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10. 10. 17:03

뜻을 정한 사람


(단6:19-23)


옛말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무엇이든 목적을 세우고 전진할 때 좋은 방법이 생긴다는 말이예요.

뜻 가운데도 나쁜 뜻과, 좋은 뜻이 있어요.

"나는 이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깡패대장이 될거야!"하면 이건 좋은 뜻인가요 나쁜 뜻인가요?

"나는 이다음에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거야."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전도왕이 될거야!"라는 훌륭한 뜻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늘 좋은 뜻,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그 뜻에 맞게 살아가야만 해요.


1. 하나님의 뜻대로 사신 예수님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어요. 그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아바,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피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인간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사형선고를 받아서 자기가 언제쯤 죽을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서도 십자가의 고통과 처절함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러나 끝내 예수님은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어요.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셨거나 피하셨다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수포로 돌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구원을 완성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가 있었던 거예요.

2.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던 다니엘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다니엘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갔어요. 비록 그는 남의 나라 땅에서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루에 세 번씩 조국땅을 향해 기도를 하기로 뜻을 정하였어요.

다니엘은 그 뜻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랑하셔서 많은 복을 주셨어요. 다니엘은 임금님의 사랑을 받아 세명의 총리대신중에 가장 칭찬받는 총리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어요.

그러나 다른 두 명의 총리는 은근히 다니엘을 미워하고 싫어했어요.

"흥! 임금님께서 다니엘의 말만 듣고 우리들 말은 들은 체 만체 한단 말이야!"

"아무래도 다니엘을 없애버려야겠어!"

"어떻게?"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쟎아?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이스라엘땅을 향해 기도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것을 꼬투리잡아 죽이자 이거야!"

두 나쁜 총리들은 무서운 음모를 꾸며 임금님께 갔어요.

"폐하! 이 모든 신하들이 의논할 일이온데 앞으로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삼십일 동안에 임금님 이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기도하는 사람을 사자굴속에 던지기로 하였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임금님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오냐! 거 어렵지 않지!" 하고는 법령에 도장을 찍어 주었어요.

"흐흐흐 이제 됐다! 어디 이따가 다니엘의 집으로 가보자!"

잠시후 나쁜 두 총리는 군사들을 데리고 다니엘의 집 근처에서 숨어 지켜 보았어요. 이욱고 저녁이 되자 다니엘은 창문을 활짝 열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다니엘은 왕이 내린 법령을 알고 있지만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어요.

"자! 왕의 법을 어긴 자다! 어서 체포하라!"

군사들은 다니엘을 붙잡아 임금님 앞에 끌고갔어요.

"폐하! 왕의 법을 어긴 자를 붙잡아 대령하였나이다!"

"그래! 어디보자! 엉? 아니 이 사람은 다니엘 총리가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다니엘이 법을 어겼사오니 법대로 그를 사자굴 속에 넣어야 할 줄로 아뢰오!"

"아!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냐! 다니엘아!"

임금님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넣으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의 법은 임금님도 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3. 뜻을 굽히지 않은 다니엘


다니엘은 비록 사자굴속에 들어가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어도 자기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어요. 임금님은 안타까와서 하루 종일 물도 밥도 안먹고 다니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이윽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임금님은 사자굴문에 가서 외쳤어요.

"다니엘아! 네 하나님이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원해주셨느냐?"

이 때 굴속에서 다니엘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네! 임금님!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모두 막아버리셨습니다!"

"오오! 위대하도다! 너의 믿는 하나님은!"

임금님은 다니엘을 나오게 한 후에 다니엘을 모함했던 두 총리를 끌어오게 했습니다.

"네 이놈들! 죄없는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겠다! 저 사자굴 속에는 너희가 들어가라!"

"아이고 폐하! 제발 목숨만은..."

"시끄럽다! 배고픈 사자들이 기다린다. 어서 들어가라!"

나쁜 두 총리는 다니엘 대신에 사자굴 속에 들어가 잡혀먹혔어요.

그 후 다니엘은 더욱 훌륭한 총리 대신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어요.


(결론) 이와 같이 좋은 뜻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신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지금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실 좋은 뜻을 세우고 예수님처럼, 다니엘처럼 날마다 그 뜻을 위해 기도해 보세요.



(어린이 주일)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마19:13-15)


오늘 말씀을 보니까 사람들이 안수기도(머리에 손을 언고 축복을 비는 기도)를 받게하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었어요. 당시 유대나라에서는 어린이와 여자들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했었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을 정도였대요.

하지만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어린아이를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면서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고 친히 어린아이들에게 안수를 베풀어 주셨어요.

예수님은 "천국(하나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1. 예수님은 왜 어린이를 사랑하실까?


바로 어린이는 죄악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갖가지 죄악에 물들어 악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요. 그러나 어린이는 악한 마음이 없고 욕심이나 더러운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거예요.


(예화) 영희라는 어린이가 있었어요. 영희네는 아빠, 엄마, 오빠와 영희 4식구예요. 늘 행복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이었어요. 그러나 어느날 그만 영희네 집에 큰 풍파가 찾아왔어요. 오빠인 철수가 학교에서 오던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거예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피가 모자랐어요. 하지만 철수의 피는 희귀한 피였기 때문에 피를 구할 수 없어서 수술도 못하고 있었어요. 피가 같은 사람은 오직 영희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어린 영희에겐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도, 아빠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큰 슬픔에 잠겨있었어요.

이 때 영희는 엄마와 아빠에게 다가가서 말했어요. "엄마, 아빠 울지 마세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피를 주겠어요." "대신 예수님께 기도해 주셔야해요."

그래서 영희가 오빠를 위해서 수혈을 해주었고 다행스럽게도 수술도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도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잠시후 아빠가 영희에게 와서 "영희야, 네가 오빠를 살렸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는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영희는 기뻐하면서 "아빠, 그럼 오빠는 살 수 있는 거죠?" "그럼-." 아빠는 즐거운 듯 대답했어요.

잠시후 영희는 말했어요. "아빠,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엄마, 아빠, 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는거죠?" 아빠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영희는 피를 빼면 죽는 줄로 알았던 거예요. 죽는 줄 알면서도 오빠를 위해서 피를 주겠다고 선뜻 나섰던 거예요.

이처럼 어린이에게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겸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이 진실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시는 거예요.


2.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


하지만 어린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예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가 있어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 겸손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 거짓없는 진실한 마음은 전혀없고 오히려 싸움질 잘하고, 거짓말도 잘하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가 있어요.

(예화) 용수는 참 순진하고 착한 주일학교 어린이였어요. 용수는 매주일 날마다 교회도 나가고 선생님 말씀도 잘들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되자 민호라는 나쁜 친구를 사귀었어요.

민호는 욕도 잘하고 싸움도 잘 했어요. 그리고 용수를 데리고 빵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줬어요. 그러다보니 용수는 민호의 부하가 되고 말았어요.

민호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구 때렸고 시키는 대로 잘 하면 먹을 것도 사주고 극장구경도 시켜줬어요. 용수도 그러다 보니 욕도 배우고 약한 어린이를 때려주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뺏기도 했어요.

하루는 민호가 용수에게, "야! 나 따라와! 우리 배밭에 가서 배 따먹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용수는 그날 안간다고 했다가 매맞을 것 같았기 때문에 따라 갔다가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어요, 그날 밤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 민호는, "야! 우리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 훔쳐먹자!"하는 것이었어요. "싫어" 그랬다간 "짜식, 남자자식이 배짱이 없어!" 하고 핀잔을 줄까봐 또 따라갔어요. 그래서 또 도둑질을 했어요. 서너번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고 엄마 아빠 주머니에서 돈도 훔쳐 극장구경도 갔어요. 그러다 보니 주일날 교회도 빠지고 놀러다니게 되었어요. 또 교회 와봤자 장난만 치고 설교말씀도 하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후 용수는 불량소년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무서운 일이예요. 결국 착하고 순진했던 용수도 죄를 지으면서 어린아이 다운 순수함을 잃고 악한 아이로 변하고 말았어요.


(결론) 우리 어린이들은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일꾼들이예요.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보면 안다.'는 우리 속담이 있어요.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 사람은 어릴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쪼록 지금 우리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이 볂지 않아서 이 나라를,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같이 행복하고 밝고 명랑한 나라로 일구어 가는 어린이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주일)

부모에게 효도하라


(엡6:1-4)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귀한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도 다섯 번째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고 명령하신 거예요.

자기 부모를 업신여기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잘 다니고 기도를 잘 해도 그 신앙을 믿을 수가 없어요. 가짜 믿음이니까요.

왜냐고요? 눈에 보이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길 수가 있겠어요?


1. 이삭의 순종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중에 이삭은 부모에게 가장 효성스러운 아들이었어요. 하루는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는데 그 명령은, "아브라함아! 너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하는 것이었어요.

제물이란 칼로 죽이고 내장을 꺼낸후 불에 살라 바치는 것인데 바로 자기 자식을 그렇게 죽여야 한다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도 사실을 숨기고 아들 이삭에게도 모든 것들을 말하지 않았어요.

"여보, 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와야겠오! 자! 이삭아! 어서 가자."

한참을 가던 이삭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아빠에게 여쭈었어요. "아빠! 참 이상하다?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왜 안가지고 가나요?"

아브라함은 뜨끔했어요. 그렇다고 "너를 제물로 잡아바칠 거다!"하고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준비해주실거야!"하고 대답했어요.

이윽고 모리아산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 네가 장작개비를 지고 산을 올라가라!"하고 말했어요. 다른 아이 같았으면, "에이! 저 무거운 걸 저혼자 지고 어떻게 올라가요? 반반씩 나눠져요!"했겠지만 이삭은 아무말 없이 그 장작을 지고 높은 모리아산을 오르는 거예요.

꼭대기에 다다르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갑자기 이삭을 밧줄로 묶기 시작했어요.

이삭은 깜짝 놀라, "어? 아빠, 왜 그러셔요?"하고 말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바치라시는구나!"하고 말씀하셨어요. 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아빠가 하시는대로 순종했어요.

다른 어린이 같으면, "싫어요! 난 죽기 싫어요! 아버지 미워요! 왜 날 죽여요?"하고 앙탈을 부린다든지, "아빠! 제발 살려줘요. 잘못했어요. 나 살려주시면 말 잘들을께요!"한다든지, "죽여요! 죽여! 날 죽이면 아버진 맘편하게 무사하게 살 줄 아세요? 두고봐요!"하고 투덜거릴 거예요. 그러나 이삭은 힘이 세었지만 아무 반항도 않고 아빠가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도 감동하셨지만 이삭의 순종에도 감동을 하셨어요.

이윽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치려하였어요. 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였어요. 그런데 내려치려는 바로 그 순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말라!"하며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막았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네 믿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이제 마음착한 네 아들 이삭에게 큰 복을 내려주겠노라!"하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저쪽 가시덤불에서 무슨 짐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어요.

"응? 저게 뭐지?"

아브라함이 달려가 보니 거기엔 양 한 마리가 뿔이 나무가지에 걸려 도망도 못가고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날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답니다.


2.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부모에게 순종한 이삭은 큰 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늘 지켜주셨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어요.

성경에 보면 "부모에게 순종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하고 말했는데 과연 그대로 되었어요.


예화) 양희네 엄마는 오래전부터 병에 걸려 장사도 못하고 누워있었어요. 양희는 돈도 없고 약도 없어 엄마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한약방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들러 양희엄마의 맥을 짚어보더니, "흠! 간이 안좋구만! 민들게 뿌리를 캐어다 즙을 짜서 드리면 효험이 있을텐데...."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양희는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가서 논밭 길을 뒤지며 민들레를 캤어요. 마침 민들레가 꽃이 필 때라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어요. 양희는 민들레 뿌리를 가방에 가득 채워 집에 가지고 가서 절구에 찧고 즙을 짜서 어머니께 드렸어요. 무척 쓰던지 어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잡수셨어요.

