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신년설교

공 상희 2010. 1. 1. 07:49

1.교회, 백성의 위로자

[사 40:1 ~ 2, 고후 1:3 ~ 5]

우리에게 새해는 또 다른 기대를 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위로받아야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위로라는 단어는 ‘네하마’, ‘탄후밈’이란 말입니다. 처한 곤경을 호전시키거나 슬픔이 변하여 기쁨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나훔이란 이름의 뜻은 위로자입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위로하신다’ 입니다.

신약의 위로란 개인적인 차원의 위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사역은 위로하심입니다. 위로란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이시스’인데 ‘파라칼레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불러서 곁에 둔다는 뜻입니다. 불러서 곁에 두는 것이 위로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바나바라는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위로하다(comfort)는 말은 귀여워한다거나 버릇없게 기른다는 뜻이 아니라 확신을 준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그분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하는 일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교회가 위로자가 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위로의 확인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리 교회가 신음하고 있는 사회와 국가의 위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이 백성의 위로자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에는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위로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위로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위로하시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위로자가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5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전달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이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성령님은 ‘파라클레이토스’이십니다. 위로자이시며, 대변인이시며, 도우미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위로의 영이십니다. 시편 119:50은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고 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위로자이시며 그분의 말씀이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 받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백성의 위로자이십니다 고난과 아픔과 영육의 번민과 모든 고통을 위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통당하는 백성을 보시며 가장 안타까워하십니다. 가장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의 위로의 근거와 힘이 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둘째, 하나님의 교회는 백성의 위로자입니다.

 

고린도후서 1:6에는 말합니다. “우리가 위로 받은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우리가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로의 통로이십니다. 성령님은 위로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자가 됩니다.

빌립보서 2:1에는 우리의 일 가운데 하나가 위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위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내용입니다. 위로는 그리스도인의 필수과목입니다.

이사야 40:1에는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위로가 필수과목이며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세상에 대한 위로는 신적 명령으로서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아파할 때, 힘들어 할 때, 마음이 상할 때, 희망을 상실할 때 교회는 그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세상이 위로 받을 곳이 없어 방황할 때 교회는 그들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깊은 절망감 속에 있습니다. 깜깜한 먹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폭풍을 만나 고장난 배처럼 표류하고 있습니다. 구름 사이의 한 별이 보입니다. 그 별이 위로가 되고, 방향 잡이가 되고, 희망을 안겨줍니다. 교회는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위로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 우리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가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할만한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가 위로하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 가운데는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위로자입니다. 우리도 위로 받고 싶을 때가 많이 있지만 위로해야 합니다. 위로해야 하고, 위로하면 위로를 받습니다.

 

결론

 

하와이 몰로카이에서 나환자들을 위하여 사역하던 다니안 신부는 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1936년 벨기에 정부의 요청으로 다미안 신부의 시신은 그의 고향 땅에 옮겨졌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에 몰로카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신부님의 일부라도 그들에게 되돌려 달라는 요청을 벨기에 정부에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미안 신부의 오른팔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들을 배척할 때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며 안아주었던 바로 그 손이었습니다. 위로자는 위로 받습니다. 위로자는 백성의 존경을 받습니다. 위로할 때에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손은 위로하는 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발은 위로하는 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은 위로하는 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위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있으므로 백성이 위로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위로 받아야 하지만 위로함으로 위로받는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해 내내 우리의 삶이 위로하는 삶, 위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위로로 우리 국가와 민족이 다시 치유되고 새 힘을 얻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본문 : 수 3:4

설교 : 채규현 목사

할렐루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정말 새해에 많은 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젯밤에 송구영신예배 드리면서 금년 1년 동안에 삶의 목표로 삶는 것을 같이 기도제목으로 드리기도 했는데, 이런 기도제목들이 정말 금년 한해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성공이란, 사전적 의미를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을 성공이라고 했어요. 금년 1년 동안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목표로 해서 사십니까? 또 1년을 지나고 연말이 되었을 때 뒤돌아보면서 ‘아, 금년 1년의 나의 삶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어떻게 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목표가 없으면 성공이고 실패도 없습니다.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성공하기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성공이라는 면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인생에 원하는 바-금년 1년 동안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고 내 가족과 내 주변과 내 교회에서 이루어지기 원하는 그 모든 것이 잘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아닙니다.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요. 여러분이 좋은 직장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어떤 원하는 자리를 차지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진정한 성공을 이루지 못합니다. 외형적인 많은 것은 이룰지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과연 여러분의 내면세계에서 진정한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가하는 면을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고, 또한 여러분이 지난 한해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한해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잣대도 여러분에게 드리기 원합니다.

