 로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 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 속 영향을 공급해야 됩니다. 균형 있는 영향,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불균형이 되고 실조가 되어서 잘못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분위기나 이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더 구나 우리 북한에 가 보면은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 들이 비참한지요. 저희가 이 자리 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약 삼천 명의 고아를 저희 소망교회에서 계 속 식량을 오래 전부터 대고 있습니 다. 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 을 보면은 영양실조가,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울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거, 앞으로 커서 사람될는지 모르겠 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나 끔 찍한 지 거기 지도자들도
"목사님, 그 애들 만나지 마세요. 그 애들 비참한 거 보고나면 목사님 아마 한 달 동안은 식사를 못 할겁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비참합니다. 먹지 못한다는 것, 먹 지 못해서 비틀어져 가는 영양실조, 얼마나 비참한 지 모릅니다. 자 그 런고로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키워야 겠지요. 잘 키워서 잘 먹여야 됩니 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 지요. 더구나 입맛은 부모가 만드 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 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 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 야 합니다. 먹이도록, 먹도록, 그래 서 충분한 영향을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 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고, 보아야 할 것은 보고, 경험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그래야 지능 이 발달합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 가 있어요. 수다스러운 어머니를 가진 아이의 I.Q.가 높다고. 말없는 것보다 나은가 보죠. 수다스러운 어머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생각이 발전한다고 그래요. 멍청한 어머니 는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양육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경험하 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내 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 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자, 낳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 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한 말씀 이지만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노엽게 하지 마라."
이게 뭡 니까? 화를 내게 만들지 말아요.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분위기에 맞추지 못했 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못한 거 예요.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에 할, 들어야 할 말이 따로 있어요. 저들 도 피곤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무 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 다. 생각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조 로 분노를 일으킨단 말이요. 그래 서 교육이 빗나갑니다. 마음이 빗 나갑니다. 또한 이해의 수준이 있 고 경험의 정도가 있습니다. 소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 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은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요샛말로 눈 높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 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이보 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 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을 알면서부터 비로 소 교육은 교육되는 것이올시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렸을 때는 나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 조금 있다가 동생이 태 어나니까 사랑이 이동합니다. 그 쪽으로 옮겨가요. 이 아이는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신자가 돼버려요. 아버지가 미워 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제 무 슨 교육이 통하겠습니까? 화가 났 거든요 지금. 사랑을 빼앗겼으니까 요. 이 배신자들 그들의 원수 같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가 없 죠. 여기서 한번 삐뚤어져서 일생 가는 거예요. 참으로 무서운 겁니 다. 심지어는 어떤 책에는 그런 말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젖 땔 때가 문제라구요. 젖 땔 때. 분명히 어 머니에게 젖이 있는데 저걸 먹지 말 라는 거예요. 이건 보통 고민이 아 니요. 이건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 는 거예요.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예요. 그런데 알 바 아니오. 여러분, 화내게 하지 마세 요.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안 통한다는 얘깁 니다. 자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고 로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주고 이것이 진정한 사 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새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오체불만족' 이라는 책입니다. '오체불만족'.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 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팔 다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팔이라는 것이 도대체 10cm밖에 안됩니다요. 이런 고구마 같은, 몽 땅한 것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의사가 받아놓고, 의사가 깜짝 놀란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머니 가 이걸 보면 아마 기절할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한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 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 이 첫 상봉을 합니다. 기가 막힌 장면을 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하십니까? 이 어머니는 분명 히 기절할 거예요. 그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 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합 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그의 간증을 들 어보세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 는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 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있 으니까, 편안하게 키워줬으니까.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 가 없다.' 그것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 았다는 겁니다. 전혀. 그리고 그에 게 모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 어는 이 보세요. 야구 선수가 되고, 축구를 하고요. 수영도 하고, 컴퓨 터를 하고, 붓글씨를 쓰고……. 못 하는 게 없어요. 모든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자랐어요. 이제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청년은 이렇 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이다."
너무너무 엄청 난 얘기 아닙니까?
"남과 좀 다를 뿐이지, 개성이 강할 뿐이지 별거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고 있구요. 또,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은 여기 있습니다.
"마음을 열 고 나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던 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존재에 대 해서 충만하고 마음을 열고 보니까 모두가 친구더라는 거예요.
"친구 가 많다."
얼마나 귀한 얘기입니 까? 그리고 마음을 열라고 외칩니 다. 또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 달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할 수 없 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특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외 칩니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더욱이 그 림에도 보면은 그 얼굴이 얼마나 밝 은지요.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다 니는데 휠체어를 스위치를 눌러서 이렇게 높여요. 이렇게. 높여.
"왜 높이느냐?"
하니깐 자기하고 걸 어가는 사람하고 눈 높이를 맞추려 고. 얼마나 멋진 얘기이에요. 눈 높이를 맞춰가며, 그는 명랑하게, 그 밝은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밝게 키울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 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 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이 어머니가 조금 도 낙심하지 않고, 밝은 마음,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장애 인 오토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이 라는 말이 뭡니까? 주님의 말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는 겁 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 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라. 제가 오래 전 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거짓말하면 못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게 아 니라
"성경을 가져와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르쳐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 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으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그저 주의 교 양으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미국 오클 라호마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알지 않습니까?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두 젊은 사람. 고등학생이 총을 그대로 마구 쐈어요. 이 엄청난 사 건이 있은 후에 미국은 벌컥 뒤집혔 는데,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도대 체 총기가 문제다. 총기를 쓰지 않 도록 법을 통과해야겠다. 두번째, 성경을 다시 가르쳐야겠다. 종교는 자유인데, 왜 기독교 성경만 강요하 느냐?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오랫동 안, 수백년동안 가르쳐 온 성경을, 그 과목을 폐지해버렸어요. 이거 폐지한 다음에 이 모양 됐다. 다시 성경을 가르치고, 이걸 입법화해야 겠다고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경 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요새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이 제게 CD 한 편을 보내 왔어요.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 아 무 곡명도 없고,
"Music Clinic"
