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5. 6. 14:24
출처 카페 > 빛교회 최정남목사 / 미라클
원본 http://cafe.naver.com/jj007789/4249

자녀 양육의 원리/엡6:4-
2001-11-21 23:12:02   read : 361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했습니다. 화사하고 포근한 복스런 계절입니다. 매년 5월이 되면 특별 히 교회에서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두 번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 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자녀 양육의 원리'란 제 목으로 말씀을 상고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는 복된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자 기 방에 들어가서 숨을 죽인 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었습 니다. 부부 사이에는 점점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옆에 있는 가 스밸브를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방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밖의 동정만 살피던 아들은 이상한 느낌에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 을 열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 라 창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버지도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온 가족 이 다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다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재미있는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첫째로, 아버지는 제비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 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머니는 날라리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잘 날았겠습니까?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습니다. 셋째로,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비행기처럼 날아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유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오늘날 가정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풍자적으로 꼬 집어주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귀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자녀 양육의 원리 3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잘 양 육할 것인가?....

1. 자녀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첫째로 깨닫게 되는 것은 자녀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비들아' 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비들'이란 말은 아버지만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머리요,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아비들'이란 말은 '아비와 어미들 아!' 라는 의미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무조건 다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았으면 잘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엊그제도 TV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서 특집으로 '매맞는 어린이'에 대해서 보도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를 학대하고 구타하는 부모들의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 자식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 고 했습니다. 자녀를 무슨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큰 잘못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 니다.

시편 127:3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습니 다. 여기서 기업이라는 말은 숙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잘 양육하라는 '숙제'로 주셨습니다. 또 상급이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는 자식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선물'로, '상급'으로 알고... 최선 을 다하여 돌보는... 그런 부모가 모범된 부모요, 좋은 부모인 것입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두 부모가 아니예요...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못한다고 구박하고, 인격을 무시하고, 손 으로 발로 몽둥이로 마구 때립니다. 자녀가 무슨 스트레스 푸는 대상으로... 아니면 자기의 감정이나 화를 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지... 사정없이 구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이상이 오고, 비정상적인 아이가 되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99년도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등학교 전교에서 1-2등을 하는 우등생이 살인을 경험하고 싶다는 이유로 가정주부를 흉 기로 잔인하게 살인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조사하고 보니까 이 학생은 부모가 이혼한 뒤에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부모 님의 이혼이 이 학생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 결국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학생이 흉기로 여중생의 목을 찔러 죽 게 하였습니다. 경찰이 그 남학생에게 왜 그런 끔찍한 짓을 하였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아무나 찔러 죽이 고 싶어서 그랬어요" 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가정 환경을 조사하여 보니까, 아버지가 너무 폭력을 휘둘러서 어머니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결손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난폭한 성격, 어머니의 구타당함, 이혼... 이런 것 등이 이 학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시편 127:4-5절 말씀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 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했습 니다.

성경은 자식을 가르켜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다고 했습니다. 활을 쓰는 장사는 자신의 화살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 화살을 잘 관리해야 합니 다. 잘 다듬어서 윤을 내고 적당한 양의 깃털로 날개를 달아서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날아가 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모는 화살을 잘 관리하는 장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신앙을 관리 하고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이 있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이제 자녀들이 부모를 보호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녀들이 많으면... 올바르게 자란 자녀들이 많으 면... 사람들이 감히 업신여기지 못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고... 마음이 흐뭇하고 든든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태인 600만 명을 살해하였습니다. 후에 사람들이 히틀러가 왜 그런 사람 이 되었는지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로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보따리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장사하러 집을 나가 주 말이 되어서야 들어오곤 하였는데, 히틀러 옆집의 유태인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만 장사하러 나가면 날마다 이 유태인 아저씨가 와서 자기 어머니와 나쁜 짓 을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린 히틀러는 유태인에 대한 분노를 품게 되었고 그가 장성하여 권력을 잡았을 때 이런 끔찍한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 양육의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유대 교육의 훌륭함을 인정합니다. 유아 교육에 관한 책들 가운 데 대부분 유대인의 자녀 교육법을 소개한 책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의 장소는 가정이었습니다. 교사는 어머니요, 교재는 성경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조금 크 면 회당이라는 곳에 보내어 랍비에게 역시 성경을 배웠습니다. 12살이 되면 성경대로 살 의무를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고, 아버지에게서는 직업 교 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셉에게 목수 일을 배웠고, 베드로는 아버지에게 고기 잡는 기술을 배웠 고, 사도 바울은 아버지에게 천막 만드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른 신앙과 바른 사람으로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신앙의 교사는 부모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 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만... 어릴 적에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서 그에게 젖을 먹이며 " 너는 히브리 사람이다 너의 민족은 지금 애굽 사람들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단다 너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야! 너는 운 좋게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만 네 민족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는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진실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귀한 신앙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너무 공부를 못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한번도 에디슨의 질문을 피해 본 적이 없습니다. 훗날 에디슨은 발명 왕이 되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모든 정신적인 압박은 어머니에게 풀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고 술회하였습니다.

방탕자 어거스틴도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지극한 사랑과 눈물 어린 기도 앞에 무릎을 꿇고 방탕아가 아니라 '성 어거스틴' 으로 변화되고 최대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는 자그만치 19명의 자식을 가졌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양육함으로 모두 다 훌륭한 인물로 키웠습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링컨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매일 매일 성경을 읽어 주었는데, 링컨이 아홉 살 되던 때에 숨을 거두면서 유언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링컨아! 엄마가 죽더라도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하면서 유언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링컨은 어머니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애를 썼고 노예를 해 방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육학에서 "문제의 부모는 있어도 문제의 아이는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양 육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입니다. 가정에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된 우리는 자녀 양육의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부모된 책임을 잘 감당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자녀 양육의 원리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3:21절에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고 말 씀했는데, 이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여기서 '격노한다'는 말은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배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고 격노케 하 는 것은 더 이상 배가 항해할 수 있는 힘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기를 꺾어버 리고 용기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녀를 징계하거나... 자녀를 잘못된 방법으로 징계해서... 자녀의 마음속에 분노를 축적시킨다면 그 자녀는 기가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배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하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화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옳으니 너는 아무 소리말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고, 실수가 있고, 옳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잘못하고, 오해하고, 바르지 않았을 때에는... 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잘못 되었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자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얘, 내가 잘못했구나! 이 애비를... 이 애미를 용서해 다오!" 하고 사과를 해야 합니다.

자기는 잘못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으면서 자녀들 이 조금만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빌어!... 그럴꺼야 안 그럴꺼야!" 하면서 윽박지르지는 않습 니까?.... 이런 일들이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경우를 몇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되어 가는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노엽게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세대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것을 이해하면서 자식들 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르치면 자녀들에게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둘째로는, 지나친 통제.... 과잉보호입니다. 균형 잡힌 훈련이 없이 일방적인 강요를 할 때, 자녀들에게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 반대로 지나친 방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까 돈을 줘서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거나 방임해 버리 는 것은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자녀를 위한 일인 것 같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사 랑하지 않아!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그런 의식이 아이들에게 새겨지면 결국 자녀 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부모의 생활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자꾸 변합니다. 자녀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술을 마시고, 부도덕한 생활을 하지 말라고 하 면서도 자신은 부도덕한 생활을 합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자녀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대한 사랑의 확증이 있어야 합니 다. "우리 엄마 아빠는 무엇보다 나를 제일 사랑해!" 하는 의식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 니다. 이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기분 나쁘게...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는 교육이나 훈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 는 말은 자녀를 분노케 하는 말이나 행동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비합리적인 것을 요구하거나, 부모라는 권위를 남용하는 일 등을 삼가 해야 합니다. 자녀의 관점에서 생각하여주고 이해하여 주어야 하며 항상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부르는 말속에는 "어리신 분"이 라는 존경의 말이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존경할 수는 없겠지만 인정하여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라는 말이라고 생각됩 니다.

3.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셋째로, 자녀 양육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오직' 이라는 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는 먼저 아이들을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방법이나 세상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훌륭하게 양육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 다.

또한 '양육'이라는 말의 원문에 보면 '엨트르포' 라는 말인데, '꽃을 기른다', '애완 동물을 기른다', '몸을 돌본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을 주안에서... 무엇을 기르고 돌보듯이... 세밀하게... 정성을 다하고 주의하 여... 잘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먼저 자녀를 '주 안'에서 키워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지면 무 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모는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얘야, 너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 아야 한다! 나는 네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생활 잘 하기를 바란다." 하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 우선주의, 하나님 제일주의로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저 "공부, 공부, 공부" "대학, 대학, 대학"만을 외칩니다. 행복 이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은 잘하지만 그저 대학만 들어가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산에 가면 산삼이 있고, 바다에 가면 해삼이 있고, 집에 가면 고삼(高 三)이 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 고 3학생, 한 명만 있어도 전 가족이 비상이 걸립니다. "이번 입시에 붙기만 해 라!" 그러면서 온 가족이 합격만 열망합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자녀가 대학에 떨어졌다고 가슴 아파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부모는 있어도... 사랑 하는 자녀의 영혼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 니다.

감수성이 한참 예민한 아이들한테 "야, 교회가 다 뭐냐? 공부해라! 공부!" 그러면... 자식농사 다 망쳐 놓고 난 뒤에, 가슴을 치면서 후회한들... 그때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바른 신앙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기 때문입니다. 내가 제대로 신앙 생 활을 못하면서 어떻게 내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으로 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는데, 교양은 주로 예방적인 차원에 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훈계는 주로 치료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우선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아니하도록 미리 예방적인 차원에서 교양이 필요합니 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예가 있습니다. 한석봉의 얘기입니다. 한석봉은 어린 시절, 글공부를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석봉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글공부를 중도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 니다. 어머니인들 왜 사랑하는 아들이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들 의 장래를 위해서 일부러 엄하게 대합니다. "석봉아! 내가 불을 끌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쓸겠다! 그래서 네가 이기면 오늘 밤 여기서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 길로 돌아가거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불을 껐습니다. 캄캄한 가운데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석봉은 글을 썼 습니다.

나중에 불을 켜보니까,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하게 보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석 봉이가 쓴 글은 삐뚤 삐뚤하며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결국 한석봉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금 글공부를 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왜 어머니의 마음인들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밤새도록 울며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러 나 어머니의 엄격함이 있었기에 한석봉은 당대에 가장 훌륭한 명필로써 이름을 떨치게 되었 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교양'이 필요합니다. 잠언 22: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였고, 시편 127:4절에 보면 젊은 자의 자녀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아서 방향 설정을 잘 하여 주 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4-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되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 할 것이며, 또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또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 믿음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래서 수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통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미간에 붙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정말 말씀대로 세계에서 머리 가 되는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나라에 500만명, 미국에 700만명, 그리고 그밖에 여러 나라에 300만명 등 1500만명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를 다 합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1/4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는 뭐니 뭐니해도 미국이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이 전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가 2000년 이상 나라를 빼앗기고 전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나그네와 같이 살았던 치욕스런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독립을 하여 다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는데, 이는 세계사에 단 한 번 밖 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상이 노벨상인데, 수상자 중에 자그마치 15%에 해당하는 40여명이 유대인 입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 예일, 콜롬비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 30% 이상이 유대인입 니다. 뿐만아니라, 세계적인 인물 중에 과학자 아인슈타인, 심리학자 프로이드, 작가 토마스만, 지 휘자 반스타인, 재벌 모우건, 정치인 키신저, 그리고 IMF의 총재들이 다 유태인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릴 적부터 자녀들을 주의 말씀과 교양과 훈계로 양육했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뛰어난 인물이 되고, 전 세계를 무대 삼아 활약하고, 머리가 되어 앞서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어릴 때부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아 신앙의 사람 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가정마다... 자녀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부모가 되고, 말 씀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겐 기쁨과 축복이 넘치는 복된 가정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어린이/막10:13-16
2001-11-21 23:10:37   read : 347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사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며 말씀 들려주시고 어린아 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유아시절을 경과하지 아니하고 어른된 사 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어린이에 대한 계시를 상고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어린이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0:13-16). 성도님들 어른된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어린이들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이런 성경적 인식이 없으므로 어린이의 바른 양육과 교육에 실패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어린아이를 하나님의 소유로 보는 부모나 사회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어린이 를 부모의 소유나 한 사회 집단의 소유로 보는 사회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는 성장 과정에 있 어서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케 되므로 결국 그가 성인이 된 후에도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생각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신 관리와 대인 관계에 있어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틀 안에 서 자라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나 한 집단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자 라나는 아이들은 부모의 틀 안에서 혹은 한 사회 집단의 틀 안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런 가치관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는 자칫 편협적이고 폐쇄적이며 독단적인 성인이 될 위험이 큽니다. 성도님들 어린이와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내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것임을 기 억합시다. 부모의 대리 만족을 위한 목적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여기고 소중히 돌보는 신앙을 기초로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 는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잘 양육하라고 내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 님의 일꾼입니다. 자녀에 대한 성경적 인식을 기초로 하는 자녀관을 정립하는 것이 이 시 대의 어린이 교육에 있어 최대의 급선무입니다. 이 기초적 자녀관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좋은 교육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 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하셨습니다(막10:14).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대하실 때 하 나님의 자녀, 혹은 일꾼으로 보셨습니다. 그러하셨기에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던 것입니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할 때 하나님의 안수와 복 내려 주심이 그에게 있습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 만득의 언약의 아들 독자 이삭 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심에서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바 우리 자녀들은 결코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시키려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께 번제로 드리라 하셨고 그날 이후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친히 양육하여 주셨습니다. 성도 님들 하나님의 자녀 양육권을 인수하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지시고 길러 주시도록 늘 기도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무엘은 그 모친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나실 사람으 로서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한나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그 유아시절부터 온전 히 드려 자라게 하였습니다. 성소에서 자라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양육하 여 결국은 민족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 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쓰시도록 양육권을 하나 님께 드립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 게 더 하시리라" 하셨지요. 성도님들 주일학교 안에서 그리고 기도 속에서 말씀의 감화 속 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최대로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양육권을 가지 는 것과 하나님이 가지게 해드리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낫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세요. 마 른 지팡이를 싹난 지팡이로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 주께 서 양육권을 가지시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자녀를 주께 드리오니 주께서 친히 양육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야 완제품이 됩니다. 성도님들 주 하나님께 맡기는 비 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예수님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눅 7:11-17; 막 5:41; 마 15:21-28).

