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공 상희 2010. 4. 25. 06:56

성령 은사는 몇 가지인가? (고전 12:4-6)

 

 

이 시간에 “성령 은사는 몇 가지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성령의 은사가 많이 나오지만 은사가 몇 가지라고 말씀한 곳이 없습니다. 곡식과 채소와 과일이 다양하듯 은사도 다양해서 정확히 몇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은사는 여러 가지라 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내용적으로 분류해 보면 두 가지입니다.


1. 은사의 다양성입니다.


4-6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 직임은 여러 가지나 -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그랬습니다. 은사란 한 가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은사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예수님도 은사입니다. 행13:34에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했습니다. 예수님도 은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영생도 은사입니다. 롬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했습니다. 독신도 은사입니다. 고전7:7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그랬습니다. 약1:17에 “각양 좋은 은사”가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벧전4:10에도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은사는 다양합니다. 찬송가에서는 만 가지 은혜라고 했습니다.

 

롬12:6-8에는 은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침, 권위, 구제, 다스림, 긍휼을 베품, 약 6가지입니다. 고전12:8-10에는 9가지로 소개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이상 9가지입니다. 그런데 고전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했어요. 다른 더욱 큰 은사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엡4:11에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퓰러 신학교 교회성장학 교수 피터 와그너는  은사를 약 27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잠시 소개하면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면, 헌금, 지도력, 긍휼, 지혜, 지식, 믿음, 신유, 기적, 영분별, 방언, 방언 통역, 사도, 서로 돕는 일, 행정, 복음 전하는 일, 목사, 독신,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 순교, 대접하는 일, 선교사, 남을 위한 기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 등입니다.


은사의 종류를 말씀 드리는 것은 그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이나 지식 지혜 등은 인정하면서 나머지는 지금은 은사의 시대가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피해를 많이 본 사람 중 한 사람이 김익두목사였습니다. 김익두목사는 776번의 부흥집회 인도, 2만 8,000회의 설교를 했던 부흥사 김익두목사는 150여 곳에 교회를 세웠고 새신자 28만 명이었고, 병에서 치유된 자가 10,000여명, 그의 감화로 목사가 된 사람이 200여명이 있는데 그 중에 이성봉, 주기철, 김재준 등 한국교회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이 몇 십만도 안 되던 그 시대에 김익두목사의 부흥운동은 한국교회에 보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장로교 정치헌장 3장 1조에 "금일에는 이적 행하는 권능이 정지되었느니라."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23년 황해노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이걸 수정하려고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반대자들은 한국교회의 부흥이라든지 긍정적인 면은 염두에 두지 않고 부흥집회 시 강사에게서 발견되는 단점들만 나열하며 원안을 고수했습니다. 지금은 헌법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개정되었는지 발견하지 못했는지 다행히 그런 문구는 발견되지 않네요. 그러나 당시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은사는 계속되고 나머지는 정지되었다는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치면 함께 그쳐야죠. 우리 교단의 신학교수들 중에도 이적을 부정하다가 산에서 기도하다 체험하고 방향을 달리한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교수는 이적을 부정하다가 하나님이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내는 시련을 당하고 방향을 긍정으로 정한 분도 있습니다. 가족이 병들어 죽어가도 낫게 해달라는 기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답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고전12:7에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는데 이 유익이 지금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비참한 인생에게 지금도 여전히 은사는 필요합니다. 은사가 필요하되 다양한 은사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은사가 인정되는 곳에는 강력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은사의 다양성은 은사론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2. 한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4-6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여기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같은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성령이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와 은사가 다르다고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은 은사라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이라도 같은 예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대한 예언을 주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국가에 대해서 주로 합니다. 병 고치는 은사도 다양합니다. 신유 은사자에 따라서 어떤 병이 더 잘 치유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유은사는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경을 보는데도 어떤 이는 어떤 방향에서 말씀이 열립니다. 어떤 이는 또 다른 방향에서 열립니다. 내 것만이 옳다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내가 받으면 은사요 남이 받으면 신비주의라는 공식을 가진 사람도 만나보았습니다. 이런 것은 너무나 편협한 주장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았다면 어떤 것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난 것이면 어떤 것이라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혜가 되느냐? 덕이 되느냐? 유익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더라도 은혜가 안 된다면 은혜 될 일에만 국한해서 활용해야 합니다. 요즘 극단적 은사남용주의자들은 이상한 짓을 해서 은혜도 덕도 되지 않는데 강행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덕이 되지 않는 일을 강행하면 사단이 틈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지만 한 성령의 행하심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몸과 마음과 시간 드려 은사적으로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