금년 1년 동안에 여러분이 매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연말이 되어서 ‘정말 내 인생이 성공했구나. 2006년도는 성공한 한해였구나.’ 바로 이런 면들이 구별될 수 있는 그런 지침들을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별것 아니에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뭔가 목표를 정할 때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셔야 되고, 그리고 우리가 새해에 들어서 작년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볼 때 사실 목표를 정하고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우리가 갈 길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장면을 보죠? 법궤가 제일 앞에 갑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2천 규빗 떨어져 가게 합니다. 그래서 가는 길이 어딘지를 알 수 있도록 떨어져 가는 겁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요. 그들은 지리적인 면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가지만, 우리가 2006년 들어서 우리는 시간적인 면에서 미지의 세계를 새로 가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는 끝없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를 새롭게 가고, 또 가고,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우리가 가게 됩니다. 바로 그 길을 가면서 우리는 성공하길 원하고, 우리는 모든 삶이 우리가 원하는 목표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는데, 그것이 과연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다시 한번 해봐야 합니다.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활력이 넘치고, 건강하고, 우리의 삶에 행복감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렇게 가는 길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길을 행치 않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가장 행복하고 인생의 최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을 따를 때만 그러한 길이 우리에게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 여호수아 3장에서도 바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너희들이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길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행할 길을 알게 하겠다.” 1장 8절에도 뭐라고 하십니까?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러한 약속을 하시면서 그 앞에 그렇게 평탄하게 될 수 있는 방법도 이야기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복하려고 하고, 그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먼저 주님을 따를 때에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으로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우리가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길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맡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풍요와 행복의 비결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 새해에 원하는 대로 다 주시길 원합니다. 그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분에게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길도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금년 1년 동안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게 하시면 여러분은 분명히 금년 1년에 형통한 삶을 살 것입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금년 1년 동안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고, 온갖 어려움과 역경과 난관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그리고 1년을 지나 되돌아보면서 ‘나의 인생은 금년 1년도 다사다난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성공이 있는 한해였다.’ 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한해가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것, 주님의 뜻대로 여러분의 삶을 다시 한번 수정하는 것, 바로 이러한 면이 금년 한해에 여러분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주일에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중에도 되고, 연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1년 열두 달 365일 오직 하나님께만 나의 뜻을 맡기는 그런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삶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를 놓고 여러분이 다시 한번 연초에 생각하시고 또 마음을 먹기를 바랍니다.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도 있어요. 제게도 그러한 특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특성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3일에 한번 다시 작심하면 돼요. 3일에 한번씩 다시 마음을 먹읍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주일날, 그리고 수요일에 계속 작심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1년 가죠.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따르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금년에 제가 작정했다고 했죠? 금년의 표어는 무엇입니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목표는 여러분이 지키는 것까지가 목표입니다. 가르치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가르쳐 지키게 하는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금년 1년의 제 나름대로의 가르침의 모토는 “단순 반복” 입니다.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반복-지킬 때까지 반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거듭 느낀 것은 하나님은 저보다 훨씬 고집이 세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기를 기다리시지 하나님이 변하시지는 않으시구나.’ 하는 것을 거듭거듭 느꼈습니다.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더라구요. 저도 그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이 변할 때까지 다시 한번 반복, 반복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 1년 여러분이 변한 다면 정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하실 줄을 믿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의 인생 속에, 여러분의 인생 계획 속에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제쳐놓고 풍요롭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높은 자리에 갈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에게 인기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쳐놓고는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안식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혜가 많아서 여러분에게 닥치는 여러 위험과 역경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없이는 그 속에 진정한 능력은 없습니다. 잔재주는 있어도 진정한 능력은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여러분이 극복할 능력은 없거든요. 성경을 읽게 될 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그 속에서 여러분의 삶은 바뀌게 되고, 여러분의 관점이 바뀌게 되고, 이 세상이 아무리 흔들리게 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용기있고 담대한 삶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 성경의 능력은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서부 개척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어느 두 젊은이가 드디어 서쪽으로 자기들의 꿈을 품고 서쪽으로 말을 타고 갔습니다. 그 곳은 미개척지고, 사람도 거의 살지 않습니다. 하룻밤 묵을 데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한 시골의 노인네 혼자 사는 집에 가서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불안한 거에요. 그 젊은이들 중에 한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었는데 안 믿는 젊은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노인네가 심상치가 않으니까 우리 꼭 권총을 가지고 있자. 잘 때에도 베개 밑에다 권총을 놓고, 항상 권총을 차고 있다가 만약 이상한 행동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하자.”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 되었어요. 자기 전에 노인네가 청년들이 있는 방에 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청년들, 나는 매일 성경 한 장 읽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인데, 나와 함께 성경 읽고 기도하지 않겠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노인방으로 갔어요. 거기서 같이 성경을 읽고, 그 노인이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이렇게 외롭게 여행을 하고 있는 이 두 젊은이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보냈습니다. 자기 방으로 와서 믿는 청년이 바로 그 안 믿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노인방에 갈 때 자네 왜 총을 안 가지고 갔나?” 했더니 “아, 그 노인, 전혀 문제없이 평안하고 안심해도 될 것 같애.” 그 마음이 왜 생겼겠습니까? 성경을 읽자고 하니까, 같이 기도하자고 하니까요.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공격합니다. 또 교회 주변에 있는 주민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에 많은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밑바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요. 만약에 여기에 어떤 회사가 있다면 그 사람들이 그러겠어요? 만약에 여기에 어떤 국가 권력기관이 들어와 있다면 그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못 할거에요. 교회가 오니까 쉽게 그렇게 마음껏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밑바탕에 “그래도 이렇게 해도 저 사람들은 나에게 선하게 대해 줄 것이다.” 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 출발점이 성경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년 1년 동안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금년 1년에 성경 일독을 하겠다고 결단하시겠습니까? 전체 성경을 1년에 일독하려면 매일 3장, 주일에 5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읽으십시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요 바쁜 일이 있어서 하루 이틀만 빠져도 그 다음에 읽을 때 아홉장이나 돼요. 그러니까 매일 매일 안 빼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번 하루 이틀 빠지고 나면 그 다음에 그야말로 작심삼일이 돼요. 그러니까 잊지 마시고 매일매일 끊임없이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누구나 결심하는 한 해 첫 주 시작입니다. 성경을 일독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끊임없이 성경을 읽으면 성경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기준과 여러분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성경은 마치 우리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거든요. 성경은 마치 우리에게 사진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 삶을 낱낱이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겸손한 마음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성경을 읽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마음으로 마음의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기만 하면 성경은 분명히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요구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고치라고 할 것입니다. 연약한 부분은 용기를 주는 능력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읽다보면, 끊임없이 읽게 되면 1년이 지나면서 점점 여러분 삶에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도 그런 분이 있어요. 새해 첫 주에 성경을 읽기로 맹세한 뒤에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고 그대로 충실히 지킬 때, 정말 눈에 띄게 눈부시게 성장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예수님을 얼마 안 믿는 사람들에게 그 능력이 더 밝히 드러납니다. 이런 분들에게 처음부터 성경 읽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들에게 있는 변화는 눈에 보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일독을 한 뒤로 1년을 뒤돌아보면서 ‘아, 내가 한 해는 정말 성공적으로 살았구나.’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 기도도 결심하십시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그랬죠? 기도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기도입니다. 어떤 삶을 살든지 항상 내 옆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연습하십시오. 연습한다고 없는 하나님이 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의 옆에 계시는데 문제는 내가 연습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처럼 느끼지 않아요. 그 연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옆에 계심을 연습해요. 그것을 위해서는 스스로 하나님께 계속 말해도 돼요. “하나님, 저 이제 교회 가야죠?”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과 이야기하십시오. 설교를 듣는 중에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목사님이 이런 말하시는데 나는 성경 몇 번 읽을까요? 한 번요? 두 번요?” 대화를 하십시오. 이런 기도의 연습이 여러분에게 금년 한해에 있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계속해서 끊이지 않을 때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많은 인생의 언덕이 있을 때 능히 넘어설 수 있고 여러분이 져야 될 짐들이 새롭게 지어질 때 능히 질 수 있는 능력도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하는 그 삶 속에서 나올 수 있고, 또 수많은 유혹들이 여러분의 앞에 아른거릴 때 그것을 극복하는 능력도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이는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혼자서는 사탄의 유혹에, 사탄의 압박에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몇 년을 믿었다...” 하는 게 다 소용없는 얘기 아닙니까? 온전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는 습관, 하나님과 만나는 그 습관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 보십시오. 성경에 수많은 용사들이 나오죠. 수많은 영웅들이 나오죠?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그랬어요. 우리처럼 시험받고 유혹받고, 우리처럼 쉽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나 그가 놀라운 능력을 행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엘리야도 그랬고,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을 보면 계속해서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제대로 하나님 되심을 느끼고 있는 그 삶이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이 세상의 왕의 칙령도 거역할 수 있는 담대함이 거기서 생깁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의 상관이 성경말씀과 다른 명령을 할 때, 다른 면에서 유혹을 할 때, 여러분의 거래처에서 성경 말씀과 다른 유혹을 할 때 여러분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만이 극복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 길이 여러분을 평탄케 할 것이요, 그 길이 여러분에 궁극적인 축복을 약속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은 당장은 모면하게 할지 몰라도 궁극적은 멸망의 길입니다. 모든 길이 다 그래요. 그 멸망의 길이 이 세상에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음 뒤에 볼 수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백성들은 지금 당장의 이익과 손해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성공, 궁극적인 이익에 우리의 마음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 아닙니까? 그리고 이 면은 오직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지혜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인생이 참 다사다난 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도합니다. 시편 55편에 보면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이것이 여러분의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여호와 앞에서 탄식한다, 나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놓고 심지어는 내 속에 있는 죄적인 면까지 하나님 앞에서 탄식할 때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바쁜 수많은 세월동안에도 언제나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고, 혼자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십자가로 가실 수 있는 능력이 거기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결단하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여러분의 세상에서의 인생의 목표만 가지고 몰두하지 마시고, 금년 1년 동안 내 삶에서 성경은 어떻게 읽은 것인가 기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렇게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면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부딪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적용될 때 여러분의 삶 속에 거룩한 삶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만 읽는 것이 아니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변화된 삶-결단을 통한 변화된 삶,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대로 여러분이 지키게 될 때에 금년 1년 여러분에게 진정한 능력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고, 여러분의 품성에 있고, 여러분의 인생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주변 사람들이 압니다. 저는 2005년, 참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한해였어요. 그 감사했던 것들 중에 가장 큰 감사가 우리 교회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됨을 눈에 띄게 느끼는 것, 이것이 제일 제가 보람있게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 특히 안 믿는 사람들은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그들이 요한복음, 마태복음 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읽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변화가 있다면 분명히 그들은 여러분에게 궁금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다시 한번 성공하기 원하고, 금년 1년 잘 되기를 원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고기를 잡으려면 물에 가야 되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되고요. 우리가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그것이 있는 곳에 가야 될 것 아닙니까? 바로 그 곳이 뭡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변화된 거룩한 삶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개개인이 그 삶을 살려고 하면 어려운 점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 세상에 두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백성이 천국 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바로바로 천국에 데려가시지는 않으셔요. 왜 그런다고 했어요? 이 세상에 사명이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 이 세상에 사명이 있기 때문에 두셨지만 이 세상에 있는 한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직 변화되지 않은 우리가 있기 때문에 그 우리를 붙드시기 위한 방편이 교회입니다. 기도할 때 혼자 기도의 습관을 가지려고 해 보십시오, 그것이 잘 되나.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도 하고 금요기도회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도 혼자 보는 것이 중간 중간에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을 붙들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구역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큐티 모임을 하는 것입니다. 작년 1년 동안에 많은 분들이 기초양육훈련을 하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은혜 받은 게 그날 와서 은혜 받은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날 하루 같이 와서 전부 발표해야 되기 때문에 한주 내내 성경 읽어야 되죠, 성경구절 암송해야 되죠, 큐티 해야 되죠, 설교말씀 적어야 되죠. 그게 교회에서 같이 프로그램을 해 줄때 점점 그런 새로운 습관을 갖는데 연습하고, 나 혼자만 아니고 같이 하기 때문에 훨씬 쉽습니다. 교회가 그것을 위해서 존재해요. 그렇다면 너무나 뻔한 결론이 나는 것 아닙니까? 교회 생활을 잘 할 때 지금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지 않고 나 혼자 성경 잘 읽을 수 있다, 나 혼자 기도 잘 할 수 있다, 나 혼자 삶의 변화를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함께 모여서 서로 권면하고 서로 북돋우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도해주고, 이러는 가운데 같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톤 할 때 보면 페이스메이커(pacemaker)들이 있습니다. 앞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고, 격려해 주고,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장거리도 힘 안들이고, 힘을 북돋우면서 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교회의 일이 뭐냐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잘 되고, 모든 삶에서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페이스메이킹(pacemaking)하는 것입니다. 같이 뛰어 주는 거에요. 교역자들이 여러분과 같이 뛰어 주고, 여러 교구장, 지역장, 구역장들이 함께 뛰어주고, 여러 소그룹 팀장들이 함께 뛰어 주고,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뛰어주는 겁니다. 같이 뛰면서 서로서로 힘을 북돋우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바로 다른 모든 삶이 잘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지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기 원하십니다. 왜 입니까?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질 때, 그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교회의 우산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이 변화되고, 생활이 건강해지고, 온전히 신앙생활하고, 말씀과 기도가 더욱 충만해지고, 이런 일들이 교회의 튼튼한 울타리 속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튼튼한 울타리는 그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있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참 이상한 것이 헌신과 희생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이게 교회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은혜를 받기 원하는데 은혜는 무엇을 받느냐면 교회를 세우기 위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다시 내가 은혜를 받는 것이 교회입니다. 참 희한한 조직이 교회에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귀한 조직입니다. 그래서 우선 열심히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주일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수요 예배, 계속해서 참여하십시오. 저는 제가 목회 20년 하면서 그 동안에 이 세 예배에 다 참여하면서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못 봤습니다. 계속해서 참여하면서,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이 기본적인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봤습니다. 넘어지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문제가 생기면 먼저 예배부터 안 나와요. 이런 사람들은 문제를 극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함께,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고 같이 예배에 참여할 때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습니다.

