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09. 11. 14. 21:51

1.제목 : 부르심과 선택하심

말씀 : 베드로 후서 1장 5-11절

주제 : 성화

요즘은 자기 피알 시대라고 하죠. 예전에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말없이 지내는 것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것이 바보스러운 시대가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그런지 텔레비젼이나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하여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내세우면서 자기가 잘낮다고 광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기를 얻으면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죠. 가수들은 팬 클럽을 만들어 인기 관리를 하고 공연도 갖고 자신의 인기를 유지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예요. 왜 그렇게 하는지 아셰요?

··· 그래요. 연애인의 생명은 바로 인기에 달렸기 때문이예요. 인기가 떨어지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이예요.

연애인이 자신의 인기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자신의 신분답게 스스로를 노력해야 되요.

소년부 친구들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친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죠?

그래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으니까 여기에 나온 것이죠. 예수님은 여러분을 매우매우 사랑하셔요. 우리 친구들, 전도사님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연애인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듯이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교회로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 답게 이제는 하나님께 계속 사랑을 받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이예요.

사랑한다고 다 끝나는 것은 아니예요. 여러분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면 그것으로 다 끝나나요? 그렇지 않죠? 결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로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한 시작에 불과해요. 엄마 아빠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늙을때까지 서로가 예의를 지키고, 서로 섬기며 사랑하듯이, 우리 친구들 모두는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로 부르셔서 택함을 받은 몸이예요 이제 택함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오늘 말씀속에 나와 있어요.

 

5-7절 말씀 :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심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상호 우애를 더하고, 상호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셔서 그분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어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어요. 이것이 믿음이예요. 오늘 말씀은 이 믿음위에 덕을 더하라고 하고 있어요. 덕이란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줄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예요.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줄 아는 지혜를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곧 이어서 절제를 하라고 했어요. 지식에 왜 절제를 하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것은 바로 자기만이 옳다고 잘난척 하지 말라는 것이예요. 그래서 절제를 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인내의 외적 신앙표지는 바로 경건된 삶이예요. 경건한 삶 가운데는 바로 서로 애정을 갖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예요

우리는 교회만 나오면 다 되는 것인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거기에 합당한 모습을 지녀야 해요 그것이 바로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뜻이예요.

소년부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녀로 부르셨는데 이제 오늘 말씀처럼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상호 우애, 사랑의 모습을 갖추어서 항상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친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제목 : 하나님을 사랑한 자

말씀 : 이사야 43:1, 로마서 1:16-17

주제 : 종교 개혁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오늘은 부패한 가톨릭에 반대하여 새롭게 교회를 설립한 지 479주년이 되는 날이예요. 그래서 오늘은 1517년에 있었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이며, 특별히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이예요.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전에 유럽 독일이라는 나라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그는 남달리 잘난 것도 아니고, 공부를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어요.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보다 좀 특별한 것이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죄문제를 가지고 남달리 괴로워 했어요.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 같아 괴로워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며 번민하는 청년이었어요 이것이 남들과 다른 점이예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 신부님에게 가서 고해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양심에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 않지만, 이 청년은 고해를 해도 자신의죄가 용서된 것 같지 않았어요. 결국 수도원에도 들어가서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도승이 되었지만,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했어요. 그 청년은 조그마한 죄를 지어도 신부에게 가서 고해를 하지만, 죄 용서를 선언받고 돌아서자마자 다시금 밀려오는 죄인된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었요. “어떻게 해야 내가 죄에서 자유로우며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날, 그 청년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죄 문제를 가지고 기도탑으로 기도하러 갔었요. 그가 기도하며 묵상중에 읽었던 말씀은 오늘의 말씀 로마서 1:16-17 이예요. 특히 이 말씀중에서 그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단어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말씀을 묵상했어요.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와 우리가 죄를 지으면 곧바로 죄에 대한 대가를 갚으시고 죄를 짓는자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여겼어요. 그러나 그 청년이 로마서 말씀을 묵상하던 중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으시는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 사실과 함께 주어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에서 그는 자신의 죄가 용서되고 자신이 의인이 되는 것은 내가 어떤 착한 일을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순간에 비로소 그 청년은 자신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양심이 자유를 얻게 되었어요. 여기에서 시작하여 그는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바로 우리 개신교 신앙의 조상이신 루터라는 사람이예요.

