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5. 6. 14:26
출처 카페 > 빛교회 최정남목사 / 미라클
원본 http://cafe.naver.com/jj007789/4250

어린이에 대한 주님의 교훈/막10:13-16
2001-11-21 13:40:38   read : 271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은 바쁘게 살다보니 자녀 문제는 뒷전에 제껴 둡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자녀 문제로 눈물과 회한의 삶을 사는 사람을 봅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상당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사람처럼 제구실에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존재가 없습니다. 동물들은 길어 봐야 몇 개월만 지나면 자신의 삶을 독립해 갑니다. 그런데 사람만은 유독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아십니까?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지만 사람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가 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의 훈련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운전하나 제대로 배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요합니까? 이 험한 세상, 다양한 사회 환경 속에 살아갈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를 상식의 선에 맡긴다는 것은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동을 걸고 거리를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텍사스 휴스턴 경찰 당국에서 발표한 '못된 자녀 키우는 열 가지 방법'①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다 사주어라. 그 아이는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② 아이가 나쁜 말을 할 때 그냥 웃어 넘겨주어라. 그리하면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알고 더욱 악한 말과 생각에 깊어질 것이다.
③ 아무런 영적 훈련과 교육도 주지 말고 크면 제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내버려두어라.
④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어라. 이 다음에 자동차를 훔치고 체포된 후에 사회에서 책망 받게 될 것이니까
⑤ 아이가 치우지 않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⑥ 어떠한 TV 프로나 책이나 그림이든 마음대로 보고 읽게 놓아두어라.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⑦ 아이들 앞에서 부모나 가족들이 자주 싸워라 이 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 섭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⑧ 달라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살아가는 태도에 곧 썩어질 길을 쉽게 터득 할 것이다.
⑨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은 것은 다 마시게 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 주어라. 어떠한 거절이라도 한 번만 받으면 곧 낭패에 빠지는 사람이 되리라.
⑩ 아이가 이웃과 친구와 선생님과 어른에게 대립적인 자세가 될 때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주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면서 거의 다 자란 자녀를 보며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좀 더 온유하며 영적이고 지혜로우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며 담대하게 의지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르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더욱 최선을 다 할 것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야 합니다.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야합니다. 애야 교회 나가자 보다 얘야 예수님께 가자라고 해야합니다.
5살 박이 어린이가 뒤에서 놀더니 집에 와서 찬송을 따라 부르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원하듯 우리 자녀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면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눅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히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부모님께서 자녀의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제자들이 주님을 도와 드린 일이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습니다.
(막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금하지 말라' 는 방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분하게 생각하십니다.

① 믿음의 본이 되지 못할 때
어려운 문제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방해하는 것입니다.
성도나 목회자를 비방합니다. 이럴 때 기도하는 모습, 성경 읽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믿음의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딤후1:5)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무엇보다도 부모가 신앙의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불성실한 신앙태도는 자녀가 본받게 합니다. 부모가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가면 자녀도 그렀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총장도 지냈던 믿음의 사람이요 목사인 죠나단 에드워즈의 족보는 직계 후손 873명중 대학 총장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이 평범한 신앙 인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한편 죠나단 에드워즈의 어린 시절 친구요 함께 주일학교에 다녔든 맥스 쥬크가 어느날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가운데 유아로 사망 309명, 직업 거지 310명, 불구자 44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별 볼일 없이 산 사람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두 가문의 대조는 자녀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잘 보여 줍니다. 즉 부모가 경건한 삶을 살 때, 자녀들이 올바른 길을 감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② 자녀를 예배 중심의 삶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가정에 심방갈 때 자녀도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나가 놀아라" 아! 예배 때는 나가 노는 구나
"입시나 시험 때가 되면 나중에 교회에 나가거라"
③ 적극적으로 저들의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 몇 년을 사느냐에 상관없이 결국 인생의 모든 길은 죽음으로 통합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족보가 나옵니다. 창세기 5장의 아담으로 시작하는 족보와 마태복음 1장의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은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죽었더라”가 반복되지만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낳고”의 연속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지은 인생이 죗값으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인생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나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했습니까? 자녀들에게 온갖 좋은 선물을 다 준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다면, 부모 노릇 올바로 못한 겁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러 받으면 가장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3. 예수님처럼 축복을 빕시다.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10:16) 예수님은 어린이에게 간절히 복을 빕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1:28)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복 주셨는데 자녀를 낳아 기르는 복입니다. (시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받기에 합당 한자에게 복을 주시되 그 복이 자손까지 이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자녀에게 평소에도 복을 빌었고 죽기 전에 간절히 복을 빌었습니다. 이삭이 죽기 전에 야곱을 축복한 경우는 좋은 예가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부모들은 지금도 자녀들을 위하여 복을 빕니다. 먼 여행을 떠날 때, 결혼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전쟁터에 나갈 때도 그를 위하여 간절히 복을 빕니다. 심지어 자녀가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머리에 앉아 복을 빕니다.
첫째, 신체를 접촉하면서 축복합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입맞추면서, 손을 잡거나 껴안으면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만져 주기를 바라고 데려온 것은 이런 의미의 복을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축복의 말을 직접해 줍니다. 창세기 49장에 야곱이 신명기 33장에서는 모세가 죽기 전에 이 복을 빕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이와 같은 축복의 전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바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안수하시며 이런 축복을 합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단히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축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너를 축복한다. 너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기도의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시며 너를 영광스럽게 쓰신다”라고 믿음의 말로 계속 격려한다면 그 자녀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성장할 것입니다. 비록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도 자녀를 이해할려고 노력하며 인내하는 마음으로 변함없이 축복하십시오. 축복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들의 삶을 설득하는 가장 큰 능력이 됩니다.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길 때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고 나에게 복 주신 하나님이 너에게도 복 주실 것이다. 주님이 너희들과 함께 하시길 바란다”고 한다면 그 자녀들은 남은 삶을 더욱 주안에서 열심히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다윗은 임종전에 "(대상28:9,10)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4.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①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강요한 다리밑에서 주어왔다. 그 말을 믿는 것이다.
② 부모님을 전적으로 의존합니다.-어머니 품이 좀 불편해도 자녀는 편안해 합니다.
성도는 예수 믿는 것이 어려움이 많아도 그게 편합니다.
③ 부모님께 당당히 요구합니다. 애들은 자꾸 보채면 야단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④ 차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 두 살박이 산이란 아기가 있습니다. 산이는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전부 야! 로 통합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목사님이고 없습니다. 모두가 야! 로 통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차별이 없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차별없이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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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자녀들이 축복된 미래를 살아가기 원한다면 결코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을 유산으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남겨야 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심겨진 믿음의 삶에 대한 좋은 기억들, 자녀를 축복하는 좋은 습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꿈과 환상을 심어 주는 일이 좋은 유산이 됩니다. 매를 통한 아픔이 좋은 유산이 되기도 합니다. '(잠13:24) 조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23: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매로 알아듣는 나이에는 매로, 매를 들기에 너무 컸다면 설득과 기도로 바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스위스가 낳은 세계적인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동상이 제막될 때 조각을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우러러보는 어린이와 그 어린이를 내려다보는 페스탈로치의 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작품의 평을 듣기 원하자 그 중의 한 사람이 "어린이의 시선이 페스탈로치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어린이의 시선이 그 뒤의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페스탈로치는 신앙을 가르치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자녀의 미래는 실로 무한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다른 애들과 비교해서 보지 말고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보시는 시각으로 보아야합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제가 몇 일전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앉혀 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분만을 잘 섬겨라. 그러면 너희들의 미래는 무한하다.
그러면 어떤 일에도 두려워할것이 없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바른 자녀 교육/잠3:1-10,눅2:51-52
2001-11-21 13:39:50   read : 222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자녀들입니다. 시편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127:3)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어떤 재산보다도 어떤 명예보다도 자녀들만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려고 애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다 이와 같은 열망을 가지고 자녀들의 양육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의 부모들은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주어도 그것이 참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현대인들은 잊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영혼을 개발하지 아니하고는 참다운 인격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근본 이해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는 바른 자녀 교육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릴 적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바람직한 자녀상을 찾아보고 이를 목표로 자녀들의 교육을 바르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교육

