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8. 1. 10:44

예수님을 모신 사람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종종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하여 사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살기위해 먹는다 하겠습니까? 먹기위해 산다 하겠습니다. 요사이는 하도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서 사람들은 먹기위해 사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마구 먹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살기 위해 먹지요'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서 무얼 할 것입니까?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여러가지를 대답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옳은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예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산단 말입니다.

예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영접한다는 말이 모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다는 말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면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 뜻대로 살게 되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세상 임금의 아들이 되면 왕자라 합니다. 임금의 딸이 되면 공주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었는데 겁날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왕자는 임금님과 한 상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과 늘 함께하고 무슨 요구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2.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이 죄 때문에 결국 죽게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정말 겁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면 죄없이함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죄를다 없이하여 주십니다. 죄 없이함이 되면 자유스럽게 되고 행복하여 집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죽어서도 천국에 갑니다. 이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이 큰 복을 예수님을 모시므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술주정군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술만 먹었다하면 행패를 부립니다. 매일처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 와서는 어머니를 때립니다. 행패를 부립니다. 아들은 그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밉고 어머니가 불쌍하였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술이 취하여 들어 와서는 가재도구를 마구 파괴하였습니다. 그렇게 못하도록 말리는 어머니를 때려 기절시켰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죽은 줄을 알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어머니는 깨어났지만 아버지는 죽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경찰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재판석에서 소리쳤습니다. "재판장님 아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대신 나를 가두어 주십시오. 내가 아들 대신 형을 받겠습니다."

재판자은 말하였습니다. "그럴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죄를 어머니가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끌려가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을 대신하여 형을 받을 수 없고 아들의 손을 잡고 우는 일 뿐이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마지막 날 심판을 받습니다.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자기의 죄는 다른 어떤 사람이 대신할 수 없고 자기가 담당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그렇게 복됩니다.


3. 기쁨이 넘침니다.

예수님을 모신 증거는 기쁨입니다. 요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 넘칩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요14:27)

예수님을 모시는 일은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되고 구원받고 기쁘게 살아갑시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아침에도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이 모두 다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법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보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왜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까? 그것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출33:20). 참 무서운 일입니다.

옛날 희랍의 어느 철학자는 자기가 하나님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하루는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쨍쨍 내려 빛추는 해를 바라 보았습니다. 해를 보고 있으면 햇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두 시간을 꼼짝 하지 않고 해를 바라 보았으니 동공이 상하여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죄없이 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인데 어떻게 죄 없이 함이 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되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죄를 없이 하여 주시는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 일입니다. 믿으면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먼저 할 기도가 죄 용서를 비는 기도입니다.

"예수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그리하면 죄 없이함이 됩니다. 죄 없이함이 되는 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길입니다. 마음이 깨끗하여지면 마음의 문이 열려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봅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죄없는 마음이 되었을때 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자연만물 속에서 보게 됩니다.

롬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만물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분이 십니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아름다운 산, 들의 풀과 꽃들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밤 하늘에 별빛, 고요한 달빛, 이 땅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지으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천지 만물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별 탈없이 안심하고 살아갑니다. 큰 동물만 활개치고 사는 것이 아니고, 작은 개미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자연만물은 질서있게 살고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자기 괘도를 따라 움직이고 충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늘 충돌할 것입니다. 하루에도 자동차 사고가 얼마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천체가 충돌없이 잘 운행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운행하시기 때문입니다.


2.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울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은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명령이고 법이고 말씀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됩니다.


3.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빌립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빌립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니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요14:9)

예수님이 곧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 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됩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마음을 깨끗하게 합시다. 죄없이 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없이함만 받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고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 많이 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그리하여 항상 하나님 안에서 살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어린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죄없이 함을 받아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보는 자리가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다니고 우리 마음대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간섭하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불행스러운 일 같이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가운데서 되어지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자기 마음이 원하는대로 행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하든지 원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미국에 유명한 설교자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밥 죤스 목사님이었습니다. 밥 죤슨 목사님은 어디든 설교를 요청하면 가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도시의 큰 교회만 가시는 것이 아니고 시골의 작은 교회에도 가셨습니다. 어느날 시골교회 에서 설교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차를 몰고 길을 떠났습니다. 도시의 길은 아스팔트가 깔려있어 아무리 비가와도 상관없지만 포장이 되어있지 않는 시골길은 비만 왔다하면 길이 말일 아니었습니다. 비가 온 후라 시골길은 대단히 험하였습니다. 길이 진흙 바닥이 되어 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차가 구덩이에 빠져 바퀴만 돌고 나올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차에서 내렸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진흙 구덩이에서 차를 꺼내어 나갈 수 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까지 5리길이나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걸어서 5리길로 나갔습니다. 마을에 당도하여 제일 첫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두 어린아이가 울고 있고 옆에 아이들의 아버지가 달래고 있었습니다.

