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10. 5. 22. 07:17

천국 백성의 삶2 (마 5:6-8)

 

 
이 시간에 계속하여 “천국 백성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행복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자기처럼 행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시켜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질투심이 생긴 천사는 행복을 갖다 주되 좀 찾기 어려운 곳에 감추어 놓고자 다른 천사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천사들의 여러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 찾아내고 말 것이라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천사들은 드디어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그저 자기의 머리와 재주만 믿고 설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그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신의 마음속에 행복을 묻어두자. 그러면 쉽게 찾아내지를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사는 행복을 사람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뭔가 교훈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와 같이 마음에 예수가 계셔 어떤 가운데서도 천사처럼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천국 백성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에 배부름은 단순히 육신의 배만 아니라 삶의 만족을 의미합니다. 삶의 만족을 누리십니까? 그러나 여기 의는 율법의 의도 아니요, 바리새인들의 자기 의도 아닙니다. 의롭게 살겠다고 율법만 먹으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율법으로는 자신도 남도 의롭게 할 수 없고 정죄와 다툼만이 있습니다.


원문에는 의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습니다. 그 의라는 뜻인데 그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롬3:21-22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진정한 의는 예수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누리는 의가 아닙니다. 이 의는 진정 목마른 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습니다. 얼마나 인간의 완악과 율법의 정죄와 세상의 유혹이 강한지 웬만한 갈망으로는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목숨 걸고 예수를 나의 주로 높이고 목숨 걸고 보혈을 믿고 목숨 걸고 세상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를 선택하고 목숨 걸고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나의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짜는 절대 예수를 못 믿습니다. 가짜는 절대 은혜 가운데 살지 못합니다. 천국은 진짜만 갈 수 있습니다. 바다의 물은 마실수록 더 갈증이 심합니다. 이처럼 세상 것을 갈망하면 만족이 없습니다. 바울처럼 세상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예수만 갈망하는 예수에 미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능동적인 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수동적인 의를 요구하신다." 능동적인 의는 자기 의지만 수동적인 의란 입혀지는 의입니다. 거기에 진정한 영혼의 배부름이 있습니다.


5. 천국 백성은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은 ‘자비’를 의미하는 ‘엘레오스’에서 온 말로서 용서하고 동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김이 나의 행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김 받는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용서해야 나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래서 마6:14-15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마 18장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의 비유에서 또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마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중심으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긍휼히 여길 때 윤리와 법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자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긍휼은 남에게 꿔주고 빚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남에게 긍휼을 베풂으로 나도 장차 그런 대접을 하나님께 받습니다. 심판도 긍휼은 다 이깁니다.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약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늘 긍휼로서 사랑의 빚을 주고 꿔주세요.


어느 날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더러운 문둥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 다른 날 예수님이 길 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긍휼을 많이 베푸셔서 이런 긍휼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으면 비판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 앞섭니다.


6. 천국 백성은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러분 하나님을 보셨습니까? 모두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봅니까?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 그 영광에 압도되어 살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보려면 여기 하나님을 본다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볼 것이라는 헬라어 '와손타이'를 살펴보면 '경험을 통해서 보다', '실제적으로 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재를 통해서 느껴지고 체험하는 그런 봄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모태에서 어머니를 느끼듯 우리 마음에 행복감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빌4:7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 했습니다. 이 평강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시각장애인은 사물을 눈으로 보지 못하나 접촉이나 온갖 여러 가지로 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로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세요. 속상한 일도 피하세요.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했거나 주님을 불러도 들으신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시편 기자도 진실로 회개하고야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 시32:3-5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했습니다.


성·어거스틴도 회개한 뒤에도 죄의 욕망이 가끔 일어나면 그럴 때마다 그는 팔을 물어뜯으면서 죄를 회개했다고 합니다. 마틴·루터도 자기의 죄를 깨닫고 졸도하기까지 심각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으로 찾아와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좀 짧았습니다. 그래서 산 중턱에 있는 학교에 한 계단 한 계단 목발을 짚고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언제나 밝았습니다. 늘 행복했습니다. 공부도 잘했습니다.


어느 날 계단을 함께 올라가던 친구가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얘, 하나님이 너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너의 그 짧은 한쪽 다리를 길게 늘려주셨으면 좋겠다." 그러자 그 여대생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멘!"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친구는 다시 "너 어떻게 하다가 그런 장애를 가지게 되었니?" 그 학생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응, 어릴 때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았어."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궁금한 점이 있다는 듯이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는 어떻게 그렇게 늘 행복해 보일 수가 있니?" 그러자 그 학생은 "그야 내 마음이 건강하니까 그렇지. 내 몸에 장애가 있다고 해서 내 마음마저 병드는 것은 아니지 않니?" 진짜 은혜 받고 마음이 건강한 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가장 행복하십시다. 성령의 은혜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남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알며 청결한 마음을 가지십시다. 그래서 심령에 만족과 긍휼히 여김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