금년 한해 여러분, 결단하십시오. 거룩한 삶을 위해서 투자해 보십시오. 교회 생활에 헌신해 보십시오. 일을 하지 않던 것도 일을 한번 해 보시고, 작은 일을 맡은 것에서 더 큰 일도 맡아 보시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도 맡아 보시고, 그리고 헌신하며 땀을 흘리고, 시간을 내고, 여러분의 돈을 투자하고 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상하게 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교회 일이라는 게 하면 재미있습니다. 며칠 전에 정말 제게 힘이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다가 새로 교회 일에 관여한 분이 “교회 일 해보니까 참 재미있네요.” 그럼요. 그게 얼마나 저한테 좋은 말입니까? 교회 일 하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해보면 정말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내 신앙도 저절로 지켜집니다. 다른 사람들 돌봐 보십시오. 내가 성경 안 보고는 돌볼 수가 없는데, 내가 기도안 하고는 할 수가 없는데요. 교회 일 해보십시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면서 교회일은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 여러분이 금년에 정말 기쁨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을 위해서 교회 생활 잘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하나 결단하시고 금년 1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고 네 번째로,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 바르게 드려야 될 것은 드려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의 처음 것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먼저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일주일의 첫 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십시오. 이 주일은 모든 믿는 백성들의 휴식을 위해서 허락하셨고, 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허락하셨고, 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라 하십니다. 이 첫날,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보십시오.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한주간의 첫날도 하나님께 드리지만 하루 중의 가장 처음 시간도 하나님께 드려보라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와 남편과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보십시오. 스펄젼이 그랬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만나야 된다.” 깨자마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을 습관으로 가져 보십시오. 그게 되기 시작하면, 바로 하나님 앞에 첫 시간을 드릴 때 하루 전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보통 경험하는 것이 뭡니까? 아침에 처음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가 이상하게 하루 종일 가요. 제가 부르지 않았어도 제 아내가 부른 찬송이 한 20분만 지나면 어느덧 제 입에서 나와요. 그리고 그 찬송이 하루 종일 가요. 그러니까 처음에 방향 설정이 어떻게 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일주일의 첫날, 하루의 첫 시간, 첫 순간을 하나님 것으로 만들어요. 이것을 습관으로 한번 해 보십시오. 금년 1년 습관으로 들여 보십시오. 하루의 첫 부분을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께 제의하고 싶은 것은 일어나서 서로 부부끼리도 말하지 말고, 각자 서로 조심해서 소리내지 말고 일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상대편에게 기도할 수 있는 정신적 공간도 주면서 아침에 묵상하며 기도하고, 성경읽는 시간을 먼저 가지십시오. 이게 필요해요. 이게 습관이 되면 그 다음에 부부관계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 대화가 시작이 돼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일생이 갈 수가 있습니다. 아침의 이 습관을 여러분, 꼭 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처음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습관으로 한번 해 보십시오. 처음에 드릴 때는 대단히 많은 것 같은데 일단 습관이 되면 별 것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가운데 내 삶과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심이 어느덧 확신있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 중에 가장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가장 좋은 시간, 여러분이 가장 힘 있을 때, 여러분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하실 줄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남겨진 사역, 이 세상에 여러분을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주변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여러분을 남겨놓으셨다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러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에 반드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몇 분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 보았습니까? 몇 분에게 복음을 증거해 보았습니까? 몇 분에게 “나는 예수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행동한다.” 라는 이야기를 해 봤습니까? 한번 지난 1년을 돌이켜 보십시오. 마음에 찔리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작년 1년 동안 내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말고, 작년 1년 동안 내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두신 사명대로 내가 몇 사람에 복음을 증거했는가를요. 여러분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여러분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몇 평에 살았나,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것을 누렸는가가 여러분의 대차대조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마침내 하나님 말씀을 내 주변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증거해서 그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 앞에 인도했는가 그것만이 여러분 인생이 대차대조표에 남습니다. 그렇다면 금년 1년의 목표를 세울 때 바로 그 면이 여러분의 목표 중에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오늘 한번 결단하십시오.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금년 1년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다시 한번 하나님의 관점에서, 제가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했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안 지켜지니까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켜질 때 여러분의 삶 속에 축복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풍성한 은혜의 축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마도 1월 1일 이니까 멀리에 있던 가족들도 함께 온 분들도 있을텐데,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얘기한 이 면, 잊지 마십시오. 성경을 어떻게 읽겠다 결단하시고, 내가 기도의 시간을 매일 어떻게 갖겠다 결단하시고, 내가 거룩한 삶을 위해서 어떻게 변화하겠다, 그 중에 특히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처음 것은 그것이 시간이든 건강이든 재물이든 무엇이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내가 열심히 전도해야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목표를 세우십시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결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1년 동안 노력한다면 비록 여러분의 인생길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어디에 여러분이 서있던 간에 바로 그 서있는 자리는 성공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자리입니다. 바로 이러한 복된 삶, 금년 한해 지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믿음 소망 사랑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제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것은 다 좋습니다. 물건도 생각도 마음도 시간도 새시간이 좋습니다. 새해의 첫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산뜻하고 신선하고 기대가 있습니까. 새해에는 새해에 걸맞은 생각을 가지고 다짐하고 기대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새롭게 다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새해를 맞이해서 무엇보다 몇 가지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를 금년 우리 신앙의 표어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금년 표어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는 신앙인이 세상을 살고 신앙을 성장시키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필수 요건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금년 한해를 이 중심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믿음”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믿음이 깊어지고 확고해지고 넓어지는 은혜를 입었으면 합니다. 믿음은 주님을 나의 삶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중심을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갖자。" 믿음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갖자”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각오를 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믿음다워지려면 세 가지 의무를 실천했으면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우선하는 삶”입니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우선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 속에 관심 속에 하나님이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나에게 먼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에는 이 같은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일을 소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주일을 생명처럼 지켜보십시오. 주일을 지킨다는 말은 내 인생, 내 중심을 성전중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주일을 지킴”이 헌신이고 투자이고 고백이고 순종입니다. 바쁜 시대에 할 일은 많은데 하던 일들을 다 놓아두고 주일날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삶에 주님이 중심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의 앞길을 안내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주일날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주일날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은 날도 주일날입니다.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날도 주일날 새벽이 될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하느라고, 돈 버느라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주일날 놀러가고 여행가고 운동가고 잠자는 분들도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드리러 와도 꼭 지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각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예배에 지각하는 분들을 조사해 보니까 몸단장하느라고 늦는 분이 20%가 되었습니다. 늦장 부리다 늦는 경우가 15.4%였고 습관적으로 늦는 분도 12.6%나 되었습니다. 밖에서 아내를 기다리다 늦은 경우도 12.2%나 되고 토요일 밤 늦게까지 놀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늦는 경우도 11%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대 늦지 않는다고 대답한 분은 14.5%가 되었습니다. 예배에 지각하는데 5분 늦게 오는 분이 절대다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습관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예배에 삶의 중심을 두고 살아갑시다. 그것이 신앙인으로서 가장 힘있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또 하나는 11조 생활입니다. 새해에는 이 11조 생활을 한번 각오를 가지고 시작해 보십시오. 11조 생활은 주일생활과 함께 신앙인의 두 가지 의무생활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신앙인의 중심에서 두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부터 용기 있게 11조 생활과 주일성수 하는 삶을 살아보십시오. 온전하게 하지 못해도 시작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생기고 믿음이 힘이 있어질 것입니다.