루터는 자신이 새로운 교회를 건설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루터를 통하여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셨어요. 오늘 말씀 이사야 43:1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죄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루터를 긍휼히 여겨서 그를 사랑하시고 많은 은혜를 내렸던 것이예요.

소년부 친구들 루터가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집중한다면 하나님도 그런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3.제목 : 다윗을 시기하는 사울

말씀 : [삼상 18:7-8]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1. 들어가는 말

·예화 전개 : 콩쥐팥쥐, 신데렐라 이야기 - 여기에서 등장하는 계모를 잘알죠. 콩쥐나 신데렐라를 괴롭히고 못살게 군 계모말이예요.콩쥐가 하는 행동이나 말은 모두가 다 미워 보이고 그저 못살게 굴기만 하고 자기 딸이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콩쥐나 신데렐라를 미워하는 계모의 모습은 바로 시기의 대명사이예요.

·전도사님의 실례 ?

 

2.본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다윗의 승리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함.

=> 죽일 음모를 꾸밈.=> 정략적으로 자신의 딸과 결혼시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하려고 함.

 

3.의미

·칭찬은 두가지 면을 보여줍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기쁨을 얻습니다. 부정적으로는 상대방의 시기를 자아냅니다.

·다윗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음.=> 이 말에 의해서 그는 17살부터 32살까지 사울의 적이 되고, 도망자가 되어야만 함.

·남을 시기하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시기를 한 사울은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죽음.

·시기하기 보다는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하면 시기할 수 없습니다.

 

3.나오는 글

·시기하고 질투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제는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고 여러분의 마음이 평안을 얻는 길입니다. 기도합시다.

 

 

 

4.제목 : 다윗과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

말씀 : 사무엘 상 25 : 1이하

주제 :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자

 

오늘 말씀 사무엘 상 25장 1절 말씀은 25장 전체의 내용과 조금 다른 내용이 있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사무엘이 죽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그의 고향 라마에 그를 장사하였다”

 

이 말씀과 25장 전체의 말씀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25장 전체의 내용은 다윗과 아비가일의 얘기로 가득차 있는데.

그러나, 1절의 내용은 25장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17세에 장군이 되어 전쟁터에서 싸움을 하며 많은 공적을 올린 다윗, 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사울 때문에 다윗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요. 언제나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초조와 긴장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다윗, 힘으로는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차마 기름부은 받은 하나님의 종이기에 사울을 죽일 수 없었던 다윗, 그가 매일매일 쫓겨 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 의지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고 자신이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사무엘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사울에게 쫓겨 미치광이의 행동을 한 적도 있었지만, 죽음의 공포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바로 나에게 왕으로 안수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만큼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비참해질때에도 이것을 생각하면 다시금 새로운 힘이 생겼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믿던 그 사무엘이, 그 사무엘이 죽어버렸습니다. 자신은 왕이 되기는커녕, 아직도 죽음의 공포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신세인데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합니다. 마치 다윗이 사무엘을 의지한 것처럼. 그러나 의지하던 대상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사라져 버릴 때 우리는 것잡을수 없이 미치광이 짓을 하게 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다윗은 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미치광이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계획적으로 살인을 하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먹을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탈을 하려고 합니다. 상대는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나발(어리석음)”이었습니다. 다윗은 형식적으로는 먼저 예의를 갖추어 공손히 간청을 합니다. 그러나 꾀많은 다윗은 나발이 자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예상대로 나발은 다윗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계획대로 군사를 일으킵니다. 나발을죽이고 먹을 것을 빼앗으려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 다윗은 이제 미치광이 처럼 의리며, 신의며, 선을 지키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는 살인을 저지르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슬기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보내어 다윗의 살인적인 행동을 저지합니다. 또한 선을 베풀지 않았던 나발을 하나님은 죽이므로 자신이 선택한 종 다윗의 분함을 갚아줍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다윗은 자신이 지금까지 의지해 오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전에는 사무엘을 더욱 의지하였는데 그는 이 사건을 통해 한층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악을 행할뻔 했던 다윗,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건저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하여. 결국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속에서 우리는 다윗이 한층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게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사무엘을 의지하던 다윗, 그러나 이제는 사무엘도 죽어버리자 마음에 불안과 동요가 생겼던 다윗,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나발과 아비가일을 통하여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붙잡아 주셨습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도 오늘 말씀처럼, 신앙생활하면서 더욱더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5.제목 : 사람마다 제 몫을!