첫째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영성을 개발시켜 주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라나시면서 하나님께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도록 양육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일찍이 그 영성을 일깨워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부모들은 그 자식이 자기의 자식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기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엄마 아빠를 가르칩니다만, 그 아이의 진정한 아빠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먼저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 두살 때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부모와 헤어져 선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황하여 그를 찾아온 부모에게 하신 말씀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이미 예수님에게는 자기의 진정한 아빠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결과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 어린이면 누구나 받는 '쉐마' 교육 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진정한 아버지이심을 아셨던 것입니다.

오늘 잠언 말씀에 보면,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 너의 재산과 땅에서 얻은 모든 첫 열매로 주님을 공경하여라."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부모보다 먼저 사랑해야 할 분임을 어려서부터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을 일깨우는 교육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 눈을 뜸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다른 어떤 관념과 지식이 자리잡기 이전에 영성을 일깨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순수할 때 영성은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육은 정말로 조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잉태함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때를 놓치면 두꺼운 세상적인 지식과 관습의 껍데기가 생기면서 영혼은 좀처럼 그것을 뚫고 나오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가 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더욱 그에 앞서 영적 교육을 서두르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기능화된 사회 속에서 기계화된 인간만을 양산해내는 이 때에 우리는 서둘러 영적 교육을 통하여 기계적인 인간이 아닌 참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양육하여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사랑스러워 가는 자녀가 되도록 양육하여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며, 하나님의 집으로 그들을 늘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기에 부모의 확고한 신앙적 지도와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도덕적 교육

둘째로 우리는 자녀들의 도덕적 교육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라나시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다는 것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도덕 교육이란 인간 관계 교육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인 교육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육이라면 도덕 교육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교육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경쟁 사회여서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한다는 생각으로 온갖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뛰어난 기술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게 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지향하기에 부정과 부패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인간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바로 이런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부패하므로 부정과 불의가 우리 사회에 넘쳐 나게 되었고, 우리의 국제적 신용도가 점점 더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신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도덕적 사회를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약속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기술과 지식 위주의 학교교육은 도덕적 인격을 형성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산업 사회가 되기 이전에는 모든 교육이 도덕적 인간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었는데, 산업 사회가 되면서부터 교육은 기술 인간을 만드는 것을 그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 사회는 점점 더 기술 지향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볼 때, 학교 교육이 도덕적 인간 형성을 위한 교육으로 바뀌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종교가 특히 우리 기독교가 이 사회의 도덕성 향상을 위한 큰 몫을 담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덕적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전인적인 구원은 바로 사람을 변화시켜 도덕적인 인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큰 두 계명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덕목들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아이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한 생활을 힘쓰게 하며,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희생적이며 봉사적인 사람이 되도록 훈련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며, 불의와는 결코 손을 잡거나 타협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 성경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르치면 나만을 생각하고 자기 욕심만을 채우는 이기적인 인간성 대신에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거기서 바르게 사는 길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결국 도덕적 삶이란 신앙의 생활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행동하고 생활하면 그것이 곧 도덕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이들의 도덕적 삶이 형편없는 것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에게는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 교육

셋째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지혜를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는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지혜는 대단히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타락하기 쉽고 그릇되기 쉽기 때문에 그 삶이 전체적으로 악하여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교육은 이 지혜를 가르치는데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올바르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힘입니다. 성경 곳곳에 지혜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지혜 문서인 잠언과 전도서에 보면, "지혜를 얻는 것이 정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잠 3:14)고 하였고, "지혜가 있음으로 해서 생명이 보존된다"고도 하였습니다(전 7:12). 지혜가 있는 자는 그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도 하였습니다(전 8:1). 야고보서에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 격언에 "배고픈 자에게 생선 한 마리를 주는 대신에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지혜입니다. 삶의 원리를 살필 줄 아는 머리 바로 이것이 지혜입니다. 결국 삶의 원리를 추구하다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귀착(歸着)되게 마련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어떻게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가를 살피는 머리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이 세상의 지혜와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본으로 한 삶의 지혜를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1장에 보면, 지혜와 비슷한 단어가 여럿 나옵니다. 그것은 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을 살펴보면, "명철"이란 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별력을 뜻하고, "슬기"란 말은 죄악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이라고 한 단어는 노인의 지혜 혹은 예지(叡智)를 뜻하는 것이며, "근신"이란 말은 모든 일에 계획성 있는 삶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 주는 것이요, 노인들의 풍부한 경험에서 얻은 삶의 원리를 깨닫게 해 주는 일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자녀들을 너무 감싸고돌며, 하나부터 열까지 돌보아주고 있습니다. 삶의 원리를 가르쳐 스스로 적용하여 나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삶 전체를 부모가 대신 살아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가 나서서 일일이 다 해결해 주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짓입니까? 결코 부모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혜란 자기 인생을 바르게 운전해 갈 수 있도록 그 원리를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자식에게 지혜를 가르쳐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 가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참된 사랑입니다. 신앙으로 바탕으로 한 지혜를 가르쳐 주어서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의 길을 바르게 판단해 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부모의 사명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무런 지혜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가 자식이 다 커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자 할 때 비로소 불안해져서 이래라 저래라 해보았자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부모가 그에게 바른 삶의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쳐 주지 못한 까닭입니다. 영어를 배우고 기술을 익히는 것은 삶의 방편일 뿐입니다. 그것이 삶의 길을 바르게 선택하도록 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머리가 터지도록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혜가 없으므로 해서 그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인생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탈선은 부모에게 큰 원인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른 삶의 지혜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그들이 결코 잘못된 길로 나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지혜가 모자랄 때는 항상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므로 지혜를 얻으라고 가르치십시오. 그 지혜가 그들의 삶을 바르게 그리고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t대와 사회는 지혜를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언제 어느 때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배워 그곳에 깃들인 지혜를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지혜를 얻게 될 때 이 시대를 분별하면서 정의로운 길을 개척하며, 평화의 땅을 일구고, 사랑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자녀가 되도록 양육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게 하며, 지혜를 가르쳐 인생의 길을 바르게 판단하여 가도록 하고, 그들의 모든 삶이 바르고 정직하게 살도록 하여 하나님께 사랑 받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도록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부모의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항상 기도하며 힘써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자녀들 위에 항상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교육/잠22:6,엡5:22-6:4
2001-11-21 13:39:01   read : 157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의 장으로 불리우는 말씀인데 그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처럼 사랑의 소중함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누리며 산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없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결핍되어도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셋이 되다 보면 가장 위험한 아이가 둘째입니다. 위와 아래로 치어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세 아이 중에서 둘째가 어렸을 때 손가락을 심하게 빨았습니다. 엄지 손가락에 군살이 박히리만큼 심하게 빨았습니다. 그것은 욕구불만에 대한 나름대로의 표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같지만 사랑에 대한 결핍은 당장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똑같지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달랐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너무 좋고 기뻐서 늘 아이를 빨리 보기 위하여 뛰어다니다시피 하였습니다. 백일도 해 주고, 없는 돈에 카메라도 사서 열심히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둘째를 낳았을 때는 아무래도 첫째만큼 대해 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백일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첫째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둘째가 첫째만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첫째에게서 어느 정도의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서적인 안정을 찾은 것이지만, 하여튼 첫째와 둘째는 그와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것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첫째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는데, 둘째는 손가락을 빤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 만족하여 조금 게을러진 순간 아이는 부모에 대한 욕구불만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은 그만큼 민감한 것입니다.