 

지난해에 직분자들을 세울 때 교회출석과 봉사와 11조 생활을 조건으로 사정했습니다. 이제는 이 세 가지가 약하면 직분자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교회 나오신지 오래되면 그냥 직분을 주어왔는데 그러다 보니까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직원들이 발생하고 11조도 안 하는 직분자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11조를 못하는 장로, 권사, 집사가 있다면 그것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 직분입니다. 11조 생활에 충실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주어지는 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에 책임감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신앙에 무게가 주어집니다. 내 안에 믿음이 무게 있게 세워지고 책임감이 주어집니다. 기도하게 되고 봉사하게 되고 참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신앙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11조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자꾸만 뒤처지게 되고 손님처럼 왔다 갔다 하게 되고 뒤에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분들은 불평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생활의 향상입니다. 저는 매주 주일 후에 여러분들이 하신 헌금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봅니다. 보면 여러분의 가정의 형편이 향상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새해부터 여러분, 과감하게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11조 아까워서 못하면 그 믿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신앙의 생활이 자라지를 못합니다. 저는 이 11조 생활을 목회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삶은 신앙인의 자존심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확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저에게 별로 실망시키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은혜로 저를 인도하시는 것을 저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자신 있게 여러분들에게 강조 드리는 것입니다. 11조 생활은 믿음생활에 자신감을 주고 반드시 생활의 향상을 가져다줍니다.

 

11조 생활을 하면 또 한 가지 발생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자신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 자신 있게 기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것이 있으면 내가 하나님께 당당하게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앙의 성장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가 한번 위기를 당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폐광을 샀다가 사기를 당하고 원금을 다 날렸습니다. 임금을 주지 못하게 되니까 광부들이 폭도로 변해서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가 시달리다 못해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철저하게 11조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자꾸만 솟아나왔습니다. 그것이 심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믿음이고 용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11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이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지금 심각한 것은 폐광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빚을 얻어서라도 더 파야 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자본금은 다 떨어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을 달라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그는 엎드려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기도가 힘 있게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중심 있게 11조 생활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유사시에 확신 있게 붙잡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그때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되리라, 더 깊게 파라.” 그는 그 음성을 믿고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금 대신 검은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아 올라왔습니다. 그것이 석유였습니다. 그래서 록펠러가 유전을 발견함으로 석유 왕이 된 것입니다. 저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너무나 확신 있게 믿는 사람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록펠러가 그렇게 부를 이룬 것은 그의 11조의 믿음 때문입니다.

 

새해 여러분에게 이런 용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아주 강력하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좀 살아 보겠대도 주일날도 일하고 잠도 자지 않고 일한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하는 것이 아까워서 덜덜 떨면서 돈을 아껴서 계를 하고 저축을 해 보십시오. 목돈을 타면 이렇게 하리라 하고 계산을 철저하게 해 보십시오. 그 목돈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에 쓸어 넣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께서 도와 주셔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 점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누구는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는 부지런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가난하고 부도나고 그렇습니까. 11조의 삶은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고 나의 앞길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금년에 한번 믿음으로 시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금년 연말에 가서 한번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큰 변화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 축복이 주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소망”

 

 

 

 

신앙의 삶은 미래적 삶입니다. 미래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 장차 나에게 면류관이 예비되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며 기대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미래는 하나님이 이루시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시간입니다. 고로 미래를 기대하고 꿈꾸고 바라보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런 기대와 꿈을 가지면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미국 국무장관인 콘돌라 라이사 라는 분의 전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 흑인 소녀가 10세 때 백악관을 구경 갔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이 흑인 소녀가 아빠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백악관을 밖에서만 구경해야만 하는 것은 내 피부 색깔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난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가고 말거예요“ 그 뒤부터 이 소녀가 두 배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19세 때 덴버대학에서 우등으로 졸업합니다. 26세 때 박사가 되고 스탠포드대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38세 때 부총장이 되고 지금은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는 꿈을 가졌던 것처럼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

 

 

 

 

본문을 보면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호심경이라는 것을 개혁판 성경에서는 흉배라고 했습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군인들이 무장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말은 가슴을 건강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가슴이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슴은 정신의 공급처입니다. 그래서 이 가슴이 병들고 찌들고 악해지고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게 되면 세상을 향해서 악한 삶이 나오게 됩니다. 그 말은 책임 있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한번 이 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보십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가슴에 사랑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내 가슴에서 아주 건강한 정신이 나오도록, 아주 따뜻한 마음이 솟아 나오도록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슴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서도 소개하였지만 우리교회 김복남 권사님은 일찍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중에도 시간 마다 사회봉사에 앞장섰습니다.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노숙자들의 식사를 위해서 배식봉사를 4년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국을 끓여서 날랐습니다. 경로식당을 7-8년 운영하고 결식아동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고 안양천에 나가 오물을 주웠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주는 금년 자랑스러운 봉사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자꾸만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숨어서 이렇게 일하는 분들이 자꾸만 나타나야 그 사회가 건강해 집니다.

 

지난해 우리교회가 한 장기기증 운동도 교회가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 주일 3,200여명이 출석했는데 그중 1,600여명이 장기기증에 동참하였으니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의 의식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 교우들 중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하는 비율이 아직까지는 45%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이것을 금년에는 55%로 끌어 올렸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교회에서나 사회에 나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각종 봉사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그리스도인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헌신이고 봉사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11조를 드리고 소망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며 살리라 하고 다짐하고 각오를 했을 때는 반드시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모두 시험이 강하게 오는 것들입니다. “금년에는 주일을 꼭 지켜야지”하고 각오를 하면 곧 바로 시험이 옵니다. 주일날 가지 못하도록 온갖 유혹이 오고 주일날 골프가고 싶어 안달이 나고 낚시갈 일, 산에 갈 일이 자꾸만 발생하고 생전 전화도 안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러 오고 그럽니다. 그것이 모두 유혹이고 시험입니다. 이것을 이겨야 지킬 수 있습니다.