말씀 : 에배소서 4장 11-16절

주제 : 하나되는 공동체

 

오늘은 1996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정성을 기울인 모든 농사가 이제 결실을 맺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농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는 것부터 해서 거름을 주고 피를 뽑고 거둬 들이는 것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이 같이 하고 이웃 사람들이 도와 줘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해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그 농사는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제때에 비를 내려 주고 햇빛을 주어야만 벼가 잘 자라는 법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이뤄져야만 그 해의 농사는 풍년이 되는 것입니다.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는 법입니다.

농사도 혼자 못짓듯이 신앙생활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간에 오늘의 여러분이 있기까지, 그리고 오늘의 소년부가 있기까지는 결코 누구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보이지 않게 서로를 도와 주고 모두 각자 제 몫을 다 했기 때문에 오늘의 소년부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소년부는 결코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사님만 있으면 소년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 친구들만 있으면 소년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선생님들만 있다고 해서 소년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사님, 선생님, 우리 친구들 모두가 있어야 소년부라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이 위에 주님께서 머리가 되셔야만 참다운 주님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나, 선생님이나, 우리 친구들은 바로 이 교회라는 주님의 몸의 각 부분들입니다.이 주님의 공통체는 그 마디마디에 사무엘 성가대라는 가지도 있고 5학년 1반에서 6학년 5반까지 이르는 마디마디가 있습니다. 또 이 마디 가운데에는 전도사님도 있고 선생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마디들은 서로서로 각자의 맡은 역할을 온전히 담당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소년부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회자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으로써 각 마디에 영양을 공급하고 사랑안에서 서로를 세우게 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는 서로에게 영양을 공급하여 주어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에 까지 자라나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이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봉사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바로 서로의 신앙이 성숙되도록, 그리하여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소년부는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오늘의 결실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기도드리겠습니다.

 

 

6.제목 : 공주병? 왕자병?

말씀 : 빌립보서 2장 5-11절

주제 : 겸손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이 벌써 11월 마지막 주일이예요. 어제는 첫눈이 내렸어요. 요즘같이 차가 많은 세상은 눈이 그리 반갑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교통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예요. 그래도 첫눈은 우리들 가슴을 추억과 낭만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들 마음도 눈처럼 맑아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첫눈이 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어요?

[잠시 기도 드리겠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각종 언론을 통해서 듣는 유행어 가운데 “공주병, 왕자병, 자옥이병, 갈릴레오병”등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이 말 뜻을 알죠? 아직 모르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위해서 말씀을 잠시 드릴께요. 여러분 공주병이 뭔지는 아시죠? 이것은 우리 여자 친구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자기는 공주라고 생각하는데, 생각은 자유이지만 도가 지나쳐서 모든 남자들이 자기만을 좋아하고, 길을 걸을 때도 모두 자기만 쳐다본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공라고 착각하는 것을 말해요. 왕자병은 남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은 모든 여자가 자기자신만을 좋아하고 자기가 가장 멋있고 씩씩한 남자라고 착각하는 것을 말해요. 자옥이병은 텔레비젼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김자옥’의 역할이 공주병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옥이병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이예요. 여러분들 중에는 공주병이나, 왕자병에 걸린 친구들 있어요? 전도사님이 보니깐 우리 친구들중 종종 이런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갈릴레오병은 뭔지 아세요? 모르세요? 여러분 갈릴레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아세요? 그래요. 갈릴레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사람이예요. 갈릴레오는 가톨릭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여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지구도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 주위를 돈다고 했는데, 종교재판에서 계속해서 지동설을 주장하며는 자신이 죽을까봐 재판석에서는 천동설을 따르겠다고 말했지만 법정에서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갈릴레오병은 공주병과 똑 같은 것으로 어떤 여자 친구가 있는데, 자신이 가장 예쁘며, 자신은 공주라고 하자,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너는 공주가 아냐” 하고 말했는데, 그 여자친구는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나는 공주가 아냐”하고 말했지만, 뒤돌아서서는 “그래도 나는 공주야”라고 얘기하는 친구들을 말해 갈릴레오병에 걸린 친구들이라고 해요.