죤슨 목사님은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이들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죤슨 목사를 맞아 주었습니다. "왜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까?" 죤슨 목사님은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손님이 들어서자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이틀 전에 아이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있는 곳에 데려 달라고 조르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죤슨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동안 멍하니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부인께서도 예수님을 믿으셨습니까?" "예, 아내는 교회에 착실히 출석하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럼 선생께서는 교회에 나가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나의 손을 꼭 잡고 당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말입니다." "그래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그렇게 하겠노라고 눈물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믿으셔야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니요?" "어떻게 하는것이 믿는 일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죤슨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란 걸 말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도리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얼굴에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어 나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죤슨 목사님은 나오면서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 주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얘들아, 어머니는 저 먼 하늘나라에 가셨단다. 그 곳을 가기 위해서는 너희들도 교회에 잘 다니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단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죤슨 목사님은 걸어나오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 혼자 말을 하였습니다. "아, 오늘 나의 자동차가 왜 진흙구덩이에 빠졌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것이 옳고 바른 일이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죤슨 목사님 처럼 차가 진흙덩에 빠졌을 때는 실망하고 화도 나겠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정말로 좋은 전도를 하고 아이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길도 그와 같은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마음에 맞든지 안 맞든지 하나님의 주시는 길은 따르고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따라 가도록 합시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인도가 함께 계시도록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

(막 4:40)

어느날 예수님을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몹시 피곤하시어 배의 뒷쪽에 앉으신채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풍랑이 일었습니다. 배가 흔들리고 물결이 배 안으로 밀려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하여 물을 퍼내며 배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앞으로 나가지 않고 뱅글 뱅글 돌았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그때야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 같으면 해결하여 주실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 예수님"하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눈을 뜨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짐짓 물으셨습니다.

"큰 일 났어요. 우리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어요. 도와 주세요."

예수님은 일어 나시어 바다를 향하여 소리 쳤습니다.

"바다야, 잠잠 하거라. 바람아, 그만 날뛰거라."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바람이 잠잠하였습니다. 파도가 잔잔하여 졌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어째서 너희들은 그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그렇게도 없느냐?" 그렇습니다. 제자들에겐 정말 믿음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풍랑을 보고 무서워 했거든요.


1. 믿음은 어려움을 이깁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음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믿음을 갖인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그 어려움이 유익하게 됩니다.

스위스의 교육가 폐스탈로치를 아시지요? 그는 세계적 교육의 아버지시지요. 그는 어려움을 많이 당하였지만 그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계속 행복하기만 했다면 결코 나는 크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사람되게 된 것은 어려움 때문이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기도하였고 그 결과 유익하게 되었다. 고난과 눈물이 나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늘가는 길'이란 유명한 책을 쓴 번연 요한 목사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매드포드 감옥에 갇혔을 때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왜냐하면 어려울 때 더욱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구하지는 않으나 그것이 우리가 구할 만한 가장 좋은 것일 수 있다. 어려움이 올 때 더욱 하나님께 기도 하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김을 주실 것입니다.


2. 믿음은 문제 해결을 받습니다.

믿음을 갖인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당하여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여 주십니다. 미국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락크거리에 찰리 포이든이란 어린 소년이 아버지와 단 두 식구가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구두를 수선하고 구두룰 받아 팔아서 생활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러나 좀처럼 아버지의 병은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였어요. 몇 달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고 계속 자리에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약 살 돈은 물론이고 먹을 것을 마련할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찰리 포이든은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때 예수님께 구하면 해결이 됩니다.찰리 포이든은 그자리에서 예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아버지가 병들었습니다. 약살 돈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빨리 보내 주세요. 이 다음 내가 커서 예수님의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찰리 포이든 락크거리 23번지."

