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10. 1. 23. 11:29

이렇게 자라겠어요
오늘의 말씀 : 히브리서 13:8~9
외울 말씀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한 마디 말 : 믿음 안에서 자라가라.
찬양 : 나는야 주의 어린이


Ⅰ. 들어가기

  (백일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누굴까요? 네, 전도사님이 태어나서 백일 째 되는 날 찍은 백일사진이에요. 전도사님도 어렸을 때는 이렇게 먹어주는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친구 분들이 저를 참 좋아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전도사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어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내려갔다가 어머니 친구 분을 한 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이 저를 보시더니 얘가 제헌이냐고 하면서 꽤 놀라시더라구요. 얼굴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표정이었어요. 이렇게 놀라워하시는 그 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 때는 한참 외모에 대해 많이 생각할 때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못생겨져 가는구나’라고 고민했어요. 얼굴에 여드름도 나기 시작했거든요. 코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고 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아니야, 남자다워지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전도사님 여동생은 반대예요. 어릴 때는 정말 못 생겼었어요. 앨범을 보는 사람마다 다 그래요. 하지만 자라면서 어머니 얼굴을 닮아 가더라구요. 너무나 많이 예뻐졌어요.

  이렇게 얼굴은 자라면서 변해요. 우리 모두 마찬가지죠.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얼굴만 변하나요? 키도 자라고, 발이 크니까 신발도 커지고, 때로는 용돈도 많아져요. 목소리도 바뀌고, 달리기도 빨라지고, 좋아하는 것도 바뀌지요. 그리고 나만 바뀌나요? 아니에요. 내 주변 환경도 계속 바뀌지요.

Ⅱ. 이야기

  특별히 4, 5, 6학년이 되면 생각이 많이 바뀌어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있어요.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매우 빠른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있어요. 이 시기를 흔히들 사춘기라고 하지요. 이 시기에는 몸도 마음도 생각도 참 많이 변해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달라져요.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져요. 그리고 때로는 이로 인해 혼란스럽기도 해요.

  또한 이 시기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정리해 가요. 이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키기도 해요. 어떤 어른은 하라고 하는데, 어떤 어른은 하지 말래요. 이럴 땐 해도 될 것 같은데, 또 저럴 땐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참 헷갈려요.

  쉬운 예로, 휴지를 버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무 생각 없이 휴지를 땅에 버려요. 분명히 책에는 휴지통에 버리라고 써 있어요. 잘 알지만 친구들이 다 땅에 버리니까 괜찮은 거겠지라고 생각돼요. 그런데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시네요. 그럼 또 주워요. 하지만 또 다른 어른들은 땅에 휴지를 버려요. 그러면 혼란스럽죠. ‘어렸을 때는 안 되지만 크면 버려도 되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주로 작은 것들만 땅에 흘려요. 사탕 봉지, 껌 종이, 과자 봉지 찢은 것 등. 그러면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요. ‘아, 이 정도 크기의 휴지는 버려도 괜찮겠다.’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지만, 사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요. 이처럼 변화가 심한 4, 5, 6학년 시기를 어떻게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Ⅲ. 말씀보기

  오늘 말씀에 보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세요.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세요. 늘 똑같으세요. 그러므로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기대면, 우리가 믿음 안에서 멋지게 자랄 수 있다고 말씀하세요.

Ⅳ. 생각하기

  초대교회 사람들 중에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바로 예수님을 믿게 된 유대인들이었어요. 이들도 우리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유대인들은 참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어요.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그냥 먹지 않았어요. 밥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어요. 먹지 말아야 할 음식도 있었어요. 돼지나 토끼 같은 짐승이나 새들은 먹어서는 안 될 부정한 것들이었어요.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전의 규칙에 매여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규칙들을 행해야 진짜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님의 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더불어 이상한 가르침을 전하는 이단도 생겼어요. 이들은 식물을 통한 의식을 행해야 온전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어요.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이지만, 여기에 적지 않은 교인들이 넘어갔어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화되었어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아요. 이것이 은혜예요.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거예요.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옛날처럼 계속 노력하려고 했어요. 예전의 규칙들을 지켰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거든요. 이런 삶이 몸에 베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유대인 친구들도 다 그렇게 예전의 규칙들을 지키며 살거든요.

  거기다 어떤 교인들은 식물을 통한 의식을 행해야 온전하게 될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더 헷갈리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어 변화되었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어요. 교회에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전의 규칙을 계속 지키며 살아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식물을 가지고 의식을 행해야 한데요. 이거 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고민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변함이 없어요. 어제의 예수님이 다르고, 오늘의 예수님이 다르고, 미래의 예수님이 다른 게 아니에요. 영원히 똑같으세요. 그러므로 구원받는 방법도 바뀌지 않아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거예요. 여러 규칙들을 행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에요. 따라서 다른 교훈들에 유혹되면 안 되요. 식물을 먹으면 몸에 좋지요. 하지만 마음에도 좋은 것은 아니에요. 식물을 가지고 의식을 행해야 마음이 온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식물은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며칠 전에 한 고등학교의 교목 목사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셨어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이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그것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나오신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이 목사님께 가르침을 받는 그 학교 고등학생들이 얼마나 헷갈리겠어요.

Ⅴ. 실천하기

  이렇게 이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상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도 많아요. 이럴 때 우리는 변함이 없으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해요.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아요. 따라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될 때는 말씀을 봐야 해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생각해봐야 해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그러므로 이 세상도 계속 변해요. 따라서 우리의 기준이 사람이나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요.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해서는 안 되요. 언젠가는 또 변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해요. 그러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