다음날도 양희는 칼을 가지고 시골로 갔어요. 그날 양희는 민들레를 캐다가 칼에 손가락이 베어 피가 흘렀어요. 게다가 책가방도 모두 비에 젖었어요. 게다가 양희는 감시까지 걸렸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양희의 정성을 보시고 양희 엄마의 병이 낫게 해주셨어요. 양희의 효성은 하나님을 감동시킨 거예요. 양희의 엄마는 양희가 캐다준 민들레 뿌리의 즙을 잡수시자 병이 나아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양희의 손에는 민들레를 캐다가 칼에 베인 칼자욱이 흉터가 되어 남아 있어요. 그러나 양희는 큰 복을 받아 예수님을 잘 믿는 훌륭한 남편과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 아 멘 -


하나님의 약속


창세기 6:9-9: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세기9:12-13)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전도사님이 질문 한 가지 하겠어요. 사람의 몸 속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물'이예요. 물은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물질이예요. 만약에 물이 없다면 사람들은 목이 말라서 죽게 될 것이고, 세수나 목욕 등 몸을 씻을 수도 없으며 농사도 지을 수 없을 거예요.

특히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물이 더욱 중요해요. 그들이 여행 중에 운송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있는데 그 동물은 무엇이죠? 네, 맞았어요. 바로 '낙타'예요. 여행자들은 여행을 하다가 오아시스라는 곳에서 목도 축이고 음식도 먹으면서 쉬기도 하는데 며칠씩 여행을 하면서도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해 물을 얻을 수 없으면 낙타를 죽여서 혹 속에 있는 물을 꺼내서 마시기도 해요.

이처럼 물은 중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많아지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답니다. 지난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어떤 지방에서는 집과 논과 밭이 물에 잠기기도 했고 세계 곳곳에서는 홍수 피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성경 말씀을 보면 홍수로 인해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았던 사건이 있어요.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예요.

노아가 살고 있던 당시의 세상은 말할 수 없이 악하고 부패한 세상이었어요. 얼마나 악한 세상이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시고 근심하실 정도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쓸어 없애버리기로 생각하셨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서 지옥에 갈 사람만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악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 공경하면서 의롭게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네, 바로 노아였어요. 노아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공경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하시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어요.

"노아야! 세상 사람들의 죄가 너무나 악하니 내가 홍수로 땅에 있는 모든 자를 다 멸망시켜야겠구나! 너는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너의 식구들과 각종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죄가 너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그대로 순종하여 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뚝딱! 뚝딱!"

노아의 여덟 식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매일같이 방주를 만들었어요. 이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노아와 가족들을 놀려대며 조롱하기 시작했어요.

"여보게! 노아 영감이 산에다 배를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 자네는 들었나?"

"뭐라고? 산에다 배를 만든다고? 와하하하... 아니 배를 만들려면 강이나 바다에서 만들어야지 산에서 만들고 있다고? 노아 영감 미친 것 아니야?"

또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 짓고 있는 곳까지 와서 놀려대며 조롱했어요.

"노아 영감! 당신 미쳤소! 그렇게 큰 배를 뭣하려고 산에다 짓는 거요? 당신 혹시 이렇게 돈 것 아니요?"

그러나 노아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사십 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비가 내려서 물바다가 됩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죄를 뉘우치고 어서 와서 배를 만드시오."

"으하하하하.. 뭐라고요? 비가 온다고요? 아니 저 하늘 좀 보쇼? 비가 오게 생겼나! 당신 정말 미쳤구만!"

이처럼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방주를 정성껏 만들었어요.

어느덧 120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 방주가 완성되었어요. 방주가 완성되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의 가족 여덟 식구와 공중의 새와 깨끗한 짐승은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했어요.

돼지, 토끼, 말, 소, 염소, 호랑이, 사자, 독수리, 참새 등 모든 짐승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여러 달 동안 먹을 양식도 차곡차곡 준비하여 들이게 했어요.

새와 짐승의 종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드디어 노아의 가족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로 들어가자 방주의 문이 굳게 잠겼어요. 바로 그 때,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바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땅도 갈라져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 올랐어요.

물이 차츰 차오르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설마 하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노아가 있는 방주 곁으로 달려와서 "노아! 우리가 잘못했네! 제발 좀 살려주게!"하면서 아우성을 쳤지만 한 번 굳게 닫힌 방주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아요.

40일 동안 밤낮으로 내린 비로 인해 세상은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과 짐승들은 남김없이 다 죽게 되었어요.

홍수가 퍼붓기 시작한지 150일이 지나서야 물이 걷히기 시작했고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어요.

노아는 바깥 세상에 물이 줄었나 안 줄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내어 보냈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노아는 7일 후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냈어요. 그러나 아직도 땅에 물이 찼기 때문에 비둘기가 살 수 없어 그냥 돌아오자 7일 후 두 번째 비둘기를 다시 날려 보냈는데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땅에 물이 빠졌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땅에 물이 차 있다는 것일까요? 네, 맞았어요. 땅에 물이 빠졌음을 뜻해요.

노아는 며칠을 더 기다린 후에 370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어요.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가장 먼저 식그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절대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서 그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에서 전도사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노아의 신앙


노아는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던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스스로 '착하다'하고, '의롭다'라고 하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의인이었어요.

당시의 사람들의 죄는 너무 부패한 것이어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근심하실 정도였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잘 공경하면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또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했던 사람이었어요. 120년 후에 임할 홍수를 대비해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배를 만들었어요.

더욱이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린 사실에서 우리는 노아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홍수 때문에 집도 다 잠기고 논도 밭도 다 잠겨서 못 쓰게 되었기에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식구들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가장 먼저 홍수에서 구해 주신 하니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노아의 귀한 신앙을 본받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많아져서 세상을 다 멸망시키고자 하셨지만 의인 노아는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가족과 함께 구원해 주셨으며 의인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보존하고자 하셨어요.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하시고자 하셨지만 노아가 방주를 짓던 120년 동안을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어요. 또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갔던 일주일 동안에도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올 수 있는 기간으로 주셨어요. 이 사실은 마지막까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요.


3. 약속의 무지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이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으며 그 약속의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어요.

홍수를 경험한 노아와 그의 자녀들은 홍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남아 있었어요. 아마 하나님이 무지개의 약속을 하지 않으셨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늘에 몰려오는 먹구름만 보아도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언약을 세우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바로 그 약속의 증거가 무지개랍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며 절대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죄의 결과는 곧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또한 하나님을 공경하며 믿음생활을 잘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어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무지개 언약에 따라 홍수의 멸망에서 인류를 지켜주고 계시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약 속의 증표인 무지개가 홍수를 막아 주듯이, 우리가 멸망받지 않는 확실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 장군


열왕기하 5:1-19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열왕기하 5:14-15)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 장관이 있었어요.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때로는 우호 관계를 맺을 때도 있었어요.(왕상 15:18-20)

나아만 장군은 한 때 아람 나라를 침범하여 속국으로 만들었던 앗수르라는 나라를 물리치고 아람 나라가 독립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기에 아람 나라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한 자'(왕하5:1)라는 높임을 받았던 인물이었어요.

이처럼 나아만은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군대장관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장군이었지만 그에게는 큰 걱정이 한가지 있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문둥병에 걸려서 몸이 차츰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붙잡혀온 어린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이 여자 아이는 아람 나라 군대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서 아람 나라에서 종으로 사용하고자 붙잡아온 아이였는데, 비록 남의 나라에서 종으로 사용하고자 붙잡아온 아이였는데, 비록 남의 나라에 잡혀와서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지혜롭고 용기있는 어린이였어요.

여자 아이는 자신이 섬기는 집의 주인인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저 주인 마님! 저의 조국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는 엘리사라는 훌륭한 선지자님이 계신데 나아만 장군님이 엘리사 선지자님 앞에 가시면 병을 고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남편 나아만 장군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이 사실을 아람 나라 왕에게 알렸어요.

"폐하!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성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자가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사마리아에 보내주소서!"

"아니! 정말로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장군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는 특별한 부탁의 글을 써줄테니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주시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이 써준 편지와 엄청난 보물들을 싣고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떠났어요.

이스라엘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아람 왕이 써준 편지를 전해주었어요. 그런데 아람 왕의 편지를 읽던 이스라엘 왕은 깜짝 놀라며 벌벌 떨며 근심에 빠지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 편지에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는 부탁이 써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은, 그런 큰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아람 왕이 괜히 시비를 걸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고자하는 어떤 흉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은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 잡히게 된 거예요.

당시에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을 자주 쳐들어와서 괴롭게 하던 나라였기에 이스라엘 왕이 두려움과 걱정에 떨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이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나아만 장군 일행을 자신에게 보내 주시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저들에게 알게 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어요.

왕은 나아만 장군 일행을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보냈고 나아만 장군 일행은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집을 향해 떠났어요.

이윽고 엘리사 선지자의 집 앞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 일행은 엘리사 선지자의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엘리사 선지자가 아닌 엘리사 선지자의 종이었어요.

그는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을 나아만 장군에게 전했어요.

"나아만 장군님! 저의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님께서는 장군님께서 지금 곧 요단강으로 가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병이 다 낫고 살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 장군은 몹시 화를 내며 불쾌하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인데 자기처럼 높은 사람이 찾아왔는데 얼굴도 내밀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예요. 더구나 엘리사 선지자는 굉장한 치료 방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왔는데 겨우 요단강 가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이나 하고 가라고 했기 때문이예요.

"얘들아, 돌아가자! 우리 아람 나라에는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 강물이 있는데 차라리 그곳에 가서 몸을 씻으면 되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군사들을 데리고 아람 나라로 되돌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종 중에 한 사람이 나아만 장군에게 말했어요.

"장군님!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선지자가 장군님의 병을 낫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킨다면 안하시겠습니까?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믿고 요단강가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가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종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을 하고 요단강가로 향했어요.

요단강 가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대로 요단강 물에 들어가서 일곱 번이나 목욕을 했어요.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문둥병에 걸려서 살이 썩어가고 몸에 고름이 흐르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결같이 곱고 부드러운 살결로 변하게 된 거예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말 나의 문둥병이 다 나았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자 단숨에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달려 갔어요.

"엘리사 선지자님! 선지자님의 말씀대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병을 고쳐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작은 정성으로 이 예물을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준비해온 금은 보화를 정성껏 엘리사 선지자에게 드렸어요. 그렇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금은 보화를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나아만 장군을 고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어요. 엘리사 선지자는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만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높여드렸어요.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도 고침받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깨닫게 되었어요. 나아만 장군은 비록 이방 나라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한 후로는 하나님만 섬기기로 약속하고 아람 나라로 돌아갔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전도사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 장군을 돌려 보낸 이유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집을 방문 했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을 집 안으로 맞아들이며 대접을 한 것이 아니라 '요단강 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면서 돌려 보냈어요. 왜, 엘리사 선지자는 냉정하게 나아만 장군을 되돌려 보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나아만 장군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였어요.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아람 나라 왕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었고 나라의 영웅으로 높임을 받고 있었어요.

그는 병이 들어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올 때에도 많은 군사와 병거를 이끌고 올 정도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좋아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의 못된 교만을 먼저 꺾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두 번째 이유로는, 문둥병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고쳐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어요. 당시에 고대 근동지방에는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주술이나 마술같은 미신들이 행해졌었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그러한 방법이 아닌 요단 강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함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엘리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예요.


2. 나아만 장군이 병을 고침받게 된 비결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 물에서 몸을 일곱 번 씻고 문둥병을 고침받은 것은 요단강 물에 어떤 효험이나 능력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지위나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화를 냈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했어요.

나아만 장군은 자기 집에 있던 어린 여자 종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자기 밑에 있는 종의 충고도 받아들였어요. 만일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아람 나라로 되돌아 갔다면 평생토록 문둥병을 고치지 못한 채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의 소원인 문둥병도 낫게 되었고 하나님도 믿게 되는 큰 축복을 입게 되었어요.