2. 성경은 어린이 교육에 제일 중요한 것을 성경 가르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신명기 6: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 하셨습니다. 성도 님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지식의 근본입니다(잠 3:1-10; 신4:6). 잠언 22: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하셨습니다. 성 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읽게 하고 듣게 하고 외우게 하고 그대로 살도록 가르 치면 이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아이가 됩니다. 성경 말씀이 그 안에 있으면 악 한 마귀가 그를 결코 손대지 못합니다. 사단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 님께서는 마태복음 11:25절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 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 지의 뜻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말씀 선물 주시기를 힘쓰 셨습니다. 성도님들 우리 교회 사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은 주일학교 사업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투자입니다. 어린이 주일학교가 잘되어야만 장래 소망있는 교회가 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들 말합니다. 유아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외우고 그대로 사는 버릇을 들게 해보세요. 하나님께서 그 일생의 교육을 책임져 주십니다. 과외는 성경 교 육과외가 제일일텐데 어찌하여 많은 신앙 부모들이 세상 공부 과외에는 빚을 내서라도 힘쓰 는데 하나님 말씀 배우는데는 과외 공부는 그만 두고 정상수업도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헛다리 짚는것 같습니다. 말씀이 기초인데 어찌 말씀 기초 없이 교육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데 성경 가르치는 것 없이 주일학교 없 이는 헛수고 일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청교도 신앙으로 영향을 받아서 아이들의 첫 생일 때 성경을 선물로 준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최고의 선물로 알고 자라나기 때 문에 하나님을 사랑케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또한 받게 되는 것이지요(잠 8:16-21,32) . 성도님들 말씀 사랑하는 나라나 가정이 잘못된 예는 세상에 한 건도 없습니다. 주일학교를 살려야 합니다. 부흥케 하여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 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열심히 보내야 합니다. 교사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합니 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지요. 어린이 교육에 있어서 먼저 구하여 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성경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계사에 있어서 유익한 일을 했던 분들은 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던 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몰랐거나 무시한 자들은 반역사적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나라와 우리교회 그리고 성도님들의 가정이 잘되고 복 받기 를 원하신다면 자녀들의 말씀 듣고 자라나는 것을 크게 힘쓰셔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는 소년 시절에 목수일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셨던 같습니다. 어떻 게든지 말씀 많이 들을 수 있도록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그는 자녀로 인하여 크게 웃을 날이 올 것입니다. 성도님들 자녀들의 성경 교육을 위하여 시간도 물질도 몸도 투자합시다. 돈으로만 투자하지 말고 신앙적인 것들로 투자합시다. 말씀 읽도 록, 듣도록, 살도록, 전하도록, 외우도록 최선의 배려를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자녀에게 말씀 때라 살아가는 생활을 심어주기 위하여 투자하는 것이 최대의 투자입 니다.

3.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이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성도님들 어린아이는 단순합니 다. 잘 믿습니다. 엄마와 그 젖이면 만족입니다. 거짓말 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매일 자라 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돌이 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고 예수님만 사랑하 고 거짓없이 충성하는 그리고 이 모든 좋은 일에 매일 성장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정말 이런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이런 신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하여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성령 충만 받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다 믿음에 성장하고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 부활의 증인되고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으며 사랑 의 교제가 쉬지 않고 말씀에 호기심이 많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된 신자들이 되었습니 다. 성도님들 성령 충만 받아야만 마귀를 이깁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압니다. 아무리 세 상 지식이나 권세가 많다 해도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는 참신자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다 만 쭉정이요 알곡은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항상 기뻐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좋아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세 상 최대의 낙으로 생각합니다. 성도님들 성령 충만하여야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하는 성 도가 됩니다. 성경의 9가지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라 하였습니다(갈 5:22). 이는 어린아이의 성품과 일치합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성령의 임하심에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기도가 간절하여 집니다. 예수님 사랑함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생활의 축복이 매일매일 자라납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참 만족을 얻게 됩니다.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넉넉히 먹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만족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어린이 주일에 성령 충만 꼭 받아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축복이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 그 은혜만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소망입니다. 어린이가 사라진 사회가 더 이상 소망이 없듯이 성령 떠난 교회나 가정 도 소망이 없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돌이켜 어린아 이와 같은 성도가 됩시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의 특별 사랑이 있듯이 성령 충만하여 어린 아이와 같이 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특별 관심과 돌보심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 한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에게서는 아기 냄새가 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 람에게서는 성령 냄새가 납니다. 예수 향기가 나는 것이지요. 성도님들 성령 충만은 이 말세 의 최대의 급선무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였지요(엡 5:18).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 하셨지요(행 1:8). 성도 님들 성령 충만 받으면 하나님 나라는 크게 보이고 세상은 아주 작게 보입니다. 세상 것들 이 그렇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불안 염려 근심 초조 교만 정욕 시기 다툼 같은 것은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하늘에 있는 거룩한 기쁨이 충만케 됩니다. 성령으로 충 만치 못하기에 세상 것으로 인한 시험이 그 마음에 찾아들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 수로 가득 차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지게 됩니다. 우리 믿음을 해하려 하는 것들을 전혀 무익한 것으로 생각케 됩니다. 성도님 여러분 천국 가는 그날까지 순간도 쉼 없이 성령 충만하고 삽시다.

결론: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 되어 하나님의 사랑 더 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아이/엡6:1-4
2001-11-21 23:09:09   read : 230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가운데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도 록 가족들을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가정 공동체의 구성원은 부부와 자녀입니다. 성전에 올 라가면서 가정의 기쁨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 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도다"(시128:3) 나무를 가꾸듯이 가족 구성원을 가꾸어 나가야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이 바 로 이런 가정이길 바랍니다.

(엡6장) 말씀은 전반부분에서 가정에서의 여러 성원간의 역할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역할, 상전과 종의 역할이 그것입니다. (1-3절)이 자녀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며, (4절) 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정에서 하나님의 어린 아이로 키울 것인가 말씀하고 있습니 다. (4절)에는 부모들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어린아이로 자라 나는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라는 명령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어린아이가 제대로 자라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과 양육하라는 명령입 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4절)을 중심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으며 은혜 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이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좀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습 니다. 부모들이 노엽다 하면 그런 대로 이해가 가는데…. 그러나 의미를 잘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면 그 분노로 인하여 자녀가 정상적으로 자라나 는 것을 방해합니다.

[분노(忿怒)]란 인간의 기본감정인 희로애락(喜怒哀樂) 중에 하나인 '노(怒)'에서 연유된 감 정입니다. 이 분노는 아주 흔한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엡4:26)은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즉, 분을 계속 내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마음에 분노를 갖게 하는 일을 부모는 당연 히 피해야 합니다.

분노가 왜 생깁니까? 오해가 분노를 일으키고, 약점이 드러나거나 열등감이 느껴질 때에 분 노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약점을 들추거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자신의 자녀들이 가진 장점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 지만 부모님들은 이 점을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격 탓이지요. 성격도 하나님 안에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기도 하는 이여야 합니다.

화를 낸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의를 보았을 때에 분노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것은 극히 정상적인 분노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은 무조건 화내지 않는 것이란 잘못된 인 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를 보십시오. 성전에 기도하러 가셨는데 비둘기 팔고 동전 바꾸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상을 들러 엎었습니다. 이것은 정의로운 분노입니다.

좋지 않은 분노가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분노를 내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분노를 당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심리적,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칩니다. 심리적으로 자녀들에게 피해를 끼칩니다. 불안, 두려움, 우울, 적개 심이 마음에서 발생하여 그대로 아이에게 옮기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내면의 분노를 풀지 않고 그대로 두면 심한 편두통, 소화불량, 설사, 궤양, 고혈압 또는 심장마비까지 일으키는 신체적 징후가 나타납니다. 영적으로 종종 죄로 가득 찬 생각 과 욕망은 함부로 내뱉는 말로 나타나 어린아이의 영혼을 짓밟아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 노여움 곧 분노는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입니다. 성경말씀의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 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그렇습니다. 한 박자 쉬면 화를 잠재울 수 있 습니다. (잠언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녀들이 이런 사람이라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천하를 다스려도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한다면 소인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내는 것은 버릇입니다. 그러니 부모 된 성도들은 아이가 그런 버릇에 들지 않도록 하라는 게 오늘 말씀의 요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마시기 바랍 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다음으로 말씀합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입니다. '양육하라'는 말은 [교육하라, 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육의 필요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유아 때부터 대학까지 자녀들은 교육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혹시 다 른 아이들에게 쳐질까 봐 부모들은 조바심합니다. 교육하기는 하는데 무엇으로 교육하느냐 가 문제입니다.

1) 주의 교양으로

주의 교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입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것으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 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오늘날 교육이 없어 문제가 아닙니 다. 그 교육의 내용이 지식위주, 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입시와 취직하기 위한 교육이기에 문 제 아닙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성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학교 수업에 하루 빠지면 아주 큰 일이 난 것처럼 알아 도, 교회학교 한 주일 빠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성 경말씀보다 더 좋은 교양을 가르칠 수 있는 교본은 없습니다..

2) 주의 훈계로

'훈계'는 '타이름'입니다. 쉽게 말하면 '채찍'입니다. 쉬운 말로 주의 매질로 교육하라는 말 씀입니다. (잠언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 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자식이 미우면 매를 들지 않고 그 자식을 사랑하면 매를 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를 드는 경우 그 분노를 참지 못해서 화풀이로 매를 들기 때 문에 문제입니다. 매는 사랑의 매이어야 합니다.

매를 들 때는 화나서 들면 안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들어야 합니다. 화는 화를 만들 어낼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맘으로 교양도 훈계도 해야 합니 다. 부모의 권위를 주장하며 강압적으로 부모의 주장을 자녀에게 실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반항감과 불건전한 심리만 싹트게 할 뿐입니다. 적절한 보상과 징계를 겸할 때 여러 분의 자녀는 하나님의 아이들로 자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두신 분이든, 그렇지 않은 분이든 오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 람입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님께 맡겨진 하나님의 아이입니다. 내 것이라 착각하여 노엽 게 하지말고 하나님의 귀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교육 에 충고와 격려를 적절히 사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말씀을 들려줌으로 말씀의 결론을 낼까 합니다. "채찍을 아끼면 자녀를 버립니 다. 그러나 채찍 옆에는 사과를 두었다가 자녀들이 잘했을 때에 그 사과를 주십시오." 할렐 루야!





우리의 아이들을 예수님께로/마19:13-15
2001-11-21 23:07:36   read : 166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오월을 맞이하였습니다. 가정의 달이면서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도 사랑하는 새영의 모든 권속들에게 함께 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린아이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아이들에 대한 생 각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들의 꿈나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시골에는 점점 어린 아이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가 서서히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나서 비어버린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 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우리 교회의 꿈이 자라는 것이요 우리 아이들이 자라 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아 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꾸지람 속에서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미움을 받으며 자 란 아이는 싸움질만 하게 되고 놀림을 당하며 자란 아이는 수줍음만 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관용 속에서 키운 아이는 참을성을 알게 되고 격려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 감을 갖게 되고 칭찬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정한 대접 속에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되며 안정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되고 두 둔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에게 긍지를 갖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정과 우정 속에서 자 란 아이는 온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십 니까?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을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라면 이민도 불사하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 되 는 것입니까? 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 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에게로 나오기를 원하는 아이들을 가로막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 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우 리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자녀들에 대한 참된 교육의 의미를 발견하여 주님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인도하는 새영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바르게 알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 스도인들의 70% 이상이 어린 시절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통계가 나왔습 니다. 하다못해 성탄절에 교회에서 준 사탕하나를 먹어도 그 영혼에 주님이 새겨두신 생명 의 씨앗은 다시 살아나는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 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의 자녀를 허락받게될 것입니다. (엡 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좋은 교육의 모델로서 소개되는 유대인들의 교육의 골격은 어머니의 교육을 말합니다. 어 머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가 되어 꿈을 심고 미래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도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에 열심에 있어서는 뒤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교육 방법이 있지만 하나님의 방법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벗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 현대 교육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매일 대 하는 식탁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40세가 넘어가게 되면 입맛이 4살 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맛있는 것을 식탁에 내놓아도 그 맛이 4살 때 익힌 그 습관을 모르면 입맛에 맞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신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 록할지니라"

한 유대인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들러 양복과 외투를 샀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 아와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양복 주머니에 다이어몬드 반지가 들어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가락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양복주머니에 반지가 들어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건 어머니의 것입니다”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백화점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 옷을 사신 분이 반지의 주인입니다. 왜 반지를 내 게 돌려주려 하십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나는 옷을 샀을 뿐입니다. 반지를 산적은 없습니다. 저는 유대인이거든요” 이 모습을 본 아들은 평생 어머니에게 배운 ‘유대인의 정직’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것은 반지와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의 자녀들이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그렇게 되기를 원합 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교회를 회복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 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입니까? 무엇이 더 우선해야할 일입니까? 주님의 교회에 사랑하는 자녀들이 말씀 으로 교육을 받아 이 시대와 역사의 빛이되 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아이들은 어른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성품을 키워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웨슬레(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교육에 대하여 이런 말 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꺾어 버리라, 이것을 빨리 꺾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 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자녀들에게 기르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제멋 대로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 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수산나는 위대한 어머니로 그리고 위대한 교육가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구상 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성공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스탠포드 대학 심리 학자 젠센 교수는 유대민족의 지적능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 다. 젠센 교수는 유대인들의 성공의 비결은 신앙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숱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교육원리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독특한 교육원리란 무엇입니까? 유대인 가정의 두드러진 특징은 유대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정신적 통일성이 라고 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가정교육은 결국 신앙의 문제이고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것 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 고 싶어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과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는 것 등을 보여주어 자녀들이 무의식중에 믿음을 배우게 한다는 것입니 다. 그리고 글을 배우기 전부터 수많은 성경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신앙을 갖게 한다고 합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주님을 닮아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우리의 자녀들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우리의 자 녀들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자리에 서서 이 위대한 자리에 초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자녀들을 세우는 새영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셋째로 우리의 아이들은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 을 데리고 오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된 자녀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 되어 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으면 다른 데 가기 전에 제일 먼저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도 드리면서 목사님을 통해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유 아세례를 받게 하고 반드시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기를 소원한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주님 앞으로 인도하심을 받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 책임은 물론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책임지고 예수님께로 인도하 는 것이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준에 맞도록 가정예배도 드리고, 헌금 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기도하고 성경 읽는 습관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 는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에 안나오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만 축 복의 자리에 서고 자녀들은 지옥의 길로 향하여 달려가게 버려두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의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기도를 해서라도 자기 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인정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모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의 삶 을 다룬 영화입니다. 외국에서 방랑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딸들에게 신앙과 전통을 가르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사랑하는 딸들아, 머리에 수건을 쓰고 기도하는 풍습을 가볍게 여 기지 말아라. 그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따른다는 순종의 표시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마치 양철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과 같단다” 유대인 어머니는 `전통'과 `신앙 '을 최고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리허설이 없습니다. 한 번 뿐인 연극과 같습니다. `인생' 이라는 이름의 바이올린을 `불신'의 지붕 위에서 연주한다면 불완전한 파열음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러나 절대자에 대한 신뢰의 터전 위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은 멋진 음악을 창 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길입니다. 주님이 바로 믿음의 실체이 시기 때문입니다. 대개, 성경이나 일반 역사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성령의 사람, 능력의 사 람들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성령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새영의 모든 권속들이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의 어린이 헌장/마18:1-14
2001-11-21 23:04:59   read : 225