둘째의 손가락 빠는 습관을 고치기 위하여 제 아내는 참으로 많은 애를 썼습니다. 더 많이 안아 주고, 만져 주고, 놀아 주었습니다. 물론 야단도 쳤지만, 그것은 야단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사랑의 보충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옳지 않으며, 바르지 않으며, 좋지 않은 일의 뿌리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치명적인 죄의 문제를 사랑으로 푸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푸신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따라서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원하신다면 사랑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사랑에 투자하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들은 문제아가 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부모의 문제는 그 사랑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으며, 그 효율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은 100인데 정작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사랑은 10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랑은 전달되지 않으면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뚜막의 소금과 같아서 아무리 가득히 있다고 해도 넣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많은 부모의 사랑이 마치 부뚜막의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이 가득하게 있다는 것만으로 음식이 짜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삶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것을 사람들은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알고 느끼는 것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랑의 원칙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내의 책임이 아니라 남편의 책임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모르는 것도 남편의 책임이 아니라 아내의 책임입니다. 모든 사랑은 상대방이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도록, 늘 상대방의 이해 수준에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가 뜻밖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견이 달라서 다툴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대개의 경우 부모들은 일방적으로 자식을 누르려고 합니다. 말도 함부로 막 합니다. 그와 같은 경우, 자식들은 부모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와 규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에게 예의와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의 인격에 폭력을 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와 자식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식이라고 옳지 않은 감정을 함부로, 조심성 없이 표현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랑이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무례함 때문에 상처를 받아 잘못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른에 대한 무례함은 그 뿌리가 어른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 어른들은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아이가 잘못할 때는 아이를 꾸짖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권한이요, 또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 앞세워서, 그리고 자기는 어른이요, 부모라는 것만 생각하고 무례하게 행함으로 자식에게 상처를 준 많은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사랑의 교육이 이루어지게 될 줄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육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무례합니다. 예의는 자녀가 부모에게만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만 합니다. 그 상대가 누구든 무례하게 대한다면 진정한 사랑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의를 갖춘 사랑으로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는 꽃과 같습니다./마19:14-15,아2:1-2
2001-11-21 13:38:13   read : 183

식물세계에서는 꽃이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인간세계에서는 어린아이가 아름답고 예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5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꽃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강단에 꽃으로 장식하고 어린이들을 아름다움의 극치로
축복합니다.
예수님도 들에 핀 한 송이 백합화에서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배우라고 하셨듯이
어린아이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어린이 얼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가혹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요즈음 어린이 얼굴에서 피다 시들어진 꽃과 같은 모습을 봅니다.
일그러진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몹쓸 사탄의 모습을 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천국의 표상이며 꽃과 같은 어린이의 모습이 이렇게 되었을까?

떡을 달라하는 아이에게 뱀을 줄 아비는 없다고 주님은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른들은 떡을 달라하는 아이에게 뱀을 주고 있습니다.
* 안아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텔레비전 스위치를 켜줍 니다.
* 같이 놀라달라 하는 아이에게 1,000원 짜리 종이 한 장 던져주고 그것으로 놀라고 합니다.
* 뛰어다니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힙니다.
* 마음껏 장난치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봉고 차로 억지 로 태워 컴퓨터학원, 미술학원으로 보냅니다.

적어도 이와 같은 경우는 떡을 달라하는 아이에게 뱀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옛날로 돌아가 이야기 한 토막 드리고자 합니다.
시골 생활을 했던 저는 비오는 날 아버지가 소먹이 풀을 베어오라고 지게를 지우고 들판으로 보내는
것이 참 싫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싫었던지 모릅니다.

좀더 이야기합니다.
*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싶어 하는 아이에게 중국집 전화 번호를 가르쳐 줍니다.
* 교회 문을 두드리는 아이에게 독서실 문을 두드리라 고 강요를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아이들에게 뱀을 주는 것과 다를 바 무엇입니까?
아름다워야 할 어린이가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습니다. 꽃과 같아야 할 어린이가 꺾여진 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꽃은 귀하게 여겨야 하듯 어린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기시고, 들의 백합화 한 포기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귀하게 여김은 물론 더욱이 어린아이를 귀히 여기는 것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주님 가까이 오는 것을 어른들이 말렸을 때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중요한 단어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용납하고"란 말인데 이 말은 '아페테'( )로서 "상관치 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뜻의 강한 요구입니다.
물론 이 말이 잘못을 행하는 것까지 그대로 두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어린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속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금하지 말라"는 '메 콜뤼에테'( )로서 '메'(강한 부정의 의미) + '콜뤼에테'(현재명령형)
형태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 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고 순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인습(因習)을 버리는 것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이란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에게 안수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린아이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꽃처럼 귀히 여겨야 할 어린이라는 뜻입니다. 꽃처럼 귀히 여기는 자녀 사랑이 어떤 것일까?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서 그것을 배웁니다.

첫째 꽃은 해를 바라보아야 잘 자랍니다.
이처럼 어린이는 인생의 해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라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어릴 때부터 '쉐마'를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6:4-5절이 그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라게 하는 교육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자란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토록 하나님 신앙으로 생활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꽃은 물이 있어야 자랍니다.
이처럼 어린아이 때에 생명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정말 잘 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의 생명수를 잘 공급해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를 꽃처럼 귀히 여기는 내용입니다.

2. 꽃은 꺾으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의 기(氣)를 꺾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꺾으면 시들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어린아이들의 기를 꺾어서는 안됩니다.

심방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종종 듣는 말이지만 아이들이 방안에서 놀면 대부분 "나가 놀아라."라는
말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함께 예배 드리자"는 말을 하는 부모님을 보기 힘들 때 많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영적 기를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항존직분자의 자녀들이 교회 생활에 열심을 갖게 되면 부모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고등학교, 대학 시험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 직분자들의 자녀들도 주일날 학원과 도서관에 출입하는 것이 습관화되었고
교회 일을 돌아보는 것이 드물게 되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이것보다 더 영적 기를 꺾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영적 기를 꺾어 놓으면 그 자식은 자라서 부모님에게 엄청난 영적 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생각을 꺽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꿈을 꺽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꺾여질 때 그 가문의 장래가 꺾여집니다.
아이들의 꿈이 꺾여질 때 역사는 그만큼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3. 꽃은 환경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입 니다.