봉투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예수님 앞이라고 썼습니다.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며칠 후 찰리 집에 한 분의 신사가 찾아 왔습니다.그는 우체국 직원이었습니다. 치료비와 식량을 갖고 온 것입니다. 찰리를 학교까지 보낼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처음 우체국 직원들은 찰리 포이든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열어보았습니다. 딱한 사정을 알고는 예수님을 믿는 신우회 회원들끼리 돈을 모았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가능케 하여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는 앞으로 여러분이 커서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의 부모님처럼 곁에 계시고 여러분을 살펴주실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우는 사람

(느 1:4)


옛날 유다나라에 느헤미야라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나라에 전쟁이 나서 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적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적의 나라 바벨론은 힘이 강한 나라요 큰나라였습니다. 바벨론 나라의 임금님은 마음이 넓은 분이었습니다. 작은 나라에서 잡혀 온 포로들이지만 착실하고 정직하고 똑똑한 사람은 뽑아서 벼슬을 주고 바벨론 나라를 도울 수 있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잘 섬기며 정직하고 착실하였습니다. 똑똑하였습니다. 임금님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나라의 고급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임금님 곁에서 일을 보는 귀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어느날 느헤미야는 고국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쟁때 포로가 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 많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이 무너져 있지만 그것을 다시 세울 엄두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앉아서 울었습니다. 수일 동안 음식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나라를 사랑하는 느혜미야를 우리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사람들에게서 해방된지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금년을 조국광복 50주년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휴전선이 가로막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전선 넘어엔 같은 동포이지만 공산주의에 빠져 하나님도 모르고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어요. 공산주의 사람들은 공산주의로 통일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통일을 원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슬픈 우리나라 형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나라에 평화통일을 주옵소서. 공산주의는 멀리 물러나고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통일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1. 신앙의 눈물입니다.

느헤미야는 신앙으로 울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잘 되고 우리의 교회가 잘 되고 우리나라가 잘 되도록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어느곳에 예수님을 잘 믿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결혼기가 되어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 시집을 갔습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두 집사입니다. 신랑은 주일학교 교사요 찬양대 대원입니다. 이 새댁은 시집가서 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이었어요. 새벽에 잠이 깨어 눈을 떠보

니 신랑이 없는 것이예요. '새벽기도 간 건가?' 생각하고 기다렸어요. 얼마 후 마루에서 '꿍'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예요. 새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시아버지와 신랑이 큰 보따리를 마루에 내려 놓은 것이예요. 그것은 도적질 한 물건들이었어요.

예수님은 믿는다는 집사인 시아버지와 찬양대를 하는 신랑이 도적이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 앞에 사실이 들어난 것을 어떻게 해요. 새댁은 일어나지 않고 이불을 덮어 쓰고 울고 있었어요.

신랑이 늦게사 방에 들어와 새댁을 보고 말했어요.

"일어나 밥을 짓지 않고 왜 울고 있나?"

" ~     ~     ~ "

"어디 아프냐?"

"마음이 아파요."

"시아버지가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마음이 아프다니?"

"집사님 집에 도적질 웬 일입니까? 그렇게 하고도 교회에 가서 기도 할 수 있습니까?"

"없어서 안 그렇나?"

새댁의 말을 듣고 깊이 뉘우친 시아버지와 신랑은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댁의 눈물은 신앙의 눈물입니다. 신앙의 눈물로 가정을 구하고 나라를 빛내는 어린이가 됩시다.


2. 나라 사랑의 눈물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싶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임금님은 그의 눈물을 보고 그를 고국에 가서 일하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나라와 민족이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되기 위해서는 작은일에서 부터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적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은 장차 나라를 위해 울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예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남과 나라를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마 26:36)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때 혼자 가시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날밤 기도하시면서 제자들도 깨어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두 가지만 생각 하십시다.


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헤어지기를 기뻐하시지 않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겟세마네 동산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곁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됩니까? 기도 많이 하면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찬송을 많이 불러야 합니다. 찬송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찬송 부르는 시간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할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전도하는 시간은 예수님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전도를 많이 합시다. 착한 일을 할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어려운 친구를 도우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 도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자 기도하였습니다. 와서 보니 제자들은 보니 제자들은 잠만자고 있었습니다.