딱 고 몇 자만 써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거죠. 음 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겁니다. 그 런데 그 음악은 제가 늘 듣던 아주 쉬운 클래식 음악들이에요. 쇼팽, 모차르트,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론은 이렇습니다. 요새 락이라는 음악이 있고, 랩이라는 음악이 있고, 그런 그 리듬 자체가 발광적인 것들 이 많습니다. 이제 보세요. 동물에 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계란도 잘 낳고, 새끼도 잘 나요. 우유도 잘 나오고. 이 동물에게도 락을 들 려주면은 발광을 해요. 낙태를 해 요. 아시겠어요? 요새는 또 식물 에게다 합니다. 식물도 여기다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은 식물이 40% 더 잘 자란답니다. 거기다가 또 락을 틀어주니까요. 전부 고개 를 돌리더랍니다. 이 미친 리듬이 이 발광적인 리듬이 그 다 듣고 나 가서 뛰쳐나가서 범죄화가 되는 거 예요. 심성이 고요해져야지. 음악 도 조용한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잘못되는 사람은 없어요. 불 량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음악을 좋 아하는 거예요. 요새 더구나 이렇 게 워크맨이라는 걸 끼고 돌아가는 데요. 이거 많이 끼고 돌아가는 아 이들이 I. Q가 40% 떨어진답니다. 미쳐요. 발광하는 거예요. 공부가 안 되요. 보세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듣는 대로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들어서 담아야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 죠. 또,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그랬습니다. 주의 훈계. 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준 그 훈 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 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줘야 됩 니다. 가치관을 보여줘야 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 여주고, 진실로 사는 본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 을 보여줘야지요. 섬기면서 기뻐하 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 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자녀들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을 먹고삽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 천국 잔치 마18 : 1-10 석원태목사
2002-01-29 11:09:47   read : 379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 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 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 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 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 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 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 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 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 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 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 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 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 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 같 습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신기 원이시던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 고 저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하 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 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은 어른들의 교만(방자함)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들의 겸손을 지목 하고 있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예수) 이름으로 이 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 (예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 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지 말라는 말은 거침돌이 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 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 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보 잘것없는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 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 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 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 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 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 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 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 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 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 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 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 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 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 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 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교만한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 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의 심성의 특징인 겸손과 신뢰성과 순진성과 단순성과 봉사와 희생성과 이타적 애정성을 들어 천국 시민의 영적 자 질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 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 들은 역사의 한가운데 자기의 업적 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 합니다. 아니면 역사의 한가운데 영 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 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 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 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 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 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 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 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감사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이른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 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이를 하나 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 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국에는 이른바 어른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 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Ⅲ.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지금 우리는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주일마다 어린이 천국 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 배와는 별도로 주일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가 이곳에 새 성전을 시작 하고 금요 밤마다 모이는 기도회에 서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입니 다. 우리는 3년이 가깝도록 새 성전 신축 완공과 입당 그리고 어린이 천 국 잔치를 위하여 기도해 오고 있습 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교회 교육국으로 하여금 어린이 천국 잔 치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연구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응답하셨습 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역사적인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 고 지난 5월 24일 주일 오후부터 마침내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를 열 었습니다. 첫날부터 잔치는 대성황 입니다.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중에 진행 되는 주요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어 린이 찬양과 율동, 동화, 성경 이야 기, 미니 올림픽, 성화(영화) 상영, 기독교 명사들을 초대하여 각종 묘 기(진기 명기) 등을 시범적으로 보 여 주는 일(축구, 태권도, 연극… 등)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주일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이 천국 잔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성전 한가운데 어린이들 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들 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 다. 이 천국 어린이 잔치를 통하여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어린이 전도는,
① 어른 전도보다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저들에게 있는 겸손과 순진과 신뢰심과 순종심이 어른들보 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 수 복음의 진리를 흡수하는데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② 가정 전도의 첩경입니다.
닫혀 버린 가정의 문을 두드리 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 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어린이 새소 식반과 어린이 선교원이 한몫을 하 고 있습니다.
③ 교회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받은 축복의 묵 시(vision)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전도입니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그 앞이 캄캄합니다.
④ 어린이 전도는 미래지향적입니 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입니다. 21세 기를 대비하는 복음 운동의 모든 자원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있 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가 저들에게 바른 신관, 바른 인생관, 바른 구원관, 바른 존재적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내일의 위대한 구령 운동의 목회자, 선교사, 신학 교수, 사회 봉사자, 정치가, 경제가, 교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세계는 무한한 미래의 잠재력이요 폭발력입 니다. 아니 위대한 축복의 미래적 물결입니다. 아니 그 어린이 자체 가 천국 운동이요 천국의 전령사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 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폭풍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들은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 아이들은 역사 가운데 지진이요 폭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 를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 입당과 함께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 스마일즈(Samuel Smiles) 는 '유년기는 거기에 비친 영상 (image)을 내세에 반사해 주는 거 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셀렉트(Selected)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당신이 무엇을 쓰든지 물로 지울 수 없다. 모래는 파도가 사나울 때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노력은 썩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없어지고 어떤 노래들은 잊혀질 것 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이 기록들…, 세월도 그 것은 변경하지 못하리라. 어린이의 가슴 속에 무엇을 써넣든지 기쁨의 이야기든 근심의 이야기든, 하늘이 축복했든지 땅이 모독했든지, 변함 없이 거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 리 경향 4반세기 25년은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을지 로에서, 동자동에서, 여의도에서의 교회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 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교회의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 앙의 고백과 감사의 서원이 경향의 자원과 미래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고 저들 이야말로 경향이 받은 천국 운동의 기수들이 되게 합시다. 이 위대한 어린이 천국 잔치에 수종드는 모든 경향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 니다.