안개꽃은 원래 흰색입니다. 그런데 붉은색 염료나 파란색 염료를 탄 물에 이 안개꽃을 담그면 얼마
안 가서 꽃 전체가 붉은색이나 파란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네모난 수박을 재배하여 큰돈을 번 사람도 있습니다.
사과에 글씨를 새겨 재배한 과수원 주인은 두배의 값을 받아 많은 돈을 번 경우도 있습니다.

대나무는 원래 원통이지만 삼각대를 만들어 키우면 삼각 대나무가 되는 글도 읽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는 말할 것 없습니다.
환경에 따라 어린이 인격과 삶의 내용이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중요한 환경은 물질적 환경이 아닙니다. 말할 것 없이 정신적 환경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정신적 환경보다 신앙적 환경이 더욱 중요함은 재론할 필요도
없는 내용입니다.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지만 한가지 잊지 못할 것은 그들은 예술을
사랑하고 보다 정신적인 세계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6,500명 좌석의 크렘린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를 관리하면서 느낀 것은 그 엄청난 모임에서
질서를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예술을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차원 높은 정신세계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세계를 뛰어넘어 영적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인다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해야할 일을 다 했느냐 라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생명의 어린이!
그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영적 생명을 갖지 않고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모든 부귀 영화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얻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릴 수 있었다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 없는 삶이 아무리 바벨론의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의미 없음을 알았기에 일곱배 뜨겁게 한 풀무 가운데로 기쁨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가서 2:1-2절에는 아름다운 표현방법으로 꽃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샤론의 수선화라 했습니다.
골짜기의 백합화라 했습니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 했습니다.

이와같은 용어는 예표론적 의미에서 아담의 범죄이후 죄인된 뭇 사람들 가운데 거듭나고 고귀하고
순결하게 된 성도를 암시하는데 이것을 어린이에 적용한다면 뭇 어른들 가운데서 어린이는 백합화
같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꽃과 같은 것입니다.
꽃이 있는 가정과 세상 환경은 아름답습니다.
이 꽃과 같은 어린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이 꽃과 같은 어린이를 꺽지 말아야 합니다.
이 꽃과 같은 어린이가 잘 성장하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어린이/마13:31-33
2001-11-21 13:37:31   read : 134

1. 작은 것이로되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에서 서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자기들 중에서 누가 크냐?"를 가지고 싸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따를 때에는 그것이 별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서열 문제가 관심거리였습니다. 까닭은 예수님의 하시는 모습이 대단했었고 곧 큰일을 하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제자의 어머니는 치마바람까지 날렸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절하며 . . .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0f) 라고 청탁을 했습니다. 아마 이런 모델을 가장 잘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높은 자리에 있어야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큰 사람, 즉 고관이나 부자나 지식인이나 잘난 사람을 극진히 환영하며 대접합니다.

이런 사회의식은 낮은 자리의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기에게 당장 보탬이 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어린아이들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어 쫓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막지 말라" 고 제자들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러고선 어린아이를 하나 데리고 와서 안으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막 9:37) 이라고 했습니다. 즉 "나를 영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대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일학교 어린이 찬양대를 세워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작고 당장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에 주는 유익은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하시기를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 헌장 서문에 이런 구절이나옵니다.
"어린이 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

그리고 모두 11개조로 되어있는데 그 마지막 조문에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겨레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키워야 한다."
2. 잘 자라도록 합시다

사람은 불과 3kg내외의 체중에 50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극소수 장애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아이를 제외하고는 한 20년이 지나면 평균 60kg에 170cm의 신장을 가진 어른으로 크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이 지금은 작지만 조만 간에 우리 어른들만큼 크게 될 것입니다. 어른들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데 애들은 자랍니다. 오히려 더 커져서 우리들을 추월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신체가 자람은 물론이거니와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인지 능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갓난 애기 때는 물불을 가리지 못합니다. 높낮이를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던 애들이 자라면서 그들 나름의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갖게 되고, 세상을 향한 꿈과 계획을 가지게 됩니다.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웃던 아이가 웃고 우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하나와 둘도 구분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방정식을 배우고, 중학교에 가면 집합을 배우고 고등학교에 가면 고급 수학인 통계와 미분 적분을 배우고, 겨우 "엄마!" 하던 아이들이 한글 뿐 아니라 외국어까지 배워 하지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이젠 엄마 아빠의 큰 힘이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성장은 신비롭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집을 지어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교육관을 지으면서 그 재미를 봤습니다. 땅을 파고 기둥세우고 할 때 처음에는 서글펐는데 저렇게 아름답고 멋진 건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모두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라는 것에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물론 애 키우는 것이 보통 노동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무 자라듯 하거나 짐승 자라듯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절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와 지능은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년 수대로 자랄지 모르지만 아이의 인격과 도덕적 품성은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인도해주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달리 나옵니다. 한 모태에서 나온 아이라도 성자와 도둑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10대들의 비행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지능적으로 들 자라서가 아니라 도덕적 인격적 훈련을 옳게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훈련은 이론 교육이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요인과 모델링에 의한 것입니다. 부모 따라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아이라고 해서 모두 도덕적 인격적 덕성이 바르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모가 가정에서 부부 관계를 어떻게 하며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모델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수 년 전 교회에 다니는 한의원 원장 부부가 아들에게 피살되고, 어느 대학 교수가 그 부모를 죽이고, 근래 역시 장가든 어느 젊은 아들이 부모를 죽이고 불태운 사건들이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론이드의 이론에 의하면 5-7세에 겪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10대 청소년들의 비행의 근원이 된다고 합니다.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딸은 아빠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엄마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현재 아버지입니다.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얻으려고 아버지를 닮아가고자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방하기도 하고 아버지를 증오하기도 합니다. 이 때 아버지가 가정에서 엄마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들의 정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자녀들의 인격 형성과 도덕적 품성 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결국 자녀는 부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가루 서 말이 전부 부풀게 되는 것은 작은 누룩 한 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 인간 성장과 하나님 나라

인간 성장이 이렇듯이 하나님 나라도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발달합니다. 한 점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하듯이 하나님 나라 역시 작은 데서 풍성하게 발달합니다.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커가고 있습니다.