오늘은 5월 첫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달 동안에 꼭 한 사람 이상 전도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먼저 사랑운동을 지속적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사랑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고, 우리 가정 가운데 사랑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고, 우리 믿음은 사랑이 있는 믿음이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나라 국회는 1956년에 5월5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앞서 성경에 보면 천국의 어린이 헌장에 대하여 군데군데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천국의 어린이 헌장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어린이 주일은 무엇을 말하는 주일일까요? 어린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날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를 푸대접하므로 그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린이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놀이 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전화벨이 울렸는데 이모네 아들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세상살기 귀찮다고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하는 비보를 들었노라고 슬픈 음성으로 알리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야기는 오늘 어린이들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슴앓이가 있습니다. 말 못하는 고민들이 저들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경희대학교 서정범 교수가 펴낸 수수께끼 별곡이라는 책자가 있는데 부자지간에 짤막한 대화 한 토막입니다. 목욕탕에 들어간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 너도 들어오너라'그랬더니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정말로 시원해요?' '그렇구 말구' 아들이 탕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너무 뜨거운지라 얼른 뛰쳐나오면서 아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화가 치밀었습니다. 주먹으로 한 대 치려고 하니까 그 때 아들의 말입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기가막힌 말입니다. '때려라 때려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냐?'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부모 된 내가 먼저 주님 앞에 순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나는 주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순종의 열매가 가정에서 맺힐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모두는 내 자녀들이 정직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경건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경건하게 살면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이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에 해당하는 내용의 질문입니다.

첫째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
본문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본문4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이해가 곤란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키도 작고 배운것도 없고, 어른들에 비하여 권세도 없는데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크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큰 자라는 뜻입니다. 눅18:14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높이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방법을 가리지 않아 결과 높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재롱을 부리고, 교만을 피우며, 고함을 지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빠 이름이 뭐지'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 이름은 여보예요' '그럼 너의 엄마 이름은 뭐지?' '엄마 이름은 당신이래요'얼마나 진실한 대답입니까? 꾸밈이 없고, 조직이 없고,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몇 해전에 들었던 예화입니다. 러시아의 리콜라이 황제가 덕망있고 정의가 있는 황제인데 어느 날 평민으로 가장하고 거리로 민중시찰에 나섰습니다. 낮 설은 길인지라 갈림길에서 지나가는 군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미안하지만 계급이 어떻게 되는지요?' 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그러니까 황제가 묻습니다. '상사이십니까? 아니. 그럼 소위이신가요? 아니. 나를 그렇게 밖에 보지 않는가. 그럼 중위신가요?'역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대위신지요? 맞았네. 내가 육군 대위네'하면서 그 대위가 굉장히 큰 벼슬인 것처럼 어깨를 으시댔습니다. 황제는 미소를 머금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대위가 '저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진지라 '여보게' 불렀습니다. '혹시 자네도 군인인가? 예. 그러면 계급이 무엇인가?' 아무말없이 있었더니 '상사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소위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면 중위인가'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말씨가 좀 달라졌습니다. '그럼 당신도 대위인가요?'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는 몸이 오싹해집니다. '그러면 소령이십니까'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중령, 대령, 심지어는 대장까지 올라가면서 몸이 떨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원수이십니까?' 그런데 순간 황제의 얼굴이 필름처럼 스쳐갔습니다. '아차'하면서 무릎을 바닥에 꿇으면서 '황제각하 용서하옵소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겸손하게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둘째, 셋째가는 미덕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도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국의 잣대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발뒤꿈치를 높이 들고 높아지려는 자를 자로 재면 도리어 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무릎을 꿇고 낮아지는 자를 잣대로 재면 높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겸손의 덕을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누가 겸손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겸손이 있는 믿음으로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천국에는 누가가나?
본문3절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어린아이들은 그냥 천국에 통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는 결단코 학벌로는 못 들어갑니다. 권세로도 못 들어갑니다. 장관이니까 그래서 봐주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유년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노래합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고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어린 아이를 닮은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를 닮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어린아이에게는 여러 속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꼬집을 수 있습니다. 단순성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은 단순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참 믿음의 속성이 단순성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믿음은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고, 계산하는 믿음도 아니고, 따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머리가 아프게 복잡한 믿음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그냥 거듭날 수 있고, 천국 갈 수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가는 믿음은 소박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페인트칠한 믿음도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회칠한 무덤 같은 믿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돌아선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o turn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를 의미합니다. 라우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어찌했습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가난한 자로다" 그래서 수치를 보인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돌이켜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돌이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느끼면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이 죄와 관계 있는 것이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한 믿음이면 돌이켜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하면 돌이켜야 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가 불량식품을 청소년들에게 팝니까? 어른들입니다. 누가 술, 담배, 약물을 청소년들에게 팔고 있습니까? 역시 어른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돌이켜야 합니다. 어른들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5월은 전도의 달입니다. 우리의 믿음 중에는 전도 없는 믿음도 있습니다. 전도와 무관한 믿음도 있습니다. 10년을 믿었습니까? 아니면 20,30년을 믿었습니까? 그 믿음 속에 전도의 알맹이가 있습니까? 한 번쯤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약2:20이 말합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앞에 들어오면서 읽었습니다. '전도하셨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묻는 말입니다. 만일 전도하지 않았다면 전도 없는 믿음을 돌이키고, 전도와 무관한 믿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문 앞에 버티어 서 있으면서 들어오려는 어린이를 막았던 죄가 있다면 빨리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이 무슨 날입니까? 어린이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돌이켜 보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 천국으로 인도할 자는 누구인가?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인도해야 합니다. 바로 내가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본문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영원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초라하다, 작다, 그리고 코흘리개다'그래서 없신여기고 교회당 밖으로 나가라고 쫓을 때도 있고, 성경을 배워주는 일을 소홀히 할 때가 있으며, 예배드리는 일에 무관심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어린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본문10절입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없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천사까지 동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린이 주일을 지키시는 성도님들이여! 본문5절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일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가 주님의 뜻이고, 이것이 천국의 상 받을 조건인 것을 밝힌 말씀입니다. 본문14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이 소자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가운데에 하나라도 꼴찌 하나라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작은아들이니까 버려 두라' 하지 않았습니다. '딸자식이니까 무관심 하라'하지 않았습니다. 본문12절입니다. "너의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눅15장에 있는 잃은 양 비유를 연상케 합니다. 그 목자가 잃은 양을 어떻게 찾았습니까? 5월 전도의 달을 지키면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① 들에 두고 방법입니다. 거기 4절에 보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다닌 것은 실용적인 가치로 보면 낭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마리 양을 잃었는데 가슴아파해야 합니다. 불쌍한 양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양은 배워도 가치가 있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잃은 한 마리 양 같은 인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대로 두면 지옥에 갑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 앞에 나오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주의 품에 안길 수 있고, 편히 쉴 수가 있는데 내가 전도하지 않으므로 이 인생이 거꾸러지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이 방법으로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달려가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② 찾도록 방법입니다. 역시 4절에 보면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제 힘으로는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찾아가야 하고, 만나주어야 하고, 데려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누가 전도자입니까? 우리입니다. 아니 나입니다. 내가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5월의 주인공은 나요, 5월의 주인공은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여기 찾도록 이라는 말은 찾을 수 있도록 이라는 뜻입니다.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많습니다. 시간을 쏟던지 물질을 투자하던지 힘을 쓰고 애를 쓰던지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어찌했던 찾아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회를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날아가 버리는 참새가 될 것입니다.
③ 어깨에 메고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사랑의 방법이기도 하고, 잔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거기5절에 보면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라고 했습니다. 왜 찾은 양을 어깨에 메었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양이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떠난 시간부터 지치고 피곤하고 상처를 입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깨에 메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피조자 인생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형상 닮은 인생은 누구나 예수님께 돌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 길을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난 것은 죽음이요, 나무가 흙을 떠난 것은 역시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아와 돌아와' 찾고 계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말입니까? 전도자 나를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 길 인도하는 전도자, 인도자, 안내자입니다. 나팔을 불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찾은 기쁨 때문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맨 것은 찾았다는 깃발과 같습니다.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목자는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물을 건너고 산을 건넜습니다. 골짜기를 헤매다가 음매음매 울고 있는 잃은 양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목자는 가슴에 끌어안았을 것이고 뽀뽀를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기에 어깨에다 메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면서 돌아오는 일입니다. 특별히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이여! 어린 양 같은 어린아이, 우리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주변에 너무 많이 잃어져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두드리면서 이 아이들을 구원의 방주로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가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아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린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마19:13-15
2001-11-21 13:56:57   read : 264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의 축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꾸짖는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시끄럽고 번잡스러워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 그들의 머리에 일일이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시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1. 어린 아이들 역시 주님의 축복이 필요한 영적인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가로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종교 심리학자 스펜서 박사의 조사입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이 신앙에 들어온 연령이 어떻게 될까요? '1000명 중 548명이 20세 이전이고 20∼30세가 337명이었다. 즉 885명이 30세 이전에 믿었다. 거의 90%에 육박한다. 6명이 30∼40세 사이에 겨우 15명이 40∼50세 사이에 믿었다. 50세 이후에 신앙을 가진 이는 4명뿐이었다.' 이 도표를 보면 주일학교를 강화하고 청소년 전도를 얼마나 힘써야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조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나이 들어 믿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늙어서 예수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확률을 더 엷어집니다. 나이가 들어서 믿으신 분들에게는 축하와 격려를 드립니다. 선택된 사람임을 깨달으십시오. 젊은이들을 향해 전도하는게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옴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오는 어린아이들을 야단 치던 제자들의 생각은 어린아이들은 주님의 축복이 없어도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신 것은 어린 날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특징은 입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이면 뭣합니까? 내 입맛이 없는 데서야. 결국은 내 입맛대로 행복한 것입니다. 이 입맛이라는 말을 참 중요하게 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입맛은 4살 전후로 결정이 납니다. 그리고는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사람은 40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다. 원점(Original Point)으로 돌아간다. 그간에 뭐 양식이다 불란서 식이다 뭐다 하고 먹다가도 아니다. 나이가 4,50세가 되면 다시 옛날 자기가 자랄 때에 먹던 그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가 버린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의 입맛이 이제 내 한평생 나를 지배하는 거예요. 그래 입맛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가치관이요, 세계관이요, 행복관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복하냐고요?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의 기준해서 행복한 겁니다.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축복은 어린아이들의 영적 입맛을 결정하는 시기가 어려서부터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미국 어느 경찰서에서 당신의 아이들을 망치는 법이란 책자를 만들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에게 영적인 훈련을 전혀 하지 말라. 아이가 20세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그때 가서 그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라." 따라서 합시다. "세 살이면 늦습니다." 2. 어린아이를 주님께로 오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사람을 실족케 하는 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됩니다.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 어렸을 때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거기서 다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죄는 실족케 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세상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하는 일로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죄가 큽니까?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은 가장 큰 죄라고 예수님께서 단죄하고 계십니다. 한 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공장을 차려놓고 강도 짓을 일삼던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나게 꾸지람을 당했다고 합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이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정신이냐?" 아무리 나무래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생각이 모자란 줄 알고, 혹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마구 때리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였습니다. "야 임마!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야.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 때부터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 마디, 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그 어린 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은 연세가 높은데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반드시 머리를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언제나 모자를 벗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왜 그러십니까?"고 그러니까 "이것들이 앞으로 자라서 이 가운데서 대통령도 나고, 목사님도 나고, 학자도 나고, 훌륭한 분들이 다 태어나게 될 거요. 그런고로 나는 지금부터 저들을 존경합니다." 실제로 바로 그 교장선생님 밑에서 인사를 받은 아이 중에 하나가 마틴 루터 종교 개혁자가 됐습니다. 여러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소중하게 주님의 사람으로 주의 이름으로 저들을 대해야 됩니다. 한 마디 말 헛놓아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을 내가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부모의 책임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와서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성경에서 어린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자가 누구입니까?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이 예수를 믿고, 부모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입니다. 저는 유아세례 할 때에 서약하는 문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느뇨?"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한다는 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너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읽는 것을 함께 기도하는 것을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축복은 내용은 같을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축복은 자녀들을 향하여 사람을 향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의 이름으로 비는 말입니다. 부모의 축복은 말하는 대로 됩니다. 시카고대학의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이러한 연구를 해 봤습니다.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 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었습니다. 첫째는 "칭찬하라"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칭찬 받는 그것,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칭찬하십시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 아이들을 나무래 보십시오. 딱 한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하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 한가보다. 어머니는 나를 키워 가는 것이 고생스러운가봐.'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지나치게 나무라면서 키울 생각을 말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성공했던가 잘한 일이 있거든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해주십시오. '너는 이런 일 잘 한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훈련이라면 으레 아이들의 무릎을 꿇어 앉히고 성경을 암송하게 하고 어른들의 기도와 목소리를 흉내 내게 하는 것인 줄 착각합니다. 위스콘신 주의 루터란 병원의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티안 미텔 포르테는 가정을 배경으로 한 연구에서 모든 정신병의 근원지는 가정이라고 역설하면서 그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보이려는(show up) 동기가 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을 백화점의 마네킹이나 전시물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습니다. "기도를 하면 무엇을 사주겠다."고 흥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비열한 방법입니다. 오히려 아빠 엄마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을 하는 그 행위가 가장 훌륭한 성경 말씀입니다. 아빠-바빠-나빠 / 시간의 헌신부터 모든 아빠들이 그렇게 정신 없이 바쁩니다. 왜들 그렇게 바쁜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언제나 "바빠"가 됩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나빠"가 되어 버립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아버지들은 매일 35초 내지 3분만을 자녀들과 보낸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또 다른 통계는 가족들과의 대화시간은 불과 47초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님의 일을 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주님도 만나기가 힘들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은 결코 낭비되는 법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됨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누군가를 모방하며 닮으려 애씁니다. 부모의 책임이란 역할모델이 되어주는 거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좋은 모델이 세대에서 세대에 이어지기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좋은 예가 여기 있습니다. 프린스턴대학의 총장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11명의 자녀들을 두었었는데 이 에드워드가(家)에서 대학총장이 14명, 대학교수와 변호사가 100여명, 판사가 30명, 의사가 60명,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가 100여명, 작가가 60명 배출되었습니다. 여기에다 3명의 미의회 의원과 1명의 부통령까지를 포함하면 가문은 더욱 빛이 납니다. 반면에 주크가(家)의 후손 1,200여명 중 직업거지가 310명, 죄를 지어 몸이 망가진 불구자가 440명, 습관적인 도적이 60명, 죄수가 130명, 부도덕한 사람이 55명, 상업을 배운 사람은 고작 12명인데 그 중에 10명은 그것을 감옥에서 배웠고 살인자가 6명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들을 세상의 조류에서 구해냈던 요나단 에드워드는 자녀들에게 헌신된 아버지였습니다. 홍수가 져서 물이 넘쳐도 마실 물이 없어 기근이듯 자녀들은 목마르게 생수와 같은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큰 역할이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을 사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습니다.(시78:4-8) 이는 여호와의 말씀과 사역을 전해야 할 부모의 책임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아비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자녀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함께 가정 예배하십시오. 함께 찬송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를 주의 이름으로 품에 안아주고 머리에 안수하며 축복하십시오.