기독교와 어린이 마18장 1-10절 김홍도목사
2002-01-29 11:08:47   read : 404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 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 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 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 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 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 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 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 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 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 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 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 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 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 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 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 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 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 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 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 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 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 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 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 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 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 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 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 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 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 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 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 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 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 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 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 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 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 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 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 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 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 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 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 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 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 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 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 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 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 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 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 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 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 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 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 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 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 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 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 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 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 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 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 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 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 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 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 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 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 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 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 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 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 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 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 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 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 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 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 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 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 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 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 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 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 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 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 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 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 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 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 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 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 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 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 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 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 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 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 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 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 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 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 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 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 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 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 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 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 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 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 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 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 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 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 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 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 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 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 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 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 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 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
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 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 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 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 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 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 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 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 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 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 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 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 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 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 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 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 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 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 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 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 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 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 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 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 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 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 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 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 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 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 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 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 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 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 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 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 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 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 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 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 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 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 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 어야 합니다.




부모의 과제/신6:5-9
2001-12-08 23:31:50   read : 244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침이 되면 밖에 나갔다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호텔이 있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집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집이 최고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가서 잠을 자는 것에 더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가게 되면 안정감이 없고, 불편하고, 부자유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내 집처럼 자유하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쓸쓸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인들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 기르는 과정이 어렵고 고되지만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정의 행복의 요소이고, 기쁨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정에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불량하고, 탈선을 하고, 사고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오히려 부모들에게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5)는 것이고, 둘째로는 "내가 명한 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7)는 것이고, 세 번째는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발라 기호를 삼으라"(8)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녀들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우선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로 하여금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 합니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그 어느 것에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애처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보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탈선하고, 반항하고, 제를 일으켜서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부모들의 근심이고 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적인 요소입니다. 이 타락된 정신은 피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벽이나, 방랑성 그리고 주벽, 불성실, 유흥성의 기질은 유전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의 핏속에 다 들어 있는 유전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환경에 있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정신의 변혁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청년은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곧고 고루 균형된 인격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결손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우선 정신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불화하고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는 정서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성을 잃고 밖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탈선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나 삼손이나 세례요한 같은 경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인간은 태아 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어느 임상학자가 이 경우를 실험했습니다. 산모의 태 중에 전깃줄을 넣어 불을 키니까 태 속의 어린아이는 눈을 가리더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빛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켜서고 어둡던 곳이 밝아지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고, 문을 쾅하고 닫으니까 이 아이는 태 중에서도 놀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니까 그 때서야 안정하고 조용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 주정을 피우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환경에서 잉태되고, 자라난 아이들은 늘 긴장 속에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난폭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라야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실내에 있으면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 크게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어린 태아는 태 중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적이고 평온을 유지할 때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심성을 유지하면서 자라겠지만 불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는 쉽게 불안정한 아이로 형성될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니까 늘 싸우고, 화를 내고, 흥분을 하고, 욕을 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서 잉태되고, 자라고, 성장한 아이의 심성이나 성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이 쉽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자녀양육의 필수적인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 육성을 위해서" 입니다.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사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중에는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학교의 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한 역할입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서 신앙인으로 만들어지지도 하고, 비신앙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수가 있어도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비신앙 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초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기초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3빌딩을 짓는데 기초공사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초가 그만큼 단단하고 잘 되어 있으니까 그 기초 위에 63층을 올려도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는 것입니다. 모태 신앙 자들이 뜨겁거나 신앙의 활발성은 적으나 끈질기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기초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동안 세계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든든함을 보여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대처했고 개입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처럼 실패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의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닙니다. 완전히 한물간 나라입니다. 쇠퇴했습니다.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공립학교들이 수업시작 전에 기도하던 제도를 폐지했던 그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미국의 모든 학교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던 힘이었고, 구심점이었고, 미국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먼저 그것부터 폐지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구심점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이 얻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월남전의 패배입니다. 그 때 부터 미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신뢰도를 잃게 되었고,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의지도 모호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이제는 완전히 종이 호랑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미국의 몰골을 보십시요.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 북한으로부터 질질 끌려 다니는 저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됩니다. 국가든 사회든 그곳이 가정이든지 이같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힘이 약화되고 구심점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 그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집집마다 가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훈의 목적은 순전히 교훈성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그 가정의 뜻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훈을 중심으로 해서 온 가족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보면 좋은 정신이 들어 있는 가훈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에 기록하여 가르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훈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가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다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도 먹여서 잘 키워야 하지만 정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영의 양식도 충분히 먹여서 골고루 섭취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부여된 역할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서 40명의 어린아이들이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엡6:4
2001-12-08 23:30:25   read : 225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참 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 한다면 세 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 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 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 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 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 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 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 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 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 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 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 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 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 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 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 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사랑한 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 고 사랑은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 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 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 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 그것 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 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 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 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 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 릅니다.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 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 합니다. 그와 같은 훈련과 공부를 통하여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운 전을 합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그와 같은 공부와 훈련을 받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 면허가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자동차 를 몰래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경우를 뉴스를 통하여 보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훈련과 공부없이 자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일으키는 큰 사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 의 사고를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서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도 많 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 부와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 자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 있어서 무면허자들입니다. 그래 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 을 이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 는 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 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 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 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 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 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 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 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 어서 무지 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 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부 모들이 자녀들에 대하여 무례합니 다. 자녀들의 대한 부모의 무례함이 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고 불편하게 들리는 부모님들이 혹 여 러분들중에 있으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보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 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 랑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 나가 바로 이 무례함입니다. 사랑하 는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무례함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해도 된다고 잘못 생 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 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리기는 해 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 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보지만 잠언 13:24에 보면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필요하다면 자녀들에게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 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 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 을 함부로 무시하고 저들에게 무례 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 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 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 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줄 아십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 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 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격적 으로 대우하고 저들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준다면 저들은 부모 의 꾸짖음과 초달을 인정하고 받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과 초달은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와 아 이들을 바르게 자라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 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항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부모들 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 항을 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 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 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 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 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의는 아이들이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줄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 이 먼저 아이들에 대하여 예의를 갖 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 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 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은 말은 힘 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 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 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 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 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큰 쇼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 '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직하면 됩니 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 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없 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이 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들의 눈에 부모는 위선자로 보이 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리고 자랑스러워야 할 부 모가 자녀들의 눈에 위선자로 보이 게 될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엄 청난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모의 자 녀에 대한 교육은 끝입니다. 더 이 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 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 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 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 패와 어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세상에 자녀를 바르게 양육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 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 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 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 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 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 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스승 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 자녀들이 복이 있습 니다. 부모에게서 인생에 있어서 중 요한 것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아 이들이 복이 있는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습니 다.
저는 지금 제 실력으로 아 이들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 그 밖의 세상적인 지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학교 에 보내고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맡 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삶과 신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제가 가르 쳐야만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 되고 싶습니 다.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으로 좋은 동안 교회의 목사 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 분들이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목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 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 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 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자녀 교육 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 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 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 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 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 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 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 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 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 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 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 신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 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2001-12-08 23:29:25   read : 219