과거 장마만 지면 자취를 감추어 "너나 가지라"고 했던 땅, 여의도가 지금 우리나라의 심장부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 서울 주변 농사 짓던 사람들이 벼농사도 짓지 않고 뽕밭으로 삼았던 잠실벌에 지금 우리나라를 세계에 빛나게 했던 올림픽 스타디움이 서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처럼 자라도록 잘 키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혜로운 자녀/잠1:7-9
2001-11-21 13:36:47   read : 146

우리 나라는 근대 산업사회의 면모를 갖추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오늘과 같은 교육과열의 시대는 없었던 것 같고, 한국사회는 사회교육, 학교교육, 가정교육 모든 면에 문제가 있습니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주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내 자식이 성장해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여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주입보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쳤고, 민족은 흩어졌으나 정신만은 늘 같이 있으며 고난의 극복을 위한 의지를 키워 왔습니다. 유태인이라는 멸시 속에서도 그들은 뛰어난 재능과 지혜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우수한 민족이 되었습니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들의 참다운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참다운 인간교육, 신앙교육은 도외시하고 출세와 명성에 마음을 기울이고 자녀들에게 남보다 이기며, 기대가 크다고 하면서 강요를 합니다. 소질과 개성을 무시한 채 피아노, 미술, 컴퓨터, 운동 등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까? 서로 사랑하고 협동하는 생활보다 경쟁의식, 지식 전달에 주력했습니다. 참다운 교육이 없는 이 시대에 요청되는 것은 신앙과 사랑 으로 교육시킨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을 본받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열심으로 가르쳤습니다.
유태인으로 유명한 인물을 보면 과학자 아인슈타인, 심리학자 프로이드, 지휘자 번스타인, 정치가 키신저 등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각국 노벨 수상자 중에 15%가 유태인이며 미국내의 3%가 유태인인데, 전국 유명 대학교수 30%가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이 놀라운 기록을 볼 때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웠기 때문이 라고 봅니다. 마태복음 6 : 33 말씀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바른 선택을 하게 해줍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살아갑니다. 곧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활이 얼마나 경건한 생활이며, 함께 계심을 믿고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항상 두려워서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신뢰하는 생활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철저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믿는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 생활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님들은 복을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매일매일 살아갔습니다.
지혜의 왕인 솔로몬도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자녀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르쳐서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부모를 순종하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잠언 1 : 8∼9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했으며, 에베소서 6 : 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가르치시려고 합니까? 오늘 한국사회는 가르침은 있으나 행함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유태인들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을 동일하게 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교육시키는 일에 무엇보다도 중점을 두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랍비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한 예로 유대의 유명한 랍비 '톨 케이'라는 분은 틈나는 대로 열심히 독서를 했는데 5살 짜리 어린 아들이 아버지 흉내를 내서 열심히 책을 읽고 그후에 그 어린 아들이 유대의 훌륭한 랍비가 되었습니다. 또 한 예로 유태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무장관이 었던 키신저는 어릴 때 매주 그 부친과 서재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유태인 부모들은 자녀가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자녀에게 부지 런히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6 :4∼9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첫째, 부모는 생활의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교육은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에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의 인격은 부모에게서 나옵니다. 걸음걸이, 언어사용 등 생활의 습관 모두를 부모로부터 배웁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닳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자녀가 지혜롭게 자라도록 신앙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둘째, 계속 성숙 되어가는 부모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 :40∼52에 보면 예수님이 자라시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는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며 총명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한달 한달이 몰라보게 자라납니다.
셋째, 신발은 작아져서 못 신고, 옷은 헤어지는 것보다 작아서 못 입습니다. 지능도 매년 얼마나 놀랍게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매일 성장되어 가는데 부모는 성장되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으면 안 되며 부지런히 성장해야 자녀들을 지혜롭게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정직과 성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사회의 문제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지식과 자원이 모자라서 가 아니라 제일 중요한 서로 서로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스승을 못 믿고, 백성이 정치가를, 자녀가 부모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는 우리 자녀들에게 정직과 성실성을 심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부모는 좋은 자녀를 탄생시킵니다. 부모의 교훈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녀들은 모두 어떤 축복을 받습니다. 머리에는 축복의 영광이 있고, 영광스러운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교육/막10:13-16
2001-11-21 13:35:54   read : 237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에 그리스도 가정의 어린이들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어린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축복받기를 기도합시다.

1. 어린 시절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속담의 말처럼 어린 시절은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 것이지만 그 시기 와 기한은 일정치 않습니다. 일찍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제외한 모든 인생이 어린 시절을 거치도록 창조하셨으며,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도 어른으로 오셔서 구속사역을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로 오셔서 그 시절을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에 소유해야 할 것들을 갖추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생을 살게 될 것이요, 이 세상은 어두워져 갈 것입니다.
어린 시절은 전인적인 인격형성과 체력, 지력, 감력, 영역 모두를 좌우하는 인간형성의 90% 이상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심성 역시 이 시기에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들이 애쓰고 힘쓰는 보람은 내 자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요, 그들의 미래가 우리의 세대를 이어 갈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라는 속담처럼 어릴 때 바로 가르쳐야 되고, 저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저들에게 본을 보이는 생활이 되어야 우리의 미래가 보다 밝고, 아름답고 풍성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더욱 어릴수록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역사의 많은 위인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정에서 신앙과 생활의 지도 속에서 성장하여 위대한 역사를 창출하였고, 예수님 역시 공생애를 위한 준비기간의 대부분을 가정에서 지내셨습니다. 가정은 신앙의 온상이며 인격형성의 못자리판입니다. 여기에서 경험교육, 생활교육, 신앙교육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비뚤어진 등지에 온전한 달걀은 있을 수 없다. "라고 했는데 올바른 가정만이 참다운 교육의 성취 장소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자녀들을 교육기관에 맡겨 교육을 전담케 하고, 그들의 신앙문제보다 세상적 출세와 성공을 앞세워 신앙교육을 소홀히 함으로 실패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위하여 부모가 교육의 주도권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선물에 충성을 다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2. 그러면 어떻게 어린이를 교육해야 합니까?
교육은 우리말로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분석하면 '가르다'와'치다'로 나눌 수가 있으며, '가르다'는 말은 '분별하다, 분리하다', 새것으로 갈다, 기름지게 갈다, 빛나게 갈다, 곱게 갈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치다'라는 말은 가축을 치다, 때리다, 줄을 치다(한계), 막을 치다(방어), 가마니를 치다(作), 기름을 치다(더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교육의 일반적인 개념은 (1) 가르쳐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Institution) (2) 일정한 이상 또는 가치를 지향하여 성장하는 사람을 지도하여 사회의 유지와 전진을 위하여 하는 의식적인 활동(education)(3) 개인의 전체적인 인간형성의 사회적 과정(education)운으로 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이 되는 성경을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골 1 :28)이라고 교육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가장 위대하신 스승되시는 예수그리스도(요 13 : 13)의 교육방법이 가장 효과작인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유대식 교육방법이 최선이라고 제시합니다. "쉐마"를 중심으로 한 가정교육, 생활교육, 신앙교육을 통해서 오늘의 위대한 유대인이 되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참고할 수는 있으나 그들의 교육의 결과는 외식하는 바리새인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불행한 민족으로 전락한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태인에게 성경교육이 부족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교육은 길(방법)과 진리(내용)와 생명(결과)이 되시는 '오직 예수'의 방법을 유일한 교육방법으로 채택하여 방법도 예수님처럼, 교육의 내용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육의 결과도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
1) 찾아오셨습니다(incarnation).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 이라"(빌 2. 6-8).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세계로 내려가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며, 그들의 세계에서 이해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며 그들의 약점을 채우고,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어른의 권위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잃었던 어린 시절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물 깁는 곳에, 고기 잡는 곳에, 세관에 앉아 있는 곳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찾아 불러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 자녀의 삶의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하는 아름다운 자기 비하가 있어야 합니다.
2)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 : 16에 나타난 것처럼 주님은 사랑의 목적 때문에 사신 분이시기에 만지시고 안으시고 쓰다듬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으며 자신을 희생함으로 십자가에서 사랑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어린이는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지 노예가 되거나 종속물이 되거나 기대치의 목적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울리는 꽹과리'요, 가장 위대한 행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묘약'만이 모든 형편에서 건질 수 있는 요일한 처방입니다.
3)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곧 성경을 말하고 읽히며 듣게 하고 성경의 의문을 갖게 하고(성경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게 함) 순수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루 세 끼를 공급하여 육의 건강을 신경 쓰듯이 매일 성경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복 있는 삶(시 1 :2)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4) 피교육자를 떠나 있을 때에는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오늘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밤, 기도하는 새벽이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사역의 배후에는 숨은 기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골고다까지 기도하시며 다 이루신 그분을 우리 모두 본받읍시다.
5) 예수님도 피교육자를 봉사자요, 희생자요, 사명자로 키우셨습니다. 가장 보람있는 가치관을 주시고 이를 위하여 생명을 던질 각오를 갖고 영원한 생명을 구원하는 구속사업에 함께 동참하도록 초청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며 힘과 능을 영으로 공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안락하고 행복한 것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깨어나 희생적이고 많은 사람을 위해 대속물로 주시기를 원하여 그렇게 사셨던 그리스도의 사명감을 부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신앙적으로 바로 서서 그리스도의 본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온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을 예수님께 안내하는 것, 인도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의 방법입니다.
주님께서 어린이를 안고 주님의 손이 저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실 때 완성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막 10:15). 그리스도 이름으로 어린이를 영접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마 18:5).어린이를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막으면 주님께서 분히 여기십니다(막 10:14). 모든 어린이가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힘씁시다. 하늘나라가 이런 자의 것입니다.