복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쉬운 방법이기에 아직도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어요.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믿고 순종함으로 문둥병도 낫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주신다는 단순하고 쉬운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어요. 이방인이었던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지위와 체면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문둥병도 고침받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의 귀한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 아 멘 --


어린 다윗과 거인 골리앗


사무엘상 17:1-54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지금 전도사님이 외쳤던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아는 친구 있나요? 네, 맞았어요. 어린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에게 한 말이예요.

오늘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해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에 이웃 나라에 살던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블레셋은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여러번 진 적이 있기 때문에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내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를 앞세우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블레셋이 쳐들어 온다는 소문을 들은 이스라엘 왕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엘라'라고 부르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어요.

사울 왕은 예전에도 블레셋을 이긴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전쟁에 임했지만 적군의 장수인 골리앗의 위세당당한 모습을 보자 어쩔 줄 몰라했어요.

골리앗은 2m 70cm가 넘는 키에 놋쇠로 만든 투구를 썻고, 57kg이나 되는 무거운 갑옷을 입었으며, 다리에도 놋쇠로 만든 보호 장비를 댄 채 칼과 단창으로 완전 무장한 채 날마다 골짜기 건너편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며 싸움을 걸어왔어요.

"으하하하하... 겁 많은 이스라엘 녀석들아! 나와 싸울 자가 있으면 어서 한 사람을 선택해서 나와 싸우도록 해봐라! 너희가 나를 이기면 우리 블레셋 사람들은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 골리앗이 이긴다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 겁쟁이 이스라엘 녀석들아! 으하하하....!"

골리앗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를 지켜보던 이스라엘 군대 중의 일부가 도망칠 정도였고, 지켜보다 못한 사울 왕이 많은 재물과 함께 자신의 딸을 현상으로 내걸 정도였어요.

이때 시골 소년이었던 어린 목동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보기 위해서 전쟁터에 오게 되었어요.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나간 세 아들의 염려 때문에 다윗에게 형들의 안부를 알아올 것을 부탁하면서 먹을 것을 다윗 편에 보냈기 때문이예요.

전쟁터에 도착한 다윗은 적장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교만한 말을 듣자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아저씨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저 적군의 장수가 누구기에 이스라엘 군대는 꼼짝도 못하는 거죠?"

"애야! 말도 말아라! 저놈은 골리앗이라는 장수인데 너무 힘이 세고 무서워서 우리 이스라엘 군대 중에는 이길 자가 없단다. 그래서 왕께서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자기의 딸을 주기로 약속까지 하셨단다."

"뭐라고요! 저 고릴라같이 생긴 골리앗이라는 자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데 참고 보고만 있단 말인가요? 내가 저 자를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다윗의 이 말은 사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사울은 다윗을 불렀어요. 사울 앞에선 다윗이 말했어요.

"폐하! 제가 저 거인 골리앗과 싸우겠습니다."

"무엇이! 너같은 어린 소년이 무슨 수로 골리앗과 싸운단 말이냐? 너는 어린 소년이지만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힘이 센 용사가 아니냐?"

"폐하! 걱정 없습니다. 제가 들에서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때 가운데서 새끼를 잡아 먹으려고 하면 내가 따라가서 싸워서 이기고 양떼를 구해냈고, 사자나 곰이 나를 죽이려고 할 때는 내가 그것으 수염을 잡고 싸워서 쳐 죽였습니다. 내가 사자와 곰도 이겼던 것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블레셋 사람들도 그 짐승들처럼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자나 곰의 발톱에서 지켜주신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굳건한 믿음을 가진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 왕은 어쩔 수 없이 다윗이 요청을 허락한 후 자기가 쓰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칼을 내 주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입어 본 다윗은 불편해서 도저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울왕이 내려 준 장비들을 다 거절했어요.

다윗은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손에 막대기를 든 채 시냇가로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어요.

물매는 돌을 담을 수 있는 긴 가죽조각으로 가죽의 양쪽 끝은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양쪽 끝을 잡고 빙빙 돌리다가 한쪽 끝을 놓으면 돌이 날아가게 되어있는 목동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무기였어요. 이 물매로 다윗은 사자나 곰을 쫓는데 사용하기도 했어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자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비웃었어요.

"잘생긴 어린 꼬마 녀석이 겁도 없이 내게 다가오다니!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내가 믿는 다곤 신의 이름으로 저주를 받아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리라!"

골리앗의 말을 들은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골리앗을 향해 외쳤어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덤비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와 싸우노라! 내가 너의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이 먹게 하리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내가 너로 알게 하리라!"

다윗의 말을 들은 골리앗은 "뭐라고! 어린 꼬마 녀석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떠들어 대다니!"라고 하면서 다윗에게 달려들었고 다윗도 골리앗을 향해 달리면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돌을 꺼내 물매에 넣고 빙빙 돌리다가 골리앗에게 던졌어요.

다윗의 품을 떠난 물맷돌은 '쌩!'하면서 날아가더니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되었고 골리앗은 '쿵!'하며 땅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다윗은 골리앗에게 달려가서 골리앗이 차고 있던 칼을 꺼내서 그 칼로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어요.

이 모습을 본 블레셋 군사들은 "아이고 큰일났다! 우리 대장 골리앗이 쓰러졌다! 우리도 죽기 전에 빨리 도앙가자!"라고 하면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어요.

반대로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군사들은 큰 힘을 얻고 달려나와서 도망가는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며 쳐부수었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다윗의 용기가 너무나도 멋있고 자랑스러워보이죠? 그럼 이제부터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는 어린이들이 되셔요. 또 하나님은 약한 다윗을 들어서 그보다 몇배 덩치도 크고 힘센 골리앗을 물리치신 것처럼 힘없고 연약한 우리 어린이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때 못할 것이 없음을 믿으세요. - 아멘 -


무너진 성벽을 다시 고친 느헤미야


느헤미야 1:1-6:19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헤미야 6:15-16)


유대 나라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한 후 바사라는 나라가 바벨론을 물리치고 유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였어요. 바사 나라는 세계 역사에서는 '페르시아'라고 불리었고 지금은 '이란'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당시 유대 나라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라는 왕이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한 모든 성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어 버렸으며(당시로부터 142년전, B.C 587년 역대하 36:19), 많은 유대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야 했어요. 그러나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에 의해 일부 유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1차 귀환, B.C 537년) 두 번째로 성전을 완성했었지만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고치지는 못했던 상태였어요. 그리고 후에 에스라라는 지도자와 함께 일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2차 귀환, B.C 458년) 에스라의 지도 아래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고치고자 했지만 대적자들의 방해와 아닥사스다 1세의 명령에 의해서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태워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어요(에스라 4:12-13, 21-23).

포로로 잡혀 갔다가 다시 조국 유대 나라로 돌아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들은 불타버린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바사라는 나라에 있던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게 되었어요. 느헤미야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이었지만 능력있는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사 나라의 왕인 아닥사스다 1세의 술 시중을 드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당시에 술관원이었던 사람은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셨을 뿐만 아니라, 왕은 자기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신하 중에서 술관원을 선택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왕이 있는 수산궁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어요. 느헤미야는 자신이 비록 남의 나라에 와 있었지만 죄로 인해 망해가는 자기의 조국을 생각하며 늘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던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느헤미야는 자기의 친 형제인 하나니로부터 자기 조국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 내용인즉,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버렸으며 백성들은 실망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몹시 슬퍼하면서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느헤미야는 자기의 기도가 이루어질 때가지 계속해서 밤낮으로 기도했어요(4개월 동안, 기슬르월(11-12월)-니산월까지(3-4월).

자기의 조국을 위해 기도하던 느헤미야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찼고 몸은 자꾸만 야위어 갔어요.

어느 날 느헤미야가 왕의 앞에서 술을 따라 드리고 있었는데 느헤미야의 슬픈 얼굴을 본 왕이 느헤미야에게 물었어요.

"느헤미야! 그대에게 무슨 근심이라도 있소! 얼굴이 몹시 안 돼 보이는구려!"

"페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버린 채로 있사온데 제 마음에 어찌 근심이 없겠사옵니까?"

"그러면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폐하! 폐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가 나의 조상들이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을 다시 고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왕께 자기의 소원을 말했어요.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자기의 곁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지만 느헤미야를 믿고 사랑했으므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어요.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요청대로 예루살렘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통과해야 하는 성들의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느헤미야가 무사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며, 성문과 성곽과 느헤미야가 살 집을 지을 수 있게 목재를 충분히 주었고, 느헤미야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군사들로 하여금 느헤미야를 호위하며 갈 수 있도록 허락했어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기 때문이었어요.

유대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조사를 시작했어요. 듣던 대로 성벽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성문은 불타 있었으며 그야말로 페허가 되어 있었어요. 조사를 다 마친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호소했어요.

"백성 여러분! 여러분이 보는 바와같이 지금 예루살렘성이 무너졌고 성문은 불타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부끄럽고 큰 슬픔에 빠져있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힘을 합해서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고쳐서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백성 여러분!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칩시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의견에 찬성을 하며 힘을 합해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치기로 결의했어요. 그러나 그 중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라는 세 사람은 느헤미야가 성을 다시 건축한 후에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며 반대했어요. 이처럼 적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성을 다시 고쳐나가기 시작했어요.

백성들은 힘을 모아 성문을 다시 고치며 망대를 다시 세웠으며 성벽도 하나씩 세워 나갔어요.

한편, 성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던 자들 중에서 호른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느헤미야를 조롱하며 군사들을 동원해 쳐들어가서 훼방을 놓기도 했어요.

그중에 도비야는 "당신들이 건축하는 성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오!"라고 하면서 비웃기도 했어요.

훼방꾼들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겁이 나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떤 방해와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쳐야 합니다. 이제부터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성을 지키면서 일합시다. 한 손으로 일해도 되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일을 하고, 두 손으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칼을 허리에 차고 일합시다. 우리가 일하다가 적이 쳐들어 온다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모든 사람이 달려나가 적들과 싸웁시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느헤미야는 밤낮으로 성을 지키면서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세워 나갔어요. 하지만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었고, 많은 세금 때문에 허덕였으며, 자녀들과 밭과 포도원 등을 담보로 돈이나 곡식을 꾸어오는 등 백성들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돈 많은 부자들이 고리대금 행위를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설득해서 부자들이 저당 잡았던 것들의 백분의 일을 동족에게 돌려주도록 하였고 이에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따름으로써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었어요.

이제 무너졌던 성벽은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고 성문을 달기만 하면 성벽 공사가 완공될 때였어요.

산발랏과 게셈이 사람을 시켜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 내어 살해하기 위해서 네 번이나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린 느헤미야가 거절함으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들은 계속해서 느헤미야가 왕이 되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면 중상 모략을 일삼았고, 스마야라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느헤미야에게 보내서 적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 올 것이니 성소로 도망치라며 느헤미야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으로 들어가게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짓도록 유혹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와 유혹, 그리고 백성들의 원망을 극복하고 드디어 52일만에 무너진 성벽을 완성시켰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느헤미야의 기도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던 유대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 버렸다는 소문을 들었던 느헤미야는 슬피 울면서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했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느헤미야는 자신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었기에 밤낮으로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왕의 허락으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온 후에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기까지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어요(느헤미야 4:4-5,9).

이와 같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어요.


2.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


유대 총독이 되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먼저 비밀리에 성벽이 무너진 상활을 조사한 후 백성돌과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성벽을 다시 고쳐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 도비야, 게셈 등 많은 대적자들이 나타나서 느헤미야를 모함하고 훼방하며 협박했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이러한 외부적인 방해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다 물리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울 수가 있었어요.

느헤미야가 이와같은 내,외적인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느헤미야같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한다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다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을 거예요.


3. 느헤미야를 도와 주신 하나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에는 느헤미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지만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도와 주셨다는 사실이예요.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의 아닥사스다 왕 밑에서 술관원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때문이었어요.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시기 위해서 느헤미야를 술관원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어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느헤미야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셨고(느헤미야2:8), 무너진 성벽이 이루어질 때까지 늘 함께 해주셔서 무사히 성벽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느헤미야 6:16).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고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와 헌신적 노력과 정성이 있었지만, 그 일을 뒤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무슨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거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도와주심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 아 멘 --

독수리 같이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11-12)




만약에 여러분이 새가 된다면 어떤 새가 되고 싶으세요? 할미새요? 뜸부기요? 독수리라구요? 그래요. 나라도 새 중의 왕인 독수리가 되겠어요.