현대인의 가장 큰 죄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물 질문명에 취해서 편리한 것들만 찾 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깊 이 공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 어는 요새는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 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만 은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공부하며 책 을 읽는 그러한 일들이 점점 멀어지 는 것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합 니다.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 를 묻는,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이올시다. 둘째는 실천하 지 않는 겁니다. 아는 대로 행하질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는 말로, 인 간은 약하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가 지고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 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많고, 비 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행하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비참할 정도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겁 니다. 그래서 의지 박약, 그것이 바 로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세번째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가 르치지 않을 뿐더러 자녀에게까지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어느 제 아는 친구 목사님이 또 다른 일본 목사님과 이야기한 얘 기를 제게 옮겨 주었습니다. 그 일 본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는 데 자녀가 하나같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적 으로 삽니다.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가만히 보니깐 자녀들에 대 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목사님은 그 자녀들이 이렇 게 교회에 안나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요? 종교는 자유인데요. 애들에게 왜 내가 예 수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르쳐야 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악으로 키웁니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 런히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게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것 또 진 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 도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이 만큼, 세계적으로 볼 땐 아주 잘 삽니다. 특별히 IMF라 고 하는 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만큼 잘 견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하지만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저것을 잘 견딜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땅도 좁고, 사람은 많고, 자연 자본 도 없지만은 한국사람들 자녀들 공 부시키는데는 극성입니다. 이것이 밑천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린 6·25를 통해서 이 엄청난 희생과 큰 사건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만은 정리해보면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어요. 첫째가 교육이 먼저다. 그 동안에는 양반이니 귀 족이니 뭐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 어서 자자손손이 땅을 물려주고 살 면 이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돈, 땅 이것만 생각했습니다만은 전쟁을 치 르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땅문서 소용없어요. 지식이요.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배웠습 니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가르치 고, 한 마리밖에 없는 소도 팔아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이 한 국사람의 교육열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 해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있는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6·25를 통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온 세 계에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나아졌 습니다만은 50년 전만 해도 공산주 의가 세계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했 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여기 서 공산주의의 정체가 노출이 됩니 다. 그리고 온 세계에 증거하게 됐 습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말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한 국은 틀림없이 월남이나 캄보디아같 이 되었을 거라구. 완전 공산화 되 가지고 지금 얼마나 비참해 집니까? 캄보디아에서요 킬링필드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곳에서 150만을 죽였어요. 사람 죽이기를 뭐 거침 없이 해요.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보면서 이 남의 얘기가 아니요. 우 리가 일찍이 6·25전쟁을 만나지 않 았더라면 이래 될 뻔했다 하는 겁니 다. 정신이 아주 아찔합니다. 공산 주의를 배우게 됐어요. 또 세번째 는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로 신앙의 색으로 드러났어요. 6·25를 통해 서 교회가 부흥되고 영적 세계의 소 중함을 알아서 철저한 종교성이 높 은 그러한 민족으로 발전하게 됩니 다. 자 이제 보세요. 결국은 이만 큼 우리가 하나님께서 6·25를 통해 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양육 하라"하고 말합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는 먹이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 니다. 자라게 하시는 일, 생명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뿐이십니 다. 그런데 그가 자라게 하실 텐데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먹이 라"
그랬어요. 먹일 것을 먹여요.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4장에서 말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지속 되는 것이올시다. 누가복음 2장 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에 아주 교육철 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 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하는 말입니다. 키가 자 라며 '체육', 지혜가 자라며 '지육'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 더라 '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더라 '도덕', 이런 네 가지 측면으 로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 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 속 영향을 공급해야 됩니다. 균형 있는 영향,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불균형이 되고 실조가 되어서 잘못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분위기나 이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더 구나 우리 북한에 가 보면은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 들이 비참한지요. 저희가 이 자리 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약 삼천 명의 고아를 저희 소망교회에서 계 속 식량을 오래 전부터 대고 있습니 다. 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 을 보면은 영양실조가,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울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거, 앞으로 커서 사람될는지 모르겠 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나 끔 찍한 지 거기 지도자들도
"목사님, 그 애들 만나지 마세요. 그 애들 비참한 거 보고나면 목사님 아마 한 달 동안은 식사를 못 할겁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비참합니다. 먹지 못한다는 것, 먹 지 못해서 비틀어져 가는 영양실조, 얼마나 비참한 지 모릅니다. 자 그 런고로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키워야 겠지요. 잘 키워서 잘 먹여야 됩니 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 지요. 더구나 입맛은 부모가 만드 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 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 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 야 합니다. 먹이도록, 먹도록, 그래 서 충분한 영향을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 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고, 보아야 할 것은 보고, 경험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그래야 지능 이 발달합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 가 있어요. 수다스러운 어머니를 가진 아이의 I.Q.가 높다고. 말없는 것보다 나은가 보죠. 수다스러운 어머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생각이 발전한다고 그래요. 멍청한 어머니 는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양육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경험하 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내 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 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자, 낳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 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한 말씀 이지만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노엽게 하지 마라."
이게 뭡 니까? 화를 내게 만들지 말아요.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분위기에 맞추지 못했 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못한 거 예요.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에 할, 들어야 할 말이 따로 있어요. 저들 도 피곤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무 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 다. 생각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조 로 분노를 일으킨단 말이요. 그래 서 교육이 빗나갑니다. 마음이 빗 나갑니다. 또한 이해의 수준이 있 고 경험의 정도가 있습니다. 소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 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은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요샛말로 눈 높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 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이보 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 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을 알면서부터 비로 소 교육은 교육되는 것이올시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렸을 때는 나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 조금 있다가 동생이 태 어나니까 사랑이 이동합니다. 그 쪽으로 옮겨가요. 이 아이는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신자가 돼버려요. 아버지가 미워 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제 무 슨 교육이 통하겠습니까? 화가 났 거든요 지금. 사랑을 빼앗겼으니까 요. 이 배신자들 그들의 원수 같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가 없 죠. 여기서 한번 삐뚤어져서 일생 가는 거예요. 참으로 무서운 겁니 다. 심지어는 어떤 책에는 그런 말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젖 땔 때가 문제라구요. 젖 땔 때. 분명히 어 머니에게 젖이 있는데 저걸 먹지 말 라는 거예요. 이건 보통 고민이 아 니요. 이건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 는 거예요.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예요. 그런데 알 바 아니오. 여러분, 화내게 하지 마세 요.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안 통한다는 얘깁 니다. 자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고 로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주고 이것이 진정한 사 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새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오체불만족' 이라는 책입니다. '오체불만족'.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 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팔 다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팔이라는 것이 도대체 10cm밖에 안됩니다요. 이런 고구마 같은, 몽 땅한 것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의사가 받아놓고, 의사가 깜짝 놀란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머니 가 이걸 보면 아마 기절할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한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 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 이 첫 상봉을 합니다. 기가 막힌 장면을 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하십니까? 이 어머니는 분명 히 기절할 거예요. 그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 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합 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그의 간증을 들 어보세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 는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 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있 으니까, 편안하게 키워줬으니까.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 가 없다.' 그것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 았다는 겁니다. 전혀. 그리고 그에 게 모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 어는 이 보세요. 야구 선수가 되고, 축구를 하고요. 수영도 하고, 컴퓨 터를 하고, 붓글씨를 쓰고……. 못 하는 게 없어요. 모든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자랐어요. 이제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청년은 이렇 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이다."
너무너무 엄청 난 얘기 아닙니까?
"남과 좀 다를 뿐이지, 개성이 강할 뿐이지 별거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고 있구요. 또,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은 여기 있습니다.
"마음을 열 고 나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던 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존재에 대 해서 충만하고 마음을 열고 보니까 모두가 친구더라는 거예요.
"친구 가 많다."