천국은 어린이 천국/마18:1-10
2001-11-21 13:56:00   read : 189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고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이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업적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아니면 영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는 이른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결론을 냅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다까 ?
사실은 어린아이들은 제고집뿐입니다./ 배고프면 인정사정없지요 고집스럽고/ 욕심스럽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지면 해야하고, 마시고 싶어지어지면 마시고야 울음을 그칩니다.. 과연 주님이 저 어린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칭찬하며 천국은 저 어린아이들의 가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어린아이일수록 절대적으로 엄마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엄마가 있습니다.
비록 아기의 눈에는 암마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응애하고 울면 즉시 달려오는 거리에서 엄마는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엄마는 아기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절대적으로 엄머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엄마가 필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엄마를 의지 아니해도 넉근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요/
어떤 어른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오히려 귀챦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천국은 누구의 소유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가 없으면 살 수 없기에 절대적으로 엄마를 의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 첫 주일은 항상 어린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들/
그래서 부모님의 말씀따라 자라나는 가정에서는 천국을 맛볼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필요로 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어린아처렴 울고불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십시오/
이것이 천국의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엡6:4-
2001-11-21 13:55:18   read : 296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는 강철같이 단단한 돌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는 작은 새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필경 그 단단한 돌이 언젠가는 작은 새가 디뎌도 발자국이 날 정도로 물렁물렁 했었다는 증거다. 그토록 물렁한 물체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단한 돌이 되었다. 지금은 큰 코끼리가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돌이 되었다.
어린 청소년의 마음은 굳어지기 이전의 물렁물렁한 것과 같다. 누가 무슨 자국을 남기든지 그 자국은 오래 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사랑의 자국을 미리 남겨 놓지 않는다면 마귀가 시기와 저주와 죽음의 자국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린이의 신앙교육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봄에 잎이 피지 않는 나무에서 어떻게 가을에 열매를 바라랴!" "어린 나무는 구부러지나 큰 나무는 휠 수 없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주제는 세가지이다.
첫째, 자녀 교육의 필요성
둘째, 자녀 교육의 내용
셋째, 자녀 교육의 방법 및 자세

[1] 자녀 교육의 필요성

1.자녀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귀중하기 때문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

2. 언약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18:19).

3. 자녀의 장래를 결정짓기 때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2] 자녀 교육의 내용(신앙을 통한 전인교육)

1. 율법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 6:6-9).

2. 성경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

3. 주의 도(마땅히 행할 길)
1)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외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18:19)
2)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4. 하나님 경외
1)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신4:10).
2)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신31:13).

5. 하나님의 섭리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12:26,27).

6. 이웃 사랑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7. 부모에 대한 효와 노인공경
1)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딤전 5:4).
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

8. 학문
1)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단1:4).
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행 7:22).

[3] 자녀 교육의 방법 및 자세

유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어떻게 하면 청소년 자녀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결론을 얻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것.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일 것.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지침을 마련해 줄 것.
△아이들을 주 안에서 따끔하게 훈계할 것.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르칠 것.

1. 성경으로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2. 징계의 채찍과 꾸지람으로
1)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2)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
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4)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15).

한 초등학생이 친구의 공책을 훔쳐왔다. 어머니는 꾸중대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 어머니의 칭찬이 다시 계속됐다. 이 소년은 자라서 대도(大盜)가 됐다. 사람의 목숨까지 훔치는 잔인한 강도로 변해 사형이 확정됐다. 형장으로 끌려가던 청년은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입을 귀에 대더니 그대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도둑질을 했을 때 왜 칭찬을 했습니까. 그 때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았을텐데…" `훈계'를 아끼면 자녀를 망친다.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4. 본을 보여야 함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롬2:21).

5. 사랑과 이해로
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2)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 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고마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6. 항상 부지런히 가르칠 것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7)



어린이를 안고 축복하신 예수님/막10:13-16
2001-11-21 13:54:20   read : 239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성도들과 가정 위에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고
둘째 주일은 부모님 주일이며,
셋째 주일은 웨슬레 회심주일이고,
마지막 주일은 가족 총동원 주일입니다.

금번 5월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모두 큰 축복을 받는 달이 되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 인류가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전생을 걸고 투자해야 할 사업이 무엇일까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매일같이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그리고 관심을 무슨 사업에다 투자하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저마다 사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인 사업은 자녀사업, 자녀교육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 생활의 최대의 투자가 자녀 교육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일할 훌륭한 일꾼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생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는 사업이 자녀를 위한 사업입니다.
시 127편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은 하나님주신 최상의 기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잘 되도록
최상의 투자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생존하는 종족이 있습니다.
나약하고 힘없이 살아온 이 작은 민족은 지금도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무엇으로 유대인들은 자기의 생존을 지켜 왔던가요? 그것이 교육입니다.
유대인들은 밤낮 외국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학교도 없어지고 성곽이 무너져도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만은 계속 했습니다.
어린이를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이것이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빼앗겨도 가정만은 포기하지 않았고 세상적인 지식은 학교에서 못 가르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율법을 가르치고 이웃을 사랑하고 평화를 가르치는
교육을 하였습니다.
6백만 명이 학살당하고 나라 없는 설움에서 2천 여 년을 방랑 하면서도 그들은 성경 말씀과 탈무드를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일만은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2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실시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의식이 있습니다. 출생한 날로부터 8일째 되는 날 그 아이는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짓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나서 40일 후 어머니는 그 아들을 위하여 어린양을 잡아 번제 제물을 바쳐 아들의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할례와 번제가 끝나면 어린아이에게 신명기 6장 4절∼9절을 읽어주었습니다. 이 성경구절을 '쉐마'라 불렀습니다.
쉐마는 히브리어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입니다.
신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 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는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을 외울 뿐만 아니라 써서 목에 걸고 다니고 문에 통을 달고 거기에 이 말씀을 적어 넣어두고 드나들 때마다 그 말씀을 외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영원히 나의 출입을 지키시리라"는 그곳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을 시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할까요?

첫째 : 하나님을 믿는 신앙 교육입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물론 부모들이 자녀에게 대한 의무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의무는 자녀들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못 입혀도 좋은 침대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한다해도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공부시키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생동안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책임 중 가장 큰 책임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의무가 우리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자녀들을
가르치는 책임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를 맡아 기르는 청지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적 책임을 바로 해야 합니다.
3
Story : 사람의 뇌세포는 1백 40억 개나 됩니다. 그 세포 하나 하나가 각기 40-41백여 개의 돌기(突起)를 뻗쳐
서로간에 복잡하게 연결됨으로써 그 사람의 지성, 감성, 성격을 형성시킨다. 이 뇌세포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어린이에게 있어 보고 듣는 모든 경험은 뇌세포에 프린트되어 성격이나 정서 형성에 어떻게든지 영향을 끼칩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증자가 부잣집 아이와 노는 아들을 보고 미련없이 이사해 버린 것도 모두 어린 자식의 뇌세포 프린팅을 걱정해서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상식을 초월한 충동적 범죄를 밥먹듯이 저지르는 것은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어린 시절 뇌세포 프린팅이 방관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세상은 각종 매체의 발달로 인해 뇌세포 프린팅이 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실행하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 어린이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 아이를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본문에 나오는 부모들은 자녀를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기도 받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주님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이 생기고 찬송 부르는 중에 기쁨이 생기고 기도하는 중에 은혜를 받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 나오는 습관을 잘 들여야 커도 빗나가지 않습니다.
Story :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은 어머니 생일 축하식에 많은 분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불란스 대사가 워싱턴 어머니에게 가까이 가서 묻는 말이 "저토록 훌륭한 아들을 둔 비결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이 "나는 내 아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가르쳤노라"
훌륭한 어머니는 자녀를 믿음으로 기릅니다.

Story : 대구에서 있었던 최근의 일입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의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목사님이 물었더니 "요즘 대학입시 공부를 하느라고 못 나오는데 입학고사에 합격하면 다닐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몹시 안타까와하고 있는데 이듬해 입학고사에 떨어졌습니다.
또 다음해도 실패했습니다. 온 가족이 슬퍼하고 우울해 하면서 교회에 나왔는데 그 아이는 창피하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기 시작했고, 술집에 드나들며 친구들과 고고춤을 추었습니다. 타락의 길로 빠졌습니다. 이 청년이 대구 고고 클럽 화재 사고때에 시체가 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시험 기간에는 교회에 가지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골방에 가둬두는 부모가 있습니까?

우리는 자녀교육을 어려서부터 바로 시켜야합니다.
건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신앙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납니다.
모세 -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교육이 있었고
사무엘 -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있었고
디모데 - 어머니 유니게의 기도가 있었고
성 어거스틴 -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있었고
웨슬레 - 어머니 수산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의 기도로 훌륭한 자녀들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4
둘째 : 사랑의 교육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육체를 길러주기 위해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지식을 길러주기 위하여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원만하고 남을 사랑하고 평화로운 사람으로 자라기 위하여는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먼저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무엇이나 주는 대로 받아서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미움을 받으면 미움을 주고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청소년 범죄들, 사회에 끔찍한 범죄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들은 거의가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가정에서 문제아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Story :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수천명의 학생중에 성적과 품행이 가장 나쁜 10명을
택해서 가정을 조사해 보았더니 이 학생들의 부모들은 한번도 자녀에게 사랑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어린이 헌장의 최초는 아마 예수님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하시며 품에 안으시고 축복기도해 주셨습니다.

셋째 : 자녀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라.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꺽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미래상을 심어주고 칭찬하여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옥토와 같은 어린이의 마음속에 위대한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칸트의 어머니는 어린 칸트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자연속을 산책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솜씨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꿈을 심는 시기는 어릴수록 좋습니다.
인간은 꿈만큼 위대해 지는 것입니다.

Story : 에디슨은 어린시절 학교에 입학해서 이상한 질문만 했습니다.
하나에다 하나를 보태면 왜 둘이 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도 저능아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불러서 자기는 이런 아이를 지도할 수 없다고 3개월 만에 퇴학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비범한 소질과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꿈을 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드디어 에디슨이 84세에 세상을 떠날때는 1869개의 발명왕의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5
부모가 자녀들에게 심어줄 최대의 자본은 돈이 아닙니다. 빵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옷도 아닙니다. 반드시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선생님이 6학년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한 작문을 쓰라 했더니
남자 아이들 : 나는 커서 사장이 될래요, 대통령, 과학자, 예술자…
여자 아이들 : 내가 자라면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 시집가겠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가정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들은 사회가 주는 가치관, 학교에서 가르치는 가치관, 부모들이 가르치는 가치관,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예절을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 APT 밀집 지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가정 교육이 극단의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녀들에게 소망을 심어 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 어린이를 축복해야 합니다.