(시각자료 25-1) 독수리가 새 중의 왕으로 불리는 것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 때문이에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독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할미새나 참새는 아무리 독수리 흉내를 내어도 독수리가 될 수는 없다구요. 그 두 번째 이유는 독수리가 받는 끔찍스러울 정도로 강한 훈련 때문이에요. 아무리 매서운 독수리라도 편한 세상에서 잉꼬새처럼 자란다면 결코 독수리의 명성은 지닐 수가 없어요.

그럼, 독수리가 어떻게 그 새끼를 훈련시키는지 볼까요?( 시각자료 25-2)어미 독수리는 둥지를 주로 바닷가 높은 벼랑에 짓는다고 해요. 물론 맹수나 독사의 손에서 새끼를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자기 새끼를 새 중의 왕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랍니다. 일단 새끼가 부화되면 깃털이 나기도 전, 즉 날개나 다리 근육에 힘이 생기기 전부터 훈련을 시작한답니다.

그 훈련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선 새끼가 누운 포근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에서부터 새 중의 왕이 되는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 동안에 의지가 되던 벼랑 바위 틈의 둥지마저 어미 독수리가 다 헐어내 버리면 새끼 독수리는 온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바위 틈에 의지하여 비바람과 추위와 싸우며 고통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겠지만 몇 일 몇 주가 지나면서 새끼는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위에 겁먹지 않는 담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독수리 새끼 훈련의 전부는 아닙니다. 어미 독수리는 아직 깃털도 안난 새끼 독수리를 그 높은 벼랑 둥지에서 밀쳐 떨어뜨립니다. 날개 근육에 힘이 없는 새끼 독수리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결코 어미 독수리가 매정하게 새끼를 죽이려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적응 못하는 겁 많은 자기 새끼를 아예 죽여버리려고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미 독수리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그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새끼 밑으로 급히 내려와 새끼를 업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끔찍한 훈련이 새끼 독수리 입장에선 처음부터 이해가 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훈련을 지체하지 않습니다. 한 번, 두 번, 스무 번, 백 번, 이 백번.. 계속되는 훈련을 통해 독수리는 무서울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새 중의 왕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새 중의 왕인 독수리도 자기 새끼를 그렇게 키울 줄 알거든 하물며 왕 중의 왕인 하나님께서야 그 백성이 왕의 자식다운 품위와 우아함을 가진 자녀로 자라나도록 훈련시키시는 일을 잊으시겠습니까?

사실, 오늘의 독수리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말씀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을 받습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오는 것도, 그분의 능력이 달려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더더구나 우리를 괴롭히거나 위협하려고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고난은 우리를 강하고 멋진 그분의 백성으로 키우시려는 훈련의 일환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금자리를 어지럽히고 새끼를 떨어뜨린 어미 독수리가 새끼 위에 나풀거리듯 하나님은 온 신경을 고통스런 훈련 중에 있는 우리에게 집중하시며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새끼가 감당 못할 처지가 되면 조금의 착오도 없이 새끼를 날개로 받는 어미 독수리처럼 주님도 우리가 감당 못할 때 우리를 그 넓은 등으로 업으셔서 구해내십니다. 새끼 독수리가 여러 번 떨어지다보면 겁먹고 소리지르는 대신 엄마 독수리가 자신의 안전과 모든 것을 책임져 줄 것을 믿고 안심하고 몸을 내던지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통해 우리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고난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품위 있고 우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기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 현장에 함께 계셔서 아픔과 안타까움을 같이 나누며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맡길 때 훈련은 더 이상 괴로움과 두려움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모험이 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독수리가 그 새기를 훈련하듯 저를 하나님의 품위있고 우아한 친 백성으로 훈련시키심을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악 쓰지 않는 삶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세기 26:12-13)




(미리 T.V나 어린이들의 놀이터, 시장 등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악 쓰는 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줌으로 시작하라. 준비가 안되면 곧바로 시각자료 20-1을 보여 주며 말하라) 이 그림은 음성 그래프입니다. 밤낮없이 소리를 질러대던 거라사인 땅 귀신들과 사람의 음성 그래프를 상상해서 그려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똑같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제 뜻대로 안되면 신경질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씁니다. 차근차근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쉽게 성내며 악을 쓰고 싸웁니다. 노래도 악을 쓰고 코미디도 악을 씁니다. 이 시대는 한마디로 악 쓰는 시대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 한 평생을 조용히, 정말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삭입니다. 그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한 번도 혈기를 부리거나 핏대를 내거나 멱살을 쥐거나 악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뜻대로 잘 돌아갔으나까 그랬을 거라구요? 천만에요. 사실 그는 (시각자료 20-1로 바꾸어 들고) 이렇게 소리를 질러야 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복 형인 이스마엘과 작은 엄마 하갈은 어린 이삭을 시샘하고 헐뜯으며 미워했습니다(창 21:9).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칼에 찔려 죽을 뻔했습니다(창 22:9-10). 또 그가 사는 땅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을 면하려고 블레셋으로 잠시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창 26:1). 블레셋에서 그는 하마터면 그 나라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지요.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심술 사납게 다 메워버렸기 때문에 그가 우물을 다시 파내자 그들이 와서 빼앗았습니다. 그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거기까지 그들이 쫓아와 그 우물도 빼앗아 버렸어요. 두 번씩이나 어처구니 없는 행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이삭이야말로 악을 써도 시원치 않을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이삭은 조용히, 정말 소리 없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를 낼 줄 모르는 바보 천치였나요? 시비 거는 사람들이 두려워 아무 소리 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겐 실력이 있었습니다. 악 써야 할 상황에서도 악 쓰지 않을 수 있는 실력 말입니다. 실력이란 바로 그의 믿음이었어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이지요. 500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버스 기사 아저씨와 버스요금 부족액 10원 때문에 악 쓰며 싸우겠어요?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유리 구슬 한 개를 남이 가져 갔다고해서 멱살 쥐고 핏대 세우며 싸우겠어요? 이삭이 조용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악을 쓰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있었습니까? 바보 취급을 당했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는 블레셋과 아비멜렉이 두려워할 정도의 거부가 되었어요.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이에요. 이삭은 그의 믿음으로 또 순종으로 하나님 마음에 웃음을 드렸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해 주셨던 거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야'라고 독점하시는 친 백성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악을 쓰면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이삭처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시각자료 20-1을 왼손에 들고) 이런 삶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껌 하나 과자 한 봉지 때문에, 돈 몇 백원 때문에, 예쁜 옷 한벌 때문에 소리지르고 악 쓰는 것은 친 백성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요. 양보해야 해요. 넘겨줘야 해요. 다 주어도 여러분은 손해볼 것이 없는 사람이쟎아요?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으니까요. (시각자료 20-2를 오른손에 들고)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믿음의 삶을 사셔야 어울리지 않겠어요?


기도 : 주님! 저에게도 이삭처럼 크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신 사람답게 악 쓰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먼저 구할 것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이 일렁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쉽게 평안을 잃고 화를 냅니다. 또 쉽게 기쁨을 잃고 슬퍼합니다.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낙심합니다. 사람이 사는 건지 염려가 사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걱정 근심에 싸여 당황해 합니다.

만약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안정되지 않고 술렁대는 원인을 그대로 찍어 보여줄 수 있는 X-레이가 있다면 (시각자료 21-1을 보이며) 그 X-레이 필름에는 이런 그림이 찍혀질 것 같아요. 사람들의 삶을 출렁거리게 만드는 가장 깊은 원인은 바로 이 의식주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이것에 골똘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뭘 해먹고 사나? 뭘 걸치고 사나? 어떤 집에서 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은 파도처럼 치솟아 오르기도 하고 내리꽂히기도 합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죽기도 하고 남을 죽이기까지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세 분의 선생님을 들판에 두셨습니다. (시각자료 21-2를 보이거나 아름다운 생화 한 송이를 보이며) 첫 번째 선생님은 꽃입니다.(꽃을 귀에 대고 무슨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해보리라) 이 꽃이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지요? 제가 이 꽃이 하려는 말을 통역해 드리겠어요.

"당신네 인간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하게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은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분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툭하면 입을 옷이 없다느니, 마땅치 않다느니, 구식이라느니, 무엇이 어떻다느니, 불평들을 하는군요. 난, 정말 여러분을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살다가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던져질 나 같은 꽃 한 송이에게도 이런 멋진 옷, 솔로몬 대왕도 걸쳐보지 못한 이런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는 하나님이신데요...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당신들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너무너무 안 어울려요."

(시각자료 21-3을 보이거나 실제 새 한 마리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와서 보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보내신 두 번째 선생님은 바로 이 새입니다. 이 새도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하네요. 제가 통역을 해드리겠어요.

"우리 새들의 사회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 소재는 바로 당신들- 인간들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툭하면 '뭘 해먹고 사나? 굶어 죽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조금 더 잘 먹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당신네 인간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새들의 코미디 소재라구요. 우리는 당신들처럼 심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지만 결코 염려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니까요. 당신네 인간들- 어려서부터 움켜쥐고 빼앗고 쌓아오면서도 어찌 그리도 마음이 늘 궁색합니까? 여러분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들에게는 우리를 돌보시는 그 좋은 하나님이 안계신 것 같은 확신이 든다구요."

(시각자료 21-4를 보이며)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생님은 달팽이입니다. 이 달팽이도 할 얘기가 많아요. 여러분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해 드리죠.

"여러분이 집 문제를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간들이 잘못 번역한 듯이 느껴져요. '하나님이 달팽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에요. 나 같이 가치 없고 연약한 달팽이 한 마리도 이처럼 사랑해서 이 멋진 집을 설계하시고 완공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여러분을 그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꼭 맞는 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당신네들을 위해 천국을 준비해 주신 분이 그분이시라면 그 하나님 앞에서 집 문제로 안달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세 선생님들은 우리를 너무너무 부끄럽게 하고 있지요? 이들의 마음을 특수 X-레이 기계에 넣으면 (시각자료 21-5를 보이라) 이런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이들의 관심은 의식주가 아니라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인 것 같아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쪽에 집중되어 있나요? 의식주 문제? 하나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볼까요? (마태복음 6:31-33을 한 목소리로 읽으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 멘


기도 : 주님! 꽃도, 새도, 달팽이도 걱정하지 않는 의식주를 염려하는 그런 품위 없는 삶을 살지 않게 도와 주세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만 신뢰하고 살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생과 사의 경고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2:1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네, 그래요. 요즈음 유행하는 유머들을 들어보면, '썰렁하다', 'Short 다리' .... 등등 TV에서 개그맨들이 사용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도 유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세상에 유머가 없다면 세상은 정말로 재미없고 짜증날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필요한 유머가 예배시간이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분반 공부시간,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 분별없이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깨뜨릴 때는 참으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러한 것들은 유머가 아닌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어린이들은 건전한 유머와 말장난은 분명히 구별해야 겠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서 유황과 불로 심판을 받았던 성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 성은 지금은 사해바다 남쪽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데 싯딤 평원이란 곳에 있었던 성이었어요.

어느 성인지 아는 어린이 있나요? 네, 맞았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이 바로 오늘 성경말씀의 무대예요.

당시에 소돔성은 풀이 넉넉해서 '하나님의 동산'이라고 불릴만큼 기름진 땅이었어요(창 13:10). 그런데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었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아지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멸하기로 하셨어요. 하나님은 그 성에 의인 열사람만이라도 있으면 멸망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어요. 그렇지만 그 성에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유황과 불로 멸망당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세 종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


하나님께서 성을 불로 멸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롯은 자신의 두 딸과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었어요.

"얘들아! 하나님께서 이 성의 죄악을 보시고 이 성을 불로 심판하신다는구나. 빨리 일어나 이 죄악의 성을 빠져 나가야겠다. 자! 어서 빨리 따라나서렴!"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롯의 두 사위들은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어요.