얼마나 귀한 얘기입니 까? 그리고 마음을 열라고 외칩니 다. 또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 달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할 수 없 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특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외 칩니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더욱이 그 림에도 보면은 그 얼굴이 얼마나 밝 은지요.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다 니는데 휠체어를 스위치를 눌러서 이렇게 높여요. 이렇게. 높여.
"왜 높이느냐?"
하니깐 자기하고 걸 어가는 사람하고 눈 높이를 맞추려 고. 얼마나 멋진 얘기이에요. 눈 높이를 맞춰가며, 그는 명랑하게, 그 밝은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밝게 키울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 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 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이 어머니가 조금 도 낙심하지 않고, 밝은 마음,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장애 인 오토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이 라는 말이 뭡니까? 주님의 말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는 겁 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 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라. 제가 오래 전 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거짓말하면 못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게 아 니라
"성경을 가져와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르쳐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 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으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그저 주의 교 양으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미국 오클 라호마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알지 않습니까?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두 젊은 사람. 고등학생이 총을 그대로 마구 쐈어요. 이 엄청난 사 건이 있은 후에 미국은 벌컥 뒤집혔 는데,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도대 체 총기가 문제다. 총기를 쓰지 않 도록 법을 통과해야겠다. 두번째, 성경을 다시 가르쳐야겠다. 종교는 자유인데, 왜 기독교 성경만 강요하 느냐?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오랫동 안, 수백년동안 가르쳐 온 성경을, 그 과목을 폐지해버렸어요. 이거 폐지한 다음에 이 모양 됐다. 다시 성경을 가르치고, 이걸 입법화해야 겠다고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경 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요새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이 제게 CD 한 편을 보내 왔어요.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 아 무 곡명도 없고,
"Music Clinic"
딱 고 몇 자만 써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거죠. 음 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겁니다. 그 런데 그 음악은 제가 늘 듣던 아주 쉬운 클래식 음악들이에요. 쇼팽, 모차르트,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론은 이렇습니다. 요새 락이라는 음악이 있고, 랩이라는 음악이 있고, 그런 그 리듬 자체가 발광적인 것들 이 많습니다. 이제 보세요. 동물에 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계란도 잘 낳고, 새끼도 잘 나요. 우유도 잘 나오고. 이 동물에게도 락을 들 려주면은 발광을 해요. 낙태를 해 요. 아시겠어요? 요새는 또 식물 에게다 합니다. 식물도 여기다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은 식물이 40% 더 잘 자란답니다. 거기다가 또 락을 틀어주니까요. 전부 고개 를 돌리더랍니다. 이 미친 리듬이 이 발광적인 리듬이 그 다 듣고 나 가서 뛰쳐나가서 범죄화가 되는 거 예요. 심성이 고요해져야지. 음악 도 조용한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잘못되는 사람은 없어요. 불 량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음악을 좋 아하는 거예요. 요새 더구나 이렇 게 워크맨이라는 걸 끼고 돌아가는 데요. 이거 많이 끼고 돌아가는 아 이들이 I. Q가 40% 떨어진답니다. 미쳐요. 발광하는 거예요. 공부가 안 되요. 보세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듣는 대로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들어서 담아야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 죠. 또,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그랬습니다. 주의 훈계. 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준 그 훈 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 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줘야 됩 니다. 가치관을 보여줘야 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 여주고, 진실로 사는 본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 을 보여줘야지요. 섬기면서 기뻐하 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 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자녀들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을 먹고삽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 천국 잔치/마18:1-10
2001-12-08 23:28:36   read : 249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 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 같 습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신기 원이시던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 고 저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하 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 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은 어른들의 교만(방자함)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들의 겸손을 지목 하고 있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예수) 이름으로 이 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 (예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 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지 말라는 말은 거침돌이 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 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 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보 잘것없는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 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 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 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 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 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 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 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 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 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 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 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 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 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 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 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교만한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 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의 심성의 특징인 겸손과 신뢰성과 순진성과 단순성과 봉사와 희생성과 이타적 애정성을 들어 천국 시민의 영적 자 질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 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 들은 역사의 한가운데 자기의 업적 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 합니다. 아니면 역사의 한가운데 영 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 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 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 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 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 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 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 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감사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이른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 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이를 하나 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 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국에는 이른바 어른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 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Ⅲ.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지금 우리는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주일마다 어린이 천국 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 배와는 별도로 주일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가 이곳에 새 성전을 시작 하고 금요 밤마다 모이는 기도회에 서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입니 다. 우리는 3년이 가깝도록 새 성전 신축 완공과 입당 그리고 어린이 천 국 잔치를 위하여 기도해 오고 있습 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교회 교육국으로 하여금 어린이 천국 잔 치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연구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응답하셨습 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역사적인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 고 지난 5월 24일 주일 오후부터 마침내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를 열 었습니다. 첫날부터 잔치는 대성황 입니다.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중에 진행 되는 주요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어 린이 찬양과 율동, 동화, 성경 이야 기, 미니 올림픽, 성화(영화) 상영, 기독교 명사들을 초대하여 각종 묘 기(진기 명기) 등을 시범적으로 보 여 주는 일(축구, 태권도, 연극… 등)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주일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이 천국 잔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성전 한가운데 어린이들 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들 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 다. 이 천국 어린이 잔치를 통하여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어린이 전도는,
① 어른 전도보다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저들에게 있는 겸손과 순진과 신뢰심과 순종심이 어른들보 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 수 복음의 진리를 흡수하는데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② 가정 전도의 첩경입니다.
닫혀 버린 가정의 문을 두드리 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 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어린이 새소 식반과 어린이 선교원이 한몫을 하 고 있습니다.
③ 교회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받은 축복의 묵 시(vision)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전도입니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그 앞이 캄캄합니다.
④ 어린이 전도는 미래지향적입니 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입니다. 21세 기를 대비하는 복음 운동의 모든 자원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있 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가 저들에게 바른 신관, 바른 인생관, 바른 구원관, 바른 존재적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내일의 위대한 구령 운동의 목회자, 선교사, 신학 교수, 사회 봉사자, 정치가, 경제가, 교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세계는 무한한 미래의 잠재력이요 폭발력입 니다. 아니 위대한 축복의 미래적 물결입니다. 아니 그 어린이 자체 가 천국 운동이요 천국의 전령사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 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폭풍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들은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 아이들은 역사 가운데 지진이요 폭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 를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 입당과 함께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 스마일즈(Samuel Smiles) 는 '유년기는 거기에 비친 영상 (image)을 내세에 반사해 주는 거 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셀렉트(Selected)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당신이 무엇을 쓰든지 물로 지울 수 없다. 모래는 파도가 사나울 때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노력은 썩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없어지고 어떤 노래들은 잊혀질 것 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이 기록들…, 세월도 그 것은 변경하지 못하리라. 어린이의 가슴 속에 무엇을 써넣든지 기쁨의 이야기든 근심의 이야기든, 하늘이 축복했든지 땅이 모독했든지, 변함 없이 거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 리 경향 4반세기 25년은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을지 로에서, 동자동에서, 여의도에서의 교회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 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교회의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 앙의 고백과 감사의 서원이 경향의 자원과 미래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고 저들 이야말로 경향이 받은 천국 운동의 기수들이 되게 합시다. 이 위대한 어린이 천국 잔치에 수종드는 모든 경향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 니다.