"잠시도 깨어 있을 수 없드냐?" 예수님은 꾸짖어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진실되게 기도해야 합니다. 서울 개봉동 어느 교회에 박목사님이 계십니다. 그가 목사님이 된 일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가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그는 장로의 아들로 잘 믿는 가정에서 자랐고 교회 출석을 하였지만 하나님을 마음으로 진실되게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해 여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야영용 천막을 갖고 강가로 놀러갔습니다. 천막을 처 놓고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도는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백미터 이백미터 그냥 떠내려 갑니다. 큰 일 났습니다. 아무리 돌아 설려도 물살이 강해서 돌아 설수가 없었습니다. 약 1키로미터 정도 떠내려 갔습니다. 그때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이제는 죽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억울하였습니다. 아직 아무런 일도 해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게 되다니 억울하였습니다. 그리고 후회스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교회생활 잘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천국에 간다는 자신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은 물 속으로 깊이 잠겼습니다. 그러나 다시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숨을 길게 들어 쉬지도 못했는데 다시 물 속으로 깊이 내려 가습니다. "이제 죽는 구나!"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솟았습니다. 세번 째 물속으로 잠겨 들었을 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시면 목사라도 하겠습니다. 살려 주옵소서" 순간 강한 힘이 그를 이끌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살아 나왔습니다. 그후 그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박목사님은 다급할 때 진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예수님 앞에 기도 잘 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도 약하고 겁도 많았지만 예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여러가지로 부족하지만 예수님이 사랑하십니다.


낙망하지 말자

(시 42:5)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어려움을 당하며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어려움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아직 큰 어려움을 당한일이 없으셨죠? 그러나 갑자기 부모님을 잃는다든지 형제를 잃게될때 참 슬프고 낭패하여 집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슬퍼하고 낙망하고 울고만 있겠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면 우리는 어려움을 이기고 좋은 날을 맞게 됩니다.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낙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낙망이란 말은 낙심을 말합니다. 낙심은 바라던 일을 이루지 못하여 맥이 빠지고 믿음이 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엔 누구나 낙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낙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1. 실패하였을 때 낙심하지 맙시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엔 모든 일이 잘되고 성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안되고 실패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반듯이 모든일이 다 성공을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실패를 해도 낙심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백 여년 전 미국에 필립 부룩스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필립 브룩스(Phillips. Brooks 1835-1893)는 젊었을 때 희망이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미국에서도 이름있는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을 하였습니다.

브룩스는 어느 사립학교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 앞에서는 여러가지로 서툴고 모자란듯 하였습니다. 결국 학생들의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실력이 없어!"

"말을 잘 할 줄 몰라." 부룩스는 교장선생님께 불려가서 권고 사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브룩스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빠지지 않고 잘 나갔습니다. 주일날 목사님 설교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교회생활을 전 보다 더 열심히 하였습니다. 주일학교도 나가서 스스로 도우고 교회의 여러가지 일에 몸을 드려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브룩스를 사랑하고 교회 여러가지 일을 즐겁게 맡겼습니다. 목사님이 먼 곳에 가실 때 브룩스에게 설교도 맡겼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설교 준비를 착실히 하여 설교하게 되니 교인들이 모두 좋아하였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브룩스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신학을 하게되고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브룩스가 목사님이 되었을 때 그는 음악에도 깊은 지식과 이해가 있어 작곡을 잘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브룩스 목사님은 찬송가도 많이 지었습니다. 우리 찬송가 120장도 브룩스 목사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브룩스 목사님은 실패를 실패로 돌리고 낙심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믿음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2. 질병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 가노라면 아픔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갖가지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려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부자 신자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아주 부지런히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에 성공하여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 가서 종합 진찰을 하니 낫을 병이 아니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낙심하였습니다.그때 목사님이 찾아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만 바라보면 살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 부자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나를 한 번만 살려 주시면 남은 전 생애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병에서 나아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산 절반을 바쳐서 개척교회 세우는 일과 세계 선교 사업에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되어야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떠한 일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해바라기가 해만을 바라보듯이 여러분은 주님만 바라보는 어린이가 되시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칭찬 받는 사람

(눅 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2)