"장인 어른은 참으로 농담도 잘 하시네요. 아니 아버님 저 하늘을 좀 보세요! 하늘이 저렇게 아름답고 멀쩡한 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가시려거든 장인 어른이나 가세요."

롯의 두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기에 그 성을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결국 그들은 불의 심판을 받아서 죽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 주는 삶과 죽음의 전환점과도 같아요. 이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다면 멸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롯의 두 사위는 "빨리 일어나서 이 죄악의 성을 빠져나가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어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죄악의 도성에서 당장 떠나는 길 뿐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답니다.

전도사님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질문 한 가지를 해볼까요?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짓는 데 몇 년이 걸렸을까요?"

"네, 맞았어요. 120년 걸렸어요."

그럼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 성을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며칠 후에 심판하신다고 하셨을까요? 맞아요. 40일이예요.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120년간이나 주셨어요. 또한 니느웨성에도 40일이란 시간이 회개의 기간으로 주어졌어요.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은 지금 즉시 그 성을 떠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 데도 롯의 두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기에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친구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해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2. 하나님의 경고를 반신반의한 사람들


'반신반의'란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한다는 뜻이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한 사람은 다름아닌 롯의 아내였어요.

하나님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두 딸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그들이 성에서 빠져나오기를 지체하자 천사로 하여금 그들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인도하여 주셨어요. 그리고 결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면 멸망함을 면하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롯은 그 산이 멀어서 갈 수 가 없으니 가까운 '소알성'에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하나님은 롯의 청을 들어주셔서 소알성으로 피신하도록 허락하셨어요.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알성으로 피하자 하나님께서는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어요. 그 순간 롯의 아내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을까요?

소돔땅은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래서 농사도 잘되고 먹고 살 것이 풍부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그들이 쌓아논 재물과 부귀영화가 모두 불에 탈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던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또한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버리고 사람의 말로 들었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회하지 못하고 의심하였기 때문이예요. 그 성이 멸망 당할만한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는 데 그 성이 멸망한다고 하니까 그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고 반신반의 했기 때문이예요. 결국 롯의 아내는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의심하며 우습게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 어린이들은 꼭 기억하셔야 해요.


3. 하나님의 경고를 순종하여 구원받은 사람들


롯과 그의 두 딸은 생과 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생명의 길을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이었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이예요.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롯은 처음부터 순종하지는 못했어요. 롯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자 대피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즉시 대피하지 못하고 지체하였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체하는 롯과 가족들을 천사로 하여금 이끌어 내게 하셨고 롯이 피할 때까지는 그 성을 심판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은 롯을 끝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롯을 구원해 주셨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은 소돔성에서 나온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소알성까지 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임을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서 죽게 되었을 때 먼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 이셨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예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여 방주를 만듦으로 40주야 동안 내렸던 빗속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들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하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소중한 말씀을 들을 때에 옆사람과 장난치고, 떠들면서 농담처럼 듣고 흘려버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행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단비처럼 내려주실 수 있도록 진실하게 드릴 수 있어야 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은 구원의 문턱에서 유황불 속의 재가 되고 말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 하였던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죄악의 성을 떠났던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구원을 받았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일까요? 전도사님과 함께 따라하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자."

자, 기도해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1-12)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 탱크나 장갑차를 직접 본 어린이 있나요? 아마 전쟁 기념관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거예요. 전도사님은 군대에 있을 때 장갑차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탱크와 장갑차는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그런데 6.25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그런 무기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어요.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것을 노리고 1950년 6월 25일 주일날 새벽에 북한 김일성이 소련의 원조를 받아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어요.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남쪽에서는 수도 서울을 순식간에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수원, 대전을 차례로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대구 근처 낙동강 아래까지 내려 갔어요.

나라는 정말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어요. 이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의 달성공원에 교인들을 모아 놓고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하고 호소했어요. 그리고 학생, 청년, 장년들까지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많은 교인들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유엔군(세계 16개국)을 보내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하셨고, 또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을 해서 서울을 다시 찾고 북진을 했어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 거예요. 이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게 숙제로 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어요. 그것은 대통령과 국민들의 눈물의 기도때문이었어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망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이스라엘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쳐했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아말렉이라는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아말렉 족속들은 유목민들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서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게 될까봐 두려워서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게 되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민족이었는데 처음으로 아말렉과 전쟁을 치르게 됐어요. 아말렉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여호수아야! 너는 백성들 중에서 믿음이 강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나가서 아말렉 사람들과 싸우도록 하여라. 내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여호수아는 믿음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뽑았어요. 오랫동안 애굽에서 종노릇만 하였기에 대부분 용기가 없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강한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이 좋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을 선택하도록 한거예요.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사람들은 특별한 무기도 없었고 갑옷도 준비하지 못한 군대였지만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아말렉과 싸우기 위해서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전쟁터에 나가서 용감히 싸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고 있을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모세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이기고 모세가 힘이 들어서 두 손이 쳐지니까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기는 것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는 것을 본 모세는 다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이 또 승리했어요. 그렇지만 손을 들고 있는 것이 힘이 들어서 두 손을 내리면 또다시 이스라엘이 지고 아말렉이 승리를 했어요.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생각했어요. "아니!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있쟎아. 안 되겠다. 우리가 가서 모세를 도와야지!"

아론과 훌은 큰 바위를 들어다 모세를 바위 위에 앉게 한 후에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들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물리칠 수가 있었어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이기기까지 모세의 손은 내려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론과 훌이 곁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도와주었기 때문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아말렉을 물리친 원동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거라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모세는 힘이 들어서 자기 팔을 혼자 들 수 없을만큼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거예요.

아말렉과의 전쟁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된 것을 책에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가 외울 수 있도록 항상 들려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여호수아를 모세 뒤를 이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처음으로 전쟁을 치뤘던 아말렉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 진멸해 버리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기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어요. 그 이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찬양으로만 영광을 돌렸는데 아말렉과 전쟁을 치룬 후에는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어요.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케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말이예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는 언제든지 승리케 하여 주신다는 귀한 믿음을 담고 있는 말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럼 이제부터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어요.


1. 기도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왔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이었어요. 모세는 바로 앞에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게 했던 지도자에요. 지팡이를 든 모세의 손을 바다위에 내밀자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평펑 솟아나올 정도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 모세였어요. 그렇지만 모세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예요.

모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후에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한 것은 기도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어린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소원을 이루어 주실 거예요.


2. 서로 돕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이스라엘이 지게되자 아론과 훌이 바위를 들어다가 모세를 앉게 한 후에 양쪽 팔을 받쳐서 높이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또한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므로 모세를 도왔어요.

모세가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모세를 도왔던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교회에는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요.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들이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는 착한 어린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답니다. 남이 잘못하였을 때 손가락질이나 하고 비판만 하는 친구들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기도해주고 도와주고 어려움을 함게 나누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겠어요.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사도들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도와주었던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훌륭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도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처럼 서로 돕고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3.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고 아론과 훌이 아무리 잘 돕고 여호수아가 열심히 많은 책임을 잘 감당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세는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닛시'라고 불렀어요. 모세는 하나님께서 항상 승리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고 그를 도운 아론과 훌, 그리고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운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과 모세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이예요.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많은 영적인 싸움을 해야해요. 욕심과도 싸워야 하고, TV와도 싸워야하고, 이기심과도 싸워야하며 거짓 우상과도 싸워야해요. 그때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기도밖에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바로 맥추감사주일이예요. 어떤 친구는 장난으로 '맥주감사주일'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예요.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서 보리를 추수하기까지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절기때만 감사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또 어떨 때 감사를 드렸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하박국 선지자가 드렸던 감사를 배워보도록 하겠어요.


1. 환난날의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 나라가 멀지 않아 바벨론이라는 강한 나라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제 유대 나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는 폐허가 되고 농작물을 빼앗기고 짓밟히며 가축들까지도 우리를 떠나서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전쟁의 공포로 인해서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고 온 몸이 떨리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얼마나 귀한 감사인가요.

어제(97.7.5) 패스 파인더라는 우주 비행선이 화성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소식이 뉴스 속보로 TV에 보도가 되었어요. 벌써 오래전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과 미국의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었는데 이젠 화성에까지 우주선이 도착할 만큼 과학이 발달되었어요.

달에 도착했던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말을 했다고 해요. 먼저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달에 도착해서 "봐라! 그 어느 곳에 가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는데 암스트롱은 "봐라! 하나님의 솜씨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 어느곳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다."라고 했다고 해요. 어쨓든 화성에까지 인간의 손길이 이르렀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예요. 이것은 과학자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도사님이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한 가지 예화를 들려주겠어요. 에디슨이 어렸을 때였어요. 그의 집은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그가 발명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문을 팔아 돈을 벌어서 필요한 약품을 구입해야만 했어요. 어느날이었어요. 에디슨이 열차를 타고 집에 오다가 약품이 쏟아져서 열차에 불이 붙고 말았어요. 불이나자 사람들은 달려들어서 불은 끄고 말았지만 화가 난 차장 아저씨가 에디슨을 기차 밖으로 던져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그때 기차에서 떨어진 에디슨은 귀가 멀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에디슨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적인 훌륭한 발명왕이 되었답니다.

훗날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귀머거리가 되지 않았다면 이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연구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귀머거리가 된 것 때문에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발명왕 에디슨이 세계적인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귀가 들리지 않아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지헤를 주셔서 발명왕이 되었나봐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 여러분들도 전쟁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2. 없는 중에서 드리는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17절 말씀 속에서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했어요.

무엇 무엇인지 말해 볼까요?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러나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만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해도 감사한다고 했어요.

모든 것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감사하는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이예요. 비록 가진 것이 적거나 없다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정말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


3.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드리는 감사


18절 말씀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예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어둡고 답답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면 언제나 힘이 솟고 희망이 생기며 언젠가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은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과부의 헌금 정신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헌금'이나 '연보'라는 말을 들어 본 친구들 있나요? 들어 보았다면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는 친구 있나요? '헌금'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을 말하고 '연보'란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기 위해서 내는 돈을 말해요.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먹을 것도 살 수 있고 집도 마련할 수 있고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학용품도 살 수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에도 돈이 필요해요. 교회를 운영해 나가고 선교사업도 하고 전도지도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교회에도 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할까요? 하늘에서 떨어질까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던져주고 갈까요? 아니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바친 돈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바로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헌금이라고 해요.

어느날 예수님께서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헌금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셨어요. 당시에 헌금궤는 놋쇠로 만들어져 있었고 헌금을 넣는 구멍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구멍을 통해서 헌금을 넣었어요.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났어요.

그런데 어느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하면서 '쫘르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으와! 저 사람은 굉장한 부자인가 보다! 저 부자는 굉장히 훌륭한 분인가봐! 저렇게 많은 돈을 남을 위해 헌금하다니 믿음도 좋은 분일꺼야!..."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 부자는 어깨를 으시대면서 자랑스러워 했어요.

조금 후에 한 과부가 오더니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어요. '렙돈'은 구리로 만든 동전을 말하는 데 가장 가치가 작은 돈을 일컫는 말이예요.

그 모습을 보신 에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가난한 과부가 한 헌금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단다."라고 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요? 분명히 부자가 한 헌금이 훨씬 많은 데 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더욱 높이 평가해 주셨을까요? 제자들이 물어 보았어요.

"아니, 선생님! 분명히 부자가 더 많은 헌금을 했는 데 어떻게 과부가 더 많이 바쳤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부자는 풍족한 가운데서 조금 바쳤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전부를 헌금궤에 넣었기 때문이란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과부가 어떠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는지에 대해서 선생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어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이유는 그가 자기 생활비 전체를 드렸기 때문이에요.

당시 성전의 뜰은 네 군대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들의 뜰', 그리고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 등이 있었어요.

연보궤는 여인들의 뜰에 있었는데 이곳에는 나팔같이 생긴 13개의 연보궤가 놓여져 있었어요. 13개 중에서 9개는 성전 세와 각종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고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어요.