기독교와 어린이/마18:1-10
2001-12-08 23:27:37   read : 241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 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 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 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 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 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 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 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 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 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 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 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 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 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 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 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 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 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 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 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 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 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 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 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 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 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 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 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 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 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 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 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 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 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 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 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 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 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 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 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 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 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 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 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 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 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 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 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 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 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 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 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 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 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 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 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 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 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 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 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 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 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 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 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 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 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 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 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 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 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 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 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 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 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 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 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 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 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 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 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 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 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 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 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 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 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 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 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 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 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 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 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 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 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 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 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 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 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 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 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 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 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 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 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 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 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 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 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 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 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 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 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 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
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 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 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 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 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 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 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 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 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 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 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 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 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 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 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 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 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 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 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 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 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 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 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 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 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 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 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 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 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 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 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 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 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 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 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 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 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 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 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 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 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 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 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 어야 합니다.





한나의 신앙고백을 본받는 성도가 되자!/삼상1:23-28
2001-11-21 23:15:43   read : 317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자녀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고 책임입니다. 따라서 어린이 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자 녀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귀한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이 가지지 못한 영적 지혜가 있었습니다. 자녀는 사람의 힘으로 낳거나 키우는 것이 아니고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귀한 아들 사무엘을 선물로 받았습 니다. 그는 서원한 것도 이루고 그 자녀를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데리고 가서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훌륭한 인물 사무엘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당시의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였으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 해 주는 재판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나라와 그 백성을 책임지는 어려운 사명을 너무도 잘 감당하여 성경에 별과 같이 빛 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로 되어 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봅니다.

그런데 한나는 어떻게 하여 사무엘 같은 이런 귀한 아들을 얻을수 있었습니까? 오늘 그의 자녀 교육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를 깨닫고자 합니다. 들으시고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그렇게 행하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 열심히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젖을 덴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 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 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삼상1:24-25)

한나는 사무엘을 훌륭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그를 하나님께 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깊 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젖을 뗀 후에 남편의 허락을 받고 하나님의 전으로 데려 가서 거기 살게 하고 엘리 제사장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입니까? 너무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아들을 떼어놓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아들이 너무도 어리다는 것입니다. 젖을 뗀 후라고 했으니 아무리 우리가 넉넉히 잡아도 5살 내외였을 것입니다. 그 어린것을 엄마가 남의 집에 떼어놓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귀한 아들을 가슴을 저미며 남에게 맡기고 가는 한나의 모습이 우리 눈에 선 합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무엇 때문에 한나는 이 아픈 일을 자원하여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하나님의 성전에 있어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하나님이 그 앞길을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나처럼 아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맡길 수는 없어도 언제나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 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교회에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는 하루만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고 교회는 시간 나면 보내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예배를 드리는 일에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울고 보채 고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열심을 내지 못하거나 또는 우리 자녀들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전에 주일학교를 지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들이 개구쟁이인지 설교를 하면서도 정신이 없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헌금기도를 할 때는 눈감고 있으면 언제와서 돈을 꺼내 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헌금 바구니를 손으로 꼭 붙들고 입구를 손으로 막고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썽쟁이들이 자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전에 데리고 오면 그들의 머리속에 예배의 방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그들의 마음속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에 들어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장성했건 어리건 간에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전으로 이끌어 오시기 바랍니 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는 자녀를 만들어 우리 자 녀들이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사무엘 같은 귀한 인물들로 만들어 지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2.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십시다. 한나는 사무엘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얻기 위하여 밤을 새우고 서원하고 통곡하며 기도해서 그 모습이 너무도 지나쳐 엘리 제사장은 술 먹은 사람인줄 알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책망할 만큼 기도한 사람이었습니 다. 그렇게 기도해서 아들을 잉태하였으니 이제 가진 뱃속의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게으 르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기도를 최선을 다하여 하였 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낳고 또한 기도를 쉬지 아니하였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 아들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에 와서 자신을 소개 할 때에 에브라임에 사는 엘가나의 아내 한나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기도하던 여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 여 기도한 바를 허락 하신지라 (삼상1:26-27)"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가정에 첫아기 예찬이를 낳고 나니 할머니가 녹용을 넣은 보약을 지어와서 아이에게 먹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먹어야 감기도 이기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값을 물어보니 입을 벌릴 정도의 비싼 것인데 자식을 위해서 서슴없이 지었습니다.

육신의 강건을 위하여 녹용같은 보약을 먹여 키워야 한다면 자녀들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가 바로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모니카는 성자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처음부터 성자는 아니었습니다. 성자가 아니라 탕자였습니다. 도박과 술과 여색을 탐하는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권면 해도 책 망해도 듣지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틀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아들을 위하여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 40년을 변함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자신의 가는 길이 허무하고 멸망의 길임 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교계 지도자인 암브로시우스 감독에 게 가서 그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과 그의 어머니의 기도를 본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깨닫고 "기도의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기도는 잊어버리고 먹이는 것, 입히는 것, 공부시키는 것 만 관심 가지시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돈이 들 필요도 없습니다. 때와 장소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버스를 타고서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간구 할 수 있는 우리성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도와 주셔야 그들의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형통한 축복을 얻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도와 주실 때에 어디를 가던지 파는 곳마다 샘이 쏟아지는 축복을 얻었습 니다. 이 귀한 어린이 주일 아침에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에 힘쓰시는 성도 여러 분들이 되셔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파는 샘마다 터져 나오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한나는 어린 아들을 엘리에게 맡기면서 사무엘에게 명했습니다. 이제 너는 이곳에서 엘리 제사장을 아버지로 모시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하였을 때에 24절에 보면 아이가 어리더라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린것이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고 보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무엘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 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1:28)"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제는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아이 입니다. 울어도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울기는커녕 어머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절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무엘은 특별한 어린이레서, 천재여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어머니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섬기는 자세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하나님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 사무엘 은 어머니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무성교회 성도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로 보여야 합니다.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하고 귀중히 여기며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몸 에 배여서 설사 나쁜 환경 속에 처하여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훌륭한 신앙교육으로 사무엘을 만들어 냈습니다. 과실의 좋고 나쁨은 과원지기의 솜씨입니다. 자녀들의 앞길은 그 부모의 신앙교육의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모두 우리의 자녀들을 열심히 하나님께 인도하고 이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며 신앙 의 본을 보여서 훌륭한 하나님의 인물들을 배출하는 복된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자녀교육의 지침/시78:1-8
2001-11-21 23:14:19   read : 481

오늘 시편 78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녀 교육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① 전하라! ② 알게 하라! ③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알게 하고, 무엇을 행하게 하라는 것입니까? 본문에 보면, 역사를 전 하고, 율법을 알게 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승의 주 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 2세들의 교육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 습니다.

유대인 랍비에게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어린이를 데리고 와 물었습니다. "이 아이를 몇 살부터 가르치면 좋을까요?" "그 아이가 몇 살입니까?" "두살입니다" "그렇다면 벌써 2년이 늦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교육은 몇 살부터란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임신 중에도 태교라는 말까지 등장하여 실제로 그렇게 태교를 실시하고 있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뱃속에 있는 태 아들이 부모의 핏줄을 통해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부모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런 면에서 우리 한국의 부모님들의 교육관은 학교 교육만 교육으로 알고 있는 경우들이 너 무나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교육은 학교에 가야 되는 것인 줄 그렇게 알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글자 공부요, 지식 공부이지만 가정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생 활 교육이란 말입니다. 생활 교육처럼 중요한 교육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세살 버 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찍 생활 교육이 바로 설 때 참된 인생 교육이 이 루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생활 교육에서 단연 으뜸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정 교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3%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 체 대학교수의 30%가 유대인이요, 노벨 수상자의 24%가 유대인 계층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 니라 그들의 가정 교육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대인의 교육 지침은 율법(토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 교육의 지침이 되었기에, <말씀>에 있는 약속 그대로 그 이름이 열방 위에 뛰어나게 하리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교육하는 나라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 실천하며 사 는 민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선진국 대열에 드는 나라들입니다. 유럽의 앞서가는 나 라들이 모두 그런 나라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기독교 문화를 형성 한 나라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 니다.