베다니촌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았습니다. 두 자매는 예수님을 잘 섬기는 여성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오시면 이 집에 들리곤 하였습니다. 이 집에는 두 자매의 오빠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친구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 집에 들렸습니다.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는 기쁘게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였습니다. 마르다는 귀한 손님 접대를 위하여 열심으로 부엌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 계속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마르다는 일을 하다가 예수님께 와서 간청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 마리아가 나와 함께 일 하도록 하여 주세요. 일이 너무 많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음식 만드는 일에 너무 많은 수고를 하지 말아라. 간단한 식사면 된다. 마리아는 지금 좋은 일을 선택하였으니 그냥 두어라" 예수님은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착실히 잘 듣는 것을 좋아 하셨습니다.

마리아 처럼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칭찬 하십니까?


1. 믿음으로 하는 일을 칭찬하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아래 앉아 열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마음 속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되어 집니다. 믿음을 갖도록 노력합시다. 예수님의 말씀이 좋아서 듣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다. 그렇때에 예수님은 기뻐하시고 칭찬하여 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지난 6월 29일 오후 5시 30분경 서울 서초구에는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이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나라안이 이 사고로 술렁이었습니다. 정말 큰 사건이었습니다. 서초구 반포동에 서울 남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믿음 좋은 장로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고등법원의 판사였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부인과 함께 새벽마다 마포에서 새벽 기도회에 출석하십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두 부부는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습니다. 바로 사고가 나던 6월 29일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아침 출근을 하시면서 부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는 오래간만에 밖에서 하십시다. 퇴근하는 즉시 가도록 할 터이니 우리 법원에서 가까운 삼풍백화점 식당에서 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도록 해요. 마침 오늘 나는 아는 분이 소개하는 세미나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요. 마치고 나오면서 연락 드릴께요"

"그럼 아이하고 같이 갔다 오세요"

"그렇게 하겠어요"

"시간은 오후 5시 30분으로 예정하세요"

"알았어요"  그렇게 약속이 되었습니다.

부인은 장성한 딸과 함께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세미나 후 태백기도원에 가서 암으로 고생하던 장로님 한 분이 기적적으로 나아서 건강을 찾은 간증시간이 있었습니다. 부인과 딸은 그 간증을 다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몸소 체험하듯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치고 나오니 6시가 넘은 것입니다. 이침에 장로님과 약속한 시간이 지나서 급히 법원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 때 장로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큰 일났소.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어요?"

"예?"

"집으로 바로 가라구요."  하나님께서는 믿음 좋은 장로님의 가족들을 보호하여 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모시고 하는 일을 칭찬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시고 일을 한 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으신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하던 예수님을 모시고 일을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어린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없이 교회 다니고 예수님 없이 전도하고 예수님 없이 봉사 잘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마음의 즐거움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사람의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사람의 생활이 달라 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때도 마음 다하여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빛나게 한다는 말은 마음을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즐거움은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때 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마음에 즐거움이 옵니다.

찬송가 340장에 1절에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으면 기쁩니까? 죄용서함 받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근심하고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만 없게하면 되면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마음에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의 즐거움이 우리의 사는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1. 마음의 즐거움은 삶에 생기를 줍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면 사는 것이 기쁘고 항상 밝게 삽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감옥에서 지냈지만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기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롱펠로는 하나님은 우리 기쁨의 근원이시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의 마음에는 불평이 없습니다. 항상 기쁜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잘 해결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의 즐거움은 일도 즐겁게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 일을 하여야 합니다.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냐 아니면 불평을 품고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옛날 영국에 유명한 문학가 세익스피어가 어느날 런던에 있는 음식점에 들렸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하여 음식점에 들렸더니 그를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를 환영하였습니다. 이 집에 한 종업원이 이 때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그 종업원은 세익스피어를 보곤 반갑게 나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한숨만 쉬는 것입니다.

눈치 빠른 세익스피어는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있는 종업원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종업원에게 말하였습니다.

"형제여! 어찌하여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비를 들고 있습니까?" 그때 그 종업원은 대답하였습니다. "다 같은 남자로 태어나서 당신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는데 나는 밥을 얻어 먹기 위하여 식당의 마당이나 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 기쁨이 있겠습니까?" 세익스피어는 그 남자에게 조용히 답을 주었습니다.