 

또 “금년에는 11조를 드려야지”하고 각오를 했는데 그때부터 또 시험이 옵니다. 가장 무서운 유혹이 아까운 생각입니다. 시험을 이겨야 지킬 수 있습니다. 뜻을 세웠으면 시험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면 그때 “나도 해냈다” 하는 영적 만족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마음입니다.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맛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신앙화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금년 한해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 큰 변화 올 것입니다. 금년 연말에 가서 우리 한번 변화된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합니다.

 

 

 

4. 상을 위해 달리자

성경:빌립보서 3:13 ~ 16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빌립보서 3:13-16.

 

여러해 전에 영국탐험대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약 700미터 아래에 거점을 마련하고, 그 중 말롤과 얼바인이 정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16시간 정도만 올라가면 정복한다는 확신에 차서 출발한 이 두 사람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런던타임즈에 이렇게 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그들은 정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디서 떨어져 죽은 모습이 아니라 앞의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도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부르시든지 ‘그의 마지막 모습은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었다’ 라는 은총이 있길 바랍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주일아침 예배시간이었다. 수요예배에서 손들고 찬양하는 모습이었다. 금요 심야기도회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모습이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로 갔다.’ 금년에도 언제나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째로, 과거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절). 이 말씀처럼 과거를 잊어버릴 줄 알아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할 때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실망과 후회, 즉 부정적이고 나쁜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작년에 실망한 일들이 있을 수 있어요. 후회스러운 일, 죄의식으로 헤매던 일,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감정을 어둡게 만든 것들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이미 2005년과 함께 영원히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아울러 쓰라린 과거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지난날의 후회와 실망과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워야 전진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게 해선 안 됩니다.

 

작년에 성공한 일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성취감과 만족감이 있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작년에 성공과 성취감과 만족감과 행복의 순간들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첫째예요. 그러나 역시 또 배워야합니다. 작년에 왜 어떻게 성공했는지 알아내서 그 성공을 금년에도 반복해야 합니다. 반복하되 금년에는 좀 더 잘해야 됩니다. 성공을 반복하면서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공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성공을 자주 하고, 좀 더 큰 성공을 몇 차례 반복하고, 아주 큰 성공을 한두 가지 해서 아예 성공적인 사람, 성공이 습관화된 사람, 성공이 생활스타일이 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통해서 또 배우고 더하여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영어에 이런 말이 있지요. "We never get old; we just get better." 우리는 늙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야 합니다. 지나간 실패는 회개하고 배우고, 지나간 성공은 감사하고 또 배워서, 실패와 성공을 통해서 매일같이 계속 성장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교만해질 가능성입니다. 성공한 순간 교만해지면 끝난 겁니다. 넘어집니다. 교만한 사람은 발전할 수 없어요. 여러분, 성공했으면 반드시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주신 것을 아는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혼자서 성공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동료나 부하나 친구나 누군가가 옆에서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혼자 성공하는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장으로서 사업을 잘 했다면 직원들과 참모들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는 반드시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고맙다 하고 그들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내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와 성공이 반복됩니다. 지나간 과거는 실패든 성공이든 내려놓고 거기에서 배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둘째로, 미래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합니다. 가슴에 새로운 소원을 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갈 곳이 보이지 않으면 갈 수가 없어요.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13-14절). 어디서 새로운 목표와 소원들이 나타납니까?

 

첫째, 하나님을 좋아하면 보여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하나님은 만물을 갖고 계시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가장 좋은지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여 하나님과 가까우면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여러분이 갈 길을 하나씩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둘째, 기도하면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속상하고 화나서 울고도 싶고 고함도 지르고 싶다가도,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 객관적이 됩니다. 그전까지는 혼자서 주관적으로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갖지만,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앉으면 마음이 비워집니다. 마음의 소원을 다 아뢰고도 결국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조그만 자기 모습이 아니라 새로워진 역동적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창의력을 일으켜주십니다.

 

콜로라도대학이 천문학 연구 홀(Planetarium)을 짓고자 했으나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구소장이 광고를 하나 냈어요. “화성에 팔 땅이 많은데, 5천 평을 20불에 팝니다. 화성은 광대하고 자동차소음이나 공해도 없고, 세 가지 색깔의 광선이 눈앞에 펼쳐지는 정말 살고 싶어 할만한 곳입니다. 지원자는 연락하십시오.” 전국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했어요. 사람들은 그것이 모금을 위한 재치인 줄을 알았지만 ‘저렇게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면 얼마든지 도와줘야지’ 하고 수만 명이 20달러씩을 보내와서 건물을 짓고도 남았어요. 그는 ‘화성 동쪽 이 부분은 누구의 소유다’라고 쓴 서류에 사인하고 도장 찍어서 모든 후원자들에게 한 장씩 보냈어요. 그들은 그 화성소유권증서를 사무실에 붙여놓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나 화성에 5천 평 있어요” 합니다. 그걸 가져오겠습니까? 가서 살겠습니까? 그냥 기분이 좋은 거예요.

 

아이디어는 자유에서 나옵니다. 자유로운 마음에서 창의력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창의력이 나타납니다. 금년부터 새벽기도를 1부와 2부로 5시와 6시에 드리기로 했으니 원하는 시간에 올 수 있게 되었죠? 아침부터 하나님을 만나 친해지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일으켜주십니다. 내 마음이 열리고 하늘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우리 속에서 창조적인 삶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셋째, 불만스러운 환경 속에서 새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제가 미국에서 시작한 한인교회가 자꾸 성장하니 임대하여 쓰던 미국교회 공간이 모자라요. 또 아이들은 왜 그리 문제를 일으키는지, 미국목사님의 사무실 책상에 올라가 쿵쿵 뛰고 전구를 깨서 미국인들에게 여러 번 야단맞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여러 개 빌려서 주일에 먼저 어린이들을 내려놓고, 조금 더 가서 중고등부 내려놓고, 어른들은 마지막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세 교회의 미국인들한테 불려 다니니 참 힘들었어요. 이 불만스러운 환경 때문에 우리 자신의 교회가 있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결국 좋은 교회를 지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동생이 와서 얘기했죠. “예루살렘에서 오는 길인데, 성이 다 망가져 형편없이 되었고, 뒤에 남은 백성들이 너무 고생하고 있어.” 느헤미야가 이 말을 듣고 불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속상해서 울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새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왕에게 부탁해서 날 예루살렘에 돌려보내달라고 하자. 그래서 그 성벽을 다 고치고 백성들을 보호해주자.”

 

성공적인 사람과 실패적인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만스러운 상황에서 실패적인 사람은 불평하고 욕하고 화내고 끝냅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더 잘할 수 있다. 더 좋게 바꿀 수 있다’ 생각합니다. 불만스러운 환경에서도 새로운 소망과 목표를 보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땅에서도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여러분은 인생을 불평으로 끝내지 말고 그 상황을 통해 더 발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이 땅에서 끝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것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 또는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완수하기 전에는 절대로 이 땅을 못 떠납니다. 그러나 완수했다면 여기 남아있을 사람 없습니다. 수고했다고 하나님께서 “오라!” 하십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이 땅의 소명이 다릅니다. 요즘 여러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라는 사명진술서를 쓰게 합니다. 얼마 전에 은퇴하신 어떤 장로님의 얼굴을 보니 너무 좋으세요. 그 사모님도 전에 좀 아팠었는데 얼굴이 건강해 보여서 어느 날 물었습니다. “장로님,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좋아졌습니까?” 지난 1년 동안 하루에 부인과 한 시간씩 걸었더니 네댓 가지 병이 다 없어졌답니다. 여러분 개인의 소명이 무엇입니까? ‘금년에는 성경일독을 하겠다. 몇 명을 전도하겠다...’ 그 소명을 느끼고 이루고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 바랍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찬양축제 때 모두 참 잘했는데 특히 한 그룹 때문에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돌린 연주팀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돌린’인지 ‘만돌라’인지 ‘만기타’인지도 모르던 분들이었어요. 저는 교회 안을 돌아다니며 불만 켜져 있으면 가보고 아무도 없으면 끄는데 누가 또 켜놓고 가요. 금년에는 여러분 가는 데마다 마지막 사람이면 늘 끄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 저쪽 방에 불이 환하게 켜있어서 ‘이 시간에 불을 켜놓고 갔나?’하고 가봤더니 둘러앉아 만돌린을 배우고 있었던 겁니다. 연주할 때 얼마나 잘했습니까? 어느 권사님은 60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런 걸 배워서 독주를 해요.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저는 이런 분들을 좋아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 의욕이 있고 갈 길이 있고 소명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그저 늙어가지 말고 날마다 좋아지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개인에게 올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보여주십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좋은 남편, 아내, 좋은 아빠 엄마가 될까?’ 가정적으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30대말 40대 초반 여러 해 동안 전국 청소년 집회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끝내면 애들이 몸부림치며 울어요. ‘쟤들이 뭘 안다고 저렇게 한이 맺혀 통곡을 하나?’ 의아했지만, 한명씩 대화해보니 공통점이 있었어요. 부모와의 사이에 고통이 있더군요. 저는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런 고통이 있는 줄을 몰랐어요.