1. 먼저 자녀들에게 과거의 역사(歷史)를 바로 '전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史蹟) 을 후대에 전하리로다"(4절) 역사는 그 민족의 걸어온 발자취입니다. 그 역사를 바르게 전해 줄 책임이 기성 세대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민족 교육이 잘 된 나라들일수록 역사를 바르게 전하는 나라들입니다. 아무리 발달하고 스 스로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그런 면에서 독일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자기들의 역사를 바르게 후손들에게 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전 저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지가론 언덕에 '야드 바셈 '(Yad Vashem)에 들렀을 때였습니다. 이곳은 유대인의 학살 기념관이 있는 곳이었는데, 길 양쪽에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쥐염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그리고 각 노각 밑에는 국 적과 이름을 써 놓은 팻말이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핍박받고 학살당할 때 그들을 숨겨 주거나 도와준 사람들의 이름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된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 공인 <오스카 쉰들러>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암흑의 역사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전시실은 검정색으로 뒤덮였고, 끌려가는 수많은 유대인들 /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 독일 나치군들 / 그리고 산더미 처럼 쌓인 시체들 / 그리고 안경테들 / 그 참혹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을 느꼈습니다 / 더더욱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굶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어 있는 장 면 / 유대 여성들이 머리를 깎인 채 나체로 독일군에게 끌려가 희롱 당한 후 총에 맞아 죽 는 장면 / 살아 있는 사람을 마취도 않고 살을 찌르고 배를 가르는 장면 / 참으로 처참한 장면들을 보면서 저들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과거 일 본 제국주의 밑에서 생체실험을 당하였던 민족이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지하에 세워진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세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아 이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시실은 천장과 사면이 모두 거울로 장식되어 있고 중앙에 는 오직 한 개의 촛불이 타고 있는데, 그 촛불이 어두운 방을 비취면서 반사하여 마치 수 천, 수 만개의 빛으로 비치어 별들이 반짝거리는 우주의 한 가운데 선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음악이 흐르면서 독일 나치군에게 학살당한 150만 명의 어린이들의 이름이 하나 하나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석 위에는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 "라는 글귀가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역사를 바로 전하지 못하면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경고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곳을 민족 학습교육현장으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누구나 한번씩 다 볼 수 있도록 교육정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야드 바셈> 학살 기념관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구로 들어갈 때와는 달리 나올 때는 눈물로 얼룩진 눈동자들을 반짝이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 로 충만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과거사(過去史)를 자녀들에게 바로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역 사 교육을 바로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시편 78편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시편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역사적 시(詩)가 아니라 마 스길(maskil), 즉 '교훈시'라고 합니다. 과거 조상들이 겪은 실패와 아픔을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훈시란 말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역사를 숨기는 일은 범죄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되 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 해도 우리 한국에 대하여 는 아직도 역사를 사실대로 전하지 않는 나라이기에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면 에서 독일은 일본보다는 선진국이란 말입니다. 저들은 깨끗이 인정하였고, 사과하였기 때문 입니다.

한 민족의 번영의 기초는 올바른 역사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단순한 지 식전달로만, 교육이 단순하게 실용주의적 교육으로만 그친다면 민족혼(民族魂)을 말살시키는 것 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나라의 과거사를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전하는 책 임이 우리들 신앙인의 가정에서부터 일나야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바로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法道)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5절) '알게 하라'는 것은 교육하라는 말입니다. 즉이것은 민족정신의 교육을 의미합니다. '조상 야곱에게 세우신 법도를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조상 야곱에게 세우신 법도가 무엇입니 까? 바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자녀 교육의 텍스트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 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들에게 바로 알게 하라는 것입니까? 거기에서부터 모든 축복의 계 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에서 번영을 기대하겠는 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올바른 민족 교육의 교육 지침서란 말입니다. 해방 후 오늘까지 우리 는 많은 시행 착오들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민족의 아쉬운 점은 민족 교육 의 결여입니다. 올바른 교육의 지침이 서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교육 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두고,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양성에다 둔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의 자손들에게 그것을 바르게 교육하고 있느냐? 입니 다. 모두가 인격보다는 기능위주로, 점수 따기 교육으로 그리고 고소득의 직장에서 자기 하나만,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쓰고 누리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그렇게 알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교육이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바르게 알게 하는데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학교의 중요성이 그래서 더 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학교의 교육은 민주 시민의 양성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에 예비 된 인물'을 양성함에 있습니다. 다시 말 하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인물을 양성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기성세대들의 시행착오를 바르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 리가 해방을 받고도 그것을 바르게 교육시키지 못했습니다. 6.25의 비참한 공산당의 동족상 쟁의 교훈을 아직도 바르게 교육하지 못한 채 과거사를 망각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우리들의 책임은 중차대합니다.

