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10. 5. 22. 07:15

세상의 소금과 빛 (마5:13∼16)


이 시간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밟히느냐 아니면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하는 것은 누구에게 달렸을까요? 답은 우리에게 달렸다입니다. 속담에 예쁜 정도 자기에게서 나오고 미운 전도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문제를 외부에서도 찾아야 하나 그보다 내부에서 더욱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을 간단히 말하면 세상에서 성도의 선행을 말씀한 것입니다. 성도의 선행이란 그 영향 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사람들이 회개하여 예수 믿게 되는 것도, 우리가 받을 상도 우리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고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세상은 벌써 복음화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한 가지 묻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맞는 말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우리가 보통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일까요?


소금도 되고 빛도 되어야지요.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이라. 빛이라 하셨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소금이고 빛이어야 합니다. 소금이니까 소금이지 소금이 아닌데 소금이 되려고 해서 소금이 되는 것 아니라는 말입니다. 먼저 내가 소금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은 성도의 신앙의 본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질만 찾으면 하지 말라 해도 모두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선행의 사람이 되어 사람에게 밟히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은 새 돈이어도 돈이고 구겨져도 돈이고 짓밟아도 돈입니다. 가치가 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신앙의 본질만 회복하면 누가 핍박하든 말든 상을 주든 말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행복의 여신이 등장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남긴 아름다운 자취들을 보면서 그가 지나갔음을 압니다. 산불로 타죽은 나무들도 행복의 여신이 지나가면 살아납니다. 죽었던 나뭇가지에서는 싱싱한 새 잎이 돋아납니다. 가뭄에 바짝 말라버린 들판도 행복의 여신이 지나갈 때 풀들이 자라며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던 물도 여신의 옷자락만 닫으면 맑은 물로 바뀝니다.


그러나 없는 그런 행복의 신이 아니라 성도는 세상에 행복을 주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성도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참 신자냐는 것입니다. 마음에 성령이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가 계시냐 입니다. 이 정체성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참 성령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아버지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하고 아버지의 사랑하심처럼 우리도 사랑하며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신분을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14-15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여기 등불을 등경 위에 둔다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자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의 속성 가운데 으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회에 선한 일 많이 하는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체를 너무 숨겨서 기독교 단체인지 아닌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몇 해 전에 기독교복지단체들이 모였는데 그 때야 기독교 단체인 줄 알게 된 단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고는 많이 하면서도 기독교가 핍박만 받게 된 것입니다. 오른 손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다고 숨겨만 왔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 자랑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지 신분마저 숨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인들이 방송사에서 그 선행을 알리기 위해서 취재하러 오면 천국의 상이 사라질까봐 거절합니다. 물론 자기 자랑하면 안 되지만, 자기가 했나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대로 드러내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성도를 높이시려고 권고하시는 일을 왜 막으려고 합니까? 

 

벧전2:12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무식한 자들에게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선행은 좋은 메시지가 됩니다. 그래서 벧전2:15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봐도 개인 신분은 감추어도 믿는 신분을 감추라는 말은 보지 못했습니다. 눅12:8-9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분을 감추지 말라고 했어요. 사람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라 하셨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예수 믿는 자임은 알게 해야 합니다. 너무 감추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구 삼아 역사하실 수 없고 또 선행을 하여도 누가 한지 몰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좌초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바람을 잔잔케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없고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습니다. 바람과 파도 앞에 무력한 자신의 믿음을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마음 속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히며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시며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고 말한 다음 함께 기도하자고 한 후 담대히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도가 끝난 후 5분도 채 되지 않아 파도는 잔잔해졌습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알려진 일본의 여류 소설가인 미우라 아야꼬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때 척추병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척추가 아파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이 기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때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밝은 웃음을 선사하기로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낙심하지 않고 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리고 그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웃어주기로 했습니다. 의사를 보아도 환하게 웃고, 간호사를 보아도 환하게 웃고, 옆에 있는 환자를 보아도 밝게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아니 허리를 다쳐서 꼼짝도 못하면서 무엇이 그렇게 기쁘고 즐겁습니까?" 그때마다 미우라 아야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너무도 행복하답니다."


그는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건강할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준 예입니다. 그리고 신분을 숨기지 않은 등경 위에 등불을 둔 결과였습니다. 사람들 앞에 예수를 믿는 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을 때 사람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3. 그 일을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본문에 "너는" 이렇게 단수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도 해야 하나 우리 모두가 손을 잡고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계획 속에서, 조직이 필요하면 조직을 갖추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회가 선한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하는 교회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이름 그대로 사랑하는 교회로도 유명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설립 이념대로 선교 구제 봉사 등 교회 밖으로 60%씩 투자하고, 해마다 새로운 교회 개척해 교인들을 나누고, 건축비 10%까지도 지역을 위해 쓰지만 더욱 성도는 늘어나고 더 많이 주의 일하게 넘쳐납니다. 그렇게 주고 또 주어도 왜 넘치는 것일까요? 사랑의 실천 때문입니다. 너희가 사랑할 때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했던 것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일군들도 실망하여 떠나가고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셨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어떤 영광을 나타낼 것인가 그것을 고심해야 합니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나 내부의 자리다툼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밖에서 빛과 소금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기도로 복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주님의 명령이면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찐빵을 만들어 파는데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빵도 크고 앙코도 파격적으로 넣었더니 수억 대의 매출을 내게 되었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식당 주방장이 주인이 자기에게 인색한 것이 못 마땅해 주인 망하라고 고기와 비싼 재료들을 많이 넣었는데 식당은 망하지 않고 좋은 소문이 나서 식당이 크게 번영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상 일도 그러한데 어찌 하나님이 일이겠습니까? 봉사하다가 사랑하다가 망할 결심하면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사명은 우리와 우리 기독교의 존폐문제가 달린 중요한 사명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소금이시고 빛이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소금이요 빛인 우리 본질을 회복하십시다. 참 예수의 사람이 되십시다. 참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사랑의 실천자가 됩시다. 믿는 자임을 감추지 맙시다. 우리 모두 함께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들이 돌이켜 예수 믿게 되는 전도의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