 

2. 문제 제기

그러나, 공주병, 왕자병은 앞에 있는 전도사님이나, 선생님들이나, 우리 친구들 모두가 같고 있는 것이예요. 자기가 잘 났다는 생각은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요. 문제는 도가 지나치면 않된다는 것이예요. 자신을 사랑해야만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예요.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도가 조금 지나쳐서 자기 자신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되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잘났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야 남들이 알아주니까.

 

3. 본문

이것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알아주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셨어요. 그리고는 처절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길과는 정반대로 죄인처럼 아무런 대꾸도 없이 법정에 스고 십자가 의 형벌로 돌아 가셨어요.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늘나라에 계신분이지만 몸소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이 되시고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고 부활·승천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범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삶의 모범자 말입니다.

 

어떤 삶의 모범자일까요?

바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오늘 말씀은 겸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전도사님이 다시한번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릴께요.

 

[빌립보서 2장 5-11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줌]

 

5절에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란 무엇입니까? 바로 앞절 1-4절의 내용을 말하고 그 내용이 바로 5-11절의 내용과 같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중에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겸손의 태도입니다.

 

4. 나오는 말

공주병이나 왕자병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비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않됩니다. 서로 서로 자기를 내세우는 세상에 오늘 말씀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태도를 가슴 깊이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닌 이웃과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 선생님들을 위해서, 그리고 전도사님을 위해서 겸손의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니 하며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더욱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기도 합시다.

 

 

7·제목 : 난 아니오!

·말씀 : 누가복음 22장 54-62절

·주제 : 위선된 우리의 양심

 

* 설화체 설교 분위기를 따라 *

베드로는 너무도 당황했습니다. 그렇게도 큰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 병사들에 의해 저렇게도 힘없이 끌려 갈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실 분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혀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곳으로 조용히 몰래 뒤따라 갔습니다. 마음에는 의구심과 함께 “혹시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큰 이적으로 로마 병사들을 무찌르시고 기적을 베풀어 왕이 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가지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곳으로 천천히 뒤따랐습니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 22장 54-55절을 보면 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다시 한번 읽어 드릴께요.

베드로는 두가지 생각이 교차되었어요.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어 큰 권능으로 저 결박에서 풀려나면 나도 예수님을 따라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굳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 베드로는 “혹시 예수님이 이 상태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병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런 생각이 현실로 안되기를 그는 바라면서 예수님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을 쬐고 기다리는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한패요”, “나도 보았소.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소.” 그 순간 베드로는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난 아니오!” 하였습니다. 가슴을 향해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조금만 기다리자, 잠시후면 예수님께서 큰 기적을 베푸셔서 너희들을 모두 처벌하실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베드로는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베드로가 기대했던 기적은 나타나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일 때 갑자기 다시 “틀림없이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소.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니 예수와 한 패요” 베드로는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 같아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베드로는 두렵고 떨린 나머지, 오직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저주하며 “난 아니오, 난 그를 알지 못하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처형장으로 끌려가시면서 베드로의 옆을 지나가시다가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가셨습니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도 부끄러워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스승님이신데,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주셨던 스승님이신데, 이렇게 배신을 하다니····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같이 거들어 주고, 기쁜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며, 서로 사랑하는 아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자신이 손해를 본다거나, 결정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에 처하게 되면 지금까지 잘 대해주고, 그렇게도 도와 주었던 친구도 원수로 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의 경우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별로 주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실의에 빠져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몸소 찾아오십니다. 마치 삼국지에서 나오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 방문하러 간 ‘삼고초려’에서 처럼, 예수님은 낙심하여 실의에 빠져 있던 베드로를 찾아가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새 소망을 주십니다.