16절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축복을 빌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며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으시고 저들 머리 위에 안수를 하시며 일일이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축복권이 있습니다.
어린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 그 축복이 그 아이에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우리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기독교인처럼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는 종교는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찬송으로 가득 찬 성전/마21:12-17
2001-11-21 13:53:28   read : 105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린이 주일에 대한 개념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를 예찬하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어린이를 귀히 여겨주신 주님을 찬양하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주님을 찬양하도록 가르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은 읽어주신 성경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의 찬송으로 가득 찬 성전"이란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굴혈이 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들의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하고 찬송 소리가 울려 퍼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두 번째 방문하신 예루살렘 성전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짐승떼가 우는 소리, 장사치들이 외치는 호객소리, 돈 바꾸는 자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광경을 목격하신 예수님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체면이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더 이상 방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비둘기 파는 자와 여러 가지 짐승들을 파는 자들을 내어 쫓았습니다. 또 돈 바꾸는 환전상을 엎어버렸습니다. 의자들을 때려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씀이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 성전과 그 주변에는 이제까지 유월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에게 송아지나 양이나 비둘기 장사로 재미를 톡톡히 보아오던 장사꾼들의 원망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정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적대감과 분노로 이를 가는 소리가 가득 찼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시니 불치의 병자들이 몰려 왔습니다. 소경들, 벙어리, 앉은뱅이, 절뚝발이, 혈루증 환자, 암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장터인지, 병원인지, 싸움터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란스럽고 복잡한 아수라장 속에서도 어린아이들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늘의 성경 15절에서 말씀하기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어린아이들이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는 소리를 듣고 분을 내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8:2에서는 "주의 대적으로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이 체면, 저 체면 생각하고 또 어른들이 감히 두려워서 전하지 못할 때에 어린이들은 담대히 찬송하고 그리스도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정계 인사들은 어린이들이 찬송을 못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철없는 아이들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구원을 예수님께 요청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치가 떨렸습니다. 그러면 당국자들은 그 귀여운 아이들의 노래를 왜 거부했을까요?
1)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면서도 거듭나지 못하였기에 어린이의 찬송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은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를 저주할 수 없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성령으로 거듭난 아이는 진실하게 찬송할 수 있습니다.
2) 당시의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천대하는 관습 때문에 그들의 찬송을 듣고 분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아이들은 사람의 수에도 들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으로는 어른들도 감히 말도 못하고 잠잠하고 있는데 버릇없는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3)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떠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본 대로 들은 대로 흉내만 내기도 합니다. 뜻을 자세히 몰라도 좋습니다. 어린이들이 찬송할 때 무슨 뜻을 알고 하였겠습니까? 전혀 모르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기뻐하시고 그 음성을 기뻐하십니다. 오늘의 성경 16절에서는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또 찬송의 뜻을 모르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찬송을 완전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이 아이들의 찬송을 싫어해도 예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찬송을 기쁘게 받으실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찬송을 잘했다고 격려하시고 권장하셨습니다.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감돌던 성전을 아늑한 분위기로 바꾸어 놓은 것은 역시 어린아이들의 찬송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속화되고 죄악으로 오염되며, 장사꾼들로 들끓고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성전에서 그래도 역시 하나님의 성전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들의 찬송소리가 저들의 소요소리를 압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찬송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짐승 장사들과 돈 바꾸는 자들과 그리스도를 몰라보는 무리들에게 실망하고 환멸을 느끼신 예수께서 천사같은 어린이들의 찬송소리로 만족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무사기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의 입술은 사악한 세상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하나님께 드릴 찬송은 정직한 자가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시편 33:1에서는 말씀하기를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면 어른들의 입술은 얼마나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참으로 어린이들 앞에서 숙연해져야 합니다. 시편 17:1에서 말씀하기를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짓되지 않은 어린이들의 찬송과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찬송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라는데 유의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5은 말씀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형식적, 의식적으로 드리는 천천의 수양이나 소나 염소의 피보다 오히려 어린이들의 찬양 받으시기를 더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자녀들을 여러분보다 더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잘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기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찬송하는 어린이를 가장 사랑하십니다.(끝)






어린이에게 축복을/막10:13-16
2001-11-21 13:52:51   read : 201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대만 충실하지 말고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으십시오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입니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남기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합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고쳐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신 분'이란 뜻으로 어린이를 존중히 여기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오늘은 78회 어린이 날입니다. 주님께서 어린이를 축복해 주시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다.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어린이를 꾸짖어 보내려는 제자들을 향해 질책하셨습니다.

1. 어린아이들을 꾸짖는 제자들(v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왜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꾸짖었을까요? 성경을 보며 몇 가지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붙들고 복을 빌어주는 일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사소한 일이요, 시간의 낭비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② 어린이를 돌보고 축복하며 가르치는 일이 사소한 일뿐 아니라 그것은 시급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③ 어린이에게 가르치고 돌보는 일은 즉각적인 결실이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질책 받은 제자들의 모습이 없습니까? 성적이 올라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요, 교회 와서 말씀 배우고 예배드리는 것은 사소한 일로 생각하는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에게는 없을까요?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이 선생님, 부모님, 사회, 친구들로부터 마음에 심겨진 세계관, 인생관은 무엇입니까? 행복이 성적순이라는 거짓말입니다. 모두가 이 거짓말을 믿기에 성적이 떨어지면 성공도, 행복도,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여 성적이 부진하면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까지 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의 분개하시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지 않습니까?

2.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첫째, 어린이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자녀를 축복해 줘야 합니다. 특히 가장은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삭과 야곱처럼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축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랍비들에게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 축복을 받으려 한 선조들의 믿음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는 자녀들로 하여금 영적 체험을 하게 하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자기 정체감을 의식하고 자각하여 나의 나됨을 깨닫게 함에 있습니다.

둘째, 어린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v14). 모든 신앙과 행위의 규범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줘야 하고,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는 하나님께 위탁받은 천국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구세군의 어머니 케서린 부스 여사는 8남매를 매우 훌륭하게 키우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사 역시 14명의 자녀를 모두 하나님께 훌륭하게 키워 드렸습니다. 그 비결은 묻는 사람들에게 캐서린 부스는 매우 간단명료하게 답하였습니다. 언제나 악마보다 먼저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먼저 가르치고, 거짓과 위선을 마귀가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갑이나 영국의 설교가 스펄젼이나 모두 어려서 회심을 하였고, 영적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린이를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시급한 일이요, 중요한 일이요, 또한 위대한 일입니다.

셋째, 어린이로부터 배워야 합니다(v15).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이와 같이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배운다는 것은 어린아이같이 유치하게 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순수한 신뢰성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의심없이 믿습니다. 완전히 맡기고 위탁합니다. 이런 어린이들을 배신하고 실망시켜서는 안됩니다. 그 아이들의 순수한 신뢰성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세상사람들이 다 나를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적어도 자기 부모는 확실하게 믿습니다. 이는 천국백성의 기본자세입니다. 어린이는 꿈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꿈은 현실보다 강하고,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합니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하고, 희망은 경험을 이긴다고 합니다. 사랑에 대한 환상적인 신뢰야말로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이겨낸다고 합니다. 어린이에게 이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따지고 계산하고 의심합니다.
어린이를 축복하십시오.
어린에게 말씀을(으로) 가르치십시오.
어린이에게 배우십시오.
어린이날 아침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막10:13-16
2001-11-21 13:50:46   read : 119

안아 주시는 예수님, 이것이 오늘 아침 설교 제목입니다. 물론 때로는 매를 가지고 때리기도 하시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안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안아 주시는 예수님, 품어 주시는 예수님, 안수해 주시는 예수님, 축복해 주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1. 승이를 일으킨 아빠의 사랑

여러분들이 승이라는 어린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두 번 왔었습니다. 승이는 태어날 때 뇌성 마비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일권 전도사는 극도의 괴로움과 절망에 쌓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며 부르짖기도 했습니다. 김일권 전도사는 고통과 절망 중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승이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승이를 데리고 개울가로 가서 승이로 하여금 냇물과 자갈밭을 밟으며 걷게 했습니다. 발바닥의 감각을 되살리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승이를 껴안고 "아빠는 승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빠는 승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껴 안아 주므로 아빠는 승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승이는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동시를 쓰는 꼬마 시인까지 되었습니다.
김일권 목사님은 "눈물 속에 꽃핀 사랑" 이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승이야 일어나라 목놓아 울며 사십 주야 먹지 않고 죽어 하늘만 처다 보던 날 눈물 흘러 계곡의 시냇물 삼십일째 아비 눈물 메말라 뼈만 앙상할 때 십자가 그 예수님 다가와 우리 승이 일으켜 주셨고 사십 일 죽어 다시 산 육신 이끌고 하산하여 믿음으로 가나다라, 1234 냇물과 자갈밭 걸으며 말 가르쳐 사랑으로 녹아 내린 뇌성마비 철의 장벽 지금은 꼬마 시인 천사처럼 착하고 꽃처럼 아름답다 눈물 속에 꽃핀 사랑 내 딸 승이"
승이는 동시를 많이 썼는데 "나비" 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동시도 썼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높이 높이 날아라 구름 위에 하늘 끝까지 날아 올라라 도도미미 노래 부르면서 끝까지 날아라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하늘까지 날아라 찬송도 함께 하며 나비랑 나랑 기도와 말씀도 가지고 하니님께 드리자 그리고 집으로 가자 나비야 나비야 찬송 부르며 집으로 가자. 1990.6.14"
바로 어제도 전화로 김일권 목사님과 통화를 했고 승이와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승이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 요사이는 시를 많이 지으면서 기쁘게 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과거에 김일권 목사님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뇌수정이란 병을 가지고 태어난 저의 어린 아들 철원이가 머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많은 고통과 아픔을 느끼곤 했습니다. 철원이와 함께 종일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곤 했습니다. 제가 때로는 온 종일 철원이와 함께 기도했을 때 철원이는 그렇게도 좋아하며 "아빠는 최고야, 기도를 잘해서 최고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껴 안아 주는 사랑은 뇌성마비도 이기고 뇌수정도 이기게 합니다. 아빠의 사랑이 이러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사실 아빠의 사랑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김일권 목사님의 사랑 뒤에는 예수님의 안아 주시고 품어 주시고 안수해 주시는 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2. 어린 아이들을 안아 주신 예수님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안수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 하시니라."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 중에는 병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경질을 자주 부리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질이 고약한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병도 없고 마음씨도 착한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아이들이 건강하고 착하고 지혜롭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학원 강사에게 데리고 가지 않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아주 잘 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 병원에도 가고 상담소에도 가고 변호사에게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안아 주시고 만져 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눅15장에 보면 예수님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신 다음에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마9장에 보면 죽은 소녀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안수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아이들을 찾으시고 어깨에 메고 집으로 데려 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들을 붙잡아 일으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3. 우리들이 안겨야 할 품은 하나님의 품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건강해 지고 행복해 집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착해지고 밝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아이들 뿐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사이는 하나님의 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엘리야 처럼 쓸어져서 죽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서울 역을 배회하며 노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길 잃은 양들 같이 되었습니다. 집을 떠난 탕자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쓸어져서 죽은 사람들 같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돌아가서 안겨야 할 품은 아버지 하나님의 품입니다.
눅15:20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추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가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 품에 안겨야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안아 주시고 품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46:3,4에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 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예리야가 쓸어져서 죽고 싶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오셔서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왕상 19:5,6).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에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삽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돌아가서 안겨야 할 품은 하나님의 품이요 예수님의 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하고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새벽 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밤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갈 곳은 예수님의 품입니다.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건강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 집에 올라가 갔던 사무엘은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사이 성혜진, 황치신 같은 어린 아이들도 석원이 같은 학생들도 새벽마다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 옵니다. 이제 우리들의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자녀들은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530장






어린이를 향나무같이 키우라/잠22:6-
2001-11-21 13:49:56   read : 327

오늘 제목을 "향나무같이 키워라"(아이들을 향나무와 같이 키워라)고 한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듯합니다.향나무의 특징은 향을 풍기고 색깔과 결이 아주 고아서 조각재, 장식재, 연필재, 가구재등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향나무는 찍어도, 찍어도 향을 풍긴다는 것입니다. 이 향나무는 예수 님과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은 사람들에게 찍혀도, 찍혀도 그것이 상처로
끝나거나 분노나 반항으로 표출되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사랑의 향기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위에서 머리에는 가시로, 양손과 양발에는 못에 찔려 고통이 가해지고 있었지만 "아버지 저들을 죄를 용서 해 주십시오"하시면서 더욱 진한 사랑의 향기를 풍겨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른들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십시오. 너무나 이기적이고, 위기 앞에 쉽게 좌절하고, 끈기있게 참지 못하여 분노를 터트리고, 작은 위기에도 참지 못하고, 작은 상처에도 견디지 못하고 반항하고, 보복하고, 그래도 안되면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까지 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쉽게분노하고,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작은 상처에도 견디지 못하여 쓰러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이 어떤 위기에도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와 같이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되겠다는 것이 설교의 배경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잠언22:6절 말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친다면 향나무와 같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마땅히 가르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1.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표현되어질 때 가장 인생다운 인생을 사는 것을 가르칩시다.. 라듐을 발견한 퀴리부인은 필사의 노력 끝에 라듐을 발견했는데 1g에 무려 1억원이나 되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특허를 내어 돈방석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공개발표하고 세상에 보급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복지와 혜택을 누리게 할 것인가? 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이것
입니다. "라듐은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찾은 것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 인류의 소유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성경찬송 옆구리에 끼고만 다니는 교인 만들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웃에게 참사랑을 줄 수 있는 자로 가르칩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독생자도 아낌없이 주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의 첫 번째 대상임을 가르쳐야 하고, 그 사랑의 표현을 이웃에게 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

둘째는 고난이 축복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의 조건으로 주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고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야고보1:2-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표준새번역) 고린도전서10:13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말고는, 여러분에게 덮친 시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표준새번역)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에게 가르치십시오.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주십니다. 데이비드 부린콜리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가끔 빵 대신에 벽돌을 던져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이는 그 벽돌로 추춧돌을 삼아 기막힌 멋진 집을 짓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과잉보호만 하지 말고 왜 고생이 복인가를 체험하게 하십시오.

셋째는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모두가 특별한 사람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최근에 제가 강남에서 목회하시면서 자전거만 타고 다니신다고 하시는 목사님 한 분과 얘기하면서 목사님은 자전거 타고 다니시지만 교인들은 다 부자일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강남에 사는 자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다 제 잘난 맛에 삽니다. 지하에 세들어 살아도 자기가 제일인줄 안다는 것이지요. 세를 빼서 다른 지역에 더 크고 좋은 집에 살수 있어도 강남에 살면서 큰소리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강남을 지나면서 기사가 하는 말이 이곳에는 젊은 아이들도 택시를 타면 말투가 얼마나 건방지고 거만하고 있는 티를 내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장래가 밝지 못한 현상 아닙니까? 베드로가 예수 님 앞에서 장담하기를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 지라도 저는 죽어도 주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나도 실수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특별하면 다른 사람도 특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다른 것은 다 잘했는데 자기들만 특별하다고 가르쳤기에 예수를 죽이는 과오를 범했습니다.저는 목사로서 나름대로 특별한 목회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도 순수하고, 하나님 뜻에 맞추어서 하고 있으며, 다른 목회자들보다 나은 목회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교회 오는 사람들은 떠나기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지만, 목사에게 불만을 품고 가는 사람을 보면서, 아! 나도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 하면서 깊이 반성하면서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곳에는 특별한 곳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떠나가는 그들이 또다시 실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나도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도 특별하고,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처럼 나도 실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2.어떻게 가르칠 것입니까?