어린이로 나야 합니다/마18:1-6
2001-11-21 13:35:14   read : 159

요한 사도는 요한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중에 찾아 온 니고데모를 향하여 "거듭 나시오."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5:17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였습니다. 또한 야고보 사도도 야고보1:18에서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 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을 행하고, 선을 쌓고, 경건과 수양의 곤한 길을 행하여 감으로 되는 삶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에서 마치 갓난아기처럼 새 생명으로 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자녀들로서 행하며 성장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크리스천은 누구나 어린이로서 단순하고 믿음직스럽고 순박함의 면을 경험하고 체험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함께 지키는 어린이 주일, 꽃주일 입니다.
어린이들의 활짝 핀 웃음이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 입니다.
어린이가 도란도란 어울려 있는 마을은 희망의 마을입니다.
어린이들이 모여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고 어린이의 꽃다운 얼굴이 많이 모여 있는 교회, 그 교회는 창창한 미래가 있는 교회입니다.
단순하고 태양처럼 밝고 믿음직스러운 어린이들이 많은 나라, 그 나라의 앞날은 분명 밝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도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성도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 천국에서 크고자 하는 사람의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며 어린이와 같이 되고, 어린이처럼 겸손한 믿음을 소유하여야만 천국에도 들어가고 천국에서도 높은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도 여러분은 어린이로 새로 나는 체험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와 같은 생명으로 거듭났으면 그 다정하고 밝고, 믿음 있고,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배워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에도 들어가시고 천국에서도 모두 높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탄스러운 것은 사람이 어린이 때를 벗어나 성인이 되면 될수록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신으로 차고, 모략 중상하고, 교만하고, 아는체 하고, 허세를 부리고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까지 책망들을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집안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보아도 정말 그들의 마음은 맑고, 생명을 사랑하고, 동정하고, 믿음이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뜻이면 어린이의 심정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유명한 설교가였던 스펄전 목사님의 간증 하나가 있습니다. 그가 어린 여섯살 때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한번은 할아버지 방 벽난로 위에 정말 진기한 물건 하나를 발견하고는 성장하면서 신기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다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그 진기한 물건이란 주둥이가 좁고 몸통은 큰 병인데 그 병 속에는 주둥이보다 수배나 큰 사과가 들어가 익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리도 큰 사과가 들어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말씀이 사과가 맺힐 때 가지를 병속에 유인해 넣음으로 사과를 병 속에서 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답을 들은 스펄전은 훗날 귀한 진리를 말씀하였습니다.
(1) 하늘나라도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겸손으로만 들어갑니다. 어린이는 겸손하여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어린이는 지위나 자랑이나 명성과 같은 각도에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모든 사람을 섬길 줄 알며 빈부귀천을 구별 않고 기쁘게 인사합니다. 이런 어린이의 자세가 좁은 천국문으로 들어갑니다.
(2) 어린이의 단순한 믿음으로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을 철학자로나 사변적 이해의 도구로 삼으려 들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어른들은 경계하고 항상 의심을 앞세우지만 어린이들은 믿습니다. 너를 사랑한다면 그대로 믿어 좋아하고 네가 밉다 하면 또 그렇게 믿어 슬퍼합니다. 이 같은 순수한 믿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3) 어린아이의 때에 일찍 천국문에 들어갑니다. 어리고 작은 사과가 나뭇가지에 맺혔을 때 그 가지를 가볍게 유리병 속에 밀어 넣고 병 속에서 그 사과를 자라게 함으로 그 사과가 병 속에 들었던 것입니다. 병 속은 벌레와 바람이 적은 안전지대입니다. 그러나 햇빛과 공기 양분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좁은 문을 들어가게 되면 풍성한 생명의 양식 속에서 평안히 자라고 놀랄 만한 성숙과 결실을 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땅의 모든 일들, 즉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세계평화 이 모든 일이 암담해 보이고 캄캄하게 여겨져도 우리들에게는 때묻지 않고 티없는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으며, 그들이 자라는 아름다운 환경, 하나님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들을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린이 주일을 맞으며 어린이를 생각하는 이런 시를 쓰고 그들을 노래했습니다.

아가야 꿈을

아가야 우리 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
저 구름들 피는 하늘을 보자.
그래서 꽃 같은 꿈에 살자.
그래서 꽃 같은 꿈을 꾸자.

아가야 우리 고사리 손 작은 손에
이 동무 저 동무 손에 손잡고그
래서 사랑을 펴며 살자.
그래서 사랑을 주며 살자.

아가야 우리 작은 입 꼭 다물고
이 땅과 저 곳에 꽃씨를 심어
그래서 열매를 주렁 맺자.
그래서 열매를 맺고 살자.

어른이 되셨고, 이 땅의 어버이로 계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땅 50억이 넘는 사람을 창조하시며 판박지 않은 다른 얼굴, 다른 생각, 다른 아름다움, 다른 비전을 허락하시고 계심을 생각하고 그들을 그들 나름으로 자라고 성숙하도록 기도하고 사랑하고 돌보심이 있어야겠습니다. 왜 잘못된 영향으로 오염되어 비뚤어지고 좌절하고 한숨짓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안절부절하는 인간으로 키우고 있습니까? 왜 어린이들을 기계 인간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믿음의 성도들이여! 그들의 영혼을 배려하여 말씀으로 기도로 키우도록 합시다. 디모데는 훌륭한 믿음의 종 되었음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 즉 믿음의 기도로 되어졌다고 디모데 후 1장에서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나 사람은 한번 예수님을 믿으면서 새로이 나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안에서 새 존재로 태어남을 체험하십시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그들의 모습이 강한 교훈이 되고 우리 또한 믿음으로 새롭게 서는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이로 나야 합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녀/갈4:21-31
2001-11-21 13:34:22   read : 272

미국 CBS 방송에서 House Party 라고 하는 생방송 쇼프로그램을 26 년간 진행했던 아트 링클레터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 입니다. 이제 그 분이 쓴 책에 The New Kids Says the Darndest Things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어서 무려 400만 부가 팔리는 그러한 인 기 있는 책으로 많은 사람에게 읽히 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을 옮긴다면 애들이 기가 막히 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 책 첫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생전 처음 농장이라고 하는 곳에 구경을 간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양떼를 봅니다. 이 네살 박이가 용기를 얻어서 양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Whoop, they make them out of blankets!"