"형제여, 마음을 평안하게 가지시요. 당신은 지금 식당의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우리 지구의 한 모통이를 쓸고 있는 것이요.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청지기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요.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때 이 종업원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내가 지구의 한 모통이를 쓸고 있군요" 똑같은 일을 하지만 마음 가짐에 따라 그 일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3. 마음의 즐거움은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수천 가지의 질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의학자의 말에 의하면 그 많은 질명 가운데 절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질병이 달아납니다.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병이 빨리 낫고 회복이 빠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5: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걱정 근심 다 예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살아 갑시다. 그리하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시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인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시100:3)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은 하지만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합니다. 또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기도할때 마다 부릅니다. 찬송할 때도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부를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좋은 일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지으셨을까요?


1.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습니다.

시편 8편 5절에 보면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아주 귀하게 지으셨습니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이 천사란 말은 원문 성경에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하나님을 '엘로힘'이라 하는데 천사라고 말하는 이 말은 원문 성경에 '엘로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습니다. 참으로 높고 귀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에 다른 어떤 것을 보더라도 부러워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아주 귀한 동물을 보더라도 그런 것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개가 아무리 귀여워도 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랑이가 아무리 겁나고 무서워도 호랑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물원에 가서 아름다운 공작새의 날개를 보고 "야, 아름답군. 나는 왜 공작새가 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물이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황홀해도 사람은 동물을 부러워하지않고 동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일 높고 귀하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최고이신데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으니 사람은 얼마나 높고 귀한 존재이겠습니까? 이 사실을 바로 알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바로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2. 신통하고 묘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참으로 신통하고 묘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되 이와같이 신통하고 묘하게 지으셨습니다. 영국에 유명한 부흥사 스펄죤 목사님은 "우리는 신기한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몸 안에는 그런 신기하고 기이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김익두 목사님이십니다. 어느날 김목사님이 연희대학(지금의 연세대학) 어느 교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교수님이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 시간을 내어 구경한 석유 뽑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석유 뽑아 올리는 기계 설비가 굉장하고 복잡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김목사님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 이상한 기계를 보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몸이지요. 이 기계는 하나님이 지으신 기계로서 얼마나 묘하고 신기한 기계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실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세밀하고 정확하고 분명한 것입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기계라도 사람의 몸처럼 복잡하면서 정확하고 묘한 기계가 또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에 살게 하신 우리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세상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어느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아홉 제자는 밑에 있으라 하시고 셋만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봉우리에 올라 갔습니다. 아름답고 웅장하고 좋았습니다. 나무들은 푸르게 자라고 있고 공기는 맑고 신선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해처럼 빛이 났습니다. 옷이 빛났습니다. 얼굴이 빛났습니다. 눈부시게 광채가 났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 놀라워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손님이 나타났습니다. 한 분은 모세이고 한 분은 엘리야 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모습이 너무 좋고 너무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만 원하시면 초막을 세개 짓겠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습니다."

너무 좋고 좋아서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그렇게 좋고 기쁩니다.


1. 즐거운 세상

예수님과 함께하는 세상을 즐거운 세상입니다. 옛날 빌립보성에 복음을 전하려 갔던 바울과 실라는 반대자들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기쁨을 참을 수 없어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세상은 감옥도 궁전이 되고 즐거움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즐거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다가 세상를 떠나게 된 어느 성도가 둘러 앉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땐 즐거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부터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가 된 것을 깨닫고부터는 너무나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는 없어지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된다. 그곳은 여기서 느낀 기쁨보다 더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나도 참으로 즐겁노라."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세상

예수님과 함께하는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세상입니다. 이 세 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괴롭고 슬픈 일이 많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기뻐하며 있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 곳은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이북땅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선생님은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 주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기를 원한다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좋아하여야 합니다..

태어나 말을 배우려는 두살 때 눈도 멀어지고 말도 못하고 귀도 멀게된 헬렌 켈러는 설리번여사에게서 교육지도를 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왔는데 그 말씀은 나의 걸음을 인도하는 지팡이와 같았습니다." 앞도 못보고 말도 잘 듣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알게되고 부터 그 말씀을 기억하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다라는 사실이고 그 말씀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예수님과 함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열심히 교회 출석 잘하고 교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어린이가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