첫째는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이론만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만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향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찔레나무지만 너는 향나무가 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가르침이 조금 어설프더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완벽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린이들은 장래의 이 교회를 책임지고 가야 할 중요한 자들입니다. 교회를 책임진다는 말은 이 세상을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마땅히 기르칠 것을 가르치지 아니한다면 저들은 남을 찌르는 찔레나무가 될 것이고 그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합니다.잠언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나, 훈계의 매가 그것을 멀리 쫓아낸다."(표준새번역 잠언 22:15) 고 말씀하셨고,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표준새번역 잠언23:13)
오늘 우리 시대에는 향나무와 같이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친다면 그들이 자라서 향나무와 같이 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어린이의 매력/마18:1-6
2001-11-21 13:48:55   read : 244

유태인의 속담 가운데는 [오른 손으로 아이를 벌주면 왼손으로는 안아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유태인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는 중요한 원칙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매를 댈 일이 없을 만큼 말을 잘 듣고 얌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어머니들은 매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칩니다. 매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바로 [침묵]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벌은 엄마 아빠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일단 부모는 그 아이를 불러서 주의를 주게 됩니다. 주의를 주어도 되지 않으면 야단을 치지 않고 일단 그 아이를 품에 아주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꽉 껴안아서 엄마의 힘이 아이에게 전달되도록 끌어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이번에는 아이의 손목을 꽉 움켜쥐어서 엄마의 힘이 아이에게 전달되도록 한다고 합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 힘으로 너를 강제적으로 다룰 수가 있다는 경고장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부모가 힘이 아니라 [침묵]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힘을 사용하는 방법보다 [침묵]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도록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못을 반성하거나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그 아이를 일정한 공간에 격리시켜 놓고 일체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 대 때리는 것은 잠시의 아픔이기 때문에 잠깐 견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침묵 속에서 생활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힘들고 두려운 시간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단절되는 순간부터 심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스스로 잘못을 뉘우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침묵은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침묵을 통해서 엄마도 일시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자라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투정하지 않으며 또 부모가 야단을 치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단치고 나면 반드시 해가 떨어져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꼭 그 아이를 품에 안아준다고 합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는 최고의 표현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반드시 벌에는 애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표현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제대로 올바르게 교육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의 고민은 내 자녀가 바로 교육받아서 잘 성장할 때는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고슴도치는 볼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고슴도치 새끼는 꼭 밤송이 같아서 정말 볼 것이 없는데 그래도 어미는 제 새끼가 예쁘다는 겁니다. 자기 자식 미워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잖아도 예뻐 죽겠는데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조그만 관심을 보이면 부모는 그 자식들을 보면서 얼마나 대견하고 예쁘게 생각합니까? 부모는 그저 감동에 사는 사람들이라 제 자식들이 조금만 잘하면 그냥 감동을 합니다.
아직 학교를 가지 않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 같으면 자기 자녀들은 혹시 천재가 아닌가? 하고 기뻐합니다. 한 3-6살 때까지는 보통 아이들은 외우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 우리 아이는요, 머리가 좋은가 봐요! 한번 읽으면 동화책을 줄줄 외워버립니다] 하고 자랑합니다. 어릴 때 그 모습 그대로 성장하면 이 땅 위에는 수재들로 가득차 있을 터인데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어릴 때 그 많은 수재들이 커서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릴 때 부모에게 사탕 하나를 입에 물어주어도 그 아이가 커서 모두 효자가 될 것처럼 자랑을 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효자가 될 것 같은 자식들은 다 어디 가고 이 시대는 점점 어른들을 공경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모가 그 자식들을 자랑하는 것은 그 만큼 부모는 자녀들을 기쁨으로 보고 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키우는데 1년 365일 매일 그런 기쁨 속에서 기르면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그 아이들에게서 인간의 죄성이 드러나게 될 때 부모들은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를 놓고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의 모습을 나타낼 때 그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고 교육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말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어릴때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부모는 별로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을 하게되면 그때에는 인간의 본능과 죄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고집 피우면 어떻게 됩니까? 이건 황소고집이예요. 체면도 없습니다. 길거리에 누워버리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또 욕심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물건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를 않습니다.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주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키는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죄성의 모습들입니다.

윌리엄 골딩이라는 작가는 그의 소설 [파리대왕]에서 바로 이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남태평양의 외딴 무인도를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한 무인도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여행을 가던 한 떼의 소년들이 불시착을 하게 됩니다. 이 어린이들은 이제 문명의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무인도에서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영국의 국회를 모방하여 가장 민주적인 결정 방법을 통해서 그 어린이들 중에서 지도자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규율을 정하여서 그 규율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전체의 어린이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두 패로 나뉘어 지게 되고 두 패의 지도자들은 권력싸움을 하게 됩니다. 힘이 커진 그룹이 힘이 없는 그룹을 위협하게 됩니다. 힘이 있는 그룹은 동물을 잡아서 창으로 찌르면서 마치 식인종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잔인한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순수해야할 어린생명에게 있는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물을 찌르고 위협하던 어린이들은 이제 무인도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속죄양을 만들게 됩니다. 자신들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소년의 무리들 중에서 가장 힘이 없는 뚱뚱이 소년 하나를 잔인하게 돌로 쳐서 죽이고 맙니다. 그 뚱뚱이 소년은 여러 소년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아이였는데 결국 다수의 힘을 갖고 있는 소년의 무리들이 뚱뚱이 소년을 죽이게 됨으로써 과연 인간의 구원이란 가능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더욱 거칠어진 다수의 집단들은 상대방의 지도자를 따라가서 창을 들어서 막 죽이려고 하는 순간에 그 섬에 온 구조대에 의해서 무인도로부터 구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무서운 원죄적 본능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린이들에게도 인간의 본능적인 죄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인도에 유배된 아이들에게 누가 살인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두 집단으로 패를 갈라서 권력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 권력싸움에서 결국은 그 집단 중에서 가장 똑똑한 자신의 동료를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지도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인간에게는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적 본능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어린아이에게서도 인간의 죄성을 보고 지적을 한 것처럼 인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여러분 원죄를 인정하십니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분 긍정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부정적인 죄인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죄성으로 부터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릴 때부터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은 영영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죄성과 부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요?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포함해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죄성으로 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골딩이 폭로한 인간의 죄성과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인간이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이 주어질 때 인간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 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와 부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을 빌립보서 2: 7-8절에서는 [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부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어린아이와 동일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서 어린아이와 동일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어린이와 같이 동일하게 생각함으로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낮아지셔서 세상 가운데 오셨고 자신의 모습을 바로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에게 있는 부정적인 죄의 모습을 강조하시지 않고 어린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위선 속에서 살고 있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와 같은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어린이들과 같이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교만한 위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있는 가운데 세워두고 말씀하시기를 이 어린아이와 같은 낮아지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매력은 낮아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 겸손함에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과장하거나, 부풀리거나, 포장할 줄을 모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상대하려면 그들의 눈높이로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져야 어린이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또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습니다.
어제 잠깐 시간을 내어서 저희 집 뒤에 있는 산을 산책했습니다. 산을 막 올라가니까 산 위에 있는 평지 공간에서 어린이 두 명이 자기 어머니와 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서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앞에서 재미있는 모양의 몸짓을 하면 아이들이 어머니가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면서 재미있게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 어머니는 분명히 어린이였습니다. 어른이었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기꺼이 어린이가 되어준 것이었습니다. 어린이와 같아지지 않고는 그 어린이들을 상대로 놀아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는 스스로 어린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의 기쁨을 위해서 그 어머니는 스스로 낮아져서 어린이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어린이와 동일하게 생각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인간 수준으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겸손하게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낮아지심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부터 파생하는 고통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그 고통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 죄의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서 하늘의 거룩한 자리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낮아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에게서 낮아짐과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죄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이지만 예수님은 그 죄성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린이의 매력을 강조하셨습니다. 조금 있다고 교만하고, 조금 배웠다고 우쭐거리고, 조금 권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우습게 보고, 남보다 조금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잘난 체 하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시고 오직 겸손하고 낮아진 매력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을 내세우시면서 바로 이 어린이와 같이 낮아지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높임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이의 매력은 바로 낮아짐에 있습니다. 겸손함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좋은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 가운데에는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어린이와 같은 매력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좋은 신앙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서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겸손함과 낮아지심을 손수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어린아이처럼 겸손함과 낮아지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시고 겸손해져서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서 크다고 칭찬 받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린이를 예수님께로/마19:13-15
2001-11-21 13:48:03   read : 122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이는 잠시 즐거우나 예수님의 품에 안긴 어린이는 영원토록 행복합니다. 가정과 나라의 꿈인 어린이가 예수님 안에서 자라면 그 가정과 나라는 천국으로 변합니다. 오늘의 수많은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예수님 안에서 성장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특별히 로마의 믿음의 어머니들은 혹독한 박해 가운데도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들의 도우심 가운데 약 300년이 지난 뒤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30여년 위의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1.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예수님
본문은 예수님이 바쁘시고 긴장된 수난의 도상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아기들을 훌륭한 사람에게 데리고 가서 축복받는 것을 귀하게 여겨서 예수님에게 많이 데리고 와서 축복기도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지치시므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 오도록 허락하시고 제자들의 제재를 만류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중요성을 잘 아셨기 때문에 당시는 어린이들의 인권이 아주 무시되고 죽이고 살리는 권리도 부모에게 있던 때에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밀려드는 어린이들을 예수님은 안으시고 사랑하시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가리키며 "천국이 이런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아이들도 죄인이고 예수님을 믿어 중생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이는 모두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 갈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아이들의 특성인 정직과 순결과 신뢰와 겸손함을 모든 사람이 배우고 지녀야 할 성품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의 기대를 따라 하나하나 안으시고 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어린이관입니다. 여기에서 유아세례 제도도 시작되어 모든 교회들이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2. 어린이에게 예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많은 선물이 있는데 나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 첫째요 다음은 각 가정에 어린이를 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어린이들 곧 자식들 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자녀들 양육함에 수고와 어려움이 따름으로 두려워하기도 하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으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녀양육에 수고가 크나 그 이상의 기쁨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귀한 것이기에 어려움도 따르는 것입니다. 귀하디 귀한 선물을 가장 잘 양육하는 것은 지식만 쌓고 출세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탄의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자기의 소질을 잘 계발하여 인류를 위하여 이바지 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비록 그가 다재다능하여 출세함으로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드래도 그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그의 출세는 자기의 영달을 위한 것이요 이웃을 위한다고 하나 그 사상의 뿌리는 결국 자기의 유익을 위한 자기 사랑을 벗어날 수 없고 이 세상을 떠남으로 모든 것은 끝나고 말며 그 영혼이 멸망을 받으므로 실패인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인도하시사 진정 이웃을 위한 삶을 살다가 천당에 감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혼탁한 세상살이에서 하나님이 보호, 지도 하시므로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게 되므로 모든 사람은 어릴적부터 예수님께로 데려오고 예수님을 가르쳐 믿음으로 살게 하여야만 행복한 삶을 삽니다.

3. 어린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칩시다.
온전한 신앙인격을 형성하자면 세상 교육만으로는 교활한 죄인을 만드는 것 뿐이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 때 비로소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자녀를 부모가 잘 알지마는 모르는 부분이 많고 선생님이 제자를 지도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부모, 스승은 어린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언행의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혼을 사랑하여 성경으로 예수님을 가르칠 때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부모 스승에게는 지혜와 통찰력을 주고 어린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고 성장케 합니다. 따라서 앞선자는 신6 : 4∼9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기도하며 가르쳐야 하나님의 도움으로 온전히 자랍니다. 그리고 하나의 조개에서 바다 소리를 듣고, 한알의 꽃씨에서 꽃을 보는 혜안으로 어린이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과 뜻을 보아야 합니다. 영국의 뉴톤은 미숙아로 출생했으나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조각가 로댕은 성적이 늘 꼴찌에 예술학교에 세 번이나 낙방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5세 때 겨우 말을 했고 글을 읽지 못하는 멍청한 아이로 산수는 늘 낙제점이며 선생님으로부터 환상에 사로잡힌 저능아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에디슨은 1 + 1은 왜 2냐며 어떤 날은 오리 새끼를 낳겠다며 온종일 오리알을 품고, 혼란스런 문제아로 퇴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명과 그에 따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며 성경을 기도하며 가르치는 것이 앞선이의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향한 맹목적 사랑이나 익애에서 벗어나 어린이를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데려 가서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릅시다. 그 아이의 생애를 통해서 내 꿈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성취하도록 기도하며 도웁시다. 그 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멘





어린이의 가치와 가정교육/신11:18-21
2001-11-21 13:46:25   read : 206

1.어린이의 가치

①어린이는 천국에 들어갈 자의 표상(表象)이다.

·천국에 들어갈 자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 자이다.---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이'= ⓐ말씀에 대한 단순성, ⓑ겸손한 신뢰심, ⓒ하나님의 섭리와 보살핌에 대한 의뢰성을 가진 사람.

②어린이는 천국에서 큰 자의 표상(表象)이다.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이다.---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③어린이는 축복의 대상이다.

·어린이는 축복의 대상이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막 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④어린이는 주님의 대리자(영접하면...)로 여겨야 한다.

·어린이를 영접함은 곧 주님을 영접함과 같이 귀한 일이다.---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눅 9:48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⑤어린이는 천국 복음의 진리를 알기에 합당한 자의 표상이다.

·어린아이는 이것(=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가장 합당한 자이다.---눅 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아이처럼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⑥어린이는 주님을 가장 가까이 뵈올 수 있는 자이다. 이는 주님이 그들을 가까이 해주시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주님께로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셨다.---눅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⑦어린이는 악에서 먼 자이다.

·어린아이는 아직 악에 익숙하지 않은 자를 말한다.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이다.---고전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2.어린이를 위한 가정교육의 중요성

*가정교육은 인간교육의 근본이 되는 자리이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거듭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도 그 중 하나이다.---(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가정에서 어린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①사려(思慮)가 깊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파스칼: 사람은 갈대이다. 우주에서 가장 나약한 갈대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원자력의 이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사고 방식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변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무장 없이도 재난에 대응하게 되었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인류의 마음에 달려있다.