소년부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 처럼, 때때로 우리가 살기위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강팍해지거나, 죄로 인해 양심이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위선자라니,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라니” 하며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는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년부 여러분, 실의에 빠져 있던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서 그에게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새 소망을 주었던 그 예수님이 오늘도 여러분들을 찾아 와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새로운 평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이예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사랑을 베풀고 소망 가운데서 생활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8.제목 :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

말씀 : 마가서 5장 2절 , 요한일서 4장 7-12절

주제 : 넓은 사랑 - 예수님은 사랑을 전하러 오신 분이심을 깨닫게 한다.

 

1. 들어가는 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기뻐하며 성탄절을 준비합니다.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낼 계획을 세우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선물을 사려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것처럼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예요. 우리들에게 사랑을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예요.

그러나, 한편 철마다 때가 되면 약장수처럼 우리들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구세군 아저씨들의 종소리, 텔레비젼에서의 사랑의 헌금 등이 방송되면서 사랑을 나누기를 호소합니다.

지난 월요일에 전도사님은 MBC 창사 35주년을 맞이하여 ‘가출 소년소녀 찾기’를 방송하는 것을 잠시 보았어요. 부모님들은 시종 눈물을 흘리며 가출한 자녀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호소하는 장면을 보았어요. 부모님이 이혼한 것 때문에 가출한 자녀들도 있고, 어머니가 죽어 가출한 소년도 있고, 아버지가 때려서 가출한 자녀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도사님도 놀라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아나운서도 놀란 사건이 생방송 중에 발생하였어요.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는 모습이 나왔어요. 이어서 그 방송이 있자마자 어디선가 방송국으로 전화가 걸여 왔어요. 자기가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다고 그러는 것이예요. 한참을 그렇게 전화통화하다가 갑자기 그 전화기에서 ‘뻥이야’하고 끊어 버리는 것이예요. 장난 전화였어요. 아나운서는 너무 화가나고 당황하였고, 그 아버지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 것이였어요.

삶을 진지하게 보지 못하고 관심과 사랑이 없으며 그저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예요. 옆에 있는 친구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지고 사랑의 도가 땅에 떨어진 모습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서로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는데 그러한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아요.

 

2. 본문

그러나, 이것은 비단 장난을 친 그 소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사랑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예요.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셨어요. 그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낯고 천한 곳으로 내려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셨어요.

오늘 말씀에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나올 것이예요. 여러분 베들레헴은 예수님말고 누구의 고향이예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기도 하는데. 그래요. 이새의 아들 다윗이 태어난 곳이기도 해요. 베들레헴이라는 동네는 조그마한 마을이예요.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예요. 바로 그 마을에서 다윗의 혈통을 이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예요. 그 예수님은 오늘 갈기갈기 찢겨진 우리 영혼을 치유하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요한일서 4장 7-12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정확히 나타내 주고 있어요. 전도사님이 다시한번 읽어 드릴께요.

 

*요한일서 4장 7-12절 일기 = 표준 새번역*

 

예수님은 버림받고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에게 사랑을 전하러 오신 것이예요. 사랑이 식어진 이땅 위에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우리들에게 오셔서 소외당하고 절망하고 억울하게 고통 당하고 자신감이 없는 친국들을 향하여 새 소망과 사랑을 주러 오셨어요.

 

3. 나오는 말

그래요. 예수님은 이땅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어요. 가출한 소년소녀들이 많은 것은 그들에게 그 만큼 사랑으로 대하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관심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신앙의 본질은 여기에 있어요. 사실 우리 사람들은 사랑을 베풀줄 몰라요. 왜냐하면 그 만큼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잘난 친구들만 사람들은 기억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잘나지 못한 친구들은 소외되고 버림을 받는 것이예요. 그래서 가출소년소녀들이 생기는 것이예요.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들도 혹시 소외되고, 남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여 마음이 낙담된 친구들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아픔을 친히 아파하시면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것이예요. 사랑이 식어진 이 땅 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사랑을 전해주시고 오늘도 여러분들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새 소망을 주실 것이예요. 기도합시다.