"야 사람들이 담요를 뜯 어서 얘들을 만들었구만"
그렇게 생 각합니다. 손으로 만지니까 담요 같거든요. 사람들이 담요를 뜯어서 이 양을 만들었다, 어린아이가 엉뚱 한 소리를 합니다. 이 엉뚱한 아이 를 놓고 물어봅니다.
"동생이 있어 요?"
이 질문에 애는 대답하기를
"아니요, 하지만 동생을 만드는 법 을 나는 알고있어요."

"어떻게?"
그는 대답합니다.
"음……. 엄마한 테 단 음식을 많이 먹여서 몸이 뚱 뚱해지면 동생이 생깁니다"
그래요.
"그러면 동생을 원해요?"
하고 물었 더니,
"아니요, 앞으로도 동생이 없 을 거예요"
하고 딱 잘라 말합니다.
"어째서?"
애는 대답합니다.
"나 하나도 낳은 것을 후회하고 부모님 들이 귀찮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이제 이 아이가 어떻게 될 거 같습 니까? 엄청나게 똑똑합니다. 그런 데 애는 지금 자기는 부모님들에게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귀찮 아서 부모님은 다시는 아이를 안 낳 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자기 정체의식의 시작입니다. 롤로 메이라고 하는 유명한 심리학 자가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 이라 고 하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데, 현대인은 산업문명 에 중독이 되어서 인간상실, 자아상 실증에 빠졌다. 이 기계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인간성을 다 잡아먹어 버렸어요. 그래서 고독해하고, 불만 해하고, 공허감에 빠지고, 방황하는 인간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문에서 읽었겠습니다 만은 요 며칠 전에, 요새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의 교실에서 컴퓨터를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논 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을 너무 어렸 을 때부터 빠져들어 가니까 인간성 이 발달하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미치면서 친구와 사귀는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독에 빠집니 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상 현실에 익숙해지면서 실제현실을 잃어버렸 습니다. 모든 것을 꿈처럼만 생각 을 하는데 현실은 그런 게 아닙니 다. 특별히 지능지수도 떨어지고 인간관계 여기서 오는 소중한 것들, 심지어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 어요. 컴퓨터는 늦게 배워도 됩니 다. 며칠 배우면 되는걸 일찍부터 배우게 해 가지고 새로운 기계를 만 드는 상품은 될는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데는 문제가 있다, 이것을 지금 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자 아를 찾는 길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항상 물으며 살 아가야 됩니다. '내가 누굽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굽니까?' 그 리고 가족들 앞에, 친구들 앞에, 모 든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자 앞에서 '내가 누구냐?' 이것을 물으면서 비 로소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올시다. 사랑 받는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 하나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입 니다. 여러분 흔히 말하는 문제아 가 있습니다. 왜요? 또 어떨 때 보면 사람이 이렇게 그 달라지지 않 는 걸 봅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거 같은데 영 인간은 영 아 니에요. 왜 그럴까? 그 많은 날 공부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더듬 어 더듬어 올라가 보면은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들, 이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어요. 이런 충분 한 사랑을 받으면서 사람은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 모든 것을 거기서 터득하고 그것을 가지고 한 평생 살아가는 겁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내 주위사람들이 얼마 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말은 못하나 느낌은 어른 들보다도 더 민감합니다. 눈치 딱 보고 압니다. 저 사람이 날 사랑하 는가 안 하는가. 자 이제 보세요. 그 사람이 나를 기뻐하는가 안 하는 가, 좀 더 나아가서는 나로 인해서 행복해하는가 불행해하는가 생각합 니다. 또 하나는 내가 저들에게 필 요한가 필요치 않은가를 생각합니 다. 또 하나 저 사람이 나를 사랑 한다. 사랑은 뭘로 평가가 됩니까. 얼마나 희생하는가, 나를 위해서 무 엇을 희생하는가. 시간을, 물질을, 정신을, 얼마나 나를 위해서 수고하 고 희생하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랑의 언어는 전달 이 되는 것이올시다. 제가 언젠가 한번 미국가정에 한 63년 그때 가 보았을 때 아주 놀란 것은 지하실에 아이들을 위해서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어렸을 때 장난을 좋 아해서 그 그런 그 많은 장난감 기 구를 볼 때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 서
"야 너희들은 참 행복하다. 이 렇게 많은 장난감이 여기에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했더니 애가 싱글 싱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빠 엄 마가 저희들 놀러가느라고 우리 떼 어놓느라고 사다준 겁니다"
그래요. 절대 고마워하지를 않아요. 나는 불편한 존재라는 거죠. 사랑을 느 끼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아들의 이 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로 서 이것은 상징적이요 비유적인 소 중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 다. 자 이스마엘과 이삭, 둘입니다. 여러분 아시니 설명을 드리지 않겠 습니다. 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미숙한 신앙에서 얻어진 부산물입니 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을 떠나라 말씀하시면서 내가 네게 땅을 주겠고 내가 너에게 자손을 주 겠다, 아들을 주마, 약속했습니다. 믿고 따라왔습니다 만은 한 10년 지 내보고 나니까 아 점점 나이가 먹었 지요, 아 아내는 쭈글쭈글해지지요.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가보다 조급 하게 생각이 돼서 편법을 취합니다. 그래서 몸종을 씨받이로 이용해서 거기서 아이를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이건 참으로 불행하게 얻어진 아이입니다. 이것 을 성경은 말하기를
"육체를 따라 났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태어난 아이라. 이건 실수로 태어났습니다. 낳았으니 어 차피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은 생각해보세요. 태어나지 말아야 될 아이였습니다. 어쩌면 생기지 말았 어야 할 아이가 생겨난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 후손이 아랍이 아닙니까. 요새 아랍과 이스라엘, 둘을 놓고 볼 때, 이 아랍사람들은 우리는 이스마엘이 후손이다 그래 요. 다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모슬람도. 이스라엘, 이삭의 후손입 니다. 그때의 실수가 지금까지 수 천년동안 원수로 지냅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태어나지 말 았어야 할 아이지요. 태어났더라도 이제라도 없어야될 아이라고 생각합 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쫓으라! 그래 내쫓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있습니다. 다 섯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느 날 상담 실을 찾아왔습니다. 와서
"너 왜왔 냐?"
그러니까
"상담하러 왔어요."
그래요.
"왜?"
그랬더니
"죽고싶어 서요"
그러더라고요.
"왜 죽고 싶 으냐?"
"아빠, 엄마가 나를 귀찮게 여겨요. 내가 우리 집에 세 번째 아이거든요. 그런데 늘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가족계획 실패해서 내가 태어났대요."
안 낳아야 될 것을 낳아서 저 놈 때문에 말썽이라 고 그러더래요. 자 나는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거예요. 기가 막힌 얘가 아닙니까? 이걸 알아야 됩니 다. 태어나지 말아야 될 자녀, 아주 귀찮게 여겨지는 자녀, 그것은 육체 를 따라 태어난 자녀입니다. 참으 로 불행한 것이올시다. 그 운명 자 체가 불행한 것이올시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어떻습니까? 바라고, 소원하고, 기다리면서 낳았지요. 간 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께서는 참 이상하게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원하는 시간에 주시질 아니 하시고 말씀하신 후에도 무려 25년 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 25년 동안 에 자기는 늙고 아내는 단산까지 합 니다. 아 이제는 인간적으로 끝났 다 생각하는 바로 이 때에 찾아오셔 서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그럽니 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내년에 네 아내 가 아들을 낳으리라."