 

얼마 전에 어느 고등학생이 찾아와 한 시간 이상 얘기를 하는데 얘긴 간단했어요. 부모와의 관계가 나쁜 거예요. “제 부모님은 제 말을 듣지 않아요” 하면서 막 웁니다. 잘못할 땐 지적하고 잘할 때는 칭찬을 안 하니 부모님이 자기를 안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아이들의 말을 잘 듣고 “그랬냐? 그런 줄 몰랐구나. 네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니? 내가 너를 힘들게 한 줄 몰랐어. 미안해”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고 “이해가 된다”고 했더니 “제 말을 듣고 이해가 된다는 사람은 제 일생에 처음입니다. 그것으로 제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성령께서 그 아이를 위로하시려고 제게 이해한다는 말을 하게 하신 것 같아요. 그 아이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잘 듣고 “그러냐? 얼마나 힘들었냐?”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가정적으로 금년에 여러분이 갈 길이 있기를 바랍니다. 보다 좋은 길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새 아이디어를 얻고 새 물건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더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좋아하고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소명을 올해 이루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늘나라의 상을 바라보며 가야 합니다.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며 전진하여 하늘의 상을 받아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 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을 맡기리라”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마지막 축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며 이 한해를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달려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첫째,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해집니다. 매일 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혹시 내일아침에 깨어나지 못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하며 행복하게 잠자리에 드시기 바랍니다.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와 국가가 여러분 때문에 밝아지고 좋아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는 가운데 선교전략학교나 선교학교 훈련을 받아 단기선교도 가보는 가운데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복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언제나 마지막 목표는 영적인 목표라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잘살아도 수고와 아픔과 눈물과 고통과 오해와 늙음과 병듦과 죽음입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과 부활이 있습니다. 아픔도 눈물도 한숨도 질병도 죽음도 외로움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과 저의 마지막 고향입니다. 그 고향을 바라보면서 이 한해도 한걸음씩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어느 분이 나이 들어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서 의사의 진단을 받으러 갔습니다. 의사가 “뇌수술을 하면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는 있으나 너무 정교한 뇌수술이어서 자칫 잘못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시력과 기억력 중 어느 것을 되살리고 싶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이 사람의 대답은 “시력을 원합니다.” “저는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살기보다는 앞으로 갈 길을 눈으로 바라보며 살고 싶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기억력은 사라져도 영적 시력이 좋아져서 저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축복과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한해도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행복하고 신실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5.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

민수기 13:25~33 / 고신일 목사 

 

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장 25~33절>

 

 

 

 

 

 

 

 

할렐루야!

2006년입니다.

또 새로운 한 해를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크게 [감사합니다]

2006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해"로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세계 곳곳에서 신년 문안 전화가 왔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병주집사님을 비롯해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필리핀, 태국, 이집트, 캐나다, 독일… 등에서

안부 전화가 왔습니다.

그 모든 안부가 제게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을 향한 인사로 알고 감사 드립니다.

 

온 세계에 있는 성도들,

인터넷 중계로,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비디오 테이프로 예배드리는 이들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기회는 희망입니다

 

새해를 맞으면 우리의 마음이 들뜹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들뜬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해가 바뀌는 것이 얼마나 좋고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는 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을 더 규모 있고

체계 있게 계획 세우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기회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 받은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받았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쥐로 실험했습니다.

독 안에 쥐를 집어넣고 빛을 완전히 차단했을 때 쥐는 3분밖에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계속 비춰주니 36시간이나 생존했습니다.

캄캄한 독 안에서 3분만에 죽은 쥐는 체력이 쇠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절망하여 죽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희망은 바로 생존의 근거입니다.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산 소망을 가진 성도임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벧전1:3)

 

새로운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축복의 시작을 이끌고 갈 인물이 없이는/인물이 아니면

새 시대는 단지 허망한 꿈이 되고 맙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새 역사를 열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려진 희망 보다, 펼쳐진 새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끌고 갈 새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기둥교회가 2006년을 새로운 해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새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새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서 희망의 시대가 열린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의 역사는

모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의 시대는 사무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고,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구속의역사도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처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마다

그 시대를 이끌고 갈 사람, 이끌고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역사 또한 사람들의 가고 오는 것을 통해 그 흥망성쇠를 거듭 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페르시아의 고레스,

그리스의 알렉산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등.

사람과 시대는 분리할 수 없는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정탐꾼들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상징인 성막도 완성되었습니다.

땅을 정복할 진영도 완성하고 군인들의 숫자도 파악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을 취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정복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가서

40일 동안 정탐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민13:25)

그들은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그 땅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보고부터 보고의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땅은 기름지고 좋은 것이 분명하나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12명중에 10명의 사람들이 거기에서 거인족인 아낙자손을 보았고,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민13:28~29)

그러니 그들을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기리라 못하리라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르게 보고했습니다.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정신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기리라" (민13:30)와 "못하리라"(민13:31) 입니다.

똑같은 땅을 보고, 사람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2사람은 "이기리라"고 하고, 10명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분명 둘 중에 하나는 틀린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도 늘 이 두 가지 마음의 대립이 있습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이 대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승리할 때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은혜와 축복의 기회를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의 상반되는 마음,

"이기리라"와 "못하리라"는 마음이 생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못하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그들에게 비교하면 겨우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메뚜기가 어떻게 장대한 거인들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메뚜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 장대한 아낙 자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단지 먹어 치워야할 "밥"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면

"… 두려워하지 말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 (민14:9)

따라서 합니다.

"… 두려워하지 말라 … 여호와는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 (민14:9)

 

우리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뛰어가는 사람보다 날아가는 사람이 한 수 더 위라는 뜻입니다.

그럼 "나는 놈" 보다 한 수 위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그건 "붙어 가는 놈"입니다.

뛰는 놈도 지치고, 날아가는 놈도 결국 지치겠지만

붙어 가는 놈은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붙어 간다는 말이 자칫 빌붙어 사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마땅히 붙어야 할 곳에 붙어 있는 존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우리 스스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힘없는 메뚜기 같을 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기만 한다면

범사에 승리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넘지 못할 산이 없고, 못 건널 강이 없습니다.

이기지 못할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누구를 보느냐입니다.

2006년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같은 메뚜기라도

자기만을 바라보는 메뚜기는 정말 메뚜기의 삶을 살 것이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메뚜기는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다른 정탐꾼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똑같은 눈이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같은 사람을 보아도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새 시대를 열어 가는 사람들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바울, 루터, 웨슬리… 모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은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계심을 느낄 정도였습니다.(창 21:22; 26:28; 30:27)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은 남의 나라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이었습니다.

하인이 된 요셉은 그 집의 주인인 보디발이

요셉이 믿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2006년의 삶이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소수의 민족이며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7:7)

 

가장 적은 데도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숫자의 계산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가 많기 때문에 숫자를 300명으로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미디안의 적들과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들과는 숫자적으로는 상대가 안됩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들이 미디안의 적들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승리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숫자나 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축복의 통로

 

모세도 기드온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못 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큰 일을 맡기시니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던 사람입니다.(출 3:11)

"못해요. 저는 말도 못하는데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닙니까?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도 일 좀 맡기려 하면

모세처럼 "저 못해요. 제가 어떡해 해요"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기드온도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십시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가 아닙니까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삿 6:15)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나니까

모세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키는 데 쓰임 받았고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들로 미디안을 물리치는 데 쓰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의 편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 편이시냐 입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사방에서 몰려와 진치고 있는 적들을 대항할

힘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적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싸워서 다 죽고

그 골짜기는 적들이 남겨둔 전리품으로 가득 찬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장대한 아낙 자손 같은 것도,

크고 견고한 성읍도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두신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 앞에 어려움이 있고 장애물이 있어도

'저건 내가 먹어 치워야할 밥'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으면 결국 영양결핍으로 죽을 수밖에 없듯이

믿는 자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 중에 하나가

고난과 시련의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그것들 모두는 크든 작든 축복의 또 다른 표현이며 새로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놀라운 역사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분명히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을 구별하셔서 보호하시는지를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홍해를 가르시는 것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신 것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거라는 믿음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기를 바라니다.