 

 

 

 

8·제목 : 위기의 그리스도

·말씀 : 마태복음 2장 13-18절

·주제 : 역설의 신앙 = 희생

 

1. 들어가는 말

한 시대를 이끌고 간 인물의 일대기를 보면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위험과 고난 끝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제갈공명, 조조 등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으며, 초한지에 나오는 항우와 유방, 한신의 삶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역사에서 길이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 냈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언제나 죽음이 뒤따랐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인생을 다 바쳤던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디트리히트 본회퍼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민족주의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려고 한 때였습니다. 독일에 있던 수 많은 교회도 히틀러에 동조하여 전쟁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본회퍼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겨룰만큼 박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조국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저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에 반대하여 히틀러를 가리켜 ‘오늘의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하고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미국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교수로 초빙하여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본회퍼를 사랑하던 많은 동료 교수들이 본회퍼를 히틀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그를 미국으로 불렀습니다. 본회퍼도 독일을 떠나 독일밖에서 반히틀러 투쟁을 계속하려는 의도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본회퍼 목사는 번민하였고 끝내는 독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유니온 신학교의 학장인 코핀 박사 댁의 정원에 앉아서 잠시 나 자신과 나의 조국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미국에 확실히 잘못 왔습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에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 시련을 저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면 나는 전후 독일의 기독교 재건에 참여할 권한이 없게 됩니다. 고백교회 총회는 내가 귀국하기를 바랍니다.······ 독일은 기독교 문화가 살기 위하여 망해야 하든가 독일이 살고 기독교문화가 망해야 하든가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본회퍼는 곧장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히틀러에게 잡힐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조국 독일을 사랑했으며, 독일 교회를 사랑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죽음을 알면서도 독일로 돌아와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되고 그는 붙잡혔습니다. 그리고는 1945년 4월 9일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20세기의 신학과 교회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될 수 있었는데 그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묵묵히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와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본회퍼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죽음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서 우리가 뒤따라야 할 신앙의 모범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독일 교회는 본회퍼의 순교로 명예를 회복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전체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2. 본문

순교자 본회퍼처럼 숭고한 죽음을 맞아한 인물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인생도 평탄하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서 십자가에 처형될 때까지도 줄곧 죽음을 직면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가 기뻐할 겨를도 없이 이들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헤롯을 피하여 이집트로 도망갑니다. 또한 아기 예수로 인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사는 2살이하의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장성하여서도 줄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를 맛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이 감도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는 발길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끝내 제자들로부터 버림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합니다.

3. 맺음말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나셨다는 이유로 성탄절을 매우 기쁘게 보냅니다. 서로들 즐거워 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요즘은 사랑을 나누는 날로 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 아기 예수가 탄생될 때 수 많은 예루살렘의 아기들은 죽음을 당해야만 했고, 아기 예수는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야밤 도주를 하여 이집트로 피신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이런 핏 값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죽음을 항시 직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대가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저마다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갖가지 축제가 여기저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생일이기에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마냥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즐거움 뒤에는 죽음과 직면하면서 살아야 했던 예수님의 모습,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예루살렘의 수많은 아기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즐거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즐거움이 있기 위해서는 항시 누군가 희생을 해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이 땅위에 사랑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소년부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9. 

 

  

제 목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말 씀

누가복음 2장 14절

주 제

평 화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in hominibus bonae voluntatis”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강절 4번째 주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여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전도사님은 지금까지 2주 동안 성탄절과 관계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두 번째 주일에는 ‘위기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오늘 우리 소년부 성가대원들이 반주 없이 부른 노래를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1818년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Oberndorf)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는 대개 오르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오르간이 있듯이, 오르간은 예배를 드리는데 아주 중요한 악기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날인데 갑자기 성 니콜라이 교회의 오르간이 심하게 고장났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날 수가 없었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정예배때 찬양을 드릴 수가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자정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오르간은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성 니콜라이 교회의 모어 목사님(Joseph Mohr)은 눈내리는 창밖만 내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군요” 하고 말하면서 모어 목사님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펜을 들어 다음과 같은 시를 적었습니다.