가난한 과부는 이 연보궤에 두 렙돈의 헌금을 정성껏 드렸어요. 이 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액수의 돈이었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정신을 칭찬하셨어요. 가난한 과부가 바친 헌금은 작은 것이었지만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바친 것과 같았기 때문이예요.

헌금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정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헌금은 결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다 바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땅에 몇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기근이 심할 때였어요.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로 가서 물과 떡 한 조각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 집의 과부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웅큼과 기름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그것은 자신과 아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대로 그것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바쳤어요.

그 결과 과부는 쌀 창고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얻게 되었어요. 이 축복은 사르밧 성의 과부가 온전한 희생을 드렸기 때문에 얻은 것이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도 이와같은 정신으로 드려야 해요.

부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적게 바쳤고, 가난한 과부는 작은 것을 가졌었지만 전체를 바쳤어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칭친하셨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을 기뻐받으시고 칭친해 주실 거에요.


2.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게 헌금을 드릴 때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예수님은 부자가 헌금 하는 것을 보았지만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얼마를 넣은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도리어 두 렙돈의 적은 돈을 드린 과부의 믿음을 칭친하셨어요. 예수님은 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칭친하셨을까요? 그것은 과부가 드린 헌금은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이예요. 바로 이것이 헌금 정신에요.

올바른 헌금 정신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느냐에 달려 있어요. 과부가 드린 헌금이 자기의 생활비 전체를 드린 것이라고 해도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리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 모세는 성막을 짓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바칠 것을 권유했어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헌금하였고 하나님은 그 헌금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셨어요.

또한 우리 어린이들은 삭개오를 기억하실 거에요.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사람말이예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신 후에 제일 먼저 어떤 행동을 하였지요? 삭개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삭개오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겠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자신이 가진 재물들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실거예요.


3.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어요.


우리 어린이들 중에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세금을 내 본 어린이들 있나요?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자동차세... 등' 수없이 많은 세금을 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나라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이 아니예요. 헌금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헤에 감사해서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예요. 만일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고 은혜받지 않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을거예요.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대한 감사이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에요.

초대교회에 헌금을 잘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네, 아나니아와 삽비라예요. 그들은 소유를 팔아서 그 돈 중에서 얼마를 숨기고 일부를 전부인양 사도들 앞에 내어놓고 성령을 속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어요. 이유는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예요. 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없었어요. 그들이 갖고 있던 소유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 헌금하는 시간이 되어서 헌금함이 앞에 오면 그제서야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헌금을 찾는 어린이도 있고 돈을 꺼내어 보고 오백원 짜리인지, 백원 짜리인지, 십원 짜리인지를 살펴본 후에 십원 짜리를 골라서 그것도 성의 없이 헌금함속에 집어 던지는 어린이가 있어요. 또 어떤 어린이들 중에는 부모님께서 헌금하라고 주신 돈을 가지고 교회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먹고 남은 돈을 가지고 와서 남은 돈만 헌금하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비록 적은 액수라해도 정성껏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꼭 그 헌금을 기쁘게 받아주실 것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외국의 어느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선교를 위해 헌금을 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정성껏 헌금을 했는데 한 소년은 주님께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 푼의 동전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헌금 주머니가 자기 앞에 왔을 때 그 소년은 헌금 주머니에 자기 몸을 바쳤어요. 그리고 그 소년은 후에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였고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어요. 혹시 그 선교사가 누군줄 아시겠어요? 바로 리빙스턴 선교사님이예요.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헌금을 원하고 계세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자의 예물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신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칭찬해 주셨어요.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게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제부터는 올바른 헌금과 올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풍성히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미가 6:6-8)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하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찬송을 많이 부르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하면 좋아하실까요? 도대체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옛날 이스라엘 땅의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는 자기의 아들을 신들에게 바치면 신들이 가장 기뻐하며 복을 내려 준다고 생각하여 귀여운 어린 아들을 장작불에 태워 자기가 믿는 신에게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무식한 일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아봅시다.


1. 공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의란 의롭고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보면 불공평한 일이 너무 많아요.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 이용해 먹는 악질적인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늘 이용만 당하고 가난하게 사는 일이 많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말하고 나쁜짓을 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기뻐하십니다.

맨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은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랍니다. 하나님은 속임수가 없기 때문에 맨 나중에 정확히 판단해서 상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억울해 할 것이 없어요.

세상에는 돈을 벌기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도둑질이나 강도질이나 혹은 사기를 쳐서, 또 어떤 사람은 술을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팔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소녀들을 꾀어 술집이나 미군부대 홀에 팔아넘겨서 돈을 모읍니다. 그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생명도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숨과 돈을 바꾸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결국 남의 인생을 망치고 남을 원통하게 하는 일이랍니다. 뿐만아니라 그 결과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으로 벌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하나 사랑하지 못하고 돌로 동생을 쳐 죽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어요.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은 사람을 특히 좋아하십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교회도 잘 다니고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또 방언도 잘하고 설교도 잘 하지만 사랑이 부족해서 날마다 서로 시기하고 싸움만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에배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랍니다.

(예화) 순덕이는 전라북도의 어느 시골에 사는 어린이입니다. 순덕이는 친구 영실이를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러나 영실이는 어느날 학교에 갔다 오다가 마을 앞 찻길에서 버스에 치어 다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주일날이 되어도 교회를 나갈 수가 없었어요. 어느날 순덕이는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하나님! 영실이가 다 나아서 교회를 혼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제가 도와주겠어요!"

그리고 순덕이는 주일 아침만 되면 영실이를 교회까지 업고 갔어요.

비가 올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게다가 교회가 멀기 때문에 순덕이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도 순덕이는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영실이를 교회까지 갈 수 있게 힘을 다해 도와주었어요. 두달이 지나자 영실이는 많이 나아서 순덕이가 부축만 해 주어도 교회까지 걸어갈 수가 있었고 세달이 되자 영실이는 절뚝거리며 혼자서도 교회를 걸어 다녔어요. 그러나 순덕이는 늘 영실이와 같이 다니며 성경책을 들어 주었어요. 그러나 석달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영실이의 손발이 되어 희생하는 것을 본 영실이의 부모님은 큰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영실이의 부모님은 동네의 유지였기 때문에 그 뒤 동네 사람이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져 많은 사람이 에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순덕이의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덕분에 교회도 부흥하게 되었어요. 이와 같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랍니다.


3.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신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인 원인도 교만한데 있었고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교만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너무 자랑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돈이 많다고, 착한일 좀 몇번 했다고, 힘좀 세다고, 공부좀 많이 했다고, 성적이 좋다고, 똑똑하다고, 재주가 좋다고.. 등등 너무 자기를 자랑하고 뻐기고 으시대면 하나님은 싫어하신답니다.

예수님도, "너희중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리라"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면 코끼리 앞에 개구리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하고 찬송도 잘 드려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과 사랑과 겸손임을 깨닫고 실천해야 되겠어요.

-- 아 멘 --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시 118: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분은 선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땅위에, 혹은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새순들은 맑고 순수합니다. 어린이들도 새순과 같이 맑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사랑스럽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새순은 귀엽지만 매우 여리기 때문에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돌봐주시고 언니나 형이 지켜줍니다. 선생님도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 보다도 어린이 여러분들을 더 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려쪼이는 여름철, 그리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십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는 한겨울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십니다. 병들어 고생할 때에도, 악한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할 때에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던지 두손 모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어린이를 더욱 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는 축복의 손을 펴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나 찬송할 때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감사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입니다. 우리 어린이도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어린이, 지혜로운 교육을 통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는 어린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가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합시다


(시 116: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드리면 드릴수록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면서 한 가지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크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너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어떤 벌을 받을까요?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 무서운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뿐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낮의 따스한 해와 밤의 아름다운 달을 쳐다 보세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하나님께 누가 감사함을 게을리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 크신 은혜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미국에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아버지 목사님은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가고 아들도 자기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갔습니다. 주일날 모든 예배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아버지 목사님이 먼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조금 후에 아들이 돌아 오더니 아버지 목사님의 손을 잡고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려야 겠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앞으로 달려 들어 그것을 피하다가 차가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다치지 않고 차도 많이 부서지지 않아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네가 체험을 하였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은 어디서든지 이렇게 지켜 준단다. 정말 감사하다. 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런 사고없이 에배를 보고 돌아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위험한 일을 당해서도 무사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생활 속의 이런 일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늘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 5:18)


좋은 일에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일에 감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유익을 늘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척척 아주 잘되는 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도 병이 들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또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고생 시키는가? 낙심도 될 때가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일없이 잘 되어 가는데 나만 왜 이 꼴인가?' 스스로 낙심되어서 눈물만 나올뿐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어린이를 유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너무나 감사해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열심스러운 전도로 어느 때에는 수없이 맞았고, 어느 때에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더위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또 강도의 위협과, 배가 파선해서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위험도 있었고 뱀에 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은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주시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기차 안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틈틈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기차 한모퉁이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기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실험실의 약품이 쏟아져 기차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차장이 급히 달려와 불을 껐습니다. 잔뜩 화가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열차 밖으로 떨어진 에디슨은 불행하게도 귀를 다쳐서 영영 귀가 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위대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때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귀에 딴소리가 들리지 않음으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발명왕이 된 것처럼 감사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큰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또 평온하게 지내는 어린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에도 믿음을 갖는 어린이에게 유익함을 주십니다.

-- 아 멘 --



정직하게 행하자!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는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반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장차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나는..."

그런데 가필드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필드에게 다시 물었다.

"가필드는 무엇이 되고 싶니?"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학생들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게 무슨 뜻이니?"하고 진지하게 물으셨다.

"예,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웃던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숙였다.


1983년 5월 29일 오후 인이와 영이는 우주 과학 박람회를 재미있게 견학하고 저녁에야 피로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길바닥에 낯선 여자용 손지갑이 눈에 띄었다.

얼른 집어 들고 지퍼를 쭉 펴서 열어 보았다. 속을 들여다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많은 돈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놀란 것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인 영이의 손을 쥐어잡고 마구 집으로 뛰어갔다.

대문에서부터, "어머니!"하고 소리쳤으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안방으로, 부엌으로, 목욕탕으로, 모두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가슴은 쉬지 않고 뛰었다.

수돗가에서 냉수를 한 바가지 먹었다.

그러니까 약간 안정이 되는 듯하였다.

그리고 아침 집을 나설 때 아버지는 사업일로밖에 나가시고 어머니는 볼일로 외출하신다는 말씀이 겨우 생각이 났다.

인이와 영이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바라보다가 둘이 똑같이 일어섰다.

"영아, 파출소 가자."

"응, 그래."

둘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에서 약 1km 떨어진 독산3동 파출소로 급하게 달려갔다.

습득물을 접수한 경찰관 아저씨는 지갑 속의 돈을 세어 보았다. 무려 1백 1만 5천원과 저금통장, 도장 등이 들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얘들아, 참 좋은 일을 했구나."

경찰관 아저씨한테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겨우 진정이 되는 듯하였다.

경찰관 아저씨가 지갑 속에서 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 연락을 하였더니 조금 후에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돈지갑을 가슴에 움켜잡고 마구 뛰기도 했다.

"학생들 고마워..."

몇 번이고 되풀이하시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는 것을 본 인이와 영이는 참으로 좋은 일을 했구나하고 느꼈다.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딤후 3:16)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암8:11-14)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19:57-72)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놈으로 소문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김익두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착실한 교인이 되어 금주와 금연을 하니 그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참으로 의아해 하며 "도대체 자네는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어떻게 끊었나? 정말로 요즘은 술과 담배를 안 하나?"라고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때 김익두 목사는 "나는 요즘 약 두 첩씩을 먹고 있다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뭐야! 술, 담배 대신 약을 두 첩씩 먹는다고? ...."