아, 이거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러고 보니 내가 이스마엘을 왜 얻었지?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어쨌든 이래서 100세 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생각해 보 세요. 왜 하필이면 이렇게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계시적인 하 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자 녀란? 아브라함의 자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바로 여기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세요. 최고의 축복이라 고.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 이요 생의 의미가 그 이삭 하나로 인해서 있어지는 거예요. 최고의 선물로 주신다 그런 뜻이에요. 그 런 뜻으로 하시는 거예요. 이 속에, 우리에게 주신 자녀 이 속에 하나님 의 많은 말씀이 있는 거예요. 제가 잘 아는 장로님 가정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 맏아들이 고등학교 2 학년 때 그 아버지가 경영하는 조그 마한 공장에 다니는 직공과 친해져 가지고 아이가 생겼어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온 집안에 난리가 났 지요. 그 권사님 펄펄 뛰지요. 이 가문 망신이요 뭐 어쩌고. 장로님 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조금 속도 위반을 했긴 했지만 그 놈 재주도 좋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감사하 게. 결혼시켜주고, 고등학교 2학년 결혼주례 했습니다. 보세요. 왜 그 랬을까? 왜 그랬느냐구요? 그 사 모님이 내게 설명을 해줬어요. 이 사람이 나이 서른 될 때까지 방탕했 습니다. 술 먹고 방탕하고 못된 짓 하고, 국제 성병 걸렸어요. 온 몸이 썩어 나가는데 많은 시간 치료를 받 고 겨우 병을 멈추어 가지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했으나 10년 동안 애가 없습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아무래도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좀 나이든 다음에 양자라도 해야지, 하고 살았어요. 이제 예수를 믿었어요. 충만한 은 혜를 몸으로 받았어요. 몸이 불덩 어리같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어 요. 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연년생으로 다섯을 낳았어 요. 너무너무 감사한 거예요. 이거 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요 사죄의 은총이요 얼마나 큰 복입니 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그 감 사가 너무 크기에 뭐 오늘 이런 일 있다 하더라도
"그저 부전자전인 데."
그만하면 괜찮다 이거예요. 야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 극적 장 면의 얘기만 생각하십니까? 모든 자녀가 그렇게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큰 은혜로, 기적으로 세상 에 태어나는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돼요 그런고로 기도로, 기도 응답으로 태어나는 자녀래야 해요. 큰복으로 내게 주신 거예요. 내게 큰 선물로 주신 거예요. 내게 주신 모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이 거예요. 맥아더 장군은 큰 일을 많 이 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러나 그의 기도문에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내 아들, 이러이러한 아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나서 끝에 한 마 디 딱 하는데 저는 그 기도문은 늘 외워 봅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 금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시옵소서. 내 생은 이것으 로 끝나나 내 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녀에게서 결정이 되는 것이 예요. 그런고로 자녀를 이처럼 소 중히 여겨요. 왜요? 이건 내게 주 신 사명이요. 소중한 사명일 뿐만 아니라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사실 상 약속의 자녀 달랑 하나 주셨습니 다, 이삭. 기적으로 주시고 하나님 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그렇게 원 하고 계십니다. 이 자녀를 통해서, 이 자녀를 통하여 만백성이 구원을 받으리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 이 아들 하나를 놓고, 이 아들을 통하 여 계계승승 모든 백성이 구원받게 될 저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도록 그 렇게 원하시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 이 자녀와 함께 무한한 미래, 무한한 복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고, 자녀를 키 워가야 되는 것이에요. 이게 약속 의 자녀입니다. 그런고로 늘 감사 할 수밖에 없어요, 늘 기뻐할 수밖 에 없어요. 이 자녀와 함께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어요. 인내하고, 믿고, 기다리고, 약속을 확인하고, 약속을 그에게 확증시켜줘야 됩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녀들 가르 치면서 뭐 말이 많습니다. 뭐 이래 라 저래라 말이 많습니다, 이리 가 르쳐야 한다 저리 가르쳐야 한다, 다 별 소용없는 말입니다. 가장 중 요한 것, 자녀들이 바라고 또 성경 이 말씀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 자녀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하나 님께 감사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 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계속 이렇 게 말할 것입니다. I am so happy because of you, 나는 너 때문에 행 복하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문 제가 아니다. 너를 보면서 행복하 고, 너를 생각하면서 행복하고, 너희 들의 장래를 지켜보며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나의 생은 너희들로 인 해서 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렇게 말하고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즐거워하면 아이들은 그 속에서 무 럭무럭 자라는 것이에요. 약속의 자녀로 자라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한다는 게 뭡니까?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 이에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 해요, 말씀으로 가르쳐요, 약속을 확 인시켜주세요. 여러분 오직 참 사 랑만이 교육을 가능하게 합니다. 뭐 이래라 저래라 할 것 없어요. 옛날 어른들은 교육학도 모르고 심 리학도 몰랐어요. 유아교육법도 몰 랐어요. 그래도 훌륭하게 키웠어요. 왜요? 사랑하니까. 그 뜨거운 사 랑 하나만으로 교육은 충분했어요. 실례지만 제 어머니는 그 흔한 국민 학교도 못 나왔어요. 그래도 성경 을 많이 읽었어요. 그의 사랑 하나 로 충분합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10년을 기도하고 너를 낳았다. 하 나님 앞에 약속했다. 목사가 돼라. 이젠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 어머 니는 항상 기뻐했어요. 아들을 위 해서 기도하면서 기뻐했어요. 그는 나 하나 때문에 행복했어요. 그것 을 알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94세 까지 사셨습니다. 어쩌면 나 하나 때문에 나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그는 오래오래 살았어요. 저는 94 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첫 마디 이렇게 느꼈습니다. '어머니 이 어려운 세상에 어째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둘째는 '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 살았군요' 그렇게 생각했습니 다. 오직 사랑으로, 뜨거운 사랑 하 나만으로 교육은 충분한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랑만이 창조적이요 생 산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오늘 육체를 따라 난 자녀, 그 의미 를 바꿔야 됩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녀로 자녀에 대한 의미가 신학적 으로, 성서적으로 중생되어야 합니 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약 속의 자녀 이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서 무한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내가 느끼고 살아갈 때 우리들의 자 녀는 이 어려운 세대를 헤치고 밝은 미래를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미라클
글쓴이 : 최정남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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