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 다 아기 잘도 잔다.

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광이 둘린 밤 천군 천사 나타나 기뻐 노래 불렀네 왕이 나셨도 다 왕이 나셨도다.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동방의 박사들 별을 보고 찾아와 꿇어 경배 드렸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이 시를 보자마자 성가대 지휘자는 재빨리 곡을 붇여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침묵이 자정예배시 기타반주에 의하여 깨어졌습니다. 성가대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평화의 노래가··· 이것이 바로 오늘 성가대가 부른 노래의 기원입니다.

 

2. 몸말

아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침묵속에서 오셨습니다. 오늘날처럼 요란스런 성탄절 축하 쇼를 하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영광을 받으며 오신것도 아닙니다. 아기 예수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던, 어느 누구도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던 보잘 것 없는 말구유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태어나 이 세상에 잔잔한 평화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부자 나사로에게 찾아가서 평화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린 문둥병 환자에게 찾아가서 ‘네게 평화가 있으라’ 하며 평화를 선언하였습니다.

전도사님이 지난 주 화요일에 명일동에 있는 명진 보육원에 갔었습니다. 전도사님과 함께 지내는 홍경호 전도사님이 매주 화요일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는데 지난 주에는 전도사님도 함께 갔다 왔습니다. 명진 보육원에는 5·6살짜리의 어린 아이에서 고등학생까지의 부모 없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대부분 부모가 있는데도 살기 어려워서 버린 자식들이 모인 곳입니다. 고아원에 가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워서 달려듭니다. 그들은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년에 한 두 번 행사치레하듯이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얘기하며 놀아주길 바랄뿐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이런 친구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화로다”

 

3. 나오는 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매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이지만 올해는 선물을 받을 생각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선물을 주고 가난하여 소외당한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해 주세요. 그것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에게는 한 없는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기도 합시다.

 

 

 

10·제목 : 한해를 닫으며···

·본문 : 신명기 28장 1-6절, 마태복음 22장 34-40절

·주제 : 복과 하나님의 뜻

 

사람은 누구나 연말이 되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옛친구들과 즐거웠던 시절을 되새김질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년초에 세운 계획을 뒤돌아보며 얼마나 이루었는지를 반성해 보기도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끝에 가서는 지난 시간을 후회합니다. “내가 좀더 열심히 살았어야 하는 것인데!” 하며 아쉬움으로 한해를 정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하기를 “내년에는 계획을 잘 세워서 멋지게 살아야지!” 하며 다짐하며 새해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의 모습입니다. 매번 반복되는 후회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내다보며 다시금 시작하는 모습, 이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도 연말을 맞이해서 한해를 뒤돌아보며 새해에 대한 기대와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내년에는 작심삼일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간절한 소망과 함께.

그러나, 우리는 한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맞이하기에 앞서서 한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것을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모세가 나이가 많이들어 죽기 바로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행한 고별설교입니다. 모세는 80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킨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갖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너무 들었고 전에 하나님께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볼 수 있고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야하는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깊게 지키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세상의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너희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하여 예언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언의 참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를 내다보며 점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복이 우리에게 넘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리에게 큰 화가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내가 저녁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니면 아침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저녁때 기도해야지만 내가 복을 주고 아침에 기도하면 너는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친구를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그 시간에 공부를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마십시오. 전도도 중요하고, 공부도 중요합니다. 전도를 하면 복을 받고 공부를 하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옹졸하게 만들어서는 않됩니다.

오늘 말씀에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어떻게 선택하여야 하는지를 간구할 때 바로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생각하면서, 내 중심이 바로 이것을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선택하려는 것, 즉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인지.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지금 시험기간인데, 공부는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식으로, 말씀만 읽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반대로 거룩한 주일인데 공부한다고, 어디 놀러간다고 예배당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올해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한해를 반성하면서 새해의 계획을 세울텐데, 바로 이때 나의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지를 스스로 반성해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