"그렇다네! 이 약 두 첩씩을 먹으니 술, 담배는 물론이고 엄청난 복이 쏟아지네 그려!" 하고 대답을 하니, 친구들이 몹시 궁금해 하며 "우리도 좀 가르쳐 주게나"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김익두 목사는 "그러면 그르쳐 줌세 두 첩의 약이란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일세" 라고 하였고 그 후 친구들에게 신약과 구약에 대한 교리와 도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는 성경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김명배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교회의 젊은 집사였다.

그는 서울에서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고 즉시 서울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을 끝냈다. 큰형은 의사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돈도 잘 벌었고, 둘째 형은 사업가로서 윤택한 생활을 했다. 또한 막내는 외무부 공무원으로 해외 근무를 많이 했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어머님이 남기고 가신 재산을 처리하자고 해서 삼형제가 식구들과 함께 한 방에 모였다.

큰 형님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남기신 재산은 공무원으로 제일 어려운 막내가 책임지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둘째 형이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하면서 찬성을 표시했다. 그러자 셋째인 막내가 나섰다.

"형님 그것은 안될 말씀입니다. 재산은 당연히 장자이신 큰 형님이 맡으시든지 아니면 사업가이신 둘째 형님이 맡으셔야지 어찌 막내가 그것을 맡습니까? 그것은 안될 말씀이고 사실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자기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큰 형님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머님이 평생에 보시던 성경책입니다."

"야, 그것은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장자에게 가야지 ...."

그러자 둘째 형도 "반드시 장자에게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 ...."하며 자기도 성경책을 마음에 두었노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형님이 재산을 맡으시고 성경책은 둘째인 저에게 주십시오 했다. 그때 막내인 셋째 아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형님들은 언제나 어머님이 묻혀 계신 고국 땅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언제나 해외로 떠도는 몸이니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듯 어머님의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두 형님들은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식구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 이처럼 그 성경은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한 책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성경을 믿는 이유


천문대 소장이 성경책을 읽고 있는 부하 직원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여보게 자넨 과학시대에 맞지도 않는 그런 책을 아직도 읽고 있나? 더구나 누가 기록했늕ㅣ 조차 모르는 그 따위 책을!"

"소장님, 소장님은 천문학을 계산할 때 구구단을 사용하시죠?"

"그렇지."

"그럼 그 구구단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모르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고 이용하십니까?"

"그야 정확하고, 또 편리하게 계산하는 데 꼭 필요하니까"

"제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유와 꼭 같군요."


시편 19편 49절과 5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나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힘과 생명이 되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이 의욕을 상실했을 때 새로운 삶의 힘을 얻게 합니다.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에 위로를 얻게 합니다. 실망과 좌절에 싸일 때 새로운 소망을 얻게 합니다.

1977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세계에서 8번째로 우리나라 등반대원들이 등정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목사님이 펴서 읽은 성경이 시편 121편이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독실한 크리스쳔인 등반대장의 사모님은 등반대원들의 가슴에 성경을 한 권씩 넣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떠났습니다. 제1캠프를 올라갈 때 산소통이 모자랐습니다. 아이스폴을 지날 때에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믿고 시편 121편을 읽고 또 읽으며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에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그는 태극기와 네팔기를 올리고 그 눈속에 무릎을 꿇고 성경을 꺼내서 시편 121편을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리고 그 성경과 태극기를 눈 속에 파묻고 내려왔습니다.

그후 등반대의 대장이었던 김영도 집사가 간증을 하기를,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힘이요, 신앙의 힘이요, 하나님의 도움의 힘이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내 힘이 부족할 때에 하나님의 호흡을 마셔야 합니다. 말씀을 먹을 때에 초인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능력의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시히 토키치라는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살인을 하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서 사형당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있던 감옥에 어느날 캐나다 선교사들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시히는 짐승 같은 표정으로 그들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선교사들이 방에 넣어 주고 간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시히는 잠시 성서에서 손을 놓고서 '주여, 이것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습니다. 내 강퍅한 마음이 깨졌습니다'하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쁨으로 죽음에 임하면서 이제 주님께로 가까이 간다고 말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서의 힘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시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아시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대언하여 뼈들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때 마른 뼈들에 살이 입혀지고, 생기가 들어가고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에는 의원들의 발언대 위에 이상한 상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속에는 성서가 있어서 의원들이 의안을 성서 위에 놓고서 토론을 벌이며 정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민주주의를 행하는 나라는 성서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링컨대통령은 말하기를 "나는 성서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 구세주의 모든 선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 성서협회원의 방문을 받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피곤하여도 잠자리에 들기전에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28대 윌슨 대통령은 1911년 5월 7일 덴버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운명은 여러분이 위대한 계시의 책인 성서를 열심히 읽느냐, 안 읽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 1대 워싱톤 대통령은 말하기를 "하나님과 성서가 없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밀란의 정원에서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읽을때에 변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참된 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조오지 뮬러는 시편 63편 5절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일생을 바쳐 고아를 돌보는 사랑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리빙스톤은 사도행전 16장 31절을 통해 거듭났고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은 고린도전서 15:1-4절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밀림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읽으면서 거지 나사로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흑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흑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섬기는 어린이가 되자

(마20:27-28)


윤식이가 유치원에서 생일이 들어있는 1월이 되어 큰 케잌과 푸짐한 떡과 과일과 과자를 차려놓고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열 명의 어린이가 각자 인사하고 자기의 희망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윤식이의 차례가 되자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였습니다.

생일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윤식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쟎아요. 삼촌도 의사니까 돈 많이 벌쟎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윤식이의 동생인 윤정이가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윤정이도 오빠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윤정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엄마가 매일 아프니까 엄마를 치료해 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다른 아픈 사람도 고쳐줄꺼예요."

엄마는 기뻤습니다.

"우리 딸이 최고야!"

윤식이와 윤정이가 똑같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그 뜻은 아주 달랐습니다. 윤식이는 돈을 벌기 위해, 윤정이는 엄마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몇일 전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황태자비는 여왕을 말합니다. 어제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호화스럽게 거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행렬들이 나와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반 평생을 온갖 호화로움 속에서 지내고 죽을 때도 호화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위대한 여인이 죽었습니다. 어제 테레사 수녀님이 별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언론이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영국의 황태자 비의 죽음과는 뭔가 다른 죽음이었습니다.

다이애나는 한평생 호화속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다가 온갖 추문(나쁜 소문)에 쫓겨 교통사고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다가 아름답게 죽어갔습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고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자비의 선교단'을 이끌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탄자니아, 요르단 등지에서 빈민가에 '죽어가는 자를 위한 집'을 세우고 버림받은 병자, 나병환자 등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 병자들과 악수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해주는 이들의 손은 훌륭한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그 영광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입술에만 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함께 일하는 수녀들에게 계속 가르쳐 온 그녀의 신조였습니다. "여러분, 자랑삼아 일하지 맙시다. 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은 주님의 굶주림이며, 저들의 질병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1950년 인도 칼카타 빈민굴에 테레사 수녀가 들어갔을 때 그곳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암한 지옥이었습니다. 굶어 쓰러지고, 병들어 죽어가고, 도둑과 살인이 백주에 난무하며, 창녀가 거리를 누비는 혼돈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여성은 문맹자를 위하여 여러학교를 세워 7천 5백명의 어린이를 졸업시켰고, 진료소들을 지어 96만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며, 54개의 나병치료소를 만들어 4만 7천명의 문둥병자들을 도왔으며, 20개의 고아원을 지어 1천 6백명의 고아를 길렀고, 의지할 곳 없이 죽기를 기다리는 3천 4백명을 위해 23개의 숙소를 지어 돌보아 왔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인간들 속에서 예수의 아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그 골고다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져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2달 밖에는 더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간암이라고 병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세상에 더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화목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빚진 돈도 모두 갚았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친구에게 찾아가서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유언을 써놓고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2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았더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잘못 진단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뜻밖의 오진에 감사하면서 지난 2달간 살았던 경험을 귀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섬기면서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인 것을 깨우진 것입니다.


어느날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미국 시카고 시를 방문 하였는데 기차역 앞에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슈바이처 박사가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출구로 나오시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시더니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의 트렁크를 받아서 기차 안까지 다시 들어가 그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드린 후 내려와, 시장님께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내가 늘 하던 습관 때문에 실례를 했습니다."

이것을 본 신문기자가 슈바이처 박사님의 선행을 신문에 크게 보도해서 박사님의 인격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이 위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긴데에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인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정신박약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한 선생님께 가장 힘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매일 몇 명씩 목욕을 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발가벗은 아이를 대할 때 '이 아이가 예수님이다'하고 생각하며 목욕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사표를 낼까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예수님으로 생각할 때 목욕 시간은 나의 기도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참다운 기도와 봉사를 아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된 일을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학교는 모범적인 특수 학교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 일어나시더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다 물을 담아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드디어 시몬 베드로가 씻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시나이까?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 것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을 듣고나니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불쌍한 사람, 죄인, 병든 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섬기면서 살으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나니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자기도 예수님처럼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낮추고자 하는 자를 높혀 주십니다. 이와같은 삶은 예수님이 살으셨고, 바울이 본받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생활이 은혜가 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말씀하소서!


(눅8:22-25)"...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설교하기 전에 복음성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니"를 부르고 시작한다.)

지금 부른 찬송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는 찬송이지요. 이 찬송가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사건들이 나와요. 해마다 명절만 되면 TV에서 마술 쇼를 보여주곤 해요. 여러 마술사들이 출현해서 갖가지 마술들을 과시하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흰 천으로 비둘기가 되게해서 날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위험한 톱니바퀴 속에서 탈출하기도 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술을 보고 진짜인줄로 착각하곤 해요. 그만큼 속임수에 능한 기술들을 갖고 있어요. 전도사님도 수원에서 어떤 사람이 마술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았는데 사과에 여러개의 바늘을 꽂고 그것을 하나씩 빼서 먹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모를정도예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분명히 그것은 속임수라고 자신도 인정을 했어요.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섰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기적이었어요. 그러나 잠시후 박수와 술객, 마법사들이 똑같이 흉내를 내었어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마술이었어요. 모세의 뱀이 마법사들의 뱀을 잡아먹어 버린 것으로 알 수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은 마술과 기적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마술은 속임수이지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예요. 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즐겁게 하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해요. 그러나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줘요. 그래서 마술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즐거워 하지만 "나 이다음에 마술사가 될테야"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적들을 행하셨는지 이 찬송가를 통해서 생각해 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1절의 이 가사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말하는 가사예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가나"라는 지방에 혼인잔치가 있어 제자들과 함께 가시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는 잔치를 할 때 포도주는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큰일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이예요. 이 일을 안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어요.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어요. 기적이었어요. 예수님께서 맨 처음 행하신 기적이었어요.

다음 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를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에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길거리에 앉아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어요.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불러 눈을 뜨게 해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셨어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어요. 순전히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기 위해서 눈을 뜨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디매오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생각되어서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신 거예요.

3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신 사건이예요.

예수님이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쳐 주시려고 가보니 이미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버렸어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니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이예요.

끝으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폭풍을 잔잔케 하신 사건이 나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가는데 큰 폭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게 되자 어부출신인 제자들도 겁을 먹고 안절부절 하는데 예수님은 글쎄 잠을 주무시는 거예요.

제자들이 폭풍이 심해지자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 예수님 큰일났습니다. 배가 뒤집혀서 다 죽게 됐어요." 제자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잔잔해졌습니다. 자연도 예수님께 복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기적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일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예요. 오직 하나님 아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적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난다는 거예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잠잠하라!"는 말씀 앞에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후렴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 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예수님께 "저에게도 말씀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린이에게 말씀해 주셔요. 예수님께 기도해 보세요! "예수님 저는 지혜가 부족해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 저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자신의 문제들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예수님은 꼭 말씀해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복있는 사람


(시1:1-2)


복이 있는 사람과 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인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오직 성경의 진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서는 복을 받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복 받는 길을 가장 잘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꾀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꾀어서 자기처럼 나쁜 짓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아무리 꾀어도 어린이 여러분은 그 꾀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속은 후 겪은 손해에 후회가 되어도 이미 그때는 마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면 죄인과 함께 죄를 짓게 되고 결국은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업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젖어 믿음에서 떠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겐 늘 기쁨이 있고 그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의 말씨는 공손하며 그 행동이 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땅에서 하는 일마다 기쁨을 갖고 하기에 복을 받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 너무나 가난하여 통나무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말씀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어릴 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의 아주머니로부터 성경책을 빌려와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어찌나 사랑하였던지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릴 때는 성경을 사랑하고 예배당에 열심히 다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술친구와 어울리고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함없이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에 드디어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를 해방하는 큰 일을 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성경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약속이므로 이 말씀대로 살 때 복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사랑하여 복받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원자탄 (기도)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지으시고 일생동안 사랑을 나누어 주시면서 사신 손양원 목사님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목사님은 경상남도 함안군 철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목사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아버지 어머니께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신앙으로 자라났다.