②이상적인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제일 가는 친구다. 그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즐긴다.

③사람다운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마담 드 스텝엘: 나는 사람을 쳐다보면 볼수록 개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사람다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뜻)

④위대한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맹자: '위대한 사람'이란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이다.

<어린이에 관한 명언>

·윌리암 펜: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아이들보다 말과 개를 더 조심스럽게 다룬다.

·아이작 와츠: 작은 둥지의 새들은 서로 화목한다. 그러나 수치스러운 것은 한 가족이 외면하고, 비웃고, 싸우는 것이다.

·그로리아 가이더: 아이들-그들은 당신의 가장 좋은 희망이라는 씨앗의 열매이다.

<어린이의 믿음과 우리에게 주는 교훈, 마가복음10:13-16>

①어린이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적인 보호를 요구한다.

부모나 보호자가 있는 아이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보다 생각과 생활의 리듬이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를 바라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②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동경하며 꿈을 키운다.

어린이들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동화와 같은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다.

*성도는 세상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천국을 향해 순례자의 길을 걷는 별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③어린이는 유혹을 받기 쉬운 연약한 자이다. 이것은 어린이의 의지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늘 자신을 조심하고, 잘못이 있을 때에 회개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 교육에 칭찬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아무리 부족한 아이에게도 칭찬할 요소는 있는 법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찾아내어 선용해야 한다.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라고 했다. 우리의 가정교육을 위하여 명심할 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어린이를 사랑해야 한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거룩한 마음>

오래 전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노인이 공원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하도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니 무엇인가를 주머니에 가득히 담고 막 가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 노인을 파출소로 연행하여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못, 그리고 삐죽삐죽 나온 쇠붙이 같은 것들이 나왔다. 깜짝 놀란 경찰관이 그런 것들을 무엇을 하려고 주워 모으느냐고 묻자 이러한 것들을 어른들이 무심코 버릴 때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들이 다치게 하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학자 요한 페스타롯치였다.

<어린이를 언제부터 가르칠 것인가?>

헬라의 유명한 교육가에게 어떤 이가 아이를 업고 찾아가 "언제부터 교육할까요?" 라고 물었다. "아이의 나이는?" "겨우 두 살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꼭 2년 늦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교육가의 대답이었다. 성서적으로 보면 참된 교육은 모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도산 안 창호 선생은 "한국의 청소년들아 일하자.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외쳤습니다.

#거짓없는 믿음의 사람: 디모데!---(딤후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포로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23명의 성자 중에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부가 18세 이전에 신앙생활에 들어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일찍부터 하나님을 위하여 사회인류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이다.

#모짜르트는 6살 때부터 독일 황제 앞에서 연주를 했고, 스펄죤 목사는 20세때 영국사회에서 대설교가로 말씀증거에 힘썼고, 헨델은 10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리빙스톤은 23세 때에 검은 땅 아프리카로 찾아가서 선교와 그리고 그 백성들을 살리는 일에 헌신했다. 요한 웨슬리는 1725년 9월 22세에 집사목사가 되어 88세까지 전도를 위해 살았다. 칼빈은 26세 때에 "기독교 강요"라는 위대한 저서를 내고 종교개혁에 나섰습니다.

#신부 자비엘은 "7세난 어린이를 나에게 맡겨라. 그리하면 일생 천주교인이 되게 가르칠 수 있다."고 호언 장담했다. 그래서 천주교는 지금도 교회가 있는 곳마다 어린이 유치원을 설립한다.

#요즘 교회는 어린이집 운영을 거부하고 있다. 천주교나 불교는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데...

▶호박순은 돌려놓는 대로 올라가듯이 어릴 때 방향을 잘 잡아 주고 바로 교육해야 커서도 훌륭한 인물이 된다. 공산주의자들도 어린이를 부모에게서 빼앗아 어릴 때부터 집단으로 수용하며 공산주의 사상을 집어 넣는다. "어버이 김일성 수령, 어쩌구 저쩌구"하며 심지어 그 어린아이의 손에 총을 들려 군사교육을 시킨다. 불교에서도 아이들을 절간에 등록시킨다. 이것이 모두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수교단(Jesuit)의 창시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ngatius Loyola)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나에게 어린이를 그의 일생에 있어서 7년간만 맡겨라. 그러면 그 후에는 누가 데려가든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론:

<어린이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독일의 한 나이 많은 교장 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는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추어 그들에게 절을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소년들 중에 장차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왜냐하면 그 소년들 중의 하나가 마틴 루터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칭찬, 사랑, 일찍부터, 바른 방향으로 주님을 대하듯 최선을 다해 양육하여 나라와 교회의 역군이 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귀한 요소들을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할 것이다. 아멘.






기독교와 어린이/마18:1-10
2001-11-21 13:47:19   read : 111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배우자/마18:1-6
2001-11-21 13:44:23   read : 175

어린이 주일, 이 땅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구김살 없이 은혜와 진리 안에서 자라나기를 기원하며......
어린이들은 신체적 힘이나 경험이나 지식이나 사고 방식이 어른만 못하다. 그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는 자랄 수도 없고 교육받을 수도 없고 바른 인격을 갖출 수도 없다. 모든 예의, 범절, 도덕, 신앙을 어른들에게서 배우고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이다. 어른은 어린아이들의 의존의 대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하고 어린이를 통하여 천국을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천국시민의 모델을 어린이를 통해 보여 주었다.어른들은 아이들 보다 경험이 많고 지식도 많고 힘도 세지만 자기가 남보다 크다고 하는 교만과 남보다 크고 높아야 한다는 야망도 강하다. 천국에서 큰 자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는 큰 자라고 했다. 맹자께서는 "참된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 라고 했다. 워드워즈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다" 고 하였다.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다. 첫째로 3절 말씀에 "너희가 돌이켜 "라는 말씀이다.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순박하고 순진한가? 얼마나 티없이 깨끗한가? 그러나 어른의 모습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의 모습에서 순박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그때 하나님을 올바로 믿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잘못할 때 책망을 들을 줄 안다. 책망을 들으면 금방 돌이킬 줄 안다. 그러나 어른들은 책망을 받으면 감정부터 상하고 자기 합리화 내지 자기 변명이 급급하다. 자기를 돌이켜 볼 줄 아는 것이 신안의 세계다.
어린아이들은 믿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를 의지하고 학교를 다닐 때에도 선생님을 믿고 지식을 키워 나간다. 선생님을 믿지 않는 아이는 절대로 지적 발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의 독립성을 내 세우며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간다. 누구나 자기 중심이 되면 남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에는 매사에 증명서가 필요하고 계약서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족해서 공증까지 받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불신의 벽이 두껍게 쌓여간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아이들처럼 순박한 믿음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너무 쉽게 믿는다. 상대방을 의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괴범에게 끌려가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꾸며낸 동화 속의 이야기에서 슬피 울고 기뻐서 웃는다. 어린이의 마음은 이렇게 쉽게 믿는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어머니의 품과 젖을 사모하여 성장하듯 어른들은 신령한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갈급해 해야한다. 시4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고 했다. 믿음으로 살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고 살듯이 신령한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어린아이들처럼 천진 난만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살지 못한다면 돌이켜야 한다. 돌이키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돌이킨다는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마귀는 돌이키지 못한다. 인간 이하의 짐승도 돌이킬 줄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잘못 된데서 돌이킬 줄 아는 삶이다. 믿는 성도들도 실수 할 때가 있고 잘못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성도의 다른 점은 빨리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하여 잘못 된데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둘째로 생각 할 것은 4절에 있는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라는 말씀이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다. '자기를 낮추다'는 것은 겸손히 섬길 줄 아는 마음이다.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높아지려는 심리 때문에 굽이 높은 신발을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신는 것이다. 그래서 high hill 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신발이 높은 것 보다 낮은 것을 원하고 신발 신는 것보다 신발 벗는 것을 원한다. 피차 섬길 줄 아는 마음이 천국에서는 큰 자가 됨을 말씀하고 있다. 가정은 서로 섬기는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다음 하와를 지으실 때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제가 결혼식 주례할 때 신랑 신부에게 자주 하는 말이지만 배필이란 영어로 help meet 이라고도 한다. meet to help 라는 뜻이다. '돕기 위하여 만난다'라는 말이다. 돕기위한 만남이 되지 못할 때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가정 안에 불화가 생기는 것이다. 가족들간에 서로 돕지 못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며 섬기려고 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만이 있을 때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ex) 제가 어리석은 줄 알면서 가정사를 한가지 말씀 드리겠다. 지난 사순절 기간동안에 새벽기도 마치고 나면 고3 도 있고 해서 아이들 학교 보낼 시간이 30분밖에 없었다. 저의 집사람이 혼자서 너무 바빠하는 걸보고 제가 도시락 3개 싸는 걸 도와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는 열가지 이상 곡식을 빻은 가루를 가지고 죽을 쑤어서 먹이는데 제가 죽을 쑨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제가 쓴 죽이 아니면 먹지 않을 만큼 맛있게 죽을 쑨다. 저는 아침에 주방에서 아이들 학교 보내는 일을 돕는 것이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뭔가 가정을 위해서 돕는다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고 아이들이나 식구들도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다 적은 일이지만 피차 돕는 식구들이 갖는 작은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천국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보람된 일을 하는 곳이다. 보람은 남을 섬기는 희생의 댓가로 얻어진 주님의 보상이다. 이 땅에서도 가장 고상한 일은 보상이 없다. 선한 일은 돈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일 뿐이다. 가슴 뿌듯하게 여기는 감격스러운 일들은 모두가 보상이 없는 섬기는 일이다. 저는 요즘 우리 교회 안에서 섬기는 분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마음에 큰 감동을 받는다.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섬김, 목요 선교회에서 노인들을 위한 섬기는 봉사자들, 토요 열림마당에서 재가 장애인을 위한 헌신적인 자원 봉사자들, 참으로 기쁨을 느낀다. 본인들도 그 어떤 다른 것으로 느낄 수 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믿는다.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보육비나 월급을 받지 않는다.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에게는 월급이 없다. 그것은 파출부나 가정부가 아니라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에서는 화평과 즐거움이 은혜로 주어진다. 천국을 위한 일은 보상이 없으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주신다. 만약 교회 학교 교사에게 월급을 주고 성가 대원에게 월급을 주고 권찰님에게 월급을 준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상으로 아니 희생하면서 섬기면 섬길 수록 넘치는 기쁨과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ex)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아프리카 가봉에 가서 의료 선교를 할 때 친히 수술실 청소, 화장실 청소, 식당 청소, 큰 일 작은 일 다 혼자서 했다. 식당 청소를 하고 있을 때 건강한 청년이 구경만 하고 그냥 서 있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청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같이 청소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나는 그런 일은 안합니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청소같은 것은 안합니다. 그런 일은 공부 안한 사람이나 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나도 학생 시절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소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한 다음에는 아무 일이나 다 합니다. 그리고 섬기는 것 봉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말로서의 겸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의 겸손, 낮아짐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 5절에 보니까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여기 내 이름으로 즉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라는 말은 어린아이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잘 양육하는 것은 부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 이라는 것이다.
신 6:2,7 에서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않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다.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살도록 도와주고 선하게 살도록 이끌어 주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믿음을 갖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주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렇게 양육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린이를 영접하기보다는 실족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반성해야 한다. 남을 실족케 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죄를 짓도록 가르치거나 방치하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가장용서 할 수 없는 죄는 "다른 사람을 죄 짓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한 개인의 범죄는 그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죄의 행렬에 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앞에 장애물을 놓 두는 것은 물론 죄 이지만 그 장애물이 있는데 치워주지 아니 하거나 또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가르치지 않는 것도 죄악이다.
ex) 유명한 교육가 페스탈로찌는 시간만 있으면 길거리에 나가서 깨진 우리 조각을 줍고 있었다고 했다. 왜 그랬나? 아이들이 맨 발로 놀다가 발을 다칠까봐 그런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발을 다칠 수 있고, 유리 조각이 있음을 알고도 치워주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다치도록 만드는 죄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엄청난 죄악의 장애물이 어린이들 앞에 놓여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잘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절대적 책임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실족케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야 한다는 엄한 경고를 우리 모두 겸손히 받아 들여야 한다.
어른들의 죄악 때문에 오염되어 지는 어린 심령들에게 감히 미안한 생각을 가지면서, 순수하고 진실하며 신뢰성을 가진 어린이의 품성에서 우리의 믿음이 본받아 나가는 신앙이 되시기 바란다.