 

설사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동일한 승리를 주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열 명의 다른 정탐꾼들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버텼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때로 소외당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해하려 할지라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은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는 육체에 속한 사람이 하는 일 중에

많은 부분이 이런 일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5:20)

 

우리는 원수 맺는 것, 분쟁,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소망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위대함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마세요.

칭찬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전하는 사람입니까?

안된다는 사람에게 '이기리라'고 말해주는 사람입니까?

된다는 사람에게 '못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싸워야할 싸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못 한다, 못 할걸, 못 살아, 못 살겠다,

못 해먹겠다, 못하리라"에 대항해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못'을 빼야 합니다. '못'빼는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기십시오.

그래서 "한다, 할걸, 살아, 살겠다, 해먹겠다, 이기리라"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된다 하시면 되고, 이루신다 하시면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많고 적음에 동조하지 말고… 일의 크고 적음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면 되는 것입니다.

2006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 주일을 지키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을 구별하고

세상에 사는 우리의 날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축복의 언약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현찰로 1억을 어디에 두고 오신 분이 있다면…

온통 마음이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주도에 땅값이 오르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땅이 있고 집이 있는 분들은

땅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늘나라에 있기를 바랍니다.

 

☞ 일천번제를 드리며 기도하라는 이유도 똑같은 기도 제목으로

1000번 예물을 드리며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드렸던 '태울 번(燔)'자를 쓰는 일천번제(一千燔祭)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례 번(番)자, 천번을 같은 제목으로 예물 드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6년에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 냄새 풍기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나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말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손해가 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을 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사람의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2006년의 삶에서

"못하리라", "이기리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기리라"

승리하여 "새 시대를 열어 가는 사람" 되시고,

2006년을 축복의 해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새해의 다짐

마 24:3-1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

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

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

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

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

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

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공하려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가

장 필요한 것은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무슨 때인지 분별하지 못하

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를 분별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전 3:1).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인

간은 때를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마 16:2-3). 이 시대의 징조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지막이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이 오

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각 처에서 재앙이 빈번합니다(마24:7-

8). 전 세계적으로 지역 분쟁과 테러, 민족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남아

의 ‘쓰나미’, 미국의 ‘카트리나’, 파키스탄의 대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

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거짓과 불법이 난무합니다(마 24:11-12). 뿐만 아니

라, 사도 바울의 경고처럼 탐욕과 이기주의와 불효가 넘쳐나고 있습니다(딤후

3:1-2). 이때에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신부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랑을 맞

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아

무 생각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2006년을 열어가

야 합니다. 매일 나의 삶을 다짐할 때,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작심삼일이 아니

라, 작심 365일이 되게 합시다(마 24:13). 그러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로서 매일 다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성령의 도우심

으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됩시다.

 

첫째, 예배 우선으로 살겠다

 

새해에는 예배를 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예배 우선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

선’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성도는 아무

도 없습니다. 문제는 예배가 여러 스케줄 중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

니다. 어떤 계획보다 제일 우선이 예배입니다. 시간이 날 때 예배를 드리는 것

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잠잘 시간은 있는데 기도할 시간이 없다, 예배드

릴 시간이 없다, 새벽 기도할 시간이 없다, 그것도 안 됩니다. 또 다른 약속

은 잘 지키면서 왜 하나님과의 약속은 취소하려고 합니까? 내 몸과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고전 6:19하-20). 이 세상에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배는 우리

의 존재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

이니라"(사 43:21)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도 예배

입니다(출 5: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요

4:23하). 예배 우선에 우리의 생명을 겁시다(히 10:25).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예배나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

은 사람,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예배만 받으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상).

 

둘째, 가족 전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기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계적

인 성도’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온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예수

님의 꿈입니다(막 16:15). 이 큰 꿈을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을까요? 꿈이 클

수록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부터 전도하라고 가

르쳐주셨습니다(행 1:8). 오늘의 예루살렘은 바로 내 가족입니다. 가족부터 전

도할 때, 모든 족속을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혈연관계만

가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내 가족입니

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종들까지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17:13).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라합뿐만 아니라, 친족까지 구원받았습니다

(수 6:23). 고넬료도 일가 친척, 친구와 함께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행

10:24, 44). 성경은 분명히 가족 구원을 약속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우리 가족들은 구원받기로 약

속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전하면 됩니다. 모두에게 거부당한 사마리아 여

인도 전도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했습니다(요 4:39). 학문 없는 범인이라

고 무시당한 베드로가 전했더니, 하루에 3천 명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났습니

다. 우리에게는 보혈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 성령의 불, 하나

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변화되는 그날까지 전하고 기도합시다. 주님이 응답해

주십니다(갈 6:9).

 

셋째, 정직하게 살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또 강조해야 할 것이 바로 정직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직보

다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 무엇이든 정직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돈은 기업을 망칩니다. 정직하지 못한 실력은

개인을 죽이고 남도 죽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관계는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정

직하지 못한 지도자의 말은 국민을 괴롭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

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은 신앙을 가졌습니다. 누가 시키

지도 않았는데, 땅을 팔아서 헌금했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재산의 반을 드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전 재산을 드린 것처럼 거짓말했습니

다. 거짓의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잠깐은 속일 수 있겠지만, 영원히 속일 수

는 없습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정직

한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정직한 말을 합시다. 정직한 관계를 맺읍시다. 또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칩시다. 정직이 경쟁력입니다. 정직이 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

에게 방패가 되"(잠 2:7)신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정직이 대로입니다. 정직할

때 길이 열립니다(잠 15:19). 뿐만 아니라, 정직이 성공입니다. 성경은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 14:11)고 말씀합니다.

 

넷째, 땀 흘려 일하겠다

 

요즘 우리나라에 소리 없이 퍼지는 세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탕주의

입니다. 쉽게 돈 벌고, 쉽게 출세하려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화려한 인생을 꿈

꾸며 연예인이 되려고 하고, 어른들은 대박 인생을 꿈꾸며 로또 복권을 삽니

다. 둘째는 쾌락주의입니다. 거리마다 소비 향락 산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을 찾습니다. 공공 방송마저도 이런 일

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셋째는 체념주의입니다.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도전하

는 것을 싫어합니다. 힘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자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안 되는 것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성경은 "네가 네 손이 수

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라고 말씀합니

다. 땀 흘리고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일하십니다.

예수님도 일하십니다(요 5:17). 진실로 행복한 인생을 맛보길 원한다면, 땀 흘

려야 합니다. 멋진 미래를 누리기 원한다면,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

길 원한다면 더더욱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노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

십니다. 부지런한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기드온은 타

작마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 모세와 다윗은 양을 치고 있을 때, 부름 받았습니

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

녀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는 노동의 기쁨으로 사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신

부답게 삽시다. 새로운 다짐과 결단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삶의 목적과 방범

을 매일 다짐하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세상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세상

을 호령하며 삽시다.

