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10. 3. 25. 16:49
어린이 설교 - 구원의 주 

구원의 주
오늘의 말씀 : 이사야 53:1~12


외울 말씀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한 마디 말 :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끔찍한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어요.
찬양 : 날 향한 하나님의 꿈


Ⅰ. 들어가기

  우리나라 최고의 영웅은 누구일까요? 아마 많은 어린이들이 이순신이라고 답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순신은 왜적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웠어요. 그리고 머리가 뛰어나 작전을 잘 짰어요. 그래서 명량해전에서는 배 12척으로 133척의 적군을 무찌르기도 했어요. 이순신 하면, 강하고 충성스러우며 나라를 사랑하는 사나이가 생각나요. 아마도 이런 이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의 모습일 거예요. 그래서 게임이나 만화의 캐릭터도 보면, 다들 잘생기고, 키 크고, 힘세고, 덩치 좋고, 똑똑해 보여요. 왜냐하면 이 정도는 돼야,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요. 월드컵 때문에 신나긴 했지만, 사실 여기 저기 곪아 있는 데가 많아요. 뉴스에서는 안 좋은 소식들만 잔뜩 전해줘요. 그래서 전도사님은 이런 소망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만일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구원자는 다 이런 영웅들이에요. 심지어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무시무시한 용으로부터 구해낸 사람도 필립 왕자라는 영웅이었어요. 그래서 이사야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당연히 영웅 같은 메시야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기대했어요.

Ⅱ. 이야기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의 동쪽에는 앗수르(앗시리아)라는 무섭고 강한 나라가 있었어요. 당시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요. 결국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먼저 멸망당하고 말았어요. 이사야는 남유다에 있었는데, 오히려 그때 남유다는 풍요로웠고 백성들로 평안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년 뒤에 앗수르가 남유다도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쳐들어 와서 46개의 성을 파괴하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어요.

  이사야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결국 남유다도 멸망할 거라고 예언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불순종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참다 참다 심판하신 것이었어요.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래서 이사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대했어요. “메시야만 오시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메시야는 어떤 분일까? 아마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분이겠지? 그래서 우리가 다윗 왕 때처럼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할 거야. 메시야는 앗수르를 한 방에 KO시켜버릴 거야.”

Ⅲ. 말씀보기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보여주신 메시야의 모습은 정 반대였어요. 메시야를 왕이라고 말하지 않고, 종이라고 불러요.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거나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러면 선지자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 백성에게 전했어요. 아마 이때도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메시야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사야가 본 것은 너무 당혹스러운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내용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어요. 전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어요.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이 말은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전한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을까? 여호와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을까? 그 누구도 결코 믿지 않을 거야.”

  그러나 어찌됐든 이사야는 자기가 본 것을 전하고 있어요. “나는 그 종을 보았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룰 그 사람을 보았어요.” “이사야님, 그 종이 어떻게 생겼나요?”

  “그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어요. 나는 그 종이 멸시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성 밖으로 내몰리는 모습도 보았어요. 나는 차마 그 종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심하게 그를 때렸기 때문이에요. 그의 얼굴은 매우 심하게 상했어요. 나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차마 그를 쳐다보고 싶지 않아서 자기들 손으로 눈을 가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 종이 고난 받는 모습을 구경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 사람은 하나님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거야.’”

  이사야는 이 환상을 보고 분명히 움찔했을 거예요. 우리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고 끔찍하게 느꼈던 것처럼 말예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더 놀라게 하세요. 사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원해서 된 거래요. 하나님의 종에게 가해진 그 끔찍한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래요. 아니,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냈으면, 뭔가 큰 일을 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실컷 고통 받고 죽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원해서. “뭐가 이러냐? 그럼, 끝이네. 망했네.” 이렇게 어이없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또 이사야의 뒤통수를 치세요. 10절 마지막 부분이에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낼 방법이었던 거예요. 하나님의 축복이 세상에 가득하게 하기 위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이 고난 받고 죽도록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가 고난 받고 죽게 하셨어요.

  왜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모두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아니, 하나님을 알 수조차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없애야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에게 모든 죄를 씌우셨어요. 그리고 메시야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 받으셨어요. 죽으셨어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세요.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야는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종으로 오셨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왜 예수님께서 반항도 한 번 안 해보고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 확실히 알겠죠?

Ⅳ. 실천하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끔찍한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그 모진 고난을 다 당하셨어요. 이 감격을 항상 가슴 속에 새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어린이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영웅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러 프로그램이나 대단한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종들에 의해 이루어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