축복 받은 어린이/신6:4-9,막10:13-16
2001-11-21 13:43:32   read : 362

미국같이 큰 나라에 없는 어린이날이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큰 축복입니다. 물론 어린이 주일은 미국이나 구라파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날은 특별히 지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으셔서 그들에게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어린이들을 불러서 팔로 안고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팔로 안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하신 것은 어린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축복 받은 아이들은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축복 받는 어린아이들은 천국 시민의 표준으로 삼으셨습니다.우리교회 안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아이들을 극진하게 사랑하면서 그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부모님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이땅에 보내주신 어린 새싹들로서 이 시간에도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들입니다. 어린이 전문가인 제임스 돕슨박사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축복하고 잘 생겼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린아이보고 못생겼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간절히 부탁을 했습니다.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어린이는 정신적으로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나라와 민족의 장래는 정치,경제,교육,문화와 종교가지도 건전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은 어린아이들이 축복을 받으면서 참된 교육을 받는데 있습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꽃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린아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기성세대인 어르신들께서 어린 새싹들을 위하여 큰 관심을 가지시고 기도하시면서 축복을 계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진합니다. 깨끗합니다. 겸손합니다. 정직합니다. 착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천사와 같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 귀엽기 한이 없습니다. 마 18: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어린 우리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들을 축복하면서 천국의 일꾼으로 길러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모에게는 1)양육의 책임이 있습니다. 2)교육의 책임이 있습니다. 3)신앙으로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4)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감화력으로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성장하는 과정 또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이 세상 것 모두 빼앗겨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신 것과 만백성의 구주이신 것을 확실하게 믿도록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뮬러 박사가 통계 조사한 내용을 보면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꾸준하게 예배 참석하는 가정의 자녀들 70%가 성인이 된 후에 신앙을 잘 지켜가는가 하면 부모님들이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은 성장한 후에 6%만 신앙을 지켜간다는 통계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우리 어린 아이들이 축복을 받고 이땅에서 믿음으로 살수 있도록 잘 가르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잠1:7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신 말씀을 어린아이들 마음속에 심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천국으로 갈수 있는 축복 받는 어린아이들을 우리들의 실수로 지옥에 가게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이 시간에도 축복을 하시고 계시는 줄로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유아 세례를 베풀게 된 것 영광입니다. 이미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아이들에게 유아세례패를 40개나 전달하게 된 것은 우리교회가 젊다는 증거요 생동감이 넘치고 있는 증거인 것을 믿습니다.
1)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는 어린아이가 되어 축복 받기를 바랍니다. 2)하니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우리 자녀들이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서 축복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온갖 삶의 터전이요 인간관계와 삶의 방향이 다듬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의 초창기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교회에 모여서 그들의 꿈을 예수님 안에서 아름답게 가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회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세상 풍조에 휩쓸리면서 국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광주 서남교회에서는 1)청소년들이 교회에 소속감을 갖도록 큰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2)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일에 큰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3)앞으로 교회의 건물을 설계하실 때 청소년을 위한 교육의 공간을 넓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모이게 될 때 21세기 우리교회는 많은 일꾼들과 함께 한국교회를 빛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예수께 인도된 어린이/마19:13-15
2001-11-21 13:41:29   read : 137

외교관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일에 쫓겨서 외국에 출장도 잦고 모든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래서 가정과 아이들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더랍니다. 어느 날 모처럼의 휴일이 되어서 그는 생각하기를 '오늘은 좀 낮잠이나 실컷 자고 미루었던 책이나 보면서 하루를 쉬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과 바람이나 쐬고 오라." 고 닥달을 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집에 있었다가는 아내 등살에 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아이들과 같이 낚시질을 나갔더랍니다. 아이들은 좋아서 마구 뛰면서 한껏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왔는데 이 외교관, 이 남자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낚시를 다녀왔다. 소중한 하루를 낭비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아들 중에 하나는 커서 역사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게 될 때 옛날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그 옛날 일기장에 이 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나의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행복이란 뭡니까? 우리는 행복을 때때로 물질적 여건을 두고 생각하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의복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도 싫습니다. 역겹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전에 제가 해외 여행을 가는데 비행기 안에서 잠깐 졸았는데 졸다가 구수한 냄새가 코에 들어 와서 눈을 떠 봤더니 거기 점잖게 생긴 어른이 돈도 많아 보이던데 어떻게 거기에 있는 웨이츄레스들을 잘 얘기 해 가지고 몰래 라면을 한 그릇 끓여서 잡수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냄새가 좋은지 좀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질 않데요. 그 아가씨 보고 좀 부탁을 했더니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자, 그 비행기에서 주는 좋은 음식도 있는데 그거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라면 한 그릇입니까? 이것은 그가 가진 입맛 때문입니다. 그 입맛이 그쪽으로 작용을 하니깐 그 외에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행복한 사람을 보실까요? 우리교회 장로님 한 분이 가끔 늘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가만히 보면 너무 빨리 해요. 그래서 제가, 난 반도 못 먹었는데 벌써 다 먹었어요. 그래서 제가 "점잖은 양반이 비신사적이라고 좀 발란스를 맞추어서 속도를 맞춰 가지고 먹어야지. 이렇게 마주 앉은 사람에게 홀랑 다 남겨두고 이렇게 하면 이게 되겠는가?" 했더니 "목사님 저도 그걸 압니다. 그러나 음식을 입에 넣고 한번 씹어 보면 너무 맛이 있어서 홀랑 넘어 가버리고 맙니다. 입에다가 더 오래 둘 수가 없어요. 홀랑 넘어 가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 잘했다." 그러고 말았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이면 뭘 합니까? 내 입맛이 없는데야. 결국은 내 입맛대로 행복한 거예요. 이 입맛이라는 말을 참 중요하게 들어야 됩니다. 사람의 입맛은 4살 때 결정이 난답니다.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특별히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사람은 40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답니다. Original Point로 확 돌아갑니다. 그간에 뭐 양식이다 불란서식이다 뭐이다 하고 먹다가도 아닙니다 나이가 4, 50 되면 다시 옛날 자기가 자랄 때에 먹던 그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가 버립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 주부들께서 남편에게 잘 하고 싶거든 '이 사람이 4살 때 무얼 먹었나?' 이걸 연구해야 됩니다. 지금 좋은 음식을 내놓고 내가 정성껏 만들었는데 네가 왜 이걸 못 알아보느냐? 그건 무식한 여자입니다. 오늘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문제는 어렸을 때 무얼 먹었느냐는 겁니다. 그 때의 입맛이 이제 내 한평생 나를 지배하는 거예요. 그래 입맛이란 뭐냐? 바로 가치관이요, 세계관이요, 행복관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복하냐구요?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의 기준해서 행복한 겁니다.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그래 우리가 옛날에 지질이도 못 살면서 그저 땅문서만 좋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저 땅문서만 손에 쥐고 있으면 행복한 줄 알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예? 바로 이런 것들이 다 바로 여기 문제예요. 어떤 때는 부모님이 좀 공부를 좀 못해 가지고 자기가 못한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못했지만 이놈아 너 공부해라." 그리고 한평생 소리를 질러서 공부만 하면 될 줄 알고 그런데 해봤는데 별 것도 아니잖아요. 이것도 또 문제가 있더라구요. 어쨌든 이 가치관 이것은 어렸을 때 형성이 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육과 명령에 따라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아서 모방하는 것이올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좋다. 이것을 먹어라. 저것이 옳은 길이니까 저것을 행해라. 이건 나쁘다. 저건 좋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은 소용없습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느낌으로 배웁니다. 부모님이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부모님 자신들이 맛있게 먹어야지요.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하고 먹는데 자긴 안 먹으면서 너만 먹어라. 이게 바로 문제라구요. 자, 공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하다못해 잡지라도 보면서, 책을 보면서 "공부해라." 그래야 공부지. 나는 댄스홀로 가면서 "야 공부해라." 이게 되겠어요? 이게 망조라는 거예요. 결국은 부모님이 무얼 즐기고 있나? 뭘 좋아하고 있나? 뭘 선호하고 있나? 그걸 아이들이 다 알고 있어요. 벌써... 눈치가 멀갑니다요. 여기서 공부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 인생 철학이 형성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산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된답니다.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 어렸을 때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거기서 다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죄는 실족케 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하는 일로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죄가 크냐?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내가 죄 짓는 것이 죄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 죄 짓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죄 원인 제공 죄가 있는 거예요. 자기는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남편 실족하게 만들고, 아이들 죄 짓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자기는 뭐 다 잘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니올시다. 죄 원인을 제공하고 있고, 실족케 하고 있고, 죄 짓게 만드는 죄를 지었어요. 이거 더 큰 죄요. 이보다 더 큰 죄는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깨끗한 아주 깨끗한 백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거기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이거 때문에 한평생 저들은 불행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은 가장 큰 죄라고 예수님께서 단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잘 아는 한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습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히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정신이냐?" 아무리 나무래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주의를 잘 못하는 줄 알고, 생각이 모자란 줄 알고, 혹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던 끝에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야.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때에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마디..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그 어린 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이에요.
저는 모 대학의 대학교의 교수, 여자교수 한 사람을 압니다. 노처녀예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아버지, 어머니를 보니까 한심하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왜 살아야 되나?" 아주 말도 없고 점잖은 것 같으나 문제가 있어요. "도대체 저렇게 살 바에야 왜 결혼을 해야되나?" 그때부터 생각을 했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안 하는 게 좋지." 어느 사이에 세월이 흘러서 오늘은 노처녀가 됐어요. 지금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그러드라구요. 여러분,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 좋은 인상을 주어서 '아~~아버지 어머니, 참 행복하다. 저러니까 나도 커서 빨리 장가가야 겠다. 빨리 시집가야 겠다.'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겠는데 참 유감스럽게도요 제가 모 대학에 그때 학장으로 있을 때 통계를 내봤어요. '40명 학생 가운데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전혀 결혼하지 않겠소.' 하는 사람이 몇이냐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가운데에, 40명 중에 38명이에요. 세상 남자가 다 내 아버지 같다면 영원히 시집 안 가겠답니다. 혹시라도 그보다 좀 나은 게 걸릴까 해서 기대해보는 거지. 보세요, 이 정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혼하던 못하던 그 받은 인상이 그 모양이란 말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도해야 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뭐 효도해라 뭘 해라 뭘 해라 다 소용없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요새는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혹은 아이들이 잘못된 사상에서.. 그저 한 남녀의 사랑 행각의 후유증으로 원치 않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생물학적 이해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물론 바랬던 것도 아닌데 하나의 실수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무책임하다. 이거예요. 이것이 그 마음에 박혀있는 동안 참으로 어렵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문명 국가에서는 2/3가 이 모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실수다 이거예요. 잘못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이게 되겠습니까? 바꾸어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서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 했는 줄 아느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는지 아느냐? 기도의 응답으로 너를 낳았고 기도와 함께 너를 키웠느니라.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너희들이다.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너다." 이 한 마디만 그 마음속에 깊이 파고 들면 어떤 환경에 놓아도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는 한, 그것은 바로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 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주께로부터 오고, 주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은 연세가 높은데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반드시 머리를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언제나 모자를 벗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대요.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이것들이 앞으로 자라서 이 가운데서 대통령도 나고, 목사님도 나고, 학자도 나고, 훌륭한 분들이 다 태어나게 될 거요. 그런고로 나는 지금부터 저들을 존경합니다." 사실로 바로 그 교장선생님 밑에서 인사를 받은 아이 중에 하나가 마틴 루터, 종교 개혁자가 됐습니다. 여러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소중하게 주님의 사람으로 주의 이름으로 저들을 대해야 됩니다. 한마디 말 헛놓아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을 내가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주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주님께 배우고, 주님께 들어라. 주님께 순종하라. 주님을 따르라. 주님을 닮으라.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라. 내 얘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그래서 제가 오래 전에 읽은 책에 그런 말이 있더만요. 아이들이 실수할 때 이렇게 하라고.. 예컨데 거짓말을 했다면 "내가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명령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그게 아니고 아이들은 거짓말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거든요. 재미있어서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럴 때 성경책을 딱 읽어주며 "자, 이 성경을 네가 읽어라." 그래 읽으면 거기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얘기가 있고 이걸 다 읽은 다음에 "어떠냐?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네게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말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 놓으면 앞으로 큰 다음에도, 어느 때라도 컬컬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해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내 뜻이 아니고, 성경 말씀이 네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 정신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이 어린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자가 누굽니까? 그래 부모님이요. 부모님이 예수를 믿고, 부모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이에요. 저는 유아세례 할 때에 그 신앙고백 문답하는 얘기가 있어요. 서약하는 문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느뇨?" 그랬어요.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한다는 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너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선한 일하는 것을 본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저 어렸을 때 기억입니다만 그때 거지가 많았지요. 많은 거지들이 뭐 먹을 것을 얻으러 오든가 쌀을 얻으러 오면 그것을 줄 때 얼마든지 어머니도 하고 할머니도 하겠지만 제게 주어서 저로 하여금 "가서 그 자루에 갔다 넣어드려라. 조심스럽게 갔다 넣어 드려라." 그래요. 그 심부름을 많이 했습니다. 구제하는 것을 봉사, 선한 일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함께 한다는 것, 이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됩니다. 항상 주의 축복 가운데서 삶을 간증하며 살고 주를 찬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보세요 예수님을 보여 주면서 "자, 저분을 우러러 보라. 저 분을 닮아라. 저 분을 존경하고, 저 분을 사랑하라." 그것이 바로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그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닮으라."가 아닙니다. "주님을 닮아라." 그 누구를 따라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을 본받고 따르라."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살 때 성전에 올라 가셔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 훌륭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내 아버지 집 그 교회가 행복의 근본이었어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때에 이러한 연구를 해봤답니다.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 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고. 첫째가 칭찬하라고..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칭찬받는 그것,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칭찬받는 만큼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칭찬하라. 그런거에요.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 아이들을 나무래 보세요. 나무라고 딱 한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보다.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래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무라지 말라는 거예요.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울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공했던가 잘한 일이 있거든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거지요.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해요. 너는 이런 일 잘 한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라고 그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은 "뇌물성 선물을 주지 마라.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하지 마라." 체벌을 통해서 무서워서 이래 때리고 저래 욕먹고 하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떻게 해야되는 이렇게 되면 반드시 그는 그 마음이 여려져서 세상을 항상 두려움으로 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길을 가게 됩니다. 또 뇌물을 주었어요. 공부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매 맞고. 잘했다고 상 주고 잘했다고 돈 주고, 잘했다고 선물을 주고 이래 주니까 얘들이 커서 뇌물 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선물은 그의 행위와 아무 관계없어요. 잘 해도 못 해도 상관이 없어요. 너는 내 아들이고 내 딸이니까 내가 사랑하니까 주는 거다. 그거지. 잘 했으니 주고, 못 했으니 맞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예요. 선물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그래요. 잔소리 들으면서 "참 돈 벌기 힘들다." 그런다구요. 들어주기가 힘들잖아요.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볼트모어의 빈민굴이 있는데 너무 형편이 어지러워서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를 해보았답니다. 거기에는 아편 중독자요, 그저 뭐 알콜 중독자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굴이요. 너무너무 취약지구예요. 그래서 학자들을 보내 연구한 결과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기대해 봐도 저 빈민굴은 구제불능이에요. 거기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도 소망이 없음. 그래요. 기다렸다가 25년 후에 다시 사람을 보냈더니 "아니요." 바로 소망 없다고 하던 그곳에서, 아주 훌륭한 180명 중에 무려 176명이나 되는 많은 학자, 목사, 교육자,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나왔더랍니다. '대체 웬일인가?' 하고 원인을 조사하니까 그속에 그들을 위해서 희생한 한 여인이 있었어요. 한평생을 그들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는데 그 여인의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 구제 불능한 빈민굴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났더란 말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했다는 거요. 내 어머니가 아니라도 좋아요. 내 아버지가 나빠도 좋아요. 누구인가라도 단 한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 아이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출처 : 미라클
글쓴이 : 최정남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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