국민학교 다닐 때 새벽 기도회에 늘 나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어했으나 일어나지를 못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새벽기도회에 나갈 수 있도록 깨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깨어 주시지를 않았다.

잠을 깨고 나면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날은 밝아오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 나도 새벽 기도회에 같이 데려가 주세요. 나도 어머니처럼 가고 싶거든요. 또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는 귀여운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다.

"어머니! 내일은 새벽 기도회에 데리고 가 주세요. 꼭 깨워주셔야 해요."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잤지만, 그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았다.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마치시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왜 아참에 깨워주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여셨다.

"양원아, 곤히 잠을 자는데 차마 깨울 수가 없었어. 너무 피곤해 할 것 같아서..."

"어머니, 그럼 내일 아침에는 깨워 주세요.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힘도 생기고 용기도 갖게 되거든요." 그러나 다음날도 어머니는 깨워 주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참 생각한 끝에 좋은 궁리를 해냈다.

어머니가 잠이 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잠이 드시면 어머니의 치마끈에 자기 허리띠를 묶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갈 시간이 되어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무엇이 자기를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알고 보니 치마끈에 아들의 허리띠가 묶여 있지 않았는가!

그 때 벌써 손양원 목사님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양원아! 그렇게 새벽 기도회에 가고 싶었니?"

어머니가 묻자, "그래야 새벽 기도회에 따라 갈 수 있지 않아요?"

손양원 목사님은 픽 웃고는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띠를 매고야 잠을 잤다.

이 일이 동기가 되어 매일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우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산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으로 자라나서 평생 사랑을 나누어 주신 훌륭한 목사님이 되신 것이다.

특히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를 침입하였을 때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시다가 죄없이 일본 경찰에 붙들리어 교도소에서 생활하기도 하셨지만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기도 하였다.

육 년 동안 옥살이를 하시고 해방이 되어 나오시자마자 다시 교회 일을 보시다가 6. 25동란 때엔 사랑하는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당했고 그 후 목사님께서도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끝내 순교당하셨다.

목사님은 살아계시는 동안 사랑의 운동만 펼치시면서, 특히 불쌍한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끈을 매고 자는 아들의 모습 뒤에는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가 숨어 있었다.

어느 소녀의 헌신적인 기도

어느 소녀가 난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됨을 괴로와 했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고민했다.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아뢰자 그것은 "기도"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했다. 이번엔 어떤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믿지 않는 자들의 인가기도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기도했다. 손님이 문안 올 때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했고 전도했다. 어머니께 늘 물었다. ○○○ 교회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고.. 그때마다 대답은 "Yes"였다. 그때마다 너무 기뻤고 확신에 찼다. 그녀의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아름다운 기도였다. 결국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그녀가 기거하던 병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밑에서 한 수첩을 발견했다. 그 수첩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이름 옆에는 †표를 그려 놓았는데 모두 56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텐데 자신의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위한 헌신적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죠지 뮐러'의 성공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단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내가 성공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어떤 목사가 차를 타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금방 고개를 듭니다. 옆에 있던 신자가 묻습니다. 그러자 "내 영혼을 ..."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를 묻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차타고 가다가 죽게되면 기도할 틈도 없쟎은가? 그래서 미리 기도합니다"라고 했답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꼭 주십니다

(마 7:11)


* 이끄는 말 *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꼭 주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어린이도 부모님이 제일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늘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유익한 모든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고 싶어 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부모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믿는 어린이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찰리라는 어린이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찰리는 치료비도 없고 먹을 것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중에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주실 것이다."

찰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지금 우리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계십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약이나 음식을 살 돈이 없어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제가 커서 꼭 보답하겠어요."

그리고 편지 겉봉에 보내는 이는 자기의 주소를, 받는 이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고 와서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2-3일이 지난 어느날 신사 한 분이 찰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신사는 우체국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주소의 편지가 있어 뜯어보고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 찾아온 것입니다. 딱하고 기특한 소년에게 치료비와 음식을 살 돈과 찰리의 학비까지 모두 준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체국 직원인 신사분을 통해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약속대로 주셨던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또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넘치게 주고자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고 하는 기도는 응답됩니다

(마21:22)

믿음으로 의심치 아니하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어린이가 됩시다.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농부가 봄이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이 때에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릴 수는 있지만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아는 사람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햇볕을 뜨겁게 비추어 주어야 곡식의 열매가 잘 익을 수 있으며, 또 병이나 벌레가 곡식을 해롭게 하지 못하게 막아 주어야 하며, 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지 않아야 가을에 많은 곡식을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농부는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처럼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여 전도사님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대전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분이 여름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급한대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교회를 섬기는 여전도사님은 혼자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전도사님의 기도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예배당이 너무나 낡았으니 좋은 예배당을 하나 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시골 교인들의 형편이 넉넉하질 않아 새로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하나님께서 예배당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비가 그치자, 그 사업가는 나가면서 전도사님께 명함을 주면서 꼭 자기에게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후에 전도사님이 대전에 가서 그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반갑게 맞이해 주며 예배당을 새로 지을 설게도를 가져 오라고 해서 곧 그대로 했더니 예배당 지을 돈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강원도 산골 마을에는 아주 크고 좋은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어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목을 놓고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홍해도 갈라집니다

(출15:21)

애굽에서 해방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다달았습니다. 뒤에는 애굽병정이 따라 왔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손들고 기도하니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기뻣을 때가 애굽의 노에 생활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처럼 일만하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애굽에 살면서 고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을 향해서 기쁘게 찬송하며 신나게 애굽 땅을 더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애굽의 많은 군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왔습니다. 왜 따라 왔을까요? 그들을 잡아다가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한시 바삐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큰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로는 애굽군대에 쫓기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죽게 되었구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곳까지 인도해 낸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나서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홍해 바다가 육지 같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홍해를 건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빨리 뒤따라 오던 애굽 병정들은 모세가 다시 손을 드니 갈라졌던 물이 다시 합해져서 모두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돌보아 주던 서울 청계천 빈민들의 거주지인 청계천을 정부시책에 따라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들을 이끌고 경기도 화성군 이화리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바다를 흙으로 메운 간척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새로운 땅에 논을 만들고 모를 심은 것이 다 말라 죽어 버렸습니다. 다시 충청도에서 모를 사와서 심었으나 또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바다를 메꾸어 일군 땅이라 많은 소금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농민들은 큰 걱정을 했습니다. 농사가 안 되면 그곳에 희망을 걸고 살아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울 빈민촌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인솔자인 김목사님은 이번에는 강원도에 가서 모를 사와서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김목사님은 모를 세 번째 심고 난후 논뚝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불쌍한 농민들을 기억하시고 이번에는 꼭 심은 모가 죽지 않고 살아서 결실을 맺게 해주세요."

그날밤 많은 비가 내려서 논의 소금기를 모두 씻겨 내렸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를 보고 농촌 진흥청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새 땅은 3년이 지나야 농사가 되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참으로 홍해의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해서 홍해의 기적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를 받읍시다.


구하여 얻는 자가 됩시다

(마7:7-8)

예수님은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여 얻어 누리는 사람이 됩시다.


어린이 여러분, 과자를 사서 먹고 싶을 때에 어떻게 하지요?

엄마나 아빠에게 과자 사달라고 조르지요? 그러면 엄마나 아빠가 여러분을 사랑ㄴ해서 맛있는 과자를 사먹게 돈을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게로 가서 과자를 사서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어린이들의 아버지시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자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우리가 필요해서 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있는데 그것이 내게 없다고 불평을 하거나 또는 스스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은 어린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어떤 청년이 눈병이 나서 안과에 찾아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수님을 믿는 청년이었는데 큰 믿음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세히 진찰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무서운 독이 퍼져 있습니다. 만약에 두 눈을 즉시 빼지 않으면 독이 몸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두 눈을 빼는 수술을 해서 생명을 건져야 합니다."

이 청년은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고 크게 낙심을 했습니다.

"내가 소경이 되다니 아이구 원통해라!"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잘 믿는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예배당으로 가서 예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친구와 함께 예배당에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밤새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눈을 고쳐주세요."

기도하면서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수술하기 위해서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진찰을 한 의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균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의 절실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그 청년은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주시겠다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본 받읍시다

(약5:17-18)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하니 3년 6개월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아니 했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믿고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꾸짖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나타낸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 아합왕이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자를 왕후로 맞이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스라엘 나라에는 바알이라는 우상 종교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바알이란 왕후 이세벨이 시집 올 때 자기의 나라에서 데리고 와서 백성에게 섬기라고 강제적으로 명령을 내린 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무서운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이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왕의 우상을 섬기는 죄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경고대로 이스라엘 나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백성들은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지 3년 6개월만에 엘리야가 나타나서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각자 기도해서 불이 내리는 신이 참 신임을 인정하기로 하여습니다.

결과는 바알 선지자 450명 모두 실패했으나 엘리야의 기도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내기한 대로 바알 선지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시 엘리야가 기도하니 이번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으로써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백성들은 더욱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우리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황해도 봉산군 당포에 100년전에 세워진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는 믿음이 독실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자식이 없으므로 교회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어느 여름, 교회 청년들과 노부부는 함께 산너머에 있는 밭에 김을 메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황급히 달려 오더니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은 큰일 났다 싶어 호미를 내던지고 달려 갔지만 할머니는 그저 그 자리에서 고요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껏 하나님이 잘 먹여 주시고 입혀 주셨는데, 이제 그 집이 불에 탄다해도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청년들이 언덕까지 다다랐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더니 그 초가에 불붙은 이엉이 돌돌 말려서 집 앞의 개울물 속으로 풍덩 내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할머니의 기도에서 온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 후 그 할머니는 기도의 할머니라고 불렸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하는 어린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꼭 들어 주십니다.

'설마 이런 것도 들어 주실려고?' 하는 의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모조건 믿고 기도하세요.

여러분 기도에 합당한 응답을 반드시 해 주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눅18:7)

하나님께서는 밤낮으로 울부짖고 기도하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기도할 때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좋아서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에 불쌍한 한 과부가 하루는 그에게 찾아가 자기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판사는 과부의 부탁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자기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법관의 힘으로 원한을 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이 법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분 끝에 법관은 만약 자기가 이 과부의 원수를 갚아주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찾아와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 여기고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법관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꼭 들어 주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응답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고 마는 것입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동이라는 곳에 최충만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군에서 폐병3기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니 한 분만 계셨고 사는 것 또한 넉넉하질 않아 셋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반가웠으나 먹을 것이 없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을 얻어다 아들을 먹였습니다.

이때에 그 동네 최성래 집사님 댁에서 교회 개척예배가 시작되었고, 박기용 전도사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우연하게 이 예배에 참석하게 된 최충만은 예수를 믿기로 하고 매일 새벽마다 추운 겨울이지만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직이 목수였기 때문에 그의 재주를 살려 그의 손으로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또한 동네의 목수일을 도맡아 하여 생활문제가 해결리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그가 살 집을 짓게 했고, 또 결혼을 위해 기도하니 믿음이 좋은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또 기도하니 건강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후 최충만은 집사가 되었고, 몇 년 후에 장로가 되어서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아니 하십니다. 믿고 기도합시다.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와 최충만 집사님의 기도생활을 기억하고 응답이 될 때까지 기도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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