 

 

 

7. 처음 행위를 가지라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7절

 

=======

1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

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

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

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

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

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

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

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서 론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성도들

이 복을 받는 방법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

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상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2장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에베소는 수도는 아니

었지만 인구가 30만이나 되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정치와

무역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으로도 부요한 도시였으며, 소아시아의 종교적 중심지이기

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에는 아데미신을 섬기는 아데미신전이 있었기 때문입니

다. 아데미신은 로마의 다이아나 여신을 가리키는데, 제우스신의 딸로 알려진 여신이

었습니다. 이 아데미신전은 기둥이 무려 127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건물로서, 고대 7

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여길 정도로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에베소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

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가르쳤고, 성령이 임하므로 방언과 성령의 능력들

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두란노서원을

세워서 2년 동안 말씀을 중점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말씀 사역에도 성공을 했고, 귀신

들린 자들과 병자들도 많이 치유했으며, 전도도 많이 해서 소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

들이 바울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박수들과 무당들까지도 자신들의 거

짓된 책을 가지고 와서 불태우고 예수님을 믿을 정도로 전도의 성공을 거둔 곳이 에베

소였습니다. 바울의 사역 후에도 디모데가 에베소의 목회자가 되어 부흥의 역사를 이

루었습니다.

이런 에베소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칭찬의 말씀과 더불어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

다. 이 책망의 말씀의 핵심은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2006년에는 주님을 향한 처음 행위와 첫 사랑

을 회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모습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본문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일곱별이라고 하는 것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목회하

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키며, 일곱 금촛대는 소아시아에 세워진 일곱 교회를 의미합

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교회에 대

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교회의 중심이시고, 교회를 향해 절대적 권위

와 명령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주의 종들을 그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계시는 분이

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를 붙드시고, 지휘하시며, 최고의 권위를 가

지고 머리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교회의 모든 일을 아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은 교회 안에 계셔서 모든 일을 역사하

시는 분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이지만

우리 교회의 목회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목회하시고, 저는 단지 예수님께

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목회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올 한 해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께서 기쁘시게 쓰시는 도구가 되

시기를 바랍니다.

 

2. 에베소교회를 향한 세 가지 칭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셨습니

다. 사람을 만날 때, 단점과 비판할 점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늘 부정적인 인생을 살

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자 해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칭찬하고 웃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칭찬과 미소는 사람들에게 따

뜻함과 격려를 주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는 예수님처럼 여러분 모두가 적극적인 자세

로 서로를 격려하고 붙들어주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에 대해 세 가지 칭찬을 하십니다. 먼저 에베소교회가 수고

를 많이 하는 교회라는 점을 칭찬하십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3절에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

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게으

르지 아니하고 수고한 모든 것을 그 분께서는 다 아시고 갚으시며 칭찬하시는 줄로 믿

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에베소교회는 윤리적으로 순수했다는 점을 칭찬하셨습니다. 2절 후반부를

보면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윤리적으로 순

수했으며, 윤리적으로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과 거짓된 것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모든 성도들도 올 한 해도 윤리적으로 정결한 삶을 사시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윤리적으로 불결하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에베소교회는 교리적으로 건전했다는 점을 칭찬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

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니골라당은 초대교회시기에 있었던 영지주의의 한 분파였

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오직 영은 선한 것이고 사람의 육체와 물질세계를 악한 것이

라고 정의했습니다. 육체는 어차피 악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면

서 타락하고 방종한 생활을 거듭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이와 같은 거짓된 영지주의

를 미워했습니다.

 

3.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

 

이처럼 에베소교회는 활동이 왕성하고, 윤리적으로 순수하며, 거짓된 교리를 미워하

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한 가지 책망을 듣습니다. 본문 4절

을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기록되

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면 누구나 처음 사랑을 갖게 됩니다. 이 영적인 첫사

랑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첫사랑의 특징은 ‘기쁨’입니다. 저는 28살에 처음 예

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그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죄 용서받은 기

쁨, 예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 기도 응답을 즉시 받는 놀라운 기쁨, 예수 안에

서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고 교제할 때 오는 기쁨,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밀려오는 기

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기쁨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은사를 체험할

때 느끼는 기쁨도 최상의 기쁨이었고, 교회의 회원이 되고자 침례를 받았을 때의 기쁨

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기쁨도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처음 십일조를 드릴 때 경험했던 기쁨은 불신자가 상상도 할 수 없

는 그런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이요, 처음 행위였습니

다.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누구나 이런 첫사랑이 있

기 마련입니다. 만약 그런 첫사랑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바로 이런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이 첫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버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이 조금씩 죄를 짓게 되

고, 악한 일과 타협하게 되면 어느새 악의 한 복판에 서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악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구약 성경의 삼손이 좋은 예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어렸

을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삼손은 방종한 여

인과 슬금슬금 교제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결혼에 자꾸 실패하고, 죄와 조금씩 타협하

다가 결국 그는 사사기 16장 20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

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것

을 알려주고, 머리카락을 모두 깍이고도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 왔을때 나가서 “내가

전처럼 힘을 떨치리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삼손을 떠나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

니다. 그리고 결국 삼손은 블레셋의 포로로 잡혀가 두 눈이 뽑히는 비참한 상황에 이

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선을 행하다가 악으로 가는 것은 갑자기 되는 일

이 아닙니다. 조금씩 선을 떠나다 보면 어느새 악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

는 것입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던져 넣으면 금방 튀어 나오게 되지만, 서서히 데

워져 가는 물에 넣으면 물이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결국 죽게 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교회도 어느 날 갑자기 처음 행위를 모두 버린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처음 사

랑을 떠나다 보니까 어느 날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죄와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

다.

 

3. 에베소교회를 향한 세 가지 권면

 

에베소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5절 말씀에 나타난 세 가지 동사를 통해 세 가지 권

면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

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

서 옮기리라.”

첫째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Remember)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떨어졌다는 말

은 높은 장소에서 떨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영문 번역은 본래

“Remember the height from which you have fallen”인데, 이는 “네가 영적으로 어

느 높이까지 올라갔었는데 슬금슬금 떨어지더니 지금은 바닥을 헤매게 되었구나. 본

래 네가 있었던 그 자리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 그리로 올라가라”는 의미입니다. 어

떤 면에서 신앙생활은 마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

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이 신앙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러나 에베소 성도들은 이 사닥다리를 열심히 올라가다가 중지하고, 그만 밑으로 다시

내려와 버린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가 어디까

지 올라갔는지를 기억하고 다시 목표를 정해 올라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로 회개하라(Repent)는 권면입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죄와 악 때문입

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처음 행위를 가지라(Do)는 권면입

니다.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Do the things you did at first!”라고 기록하고 있습

니다. 우리는 처음에 행했던 그것들을 다시 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에베

소교회를 향해 첫째는 생각하고 둘째는 회개하고 셋째로는 처음 행위를 행하라고 명령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권면을 따라서 2006년도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우리가 처음 행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결론적으로 실천적

인 방법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잠언 29장 18절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

이 방자히 행하거니와(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말씀합니

다. 비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 하는 작업입니다. 내 가정이 2006년말에

는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인가? 내 사업이 2006년말에는 어떤 사업이 되어야 할 것

인가? 우리 교회가 2006년말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

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

신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땅에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건축되는 비전을 가

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와서 성경도 공부하고, 밥도 사먹고, 체력단련도 하고, 쉼도

얻는 종합신앙센터가 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비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강남중앙

침례교회는 세계에서 신앙의 중심, 선교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

회, 그리고 사업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미래를 이미지화하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

다.

또한 비전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에너지를 하나의 초점에 맞추는 작업입니다. 저는 어

렸을 때 볼록렌즈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서 신문지 한 장을

바닥에 깔고 볼록렌즈를 통해 한 곳에 햇빛을 모으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가만히 있

던 신문이 조금씩 타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햇빛을 모아야 신문이 타기 시작

하듯이, 초점을 맞춰야 그 곳에서 불도 나고,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06년도에는 새롭게 비전을 세우고, 여러분의 삶의 초점을 비전에 맞추는 한 해가 되

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께 새롭게 헌신하는 영적인 결단 여섯 가지를 내려야 합니다. 그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매일 성경읽고 기도하겠다. 2 한 달에 한 권 이상

경건서적을 읽겠다. 3 교회 정기예배는 모두 출석하겠다. 4 한 가지 이상 교회를 위

해 봉사하겠다. 5 한 명 이상 전도의 열매를 맺겠다. 6 적어도 십일조와 선교헌금에

는 동참하겠다.”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최소한 이 여섯 가지 정도는 마음으로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이 결단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행하

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

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2006년 한 해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에 모

든 재앙을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시며, 하나님께서 주

신 비전이 여러분들에게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