3. 끝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 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7-8) ① 역사를 바로 전해주고,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교육하여, ③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 켜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전해주고, 바로 교육하여,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 도록 하게 하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즉,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도록 하기 위하여 계명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래서 진정한 교육은 신앙교육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부패한 물질만능의 세대에서부터 나와 서 그 정신이 하나님께 향하는 신앙 교육으로 바뀔 때, 민족의 장래와 자녀 교육의 성패는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젊은이들의 건전 한 꿈들이 있는가 생각해 볼 때 너무나 물질 만능 주의에 일찍 물들어 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코스닥이니 중권이니 하면서 하루 밤사이에 20대, 30대 초반에서 수십 억대를 벌었 다니, 수백 억대를 벌었다는 소문이 성하더니 요즘은 또 하루 사 이에 증권업계 바람이 빠 져 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쉽게 돈 버는 법을 배워 주지 않아야 하겠는데.... 하는 그런 생 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바르게 행하는 것을 더욱 중 요시 해 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겠습니다. 연령과 수입의 상한선을 두어서라도 하나님의 정의로움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공권력을 세워 나가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물질의 유산보다 신앙의 유산이 귀한 것임을 새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의 달에 우리 모두 깊이 깊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부모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앞장서 행 위로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유산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① 바로 전하고, ② 바로 알게 하고, ③ 바로 행하게 하라는 오늘의 이 말씀을 바로 실천하여 하나님의 사랑 받는 가정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마19:13-15,엡6:4-
2001-11-21 23:13:21   read : 432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국민의 특유한 국민성(國民性)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을 말할 때는 신사의 나라라고 하고, 독일은 근면(勤勉)과 검소(儉素)한 나라 라고 하고, 미국을 말할 때는 실용주의(實用主義)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방예의지국(禮儀之國)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나라들마다 그 나라의 국민의 특성을 말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시민의 성품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됩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가리켜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수(數)에 치지를 아니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숫자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제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순례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성인 남자들만이었 고, 출애굽의 숫자도 20세 이상 된 남자들만으로 60만이라고 하였고, 그 밖에 전쟁에 나갈 때도 남자들만의 수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매우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안수하여 기도해 주기를 원하였 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거절하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꾸짖었다'고 하였습니 다. 그것을 본 주님께서는 도리어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백성의 성품 이 어떠해야 함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1.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거짓됨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를 내세워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하였을 때, 어린이들의 무엇 을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어린이들의 순진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래도 말합니다. 어린이들은 꾸미 거나 가식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체면도 모릅니다. 너무나 솔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말하고, 갖고 싶은 그대로를 말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린이들도 이 점이 공통성입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직함에 때가 묻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지만 어른들은 벌써 가식으로 꾸밉니다. 천국 백성의 모델을 어린이로 삼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를 통하여 자신 이 천국 시민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의 말, 행동, 마음씨 하나 하나에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하겠 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유황불에 들어갈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고 하 였습니까? 우상숭배자들과, 짐승의 표에 인 맞은 자들과, 음행자들과 술객들 과,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 불 못에 던짐을 받겠 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짓말 잘하는 자들이 도리어 출세도 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남 보다 앞서 갑니다. 사업도 정직하게 하면 돈을 못 벌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직 하게 섞어서 팔고, 음식물에도 먹어서 안될 것도 넣어서 팔고, 가짜를 진짜로 속여서 팔아야 돈을 빨리 벌어들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것을 도 용하고, 남의 글을 자기의 것으로 인용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 이 빨리 성공합니다. 그래서 지식에도 지적소유권을 보존하려는 국제법이 생겼 습니다. 이번에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이력을 속이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던 같 습니다. 학벌도 속입니다. 고향도 속입니다. 이렇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두 속이는 것들로 차 있습니 다. 심지어 결혼 상대에까지 속이고 결혼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들입니까?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것이 어 른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싫으면 그 자리에서 싸울지언정 남을 모함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미워하면서 속 이려는 어린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천국은 마치 어린이들처럼 정직한 자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고집과 교만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뜻이 없습니다. 벌써 자기 주장이 생기 고 자기 생각이 앞서면 어린아이의 성품은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어린아이> 란 고집을 부리는 어린이가 아닌 순진한 어린이를 의미합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백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백지 같은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누구의 말도 다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하고도 말하고, 토끼하고도 얘 기하고, 새들과 꽃들과도 대화 나눕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누구와도 친해집니 다.

어른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서로의 불신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원수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겸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겸손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은 벌써 겸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린이들은 겸손이란 말 의 의미도 모르면서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참으로 겸손한 자들은 겸손의 의미도 모 르고 살아가는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겸손이란 의미를 알기에 겸손해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겸손을 의식하게 되었기에 그것은 참된 겸손만이 못된다는 의 미입니다. 그런 것은 꾸며진 것 뿐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마태복음 18:3 절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 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을 보면, 제자들 사이에서 이 후에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일 까?' 하는 것으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본 주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고'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 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결단코'라는 말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라는 말은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어른들 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들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겸손은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생각을 접어놓고 주님의 말 씀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이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혈(血)과 육(肉)으로 들어갈 수 없 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만한 마음, 고집스러운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 니다. 그 겸손의 가장 큰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였지만, 스스로 낮추어 사람의 몸으로 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왜 겸손해지지 못한다고 보십니까? 모두 자기(自己)라는 것을 죽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아직도 주님께 명도(名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는 자들이라고 하면서도 자기의 주장과 생각과 자존심을 더 의 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불쾌해집니다. 자존심이란 본래대로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유일한 존재임을 존중히 여기는 의 미에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주님을 대항하는 의미에서 자존심이란 천국 백성의 성품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3. 끝으로 어린이를 통하여 참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고민이 없습니 다. 그래서 어린이입니다. 단지 부모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어린이는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살아갑니다. 엄마 품에만 안기면, 아빠와 함께 하면, 모 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약속을 그대로 믿습니다. 의심 없이 믿기에 부모들은 자녀와의 약속을 지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약속을 해 놓고도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도 그 약속을 못 믿어 공증(公證)을 합니다. 그리고도 각서(覺書)를 쓰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약속을 파기합니다. 결혼식 서약을 할 때 뭐하고 합니까? "병들거나,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어떠 한 경우에서도 이 남자(여자)를 사랑하고 도와주며 위로하면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킬 것을 엄숙히 서약하십니까?" "예!" 라고 대답은 쉽게 잘합니다. 그렇게 서약을 하고도, 얼마 못 가서 쉽게 갈라서는 것이 어른들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약속대로 믿습니다. 아빠가 무엇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 믿음이 너무나 진지하기에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약 속을 꼭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이들 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 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그네 길을 걸어갔습니다. 정처 없이 하나님 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걸어갔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신앙입니까? 우리 는 그런 면에서 너무나 불신의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과 겨루어보 려는 어른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는 불신의 세계요, 염려와 근 심과 고민에 쌓여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동심의 세계는 무지개 같이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들 중에 근심하며 자라는 어린이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그 날 그 날 을 있는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빈 손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은 무엇을 입고 살까?, 무엇을 먹고살까?, 어떤 집에서 살까? 그런 것에 걱정 근심으로 뜬 눈으로 새웁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 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 걱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이 땅은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이 끊이 지 않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면서 사는 나라라면 부(富)의 편중이 가져온 불행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도 보면, 부가 너무나 편중되어 있기에 데모를 하고, 성토 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불의한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통하여 이렇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합니다. 어린이의 믿음 은 무엇인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원수도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란 말을 듣는 리처드 범브랜드 목사가 투옥되었을 때 일입니다. 약 30명의 크리스천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들을 체포하고 취 조하던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무슨 죄를 짓고 들어왔는지 알아보았더니, 어느 날 어 린 소년이 자기를 찾아와 꽃다발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대위님! 오늘은 우리 엄마 생일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였는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엄마에게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엄마는 크리스천이 기 때문에 나에게 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고,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였 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기 때문에 대위님의 부인에게 이 꽃을 전 달해 주실 수 있겠어요?" 대위는 그 꽃다발을 받은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눈물로 회개하고 그 후에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들어오 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믿음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은 때묻지 아니한 어린이의 마음이었기 때문 입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도, 그것은 입으로 말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어른들의 신앙의 거울입니다. 어린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일그러진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순수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지.... 깊이 오늘 어린 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 이 어린아 이들과 같이 되지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이 날이라고 무엇 선물이나 사주는 날로 알아서는 안되겠습니 다. 사실 어린이날은 어른들의 반성의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시 이제부터라도 어린이들을 보면서 ① 거짓 없 는 정직과 ②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③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어린이 주 일을 맞는 진정한 의의일 것입니다. ♣

출처 : 미라클
글쓴이 : 최정남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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