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10. 1. 23. 15:24

전신갑주를 취하라

 

엡6:10-23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성경은 마귀의 존재를 인정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듯이 하지만, 우리가 대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묘책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씨름의 성격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눈에 보이는 전쟁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우리는 이 적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바로 이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이라고 밝혀주고 있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싸운다면, 고대시대에는 칼과 창과 방패와 투구 이런 것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 영적전쟁에 있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할 때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사도는 세밀한 묘사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어떤 요소들로 되어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런즉, 서서...

 

 

그 전신갑주를 입은 용사는 서 있어야 한다. 전투를 수행하는 병사가 앉아있거나 누워 있으면 그 무장은 무의미 하다. 우리의 육체는 피곤하게 서 있는 것 보다는 앉아있고 앉아있기 보다 누워 쉬기를 청하며 누워 있노라면 잠을 청하고자 한다.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 싸우는 군대들을 호령하시고 군사들을 지휘하시는 그리스도를 주목하며 서 있어야 한다.

이제 여섯가지 전투를 위한 무장이 나온다. 허리띠, 흉배, 신발, 방패, 투구, 칼 하지만 이들 중 공격을 위한 진정한 무기는 오직 “성령의 검”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이 영적인 싸움에서 마귀를 공격하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이리 더욱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승리의 원인은 오직 하나 칼로 적을 찌르는 공격이지만, 패배의 원인은 수없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허리띠는 사람들의 복장을 묶어 주어 움직임에 기민하게 해준다. 지체하지 않고 진군하기 위해 허리띠를 띠는 것은 필수적이다.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은밀하게 즐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이런 허리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에는 긴장이 없으므로 허리띠를 졸라맬 이유가 없다. 진군나팔소리가 울려도 참전할 의사가 없으므로 허리띠를 띠지 않는다.

 

그 허리띠는 바로 진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할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전쟁에 적합한 군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진리에 붙들려 전투하기에 적합한 자인가?

 

 

“의의 흉배를 붙이고”

 

흉배는 당시 군인들이 가슴에 차고 다니던 것이었다. 이것은 적의 칼이나 창, 화살로부터 가슴을 보호하고 특히 심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방탄쪼끼이다. 이 흉배는 가슴에 붙이는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정복의 야심에 들떠 행군에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며 “저 산만 넘자, 그리고 정복하자. 그리하면 마을의 술과 여자들이 모두 너희의 것이 될 것이다”며 오직 정복을 위한 야욕과 탐심에 불탔다. 당시 로마군인이 그러했다면 영적전쟁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떤 가슴으로 이 싸움에 나가야 할까? 우리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불이 타올라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마5:6)자가 되어서 나가는 것이다. 온갖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는 시대에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로마의 군인들을 반군을 진압하거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출전하는 군사들이어서 멀리 행군을 해야했다. 아주 험한 산을 넘고 가시덤불을 지나기도 했다. 때로 적군이 쳐 놓은 덫에 발목을 치이는 일도 이었다. 그들의 군화는 이 때에도 발이 상하지 않도록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복음의 신발은 우리의 인생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길을 행군하는 군사와 같은 삶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로 걸어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발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군인이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커다란 흉배를 붙이고, 특별한 군화를 신었다고 해도 방패가 없으면 소용없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전투에서 즐겨 사용하던 무기는 독화살이었다. 뾰족한 화살촉에 독을 묻혀서 쏘면 맞은자는 맹렬한 독이 온 몸에 마치 불 붙는 것처럼 삽시간 퍼져서 죽곤하였다. 그것은 불 붙는 화살이다.

 

방패는 휘두르는 칼을 막기도하고, 찌르는 창을 피하기도하지만, 특히 “모든 화전을 소멸하는”무기로 표현하고 있다. 화살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공중을 날아온다.

 

우리의 삶에 의심은 화살처럼 우리를 파고든다. “하나님이 계실까? 성경은 진짜 하나님말씀일까? 왜 내 생은 남들 안그런데 왜 나만 힘든가?” 등의 의심속에서 우리를 파괴시킨다. “봐 너는 이처럼 소망이 끊어진 채 절망의 벽에 둘러싸여 잇지 않느냐? 네가 믿음으로 바라던 구원자가 어디있느냐?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냐? 네가 바라던 하나님은 어디있느냐?”

 

이러한 상황에서 날려오는 의심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방패뿐이다. 히브리서10장에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른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의 이야기가 열거된다. 그들이 수많은 핍박과 의심의 화살을 뚫고 지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1-39)

 

 

“구원의 투구를....... 가지라”

 

투구를 씀으로 군인의 지체중 가장 치명적인 부위가 될 머리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사단은 그릇된 생각에 우리를 사로 잡히게 만든다. 우리의 머리를 겨냥하여 우리 속에 심기운 말씀을 가리우고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어 놓는다. 휴전선에서 양측 모두 대형 스피커 시설을 해놓고 선전을 한다. 북한에서 이 방송을 통하여 국군의 사기를 꺽으려고 온갖 궤계를 쓰고 어떤 때는 처량한 노래를 틀어주어 집에 가고 싶게 만든다. 사면초가의 고사에서 보면, 한나라를 이끄는 유방이 초나라 초패왕 항우의 군대를 한군데 쓸어 넣고서, 지친 병사들에게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를 들려주어 초나라의 군사들이 스스로 떠나게 만들었다. 사면이 초가로 싸여서 초나라 군인들의 사기를 꺽어 놓았다.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내가 은혜로 너를 구원하였고 나는 너를 영원히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영적전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칼로서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늘어선 대적들을 찔러 무찌른 넋이다. 이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도록 우리의 칼은 예리하고 몸체가 튼튼하여 수 많은 적을 무찔러도 여전은 그 칼날은 빛을 발한 것이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받을 때에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마4:4) 말씀의 칼로 유혹을 이기셨다.

 

 

사도바울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한다. 어떻게? 깨어 구하기에 항상 힘써서

무엇을? 여러 성도를 위하여 또 나를 위하여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알리게 해 달라고 말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성령 안에서 기도함이 있는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하여”(고전4:4)

 

바울은 20절에 이 일을 위하여 즉 복음의 비밀전하는 일을 위해 쇠사슬에 매였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히 할 말이라고 선언한다.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한 하나님의 전신의 갑주를 취한 자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진정한 승리자로 서기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